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새24.4.18 시23:4 하나님과 끊어진 사망의 음침은 매 순간, 말씀의 보호 인도 생활 떠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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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새24.4.18 시23:4 하나님과 끊어진 사망의 음침은 매 순간, 말씀의 보호 인도 생활 떠나지 말 것

관리1 0 70 04.1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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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8 목새

제목 : 하나님과 끊어진 사망의 음침은 매 순간, 말씀의 보호 인도 생활 떠나지 말 것

찬송 : 121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본문 : 시편 23편 4절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세상은 타락 후 악령의 나라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보이는 것이 악령이 아니라 소리 없이 볼 수 없이 악령이 공중의 권세를 잡고 이 땅 위에 만사 모든 것을 마음대로 운영해 나갑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이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죄 없이 지어놓은 에덴동산, 죄 없는 완전자로 지어놓은 아담 그리고 악령이 영계에서 타락하여 에덴동산이 아담을 죄 짓게 만들었습니다. 죄짓게 만들 때 직접 나타나지 아니하고 뱀을 통해, 뱀을 앞세워 그다음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죄를 짓는 순간 악령은 이겼고, 그다음 아담은 졌습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하나님의 법이 그렇습니다.

세상을 만들고 신앙의 법을 만들 때 우리를 기계로 만들지 않으시고, 또 바위로 만들지도 않으시고 바위, 그냥 하나의 물체로 만들지 않으시고, 똑같은 물체라도 부속이 움직이는 그런 작동의 기계로 만들지도 않으시고 둘, 바위로 만드셨다면 그 바위 중에 좀 특별히 좋아 보이는 바위들이 있습니다. 거기도 좋아 모두들 쳐다보는, 세계적으로 손꼽는 어느 나라의 어떤 바위 이렇게 생긴 바위, 그 바위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 바위로 만들어 놨더라면 변치 않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백 목사님이 십대 열여섯에 열아홉까지 십대 후반에 일본 생활에서 3년을 해보고 지게 지던 나라에 자전거도 못 만드는 지게 지던 나라에서 항공모함 만들었지 비행기 만들었지 잠수함 만들었지 그런 일본을 별의별 것을 딱 구경하고 돌아와 가지고 골짝은 개명 골짝이라도 일본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그다음 한국에 다시 와가지고 제일 돈벌이 되는 사업을 금융 사업하고 그다음 술도가 사업으로 봤습니다. 둘 다 허가 사업이었습니다. 금융 사업은 돈이 많아야 되니까 돈 없이 맨손으로 출발할 수 없으니까 면허 사업, 술도가 사업을 해가지고 먼저 돈을 벌었습니다. 스무 살에서 일찍 돈을 벌어 봐 버렸으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걸 일찍 알아버렸습니다. 술이 좋으니 술 마시고 술이 인 베기니 알코올 중독자 되고 돈 많으니 술 마시고 늘 술에 떨어 퍼져 살다 보니 이게 인생인가, 인생에 막다른 골목을 일찍 봐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된 것이 이십대에 젊은데 돈 많이 벌었으니 건강과 돈이 변치만 않으면 좋겠는데 내가 뭐 늙어가는 거는 눈에 딱 보이니까 돈이란 있다 없어질 수 있으니까 변치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연구를 해보니 나무가 백년도 살고 몇 백 년 사니 참 나무가 부럽다, 이렇게 몇 백 년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 몇 백 년도 또 생각해 보니 그냥 쉬 갈 수 있는 거라 마지막에 제일 부러웠던 게 바위였습니다. 20대 초반에 돈을 실컷 벌고 늘 술에 절여지면서 바위를 보며 너는 영원불변인데 난 잠깐 왔다가 이렇게 그냥 이러고 간다, 뭐가 변치 않을까 싶어 미신 귀신 별별 도 닦는 사람 별의별 데를 다 돌아 댕겨도 지리산 덕유산을 접하고 있는 곳이야. 이 나라 도사들이 많은 데입니다. 두루두루 살펴봐도 그냥 이 사람 헛소리 저 사람 헛소리 별의별 사람들 헛소리지 변치 않는 것은 없다, 그러다가 믿게 되고 영원불변을 알게 되며 이제 생명줄을 잡았다 하고 나머지 다 치워버리고 죽는 날까지 한 길을 달려갔습니다.

