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4.2.12 벧전4:7 만물의 마지막 갈림길, 모든 절제로 분산된 마음 모아 주님 향한 말 행동의 기도로 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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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4.2.12 벧전4:7 만물의 마지막 갈림길, 모든 절제로 분산된 마음 모아 주님 향한 말 행동의 기도로 귀하게

관리1 0 64 02.1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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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요약
2. 설교 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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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khr)

240212 월새

벧전4:7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서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천하 만물 만인간 만인 존재,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존재들이 나의 현실에 모여져 있고, 그리고 이 현실에서 모든 것이 나와 관련된 것이 절정이 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한번의 기회로 지나가고 있으니, 늘 준비할 수 있는 가까운 최종의 기회가 주어지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불신자에게는 모든 세상은 늘 꼭 같은 세상이다. 우리와 비슷해보이나 그들에게는 지옥만을 만드는 오늘이고, 우리에게는 천국을 만들어가는 모든 현실은 같아 보여도 다른 세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어제와 같은 이곳, 모든 것이 꼭 같은데 달력의 날짜만 하루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느낌이다. 그런데 어제 주신 세상과 오늘 주신 세상은 전혀 다르다. 말로 표현해서 다른 것이 아니고 정말로 다르다. 어제의 태양, 어제의 온 세상은 하나님이 어제 따로 만들어서 또 주셨다. 그게 그것인데, 그게 그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보존 관리의 역사가 있다. 그것을 섭리라고 한다. 보통 구원의 순서를 서정이라고 그렇게 단어를 쓴다. 한번 기억할 것, 구원 서정. 그냥 순서라고 하면 될 것을 또 특별한 단어를 한번 쓰면 유식해보이지 않는가?

(교회 목회자 초청하면 청빙이라고 한다)
-청빙, 안 쓰는 문자를 떡 쓰면 사람을 누를 수 있거든
-참 그렇다.
-또 연보도 교회에서 쓴다.
-한번 썼으면 우리는 붙들고 쓰고 있다.
-만든 사람들은 연보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는다.
-헌금이라고 그러던가.

(그대로 써도 좋은 것은 바꾸고)
-굳이 하나 더 만들어서 아는 척 하는 것도 그렇고
-구원 서정, 우리 빼고는
-전부 입에 익어 있는 신학 신앙 상식이다.

구원 서정,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목적을 정하셨고, 그 목적 따라 순서를 정하셨으니, 그 순서를 예정이라 하고, 예정에 따라서 세상을 없는 가운데에서 만드신 것이 창조이고, 만들어놓은 세상을 그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보존이고 보존을 위하여 닦고 씻고 굴리고 씻고 운영을 보존 섭리라고 한다. 오늘 하루 또 시작되는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다.

(태양은 그 태양인데)
-오늘의 그 태양이 되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능력으로 붙들어주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엉망이 된다.

자동차야 안 쓰면 천년 만년도 주차장에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주 만물은 한분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으로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늘 관리하고 운영하지 않으면 자동화 걸어서 자동 되는 세상이 아니다. 왜 이 교리가 필요한가? 아담은 천지 창조 첫날을 본 것만 특별하지. 없는 가운데 천지 창조 하시고 아담이 받은 것처럼, 이 아침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어제와 꼭 같이 생겼는데, 또 오늘에 해당되는 세상을 보존해주셔서 또 감사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전선이 있는 가정은)
-스위치를 켜면 어제 그 전등에 어제처럼 또 불이 들어온다.
-그런데 전등 안의 전류는 어제 전류 그대로 남아 있나?
-늘 발전소에서 이 순간의 전기는 이 순간에 들어오고
-이것을 가지고 천년 만년 쓰고 그러지 않는다.
-늘 새로 들어온다.

(발전소에서 전기 끊어버리면)
-등 있으나 마나 불은 꺼진다.
-발전소 전기가 쉬지 않고 궁급되고 있어서
-이 순간도 다음 순간도 꼭같은 것 같은데
-안에서는 계속 공급이 바뀌고 있다.

(태양의 빛도)
-어제의 빛과 오늘의 지구를 향하여 비추는 빛은
-전혀 다르다.
-빛도 그러하고 태양이라는 존재 자체는
-그게 그런게 아니냐?

