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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9 금밤
제목 : 말씀으로 씻고 나가려면 어떤 인도라도 즉각 순종하는 바퀴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가 될 것
찬송 : 120장(주와 같이 가게 됨은)
본문 : 열왕기상 7장 27절 -
또 놋으로 받침 열을 만들었으니 매받침의 장이 네 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이요 고가 세 규빗이라 그 받침의 제도는 이러하니 사면 옆 변죽 가운데 판이 있고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어디든지 따라가는 끝없는 순종 끝없는 믿음 신앙의 한 길로만, 우리를 씻고 말씀으로 또 살펴 깨끗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서는 복된 우리 귀한 우리들 되도록 이 밤도 부르심을 감사하나이다. 연휴로 여러 곳에 오고 가는 우리 교인들 교통도 안전도 지켜주시고 마음을 모아 여러 곳에 있어도 한 길 한마음이 되도록 말씀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이 밤도 군무에 두신 아들들 멀리 있고 어려울수록 말씀과 주님 주신 날들을 사모하는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을 모시는 나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말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말씀을 떼 내버리면 하나님 떼 내버린 것이 되어 집니다. 사람 몸에 신발을 떼 내버리면 불편할 뿐이지 사람을 내던졌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목을 뽑아다 던져버리면 뭐 목하나 그랬는데 가 아니라 사람을 죽여 버린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이걸 치고 저걸 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흔들어버리면 하나님을 뽑아버린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볼 수가 없어 알 수가 없고 손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모시면 하나님을 모신 게 되고, 말씀을 버리거나 삐뚤어져 버리면 하나님을 뽑아다가 내던진 이런 죄가 되어 집니다. 내가 어디 뭐 하나님께 대들었나 뭐 그냥 말씀하나 그랬을 뿐인데. 신발장 하나 떼 내는 것하고 그 사람의 목을 똑 떼서 내버리는 것 하고 말이 그게 같은 말입니까? 흉악한 말이 되어 집니다. 말씀을 모시면 하나님 모시는 게 되고 말씀 떼 내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나라에서 떼어 던져버리는 흉악한 죄가 되어 집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하나님 모시고 복을 받도록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돌 판에 새겨주셨고, 이걸 모신 게 성전입니다. 성전은 밖에서 붙인 이름이고 성전 안을 들여다보면 말씀을 모셨습니다. 이 말씀과 다른 것은 성전 문을 열고 들어오면 소든 양이든 잡아버리고 토막을 내버리는 데가 있습니다. 성전 밖에서는 별의별 재주로 살아도 하나님 앞으로 나오려면 구약은 성전 문을 열고 들어와야 됩니다. 성전 문을 열면 마당 한가운데 소 잡는 데가 있고 양 잡는 데가 있습니다. 내속에 잡아야 될 성격 한 주간 살아오며 월요일을 떼 내야 되는지 화요일이 잘못되었는지, 눈빛이 잘못되었는지 말버릇이 잘못되었는지 구약은 소나 양을 데려다가 잡아버리고 토막을 내버렸습니다. 이 죄인아 이러면서
