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4.4.17 시23:4 극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오늘 현실 인식, 주님 품만 바라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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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4.4.17 시23:4 극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오늘 현실 인식, 주님 품만 바라볼 것

관리1 0 40 04.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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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7 수새

제목 : 극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오늘 현실 인식, 주님 품만 바라볼 것

찬송 : 10장(빛나고 높은 보좌와)

본문 : 시편 23편 4절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기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우리를 몰아넣어 가시는 주님 둘러보면 신앙의 생명을 끊어 세상이 하나 되고 천국이 좌절되는 이리떼 가운데 있는 양과 같은데 위험을 모르고 위협을 모르고 세상 속에 감춘 사망을 아지 못하는 이런 우리들 없도록 심령의 눈을 띄워 보이는 것 속에 볼 수 없는 것을 보며 좋아 보이는 세상 속에 죄와 사망과 악령을 보며 지혜롭게 복되게 남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귀한 오늘 되도록 부족하여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에게 먼저 은혜 베풀어주시고 함께해야 되나 함께하지 못하는 잠든 심령들 깨워주시고 불편하고 또는 여러 곳에 두신 사명 인하여 시공을 초월하며 마음을 우리와 함께하는 실시간 곳곳마다 크신 은혜로 천하와 맞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던 다윗을 오늘의 자기 현실에 자기가 다윗 되어 걸어가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망이란 사자와 곰이 나타나 양치는 다윗을 해치는 것도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골리아 때문에 엘라 골짜기에서 맞섰을 때 모두들 두려워했고, 다윗이 나서려 할 때 그 어린아이가 이 전쟁터가 뭔지도 모르는데 뛰어들 때 모두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다윗이 내가 양칠 때 사자와 곰을 따라가서라도 입을 찢어 양을 구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시편 23편은 23 제목 밑에 보면 ‘다윗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걸어온 길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실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녔습니다. 죽음이 짙게 깔려 있는 골짜기 그 어딘지 맹수가 나를 노리고 있는 느낌이 들어오는 곳, 양들은 앞을 보지 못해 목자가 필요합니다. 이게 귀도 서툴고 눈도 서툴고, 도망가는 것도 서툴고, 그냥 목자 의지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양입니다. 목자 잘 만나면 평안하고, 목자 잘 만나면 잘 먹고 잘 살고, 목자 잘못 만나놓으면 이거 뭐 양이라는 것은 대책이 없습니다.

양 중에도 염소 비슷하게 생긴 양을 산양이라 그럽니다. 산양은 바위, 낭떠러지도 타고 도망가고 자랍니다. 이건 야생에서 생존을 위해 귀도 밝고 급하면 도망도 잘 가고, 그런데 여기 다윗이 기르는 또 시편 23편에서 말하는 목자 밑의 양이란 목자한테 다 맡겨놓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냄새 맡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다 포기하고, 목자에게 맡긴 목자만 바라보는, 목자만 의지하는 목자만 바라본다, 말은 소망이라는 말입니다. 목자만 의지하는, 의지는 목자만 힘이다라는 뜻입니다. 바라보고 의지했으면 이제 순종이 문제인데 순종을 믿음이라 그럽니다. 목자만 바라보고 목자만 의지하고 목자 시키는 대로만 따라가는, 그러면 양이고 난 나대로 사상이 있고, 난 나대로 힘이 있고, 난 나대로 살고 그리 되면 염소입니다.