하나님의 보존 관리의 역사 없으면 만물은 순간적으로 없어진다. 교리가 필요한 것은 나 하나를 위하여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오늘까지 보존하시니 주님이 오늘 하루 나의 신앙에 필요하도록 역사 이후에 보존 관리한 세상 통째로 오늘 또 주시고 우리는 받는 것이다.

(이게 돈으로 계산한다면)
-천만원짜리 인가?
-10억 100억으로 끝날 일인가
-이 만들어놓은 것이 오늘도 나를 조명하고 있는데

(혹시 연극장의 연극을 직접 보셨는지?)
-온 극장 안을 다 불을 꺼버리고
-영화는 스크린에 비추지만
-연극 무대는 사람이 떡 서면 온갑 불이 하나만 비춘다.
-무대 전체에 나 하나만 딱
-나 움직이는데에 따라 이 조명이 따라간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 대한 불빛은 좀 흐리고
-이 쪽만 집중한다.
-이런 사람을 주인공이라고 한다. 주인공

매 현실에 나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만물이 다 조명하는 중앙의 중심의 나이다.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른 세상 주시고 다른 주인공으로 배정해놓으셨다. 이게 하나가 되어서 이 세상이 운영되고 움직이고 있으니 참 굉장한 것이다.

10명이 있으면 10차원이고, 백만명이 그리 살면 백만 차원이 겹쳐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2등 교인도 아니고 10등 교인도 아니고 천하 10억 믿느 사람 중에서 백등만 해도 굉장할 것인데 100등 교인도 아니고 나는 항상 1등이다. 문제는 내가 행동을 뭐 같이 해서 그렇지.

(왕궁 세자는)
-왕 밑에 왕이 될 한 명인데
-그렇다면 오천만면 중에 행동이나 만사가 1등이면 좋겠는데
-세자는 세자인데 행동 개차반이 되면
-그 인간도 나라도 불행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인간 때문에 불행한 세상을 사는 것이다.

(왕의 세제가 화가 난다고)
-화가 싶다고 화 낼 수 없는 자리이다
-그에게 얹혀 있는 것이 온 나라라.
-왕자는 왕자답게 그 중에 세자는 세자답게

(아예 왕이 되었다면)
-이것은 뭐 놀고 싶다고 놀고
-화 내고 싶다고 화내고
-그러지를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 짓하고 있으면 나라 망조이다.

■본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오늘 하루의 우리는 자기 현실 자기의 별 세상에 날 위하여 하나님이 다 만드시고 책정하시고 끌어 놓으셨으니 무거운 책임감으로 위로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기대하시고 천군 천사 날 위해서 대기되고 준비되고 총동원 되니, 만물은 이런 것을 안다. 그러나 만물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지켜보게 되어 있다. 애 터지게 쳐다본다.

그 다음에 귀신은 이 판을 흔들지 않으면 큰일난다. 마음 속에 유혹을 주든 어떻게 해야 저것을 뒤 흔드느냐고 생 난리를 하고 있다. 천하의 귀신 악령 전부가 총 동원해서 주변을 흔들어야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인가. 내 속에 어떤 마음을 넣어야 이게 흔들어지는가? 사탄이 귀신의 두목이 되어 그 수하를 총동원해서 생 발광을 하고 앉았다.

신풍 10대의
-깨끗하게 결혼을 준비해야 할
-아가씨 마음 속에
-요즘 친구들은 이렇게 저렇게 막 엉망 넣어서
-그 마음이 흔들리고 헷갈리도록
-밖으로도 엉망 만들고 마음으로는 넣어서
-나도 그래볼까? 호기심도 주고
-생 난리가 나는 가운데

중요한 것은 오늘도 이 순간도 주의 인도 따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나이야 비슷하니까 친구이지, 어디 택자와 불택자가 친구가 될까?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어떻게 같이 어울릴까? 가나안 먼저 주시며 일곱 부족 하나도 남기지 말아라. 구약은 다 죽여야 되고 신약은 있으나 상관이 없어야 되고 그런 말이다. 중요한 신앙 결정에 나의 신앙에 내 현실에 나를 둘러 싸고 있는 모든 불신의 인격과 언행은, 나의 신앙의 결정과 행동에 이것은 영향을 미치지 못해야 가나안 일곱 부족을 없애고 하나님의 백성만 사는 가나안을 만드는 그런 일이다. 이런 일을 시켜서 연습되어질 만큼 천국을 열어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천국은 오늘 이 땅 위에서 전부는 아니나 일부 미리 맛보게 하신다.