소나 양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데 내가 살아야 회개를 하고 내가 살아야 앞날이 있으니, 죄는 지었고 죽을 수는 없고 죄는 죽어야 되겠고 그 방법으로 소나 양을 데리고 와서, 그건 죄도 없는데 그걸 죽여 버리고 토막을 내버렸습니다. 죄인이라고. 신약에 우리는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를 지었으면 죗값으로 죽어야 되는데, 내가 죽지를 못하니 죄로 죽으면 지옥입니다. 그래서 날 대신 주님이 어린 양으로 오셔서 주님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밤도 말씀을 들여다보면서 말씀과 다른 나를 죽이고, 내 인격을 도려내 버리고, 내 마음과 내 생활에 죄 되는 부분을 도려내고 죽이고 꺼버리는 것이 구약의 양 잡는 것이고, 주님이 오셔서 나 대신에 완전히 해결을 해놓은 그길 뒤를 따라가는 십자가에 죽음이 이런 겁니다. 구약은 성전이라는 집을 지어놓고 문을 열고 들어오면 소 잡고 양 잡는 데가 있습니다. 신약은 예배당도 아니고 예배당 마당도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설교를 통해 집에서 성경 읽기를 통해, 내게는 말씀과 다른 게 뭘까. 내게는 말씀과 다른 게 뭘까 알면 그걸 해결해야 됩니다. 말씀과 다른 걸 죽이면 됩니다. 근데 이걸 그냥 죽여 놓으면 돌아다닐까 봐 굴러 다닐까 봐 죽여서 아예 불로 태워 죄를 만들어버립니다. 흔적도 없도록. 그 쥐를 잡아놓고 여기저기 던져놓으면 쥐야 잡았지만은 그 보기가 흉악하지 않습니까? 또 쥐를 잡아 여기저기 흩어놓으면 보기만 흉한 것이 아니라 쥐보다 더 무서운 병균이 거기서 들끓기 시작합니다. 원수를 잡았으면 죽이고 불로 태워 죄를 만들어버려야 비로소 끝이 납니다. 말씀으로 죽일 나, 안의 요소 다 있습니다.
이걸 죽여 잡아 태워버리라고 성전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당에 놋으로 된 제단이 있습니다. 신약은 주일날이든 예배든 설교든 집에서 성경을 읽든 직장에서 또는 사회생활하면서, 사회생활하면서도 말씀으로 이건 내 속에 잘못된 건데 이건 말씀과 다른 건데 라는 것이 발견되면, 그 부분을 말씀으로 죽여 버리고 꺾어버리면 그게 성전의 놋 제단 생활이 되어 집니다. 전체적으로는 말씀과 다른 것은 죽여 태워버리는데 죽여서 태우는 과정에, 잡아놓고 토막을 낸 다음 물로 씻어서 그다음 태워버려야 해결이 좋게 되어 집니다. 말씀과 다른 나는 꺾어버린다. 죽여 버린다. 끝내버린다. 두 번째는 어쩌다가 이렇게 이런 마음을 먹었으며 어떡하다가 내가 이런 짓을 하게 되었는가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는가. 말씀으로 잘 들여다봐서 이런 부분이 잘못되고 이렇게 이렇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이게 물로 씻는 겁니다. 이게 내용 파악이 제대로 되고 원인 파악이 되어져야, 그다음 죄를 만들어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이겨버리는 죄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는 말씀을 모신 집이 중심인데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 문을 열고 본당에 들어가기 전 마당에 놋 제단이 있고 놋 제단 바로 뒤에 큰 물통이 있고, 작은 물통이 있는데 큰 물통을 바다라 작은 물통을 물두멍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전부 놋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전 본관 앞에 놋 기둥 둘 신앙은 두 기둥이 필요하다. 가정에도 두 기둥 필요하고 교회도 두 기둥이 필요하고 만사 두 기둥이 필요한 겁니다. 말씀과 다른 것은 죽여 태우는 제단이 필요한 겁니다. 무엇이 틀렸으며 왜 틀렸는지 씻어보고 닦아보도록 해결을 하는 물로 된 큰 통이 있고 작은 통이 있습니다. 다 살피고 지금 27절부터는 작은 물통을 물두멍이라 하는데 작은 물통이라도 이거보다 큽니다. 이런 물통을 올려놓는 물통 받침을 10개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받침은 하나하나 만들 때 장이 네 규빗이요 또 넓이가 네 규빗이요. 네모반듯하게 이면 저면 할 것 없이 춘하추동, 빈부귀천, 희로애락. 기쁠 때나 좋을 때나 강건하거나 병들 때나. 이 소리 저 소리 다 치우고 늘 모든 면으로 항상 말씀으로 자기를 씻는 사람이 되어 지라. 이게 사각형의 물두멍입니다.
