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4.5.25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지혜와 복, 방마다 장광이 6척이니 나를 살펴 주는 그 자세 그 시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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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4.5.25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지혜와 복, 방마다 장광이 6척이니 나를 살펴 주는 그 자세 그 시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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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토새

제목 :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지혜와 복, 방마다 장광이 6척이니 나를 살펴 주는 그 자세 그 시야를

찬송 : 122장(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본문 : 에스겔 40장 7절 -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문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바라보는 그 애절함, 그 순수함이 그 섞인 것이 없고 뭐가 베어 깔려 있는 것이 없도록 철저하게 돌아보는 시간들이 문을 통과하는 과정들입니다. 문통에 도달하려면 일곱 계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인간과 땅에 속한 것은 전부 기대 속에 소망 속에 없어져야 되고, 빠른 세상에 밟고 사나 소망은 하늘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는 이 하늘의 마음, 그 마음의 내면을 첫 문통 여섯 걸음 살아온 자기를 돌아보고, 현재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남이 아무리 봐준다 해도 깊은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자기 외에 알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나를 돌아보고 그러나 나 아니면 나를 돌아볼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또 남이 봐줘야 되지 나는 나를 모르는 게 또 있습니다. 눈썹을, 자기 눈썹을 자기가 살필 수 있습니까? 남이 봐줘야지. 내가 나를 보고, 또 남을 통해 나를 보고, 남을 통해 나를 본다 말은 우리 교회로 말을 하면 남녀 반을 섞어서 교회가 이리저리 세상 좋은 놀거리 찾아 행사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말은 해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해본 이 교단, 저 교파, 이 지역 저 지역 상황을 쭉 옆에 돌아보면 아, 그거 안 되겠구나, 딱 답이 나오는 거 뭐 이말 저말 하든지 말든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그래 본 이런 교파 저런 교단, 저런 교회 이런 교회를 계속 비교를 해볼 때 교회가 저렇게 나가기 시작하니 끝이 없구나, 결국 그리 되는구나, 남이 당한 모습을 가지고 나를 비춰보면 이것도 문지기로 나를 살필 수 있습니다. 마음먹으면 방법은 많습니다.

그 이전부터 공회는 목회자들이 매달 전에 교역자회에 가면 목회자 너는 성경을 몇 장 읽었느냐, 기도 생활을 몇 번 했느냐, 전도 심방 몇 번 했느냐 일일이 다 보고를 해야 됩니다. 그 목사 된 사람한테 그렇게 챙겨 쌓느냐 목사들만 전부 다 자기 보고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남이 보는 시선. 그다음, 목회자가 교회에 부임한 뒤 1년 뒤에는 교회의 형편이 좀 나아졌나, 주일 오전 오후 저녁 예배, 새벽 예배, 주일 학생, 중간반 숫자 일일이 전부 100개 교회 다 비교하고 올랐다 내렸다 이거 다 확인을 합니다. 전체 목회자가 한 자리에서 함께 듣습니다. 너는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 생활은 많이 하는데 교인들은 왜 이렇게 자꾸 줄어드느냐? 목회자 설교에 문제 있는 것이 아니냐? 목회자의 심방 전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 남들이 자꾸 이렇게 봐주는 게 남의 눈에 연극을 하고 남의 눈에 기준을 잡아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면서 남을 통해 나를 다시 보면서 그게 하나님 앞에 바로 된 길이겠는가 자꾸 돌아보는 겁니다.

내가 나를 돌아보고 또 남이 양쪽에서 나를 돌아보도록 1절 “그 문간에 한 문 안에 문통 문지방이 두 개입니다. 이 두 개 사이에 문지기방들 있는 문지기란 문을 통과해도 되냐 안 되냐 이거 들여다보는 사람들입니다. 문지기 방들이 있는 곳,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도 문턱 여섯 걸음 내가 나를 여섯 걸음, 내 있는 힘 다하여 내 정성 다하여 나를 돌아보는 게 한 번 두 번이지만, 남들이 옆에서 나를 봐주는 것도 문지기 방 하나하나 각기 문지기 방마다 그 방에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 이면으로도 저면으로도 양쪽에서 나를 살피지만 나를 살피는 이 사람도 나를 살피는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 대요“ 아이니까 그렇겠지 아이니까 그렇겠지. 이런 사랑으로 저런 배려로 우리 편이니까 후하게 후하게 후하게 봐주고 남한테는 야물게 엄하게 잣대를 갖다 대고 그러지 말아라.