(옛날에는 맛배기라고 했고)
-요즘은 시식이라고 하나?
-마트에 가면 햄을 팔면서 조금 떼어서 이런 맛이다.
-만두를 썰어서 만두가 이런 맛이다.
-이런 맛이 이런 맛이구나. 조금 먹어도 그다음 큰 것을 산다.

이 땅 위에 맛본 감사, 이 땅위에 느낀 기쁨, 이 땅위에 느낀 모든 것을 그대로 천국에 풀어놓고 방해하는 악령 죄가 없고 흑암이 없어서 그러하지, 이 땅위에 맛보지 못하고 평화 감사 영광, 천국에서 없는 것을 새로 만들지는 못한다. 이 땅 위에 있던 것을 가지고, 그 만큼만 시작을 하고 그 다음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 땅 위에 연보 경제 생활 0점한 사람이)
-천국가서 뭐 저에게 재료를 주시면
-영계 만물을 나눠주고 제가 잘 쓰겠습니다?
-너는 이 땅위에 해먹고
-남을 위해서 너의 것을 쓴 기회가 하나도 없으므로
-하늘나라에서도 그런 기회 못 준다. 안 주신다.

오늘 하루의 주의 뜻으로 사는데 마음껏 노력하고, 그 정도를 따라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뜻대로 마음껏 살 수 있는 비율이 정해지고, 오늘 기회에 오늘 내가 순종하며 겪고 가져야 되는 갖추는 그 실력, 그 요소, 그게 바로 하늘에 가서 열린다.

(이 땅 위에 설비 업자로 평생 산사람)
-말하자면 하늘나라 모든 설비를 영원토록 맡을 수 있는 이런 기회
-말하자면 그렇다
-이 땅 위에 모든 종류의 상하수도 설비로
-그 생활을 편리하게 좋게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기술은 있으나 게을러 더러워서)
-안한다고 방구석에 누워서 잠만 잔 사람. 신앙 면으로
-하늘나라 하나님의 은혜의 강수가 흐를 때에
-네가 가서 고쳐주거라. 고장은 없는 곳이나 도와주라 할 때에
-이 땅위에서 준비하지 않고 돕지 않은 사람에게는 맡기지 아니한다
-너는 네 몸이라고 네 시간이라고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지 않고
-너의 눈길, 너의 마음 나누지 아니했으니,
-하늘나라에서 너의 눈길 너의 손길 너의 마음
-시간을 함께 할 존재는 하나도 없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거라.
-그 날이 오늘을 지켜보고 있다. 연결이 되어 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모든 현실은 만물과 만 존재가 초점이 되고 그 가누데 정신을 차리고. 분산된 마음 흩어진 마음, 주의 인도에 모아. 이게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근신하여”

그리고 내 속에 모든 것 절제하여 하나 하고 싶은데 주님이 이것은 다섯이나 하도록 기회 주시면 늘리고, 내 마음은 다섯을 하고 싶으나, 하나로 줄이라고 하면 줄이는 것이고. 근신이다.

“기도하라”

그리고 기도하라. 주님이 왜 이런 현실을 주시는지 주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이고, 주의 뜻을 찾았으면 그대로 순종하는 행위가 그게 바로 기도가 되어진다.

(돈 없을 때 학교는 다녀야 되겠는데)
-등록금 주지 않을 때에
-이번달 등록금 받았고 그 다음 한 달을
-그 돈 가지고 열심히 공부할 때에
-지켜보는 부모가, 저놈은 돈을 가지고 돈 값 하는구나
-돈 값보다 훨씬 잘하는구나.
-먼저 받은 돈으로 공부를 넘치게 할 때에
-그 다음 등록금을 달라고 하는 행동이 된다.

(이번 달 등록금 받아서)
-빵집 다니고 못된 짓 다하고
-입으로 달라는 것이 기도는 기도인데
-한 달의 행동을 보니, 줘도 안되겠다. 기도가 아니다.
-말로 달라고 말 기도
-주의 뜻대로 열심히 사는 그 행동, 행동이 기도이다.
-행동을 보니 또 주신다.

