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4.4.19 시23:1 *시편 23편 1-6절 전체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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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금밤

제목: 시편 23편 1-6절 전체 주해

찬송: 198장(우리 주여 목자 되어서)

본문: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주님 목자 되셔서 앞서 걸어가신 길 말씀으로 다시 인도하시니, 주의 인도 주의 보호 믿고 이 밤도 말씀 따라 순종하는 우리 어린 학생들 되게 해 주옵소서. 노년의 종들도 그리 되게 해 주옵소서. 환란 어려움 때문에 기도해야 되는 종들도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주님만 따르는 양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수술 후 입원 치료하는 종들과 또 치료를 두고 기도하는 종들, 입원 중에 주의 은혜를 간곡하고 애절하게 사모하는 서울에 있는 우리 교인들, 해외까지 두신 자녀들, 군무에 있는 아들들, 주의 말씀 인도를 따를 때 목자 되셔서 보호하심을 깨달아 마음껏 믿고 마음껏 따르는 이 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세상이 만만치 않은데 세상을 쉽게 보고 자기 뜻대로 세상이 잘 되어진다고 안심하는 이들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현실임을 깨달아 좋을 때 주님께 애절히 기도하고 미리 주님만을 바라보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세상도 주변도 우리의 가정도 알고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두셨으나, 주의 고난 주의 육체의 고통이 우리를 위하여 앞서 가셨사오니. 믿음으로 담대하게 소망 가운데 기도하며 5월의 집회를 준비하며 이 밤도 주의 은혜를 구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6절까지 쭉 이어내려갑니다. 약속의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 어릴 때 약속을 하시고 하나 둘 하나 둘 인도하시는 약속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름을 다 같이 뭐라고요? 여호와라 그럽니다. 약속이 많은 것은 잔소리가 아니고 법이 많아 불편한 것이 아니고, 어리니까 하나 약속, 하나 약속, 하나 약속, 약속마다 복을 주시며 한걸음 걸음 인도하시는 단계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인도하는 걸 목자라 그럽니다. 목자 따라가면 보호하는 것을 목자라 그럽니다. 보호는 하지 않고 가르쳐 인도만 하면 뭐라고 그러지요? 선생이라 그럽니다. 교사, 가르쳐놓고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가르치지는 못하는데 책임을 진다고 영 뭐 그냥 평생을 바치는 사람을 혹시 뭐라고 그러나요? 부모라 그럽니다. 잘 가르치고 잘 보호하면 부모도 목자다운 그런 좋은 부모인데 특별히 교사라 선생이라 할 때는, 이래야 됩니다 저래야 됩니다 가르쳐놓고 인도는 해놓고 책임은 지지를 아니합니다. 부모는 가르칠 줄 몰라 여기서 배워라 저기에서 배워라 엉뚱한 것 잘못 배워 잘못된 길을 가는데, 뒤에 수습하느라고 밀어주느라고 책임진다고 날뛰듯 치닥거리에 허덕입니다. 교사와 부모가 합하면 좋은 거지요. 잘 가르쳐 인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도와 책임이 한 사람이 된다면 이상적인 겁니다. 인도와 책임을 합하면 다 같이 뭐라고요? 목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한 번에 하나씩만 가르칩니다. 한 현실에 한 말씀만 주십니다. 그 말씀이 인도가 되고 그 말씀대로 살 때는 100%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사람이 가르치고 사람이 책임을 진다면 사람이 부족하므로 100% 책임은 지지를 못하는데, 전지하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전능의 하나님이 책임을 져버리니 이거는 고장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냥 말씀에 맡겨놓고 따라만 가면 됩니다. 다 같이 고개 들고 외웁니다. 시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외우시면서 여호와는 약속의 하나님, 말씀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면 책임지시는 하나님, 그러니 하나님이 가르치고 책임지면 부족함은 없겠구나. 다시 한 번 여호와는 시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근데 이 밤에 부족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어겼겠습니까?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겠습니까? 사람과 사람의 약속은 내가 틀렸는지 저 사람이 틀렸는지 이거 좀 계산을 해봐야지, 쉽게 그렇게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막가는 사람은 무조건 나는 잘했고 니가 틀렸다 그럽니다. 생각 있는 사람은 말로는 내가 먼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돌아보지만 속으로는, 넌지 난지 생각 좀 해보고 따져봐야 알지 그거 어떻게 그렇게 단정을 하겠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라면 그건 내게 부족함이 없어야 되는 겁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하나님이 말씀을 한 현실에 하나만 줍니다. 성경에 말씀이 이렇게 많은데 왜 현실에 하나냐. 이 많은 말씀 중에 이 밤에는 어떤 말씀일까. 이 많은 말씀 중에 아이 때는 어느 말씀이 제일 중요할까. 이렇게 많은 말씀 중에 이 밤에 입원해서 수술받고 치료받는 우리 찬송 인도하는 안 집사님은 음식은 입으로 먹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면 이게 위장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이것이 밖으로 나가야 됩니다. 이걸 소화라 그럽니다. 안 먹고 소화는 없습니다. 먹었는데 안에서 문제가 되면 토해버립니다. 아니면 배가 아파 뒹굽니다. 잘 먹고 그다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이게 잘 돌아가면 건강한 사람입니다.

