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4.2.20 삿16:3 신앙 실천을 막는 문짝, 배후의 기둥들, 드나들 때 간섭하는 빗장까지 말씀이 초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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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4.2.20 삿16:3 신앙 실천을 막는 문짝, 배후의 기둥들, 드나들 때 간섭하는 빗장까지 말씀이 초월할 것

서기 0 50 02.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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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요약
2. 설교 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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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khr)


본문: 사사기 16장 3절 -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서론

“삼손이”

하나님께 붙들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걸어갈 때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강한 사람 되어지고, 맡긴 자기 백성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구원의 사람이 되어진다. 오늘 우리가 그런 사람 되어, 말씀이 뭐 세상이 이러니저러니 별별 소리해도, 그건 일반적인 통계이고. 오늘도 하나님께 속하여 말씀으로 걸어가면 오늘의 강대한 나라 오늘의 어떤 죄악도 이기고 나아갈 수 있다. 이게 삼손이다.

“가사에 가서”

이름 있는 그 유명한 현실이라도. 대기업 가가지고는 주일을 못 지킨다 그곳이 가사고, 학문의 세계를 하다 보면 어떻게 말씀에 사로잡힐 수가 있겠느냐? 거기서도 이어져야 그게 가사가 되는 것이고. 뭐 인간 볼 때는 어떻게 넘어설까라고 해도 삼손이 가는 길은 다 길이 열린다. 없는 가운데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그 분 따라가는데 되지 않을리야 있겠는가?

“한 기생을 보고”

사람이란 하나님께 속해야 되는데, 이게 사람의 인격이고 몸인데. 타락을 하여 인간이 짐승이 되었고. 하는 행동은 정상적인 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벗어나고 말씀에서 이탈 되면 그 인간의 행동은 짐승 같을 수 밖에 없다. 또 인생 한 번 밖에 없는 귀한 인격을 월급에 내주고 성적에 내주고, 이러고 저러다 보면 이게 몸을 돌리는 이게 몸을 파는 행위가 되어진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무조건 그냥 이 땅 위에 기생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 이후에 지조를 지켰다는)
-사육신이니 그 사람들 연구해 보면
-그 자체가 조선의 왕에게 자기를 팔아버렸으면
-그건 기생이 아닌가?

하나님 한 분의 사람으로만 살아야 되는데, 한 왕에게 자기를 팔아도 기생이고, 두 왕에게 팔아도 기생이고, 학문 하나를 붙들고 평생 변치 않는다 해도 그 학문으로서는 지조 있다 반갑다 하겠지만, 하나님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이 떠나면 전부 이 땅 위의 사상에 자기를 판 기생. 이 땅 위의 기술 개발에 자기를 판 기생, 남원의 춘향이는 이몽룡이한테 자기를 판 기생

(이몽룡이가 남자로 보면)
-춘향이가 나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었으니
-지조가 있다고 그러는데
-하나님을 기준으로 보면
-춘향이는 몸 판 사람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기생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기생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삼손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라”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들어 가다보니, 이런 현실 저런 세상 이런 나라 이런 시대 다 살 수 있다. 산 속에 기도만 해야 속화가 되지 아니하는가? 산 속에 기도만 하고 속화는 더 될 수도 있다. 초대교회 광야로 들어가 물 없는 곳, 사람 없는 곳 목숨 걸고 기도만 하고 말씀 연구만 하다가 죽어간 광야의 수도사들, 기도만 하다 간 분들 그 분들은 속화가 되지 아니하는가? 악령과 세상은 광야 안에도 있다. 그 사람 마음속에 믿기 전에 벌써 다 점령하고 있다.

(인간이 우주 공간으로 나가버리면)
-병은 안 걸리지 않을까?
-인체라는 것은 타락 후
-밖에서 병균이 안 들어가도
-안에서 생긴 병균으로 주저앉을 수 있는 것이다.

(달나라를 가도)
-우주를 가도 사막을 가도
-심해 바다 속으로 도망을 가도
-다른 사람의 병균은 오지 않을 수 있으나
-자기 속에 병균이 한 둘인가?
-수도 없다는데.

삼손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사라고 하는 곳에 갔다.