이어지는 순종 이어지는 계속의 행동이, 이게 정말 효력이 있는 기도이다. 이 아침도 새벽기도로 시작하니 건강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어제 준 건강 지난날의 건강으로 신앙에 알차게 나누어 조심스럽게 저렇게 복되게 쓰니, 지난날의 행동의 계속이 더 달라고 하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저것은 건강하면 죄를 저지르니, 말로는 오늘도 건강을 주옵소서 그러는데 지난날의 행동과 오늘의 행동이 저에게 건강 주면 죄만 짓고 불행하게 만드는 그 행동이 제 건강 빼앗아 가달라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의 말만 들으실까? 말 속에 행동을 지켜보실까? 말로도 기도하시고, 행동으로 더 무겁게 귀한 기도하시고, 아예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딱 들어앉아버리면 아브라함을 쳐다만 봐도 소돔을 치려다가도 참는다. 소돔을 치려다가 또 참는다. 그런데 롯과 소돔의 자라가고 채워가는 그릇을 보니, 아브라함 봐서는 기회 줘야 되겠는데 이들 보고는 안되겠는 마지막 시점에 주님이 오셔서 정리한다고 미리 알리셨다. 주님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아브라함에게는 먼저 찾아가서 통보하셨다. 이것은 수준이, 말하자면 하나님과 일대일이 된 듯 하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내 친구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친구라니? 하나님이 인격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점점 자라간 것이다.

■결론

우리는 세상적으로 좀 그러하나,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스스로 좀 귀하게 만들어서 그래도 못났지만은 내가 하나님을 상대해야 되는 나인데, 하나님이 나를 상대할 때에 그 마음이 특별하도록 내가 그리 되어야 되는데 그러고 자기를 잘 돌아보시면 우리는 보통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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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40212 월새

제목 : 만물의 마지막 갈림길, 모든 절제로 분산된 마음 모아 주님 향한 말과 행동의 기도로 귀하고 아름답게

찬송 : 91장(환란과 핍박중에도)

본문 : 베드로전서 4장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천하 만물 만 인간 만 존재,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존재들이 나의 현실에 모여져 있고, 그리고 이 현실에서 모든 것이 나와 관련된 것이 결정이 되어 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 번의 기회로 지나가고 있으니 늘 준비할 수 있는 가까운 최종의 기회가 주어지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그러므로 너희는” 불신자에게는 모든 세상은 늘 꼭 같은 세상입니다. 우리와 비슷해 보이나 그들에게는 지옥만을 만드는 오늘이고, 우리에게는 천국을 만들어 가는, 모든 현실은 같아 보여도 다른 세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이곳 모든 것이 꼭 같은데 달력의 날짜만 하루 바뀌었다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느낌입니다. 그런데 어제 주신 세상과 오늘 주시는 세상은 전연히 다릅니다. 말로 표현해서 다른 것이 아니고 정말로 다릅니다.