변치 않는 것이 뭘까? 뭐 그냥 바위가 변치 않습니다. 그런데 바위도 별의별 바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바위 저 도봉산 서울 북쪽에 있는 바위가 그렇게 멋있습니다. 또 공회 사직동 교회 옆에는 인왕산 바위 그렇게 우리나라 화가들이 많이 그려대는 인왕산 바위 멋있습니다. 영원무궁토록 변치 않는 것으로는 인왕산 바위가 이 나라에 제일 좋고 세계적으로는 곳곳에 유명한 바위들이 있지만 변치 않는 것은 좋은데 바위 하라면 돌부처밖에 안 되는 건데 그걸 하고 싶을까? 태어났으니 변하는 것이고 변하는 것이 허무하니 차라리 바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으지 아, 인간이 할 게 없어 바위에 하고 앉았겠습니까?

말은 못하지만 기계라는 것은 이건 시계도 기계입니다. 자동차도 기계입니다. 참 재주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건 바위하고 비교를 해보면 요술은 부리는데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기계 중에 제일 재주 많은 기계가 컴퓨터입니다. 얼마나 오묘하고 요술입니까 마는 그런데 이거는 정이 없습니다. 컴퓨터 데리고 사는 사람 보셨습니까? 컴퓨터를 안고 얼르며 좋아서 웃는 사람 보셨습니까? 그 속의 정보와 기술 처리는 요술이지만 그거 쳐다보고 앉아서 좋아하고 데리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인격이 없어 그렇습니다. 보는 게 있고 느끼는 게 있고 내 마음을 말하면 상대방이 알아듣고 상대방이 나하고 주고받는 이런 세계를 인격이라 그럽니다. 개는 호랑이 밑에 개지만 개는 호랑이하고는 어울리질 못합니다. 개는 개라야 좋은 거지. 호랑이는 자기 밑에 동물의 왕국을 거느리고 살아도 이건 먹이고 이건 구경이지 그거하고 좋다고 어울리지는 못합니다. 호랑이는 호랑이라야 좋습니다. 동물농장의 닭은 닭이라야 반갑지 닭이 송아지가 그립겠습니까? 강아지가 좋겠습니까? 컴퓨터가 아무리 요술을 부려도 그건 활용을 하고 머슴으로 쓰고 장난은 쳐도 사람은 사람이라야 이게 좋아집니다.

