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4.2.21 삿16:4 하나님께 붙들려 승리의 삼손, 마지막 방심의 덫은 깨어 조심으로 이기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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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4.2.21 삿16:4 하나님께 붙들려 승리의 삼손, 마지막 방심의 덫은 깨어 조심으로 이기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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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요약
2. 설교 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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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khr)

삿16:4 -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서론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삼손은 사사기 13장에서 시작한다. 삼손의 아버지는 마노아이다. 마노아 부부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남자 아이를 줄테니 엄마부터 포도주 독주를 끊어버리고, 또 부정한 것 다 밀쳐버리고 아예 부정한 것 먹지 말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귀한 종을 준비하라 해서 13장에 사무엘의 아버지 마노아, 그의 어머니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어머니 계통으로 신앙이 오면 어머니 이름을 적는데, 삼손은 아버지 마노아 이름이 나오고 어머니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부모를 통해 깨끗하게 준비했다가 그 다음 태어났다.

(결혼 전에 아이를 가지기 전에)
-이 말씀을 알게 된 사람은
-그냥 아이를 가진 다음, 아이가 귀하니까
-이제부터 조심하자 그러지 말고,
-나에게 아이를 줄지 모른다 싶으면
-그때부터 준비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런데 늦어버린 사람은 어떡할까?)
-늦어버린 사람은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되어진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아이를 갖기 전에 조심하고 가진 것이 사무엘의 한나이다. 모세는 어머니의 신앙을 보니 두말 할 것도 없고.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므로 언제든지 우리 마음이 돌아 서고 준비가 되면 내 마음이 깨끗해진 내 마음에 깨끗하게 노력하는 내 마음부터는 이어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앞선 나 때문에 깨끗하게 출발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는 것이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14장, 삼손이 자란 다음에 딤나로 내려갔다. 딤나로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 중에 여자를 가진다고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 결혼 안 되는데, 부모가 펄쩍 뛰면서 반대를 했다. 특별히 준비된 삼손이니까 그러한데,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14장 3절에 그 당시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이스라엘 사람은 블레셋에게 지배를 받는 입장이었다. 삼손이 여자 핑계를 대고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 부모는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시켜서 시작이 된 일이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이 말은
-불신자 말이다.

(믿는 사람은)
-공부 못하고 직장 없다고
-세상 못 사느냐?
-믿음으로 살면 되지, 이게 믿음의 사람이다.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둘을 합해 놓은 것이다. 세상에 기웃거리지 말아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순종하고 살면 된다. 이게 삼손인데, 이 삼손에게 하나님께서 나를 따라가자, 예 했는데 하나님이 삼손을 붙들고 블레셋의 딤나라는 곳을 데리고 갔다. 남이 볼 때에는 깨끗한 나실인으로 기대한 삼손이, 아니 하나님의 백성도 많은데 왜? 이방 결혼을 하려고 그러지? 남들은 이방 결혼으로 봤으나, 하나님은 삼손을 결혼 핑계로 블레셋을 치려고 데려가고 있었다.

(뭐든지 똑 부러지게 하는 것은)
-좋기는 좋으나
-살피기는 잘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인데도 삼손의 딤나행은 블레셋을 치려고 약점을 잡고 기회를 틈 타는 것이지, 세상이 좋아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전부 세상으로 물러가고 배어 들어가면서 말로는 삼손도 딤나에 가지 않았느냐? 그 말을하면서 합리화 하면 큰일 나는 것이다. 정말로 주의 인도 따르다가 주님이 딤나로 가자고 할 때에만 가야 되는 것이다.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그렇다고 결혼 아닌가? 구약의 결혼은 남자가 사람이고 남자인 사람이 여자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방 여자도 하나님 믿는 사람이 쥐고 하나님 순종하는데 쓰이면 이것도 선물이다. 이방 결혼을 금지한 이유는 결혼만 해놓으면 남자가 여자 이겼다고 해놓고 뒤로는 여자에게 휘둘려서 이방여인에게 결혼하면 이방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금지한 것이다.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딤나로 내려간 것은, 핑계대고 이방 나라 세상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은 지배를 받고 블레셋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던 때에, 블레셋 안으로 들어가서 숨통을 끊고 블레셋을 이기려고 들어간 것이다. 목적이 다르고 가게 된 원인이 다르다. 그리고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 결혼 핑계로 블레셋을 요절냈다.