28절입니다. 이 물두멍 씻는 물두멍 밑에는 받침이 있는데 받침은, 받침은 한 면 두면 세면 네 면으로 전부 판을 붙여서 빈틈이 없도록 하라. 위에는 씻는 거고 밑에는 받쳐주는 받침이 있는 겁니다. 60만 대군은 총 들고 휴전선에서 저 북해 인민군들을 죽여 버린다고 눈이 그냥 불꽃이 튀어야 그게 군인입니다. 아니면 갈 것도 없고. 갈려면 죽기 살기로 가야 군인이지. 60만 대군을 앞에 깔아놓고 5천만이 뒤에서 잠자고 이렇게 좋은 세상을 놀고 있습니다. 이리 되면 나라 망합니다. 육십만을 휴전선에 깔아놓고 추석날 연휴에 이렇게 좋은 세상을 보내는 척하면서도 세금을 10%씩 걷어가지고, 60만 대군 한 사람 사람 월급 요즘 한 200만 원 준다던가요? 200만 원씩을 때려 부어서 북한 저놈들이 들어오거든 그냥 다 불바다를 만들어라. 60만은 앞에서 우리는 뒤에서 돈으로 밀어주니 그러지. 월급 안 주고 안 먹여주고 그냥 그러면 군대가 되겠습니까? 앞은 군대라 싸우는데 뒤에서 뒷받침 밀어주는 군수가 따라가야 전쟁을 합니다. 우리나라 전쟁 중에 저 고구려가 중국하고 붙었던 100만 대군 전쟁이라고 보통 그러는데, 딱 계산해보면 싸우는 군인은 10만 명 정도고 90만 명이 솥단지 걸고 소 돼지 메고 잡고 쌀 싣고, 밥 해주러 뒤로 따라다니는 게 옛날 군대는 대부분입니다. 어느 나라 군대든지 그렇습니다. 중국에서 몇 천리 밖에까지 전쟁을 하러 오려면 솥이고 뭐고 모든 장비 끌고 그 진흙 밭을 걸어가려면, 옆집 뒷집 싸우는 데 군인 10명씩 싸우면 전부고 아침 먹고 나면 점심 먹기 전에 끝나겠지마는. 천리 길 2천리 길 삼천리 길을 전쟁하러 가려면 군인 1명 앞세우려면 10명이 뒤에 붙어야 됩니다. 그런 걸 뒷받침이라고 그럽니다.
제 나이 때는 아무리 가난해도 혼자 독심 먹고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면 우리나라 어떤 시험 치고도 이 나라 꼭대기까지 갔습니다. 근데 왼쪽에 있는 양반들 성경을 알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 왼쪽 그러면, 손을 내다가도 얼른 안으로 집어넣어야 됩니다. 이슬람도 그런 건 압니다. 이슬람 저 회교 자살테러를 하는 교인들 저 양반들 왼손은 더러운 데만 쓰지 왼손은 깨끗한데 안 씁니다. 화장실 가도 집에 일을 봐도 오른손은 좋은 거 깨끗한 거 왼손은 더러운 거 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적어놨기 때문에. 이슬람도 성경을 믿습니다. 우리처럼 믿지 않아서 그렇지. 오른쪽에는 양들을. 영생입니다. 왼편은 영영한 불에 들어갈 염소를 좌우로 나눴습니다. 웬만하면 왼쪽 그럴 때는 조심하셔야 됩니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 좌익들 말하자면 그쪽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여기 위에 물통이 있고 밑에 밑받침이 있으면 밑받침을 빼서 내버리는 사람 엿 바꿔먹는 사람들이 주로 좌측입니다. 우측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 밑받침이 있어야 위에 세숫대야를 올려놓고 깨끗하게 씻지. 성전도 12마리 황소로 만든 놋이 밑받침이 되고 위에 바다로는 큰 물통이 들어갑니다. 여기에 물두멍도 밑에 받침이 강단처럼 이만한 게 버텨주고 위에 세숫대야가 올라갑니다. 