아, 5천만 명이 있다고 자기 남자 자기 여자만큼 좋은 사람이 있습니까? 5천만 명이 한 동네에 살아도 부부끼리만 좋아야 이게 정상입니다. 5천만 명이 있어도 날 닮은 내가 낳은 내 자식이라야 그게 예쁜 겁니다. 자기 자녀만큼 예쁜 게 있습니까? 좋은 게 있습니까? 이게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내용을 옮겨놓고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다, 만물이 있고 만물 위에 영계에 영물이 있고 천군 천사가 있지만 그 천군 천사 한없이 보고도 우리가 5천만을 보면서도 내 가족이 좋고 내 자식이 좋고 그건 쳐다보고 앉았으면, 좋은 것처럼 다른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천군 천사가 끝없이 많아도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이 낳아놓은 그리고 하나님이 길러가는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그래서 우리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게 어려서 탈도 내고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뭐 그 모양 그 꼴이지 뭐 그럼 돈 벌어오겠습니까? 뭘 합니까? 내가 낳았으니. 날 닮았으니. 쳐다만 봐도 좋고 그거 쳐다보고는 뭐 그냥 임금님도 자기 아이 보고는 하루 종일 웃고 앉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 닮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하나님이 이것만 있으면 되는, 이게 혼자 계시던 하나님의 목적이고 창조고 천하의 운영이 이게 딱 맞춰져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쳐다보면 그냥 말할 것 없이 좋아야 되고, 천하에 좋은 게 5천만 명이 있어도 부부 저 둘만 쳐다보면 그 이상이 없어야 그게 정상입니다. 뭐 그런 세계 한 번씩 구경해 보셨습니까? 평생을 쳐다봐도 질리지도 않고 갈수록 더 좋고 그런 거 혹시 보셨습니까? 거기에 닮았으면 가까우면 이게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쳐다만 봐도 좋은데, 또 살아가면서 이런 말도 하고 저런 대화도 한다면 이것도 좋습니다. 둘이 할 일이 있어 짜고 운영을 하고 작당을 하든 뭐 건설을 하든 협의를 하든 그리 되면 있기만 해도 좋은데 쳐다봐도 더 좋은데, 대화만 해도 더 좋은데 어울리고 할 일이 있어도 좋은, 있으면 먹을 것도 없고 한도 없고 좋은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영원불변으로 끝없는 갈수록 좋아지는 우리로 만들어 놓고, 이걸 이 땅 위에서 잠깐 만들어놓고 만들어진 만큼 영원히 하나님이 그리 사시려고 영계 전부를 준비시켜 놓고 우주 물질계 만물을 다 동원해서 내 마음 하나 내 행동 하나가 하나님이 맞다 그거 참 좋다, 쳐다만 봐도 그냥 좋아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더 좋구나, 여기 방향을 딱 맞춰놨습니다. 이를 위해서 환경과 만물을 만들어 내게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딱 줄여놓고 너하고 나하고 하나다, 그 연습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아담이 죄 지은 이후 세상은 소리 없이 악령이 자기중심의 죄를 짓게 하여 하나님 없는 결과만 만드는데, 그 속에 중생된 우리들은 중생된 우리들은 하나님과 동행, 말씀으로 인도하는 주와 동행하는 이 생활 하나님은 너무 높고 무한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주님과 하나 되고 동행하고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주와 동행하며 주의 인도받고 보호받는 겁니다. 이렇게만 딱 되어 지면 옛날과 달리 고속도로를 거미줄처럼 만들어 예전은 길은 하나니 길 타면 서울까지 한 길이라 가는데 차가 없어 걸어가려니 길은 알지만 배가 고파 못 갔습니다. 위험해 못 갔고 지금은 길이 한도 없이 많고 차가 좋으니 원하는 대로 다 갈 수 있는데 어느 길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길을 몰라서 이건 차를 몰고 나가지 못하는 때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길은 너무 많고 차는 너무 좋고 길이 많아 길 잃을 판입니다. 그런데 차에 길 안내하는 GPS가 나와 가지고 이 손바닥만 한 것이 운전대 앞에 앉아가지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이리 가라 저리 가라 그러는데 그거 따라가다 보면 서울까지 그냥 한 번도 더듬지 않고 딱 가버립니다. 평생에 처음 가는 길도 딱 찍어놓고 손바닥만 한 것이 이리저리 이리조리 그다음은 그다음이고 당장에 저기까지는 길이 몇 개 있고 이 길이다 저 길이다, 이것만 따라가다 보면 끝까지 가버립니다. 이게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만물 속에 만물과 나와의 관계에 어떤 마음을 먹으며 어떤 길을 가며 어떤 선택을 하며 뭐가 있을까 한도 없는 길이 있고 그 길에 한도 없는 주변이 있고, 이게 이해관계로 얽혀 혼란도 주고 원수도 되고 별별 것이 다 있는데 인생길을 어떻게 다 알겠느냐, 인생길을 어떻게 다 찾아갈 것인가, 어떤 위험이 있으며 어떤 도움이 있으며 어떤 것이 어떻게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1년 365일 평생에 새벽 기도 한 번도 빠지지 않던 남반의 제일 앞에 안응규 집사님 담낭, 쓸개 담낭 쪽에 염증이 와서 뭐 수술 간단하게 하고 입원을 했답니다. 다른 사람 병원에 드나들어도 안응규 집사님 같은 분이야 뭐 그냥 참 신풍에 처음 볼 때부터 어제까지 건강, 건강 저런 건강이 있겠나 싶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담낭은 어디에 있는가 위장 아마 약간 밑에 있고 그럴 겁니다. 쓸개니까 쓸개, 담. 웅담. 집채만한 곰 잡아서 발바닥 먹으면 맛있다고 곰 발바닥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 그러지요, 그다음 곰 중에 제일 약 되는 것은 곰 배꼽에 있는 쓸개가 조그마한 게 있는데 이거 빼먹으면 뭐 무병장수한다고 산 곰에 빨대 빨아먹니 마니 하는 그게 쓸개입니다. 그게 아마 담일 겁니다. 쓸개주머니를 담낭이라 그럴 거고 여기에 문제가 왔다 아, 저분도 건강이 영원불변은 아니구나, 영원불변일리야 없지요. 왜 하필 쓸개 담 쪽에 문제가 생겼을까? 이제 자기가 연구해보면 그 연구는 나올 겁니다.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잠언 27장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알 수 없음이니라” 평생에 어떻게 살았던 오늘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제까지는 이렇게 했는데 문제는 오늘입니다. 이래서 공부를 해서 예측을 하는 사람, 컴퓨터를 차고 다니면서 물어보는 사람, 좋은 사람 만나 물어보는 사람 돌처럼 그냥 있을 수는 없고 기계처럼 돌아간다고 되는 건 아니고 인간이니 계산은 하는데 그 계산대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신풍 시골 무식한 우리가 이 새벽에 예배당에 앉아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그 펼쳐지는 오늘의 어떤 길로 운전을 해서 내 인생이 오늘을 살아가야 될까, 간단하게 줄여 아는 말씀, 배운 말씀, 신앙의 양심에 와 닿는 말씀 말씀을 생각하면 그건 반드시 말씀이 느껴지게 돼 있습니다. 오늘은 목요일이다, 밤 예배는 없는 날이다, 주일은 지나갔고 다음 주일은 며칠 후다, 오늘 목요일 나는 학생이니 나는 직장이 있으니 나는 아이가 있으니 나는 이 나이에 가족이 이렇고 내 환경이 이러니 나는 오늘 말씀으로 오늘 어떤 생활이 맞겠는가, 좀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 양심 따라 사는 게 주님 동행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알고 보면 천하가 사망의 골짜기고 오늘도 걸어가야 되는 길은 전부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숨은 원수가 노려볼 것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구도 돕니다. 우리는 못 느껴도 또 보이는 오늘의 현실에 모든 사람들이 다 움직일 겁니다. 움직이는 사람 속의 생각들이 다 다를 겁니다. 그리고 뚝딱 하면서 무슨 일이 닥칠는지 전혀 모릅니다. 알 것 없고.