(믿는 사람이 학교 왜 가는가?)
-학교에 가야 배우고
-지성인이 되고
-그래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건 일반 교인이나 불신자다 다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 우리의 학습관은)
-부모에게 태어나서 부모에게 배우면 되지
-뭔 학교까지 가? 갈 필요 없다이다.
-그런데 만약 학교 간다면
-학교까지 가서 세상을 간파한 다음
-신앙으로 살 때에 세상을 이용하고 활용하고
-내 것으로 써먹기 위해서이다.

(학교가 동쪽 한다고 학교 따라서 동쪽가고)
-학교가 서쪽 사상 가르친다고 서쪽으로 가고,
-학교 분위기가 교사 가르친다고
-집에 와서 부모 이기려고든다든지,
-그것을 학교에 삼켜진 사람이다.

(믿는 사람은 요즘 세상이 어떤지)
-학교 안에서 학습과 분위기와
-가르치는 분위기에서 말씀과 자연과 다른 것이 있으면
-이것은 독풀이나 아주 틀렸구나
-피해갈 것도 있고
-믿는 사람은 직장도 학교도 사회 생활도 다 그런 것이다.

(믿는 사람은 믿는 기업에 가야 한다?)
-믿는 학교에만 가야 한다?
-택도 없는 소리이다.
-안 믿는 학교를 가더라도
-학교란 세상 가르치는 곳이니 조심해야 된다.
-신앙 생활에 필요하면 갈 수 있다.

(학교 가는 대신에)
-학교의 사람 되고
-그 학교가 만들어놓은 제품이 되면 안된다.
-참 중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오늘 20대 여자는)
-오늘의 세상의 20대와 같아야 된다?
-귀신 소리이다.
-오늘의 20대 여자들은 눈으로 앞을 보고 가니
-믿는 사람은 입으로 앞을 보고 가야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세상 만드신 하나님이이시니
-신앙에 좋은 것은 좋게 가되
-인간이 뒤집어놓은 것은
-그렇게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또 자연 환경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12월부터 겨울을 주면
-아이고 추우니
-집에서 실시간으로 보라는 뜻인가보다?

(겨울을 주신 주님은)
-추워도 추위를 이기고
-피동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을 주셨지
-추우니 드러누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 밤중에 일어나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래서 삼손이 14장에 딤나로 갔고 그 다음 15장에 또 일을 냈고 그 다음 16장에 와서 가사라는 곳에 또 갔고 가사의 문짝을 뽑아들고, 세상에게 막힌 것이 아니라 세상을 휘젓고 다녔다. 가사에서 문짝 뽑고 이름을 떨쳤다.

(초등학교도)
-믿음으로 졸업하고
-중고등도 신앙으로 통과하고

(대학을 가도)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니 뭐니 해도
-진화론이라는 미신은
-아예 하나님이 없으니 그렇게까지 되는구나.
-대학을 나오고 나니 신앙이 더 지성의 신앙이 되어
-앎으로 더욱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어지면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본론

“이 후에 삼손이”

오늘 아침, 그런데 이후에, 이렇게 시작한다. 16장 4절, 딤나도 이겨버렸고, 또 라맛 레히라는 곳에서도 블레셋을 전부 짓밟아버렸고 또 가사라는 곳에 가서 약점 포위된 길목 문짝을 뽑아들과 환경과 인간의 방어를 전부 다 초월해버렸다. 승리, 승리, 승리, 승리, 인간은 완전자가 아닌데 불변자가 아닌데, 한번 잘 나가고 두 번 세 번 잘나가고 잘 나가고 잘 나가고, 잘 나간 이후가 되면 더욱 잘 나야 되는데, 척척척 잘 되고 나면 방심하기 쉽다.

