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12.1 유1:1 편지의 대상, 사랑과 인도와 보호의 삼위의 3면 완전 은혜를 받아 가진 오늘에 나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금새23.12.1 유1:1 편지의 대상, 사랑과 인도와 보호의 삼위의 3면 완전 은혜를 받아 가진 오늘에 나

관리1 0 56 2023.12.01 08:58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31201 금새

제목 : 편지의 대상, 사랑과 인도와 보호의 삼위의 3면 완전 은혜를 받아 가진 오늘에 나

찬송 : 11장(눈을 들어 산을 보니)

본문 : 유다서 1장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예수라 말은 구원의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이란 말은 죄로부터 구원만 구원이라고 그럽니다. 육체에 병 걸린 것을 낫게 하시고도 구원이라고 말씀은 하셨으나 치료도 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사망, 질병, 모든 불행이 닥쳤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하는 그 치료를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라는 뜻으로 구원이라 하지 아니하고, 죄를 지어 하나님과 끊어지고 하나님과 끊어지고 나니까 인간에게 모든 불행이 닥쳤으니 원인은 하나님 앞에 지은 죄고, 그 죄로 인하여 여러 가지 불행이 생기는 현상 중에 죽음도 있고 질병도 있고 별별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자를 치료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할 때는 병원에 가도 치료할 수 있는 그 치료가 예수님이 줄 수 있는 구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 질병을 가져오게 된 원인인 죄, 그 죄를 해결하고 나니 결과적으로 그 질병도 해결이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제사장처럼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되고,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고, 또 왕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책임지는 세 가지 면을 맡은 주님이라, 죄를 해결하고 구원하신 주님, 구원받은 우리를 구약의 제사장처럼 선지자처럼 또 우리를 우리 현실의 왕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어떤 때는 그리스도 예수라 그러는데,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위치에 따라 예수가 먼저 나오면 죄인을 구원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는, 이 뜻이 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성경을 읽으시다가 그리스도 예수가 나오면 우리를 주님과 같이 온전하게 길러가기 위하여 이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순서와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로 기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죄로부터 구원한 주님 그 주님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종이요, 그리스도로 우리를 깨끗하게 거룩하게 길러 가실 때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종입니다. 말은 종이라 해놓고 행동은 제 마음대로 하면 내가 종이라 한다고 말 따라 사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 그 사람의 속이 자기가 자기의 왕이면 나는 예수의 왕이요 그리스도의 왕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내 종이다, 이리 되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살면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내가 결정하고 내가 산다. 그리 되면, 그리 되면 예수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사람의 종이고, 예수님이 그 사람의 그리스도가 그 사람의 종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종삼아 예수 그리스도를 부려먹는 이용하는 악용하는 이 정도가 되면 이거는 뭐 1계명에서는 다른 신을 너의 신으로 삼지 말아라, 이걸 넘어서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너의 종으로 삼고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이 되지 말라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데 1계명에서 그렇게 적지 않은 것은 그 불신자의 자연의 양심으로도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어 그렇게 적어놓은 겁니다.