찬송 인도하는 우리 안 집사님은 수십 년 여기 강단을 저 대신에 맡을 때도 많고, 또 말씀으로 감사할 일이 많아 찬송을 늘 맡고 계시는 분입니다. 늘 예배와 말씀에 귀를 기울이니 말씀의 양식은 잘 먹은 사람입니다. 입 고장은 없는 겁니다. 예배당은 왔는데 설교 시간에 졸고 앉았다든지 시계나 보고 앉았다든지, 이 밤에도 저 몰래 휴대폰 슬금슬금 켜는 사람들은 화가 나서 아예 안 오시죠. 요즘 한 10명 안 와버리죠. 예배는 왔는데 설교 시간은 앉았는데 마음이 딴 데 갔든지 졸든지 휴대폰 보는 사람은, 음식을 입으로는 먹었는데 이게 소화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토하든지 설사하든지 뭐 고장이 생긴 겁니다. 여기 안 집사님은 예배 한 번도 안 빠지니 말씀의 양식 잘 먹는 분입니다. 또 예배 시간에 늘 필기하며 한 말씀도 빠지지 않으려고 집중을 하니 말씀의 양식을 먹고 그다음 소화도 잘 시킨 분입니다. 그러니 건강하고 그러니 수십 년 교회를 지켜주셨지요. 근데 이번에 아픈 데는 입이 아니고 위장이 아니고 위장 밑에다가 대고 요만한 간 또 조그마한 담, 간과 담을 합하면 뭐라고 그러지요? 간담이라 그럽니다. 간담은 들어보셨나요? 운전하다가 사고 날 뻔하면 뭐라고 그러지요? 아이고 간담이 서늘하다 그때 간담입니다. 먹고 소화시켜 몸은 건강한데 이게 계속 잘 먹고 계속 소화가 잘 되려면, 입만 튼튼하고 위장만 튼튼해서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소화를 시키는 소화기관 옆에 뒤에 숨어서 간과 담이 소화가 잘 되도록 소리 없이 일을 해 줘야 됩니다. 그 일을 해주는데 큰 일을 하는 게 간, 간은 이렇게 크답니다. 간. 조그마한 것이 붙어서 소리 없는 것이 담이라 그럽니다. 소화의 1차는 간, 2차는 담 여기까지는 한의학도 알고 불신자도 알고 세상에 그냥 상식입니다.

간담이 서늘하다. 죽지는 않았는데 큰일 날 뻔 했구나. 간이 아니라 담이 좋지 않으면 예배에 충실하게 참석하고 성경 열심히 읽고 설교 말씀 잘 듣고 여기까지는 좋은데, 뭔가 소리 없이 한 가지 무리가 있었겠구나. 소리 없는. 바로 탈나지는 않는데 이게 계속 가면 좋지 않은 그런 고장이 본인 속에 있었겠구나. 그래서 오늘 심방 가서 이 말씀 잠깐 드렸습니다. 그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파서 급해서 수술한 본인은 입원해서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발 아픈 거는 아니고 손 아픈 것도 아니고 눈 아픈 것도 아니고 치아나 위장도 아니고, 왜 먹는 입과 소화시키는 장 쪽은 괜찮은데 요 소화시키는 장 도와주는 2차 간접 숨은 수고하는 이쪽에 탈이 났을까? 나의 신앙의 말씀 생활에 소리 없이 무리가 된 게 뭐가 있을까. 이렇게 찾아보면 아픈 사람은 본인이 아프고 나면 딱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좀 잘하는 분들은 아프면 제가 심방을 안 가도 사실 본인이 고장이 뭔지 알고 그 고장 고치면 저절로 치료가 될 건데. 이런 말씀만 가서 전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약속의 하나님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틀림없이 보호하는 책임의 목자 되신 하나님. 정말로 내가 현실마다 한 말씀씩 마음속에 생각이 날 건데 그 말씀 따라 또박또박 순종하면, 그 신앙과 건강과 모든 것이 좋을 건데 이렇게 문제가 생길 때는, 뭔가 하나님이 내 속에 문제가 있구나 이렇게 보여주신 줄 알고 고치면 됩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여호와, 말씀으로 인도하는데 북한에 있는 교인들은 듣고 싶어도 어디 성경이 있어야 듣지요. 혹시 어떻게 이렇게 성경을 누가 좀 적어서 전해준답니다. 성경 몇 절 적어주는 거 귀하게 읽다가 들키면 또 큰일 나니까, 읽다가 누가 오는가 두리번두리번 이게 불안한 겁니다. 우리는 성경책 통째로 들고 계시지요? 잘 먹고 잘 살지요? 이 말씀 설교한다고 누가 잡아갑니까. 이 말씀 생각한다고 뭐 불안할 일이 있습니까. 이게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말씀 생활을 두 번째 충분히 충분히 마음 편하게 마음껏 말씀 생활할 수 있는 평안한 때를 주신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푸른 초장은 좋은 신앙의 양식 오늘은 내가 이 말씀으로 살았어야 되는데 이게 푸른 초장입니다. 입원하신 분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내가 왜 하필 담이 좋지 않을까. 