장대라는 잣대를 문지기가 나를 오른쪽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있는 이 문지기가 나를 조사해 주고 나를 살필 때 이 문을 아무나 통과하지 못하도록 조심을 시킬 때 나를 보는 그 배경이 그 배후가 그 이유가 그 과정이 가로세로 정확하게 꼭 같은 시각으로 이쪽에서, 이쪽에서 그리고 3단계를 거쳐 보거라, 내가 나를 철저하게 잘 살피면 죽어 하나님 앞에 가서 조사받고 심판받을 것이 없어집니다. 내가 나를 넉넉하게 대충 대충 보면 천국 들어가기 전 주님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나의 지난날을 맹렬하게 들여다 볼 겁니다. 괜찮은 친정 엄마들이 딸 시집  보내기 전에 시집가서 그 눈총이 많을 건데 말 한마디 조심하는 거다, 말조심도 다 시키고 그러지요? 여자 걸음걸이 그렇게 너털너털 거리면 안 된다, 걸음걸이도 조심시키자. 이걸 남의 집에 보낼 걸 생각하니 그 앉을 자리에 설 자리가 있는 거다, 이런 것도 가르치지요? 한두 가지입니까? 장 담글 줄 모르면 재수 없는 며느리 데려왔다고 그 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뒤집어 써야 됩니다. 장 담그는 것도 또 가르쳐야 되지요? 김치 담그고 된장 담그고 이런 거야 말할 것 없고 별의별걸 친정 엄마가 잘 가르쳐 놔놓으면 온 마을에 시집 온 며느리 사이에 눈에 딱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참 괜찮다, 그 친정에서 잘 가르쳤다 그 뜻입니다.

 없는 단점도 찾아서 욕하는 사람 모욕하는 것이 사람인데 뭐 흠을 잡으려면 온갖 흠을 다 잡는데 그 흠 잡는 게 결국은 친정으로 가는 겁니다. 시집오면 부르기를 이름을 부르지 않지 않습니까? 어디서 왔는지 친정 동네 이름을 딱 갖다 붙입니다. 어느 댁. 수원댁, 광양댁, 어느 댁 해서 친정의 욕을 들입다 쏟아 붓는 겁니다. 그럴까 봐 딸 기를 때부터 미리 조심하는 거 그거, 미리 준비, 조심이 잘 돼놓으면 그 뭐 칭찬이 모두 참 참 애쓴다, 그 마음씨 곱다 어떻게 저런 보배가 있을까 다 보는 눈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뭐 억울하다 해도 억울할 거 없고 칭찬받아도 잘 보여서 없는 말 칭찬 듣는다 그럴 리 없는 거고 세상 땅 위에서는 이럴 수 있고 저럴 수 있으나 이 세상을 살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는 날 천국문 앞에 귀신이 떼거리로 붙어가지고 저 인간 저런 마음 저 인간 그때 이랬다 저랬다 온갖 고발 다 들어올 겁니다. 이게 욥기 1장에서 끝장까지의 기록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 천군 천사 다 모이는데 사탄 귀신 대장도 그 자리에 함께 앉아서 아니 뭐, 이만큼 복을 주고 건강 주고 자녀 주고 돈을 줘 놓으면 하나님 찬송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겁니다. 욥의 깊은 마음속까지 전부 다 뒤져서 아, 하늘에서 복을 그만큼 주니 하나님 좋다 그러지 주던 복 취소해 보시라고 단번에 하나님 욕을 해버릴 거라고, 이렇게 우리 마음 깊은 걸 들여다보고 하나님 앞에 다 호소하고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 원수까지 만물을 다 만드신 하나님 영원무궁토록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생명의 세계, 은혜의 세계를 운영할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고 힘으로 눌러서 봐주고 그런 것 없습니다. 귀신 사탄 악령 하고 싶은 말 다 있다, 그 사람 그때 이런 마음 씨였습니다, 저랬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많이 벌어 웃을 때 옆집에서는 울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별의별 게 다 나올 겁니다. 이걸 홍포 입은 부자처럼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아차해서 바꾸려면 못 바꿉니다. 오늘 모의고사를, 오늘 내가 나를 돌아보며 철저하게 바꾸는 것이 오늘의 해결입니다. 또 살펴보고 또 뒤져보고 또 연구해보고.