(나는 원래 건강하니까)
-건강이야 자신이 있으니까
-뭘 먹어도 나는 되니까
-아무리 추워도 자신이 있다.
-그까짓 것?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건강만은, 건강으로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너무 잘나가가다 보면
-인간인데 한 번은 방심하게 되어 있다.

(그 한번의 방심이)
-적은 실수면 다행인데
-그 한번의 방심으로
-끝이 나버리면 어떡하나?

(그 동안 잘해봐야)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세상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승리자라는 말도 있듯
-이런 저런 것이든 지다가
-마지막 이기고 끝나면 승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삼손은 출발에서부터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전부 다 이기고 척척 진행했다. 그러다가 16장 1절에 가사에 가서 성문 짝을 뽑아들고 산 꼭대기로 올라가니, 아예 저 삼손한테는 매복 기습 길목이 필요 없고 덫을 놔봐야 안되고 성문짝으로 해도 아니되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삼손이 요깟 블레셋쯤이야 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그냥 좀 즐겨도 되니까 푹 빠져버렸다.

(내가 이 사업 저 사업)
-다 신앙으로 잘 하고
-내가 가는 곳마다 신앙 복되게 운영했는데
-이깟 정도야?
-붕어빵 리어카 정도 쯤이야

(나는 맨손으로 어디 가도)
-맨 손에서 사업 성공했는데
-입으로 영업하는 것을 내가 못해?
-뭐든지 해당되는 것이다.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가사까지 잘 나갔는데, 그 다음 소렉 골짜기에, 성경에 다른 곳 지명 겹치는 곳이 많은데, 딤나도 그렇고 그런데 소렉 골짜기는 들릴라 하나 때문에 딱 나오는 것이다. 유명하지 않은 곳 시시한 곳, 그런데 그곳에 들릴라라고 하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니, 여기에는 앞에서 가사 성의 성문짝을 뽑고 한번 혼을 내놨으니, 소렉 골짜기라는 성문도 없는 이쯤이야. 그 짓을 하다가 삼손 눈 두 개가 뽑혔다.

(내가 대 기업 재벌 회사 다니면서도)
-신앙 지켰는데
-이 정도 구멍가게 쯤이야.
-얕잡아보다가 당하는 것이다.

■결론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오늘 아침, 이 새벽에 우리가 나온 것은 지난 날에 이런 저런 환경 거쳐오며 오늘까지 신앙 생활 해온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경기가 어렵든 잘 풀리든 나는 잘살든 못살든 신앙만은 변함없다 이것은 장점인데, 지난날에 잘 살아온 관성 때문에 그 생각 때문에 다시 한발을 앞에 내디딜 때에 오늘도 똑같지 않겠느냐? 오늘 하루 쉽게 생각하다가 오늘 하루 지뢰 밟으면, 오늘까지 잘 걸어왔는데 오늘 쉽게 결정한 그 결정 때문에, 낭떠러지 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안된다. 만사 뭐든지, 우리의 교회 운영도 공회 운영도 마찬가지이다.

한 가정의 아이들이 요즘 이렇게 좋은데 무럭 무럭 자라는데 별 일 있을라고하기 쉬운데, 오늘 일 생기는 것은 주님만 아신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이었다. 오늘 하룻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기 때문에 새벽예배로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는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고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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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40221 수새

제목 : 하나님께 붙들려 승리의 삼손, 마지막 방심의 덫은 깨어 조심으로 이기지 못함

찬송 : 38장(성령이여 강림하사)

본문 : 사사기 16장 4절 -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에 들릴라라 이름 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겨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른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 일백 을 네게 주리라