이 아침에 내 마음속에 은혜를 주신 주님 난 내 식구들 오늘 세끼 밥 먹이는 것이 나의 주 업무다 싶으면 아침 준비하고 아침먹이고 아침 치우고 점심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하루 세끼 반복이 주 업무면 어느 인간이 하루 세끼 밥을 먹고 평생 살도록 이렇게 되었을까, 짜증을 내든지 아이 뭐 포기하고 그냥 생각 없이 가, 이왕이면 뭘 먹을까 기대하고 그냥 연구하고 이 세 가지 중에 하나일 건데 그러지 마시고 먹어 살고 먹어 힘을 얻고 먹어 자라고 먹어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유지가 된다, 하루에 세 번씩. 말씀의 양식이고 신앙의 양식이 뭘까? 예배는 새벽 한 번이면 오늘은 없습니다. 금요일은 두 번입니다. 주일은 세 번입니다. 밥은 하루의 세끼인데 왜 예배는 한 번도 있고 두 번도 있고 세 번도 있고 이럴까? 보이는 예배 시간에 음식은 그러나 내가 말씀으로 아침 먹을 때 밥을 먹으며 마음속에 신앙의 양식 생각하고 점심 먹으며 나는 신앙의 양식이 뭘까? 저녁 먹으며 말씀을 양식으로 말씀의 깨달음과 말씀의 묵상과 말씀으로 실행하는 순간순간을 신앙의 양식, 육체는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내 신앙은 말씀으로 생각하는 것이 양식이다, 뭐 말하자면 이런 면 저런 면으로 자꾸자꾸 생각을 하다 보면 예배는 하루 한 번이거나 주일날 두세 번이거나 볼 수 없는 예배 생활은 하루 종일 1년 12달 평생 계속되는 겁니다.

시편 23편 오늘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데 뭣 모르고 좋아서 설치니 이건 100% 이거는 이리 밥된 겁니다. 좋아도 이리 밥이 되었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렇고 오늘 별별 슬픈 일이 다닥쳐도 말씀 붙들고 너를 살아가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갔으나 사망과 사망의 골짜기는 나와 상관없이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말씀으로 나와 인도하시니 말씀 생각하고 말씀으로 연구하는 순간 이미 주님과 나는 하나입니다. “너희는 내 안에 내 말은 너희 안에” 이건 뭐 그냥 무조건 복된 길로 걸어가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엄마 품속의 아이도 알고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엄마 있으니까 복이 있는데 뭐 하나님을 찾아? 부모가 이리 좋고 가정 이리 좋으니 나야 뭐 부모 좋고 가정 좋으니 이만하면 됐지, 아이 속에 그 생각이 바로 하나님과 생각을 끊어놓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돈이 이렇게 잘 벌리는데, 우리 편이 이렇게 흥황해서 온 나라가 좋은데 이거든 저거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끊어지는 순간 그 사람 마음속이 사망의 골짜기 돼버렸습니다. 내 마음속의 말씀 생각하는 순간 말씀으로 오늘 걸어갈 생활을 걸어가는 순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데 목자의 보호를 받고 인도를 받는 생활입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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