(신풍 목사는)
-하나님 인도를 따라오다 보니까
-신풍에 왔다.
-또 믿지 않던 시절에
-이러다 저러다 보니까
-여기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신앙을 알게 되는 순간)
-자기 현실은
-바로 가사가 되는 것이다.

■본론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그리고 나면, 주변의 세상 전부는 어떻게 해야 삼손과 하나님 사이를 끊어놓을까? 오늘 내 마음 속에 신앙을 무엇으로 끊고 이탈을 시킬까? 마을 분위기일까? 사회 환경일까? 정치일까? 전쟁일까? 여수반란 사건일까? 이렇게 좋은 때에 여행이 그럴까? 그 어떤 현실에도 자기들끼리 연락하면서 삼손 잡는 현실이 가사이다. 오늘 나의 신앙을 하나님과 끊어놓기 위해 환경은 노리고 있다. 환경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은 죄악 세상이니 당연한 것이고, 내가 그 속에서 나의 신앙을 보존하고 기르는 것이 나 할 일이다. 세상은 세상 일 하고 나는 내 일 하고 세상은 나의 신앙을 반대하고 나는 그 반대를 무릅쓰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배 만드는 사람들)
-그 때 돛단배, 배 역사를 보면
-초기 배들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 가는데
-바람이 불면 바람을 거슬러 가는 배는
-처음에 없었다.

(그러다가 삼각돛대가 나오면서)
-바람이 부는데 바람과 비스듬하게
-돛을 방향을 바꾸면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바람을 안은 돛이 S자로 지그재그로 가면서
-앞으로 가버린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게 막혀)
-배가 어떻게 앞에 나가나?
-고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만 생각을 했는데
-돛을 방향을 바꿔버리니까
-오는 바람을 맞아 배가 앞으로 가더라,
-그리 되는 것이다.

(돛이 이렇게 각도가 45도로 잡히면)
-바람은 앞에서 이렇게 민다. 뒤로 가라고.
-그러면 이렇게 빠져서 앞으로 가는 것이다.
-바람은 배를 뒤로 밀고
-배를 뒤로 미는 바람을 맞아가는 돛의 방향이
-오히려 배를 붙들고 앞으로 나아간다.

(참 생각해 보면 그거는 뻔 한 것인데)
-부모가 일찍 죽어서 나는 어려웠다?
-무슨 소리 부모가 없어 더 유리했지.
-나는 부모가 있어서 불리했다?
-무슨 소리? 부모가 있어 더 유리했지.

(나는 여성이라서 빛을 보지 못했다?)
-무슨 소리? 여성이라서 더 빛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해?
-나는 이런 시대에 남자로 태어나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이런 시대니 남자로 태어나
-제대로 한번 살아볼 만한 것이지.

(시골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전부 도시로 다 빠져나갔는데
-무슨 소리? 다 빠져나가니까 시골은 집값이 싸고
-땅 값이 싸서 신풍이야 빈집이 얼마나 많은데?

남들이 안 된다 할 때 따라서 안 된다 하지 말고 들여다보면 남들이 다 안 된다 그러니 이 기회란 더 기가 막히게 좋게 생기는 것이다.

(세상에 교회가 이리 많으니)
-어떻게 전도가 되느냐?
-교회가 많다 보니까 안 믿고는 못 배기게 되어서
-더 전도가 쉬워졌고,

(문제는 교회를 안 나가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교회 운영이 어렵지 않느냐?
-믿다가 안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니
-이삭은 주워도 한 거석인데 얼마나 좋은가?

“곧 그를 에워싸고”