예수의 종이 맞나, 그리스도의 종이 맞나 반대로 나는 예수님 그리스도를 내가 부려먹으려고 작정을 했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야고보도 예수님의 종입니다. 나만 예수의 종이 아니라 나와 함께 믿는, 나와 함께 역사하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야고보와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들 이름 중에 나옵니다. 열두 제자 중에 야고보, 요한이 형제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가 쓰는 경우가 많아서 성경에 사람 이름은 잘 살피지 않으면 실수합니다. 땅 이름은 중복되는 경우가 적고 있긴 있어도 적고 사람의 이름은 뭐 그냥 거의 혼동스럽습니다.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이쪽과 다른,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 야고보와 유다가 형제로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의 동생들 이름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유다서의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뒤에 제자가 됐다라고들 그렇게 생각도 합니다마는 쉽게 그렇게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너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천하의 하나님이 곳곳에 두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사람이 전부 다 그러하다. 형제라는 말은 나란히 두고 서로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은 왼손과 마주하며 일하고 두 개를 맞춰보면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모든 것은 판단하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부르심을 입은 자, 세상에 있었는데 때가 되어 이제 세상에서 나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천국을 향해 걸어가자, 가는 길에 너 할 일이 있다, 이렇게 불렀다. 불렀단 말은 지나가는 사람 이름 불러 쳐다보게 하는 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모르고 세상 살다가 그냥 죽어 지옥 갈 이런 무리들 중에 불러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뽑아냈다, 세웠다, 구원해냈다 라는 뜻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였으니까 성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은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조건 없이 값없이 그냥 주시는, 가정으로 말하면 아버지, 가정 전체를 책임지는 가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냥 베풀어주는, 그러면 아버지입니다. 오늘 월급 갖다 줬으니까 뭐 주라 해라, 조건을 갖다 붙이면 서로 사업에 동업이 되는 겁니다. 장사가 되는 겁니다. 좋은 뜻으로 나도 이랬으니 너도 이렇게 하라, 이렇게 좋게 사는 표현은 상관이 없는데 나 이거 했으니 조건부로 너는 그거 했냐, 이리 되면 부부가 서로 몸 파는 것이든지 아니면 동업을 하는 것이든지 그렇게까지 되어 집니다. 아버지면 가족을 위해 가족이니 아버지로 조건 없이 있는 힘 다하고, 어머니는 어머니니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아이는 어리니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나 앞으로는 또 부모님과 같이 나도 그리 될 것이고, 그리 되면 사랑의 동산 가정이 되고 이게 점점 더 좋아지면 교회가 되어 집니다. 일방적으로 쏟아 부으니 인간이 나쁘게 될까 봐 그래서 어려서부터 너 책임이 있고 이렇게 서로 역할과 지위를 따지는 것이지 궁극적으로는 아버지면 아버지니까 당연히 있는 힘 다하여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고 성부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우리는 구원의 사랑,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하나도 갚을 길이 없고 갚아본 적도 없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 전부가 하나님이 무료로 주신 것이고, 이 안에서 살 수 있는 행동과 생각 전부 다 주셔서 기회를 가졌고, 우리는 받은 자유로 죄만 지었고, 그로 인한 모든 문제 하나님이 해결하셨고, 가정의 부모야 넘치지만 자녀가 맞잡아 하는 일도 더러 있으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시간으로 말하면 영원 전부터 영원 끝까지, 공간으로 말하면 하늘과 땅, 우주만물 전부를 다 통틀어 인간은 받고 시작하고 받고만 이어지지 인간이 무슨 역할을 한다든지 그런 거는 아예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기차를 타고 이 무거운 기차가 나를 들고 가니 얼마나 힘이 들까 해서 기차 안에서 기차 벽을 열심히 밀면서 내가 미니까 내가 밀어주니까 좀 도움이 되겠지, 생각이야 네 마음이고 기차의 벽을 막 밀어가며 애를 쓰는 거는 너의 수고고, 기차 위에서 안에서 기차 벽을 밀어가며 뛰어가며 돕는다는 것은 그냥 몰라서 착각입니다. 우주라는 걸 만들고 이 안에 인간을 태워놓고 만사 모든 것을 운영하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추운 새벽에 모여 예배를 드리니 하나님께 도움도 되었니 마니 하는 소리는 어디에도 그런 소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그냥 얻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님이 우리 위하여 다 하셨고 우리는 다 받기만 했는데, 그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면 다 주시며 다른 사람도 돌아 보거라, 받은 예수의 은혜가 더욱 예수의 은혜로 우리 속에 사죄로, 칭의로, 화친으로, 영생의 소망으로 점점 자라는 것이 주님의 소원이니 네가 말씀으로 더욱 기울이는 것이 그게 주님을 위한 거다. 아이가 젖 잘 먹는 것이 엄마의 소원입니다. 그 아이가 젖을 먹으며 나는 엄마를 밀어줬다, 도와줬다, 나 아니면 엄마는 불편하다. 말하자면 그런 셈입니다. 엄마라는 생애를 빨아먹고 기생충처럼 자라는 것이 내가 웃어주고, 내가 뭐 이렇게 젖을 먹어주니 엄마도 살 만하지 내가 원하면 가출해버리겠다, 아예 이거는 뭐 그냥 이런 개념이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 “예수를 위하여‘입니다. 단어를 정확하게 또 좀 엄하게 쓰려면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다니요? 그게 가능합니까?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도록까지 기회를 주시며 이렇게 새벽에 한 번 나오면 주님을 위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봐 주마, 뭐 주신 분이 또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이 새벽에 나온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 나온 것이고 주님이 대신 죽어 이 길을 열어놓으시고 인도까지 하셨는데 내 인생 내 의식이라는 것이 나도 뭐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는데, 그럴 길은 없고 주신 구원을 잘 가지려고 잘 사용을 하려고 잘 은혜롭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거다.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이 부모를 위한 거다, 어릴 때는 다른 건 없습니다. 밥하는데 거든다고 움직였다가는 불가능하고 그다음 큰일 납니다 난 조용히 있는 게 낫지, 잠 잘 자는 것처럼 도와주는 것이 없지, 이런 ”위하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죄악 세상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애굽 안의 백성처럼 이거는 뭐 귀신 손아귀인데 성령이 지켜, 지켜지지 주의 은혜 아니고는 그 순간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그리고 성령이 우리를 지켜 순간순간 살아갑니다. 알기는 알아야 됩니다. 이 아침. 세상을 없는 가운데 만드신 주님 만들어놓고 운영하시다가 때가 되어 나를 보내신 주님, 그리고 나의 생각, 나의 걸음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인도로 성령의 순간순간 인도와 보호의 역사, 삼위일체 하나님이 3면으로 동시에 충돌 없이 나뉨 없이 솔빡 우리에게 다 쏟아져 버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젖을 먹으면 그 엄마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진액만 쏙 빼다가 다 부어버리는 겁니다. 말하자면 엄마를 마시는 겁니다. 엄마를 먹는 겁니다. 엄마 껍데기는 놔두고 알맹이는 전부 다 가져오는 겁니다.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유다서에 믿는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이러한데 여기다 대고 뭔 소리, 그러면서 감사하고 돌아봅시다.




1차-khs

Comments

Category
State
427,481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