뿌리가 있고 열매가 있지 받침 있고 세숫대야가 위에 있지 싱크대도 다 그렇지 않습니까? 싱크대 밑받침 다 떼 내 가지고 한번 엿 바꿔 먹어보시죠. 가정주부들 어떻게 되는지. 받침이 있고 그 위에 물두멍 물 씻는 데가 있는 겁니다. 이 받침을 다 떼 내 가지고 요즘은 부모가 20년 튼튼하게 밀어주지 않으면 직장 하나도 제대로 못 얻습니다. 지금 뭐 직장 직장 그래봐야 직장 같은 거 10명 중에 1명 있을까 말까 그런 세상입니다. 저희 때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전부 직장 다 잡았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도 직장 다 잡았습니다. 연구직 평생직 전부 다. 지금은 박사학위 받고도 10명 중에 절반 넘는 사람은 직장 못 잡습니다. 밑받침을 전부 다 빼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물두멍은 물 씻는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씻는 물두멍 윗부분이 있는데, 그건 저 뒤에38절에 적어놨습니다. 38절 “또 물두멍 물 씻는 세숫대야 열을 놋으로 만들어” 요게 38절에 나오는 물 씻는 작은 물통 물두멍 10개를 올려놓는 걸 27절에서 37절까지 다 기록해 놓은 겁니다. 27절로부터 세숫대야를 올려놓으려거든 네 규빗 네 규빗 높이는 세 규빗. 모양은 바퀴로 이렇게 저렇게 이만큼 적어놓고 마지막에 물통을 올려놓는 겁니다. 아이 하나 태어나려면 부모 고생 많이 해야 됩니다. 그 아이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부모가 아니라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4명이 달라붙어야 됩니다. 중국은 8명이 달라붙는다고 그래요. 8명이 달라붙어서 밀어주니까 이번에는 8명이 밀어주니 8명이 누군지 아나요? 양쪽 부모 넷 양쪽 할아버지 할머니가 둘 넷 8명 4명이면 열둘이 갖다 붙네요. 아이 하나 직장 가는데 양가 부모 넷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 여덟 12명이 밀어주다 보니까, 이것들이 꾀가 나가지고 12명이 나를 이만큼 밀어주면 뭐 하려고 남 밑에 돈 벌러 갈 겁니까? 12명위에 얹혀살지. 참 고약한 세상이 발전도 못한 나라에서 먼저 시작은 됐고, 지금 우리나라 지금 절반 그리 돼 있지요. 이게 도시만 그렇고 다른 데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어느덧 우리 신풍 교회까지 절반 밀고 들어온 듯합니다. 나가서 돈 벌어? 사장 잔소리 듣고? 윗사람 눈치 보려고? 집에 드러누우면 부모가 나를 떠받칠 건데. 부모 둘이 떠받치는데. 부족하면 양쪽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넷이 더 달라붙을 건데. 집에서 드러누워 휴대폰이나 보고 인터넷이나 하고 배달이나 시켜 먹고, 도서관 간다고 핑계대고 뺑뺑 놀다가 오고 커피집이나 돌아 댕기고. 이 밤에 안 나온 20대들 다 그럴걸요 아마. 이 밤에 여기 앉아 있는 20대는 그러면 멀쩡하냐. 멀쩡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만 멀쩡하면 열을 당하는 건데 심각하게 돌아보셔야 되고 부모님들 회개할 거 참 많습니다.