하나님께 붙들려 순종하는 마음으로 판단을 하고 붙들려 나아가다 보면 좋은 것도 좋고 안 좋은 것도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이러기 때문에 믿을 만하고 이러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 이런 현실이 우리에게 펼쳐진다. 그러나 세상은 전부 다 똘똘 뭉쳐 내가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주변은 말씀으로 벌써 멀어져 버렸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밤새도록. 내 속에서 말씀이 흐려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밤새도록 조용히, 여기에 “종용히” 그랬는데 조용히라는 말이 원래 종용히인데 이응이 빠지면서 조용으로 바뀐 것이다. 종용히 삼손을 노리며 기다리더라. 세상이 종교는 자유다, 신앙 자유다, 기독교 믿을 사람 마음대로 믿어라라고 하면 평안한 때인 줄 아는데, 습격을 하기 위해서 세상이 조용히 매복한 상태이다. 그리고 교계 언론을 보면 아, 이거 정신 차린 언론은 교회는 하나도 없다 할만큼 그렇다.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처럼)
-장로님이 대통령 되고
-자기 교회 장로님들은 장관을 세우고
-기독교 대학을 마구 설립을 해주고,
-주일 시험을 평일로 옮겨버리고 이러면
-신앙의 평안한 때다, 좋은 때다 그러는데

(지금 삼손을 노리는)
-가사 사람들이 원수들이
-삼손의 피곤할 때, 삼손이 방심할 때,
-삼손이 잠들 때 삼손을 잡으려고
-지금 매복한 원수들이 입을 닫고 있는 것이다.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원수의 나라 가사성에 들어갔는데 드러누워 잠을 자도 조용하다. 곪아 떨어져야 죽이러 들어올테니. 어떤 경우도 신앙의 자유일 때란 없는 것이다.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피할 수 없는 곳을 딱 노리고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했더라. 그래서 교회는 그래서 신앙은 환란 없고 조용할 때가 더 위험한 것이다. 똑같은 적이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앞에 보일 때와 그 군인들이 다 사라지고 주변에 민간복을 입고 내 주변 사람과 섞여 있을 때와, 그 어느 때가 더 위험할 것 같은가?

(여수의 도둑들이 천 명이라 치고)
-천 명이 모여 살고
-교복을 입고 다니면
-도둑질하기가 더 낫겠는가?
-우리처럼 이렇게 다 퍼져 있으면
-더 위험하겠는가?

(사기꾼이 자기 명함에 사기꾼이라고)
-이름을 새기고 명함을 돌리는 것이
-사기하는 데 나을 것 같은가?
-사기꾼이 더욱 믿을 만하게 들어오니까 속는 것이지.

아예 세상은 전부가 다 가사이다. 정말로 신앙을 제대로 가져보면 평안이란 없는 것이다. 정말로 공부를 하려고 눈 떠보면 모든 친구는 다 공부를 못하게 하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들이 친구라?)
-타고난 천재들이야
-친구도 사귀고 그 다음에 공부도 1등 하겠지.
-그런데 그 천재가 친구 없이 공부에 매진하면
-발명을 더하고 발견을 더 하겠지.
-그렇지 않는가?

(돈을 벌려고 그래도)
-어디 친구들하고 시시덕거리고
-놀 시간이 있겠는가?
-돈 벌 연구를 하고
-돈을 끌어 다니느라고 정신도 없는데
-고객을 만나지 직원을 만나서 독려를,
-제대로 돈을 벌어보려고 해도
-남 놀 때 다 놀아가면서는 못 하는 것이고
-공부도 그렇고 만사가 다 그런 것이다.

하물며, 타락한 죄악 세상에서 신앙으로 살아보려 한다면 당연히 주변은 다 원수인 줄 알고. 그런데 원수라는 것은 원수라고 표시를 낼 때보다 표시내지 않은 원수가 더 무서운 것이다. 그 원수가 기다리는 곳은 성문이다.

(엄마에게는 아이가 성문일 것)
-소가 아무리 덩치가 크고 사납다 해도
-송아지만 잡고 있으면 도망을 못 간다면서?
-또 벌 망아지 어디를 돌아다녀도
-어미만 붙들고 다니면 이건 따라오지
-벗어나지는 못하지 않는가?
-이런 게 성문이다.

(학자 잡아 없앨 때는)
-학자의 도서관 책만 붙들면
-꼼짝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책이 많아서 그렇지 않지만.

(5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 없고 책이 귀할 때
-자기 전공에 관련되는 책이 저 학교로 가면
-학자는 그리 따라가고

(일반 학교는 그렇지 않은데)
-신학교들은 늘 쪼개지고 분리되는데
-신학교가 서로 싸워서 나뉠 때
-도서관 책을 어느 쪽에서 가져갔느냐
-여기에 따라 신학교들은 신학 교수들은 따라가더라,
-바로 본 것이다.

