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3.11.29 유1:5 모를 수 없는 생명의 본능, 강팍한 망각으로 인한 반복, 살리려는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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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3.11.29 유1:5 모를 수 없는 생명의 본능, 강팍한 망각으로 인한 반복, 살리려는 촉구

관리1 0 63 2023.11.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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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9 수새

제목 : 모를 수 없는 생명의 본능, 강팍한 망각으로 인한 반복, 살리려는 촉구

찬송 : 34장(주 예수의 강림이)

본문 : 유다서 1장 5절 -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앓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다서는 성경 제일 마지막 쪽에 있는 말씀입니다. 보통 신학적으로 좀 인용되는 정도고 설교로 접하기 어려운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짧은 데 많은 말씀, 또 많은 말씀 중에 한 말씀 말씀이 지난날을 돌아보는 말씀들입니다. 6.25 전쟁 서울에서 인민군들 내려올 때 우리 공회는 거창에만 있을 때입니다. 주남선 목사님 살아계셨고 내려오는 인민군 소식을 들으며 거창이 점령되기 전 한 주간 전에 교역자 사경회를 했습니다. 거창, 함양, 합천 이렇게 모이면 그냥 크게 거창 지역이라고 그럽니다. 교역자들 다 불러모아놓고 유다서 공부를 했습니다. 또 유다서는 모두들 외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역자회 일주일 마치고 마지막 날 돌아가는 그 시간에 인민군들은 거창으로 진주를 하고 들어오고 있고, 백 목사님은 위천으로 가기 위해서 거창으로 몰려오는 인민군을 이렇게 거슬려 마주보며 지나쳤습니다. 인민군 본대의 점령 부대 행렬을 마주쳐 길도 좁을 때입니다. 성경 가방 들고 딱 한 눈에 그거 잡아 죽일 원수입니다. 유다서 말씀으로 점령 3개월을 전도하며 예배드리며 그렇게 보냈습니다.

여기 애양원은 전염 되는 양성 나환자 천 몇 백 명이 울타리로 치고 있는 곳이라 들어와 수색할 자리도 아니고 또 돌아다닐 사람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잊혀 졌고 뭔가 살펴야 되지만 1500명 집집을 다 뒤진다? 그건 내부 고발 들어오지 아니하고는 밖에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위험의 정도가 비교가 안 됩니다. 현지 현장을 계셨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나환자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고, 주남선 목사님과 공회 목회자들은 교인들은 인민군 점령하에 다니면서 전도하고 심방하고 다 예배드리고 그랬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평소에 준비지만 유다서의 말씀 “너희가 본래의 범사를 알았으나” 5절 알고 보면 다 아는 일입니다. 어려서 모른다고 말은 그리 하지만은 어려서 모르다니요? 제 좋은 것 제 할 거 제 하고 싶은 것은 다 압니다. 이 생명의 본능이 그렇습니다. 머리 나쁘면 새라고 말하는데 그거 부화된, 가정에서 일어난 병아리 말고 이거 부화되면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 들리면 짹 소리 안 하고 딱 숨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엄마 소리 들리면 그때부터는 뭐 먹이 달라고 그냥 악을 씁니다. 이렇게 제 생존에 관해서는 그 위험한데 뭔 조용히 시키라 말하겠습니까? 그런데 위험이 와도 떠드는 거는 동물 중에 인간밖에 없답니다. 동물 밖에 인간만 가진 특이한 것, 모든 동물은 새끼 필요할 때만 암수가 만나는데 그냥 안 낳고도 둘이 떠들고 댕기는 거는 이 또 인간밖에 없다 그러죠. 위험이 감지되면 부화된 새끼는 본능적으로 입 닫습니다. 엄마 소리 들으면 무조건 죽으라고 짖어댑니다. 이게 생명의 본능입니다.