아직까지 못 찾았으면 푸른 초장은 아닙니다. 풀 찾아 지금 다니는 거지. 내 가정에 오늘나에게 나에게 이런 현실이 되는 것은 주님이 무슨 뜻이겠다. 어떤 말씀이겠다. 이게 깨끗하게 이게 파랗게 요게 싱싱하게 요게 명확하게 깨달아지면 푸른 초장입니다. 말씀이 이러니 내가 기쁨으로 감사히 잘 순종해야 되겠구나. 이런 말씀에 대한 평안함, 그렇지 말씀대로 사는 것이 길인데 이게 내 마음속에 온유해지고 평안해지면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푸른 초장이라도 불안하면 서서 먹고 두리번거려야 됩니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이 현실에 이런 상황에 우리 가정을 이렇게 인도하심은 이런 면 조심하라는 거구나. 이걸 고쳐야 되겠구나. 이렇게 말씀으로 깨달을 때 내 깊은 마음속에 그렇지 바로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렇구나. 이게 내 마음속에 확신, 확신, 확신이 이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아멘 맞습니다. 이게 고장이 나니 이렇게 된 겁니다. 아 현실이 이렇게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이게 뭔가 애가 터졌는데 바로 이겁니다. 이럴 때에 물가가 되는 겁니다. 갈급한 심령을 축여주는 물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풀 좋고 물 좋으면 좋지만 불안하면 이게 탈입니다. 불안하다니요? 이게 진짜일까 아닐까? 이거 정말로 믿어도 될 말인가? 믿었다가 큰일 날 일인가. 이게 그렇기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고 인도는 틀림이 없는데 이대로 가다가 혼나는 거 아니야? 이리 되면 이거는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에 쉴 만한 데는 못 됩니다. 풀 많고 물 많으면 양들도 좋아하지만 맹수들도 목을 노리는 겁니다. 목자가 든든하니 푸른 풀밭 펼쳐놓고 먹고 나면 마음껏 물 마시게 해놓고, 이리보다 무서운 사자 곰보다 훨씬 힘있는 만유 주 주님이 목자 되셔서 턱 서 있으니, 멀리서 쳐다보다가 아이쿠 이쪽은 건드려 봐도 안 되겠구나. 다른 골짜기로 가자. 뭔가 느낌에 불안해야 되는데 말씀이 틀림없고 말씀이 해결이니 이 말씀 믿고 담대하게 가겠습니다. 내 속에 확신이 되고 그 확신에 성령이 평안함을 줄 때, 귀신이 쉬워서가 아니라 주님이 강해서 주의 말씀에 인도와 보호에 확신이 들어서 그래서 내 마음이 평안해지면 2절입니다. 따라하십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쉴만한 믈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나를 시작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강단 뒤에 멋있는 푸른 풀밭에 양들이 누워 있고 옆에 개울 흐르고 주님 목자 되셔서, 지팡이 딱 짚고 노려보고 저 산 너머 이리가 도망가는 모습을 그려놓으면 실감이 될 겁니다. 그래서 예배당마다 들어오는 입구에 또는 강단 뒤에 자꾸 그림을 그리는데 이 성경의 말씀을 자꾸 그림으로 그리면 유치해집니다. 유치하면 유치하면 어디를 보내나요? 유치하면 유치원에 보냅니다. 우리 예배당 주변에 있는 요양원은 다 그냥 이름이 아마 요양원일걸요. 다른 요양원은 보면 어르신 유치원 써놨습니다. 그게 모욕인지 좋은 건지, 좋으니까 유치원이라고 써놨지만은 어르신 유치원이라. 유치원 애가 유치원 가는 것은 자라가는 과정인데 연세 많은 어른이 유치원에 가면 유치원의 ‘치’자가 치매할 때 ‘치’자입니다. 뭐 좀 생각을 하고 쓰고 생각을 하고 타고 그래야 되는 겁니다. 어르신 유치원 욕하는 게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말씀으로 적어주셨는데, 그림으로 자꾸 그려서 그림을 보고 은혜를 받으려 그러면 신앙 있는 사람이 유치해지는 겁니다. 우리가 좀 서툴러도 이 말씀을 읽으며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좋습니다. 마음속의 그림은 죄 되는 거 아닙니다. 도움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하나님이니 여호와는 마음으로도 그리면 안 됩니다. 그 대신에 말씀 외웠지요. 외운 말씀을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신다. 말씀의 하나님. 말씀. 나의 목자다. 목자는 양을 지키고 인도하는 목자를 마음에 그려보시면 됩니다.