너의 성문은 무엇이냐? 나의 성문은 무엇이냐? 그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삼손은 밤중까지 있었으나 자지 않고 누워 쉬고 있었다. 누워 쉬고 있으니까 힘은 더 난다. 곯아 떨어지면 칼이 들어오는데, 누웠지만은 잠은 자지 않았다. 깨어. 아무리 밤이 깊어도 삼손이 깨어 있는 이상 밤은 그것 상관이 없는데. 밤새도록 있어도 새벽이 되면, 이제 밤새도록 조심을 해도. 파수꾼이라도 새벽쯤 되면 이게 이제 곯아 떨어지는 것이다.

(6.25 전쟁이 몇 시쯤 났는지?)
-혹시 기억하는가?
-주일날 새벽 4시인가 그럴 것이다.
-3시 반인가 4시.
-저녁 10시, 11시, 12시에는
-밤에 이 놈들이 들어올지 모르니
-눈을 뜨고 기다리는데

(눈을 뜨고 새벽 2시, 3시, 4시까지 가면)
-이제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그것까지 계산하고 치고 들어 왔다.

“그 밤중에 일어나”

삼손이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힘이 세도,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새벽이 되면 곯아 떨어지겠지, 기다리고 있는데 그 밤에 삼손이 일어나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을 뽑아들고 두 기둥 설주를 뽑아들고 빗장을 빼어 어깨에 메고. 그 까짓 쯤이야 어깨에 메고. 산꼭대기로 걸어가더라. 성 문짝이란 들어오려면 통과해야 되는 통과를 막는 게 문짝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문짝을 통과해야 나가지 문짝 닫아놓으면 못 나간다. 성벽은 성벽인데 열리고 닫는 성벽을 문짝이라 그런다. 성문 문짝. 말씀으로 각오한 사람이 세상 현실 속으로 들어갈 때, 가로막는 문짝. 무엇일까? 내가 이 말씀대로 살면 신앙생활은 바로 되겠으나, 이러다가 뭐 가정이나 깨지는 거 아니야? 이게 문짝이겠지. 내가 저 성 속으로 들어가야 되겠는데 성은 문짝이 떡 버티고 있으니 이것을 뚫지를 못한다. 못 뚫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학교 들어가서 졸업하면)
-참 돈벌이가 된다는데)
-입학시험이 그게 문짝이다.
-입학시험. 그 입학시험 문짝은 치면 나가겠는데

(이 문짝을 버텨주는)
-양쪽에 두 기둥이 있다.
-두 기둥은 무엇일가? 입시 제도겠지.

(컨닝하면 안 될까?)
-빗장이 막아 못 열도록
-일체가 되어 있겠지.

제도라는 것이 먼저 배경이 되어 양쪽을 버텨주고, 그 사이에 오고 가는 열리고 닫히는 문짝이 매달려 있고. 열어주고 싶을 때만 열지, 열어주기 싫을 때는 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 빗장이다. 세상의 이런 제도 그 제도에 의하여 앞을 막는 거대한 장벽, 그 장벽을 뚫고 갈 수도 있는데 사장이 결제가 나지 않으니 인가가 나지 않으니 결제가 나지 않으니, 애 타 죽겠는데. 결혼 성사도 그런 것이고 별의별 게 많다.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주께 붙들리면 통째로 뽑아다가 들고 가는 것이다. 세상 초월. 있는 기둥에 있는 문짝을 삐져나가고 이용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뽑아버리는. 공회 주일학교 운영의 방침이 다 이런 것이다. 공회 교회 공회의 교단, 공회의 예배 뭐 거의 전부 삼손적인 것이다. 참 귀한 말씀인데 잘 좀 새기면서.