어제의 태양, 어제의 온 세상은 하나님이 어제 따로 만들어 또 주셨습니다. 그게 그건데 그게 그겁니다. 하나님의 역사 중에 ‘보존 관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걸 섭리라고 그럽니다. 보통 구원의 순서를 그냥 ‘서정’이라 그렇게 단어를 쓰십니다. 한번 기억해 놓으시죠. 구원 서정(구원 서정) 그냥 순서 걸면 될 건데 또 특별한 단어를 한 번 쓰면 유식해 보이지 않습니까? 참 말릴 수도 없고 지나간 일이라 교회 목회자를 초청하면 청빙이라 그럽니다. 딱 교회에서만 쓰는 겁니다. 청빙. 안 쓰는 문자를 떡 쓰면 사람을 누를 수 있거든요. 참 그렇습니다. 또 연보도 교회에서만 씁니다. 한 번 썼으면 우리는 붙들고 쓰고 있습니다. 만든 사람들은 연보라는 단어는 요즘 쓰지도 안 합니다. 헌금이라 그러던가, 그대로 써도 좋은 거는 바꿔 쌓고 또 굳이 만들 것도 없는데 하나 더 만들어 가지고 아는 척하는 것도 좀 그렇고 구원 서정, 우리 빼고는 전부 다 이게 입에 익어 있는 신앙 신앙의 상식입니다. 구원. 서정.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목적을 정하셨고 그 목적을 따라 순서를 정하셨으니 그 순서를 예정이라 그러고 예정에 따라 세상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게 창조고 창조, 만들어놓은 세상을 그게 이어지도록 하는 게 보존이고 보존을 위하여 닦고 씻고 돌리고 조이고 운영하는 걸 보존 운영을 합해서 섭리라고 그럽니다. 섭리. 오늘이 또 하루 시작되는 것도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태양은 그 태양인데 오늘의 태양이 되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운영하시고 능력으로 붙들어주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다 엉망이 되고 없어집니다. 인간이 차를 만들어 놨으면 차야 뭐 안 쓰면 주차장에 잘 있겠지, 천년만년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주 만물은 한 분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으로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늘 관리하고 운영하지 않으면 자동을 걸어 놔가지고 저절로 돌아가는 세상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이 교리가 필요한가, 아담은 천지창조의 첫날을 본 것만 특별하지 없는 가운데 천지창조를 하시고 아담이 받은 것처럼 이 아침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어제와 똑같이 생겼는데 또 오늘에 해당되는 온 세상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존해 주셔서 또 감사하게 쓰고 있는 겁니다. 전선이 있는 가정은 스위치를 키면 이렇게 어제 그전 등에 어제처럼 또 불 켜면 또 불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전등 안에 전류는 어제 전류 그대로 남아 있습니까? 늘 발전소에서 이 순간의 전기는 이 순간에 들어오고 이거 가지고 천년만년 쓰고 그러지 않습니다. 늘 새로 들어옵니다. 발전소 전기 끊어버리면 등이 있으나 마나 등은 없어집니다. 발전소의 전기가 쉬지 않고 공급이 되고 있어 이 순간도 다음 순간도 똑같은 그거 같은데 안에서는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계속 공급이 태양도 태양의 어제의 빛과 또 오늘 지구를 향해 들어오는 이 빛 전혀 다른 빛입니다.
빛도 그러하고 태양이란 존재 자체는 그게 그거 아니냐 하나님의 보존 관리에 역사 없으면 그거 순간적으로 없어집니다.

교리가 필요한 것은 나 하나를 위하여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오늘까지 보존하신 주님이 오늘 하루에 나의 신앙이 필요하도록 역사 이후에 보존 관리한 세상 통째로 오늘 또 주시고 우리는 받는 겁니다. 이게 돈으로 계산한다면 천만 원짜리입니까? 십억, 백억으로 끝날 일입니까? 그리고 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이 날 조명하고 있는데, 혹시 연극하는 극장에 연극하는 거 직접 봐 보셨습니까? 온 극장 안을 다 불을 꺼버리고 영화는 그냥 스크린에 이렇게 비치지요. 연극은 연극하는 무대에 사람이 떡 서면 온갖 불이 하나만 비춥니다. 무대 전체도 안 비추고 무대 전체 위에 나 하나만 딱 비췹니다. 나 움직이는 데 따라 이 조명이 따라갑니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 대한 불빛은 좀 흐리고 이쪽만 집중을 합니다. 이런 사람을 주인공이라 그럽니다. 주인공. 내 현실에 나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만물을 다 조명하는 중앙의 중심에 나입니다.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딴 세상을 주시고 딴 주인공으로 다 배정해 놓으셨습니다. 이게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이 운영되고 움직이고 있으니 참 굉장한 거지요.

열 명이 있으면 10 차원이고 100 명이 그리 살고 있으면 100만 차원이 겹쳐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2등 교인도 아니고 10등 교인도 아니고 천하 10억 믿는 사람 중에 100등만 해도 굉장할 건데 100등 교인도 아니고 나는 항상 일등 교인입니다. 내가 행동을 뭐 같이 해서 그렇지 왕궁의 세자는 왕 밑에 왕이 될 한 명인데 그렇다면 5천만 명 중에 행동이나 만사가 일등이면 좋겠는데 세자는 세자인데 이게 행동이 개차반이 돼 놓으면 그 인간도 불행해지고 나라도 불행해지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인간 때문에 불행한 세상을 사는 겁니다. 왕의 세자는 화난다고 화내고 하고 싶다고 하고 그러지를 못하는 자리입니다. 얹혀 있는 게 온 나라니 왕자는 왕자답게 그중에서도 세자는 세자답게 아예 왕이 되었으면 이거는 뭐 놀고 싶다고 놀고 화난다고 화내고 그러지를 않아야 됩니다. 안 해야 되는데 그짓하면 그건 나라 망조입니다.