여기에 물두멍은 말씀으로 씻는 성전 안에 물통입니다. 씻는 물통 밑에 물 받침을 10배나 더 많이 기록을 해놨습니다. 받침이 짱짱하게 밀어줘야 그 위에 올라오는 게 있는 겁니다. 가을에 감하나 열리기 위해서 뿌리와 둥치와 가지와 만 가지 이파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걸 다 떼 내버리고 다 쳐버리고 감 하나만 달랑 달아놓고 그것만 입에 톡 털어 넣으면 된다. 그게 주로 좌익들 하는 소리입니다. 공산당들 하는 소리. 여수 순천이 다 좋아하는 소리. 여수 순천이 다 좋아하는 소리 억울합니까? 여순 반란 사건이 그건데. 70년 전에 여순 반란 사건 그놈들이 그랬지 우리가 그러냐? 그 사람들 다 애국자 만들고 앉았잖아. 애국자 만들어 몇 억씩 주고 앉았지 않습니까? 요런 원수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으니 정신 차리고,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생존을 위해서 정신 차려라. 마태복음 10장 16절이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셔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신 곳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안에 성전입니다. 성전이 성전인 것은 말씀을 모셔서 성전입니다. 그 말씀으로 틀린 것은 잡아서 내가 내 손으로 내 속에 잘못된 것은 죽여 버리는 게 옳습니다. 회개라고 하기도 하고 말씀으로 실행한다 라는 뜻도 되어 집니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말씀의 물로 잘 씻어야 됩니다. 어느 말씀이 어떻게 잘못됐는가. 이게 물두멍에 씻는 겁니다. 말씀으로 잘 살펴 잘못된 걸 잘 해결을 하고 그리고 잘못된 걸 하나님 앞에 태워버리든지, 아니면 옳은 결심을 하나님 앞에 죄가 되도록 충성하고 나아가는 겁니다. 이게 물두멍인데 이 물두멍이란 싱크대의 위에 상단처럼 화장실에 손 씻는 위에 세면대처럼, 세면대가 이만큼 배꼽이나 가슴팍만큼 올라와 있으니까 요즘 이렇게 허리도 안숙이고 편리하게 손을 씻습니다. 세면대는 우리 알맞게 높은데 세면대가 공중에 떠 있습니까? 이걸 받쳐주는 게 28절에 28절에 받침입니다. 받침. 그 받침에 대해서 28절부터 37절까지 세밀하게 설계도를 그려놓은 것이 오늘 저녁에 봉독하는 이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 얼른 생각하면 쉬우나 좀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살펴볼 때는 동서남북 사면을 고루고루 잘 살펴 보거라.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어려울 때도 평안할 때도 춘하추동 봄여름 가을 겨울. 가정도 부부가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좋을 때나 궂을 때나 사면으로 이게 다 둘러 말씀으로 함께 가야 될 터인데, 좋을 때는 좋지만은 안 좋을 때 왜 좋은가. 좋을 때는 좋고 안 좋을 때는 뒤집어서 끊어버리지. 요즘은 뭐 화나면 다 끊어버리죠? 돈을 잘 벌어줄 때야 뭐 열심히 둘이 맞춰 살지만은 돈 벌이가 이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처럼 내가 그래? 봄에야 환경이 좋으니 함께 살고 가을에는 쓸쓸하니 나눠서고, 여름에는 뭔가 될 것 같으니 해보고 겨울이니까 다 자기 집으로 가버리고. 코로나 때는 예배당 다 비워버리고. 코로나가 왔으니 예배당에는 더 모여들어야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6.25 전쟁에 인민군들 밀어닥칠 때 공회교회에는 평소보다 교인들이 더 많이 모였습니다. 원수가 오고 죽고 사는 문제인데 이럴 때는 교회에 와서 더 매달려야지. 안 그런가요? 집에 사고가 나고 초상이 나면 교회에 더 와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집에 호주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장례를 치르게 되면, 온 가족들이 이거 어떻게 하나 하고 예배당에 더 모여들어야 될 것 같은데, 집안의 신앙이 호주 죽고 나면 이제 교회 가자는 사람 없을 테니까 세상으로 출발. 그 교회에 그냥 그 가정 문 닫아버리는 가정도 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교회 다녔지 뭐 아버지 없는데 내가 교회를 가? 말씀으로 씻는 물통 밑에는 사면 뺑 뚫려서 똑같은 네 규빗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똑같이 가로 세로 똑같이. 언제 어디서나 변치 않고 이게 평소에 받쳐주고 받쳐주는 말씀 생활이 말씀 생활이지, 좋을 때 말씀 생활 백날 해봐야 안 좋을 때 말씀 던져버리면, 간 안 좋아서 병원 가는 분이 뭐 위가 안 좋아서 병원 갑니까? 온몸이 다 건강해도 위가 안 좋으면 위 하나한테 잡혀가는 겁니다. 다 좋은데 장하나 잘못 되어놓으면 그 장하나 때문에 장례식장 가는 겁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지키려니까 이게 건강 지키는 게 어려운 거지. 말씀 생활도 앞뒤 좌우 뺑 돌아가며 똑같이 나는 말씀으로 끝까지 간다. 이렇게 받쳐주는 게 있을 때 그 위에 씻는 물통이 올라붙는 겁니다.