■결론

“빼어 그것을 모두”

오늘 하루 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저 문짝, 저건 못 넘어가겠는데. 어떻게 그게 움직일 때 기회를 보려니 저 문짝을 뽑아버리려니, 문짝이 달려 있는 두 설주 때문에 또 안 되겠는데. 이게 성벽하고 이어져 있지 기둥이 버텨주지 문짝이 열리기는 열리는데, 또 빗장이 딱 막아 나 신앙만은 막고 있지. 어떻게 해야 될까? 나 주변의 모든 종류의 장애를 들여다보고, 말씀의 순종은 전부를 뽑아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 순종하는 나 걸어가는 길에 얹혀오는 것이고 그것은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거기에 붙들려 신세지는 내가 아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3장에 나면서 앉은뱅이 비유의 말씀이 이것을 다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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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40220 화새

제목 : 신앙 실천을 막는 문짝, 배후의 기둥들, 드나들 때 간섭하는 빗장까지 말씀이 초월할 것

찬송 :12장(예수의 이름 권세여)

본문 : 사사기 16장 3절 -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걸어갈 때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강한 사람 되어지고 맡긴 자기 백성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구원의 사람이 되어 집니다. 오늘 우리가 그런 사람 되어 말씀이 뭐 세상이 이러니저러니 별별 소리해도 그건 일반적인 통계고, 오늘도 하나님께 속하여 말씀으로 걸어가면 오늘의 강대한 나라 오늘의 어떤 죄악도 이기고 나아갈 수 있다. 이게 삼손입니다. “가사에 가서” 이름 있는 그 유명한 현실이라도 대기업 가가지고는 주일을 못 지킨다, 그것이 가사고 학문의 세계를 하다 보면 어떻게 말씀에 사로잡힐 수가 있겠느냐 거기서도 이어져야 그게 가사가 되는 거고, 뭐 인간 볼 때는 어떻게 넘어설까라고 해도 삼손이 가는 길은 다 길이 열립니다. 없는 가운데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그분 따라가는 데 되지 않을 리야 있겠습니까?

“한 기생을 보고” 사람이란 하나님께 속해야 되는데 이게 사람의 인격이고 몸인데 타락을 하여 인간이 짐승이 되었고 하는 행동은 정상적인 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벗어나고 말씀에서 이탈되면 그 인간의 행동은 짐승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인생 한 번밖에 없는 귀한 인격을 월급에 내주고 성적에 내주고 이러고 저러다 보면 이게 몸을 돌리는 이게 파는 행위가 되어 집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무조건 그냥 이 땅 위에 기생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 이후에 지조를 지켰다, 사육신이니 그 사람들 연구해 보면 그 자체가 조선의 왕에게 자기를 팔아버렸으면 기생이 아닙니까? 하나님 한 분의 사람으로만 살아야 되는데, 한 왕에게 자기를 팔아도 기생이고 두 왕에게 팔아도 기생이고 학문 하나를 붙들고 평생 변치 않는다 해도 그 학문으로서는 지조 있다, 반갑다 하겠지만, 하나님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이 떠나면 전부 이 땅 위의 사상에 자기를 판 기생, 이 땅위의 기술 개발에 자기를 판 생, 남원의 춘향이는 이몽룡이한테 자기를 판 기생, 이몽룡이 남자로 보면 나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었으니 지조가 있다 그러는데 하나님을 기준으로 보면 이 사람 몸 파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은 기생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기생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삼손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라”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이런 현실, 저런 세상 이런 나라 이런 시대 다 살 수 있습니다. 산속에 기도만 해야 속화가 되지 아니하는가? 산속에 기도만 하고 소화는 더 될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 광야로 들어가 물 없는 곳, 사람 없는 곳 목숨 걸고 기도만 하고 말씀 연구만 하다가 죽어간 광야의 수도사들, 기도만 하다 간 분들 그분들은 속화가 되지 아니하는가? 악령과 세상은 광야 안에도 있습니다. 그 사람 마음속에 믿기 전에 벌써 다 점령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우주 공간으로 나가버리면 병 걸리지 않을까 인체라는 것은 타락 후 이건 밖에서 병균이 안 들어가도 안에서 생긴 병균으로 주저앉을 수 있는 겁니다. 달나라를 가도 우주를 가도, 사막을 가도, 심해 바다 속으로 도망을 가도 다른 사람의 병균은 오지 않을 수 있으나 자기 속에 병균이 한둘입니까? 수도 없다는데. 삼손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사라고 하는 곳에 갔다. 저는 인도를 따라오다 보니까 신풍에 왔습니다. 또 믿지 않던 시절에 이러다 저러다 보니까 여기는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을 알게 되는 순간 자기 현실은 바로 가사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면 주변의 세상 전부는 어떻게 해야 삼손과 하나님 사이를 끊어놓을까? 오늘 내 마음속에 신앙을 무엇으로 끊고 이탈을 시킬까? 마을 분위기일까? 사회 환경일까? 정치일까? 전쟁일까? 여수반란 사건일까? 이렇게 좋은 때에 여행이 그럴까? 그 어떤 현실에도 자기들끼리 연락하면서 삼손 잡는 현실이 가사입니다. 오늘 나의 신앙을 하나님과 끊어놓기 위해 환경은 노리고 있습니다. 환경이 나쁜 것이 아니라 환경은 죄악 세상이니 당연한 거고, 내가 그 속에서 나의 신앙을 보존하고 기르는 것이 나 할일입니다. 세상은 세상 일 하고 나는 내일 하고 세상은 나의 신앙을 반대하고 나는 그 반대를 무릅쓰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그 배 만든 사람들.

