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4.5.27 겔40:7 좌우로 양면에서 반대편까지 고려하고도 바로 되어야 온전한 목적으로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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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4.5.27 겔40:7 좌우로 양면에서 반대편까지 고려하고도 바로 되어야 온전한 목적으로 나가는 것

관리1 0 73 05.27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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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월새

제목 : 좌우로 양면에서 반대편까지 고려하고도 바로 되어야 온전한 목적으로 나가는

찬송 : 92장(내 주여 뜻대로)

본문 : 에스겔 40장 7절 -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척이며 앞문통의 장이 한 장대고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문이 있으며

6절과 7절은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며 헤아리고 있는 겁니다. 문통은 좌우가 없습니다. 그냥 여섯 걸음입니다. 문지기 방은 양쪽에서 지켜보는 객관적인 조사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 셋이라 그러지 않고 “문지기 방들이 있더라” 이게 직진으로 나가면서 방향을 설명하는 증거입니다. 문통, 그다음 방들이 있고 방과 방 사이가 붙어 있으면 굳이 벽이라 그러지 않았을 건데, 방들이 있고 벽이 있고 그다음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앞문이 있고, 그래서 앞을 향해 나아가며 스스로 돌아보는 반성, 남의 눈을 통해 돌아보는 그런 조사, 그 조사를 받고 난 다음 다시 자기가 돌아보고 안통, 그다음 은혜의 세계가 펼쳐지기 직전 아직은 문인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다음 은혜 세계가 겹쳐 있는 현관, 그리고 마지막의 앞문을 여는 순간 신앙의 자유에 한없는 세계가 펼쳐집니다.

애쓰고, 애쓰고 애쓰다가 아이로 말하면 처음에 가지고 입덧을 하며 엄마가 처음에 못 견딜 때가 첫 문통이 될 것이고, 그다음 3개월에서 5개월, 6개월, 7개월까지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모를 리가 없고 그다음 이거 뭐 출산되는 날은 멀리 남았고 이 순간에 이제 아이 때문에 엄마의 모든 것이 조심되고 결정되는 때입니다. 아이 때문에. 그러다가 마지막 9개월 10개월 만삭이 되면 일반적으로 8개월 만에 출산해도 별 불편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팔푼이라고 좀 말은 하지만 굳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오면 나오는 겁니다. 그 마지막 두 달 정도는 이제 누가 봐도 이거는 남입니다. 남. 처음에 석 달쯤 안팎 생긴 걸 알고 못 견딜 때가 첫 번째 문통이라면 남은 모르고 혼자만 알고 조심하는 겁니다. 그다음 5개월, 6개월, 7개월이 되면 남들이 보고 그냥 다 알아버립니다. 아이 때문에 고생하겠다 그렇지만은 이래라 이런 거는 조심해야 된다라는 말을 듣는 기간이 그다음 있는 겁니다. 그다음 모두들 이제 남산만큼 이라고 말할 만큼 만삭이 돼놓으면 누가 봐도 이건 이제 곧 나와야 되는 아이입니다. 분리가 돼야 되는 겁니다. 이게 현관에 이치와 같습니다. 아이도 나갈 준비, 엄마도 인제 완전 분리되는 직전, 그다음 몸을 틀고 출산하는 바로 그날 열 달 고생도 말 못할 고생이지만 산통이 와야 별별 고생을 하고 이게 튀어나와야 그다음 이제 울음소리가 들린 겁니다.

열 달까지는 아무리 고생해도 울음소리가 들리면 안 됩니다. 들릴 리도 없고. 아이가 마지막에 나올 때 이제 몸을 틀고 뭐 엄마는 죽는다 난리고 아이는 제 세상의 빛을 딱 보는 출산일 마지막 진통이 마지막 안문입니다. 그 순간은 엄마도 아이도 서로 죽을 만큼 고생은 하지만 그 순간 지나가는 순간 이 아이가 세상에 사람으로서 첫 모습을 드러내고 모두가 쳐다보고 이제 이 아이는 인류 역사의 한 명이 되는 순간입니다. 아이의 태어남을 인하여 모두가 기뻐하였느니라, 주님의 은혜의 세계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 간절한 마음, 세상만 알고 바벨론에 살았는데 은혜 아니면 정말로 안 되겠구나 그 순간 우리는 은혜의 세계 높이까지는 올라갔습니다. 그 높이에서 돌아보고 그다음 문들을 통과하며 통과하는데 문통은 그냥 넓이만 있습니다. 넓이를 따라 걸으면 되는데 문지기방은 그 넓이에서 한 장대 안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 한 장대 길입니다. 제대로, 제대로 남의 눈을 통해 나를 돌아보라.