목자가 하나님이면 부족이야 당연히 없겠다. 근데 내가 왜 불만인고, 왜 불편한고, 왜 불안한고, 왜 화가 났는고. 말로는 하나님을 목자라 해놓고 하나님을 어디다 대고 던져내 버리고 내가 내 인생의 목자 되고, 하나님 아닌 뭐 이것저것 목자로 잡아놨으니 그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으로 인도하는 하나님만 나의 목자시고 이럴 때만 부족함이 없다. 자꾸 생각을 하셔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과 말씀이 나를 인도하면 부족 없는 게 맞겠다. 단정이 되면 2절로 넘어갑니다. 벌써 주님은 푸른 초장에 나를 뉘워 놓으셨고 그다음 쉴만한 물가에 벌써 나는 누워 있는 사람입니다. 평안하게. 그다음 3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아니 믿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지? 왜 이래 나는 자꾸 막히지? 왜 화가 나지? 뭐. 이럴 때 1절에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인도의 책임을 자꾸 반복하다 보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내 마음이 되어져야 된다 그랬습니다. 내 마음이 딱 그리될 때 그 순간 내 신앙은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왜 이렇지? 왜 저렇지? 화가 나든지 억울하든지 섭섭하든지 불만스럽든지, 말씀이야 그렇지만은 뭐 나한테 정말 부족함이 없고 그럴까? 그러다가 너 말씀 믿기나 했어? 하기야 내가 말씀을 믿어본 적도 없지. 너 말씀을 소망하고 바라봤어? 말로는 해도 설마 말씀에 정말 소망을 둔 적 있냐? 이렇게 따지면서 그렇지 믿어보지도 않았고. 말씀이 말씀이고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면 내가 소망하고 정말로 의지하고 순종하면 되겠지. 이렇게 자문자답하는 가운데 내 마음에 확신이 되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되고, 그때 그 상태가 바로 그 이전에 지친 심령 그 이전에 좌절된 내 신앙이, 그렇지 이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주님이 내게 말씀으로 생각해 보라고 내 신앙의 양심을 밝혀주셨고 그다음 자문 자답은 내가 했는데, 그 자문 자답할 때 말씀으로 내가 묻고 말씀으로 내가 답하다 보면 어느틈에 성령이 오셔서. 그다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3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그렇지 내가 말씀 생활을 제대로 안 해서 생긴 나의 문제지. 믿으라 했는데 믿지 않아서 생긴 불안이지. 실행을 하기는 했으나 마지못해 했고 뭐 하다 보니까 그리 된 거지. 이거 그냥 대충 믿을 것이 아니라 마음먹고 한번 제대로 믿어봐야 되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신앙의 새 출발을 말합니다. 이렇게 나를 내 마음을 나를 깨우치는 인도하는 주님이 왜 이렇게 하시느냐. 나의 이름 유명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만유주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기 전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셨으니, 하나님을 닮은 나 만드는 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를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을 향하여 닮아가도록 세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의 마음과 활동을 딱딱 짜고 계시니, 나만 말씀을 따라 걸어가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세운 목적 그 역사를 위하여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하나님의 뜻 나를 하나님으로 인도하시는 이 뜻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뭐 분명히 맞겠지 그리 생각하면 되어집니다. 초등학교가 초등학교다우면 초등 과정을 가르치겠지. 초등학교 가서 중학교 배운다든지 고등학교 안 가르친다고 난리를 한다든지 돈벌이 가르친다든지 놀이터를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유치원 가서 유치원답게 초등학교는 초등학교답게 기술학교 가서는 기술 가르쳐 달라고 그러고, 그러면 그쪽에서 그건 뭐 이쪽의 전공이니까 안내도 할 거고 도움이 될 거 아닙니까? 세상은 하나님이 나 하나를 하나님 닮아 자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 자라가는 이 학교, 이 기술, 이런 실습장, 공작, 공장으로 만들어 놨는데 엉뚱하게 지 야망, 지 뭔 소원, 내 철학, 내 뭐 온갖 걸 만족시키라고 데모를 하니, 자기가 자기 머리를 이 벽에 저 벽에 부딪히며 발버둥하는 겁니다.