그때 돛단배, 배 역사를 보면 초기 배들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 가는데 바람이 불면 바람을 거슬러 가는 배는 처음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삼각돛대가 나오면서 바람이 부는데 바람과 비스듬하게 돛을 방향을 바꾸면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바람을 안은 돛이 s자로 지그재그로 가면서 앞으로 가버립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게 막혀 배가 어떻게 앞에 나가나? 고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만 생각을 했는데 돛을 방향을 바꿔버리니까 오는 바람을 맞아 해가 앞으로 가더라, 그리 되는 겁니다. 돛이 이렇게 각도가 45도로 잡히면 바람은 앞에서 이렇게 밀지요? 뒤로 가라고. 그러면 이렇게 빠져서 앞으로 가는 겁니다. 바람은 배를 뒤로 밀고 배를 뒤로 미는 바람을 맞아가는 돛의 방향이 오히려 배를 붙들고 앞으로 나아간다.

참 생각해 보면 그거는 뻔 한 건데 부모가 일찍 죽어서 나는 어려웠다, 뭔 소리? 부모가 없어 더 유리했지. 나는 부모가 있어서 불리했다, 뭔 소리? 부모가 있어 더 유리했지. 나는 여성이라서 빛을 보지 못했다, 뭔 소리? 여성이라서 더 빛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해? 난 이런 시대에 남자로 태어나 뭔 희망이 있겠느냐? 이런 시대니 남자로 태어나 제대로 한번 살아볼 만한 거지. 시골에 뭔 희망이 있겠는가? 전부 도시로 다 빠져나갔는데 다 빠져나가니까 시골은 집값이 싸고 땅값이 사서 서울에 집 한 채 있으면 다 부자라 그러지 않습니까? 신풍이야 빈집이 얼마나 많은데? 남들이 안 된다 할 때 따라서 안 된다 하지 말고 들여다보면 남들이 다 안 된다 그러니 이 기회란 더 기가 막히게 좋게 생기는 겁니다. 세상에 교회가 이리 많으니 어떻게 전도가 되느냐? 교회가 많다 보니까 안 믿고는 못 배기게 되어서 더 전도가 쉬워졌고, 문제는 교회를 안 나가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교회 운영이 어렵지 않느냐? 믿다가 안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니 이삭은 주워도 한 거석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 붙들려 순종하는 마음으로 판단을 하고 붙들려 나아가다 보면 좋은 것도 좋고 안 좋은 것도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이러기 때문에 믿을 만하고 이러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 이런 현실이 우리에게 펼쳐집니다. 그러나 세상은 전부 다 똘똘 뭉쳐 내가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주변은 말씀으로 벌써 멀어져 버렸고, 밤새도록. 내 속에서 말씀이 흐려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밤새도록 조용히, 여기에 “종용히” 그랬는데 조용히 라는 말이 원래 종용히인데 이응이 빠지면서 조용히 바뀐 겁니다. “종용히 삼손을 노리며 기다리더라” 세상이 종교는 자유다, 신앙 자유다, 기독교 믿을 사람 마음대로 믿어라라고 하면 평안한 때인 줄 아는데, 습격을 하기 위해서 세상이 조용히 매복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교계 언론을 보면 아, 이거 정신 차린 언론은 교회는 하나도 없다 할만큼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처럼 장로님이 대통령 되고 자기 교회 장로님들은 장관을 세우고 기독교 대학을 마구 설립을 해주고, 주일 시험을 평일로 옮겨버리고 이러면 신앙의 평안한 때다, 좋은 때다 그러는데 지금 삼손을 노리는 가사 사람들이 원수들이 삼손의 피곤할 때, 삼손이 방심할 때, 삼손이 잠들 때 삼손을 잡으려고 지금 매복한 원수들이 입을 닫고 있는 겁니다. 원수의 나라 가사성에 들어갔는데 드러누워 잠을 자도 조용합니다. 떨어져야 죽이러 들어올 텐데 어떤 경우도 신앙의 자유일 때는 없는 겁니다. “밤새도록” 성문 길목 피할 수 없는 곳을 딱 노리고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했더라” 그래서 교회는, 그래서 신앙은 환란 없고 조용할 때 더 위험한 겁니다. 똑같은 적이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앞에 보일 때와 그 군인들이 다 사라지고 주변에 민간복을 입고 내 주변 사람과 섞여 있을 때와 그 어느 때가 더 위험할 것 같습니까? 여수의 직업 도둑 천명이라 치고 천 명이 모여 살고 교복을 입고 다니면 도둑질하기가 더 낫겠습니까? 우리처럼 이렇게 다 퍼져 있으면 더 위험하겠습니까? 사기꾼이 자기 명함에 사기꾼이라고 여겨 이름을 새기고 명함을 돌리는 것이 사기하는 데 나을 것 같습니까? 사기꾼은 더욱 믿을 만하게 들어오니까 속는 거지. 아예 세상은 전부가 다 가사입니다.