그다음 8절에 “그가 또한 안문의 현관을 척량하니” 그다음부터는 이제 현관에서부터 다시 뒤로 오면서 이번에는 앞에는 순서를 말했고, 8절부터는 순서를 다 밟은 다음 저 끝에 있는 현관 이면 저면을 재고 10절 문간으로 와가지고, 문지기방은 좌편에 셋, 우편에 셋, 좌편 우편의 셋이, 그리고 13절 이하에 보면 “서로 반대되었으며” 서로 문은 반대되었으며 너를 칭찬하고 너를 아끼는 분이 아끼는 마음으로 해주는 말 당연히 잘 들어야 됩니다. 여기서 딱 끝나면 이거 큰일 나는 겁니다. 장애자 되는 겁니다. 반대편. 문은 반대쪽에 있고 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13절 “그 문간을 척량하니” 이방 지붕 가 에서 저 방 지붕까지 총 넓이가 25척인데 “양쪽의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반대되었으며 딸을 낳아 엄마가 딸에게 여자로서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고 했으면 아빠는 네가 살아갈 너의 반대쪽은 이런 세계가 있느니라, 뭐든지 반대로 봐야 입체감이 살고 이게 두루 온전하게 구비하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의 목적 때문에 그렇습니다.

설교록을 유심히 본 사람이면 80년대 내내 설교록 속에 흐르는 말씀 중에 교리는 아닌데 사람이 좀 원만해야 된다, 60년대 10년은 세상 어디를 가든지 좀 1등하고 노력해서 잘난 사람 되라 못 나도 열심히 하다 보면 그 방면에 1등 된다, 못 나면 못난 대로 1등. 이래서 60년대 10년간 하도 기본 깔린 설교가 그렇다 보니까 반사든 목회든 뭐 사업이든 가정이든 뭐든지 지지 말라는 말씀 많이 해가지고, 60년대 목회자들이 전부 다 현직 목회자들이 유도 도장, 태권도 도장을 다녔습니다. 목사가 발차기로 교인을 이길 수는 없지만 바보같이 맞고 돌아 댕기고 뭐 양보를 했니 그런 소리 말고, 목회자들이 유도 도장, 태권도 도장을 목회자들이 다녔습니다. 때려서 이기지는 말아도 못 해도 맞고 돌아다니는 바보는 되지 말아라, 그 말은 교인은 남을 쥐어박아서라도 이겨라 이렇게 부추겨서 60년대 설교를 많이들은 사람은 어디 들어가도 먹고 보고 이기고 보는 이런 전투적인 투쟁적인 성과 결과적인 게 들끓었습니다. 70년대에 들어오면 전반적인 설교가 이기고 봐라 이런 말씀은 좀 지나가고, 어쨌든 한 곳에서 오래오래 말씀으로 실행하다 보면 결국은 드러나고 알려지게 되고 감동의 세계가 오게 된다, 그리고 80년대는 사람이 좀 두루두루 원만해야 된다, 하나만 보고 살면 곤란하다, 이거 별의별 사건이 많았는데 이 면만 얘기하면 이 말이 맞는데 도무지 이쪽은 생각하지 않는 이런 단계가 되어 그런 말씀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한 면만 보지 말고 다른 면도 봐라, 너만 그렇다 하지 말고 남의 생각도 봐라, 그래서 모난 사람이 되지 말아라는 말이 별쭉난 사람 되지 말라는 말로 들리는데 그 말이 아니라 한 면만 가지고 자꾸 보다보면 결국 기형적으로 자라버립니다. 오른손만 무럭무럭 자라 오른손은 발바닥까지 닿고, 왼손은 태어난 아이가 왼손 그대로 평생을 가면 오른손이 남보다 두 배가 길다 자랑할 게 아니라 반대쪽은 자라지 않은 것 때문에 오른손이 자란 만큼 장애가 되는 겁니다. 뭐든지 양면을 봐라, 그때 양면이란 두 면이 아니라 두루두루 모든 것을 다 계산을 해라, 원만하게. 여기에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은 일방입니다. 문지기가 나를 봐주면 일방이 아니라 쌍방 양방입니다. 나를 봐주는 객관의 그 눈도 서로 반대쪽으로 보게 해라. 좌편에 셋, 우편에 셋, 8절에 말씀을 해놓고, 13절에 가면 문도 좌우편이니 당연히 양쪽에서 보게 돼 있는데, 문지기방의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더라. 정확하게 아주 반대쪽에서도 볼 수 있는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말과 나를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의 말을 함께 보고 함께 놓을 수 있고, 이 둘이 함께 만나 일치가 되어 질 때 이게 좁은 길 걸어가야 되는 생명의 가운데 길이 되어 집니다. 네가 이래 말하고 네가 이래 말하니 너도 반 양보, 너도 반 양보 반반씩 해라, 타협 조정 무조건 뒤섞어서 나눠먹기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 오른쪽에서 본 이야기 전부 그 주장 전부 그 글 전부 그 사랑 전부 한상 위에 올려놓고, 반대쪽에서 말하는 그 얘기 그 중심 한 상에 올려놓고 비교를 해보는 겁니다. 이건 이게 옳다, 그러나 이게 옳으나 이게 아쉽다, 이제 이쪽이 아쉬운 쪽에서 채운다.