삼손은 사사기 13장에서 시작합니다. 삼손의 아버지는 마노아입니다. 마노아 부부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남자 아이를 줄 테니 엄마부터 포도주, 독주를 끊어버리고, 또 부정한 것 다 밀쳐버리고 아예 부정한 것 먹지 말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귀한 종을 준비하라 해서 13장에 사무엘의 아버지 마노아, 엄마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머니 계통으로 이렇게 신앙이 오면 어머니 이름을 적는데, 삼손은 아버지 마노아 이름이 나오고 어머니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부모를 통해 깨끗하게 준비했다가 그다음 태어났습니다. 결혼 전에 아이를 가지기 전에 이 말씀을 알게 된 사람은 그냥 아이를 가진 다음 아이가 귀하니까 이제부터 조심하자 그러지 말고 내게 아이를 줄지 모른다 싶으면 그때부터 준비하는 것이 옳은 겁니다. 그런데 늦어버린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늦어버린 사람은 늦어버려도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되어 집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아이를 갖기 전에 조심하고 가진 것이 사무엘과 한나입니다. 모세는 그 어머니의 신앙을 보니 두 말할 것 없고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므로 언제든지 우리 마음이 돌아서고 준비되면 내 마음이 깨끗해진, 내 마음이 깨끗하게 노력하는 지금부터는 이어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앞선 나 때문에 깨끗하게 출발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는 겁니다.

14장, 삼손이 자란 다음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딤나로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 중에 여자를 가진다고 그러니 아니,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 결혼 아니 되는데, 아니 되는데 부모가 펄쩍 뛰며 반대를 했습니다. 특별하게 준비된 삼손이니까 더욱 그랬는데, 14장 4절에 그 당시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이스라엘 사람은 블레셋에게 지배를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삼손이 여자 핑계를 대고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 부모는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시켜서 시작이 된 일입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이 있어야 먹고 살지, 불신자 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공부 못하고 직장 없다고 세상을 살지 못 하냐, 믿음으로 살면 되지 이게 믿는 사람입니다. 삼손은 둘을 합해 놓은 겁니다. 세상에 기웃거리지 말아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순종하고 살면 된다, 이게 삼손인데 이 삼손에게 하나님께서 날 따라가자 예, 했는데 하나님이 삼손을 붙들고 블레셋의 딤나라는 곳을 데리고 갔습니다.

남이 볼 때는 깨끗한 나실인으로 기대한 삼손이 아니 하나님의 백성도 많은데 왜 이방 결혼을 하려고 그러지? 남들은 이방 결혼으로 봤으나 하나님은 삼손을 결혼 핑계대고 블레셋을 치려고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똑 부러지게 하는 것은 좋으나 살피기는 잘 살펴야 됩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인데도 삼손의 딤나 행은 블레셋을 치려고 약점을 잡고 기회를 틈타는 거지 세상이 좋아 빠져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전부 세상으로 줄줄이 물러나고 베어 들어가면서 말로는 삼손도 딤나로 가지 않았냐, 그런 말하면 큰일 나는 겁니다. 정말로 노력하고 정말로 주의 인도를 따르려 했는데 주님이 딤나로 가자 그러면 딤나도 가야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결혼 아니냐, 구약의 결혼한 남자가 사람이고 사람인 남자가 여자를 가지고 오는 겁니다. 이방 여자도 하나님 믿는 사람이 쥐고 하나님 순종하는 데에 쓰이면 이것도 선물입니다.