남이 나를 봐주는 게 7절에 문지기인데 문지기가 나를 보기 위해 문지기 방이 가로세로 6척으로 넉넉해야 됩니다, 뭔 뜻인지 이렇게 좀 감을 잡아보겠습니까? 저 인간 저 말투가 문제가 있는데 말을 했다가는 당장에 난리, 난리, 생난리가 날 건데? 문지기가 말 못하는 겁니다. 이게 광입니다. 지금 말해놓으면 예, 해놓고 십년 수십 년 씹어댈 건데? 이게 장입니다. 문제는 있지만 문제가 있다고 말을 했다가 그다음 어떻게 되려고? 내가 나의 잘못을 고치는 게 내가 나의 잘못을 발견하는 게 내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나를 살펴 나를 고치는 게 얼마나 보배인지, 얼마나 보배인지, 얼마나 보배인지 철저하게 내가 알아도 남이 나를 위해 옳은 말 한다는 것은 어려운데 평소에 뭐 그 집 얘기했다가는 그 집 식구들 떼거리로 모여들 건데, 말 안 해주는 겁니다. 그냥 얼핏 보는 척만 하고 통과, 너도 통과, 나도 통과, 나중에 가서 하나님 앞에 두드려 맞든지 말든지 누가 너에게 할 말을 해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까?

평소에는 평소에 너의 자식, 평소에 너의 생활이었지. 평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람한테 말해줬다가는 어떻게 당하려고? 아예 말 못 해주는 집 있지 않습니까? 옆에서 도와주지 않고 살펴주지 않으면 결국은 문제는 생겨도 크게, 크게 생기는 겁니다. 고치고 가는 것이 인생인데 5월 6,7, 8, 9 집회가 6,7, 8,9니까 5월 10일 금요일 저녁 설교의 주제를 혹 기억하십니까? 고치고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배우고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배우고 나니 몰랐던 걸 알게 되어 고치기도 하는 거고, 고치다 보니 새로워진 사람이 되어 또 배우는 것이 생겼습니다. 배우고 고치고, 고치고 배우고 둘이 앞서니 뒷 서니 하면서 자기가 나아지고 자라가는 겁니다. 나아지고 자라 가는데 인생은 마지막 살고 나서 오늘도 또 하나 고친 것이 있겠는가? 또 하나 배운 것이 있겠는가? 고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데 이 땅 위에서만 고칠 수 있고 배우는 건데 이게 인생의 목적인데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가?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가? 고칠 자세가 되어 있는가? 고치고 배워 내가 자라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라 여기에 대해서 손꼽아 기다리며 애모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나를 지적을 해? 그 사람 끝장나는 거지요? 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장. 장이란 길이입니다. 길이. 고치고 고치고, 배우고 배우고 고치고 배우고 걸어가는 걸음걸음.

“문지기 방 하나마다 장이 한 장대요“ 첫 번째 문지기가 걸음 걸음 걸음을 쭉 따라가며 고칠 것 살펴주고, 또 고칠 걸 쭉 따라가며 살펴주지만 폭넓게 봐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다른 사람이 나를 잘 봐줄 수 있도록 남은 나를 미워서 죽으라고 찔러 대도 그 사람의 나쁜 자세까지도 날 고치려는 주님의 귀한 그런 치료의 방법이다, 진정으로 감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정말로 진정으로 원수의 눈까지 동원해서 나를 살펴주시려고 참 깊이 돌아봐야 되는 문제입니다.

어느 가정에 두고는 누가 뭔 말을 해줘도 아, 그렇습니까? 얼른 고쳐야 되지. 그러니 얼른 배워야지.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 이거 근처도 못 가는 사람. 아이고, 저 집 말해줬다가는 10년 몇 십 년 평생 씹고 씹을 건데, 나도 남이 안 봐주고 남이 놔두고 이게 세월 속에 굳어져 놓으면 뒤에 그 고장 그 병폐 누가 뒤집어씁니까? 본인이 다 뒤집어쓰는 거지. 죽을 때 죽는 날까지 마음 못 편하게 되는 겁니다. 많이 좀 생각해 보십시다. 에스겔 4장 7절 문지기 하나하나에 방마다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라” 한번 돌아봐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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