야생의 동물보다는 동물원의 동물이 두세 배는 오래 삽니다. 이러나 저러나. 그냥 동물원에서 태어나서 동물원의 주인이 너는 여기서 그냥 사자로 살아라 그러면 포기하고 살면, 밥 줄 거지 막아줄 거지 필요한 약 줄 거지. 또 야생에 없는 운동은 자기가 열심히. 요즘 운동하는 데를 뭐라 그러나요? 옛날에는 헬스클럽이라 그랬습니다. 요즘은 뭐라 그러죠? 헬스클럽 다니는 분들 휘트니스? 자기에게 맞는 몸을 맞춘다 그 뜻일지 모르겠습니다. 사자가 야생에서 태어났으면 야생이지만 이건 태어나기를 동물원에 태어났다 붙들려 여기 왔다면, 철장으로 주인이 만들어 놨으니 그냥 포기하고 여기에 맞춰 살면 야생보다 몇 배 오래 산답니다. 근데 사자가 화가 나 가지고 아니 철장 저것이 나를 막아? 그 철장하고 박치기하고 발로 두드려 패고 부서지도록. 그러고 앉았으면 그건 자해가 되는 겁니다. 그건 자유로운 탈출이 아니라 자기 몸 망가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를 야생에 살던 호랑이를 갖다가 그냥 잡아놓고 억울하게 만들고 그렇습니까? 우린 양인데 야생에 가면 우리는 이리의 밥인데. 목자가 해결 다하고 야생에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으로 모든 책임지고 인도하시니, 아예 그냥 포기를 하고 세상에 이래 살겠다. 내 인생이 몇 년인데 내가 10대 때는 이러고 30대 때는 이걸 이뤄야 되고. 이놈의 생각이 많고 이룰 목표가 많고 텔레비에서 막 이래 사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뭐냐, 비교를 하게 만들고 이런 좋은 길이 있다고 이래 놓으니 돌아다녀야 되지. 뭐가 돼야 되지 뭐 비교를 하지 이러니까 철장 속에 갇힌 사자가 그냥 주는 밥 먹고 잘 살지. 야생의 사자 대부분은 굶어 죽는답니다. 참 몰랐는데 텔레비에서 하나 배웠습니다. 평생 아프리카 가서 사자 연구만 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얘들 대부분 다 굶어 죽는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 지구 오늘의 세상 현실 환경 전부를 하나님께서 목장으로 만들어 놓고, 풀밭밖에 없고 쉴만한 물가밖에 없고 목자가 든든히 딱 지키고 있으니, 목자 눈안에 목자의 말씀 인도받는 이 안에는 100% 보호가 되니. 사자고 곰이고 그거는 목자 품 벗어나고 원래 목자 없는 불택자 불신자 강퍅한 것만 그거는 손댈 거고, 목자 품 안에 있는 나야 주일 지키고 믿는 사람의 공통의 첫 길입니다. 예배 시간 이왕 왔으니 좀 들어보고 그리고 내 현실에 아무래도 주님이 이걸 원하는 것 같다 싶으면, 알면서 이 걸 벗어나면 철장하고 박치기하고 싸우는 겁니다. 좋지를 못합니다. 못 이깁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그냥 인생 포기하고 팔자 소관하고 그냥 알아서 신앙생활 잘하시고 깨달아 지시면 감사함으로 살면 되는 건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역사, 구원,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가는 이 뜻 이 길로만 인도하시는도다. 이게 틀림이 없는데 길을 벗어나서 생각을 달리 가지고 자꾸 엉뚱한 짓을 하면서 뭐 이게 안 풀린다 저게 안 풀린다라고 그러면, 그거 안 풀려야 그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겁니다. 말씀은 대충이고 요즘 사업하니까 사업도 잘 되고 건강도 좋고 마음먹은 대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자꾸 그러면, 시편 23편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거는 버린 자식처럼 내버린 겁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고 말씀으로 생각해 보니 푸른 풀밭에 쉴만한 물가에 소생되는 이 영혼의 주의 인도 따라 참 감사하다. 