이 전부를 다 계산하고 마지막 내린 결론이 일반 사람과 달라 뭔 저런 말이 다 있어? 라고 하면 그건 별쭉난 걸로 말을 하는데 이게 원만입니다. 계산할 걸 다 한 인생의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며, 나도 보고 남도 보며 이런 형편의 사람도 보면서 저런 형편의 사람도 보고, 이면 저면, 이면 저면을 자꾸자꾸 맞춰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처음엔 그거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성격이 빠른 사람, 행동이 빠른 사람일수록 여러 면을 깊이 생각하는 건 체질상 어려운데, 마음과 행동이 빠른 사람일수록 좋게 말하면 실행이 있다, 단행을 한다, 용감하다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 붙는 사람일수록 신중하게 여러 면을 고루고루 생각해 보는 이 말의 단점이 됩니다.

생각이 많고 계산이 많고 두루두루를 따져보는 사람 이 장점만큼 이 사람은 실행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갑니다. 두 개를 합할 수 있는가 생각이 많고, 평소 계산이 면밀한 사람은 단행을 자꾸 연습해야 되고, 말이 먼저 나가고 행동이 먼저 나가고 생각이 팍팍 먼저 나가는 사람은 모든 말 모든 행동 전부 잠가놓고 이면 저면 두루두루 모든 면을 자꾸 계산을 해야 되는데, 속이 들끓어버리니까 이 계산이 잘 되지 않지만 이걸 한 번 두 번 좀 달래가며 생각하다 보면 놀랍게 사람은 그렇게 또 바꾸면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 불신자도 하면 되어 집니다. 주님 앞에 신앙 때문에 반복하면 주의 은혜로 그렇게 되어 집니다.

나는 이러고 싶으나 주님은 어떻게 볼까? 난 중심이 옳고 주님은 기뻐하시겠으나 귀신이 뭐라고 하나님의 회의에 가가지고 손가락질을 할까, 마지막에 영원무궁토록 악령 귀신들이 호소할 이야기까지 하나님의 자녀 아닌 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택자를 위해서는 그렇게 너그러우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참 박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말 듣지 않는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의 이 행동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는 덮을 수 있으나 똑같은 이 일을 두고 쥐어 박힌 불택자들 안는 사람이 주님 앞에 뭐라고 호소를 할까 여기까지 다 계산을 하다 보면 좀 늦어지는 것 같아도 신중하지만 신중하게 두루두루 살피는 것이 문지기 방의 원리입니다. 현관은 좌우가 넓어도 직진밖에 없습니다. 문통, 문통 현관은 그냥 앞을 향해 곱게 가면 되는 겁니다. 단계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방 3개는 “서로 반대되었으며” 아주 강조를 해놨습니다. 좌편에 셋, 우편에 셋 좌우에서 조사하는구나, 그다음에는 하나 더 강조를 해가지고 “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지기방에는 한 척의 드나드는 퇴가 있더라” 퇴라는 것은 집 앞에서 보면 넓은 마루가 있는데, 집에서 저 뒤로 돌아갈 때 넓은 마루에서 안방에서 나와서 신발 신고 삥 둘러가야 되는데, 마루 뒤쪽에 바로 빠져나가는 작은 쪽문, 이건 급할 때 한 사람 가는 것이지 물건 들고 그렇게 가는 것은 아닙니다. 집이 앞을 향해 펼쳐져 있고 주로 남쪽입니다. 집이 남쪽을 향하여 따뜻하게 앞을 향해 굽어보고 따뜻한 햇빛을 받고 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전부 다 막아버리는데, 방에도 창문 하나 작은 거 통풍 때문에 누가 왔나, 살짝 보는 정도의 창문을 살짝 답니다. 앞쪽은 햇빛을 받기 위해서 문이 넓습니다. 뒤쪽은 혹시 싶어도 창문을 달아도 작습니다. 창문도 없는 집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있는 마루에는 사람이 잠깐 뒤로 급할 때 드나들기 위해서 작게 만드는 그런 쪽문을 퇴라고 그럽니다.

