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3.12.2 유1:3 단번에 주신 오늘의 기회에만 주님 동행, 오늘 가야 할 한 번 밖에 없는 그 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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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3.12.2 유1:3 단번에 주신 오늘의 기회에만 주님 동행, 오늘 가야 할 한 번 밖에 없는 그 걸음을

관리1 0 42 2023.12.0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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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2 토새

제목 : 단번에 주신 오늘의 기회에만 주님 동행, 오늘 걸어가야 할 한 번 밖에 없는 그 걸음을

찬송 : 91장(환란과 핍박 중에도)

본문 : 유다서 1장 3절 -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일반으로 주신 구원을 한 명도 빠짐없이라는 말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 전부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구원이 되어졌습니다. 부모는 고생을 좀 했지 자기를 우리에게 다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어머니의 노래를 부르고 난리입니다. 그거 짐승들도 다 그 정도 고생하는 겁니다. 또 낳아 기르며 보람도 있고 예쁘기도 합니다. 우리 구원하신 주님은 이거 예뻐 그런 거 아니고 보람된 것 없었고 또 그냥 좀 오셔서 고생한 것 아니고 무한한 하나님이 인간 하나 속에 완전자 절대자 하나님이 당신의 것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다 쏟아 부어, 그냥 다 쏟아 부은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죗값으로 당해야 될 인간의 영원한 고난을 전부 다 당하고 부활하여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신 그 사활의 대속 한 사람 사람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을 전부 다 쏟아 부으셨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첫 아이 낳고 바로 죽은 엄마처럼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고 넷째를 낳고 그만큼 분산이 되는 건데 첫 아이 하나를 낳다가 죽어버렸으면 그 뭐 얼마나 큰 고생이겠습니까?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한 사람을 위해 주님이 다 부어졌습니다. 여기만 해도 몇 십 명 앉아 있으니 몇 십 명을 위해 한 분이 죽었으면 난 몇 십 분의 일만 감사할 것이 아닌가? 천하에 믿는 사람이 수억이면 주님의 그 고난에 수억 분의 일, 역사에 믿고 간 분이 수억에 그치겠습니까? 얼른 잡아도 수백억 넘을 건데 수백억 분의 일만 날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한 명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이 다 쏟아 부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이러니 이건 뭐 그냥 한 명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이 정도니 매번 기회에 신앙의 기회 주어지면 단번에 나도 나를 다 바치는 거지 주님은 자신을 다 바쳤는데 나는 손가락 한 개, 눈빛 한개 그리 상대하면 멸시가 되고 무시가 되고 모욕이 되는 겁니다. 임금님이 오셨는데 방문을 발로 툭, 누워서 방문을 발로 툭 차고 들어오시라고, 아 뭐 들어오시라고 했으니 그만하면 인사가 아닌가요? 밖에 임금님이 오셨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발로 방문을 툭 쳐서 아, 들어오시라고 그것도 적지만 정성일까, 참 철이 없어 그럴지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그런 꼴 그런 자세 그리 살면 안 됩니다.