그리 되면 그거 맞는 거고 그래서 맞는 거고, 말씀 생활 아닌 사람이 잘 풀리면 더 불행한 겁니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알고 보니 알고 보니 어떤 나라든 그 나라는 주변 나라가 기회만 있으면 삼킬 원수입니다. 요즘처럼 이렇게 좋은 시대에 국가끼리 전쟁하고 그러느냐 이럴까 봐 지금 전쟁 전쟁을 다 불사질러놓고, 서양 지성인들 미꿈하게 생긴 것들 저 막 가는 전쟁 1년 2년 3년 별의별 전쟁 보여주시면서 평화? 지성인이 되고 민주주의가 되고 세상이 좋아지면 전쟁을 안 해? 구경거리를 일부러 보이시는 겁니다. 세상은 주님 오실 때까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니라. 미국처럼 세계 최고 깡패가 딱 지키는 나라는 밖에서는 쳐다도 못 봅니다. 그런데 미국의 뒷골목에는 별의별 험한 사람들 많을걸요. 대낮에도 못 가는 길이 있답니다. 총이 무서워서 경찰도 못 간다는 말. 밖에 원수 막아놨더니만 안에 원수는 또 더합니다. 안에 원수 피해서 집안 속에 있으면요? 네 식구가 내 원수리라. 네 원수가 내 집안 식구리라. 밥상에 둘러앉았는데 뭐 그 원수는 거기 다 있는데. 아니 뭐 혼자 살아버리지. 혼자 살아보니 내 속의 지식과 내 속에 욕망과 내 속에 사상이 나를 이러자저러자 해가지고 마지막에 인생을 되돌아보니, 내 인생 다 팔아먹고 내 인생 헛일 시킨 최고의 원수는 나 속의 나였습니다. 말씀 모르는 나, 천하 원수 다 모은 것보다 나한테 더 큰 원수입니다. 말씀 떠난 나, 천하 원수 가족 원수 주변 원수 우리 교회 예배당 함께 앉아도 소리 없이 이 사람 믿고 저 사람 믿고 소리 없는 원수들도 좀 있을 건데, 이런저런 원수 다 쌓아놔도 내 속에 말씀 떠난 지식이 이 원수가 나의 원수 전부입니다.

말씀 따라만 가면 외부 원수는 전부 주님이 책임 다 져 주시는데 내가 말씀 떠나버리면 주님은 손 놔버립니다. 내가 손 놓으면 양떼 있는 데는 천하의 모든 이리 맹수 다 달려옵니다. 이게 웬 떡이냐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위험한 데를 갈 때는 주님 모시고 가야 되지만. 저는 비행기를 잘 안 탑니다. 떨어져 죽을까 봐. 비행기 탈 때는 이거 타고 가다 죽어도 순교가 될까 여러 번 생각해보고 떨면서 탑니다. 일단 타면 그다음부터 또 이제 담대해지고 뭐 어떡합니까? 이미 탔는데. 위험한 데를 가니 기도하고 겁이 나지 집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뭔 염려가 될거라. 집 안에까지 악령은 시공을 초월하지 않고 내 속에 들어와, 아니 뭐 꼭 그리 말씀 말씀 세상이 이렇게 좋은데. 요즘은 모든 정보가 정확하고 딱 그냥. 내 속에 들어온 이 귀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떠나는 순간 이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간 사람이고. 말씀을 붙든 순간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밖에서 보면 그렇게 보이나,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주님이 목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어떤 현실이든지 사망의 골짝은 맞다. 그런데 말씀이 이길이니 됐다. 이러면 100점이고 세상이 얼마나 겁나는 줄도 모르고 편한데 그러면 그건 끝난 거고, 세상은 위험하나 말씀이 인도하시니 괜찮다 말은 하는데 내 마음이 편치 못하면 아직까지 연습이 덜 된 겁니다.