여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다음 크신 하나님의 목적 인하여 인도하실 것이니, 신앙의 양식, 평안함, 또 모든 갈급 다 해결하실 것이니, 4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사망 아닌 곳도 있는가?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는 사망 아닌 곳은 알고 보면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내가 너희를 보내니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타락한 세상 좋아 보이는 속에도 좋지 않은 것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차라리 환경이 어렵고 사나우면 조심은 하는데 환경이 좋아 보이면 내 눈에 좋아 보이면 원수도 날 피해 줍니까? 양이란 잘 먹었지, 통통하지, 도망 못 가지 항거 못하지 안전하게 잡아먹을 수 있는 이거는 최상의 좋은 먹이라 이리떼가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 중에서도 그렇게 양을 좋아한답니다. 말하자면 상극이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도마뱀 쪽이 그렇게 사납고 다 이겨도 이게 닭만 만나면 그렇게 못 견딘다 그러고 뱀이 도망 잘 가고 이게 독하고 그래도 이게 돼지만 만나 놓으면 그냥 뱀은 그냥 절단난답니다. 이런 걸 상극이라 그럽니다. 다 이겨도 못 이기는 것.  양은 원래 이기는 것도 없지만 문제는 이리가 양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 푸른 풀밭에 양이 있는 법인데 먹이들이 복닥거리는 데를 아는데 이리가 양을 용서하다니요? 이리가 양과 평화를 하다니? 이리가 양이 불쌍해 자기 새끼 먹지 못하도록 버려두다니? 자기가 굶다니? 동물의 세계에 그런 것 없고 맹수의 세계에 그런 거 없습니다. 잘 잡아먹는 것이 자랑스럽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위험한 데를 가야 위험한 줄 아는데 평안하게 주택, 가족, 생활, 문화, 경제, 사회의 안보 모든 걸 딱 다 갖춰놓고 이만하면 평안하다 그러는데 외나 더 무서운 맹수는 거기 있습니다. 한 40년 전 80년대까지는 미국이 우리에게 지상낙원이었고 가기만 가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고 뉴스에 뭐 드라마에 미국의 흑인들 범죄 막가는 걸 많이 들으면서 이제는 캐나다 호주가 그렇게 좋다고 모두들 특히 가까운 호주를 노래 부르는데 넓지 점잖치 흑인 같은 그런 위험한 것 없지 두루두루 다 좋아 보이는데 귀신이 호주라고 피해 가겠습니까? 전부 그쪽에 가면 지상낙원이라고 몰려대니 더 센 귀신이 따라가지요. 믿기가 어렵고 험악하다 싶으면 기도하고 조심하기 때문에 조심하는 양떼는 목자를 바라볼 것이고, 조심하는 목자 위협을 느끼는 양떼들은 위협을 느끼고, 조심하는 양떼 주변에는 목자가 있기 때문에 맹수가 양이 무서워 그런 것이 아니라 양이 떨면 목자 품이고 목자 품이면 그건 맹수가 함부로 하지를 못합니다.