정말로 신앙을 제대로 가져보면 평안이란 없는 겁니다. 정말로 공부를 하려고 눈 떠보면 모든 친구는 다 공부를 못하게 하는 친구가 되는 겁니다. 공부하는 것들이 친구라? 타고난 천재들이야 친구도 사귀고 그다음에 공부도 1등 하겠지. 그런데 그 천재가 친구 없이 공부에 매진하면 발명을 더하고 발견을 더 하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돈을 벌려고 그래도 어디 친구들하고 시시덕거리고 놀 시간이 있습니까? 돈 벌 연구를 하고 돈을 끌어 다니느라고 정신도 없는데 고객을 만나지 직원을 만나서 독려를, 제대로 돈을 벌어보려고 해도 남 놀 때 다 놀아가면서는 못 하는 거고 공부도 그렇고 만사가 다 그런 겁니다.

하물며 타락한 죄악 세상에서 신앙으로 살아보려고 한다면 당연히 주변은 다 원수인 줄 알고. 그런데 원수라는 것은 원수라고 표시를 낼 때보다 표시 내지 않은 원수가 더 무서운 겁니다. 그때 원수가 기다리는 곳은 성문입니다. 엄마에게는 아이가 성문될걸요? 소가 아무리 덩치가 크고 사납다 해도 송아지만 잡고 있으면 도망을 못 간다면서? 또 벌 망아지 어디를 돌아다녀도 어미만 붙들고 다니면 이건 따라오지 벗어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이런 게 성문입니다. 학자 잡아 없앨 때는 학자의 도서관 책만 붙들면 꼼짝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책이 많아서 그렇지 않지만 5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 없고 책이 귀할 때 자기 전공에 관련되는 책이 저 학교로 가면 학자는 그리 따라가고 일반 학교는 그렇지 않은데, 신학교들은 늘 쪼개지고 분리되는데 신학교가 서로 싸워서 나뉠 때 도서관 책을 어느 쪽에서 가져갔느냐 여기에 따라 신학교들은 신학 교수들은 따라가더라, 그 바로 본 겁니다.