성전으로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품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통로와 현관의 넓은 세계에서 그다음 앞마당으로 들어가는데 그 중간에 있는 문 방문들은 문지기, 남이 나를 봅니다. 남이 나를 보는데 방문 하나하나마다 가로세로가 같습니다. 이면과 저면을 똑같이 양쪽에서 그리고 세 차례나 봅니다. 여기다 대고 “서로 반대되었더라” 설문을 하면서 천 명에게 해도 똑같은 사람에게 하면 안 봐도 똑같은 소리 나옵니다. 신앙 있는 사람 이야기 집회 마치고 나면 설문하지요, 집회 처음 오신 분, 오래 다닌 분, 연세 많은 분, 어린 학생, 우리 교인, 저쪽 교인, 외부 교인 어쨌든 짝을 이루어 서로 반대, 반대 반대, 쪽에서 봐줄수록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목적의 세계 때문에 그런 겁니다.

여기다 대고 문지기 방마다 가로 세로가 6척이지 않습니까? 지나가면서 문지기 방이 6척 길이로 가야 되는데 육척 길이의 한 척은 드나드는 통로입니다. 내가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문지기방의 문지기들이 방에서 지나가는 사람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이렇게만 봐도 다 볼 거나 나와서 직접 털어볼 수도 있는 게 한척입니다. 이렇게 양면에서 철저히 그 태도, 이편에 셋, 이편의 셋 서로 마주 보며 반대쪽에서 드나들며 털어보는 겁니다.

내가 내 속을 얼마나 살펴야 되는지, 많은 면을 잘 고려해야 되는지 생각하고 오늘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는 주어졌는데 오라 하시는데 그 은혜를 받아 담아 누리는 내 주관이 닫혀버리면 폭우가 쏟아지나 물통에 뚜껑을 올려놓으면 폭우 속에 물방울은 하나도 못 들어갑니다. 뚜껑만 열면 폭우에는 폭우가 담겨버리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푹 빠져 만끽을 해야 되는데, 먹고 배가 불러 주님에 대한 찬양이 영원토록 나가야 되는데, 내 주관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또는 내 주관에 마음의 문은 열었는데 이게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으면 이쪽의 은혜는 마음껏 받지만 저쪽에서 오는 은혜는 다 차단이 되어 집니다. 그래서 이면 저면, 내 입장, 원수의 입장까지 다 동원을 해서 나를 전반적으로 조명하여 밝은 나의 지식, 나의 판단, 그리고 걸어가는 실행이 되도록 하십시다.

엄마들이 아이들 기르다가 아이들끼리 뭔 말이 나와도 그냥 애들은 생각 없이 이런 데 저런 데 티각 태각할 때 엄마도 또 하나의 당사자가 되어 티각 태각 엄마는 또 내다 지르고 이런 식이 되면 웃으면서 좋게 사랑의 동산이라도 점점 전체가 한쪽으로 치우칩니다. 이건 이쪽 말이 맞지 않을까? 이건 너 어제는 이랬잖아? 오늘은 이렇잖아? 그 살아가는 아이들의 티각 태각 작은 말 한마디에도 엄마의 말은 공정이 있어야 되고 양면이 있어야 되고, 또 아이가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차 말이 막혀 또 그 면을 그다음에는 생각하게 하는 이런 작은 말 한마디에서 아이의 기본 생각과 인격과 신앙의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굉장한 사람의 시작 출발이 되어 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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