이방 결혼을 금지한 이유는 결혼만 해놓으면 남자가 여자를 이겼다 해놓고 뒤로 돌아보면 여자한테 휘둘려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해놓으면 이방 사람이 돼버리니까 그래서 금지한 겁니다. 삼손이 딤나로 내려간 것은 핑계대고 이방 나라 세상으로 물러난 게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은 지배를 받고, 블레셋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던 때에 블레셋 안으로 들어가서 숨통을 끊고 블레셋을 이기려고 들어간 겁니다. 목적이 다르고 가게 된 원인이 다릅니다. “삼손이 딤나로 내려가” 결혼 핑계를 대고 블레셋을 요절을 내버렸습니다. 믿는 사람도 학교를 갔는데 왜 학교를 갔는가 세상을 살려면 학교에서 배워야지, 학교에서 배워야 지성인이 되고 그래야 세상을 살아가지 교인이나 불신자나 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학교 우리의 학습관은 부모한테 태어나 부모를 보고 자라면 되지 뭔 학교까지 가기는 가? 그런데 만약에 학교를 가게 된다면 학교까지 가서 학교를 앎으로 세상을 간파한 다음 신앙으로 살 때 세상을 이용하고 활용하고 내 것으로 써먹지 학교가 동쪽 간다고 학교 갔다 동쪽 가고, 학교가 서쪽 사상 가르친다고 서쪽으로 가고, 학교 분위기가 교사를 이긴다고 집에 와서 부모를 이기려 든다든지 이거 학교 가서 학교에 삼켜버린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학교를 가서도 요즘 세상은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가, 책을 보면 알고 교사의 지도를 보면 알고 그중에 말씀과 옳고 말씀에 이용되는 것은 고맙게 받아가지고, 학교의 학습과 분위기와 가르치는 방향 중에 말씀과 틀리고 자연과 틀린 게 있으면 이거는 독풀이구나, 아주 그냥 틀렸구나, 피해갈 게 있고 믿는 사람은 직장도 사회생활도 학교생활도 이런 겁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 기업에 가야 된다, 틀린 말입니다. 믿는 사람은 기독교 학교에 가야 된다,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학교 가든지 안 믿는 학교 가든지 학교란 세상을 가르치는 곳이니 조심해야 된다, 신앙생활에 필요하면 갈 수 있다, 간 대신에 학교의 사람 되고 학교에게 붙들려 그 학교가 만들어 놓은 제품이 되면 아니 된다. 참 중요하고, 중요하고, 중요한 겁니다. 오늘의 20대 여자는 오늘의 세상의 20대와 같아야 된다, 귀신 소리입니다. 오늘의 20대 여자들은 눈으로 앞을 보고 가니 믿는 사람은 입으로 앞을 보고 가야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세상을 하나님이 만들었고 세상을 만들면서 좋게 만들어 놓은 것은 당연히 좋게 순종해야 되고, 인간이 뒤집어놓은 것은 그렇게 갈 수가 없는 겁니다. 또 자연 환경에 봄여름 가을 겨울이 됐는데 가을이 만들어졌는데 하나님께서 12월부터 겨울을 주면 아이고, 추우니 집에서 실시간으로나 보라는 뜻인가 보다, 겨울을 주신 주님은 추워도 추위를 이기고 피동대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주셨지 추우니 드러 누워버리라 그러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삼손이 14장에 딤나로 갔고 그다음 15장에 또 일을 냈고 그다음 16장에 와서 가사라는 곳에 또 갔고 가사의 문짝을 뽑아들고 세상에게 막힌 것이 아니라 세상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초등학교도 믿음으로 졸업하고 중 고등학교 과정도 신앙으로 통과하고 대학 가면 전부 건방 져서 뭐 사람의 할아버지는 원숭이니 마니 그래쌓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진화론이라는 미신은 아예 그런 것은 하나님이 없으니 그렇게까지 되는구나, 대학을 나오고 나니 신앙이 더욱 지성의 신앙이 되어 앎으로 더 열심히 믿는 사람이 이렇게 되어 지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가사를 갔는데 가사에서 문짝을 뽑아버리고 또 이름을 떨쳤습니다. 오늘 아침에 16장 4절 “이후에“ 라고 딱 시작을 합니다. ”이후에“ 딤나도 이겨버렸고 또 라맛레히라는 곳에서도 블레셋을 전부 짓밟아버렸고, 또 가사라는 곳에 가가지고 약점, 포위된 길목 문짝을 뽑아들고 환경과 인간의 방어를 전부 다 초월해버렸습니다. 승리, 승리, 승리, 승리. 인간은 완전자 아닌데 인간은 불변자가 아닌데 한 번 잘 나가고 두 번 잘 나가고 세 번 잘 나가고 잘 나가고 잘 나가고 잘 나간 이후가 되면 더욱 잘나야 되는데 척 척 척 잘 되고 나면 방심하기 쉽습니다. 방심. 나는 원래 건강하니까. 건강이야 자신이 있으니까. 뭘 먹어도 나는 되니까. 아무리 추워도 자신이 있으니까. 코로나 끝까지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건강만은 건강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너무 잘 나가다 보면 인간인데 한 번은 방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한 번의 방심이 적은 실수면 다행인데 그 한 번의 방심으로 끝나버리면 어떡할 겁니까? 그동안 다 잘해봐야 마지막에 이긴 게 중요한 건데 세상에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최후의 승리자가 승리자라고, 이런 거든 저런 거든 지고 지고 지고 지다가 마지막에 이겨버리고 끝나버리면 승리되는 겁니다. 마지막.