너의 성문은 뭐냐? 나의 성문은 뭐냐? 그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삼손은 밤중까지 있었으나 자지 않고 누워 쉬고 있었습니다. 누워 쉬고 있으니까 힘은 더 나지요, 곯아떨어지면 칼이 들어오는데 누웠지만은 잠은 자지 않았습니다. 깨어 아무리 밤이 깊어도 삼손이 깨어 있는 이상 밤은 그거 상관이 없는데 밤새도록 있는데 새벽이 되거든 새벽이 되면 이제 밤새도록 조심을 해도 파수꾼도 밤새도록 깨어 있다가 새벽쯤 되면 이게 이제 곯아 떨어지는 겁니다. 6.25 전쟁이 몇 시쯤 났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주일날 새벽 4시인가 그럴 겁니다. 3시 반인가 4시, 저녁 10시 11시 12시는 밤에 이놈들이 들어올지 모르니 눈을 뜨고 기다리는데 눈을 뜨고 새벽 2시 3시 4시까지 가면 이제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는 겁니다. 그것까지 계산하고 치고 들어(왔지요) 삼손이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힘이 세도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새벽이 되면 곯아떨어지겠지, 기다리고 있는데 그 밤에 삼손이 일어나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을 뽑아들고 두 기둥 설주를 뽑아들고 빗장을 빼어 어깨에 메고” 그 까짓 쯤이야 “어깨에 메고 산꼭대기로 걸어가더라” 성 문짝이란 들어오려면 통과해야 되는 통과를 막는 게 문짝입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문짝을 통과해야 나가지 문짝 닫아놓으면 못 나갑니다. 성벽은 성벽인데 열리고 닫는 성벽을 문짝이라 그럽니다. 성문 문짝.

말씀으로 각오한 사람이 세상 현실 속으로 들어갈 때 가로막는 문짝 뭘까요? 내가 이 말씀대로 살면 신앙생활은 바로 되겠으나 이러다가 뭐 가정이나 깨지는 거 아니야? 이게 문짝이겠지. 내가 저 성 속으로 들어가야 되겠는데 성은 문짝이 떡 버티고 있으니 이걸 뚫지를 못합니다. 못 뚫게 만들어놓은 겁니다. 학교 들어가서 졸업하면 참 돈벌이가 된다는데 입학시험이 우리의 문짝입니다. 입학시험. 그 입학시험 문짝은 치면 나가겠는데 이 문짝을 버텨주는 양쪽에 두 기둥이 있습니다. 두 기둥은 뭘까요? 입시 제도겠지. 커닝하면 안 될까요? 빗장이 막아 못 열도록 일체가 되어 있겠지. 제도라는 것이 먼저 배경이 되어 양쪽을 받혀주고 그 사이에 오고 가는 열리고 닫히는 문짝이 매달려 있고 열어주고 싶을 때만 열지 열기 싫을 때는 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 빗장입니다. 세상의 이런 제도 그 제도에 의하여 앞을 막는 거대한 장벽, 그 장벽을 뚫고 갈 수도 있는데 사장이 결재가 나지 않으니 인가가 나지 않으니 결제가 나지 않으니 애 타 죽겠는데 결혼 성사도 그런 거고 별의별 게 많습니다. 주께 붙들리면 통째로 뽑아다가 들고 가는 겁니다. 세상 초월. 있는 기둥에 있는 문짝을 삐져나가고 이용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뽑아버리는, 공회 주일학교 운영의 방침이 다 이런 겁니다. 공회 교회 공회의 교단, 공회의 예배 거의 전부 삼손적인 참 귀한 말씀인데 잘 좀 새기면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저 문짝 저건 못 넘어가겠는데 어떻게 그게 움직일 때 기회를 보려니 저 문짝을 뽑아버리려니 문짝이 달려 있는 두 설주 때문에 또 안 되겠는데 이게 성벽하고 이어져 있지 기둥이 버텨주지 문짝이 열리기는 열리는데 또 빗장이 딱 막아 나 신앙만은 막고 있지 어떻게 해야 될까, 나 주변의 모든 종류의 장애를 들여다보고 말씀의 순종은 전부를 뽑아버리는 거다, 그리고 말씀 순종하는 나 걸어가는 길에 얹혀오는 거고 그거는 따라오는 거지 내가 거기에 붙들려 신세지는 내가 아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3장에 나면서 앉은뱅이 비유가 이걸 다 말씀이 이걸 다 해석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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