신앙이 어려서 모르니 뭐 덜 배워서 모르니 아직은 그러니 당연히 자라가는 것도 신앙이기 때문에 그렇기는 그렇지만은 핵심적인 것 본능적인 것은 전도 받고 교회 첫 출발하는 첫 모습 딱 보면 나무도 이렇게 가지가 움돋아 올라올 때 굵게 될 가지는 처음부터 가지가 굵습니다. 대궁이 굵다 그러지요. 아무리 먹여봐야 그거 머리카락처럼 비실비실한 거는 싹수부터 그렇습니다. 그래서 싹수를 안다, 싹수를 안다 그럽니다. 자연 만물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의 특수 은혜가 믿는 신앙의 세계는 더해지기 때문에 영 싹수가 그렇다는 사람을 또 붙들고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그러나 우리로서는 몰라서 못 믿었니 그런 것은 자기가 자기 양심을 무마하고 안면 체면 포장하느라고 하는 말입니다. 알 것은 다 알게 돼 있습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하나 두 개가 아니라 다 알 거 다 알지 않느냐, 처음부터. “본래 범사를 앓았으나” 불신자도 밤하늘에 별들을 보면 이건 뭐 우연이 아니겠고, 뭔가 있겠구나, 우리가 생각하는 거는 꼬물꼬물 개미들이고 말 못할 세계가 있겠구나, 이 정도까지는 알게 만들어 놨습니다. 만들 때부터. 자동차 공장에 자동차를 만들 때 누가 사가냐 마냐 상관없이 이거는 달려가고 이거는 정지하고 이거는 후진하도록, 그리고 밤에는 불이 켜지도록 차마다 스위치는 달라도 몇 가지 기능은 그건 무조건 있게 돼 있습니다. 조금 쳐다보면 편리한 곳에 놔뒀지 백 기어가 어디 있는지 얼마나 어려운지 찾지 못했다, 뭐 하지 못했다, 이게 다 잔소리입니다. 운전자를 위해서 편리한 곳에 쉽게 장치한 것은 맞다, 차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다. 안 믿는 사람도 인간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이 영원불변은 아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아무리 잘 나가 봐야 마지막에는 후회한다. 죽은 다음은 뭘까? 배고픈 때도 무식한 때도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게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 마지막 오늘의 귀신이 마취 주사를 놔 가지고 인간이면 본능적으로 죽음 다음을 또는 미래를 또는 걱정되는 걸 생각을 해야 되는 생각을 전부 마비를 시켜버렸습니다. 겉으로는 인간이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거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 자체를 발견하기가 희귀한 때가 됐습니다. 저것들끼리는 뭐 좋은 세상 만났다고 시시덕거리고 난리인데, 아담으로부터 근래에 돌아가신 전 인류의 앞의 세대가 오늘 살아있는 우리를 들여다보며 이것들이 인간이 맞나? 족보는 위에서부터 인간이니 인간은 맞는데 이것도 인간이라고 해야 될까? 생전에는 그들도 모르고 살았겠지만 죽고 보니 눈이 떨어져 천국에 있어도 음부 지옥에 있어도 누가복음 16장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에 떨어져서라도 눈은 열렸습니다. 세상에 두고 온 형제 다섯, 나처럼 살고 있는데 내 꼴이 될 건데 이거 큰일 났다, 죽기 전에 해결해야 되는데 그때 안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얘들이 모르고 나처럼 지금 세상에서 저 짓을 하는데 그때 아브라함이 하신 말씀이 몰라? 몰라? 뻔히 다 알면서. 정말 몰라도 그 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맨 날 가르쳐주고 있는데 몰라? 뻔히 알면서.