요즘은 피아노 좀 배우는 학생들이 있나요? 한때는 신풍 시골도 전부 학원 다 다니다가, 전부 다 다니니까 이제 세월이 다녀봐야 별거 없다고 또 모두 하나도 안 다녀서 다니는 사람이 없다가 요즘 또 새로 다니고 그러나요? 세상 따라 다 배우고 세상 따라 다 안 배우고 그러면 바보됩니다. 나한테 필요하면 다 해도 하는 거고 나한테 필요 없으면 다 해도 안 하는 거고 그런 거지. 뭐 딱 악보보며 그냥 하면 되지. 마음은 뻔한데 손이 안 가면 그 엉망되는 겁니다. 듣는 사람이 들어보면 아는 거지 뭐. 몰라도 어 저거는 고수구나. 몰라도 저건 뭐 그냥 엉망이구나. 말씀이 인도하시고 말씀 따라가니 세상은 엉망진창이라도, 엉망진창 세상 속에 나 갈길, 나 갈길, 나 갈길은 이거는 뭐 그냥 완전히 고속도로고 여기 양에게는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니, 내 신앙이 다시 한 번 더 열심으로 살아야 되겠다고 힘이 쥐어지고 감사하구나. 내가 나를 보면 그냥 아는 겁니다. 또 옆에서 봐도 보이는 거고. 근데 왜 이렇게 담대해지는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분이 혼자 계시다가 목적을 정하신 분입니다. 이분이 목적 때문에 세상을 만든 분입니다. 이분이 이 목적 때문에 세상을 오늘도 운영하는 분입니다. 지구의 자전이 총알 속도보다 빠르답니다. 지구의 공전이 총알보다 빠르답니다. 지구가 그 자리에서 팽팽 돌면서 태양을 이렇게 공전하는 이 속도가 총알보다 더 빠르답니다. 그게 방학 책에 나왔는가 어디 나왔는가? 초등학교 때 읽은 기억이 있는데, 학교 가서 이런 걸 배워서 집에 와서 할머니한테 할머니 지구라는 게 총알보다 더 빠르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그 위험한 거 타지 말아라 그러더랍니다. 이게 참 우스운 얘기인데 하나님이 총알보다 더 빠르고 별의별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 두셨는데 우리는 멀미도 안 합니다. 멀미도. 말씀 하나만 잘 붙들면 내 가정이 내 주변이 내 건강이 세상에 이 나라가 어 어떤 요동을 다쳐도 나의 길은 환하게 감사하고 참 감사하다. 이렇게까지 감사할 수가 있나 이걸 뭐 어떻게 표현을 다 하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만든 만유 주 운영자가 나와 함께하니 날 위해서 전부 다 운영하고 계시니 구경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분이 주님이고 주께서 “주의 지팡이와 주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의 막대기 이리 맹수 원수가 오면 이거는 방어 공격입니다. 지팡이는 요리 가는 거다. 저리 가는 거다. 1절로 돌아오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라면 목자는 인도하고 책임지는 보호니까, 여기 지팡이와 막대기의 인도와 보호 두 손으로 인도하시는구나.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신앙으로 살아보려니까 막 그냥 박해를 했는데, 이 박해하는 사람 눈앞에 보기 좋게 이렇게 우뚝 세운 1 다리오 왕이 사자굴에 집어던진 원수인데, 사자굴에서 다니엘이 살아나오니 원수 앞에 상을 차리시고. 쇠를 녹이는 풀무불에 들어갔는데 불탄 냄새도 없이 살아나오니 원수들 앞에 상을 베푸시고. 잡으러 다니는 사울은 전멸하고 다 죽고 다윗은 왕이 되었으니 내 원수의 목전에 내게 상을 베푸시고. 이런 그림도 그려보시고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오셔서 신앙생활 정말로 한번 제대로 해볼까? 그럼 뭐 먹고 살지? 어떻게 살지? 나 원하는 대로 뭐 재미도 없는 것 아니야? 내 마음에 옥신각신할 때 말씀대로 꼭 살아야 되겠냐? 요 마음이 나의 원수입니다. 그래도 말씀으로 한번 살아보자. 이게 순종한 양입니다. 정말로 순종해 보면 마지막에 내 마음속에 이러자 저러자 했던 그 마음 앞에, 봐라 그때 만약에 너 시키는 대로 했으면 어떻게 될 뻔했더냐. 참 말씀대로 살기 잘했지. 밖의 원수 먼 나라의 원수 원수 다 제쳐놓고 나 살아온 과거의 나의 결정 고비 고비에, 그때 너는 이러자고 했지? 말씀의 길은 이거였지. 말씀을 따라간 길과 그렇지 않은 것을 비교해 봐라. 빛과 어둠이요. 그 하나님께서 직접 큰 상을 차려놓고 가득 먹을 것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성경과 구약교회의 기름으로 머리를 바르는 직책은 여학생들만 몇 가지요? 기름을 바른다라는 뜻을 그리스도라 그럽니다. 그리스도. 기름을 바르고 임명하는 직책은 구약의 세 가지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말씀 따라 걸어간 니가 제사장이다. 죄라는 죄는 전부 다 물리쳤다. 하나님과 한 편 됐다. 말씀 따라 간 너는 말씀을 베웠으나 너는 말씀의 사람 니가 니 현실에 니가 선지자다. 그 말씀 따라가니 주님이 보호를 하셨는데 너를 보호하지 않고 어떻게 할 거냐. 니가 왕이 되어 너뿐이 아니라 너의 신앙의 사람까지 니가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어 오시는 주님도 그리스도지만, 너는 너 현실의 주님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신앙의 사람이 되어진 거다.