이런 게 좀 말이 이상한 건데, 가난해야 믿는 데는 도움이 되고, 경제가 갖춰지고 좋아지면 이거는 이리가 없는 줄 알고 방심하다가 더 센 이리를 만납니다. 가난해 짓는 죄는 환경에 의해서 마지못해 짓고 경제가 넘쳐 부유하여 자신만만한 사람이 되어놓으면 밖의 죄보다 안에서 부터 내려앉아버립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건강도 타고나며 좀 부족해서 골골 그런다고 그러지요, 골골 100년 살고 몸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니 조심하고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고 조심조심하다 보니까 남들이 볼 때는 골골하는데 100살, 타고나기를 강한 사람, 자신 있는 사람, 억센 사람, 건강 끝까지 것이야 점령군처럼 짓밟는 사람, 젊어 사고로 가기 좋고 무쇠로 만든 차도 10년이면 내려앉는 판에 이 살과 뼈로 된 게 얼마나 강하다고 수십 년 혹독하게 쓰다 보면 어느 날 한꺼번에 내려앉으면 약도 없습니다. 인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의 사상, 마음의 의지, 마음의 집중, 마음의 탁월한 학습력, 이런저런 자신감 이것도 어느 날 대책 없이 자기를 내려앉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갈 때만 사망의 골짜기나 오늘 우리에게는 이 새벽 오늘 하루도 사망의 골짜기는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 좋은 문화도 우리의 신앙 끊기 위해, 연결이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이렇게 넘치는 경제도 넘치는 경제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면 그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돈 챙기고 하나님 잃고 문화, 생활 챙기고 하나님 잃고 세상 챙기고 천국 잃고, 가까운 사람 좋은 문화, 좋은 환경 다 챙기고 하나님을 쏙 빼버리면 바퀴도 좋고 운전석도 좋고, 핸들도 천연 가죽 장갑이고 막 좋은 걸로 그냥 세차하고 좋게 갖춰놨는데, 엔진만 없다면 엔진만 고장 났다면 이건 고장이 아니라 엔진 없는 차는 차가 아닙니다. 짐 덩이지. 주님 모신 그리고 이것저것이 가지면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주님 빼버리고 가지면 전부 사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나 사이를 끊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고, 그리 보면 배고픈 때보다 배부른 오늘이 더 극심한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학교나 못 다니고 책도 없고 글을 몰랐더라면 고등 지식, 지식의 죄는 덜 지을 텐데, 돈벌이에 상관도 없고 세상 살아가는 데 상관도 없는 별별 지식으로 전부 다 전문가 수준이 돼 놓으니 그 지식으로 돈이 됩니까? 가족 사랑이 됩니까? 자기 인생의 풍요가 됩니까? 지식이 들어가는 만큼 화가 나서 그냥 못 견디는 화병의 원인이 되지, 또는 소망만 커져서 대책 없는 영웅들만 나오지 집도 나와 내 가족 살아가는 데 딱 필요한 만큼이 제일 좋은 것, 그 이상이 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기술도 직업도, 직장도, 대우도, 연봉도 건강도. 3살짜리가 세 살짜리만큼 건강해야 되지 세 살 짜리가 열 몇 살 건강을 가져 놓으면 지식이 못 따라가는데 그거 예전 부뚜막에 들어가는 겁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죄악, 세상 악령의 세상 사망의 음침한 현실 환경으로 꽉 짜여 있을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은 무소부재라 항상 나와 함께하시는데 내 마음이 돌아서버리면 이거는 강제로 주님이 붙들 수가 없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말하자면 왕이 원하는 사람 잡으면 잡는 거지만 그 사람의 마음까지 잡는 것은 그건 별개입니다. 포로 잡아 감옥에 넣든 쇠사슬에 묶어놓든 강제로 아내를 삼든 힘 있는 사람 왕이 힘만큼은 다 하겠지만 마음까지 잡을 수 있는가 그건 별개의 문제인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의 인격은 노예로 붙들지 않으시고, 인형으로 가지고 놀지 않으시고, 강아지처럼 끈으로 묶어두지 않으시고, 전능의 하나님 절대의 하나님이 믿는 날 상대할 때만은 인격으로 상대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날 위하여 다 바치고, 무한한 건데 이 별것 아닌 나도 그 은혜 감사해서 별것 아닌 내 인생 원하여 다 바치기를 기다리며 주님은 있는 것 다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쳐다볼 때 있고 안 쳐다볼 때 있고, 양다리 걸칠 때 있고 주님만 사랑하는 척하는데 우리의 깊은 마음속에는 다른 것도 있고, 이거는 강제로 할 수 없고 다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나만 말씀으로 주님께 내 마음 기울이면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러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환경은 상관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언제 배불리 먹고 잘 믿은 적이 있었습니까?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역사적 경험 때문에라도 오늘처럼 교회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면 교회마다 심지어 우리까지도 신앙이란 별로겠구나, 별로라니요? 신앙이란 다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렇게 조심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세상 좋다고 교회 핍박 없다고 모두들 그냥 잘 차려 교회 오고 간다고 심지어 우리가 잘 믿는 줄 안다면 이보다 더 큰 병 없습니다. 아벨로부터 오늘날까지 교회가 잘 먹고 잘살고 신앙생활 잘할 때는 거의 없었습니다. 가정으로 들어가면 먹을 것이 없어 가난한 시절은 애가 타지 가족의 사랑은 넘쳤습니다. 원래 가난한 가정은 이혼을 하지 않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잘 살다가 가난해지면 깨지지만 원래 못 살던 미개 시대, 원래 어렵던 시절은 가족의 사랑이 있고 부모 자녀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가정 속에 돈이 들어가고 평화가 들어가고 문화가 들어가면 일단 부부 사이가 멀어집니다. 부모 자녀 사이도 이상해집니다. 연극은 해도 속속들이 애 터지는 그런 사랑은 없어집니다. 이게 가정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를 통해 교회 생활을 보내는 겁니다.

환경 좋고 사람 좋고 모든 것이 두루두루 좋으면 이렇게까지 세상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주시니 믿는 데만 열심을 내버려야 되겠다, 이러면 더 큰 은혜를 주실 터인데, 먹고 살고 세상 살기 좋게 안전하게 마음껏 하도록 밀어줘 놓으면 마음이 주님과 멀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 운영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돌려 세우기 위해 슬금슬금 여러 가지 일을 바꿔버립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 환경을 탓하지 말고 내 마음이 주님과 멀어져 그렇구나, 돌아서면 좋습니다. 제일 좋기는 이렇게 좋은 세상 주실 때 걱정 안 해도 세상은 좋으니 세상 밀쳐놓고 주님께만 애절하게 마음을 모으는 이 아침 되어 지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세상 좋아 마음껏 곤히 잠든 사람들. 어제 밤늦게까지 세상에 푹 빠졌으니 나오기가 어렵겠지요. 대부분은. 아니면 너무 무리를 해서 뭐 입원을 하셨든지 결론은 세상이 좋아 자기를 엄마 품에 아이가 안기듯 세상 품에 안기면 그게 호랑이 입속인데 이리떼 속인데 세상은 좀 불안하게 살아야 정상입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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