한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 둘이 받침이 되고 고생을 하고 올려놓은 겁니다. 그래서 세면대는 자기를 받쳐주는 밑받침 잊지 말아야 됩니다. 세면대가 예쁘다고 희다고 자랑 해 싸면 밑받침이 소풍 가고 그냥 없어져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이게 바닥에 탕 깨져서 산산조각이 나봐야 받침이 있어서 세면대가 이렇게 깨끗하지 내가 깨끗한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알 거 아닙니까? 뿌리 없이 둥치 없이 감나무 꼭대기에 감열매가 자기 혼자 달린 줄 압니다. 이러니까 난리입니다. 그런 쪽에는 영양분을 차단을 해가지고 뿌리, 둥치, 가지에 연결 없으면 감이 열리나 안 열리나 구경을 시켜줘야 뿌리 귀한 줄 알고 둥치 귀한 줄 알아야 열매가 열매가 되어 그다음에 희망이 있습니다. 씻는 물통 밑에 받침이 있더라. 그 받침은 이러하니라. 29절에 보니까 사면이 똑같이 판으로 다 막혀 있는데 그 판에는 사자 모양, 소 모양, 그룹이라는 천사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말씀 생활대로 하다가 손해 보지 않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말씀으로 살고도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회개가 염려되고 말씀으로 실행하는 게 염려가 될 때 받쳐주는 밑에 판때기에 있는 사자를 보며, 말씀으로 걸어가는 길 마지막에는 최후 승리다. 사자가 수풀 속에 보이지 않으면 바보라서 도망갔습니까? 편리하게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이지. 매복이지. 들판에 저 멀리 사자가 보이면 도망갈 때라도 준비할 수 있으니 다행인데, 아프리카 들판에 사자가 보이지 않으면 내 목 뒤를 노리고 있는지 옆에서 꼬나보고 있는지 더 불안한 법입니다. 사자란 싸우면 이기는 승리를 사자라 그럽니다. 말씀으로 회개하고 말씀으로 실행하고 걸어가라. 세상은 어떻게 되게요? 염려마라고 밑판에 받쳐주는 밑판에다 대고 사자를 그려놨습니다. 들판의 사자는 고장이 나도 말씀으로 걸어가는 길의 승리는 틀림이 없다. 사자 그다음에는 소를 또 판때기에다 대고 쭉 돌려놨습니다. 말씀으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이어가라 책임진다. 그리고 그룹이라는 말은 그룹 천사라 말인데 천사 중에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면 가브리엘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칼을 들고 나가는 군대의 장관의 이름은 미가엘입니다. 천사 중에 하나님을 모신 마치 하나님의 비서처럼 하나님의 수종하는 천사의 이름이 거룩입니다. 말씀으로 씻고 말씀으로 실행하는 길 그룹 천사를 밑판에다 대고 배겨 놨습니다. 말씀으로 씻고 말씀으로 걸어가는 길 하나님이 동행하는 길이다. 담대하게 나아가라. 승리의 길이며 전부가 건설의 길이며 충성의 길이며 최종은 하나님과 동행의 길이니라. 이렇게 말씀으로 씻는 물두멍 밑에다 대고 받침에 세 가지 무늬 모양을 만들어 담대하라 안심하라 끝까지 걸어가라. 이게 29절입니다.