삼손은 출발에서부터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전부 다 이기고 척척 진행했습니다. 그러다가 16장 1절에 “가사에 가서 성 문짝을 뽑아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니” 아예 뭐 저 삼손한테는 매복이 필요가 없고 기습이 필요가 없고 길목이 필요가 없고 더 설라봐야 안 되고 성문 짝으로 막아봐야 아니 되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삼손이 이깟 블레셋쯤이야, 하고 드러 누워버렸습니다. 그냥 좀 즐겨도 되니까 푹 빠져버렸습니다. 내가 이 사업 저 사업 다 신앙으로 잘 하고 내가 가는 곳마다 전부 다 사업을 신앙에 복 되도록 운영했는데 이깟 구멍가게 정도야, 골목에 마트도 여러 개 해봤는데 이깟 붕어빵 리어카 장사 하나쯤이야, 내가 맨손 들고 어디를 가도 차를 팔고 할부품을 팔고 전자제품을 팔아 맨손에서 사업 성공을 했는데 입으로 영업하는 걸 내가 못해? 뭐든지 다 해당되는 겁니다.

가사까지 잘 나갔는데 그다음 “소렉골짜기에” 성경의 지명이 다른 곳에 겹쳐 나오는 곳이 많은데 딤나도 그렇고 여기 가사도 나오고 많이 나오는데 소렉골짜기는 들릴라 때문에 한 번만 딱 나오는 겁니다. 말하자면 유명하지 않은 곳 말하자면 시시한 곳. 그런데 그 속에 들릴라라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니 여기는 그냥 뭐 앞에서 가사 성에 성 문짝을 뽑고 한 번 혼을 내놨으니 소렉골짜기 성문도 없는 소렉골짜기 이쯤이야, 그 짓하다가 삼손 눈 두 개가 빠졌습니다. 이 골짜기에서. 내가 대기업 재벌 회사를 다니면서도 신앙 지켰는데 이 정도 뭐 구멍가게 임시직 하면서야 신앙 지키지 못할까? 얕잡아보다가 당하는 겁니다.

오늘 아침 지난날 돌아보며 오늘 새벽에 예배를 앉아 있는 이 정도면 잘 믿든 못 믿든 지난날에 이런 환경 저런 환경 거쳐 오며 오늘에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경기가 어렵든 잘 풀리든 나는 잘 살던 못 살던 신앙만은 별로 변할 것이 없다, 이건 장점인데 지난날에 잘 살아온 그 관성 때문에 그 생각 때문에 다시 한 발을 앞에 내딛을 때 뭐 오늘도 똑같지 않겠느냐, 오늘 하루를 쉽게 생각하다가 오늘 하루 지뢰 밟아놓으면 오늘까지 잘 걸어왔는데 오늘 쉽게 결정한 그 결정 때문에 낭떠러지 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만사 뭐든지 우리의 교회 운영도 공회운영도 한 가정의 아이들이 뭐 요즘 이렇게 좋은데 무럭무럭 자라는데 별일이 있으려고? 별일이 있으려고? 오늘 일 생기는 것은 주님만 아십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너는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장 1절이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모르기 때문에 새벽 예배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라는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러 온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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