알고 보면 알면서 망할 일을 하는 건 인간밖에 없답니다. 이게 머리가 너무 좋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애들이 좀 지능이 떨어지면 내 수준이 별로니 다스릴 수 있는 적당한 사람을 맡겨 감사하다, 죄 짓는 데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지, 신앙생활 하는 데 지능 떨어지는 문제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예로부터 머리 좋은 것은 부르지를 않으십니다. 가끔 하나씩 섞여 있어도 결혼의 상대방, 가정의 지능의 문제, 그 말하는 네 머릿속의 지능은 문제가 없냐? 말하는 거 보니까 너 벌써 장애자다, 그리 되는 겁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반복입니다. 성경을 차분히 유심히 읽었다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반복, 반복, 반복이 얼마나 많은지 반복되는 내용을 확 줄여버리면 성경 아주 간단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읽는 인간이 그렇게 강퍅하다는 말입니다. 교과서를 좀 살펴봐서 아시는지요? 교과서는 한 번 배운 것은 두 번 반복 안 하고 그대로 지나갑니다. 참고서는 반복이 나오는데, 교과서는 수학의 예시 문제 몇 개만 적어도 그거 하나하나가 전부 이유가 있어 발전하는 과정이지 모든 교과서는 똑같은 소리 두 번 반복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반복이 많습니다. 몰라서 적은 것이 아니라 아는데 강퍅하여 한 번 더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네 마음속에 있고 지식 속에 있는 것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이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인간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안 한 인간도 없습니다. 한 명 지도자 모세는 날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들 애굽에서 다 나왔는데 홍해까지 건너왔는데 맨 날 하는 짓이 이 짓이니 이거 뭐 하려고 이러고 계시느냐고, 한 명 모세는 데려가 달라고 한도 없이 기도했고, 나머지는 매일 하는 짓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애굽에 있는 애굽에 사는 사람들 일을 했습니다. 6절.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애굽에 있을 때는 애굽 안에서 할 일을 했어야 됩니다. 출애굽 후에는 이제는 애굽 생각하면 안 되는 시기인데, 그런데 맨 날 애굽 노래를 불렀습니다. 벌써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겁니다. 이제는 애굽을 떠났다, 광야다. 광야의 모세를 따라가는 것이 나의 지위다,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은 처소를 떠난 귀신들의 영원한 흑암에 결박되는 일이다. 주신 현실이 광야라도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나의 모든 언행 심사, 모든 기회의 모든 시간은 전부 영원한 교도소 감입니다. 그러니 죽는 것보다야 사는 게 낫지 않습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현실은 지켜낸다.

7절 “소돔과 고모라를 보라”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처음부터 영계에서 타락한 그 귀신의 첫 본질, 그리고 망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소돔 고모라 그 이웃 도시들도 전부하는 짓은 매일 같았습니다.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파란색이 들어오면 차가 주행을 합니다. 빨간색이 들어오면 서야 됩니다. 색을 따라 가다 서다, 가다 서다 또 좌회전 팻말이 있으면 따라가는 건데 가다가 파란불인데 급브레이크를 치면 뒤차한테 뒤통수 맞아 죽습니다. 앞차를 받으면 목이 앞으로 꺾이는데 사람의 목은 앞으로는 많이 꺾여도 괜찮습니다. 뒤차한테 바뀌면 순간적으로 목이 뒤로 젖혀지는데 엄청 위험합니다. 그냥 신호 따라 가다 서다, 가다 서다 하면 이 좋은 세상 좋게 도착할 건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붉은색에 직진, 좌회전 팻말의 오른쪽 자유롭답니다.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 좋은 세상이라고 생난리를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저렇게까지 망하려고 후회하려고 죽으려고 자기를 저렇게까지 지근지근 짓밟으니 이 정도 되면 구원할 길이 없는 겁니다.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소돔과 고모라를 망쳐놓으시고 오늘까지 역사에 말씀 따라 서다 가다 반복하지 아니하고 다른 생각 딱 들어가면 바로 소돔 바로 고모라가 좌우에서 어서 오시라 환영한다, 너 유황불비로 이 순간 끝났다, 이걸 반복하며 살아갈 것은 없습니다. 그리 생각하면 그냥 죽어도 이렇게 믿다가 죽고 가다가 이렇게 가지 바꾸지는 아니하겠다는 말씀 그런 각오 단단히 하시고 그러려면 오늘도 어떤 마음에 어떤 생각에 어떤 일정의 투쟁이 있을까, 내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은 그렇다마는 내 마음에서도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나온다면 이것도 저것도 딱딱 꺾어놓고 지금 이 시간 무엇이 주님 기뻐하실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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