그다음 30절에는 말씀으로 씻는 물두멍 밑에 받침 그 받침 밑에는 놋으로 된 바퀴 자동차의 바퀴가 4개인 것처럼, 놋으로 된 바퀴 4개를 네 모퉁이에 달아 놓거라.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를 연결하는 축 놋 축으로 연결 시키거라. 이 바퀴 따로 저 바퀴 따로 너 따로 나 따로 그러지 말고 너는 A로 믿고 나는 B로 믿고, 부모들은 옛날 사람이니 옛날식으로 아날로그로 믿고. 자녀들은 신식이니 휴대폰 들고 지리산 꼭대기에 휴양 가서 손가락으로 예배 보고. 여행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말씀을 상대하는 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네 면의 놋 바퀴를 똑같이 만들어라. 바퀴와 바퀴 사이는 축으로 연결을 하거라. 왼쪽 바퀴 따로 오른쪽 바퀴 따로 그러지 말고. 예전 부부는 아무리 잘났든 못났든 만나면 둘이 함께 먹고 돈도 함께 저금통도 하나 집도 하나 그랬습니다. 요즘은 이혼할 거 생각해서 다 명의도 처음부터 아마 따로 관리할걸요 잘못된 건 아닙니다. 여차하면 그냥 딱 둘이 또다시 또 그리 돼야 되니까. 축이 없는 연결이 없는 너 따로 나 따로 라는 말입니다. 바퀴라는 말은 주의 인도 따라 어디든지 끝까지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면 날래게 빠르게 쉽게 마구 따라가겠습니다. 이게 바퀴입니다. 바퀴가 양쪽으로 있더라. 근데 양쪽을 축으로 연결했더라. 나는 빨리 가고 싶으나 아내가 깨닫지 못하면 기다릴 수도 있어야 됩니다. 아내가 연보를 많이 하고 싶으나 남편이 주저하면 같이 맞춰서 적게 해도 그게 낫지, 몰래 빼다가 많이 하는 거 좋은 것 같아도 별로 좋지를 못합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남자가 돈 벌고 연보하는 데는 궁색하니 남자한테는 10원 얘기해놓고, 여자가 몰래 만 원씩 10만 원씩 갖다가 그냥 빼돌리는 거 우선은 좋아 보입니다. 근데 멀리 멀리 멀리 보면 기초는 부실합니다. 기초가 부실해 놓으면 집을 쌓아 올라가다가 어느 날 내려앉아버립니다. 조금 늦어도 단단하게 탄탄하게 올라가는 게 낫지.