오늘 하루의 우리는 자기 현실, 자기의 별 세상에 날 위하여 하나님이 다 만드시고 집중하시고 다 긁어놓았으니 무거운 책임감으로 위로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기대하시고 천군 천사 날 위해서 대기되고 준비되고 총동원되어 있고 만물은 이런 것을 압니다. 그러나 만물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지켜보게 해놨습니다. 애 터지게 쳐다봅니다. 그다음에 귀신은 이 판을 흔들지 않고는 큰일 납니다. 마음속에 유혹을 주든 뭐 어떻게 해야 저걸 뒤흔드느냐고 생난리를 하고 있습니다. 천하의 귀신 악령 전부가 총동원해서 주변을 흔들어야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하는 건가, 내 속에 어떤 마음을 넣어야 이게 흔들어지는가, 사탄이 귀신의 두목이 되어 그 수하를 총동원해서 발광을 하고 앉았습니다.

신풍의 10대에 깨끗하게 결혼 준비해야 될 아가씨들 마음속에 요즘 친구들은 이렇게 저렇게 막 엉망을 만들어 가지고 그 마음이 흔들리도록 그 마음이 헷갈리도록 밖으로도 엉망을 만들고 또 안에는 마음을 줘서 나도 그래볼까? 호기심도 주고 총 난리가 난 가운데 중요한 것은 오늘도 이 순간도 주의 인도 따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내가 뭔 나이야 비슷하니까 친구지 어디 택자와 불택자가 친구 됩니까?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어떻게 같이 어울립니까? 가나안을 주시며 가나안에 먼저 있는 일곱 부족 하나도 남기지 말라, 구약은 다 죽여야 되고, 신약은 있으나 상관이 없어야 되고 라는 말입니다. 안 중에, 결정에, 나의 신앙에 내 현실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불신의 인격과 불신의 언행은 나의 신앙의 결정과 행동에 이건 영향을 미치지 못해야 가나안 일곱 부족을 없애고 하나님의 백성만 사는 가나안을 만드는 그런 일입니다. 이 연습을 시켜 이 연습되어진 만큼 천국을 열어주실 겁니다. 그 천국은 오늘 이 땅 위에서 전부는 아니나 일부 미리 맛본 그런 걸 옛날에는 맛배기라 그랬고, 요즘은 시식이라 그럽니까? 마트에 가면 햄을 팔며 조금 떼서 이런 맛입니다, 만두를 썰어서 이 만두가 이런 맛이 이런 맛입니다, 맛을 보고 음, 이런 맛이 이만큼이구나. 조금 먹어보고 그다음 이만한 것을 삽니다. 이 땅 위에 맛본 감사, 이 땅 위에 느낀 기쁨, 이 땅 위에 느낀 모든 것을 그대로 천국에 풀어놓고 방해하는 악령이 없고 죄가 없고 흑암이 없어 그러하지 이 땅 위에 맛보지 못하고 이 땅 위에 갖지 못한 평화, 감사, 영광 천국에서 없는 걸 새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이 땅 위에 있던 걸 가지고 그만큼만 시작을 하고 그다음 점점 커지는 거지 이 땅의 연보 생활, 경제생활 빵점한 사람이 천국 가서 뭐 제게 재료를 주시면 영계 만물을 다 나눠주고 제가 잘 쓰겠습니다. 너는 이 땅 위에 해먹고 남을 위해 너의 것을 쓴 기회가 한 번도 없으므로 하늘나라에서도 그런 기회 못 준다, 안 주십니다.