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그리고 이 말씀을 신약으로 가져오니 “상을 베푸시고” 상을 베푸시고 뒤에 보십시오. “기름을 바르셨으니” 그다음 뭐라고 그랬지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먹고 마시는 것을 상이라 그러고 그다음 잔이라 그럽니다. 아 성찬이구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시고 베드로전서 4장 1절이었죠. 그다음 올해 첫 주일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내 살과 내 피 주의 죽으심, 그리고 다시 보니까 주님이 날 위하여 말씀으로 걸어가도록 살 찢고 피 흘려 열어놓은 길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걸어갔고 말씀으로 걸어가는 길에 고난도 주의 걸어가신 걸음이라 걸어갔는데, 알고 보니까 이게 내게 양식이 되고 이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이런 신앙이 되어졌습니다. 다윗은 천년이나 뒤에 오실 주님을 잘 모르고 성령으로 그냥 적어 기록해 놓았는데, 우리는 다윗이 천 년 전에 기록한 것과 그 천 년 뒤에 주님이 오시고 기록한 것을 3천 년 뒤에 오늘 다시 읽어보니, 3천년 전에 다윗으로 이 말씀 기록하시고 2천년 전에 주님이 오셔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23편을 다윗으로 기록해 놓고 이 말씀 속에 주님이 미리 다윗을 위해 죽으셨고 목자 되시고 인도를 하셨구나. 그러니 세상이 이길 리가 없고 이 두 면을 우리에게 보이며 오늘 또 걸어가라 그러시는구나. 그러도록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성령이 나를 붙들어 제사장 걸음, 선지자 걸음, 왕의 걸음을 걸어가는 말씀 생활 감사함으로 걸어가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렇게 부족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교회는 시골에 이렇게 부족한 교회인데 뭐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다 부족한데. 우리에게 맡긴 것 우리에게 지난날 인도하신 것 이것저것 몇 가지 챙기다 보면, 시편 23편은 오늘 나의 노래로 나의 찬송으로 내가 고함지르고 감사의 목청을 높이도록 미리 다 기록해 주셨구나. 천하 어디에서든지 말씀으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는 이 설교 이 은혜 이 감사가 똑같이 주어지게 만들어 놨습니다. 세상은 내가 1등하면 다른 사람은 2등 이하입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이 1등 해 버리면 나는 2등 이하라야 됩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시편 23편의 은혜는 나도 여기 하나밖에 없는 1등하고, 너도 1등하고 다른 교파도 1등하고 앞시대도 1등하고 전부를 다 1등 만들려고 이렇게 적어놓은 겁니다. 여기는 신풍교회니까 우리는 신풍 교회 중심으로 우리 교회는 75억 80억 중에 제일 좋은 교회의 제일 좋은 교인으로 만들어 주셨고, 우리 교회에 필요한 은혜는 차고 넘치도록 주셨다라고 해도 착각이 아닙니다. 과대 선전도 아닙니다. 모든 교회는 다 그러라고 해놨습니다. 알면 우리와 동지고 모르면 지금 헛일하는 겁니다. 6절 이러하니 “나의 평생에” 기쁠 때도 이 말씀입니다. 슬플 때도 이 말씀입니다. 강건하거나. 건강하면 안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하면 아프면 그때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대로 건강하면 잘 믿다가 아프게 되면 잘 믿었는데 내가 왜 이 모양이야 그러고 시험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데 별별일이 다 닥쳐도 나의 평생에 하나님 중심으로 주님 주시는 그 은혜로 나아가면, 주의 은혜와 주의 사랑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주의 은혜가 나를 따라요? 말씀 인도하고 보니 말씀이 앞길을 열어놓으셨고 말씀이 나를 가게 하셨고, 걸어가는 나를 말씀이 뒤따라가며 다 해결해 버렸습니다. 뱃속의 아이는 위를 봐도 엄마고 밑을 봐도 엄마고 먹어도 엄마고 뱉어도 엄마고 엄마밖에 없습니다.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어떻게 해요? 영원히 거하리로다. 천국 가서부터가 아니라 다윗이 사울 죽고 왕이 되어서 이후부터가 아니라 이 순간부터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한 주간 또는 지난달 또는 앞으로 적어도 이 사회가 뭐 어지럽고 복잡해서, 이거 뭐 이민을 가버리지 아니면 그냥 이런 나라에 뭔 소망이 있나 뭐 이럴 만한 여러 가지 절망될 일이 눈에 보여야 되고, 그런데 그 속에 시편 23편이 내 마음을 감사하게 한량없이 감사하게 두 개가 오버랩이 되어서 겹쳐져야 신앙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안응규 집사님 수술 후에 지금 병원 치료받고 있습니다. 아마 주일도 못 나올 겁니다. 또 이 예빈 선생님 어머니 치료 때문에 입원해 계셔서 예빈 양도 지금 병원에 같이 계시느라고 주일도 아마 못 올 겁니다.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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