학폭에 멍들었던 ‘학교 밖 청소년’, 시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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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09. 오후 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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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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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6세 나이로 시인이 된 ‘학교 밖 청소년’ 김동민 군(왼쪽). 지난해 초 부산의 한 서점에서 유튜버 ‘영알남’과 찍은 사진. 김선행 씨 제공.


‘꽃잎을 따서 손바닥에 올리고 / 꽃잎을 뭉개서 바람에 날리고 / 꽃잎의 향기는 손바닥에 남고 / 꽃잎의 추억을 코로 음미한다.’

김동민(16) 군의 등단작 ‘꽃잎’이라는 짧은 시다.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아픈 과거’를 시로 엮어낸 부산의 ‘학교 밖 청소년’이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다. 김 군은 지난 6일 월간 <창조문예>에서 제22회 올해의 신인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통보받았다.

‘일진’ 괴롭힘에 자퇴 김동민 군

‘창조문예’ 최연소 신인작품상

상처받은 청소년에 치유 메시지

책 귀퉁이 등에 쓴 100편 모아

어머니가 ‘하늘을…’ 시집 발간도

김 군의 수상 작품 꽃잎 등 3편은 <창조문예> 2월호에 실리고, 다음 달 28일 등단패 수여식을 통해 등단 시인으로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창조문예 발행 역사상 최연소 등단이다.

김 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시를 썼다. 당시 ‘일진’ 형들에게 구타와 괴롭힘을 당하며 느낀 불안, 외로움 등의 심경을 시 형태로 적어낸 것이다. 학폭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던 김 군은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김 군의 어머니는 자퇴 이후 휴지통에 버려진 일기장, 교과서 귀퉁이 등에 적힌 100여 편의 시를 모았다. 그리고 지난해 4월 30일 <하늘을 보고 싶은 날>이라는 첫 시집을 발간했다. 김 군도 “학폭 피해자는 위로와 힘을 얻고, 가해자는 학폭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용기를 냈다. 해당 시집은 학교폭력 예방 교육에 쓰일 수 있도록 각 학교 상담 교사에게 배포됐다.

김 군의 첫 시집 <하늘을 보고 싶은 날>에 담긴 ‘돌멩이’라는 시의 한 구절. 부산일보DB


김 군은 이번 신인상 공모에서 15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원로 작가의 심사를 거쳐, 60여 명의 지원자 중 김 군을 포함한 4명이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다. 기존 작품으로는 공모가 되지 않아, 김 군이 개인 블로그에 틈틈이 올린 새로 쓴 시 20편으로 응모했다.

창조문예 임만호 발행인은 “특히 ‘꽃잎’이라는 시는 기법과 표현에 있어 명시 중 명시”라며 “수십 년간 문단 생활을 해 온 심사위원들은 김 군의 재능을 ‘천재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군의 등단 소식에 축하 인사도 잇따르고 있다. 김 군의 첫 시집 발간을 도왔던 김소엽, 박인혜, 한상이 시인을 비롯해 홍순헌 해운대구청장, 김백철 해운대구 구의원 등이 “새해 첫 기쁜 소식”이라며 인사를 전해왔다.

김 군이 속해 있는 해운대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김소영 센터장은 “동민이는 북콘서트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처받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치유 메시지를 전달하며 귀감이 되고 있다”면서 “이렇게 대외적으로 뜻 깊은 상까지 받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 군은 앞으로 신분, 나이 등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 정책토론회, 북콘서트, 장관과의 대화 등 학교 밖 청소년을 대표하는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김 군은 “신인작품상 수상 소식을 듣고 태어나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면서 “교과서적인 시가 아닌 사람마다 다른 감동을 줄 수 있는 입체적인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군의 어머니 김선행 씨는 “동민이와 같은 어린 청소년이 넓은 세상에 한발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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