오늘 하루에 주의 뜻으로 사는 데 마음껏 노력하고 그 정도를 따라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뜻대로 마음껏 살 수 있는 비율이 정해지고, 오늘 기회에 오늘 내가 순종하며 겪고 가져야 되는 갖추는 그 실력, 그 요소 그게 바로 하늘에 가서 열립니다. 이 땅에 설비업자로 평생 산 사람. 말하자면 하늘나라의 모든 설비를 영원토록 맡을 수 있는 이런 기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 땅 위에 모든 종류의 상하수도 설비로 생활을 편리하기 좋게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기술은 있으나 게을러 더러워 안 한다고 땅 구석에 누워 잠만 잔사람, 신앙 면으로 하늘나라 하나님의 은혜의 강수가 흐를 때 네가 가서 좀 고쳐 주거라, 네가 가서 밀어주거라, 고장은 없는 세상이지만 네가 공급해 주라, 그럴 때 이 땅에서 은혜의 강수를 줄 수 있는데 풀지 않고 도와주지 않은 사람 하늘나라에서 그 일 맡기지 아니합니다. 너는 네 몸이라고 네 생활이라고 네 시간이라고 너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너 시간 할애하지 않았고, 너의 눈길 주지 않았고, 너의 마음 나누지 아니했으니 하늘나라에서 너의 눈길, 너의 손길, 너의 마음, 너의 시간을 함께할 존재는 하나도 없다,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날이 오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모든 현실은 만물과 만 존재가 초점이 되었고, 이 가운데 “정신을 차리고” 분산된 마음, 흩어 진 마음, 주의 인도에 모아 이게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그리고 내 속에 모든 것 절제하여 하나 하고 싶은데 주님이 이거는 다섯이나 하도록 기회 주시면 늘리고, 내 마음은 다섯을 하고 싶으나 하나로 줄이라면 줄이는 거고 헌신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라. 주님이 왜 이런 현실을 주시는지 주의 뜻을 찾는 게 기도고, 주의 뜻을 찾았으면 그대로 순종하는 행위가 그게 바로 기도가 되어 집니다. 돈 없을 때 학교는 다녀야 되겠는데, 등록금을 주지 않을 때 이번 달 등록금 받았고, 그다음 한 달을 그 돈 가지고 열심히 공부할 때 이달 등록금 받아 한 달을 열심히 공부할 때 지켜보는 부모가 저놈은 돈을 가지고 와가지고 돈값을 하는구나, 돈값보다 훨씬 잘하는구나, 먼저 받은 돈으로 공부를 넘치게 할 때 그다음 등록금을 달라는 행동이 됩니다. 이번 달 등록금 받아 빵집 댕기고 못된 짓 다 하고 다음 달 등록금 내일 가져가야 됩니다. 입으로 달라는 것이 기도는 기도인데, 한 달의 행동을 보니 저놈 줬다가는 안 되겠다,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말로 주옵소서, 말 기도. 주의 뜻대로 열심히 사는 그 행동이 행동의 기도입니다. 행동을 보니 또 주십니다. 이어지는 순종, 이어지는 계속의 행동이 이게 정말 효력 있는 기도입니다.

이 아침도 새벽 기도로 시작하니 건강을 주시라 해야 되겠다, 건강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어제 준 건강, 지난날의 건강으로 신앙에 알차게 나누어 조심스럽게 저렇게 복되게 쓰니 지난날의 행동에 계속이 더 달라는 기도가 되는 겁니다. 쟨 더 줘야 되겠다. 저건 건강 하면 죄를 저지르니 오늘도 건강을 주옵소서 그러는데, 지난날의 행동과 오늘의 행동이 저한테 건강주면 죄나 짓습니다, 저를 불행하게 만듭니다라고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이 무슨 기도가 되지 제 건강 뺏어 가시지요, 이게 되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의 말만 들으시겠습니까? 말 속에 있는 행동을 지켜보시겠습니까? 말로도 기도하시고 행동으로 더 무겁게 귀한 기도하시고 아예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딱 들어앉아버리면 아브라함을 쳐다만 봐도 소돔이 이걸 치려다가 또 참습니다. 치려다가 또 참습니다. 그런데 롯과 소돔의 자라가고 채워가는 그릇을 보니 아브라함을 봐서는 이걸 좀 더 기회 줘야 되겠는데, 이것들을 봐서는 도무지 되지 않는 그 마지막 시점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정리한다, 주님이 주님인데 마음대로 하시면 되는데 아브라함에게는 먼저 찾아가 통보했습니다. 이거 수준이 말하자면 하나님과 1 대 1이 된 듯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내 친구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친구라니요, 하나님이 인격으로 대화할 수 있는 데까지 점점점점 자라간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좀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스스로 좀 귀하게 만들어 그래도 못났지만 내가 하나님을 상대해야 되는 나인데 하나님이 나를 상대할 때 그 마음이 특별하도록 내가 그리 돼야 되는데 그리고 자기를 잘 돌아보시면 우리는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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