이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힘써 싸우라는 없는 것은 쏟아 부을 수 없으나 고린도후서 8장 12절 “할 마음만 있으면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것이오, 하나면 하나 열이면 열, 넌 이 구원을 너의 절반이면 된다고 보냐 너의 백분의 일이면 된다고 보냐? 재벌 회장님이 우리 교회를 나오신다면 십일조는 커녕 아, 십일조의 천분의 일만 내도 이 교회가 그 돈을 다 쓰지도 못할 건데? 헤아리지도 못할 건데?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헤아리지도 못할 건데? 이 교회에 나의 십일조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만 내도 교회 운영이 차고 넘칠 건데? 그 돈 어디 쓸라고? 이게 인간 마음입니다. 쓰든 말든 못 쓰면 그 교회가 못 나서 그런 거고, 쓸 곳을 못 찾으면 그 교회가 미련해 그런 거고, 그 교회가 그 연보를 받아 잘못 쓰면 그 교회가 책망 받을 일이고 넌 십일조가 신앙이면 너는 하는 것까지 너의 할 일이다. “할 마음만 있으면” 마음이 없으니까 안 했지. 할 마음이 없으니까 안 했지. 주님은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있냐? 마음이 없냐? 이것만 보십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것이오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큰 은혜 받았으니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매 현실마다 한 번의 기회에 한 번 주시지 이번에 안 되는 것은 다음에 하고 그다음에 안 되는 것은 또 그다음에 하고,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그냥 있는 힘 다하여 이번 현실에 할 수 있는 전부를 다하는 겁니다. 순교 현실도 주지 않는데 목숨 바치면 자살이 됩니다. 자살은 살인입니다. 다른 죄는 지어놓고 회개할 수 있는데, 수천만 명을 죽인 히틀러도 회개하면 회개는 되는 겁니다. 히틀러 미워하는 사람들이 너는 회개할 자격도 없다 그러는데 그 인간도 또 그 인간하고 똑같은 인간이죠. 수천만 명을 죽여 놓고도 회개는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죽여 버리면 이건 회개할 기회조차 없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무서운 죄입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알고 보면 우리가 걸어가야 될 신앙의 길은 매일 매일의 신앙의 길은 한 번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그러면 오늘에 있는 거 다 팔으라 말이냐? 내일도 있는 거 다 팔으라 말이냐? 다 팔 기회가 되면 다 파는 거고, 오늘은 학교 가서 충실하게 공부만 하고 오면 되는 현실이면 오늘은 공부만 충실히 하면 되는 거고 단, 공부하며 마음속에 주와 동행하면서 공부하면 사람이 보면 학생이 공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보면 날 모시고 어디든지 가는 것이니까 뭐 가는 것이야 어디든 상관없고 속에 날 채웠으면 됐다, 구원의 사람이 주님 모시고 세상에 이런 썩을 공부를 해야 되니 이 썩을 공부 안에 뭐가 있는고, 단군이 이 나라를 만들었다, 뭐 그런지 안 그런지 제대로 한 소리씩 하겠지, 누가 압니까? 자기 조상 자랑하는 거지, 또 단군이 8가지 법을 세웠다더라. 8조 헌법? 9가지 말을 했는데 그건 까먹고 8가지 말한 것만 기억이 날는지 안 날는지 압니까? 이렇게 발달한 나라에 모든 걸 다 기록하고 서로가 눈으로 보면서도 정반대인데 남한이 먼저 북한을 침략하다가 되치기를 당한 거다, 이 나라 절반 이상이 그렇게 알았는데 그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이 다 살아있을 때도 그딴 소리를 했었습니다. 북한에 살던 사람 3만 명이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도 아, 북한이 지상낙원인데 뭐 설마 그럴까? 주상낙원이면 이민 가지? 이런 세상에도 그런 말을 하는데 몇 천 년 전에 뭐 단군이 있었니 없었니 뭐 8가지 법이 있었니 없었니 첫 번째 온 게 백두산이니 뭐니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고, 어느 인간이 만들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그런데 인간이 무지해 놓으니까 이걸 진리인 줄 알고 외워대지 또 시험에 나오지 참 하나님 떠나니 몹쓸 거 배우느라고 욕본다, 배워봐야 아무 짝에도 필요 없는 걸로 채우느라고 참 애먹고 앉았다, 이런 공부도 하라고 하시니 오기는 왔지만은 참 세상 공부는 허무하구나, 이게 학교 가서 공부하는 신앙의 사람 믿음의 자세입니다. 단번에 주신 오늘만 주신 공부니 가기는 간다, 배우기는 배운다, 그런데 내용은 아니구나, 또 그다음 시간 수학 시간에 하나 더하기 하나를 가르치며 그건 맞기는 맞다, 하나에 하나 더 하니 둘이 되는구나. 곱하기를 배우며 참 더하기보다 편리하구나, 빠르구나, 참 세상에 이런 것도 하나님이 내놓으셨구나. 그런데 도둑놈이 샘이 빠르면 도둑질을 많이 해 먹겠구나, 좋은 사람이 이런 좋은 수학법을 알면 좋은 일도 많이 하겠구나, 이게 세상의 지식을 배우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세상의 지식이 맞는 것은 그 맞은 것을 알면 사람이 옳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가지고 사람이 나쁜 데 쓰느냐 옳은 데 쓰느냐 이게 문제인 겁니다. 세상의 인문 사회 지식은 다 틀렸다, 그냥 참고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는구나. 세상의 이공의 지식은 대부분 맞습니다. 부엌의 칼로 요리를 하면 고마운 칼입니다. 화난다고 그 칼로 휘두르면 그때는 큰일 납니다. 칼은 똑같은 칼인데 누가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과, 공과의 지식은 이걸 누가 들어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지 그 자체가 좋다 말다 그러지는 못하는 겁니다. 믿음의 사람이 가지면 복, 안 믿는 사람이 이걸 알면 이 모양 이 꼴을 만드는 게 바로 이공 지식입니다. 이공의 지식을 6천년 발달시켜 놓으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돼버린 겁니다. 대책 불가입니다. 불태워 없애야지. 이렇게 한두 가지 마음속에 가지고 배우면 학교 공부 얼마든지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사회생활을 이렇게 가정생활을 요즘처럼 평안한 때를 주시면 단번에 주신 기회는 뭐냐, 오늘에 겪어야 될 일, 오늘의 파악해야 될 일, 오늘의 익혀둬야 되는 일, 그러면서 시간시간 지나가다가 감당 못한 마다할 일을 만날 때도 있는 거고 또 주님이 오라 시는 때도 있는 거고.

단번에 주신 오늘의 기회 이번 기회에는 이게 뭘까, 주님 생각하고 전략하면 복된 걸음을 걸어가게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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