아니 불신자들 세상에도 10% 기부한다고 요즘 막 자랑을 하고 그냥, 여차하면 전 재산을 갖다가 어느 대학에 기부했다 어디다 대고 좋은 일에 바쳤다고 생난리인데. 그 받쳐봐야 다 도둑놈들이 대부분 다 해먹습니다. 제 알기로는 아직까지 기부해가지고 그 기부가 좋게 쓰이는 꼴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물로 씻는 말씀으로 씻는 말씀의 생활 깨끗의 생활의 뒷받침이 있어야 된다. 그 받침 제일 밑에는 바퀴를 네 개를 나란히 똑같이 만들어 놔야 된다. 바퀴라니? 발로 걸어가면 되지 않는가. 말씀 따라 주님 원하면 어디든지 날래게 거침없이 질주하는 사람 되어라. 단 나는 따라가고 너는 뒤에 뒤에 따라 오거라. 이리 되면 놋 축으로 연결되지 않은 바퀴 4개가 지 멋대로 따로 움직이는 밭이 됩니다. 자동차 바퀴가 축 없이 4개가 따로 놀아놨으면 그거 뭐 10m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도로에 얹어놓으면 뭐 단번에 탈날걸요? 잘 움직이지도 않을 걸요? 운전수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도 않을 걸요? 바퀴 4개가 제 멋대로 면. 앞쪽에 둘 뒤쪽에 둘이 각각 축으로 묶여 있어야 이게 한 방향으로 넷이 나란히 갑니다. 전후좌우 뺑 둘려 하나님이 주신 두 기둥 같은 두 신앙이 또 이어지는 둘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추울 때는 추울 때를 이기는 신앙도 있어야 되고 더울 때는 더위를 이기는 신앙도 있어야 되고, 가난할 때는 지혜롭고 아끼는 신앙도 있어야 되고 좀 넉넉하면 남을 돌아보는 신앙도 있어야 됩니다. 이게 이어져 있으면 좋은데 이게 이어져 있으면 참 좋은데, 어려울 때 아끼다가 부자가 돼가지고도 부자 된 줄 모르고 거지 생활할 때처럼 박박 긁어 모으면 굉장히 독한 거 됩니다. 좋지를 못합니다. 또 부자로 살다가 망해서 가난한 사람이 됐는데 아직도 가난한 사람 된 줄도 모르고 손이 커서 펑펑 써대면, 자기 주변 많은 사람 돈을 갖다가 다 주저앉혀버립니다. 가난할 때와 부자 때에 두 바퀴가 연결이 되어 가난해도 비굴하지 말아라. 부자라도 교만하고 건방지지 말아라. 건강하다고 남 무시하지도 말아라. 건강 없어 요즘은 불편하다고 죽는 소리 하지 말아라. 건강할 때도 장애자처럼 조심하고 오늘 내일 죽는다 산다 해도 주님이 데려가면 데려가지만은 주님이 다 주시면, 죽을 사람 15년을 더 사는 경우도 있으니 담대하고. 양면이 다른데 다른 양면이 한 축으로 연결이 되어 나란히 한 길 한 방향으로 순종할 때 바퀴라 그러고 이 바퀴 사이에 축이 있더라고 이렇게 기록한 것이 30절입니다. 30절을 다 같이 볼까요?
성전에는 물두멍이 있어 말씀으로 씻어야 됩니다. 말씀으로 씻는 데는 밑에 받침대가 받쳐줘야 됩니다. 받쳐주는 받침 밑에 보니까 놋으로 된 놋 바퀴가 4개가 있더라. 사각이니 앞바퀴 둘 뒷바퀴 둘 4개구나. 근데 이 바퀴와 바퀴 사이에 축이 연결이 되어 있구나. 축이 연결이 되어 있구나. 우리교회는 대개 뭐 그냥 다 부부로 살고 계시지요? 돌아가신 분은 할 수가 없는 거고. 부부 부부는 계시는데 축이 잘라져서 부부 따로 노는 가정들은 안 계신가요? 그냥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대충 맞춰는 주지만은 너는 동쪽으로 가는데 나는 서쪽으로 간다. 언젠가 길이 있으면 나는 그냥 서쪽으로 갈 때 주저하지 않겠다. 이건 놋 축이 있는 것 같으나 중간에 잘라놓은 겁니다. 아예 없이 만난 사람도 있고. 그 축을 연결했다가 나중에 자르려면 돈이 드니까 처음부터 나는 독신이다. 미개한 것들이 결혼하지 뭔 선진국에서 결혼이라는 걸 해? 그건 죄인을 묶어가는 쇠사슬인데 바보나 쇠사슬에 묶이지 노예 짐승 바보들이나 쇠사슬에 묶이지, 나같이 지성인이고 잘난 사람이 쇠사슬에 나를 묶어? 나는 자유인인데. 그리고 귀신은 또 하나 죄의 쇠사슬로 묶었으니 저거 지옥으로 끌고 가라 그럴 겁니다. 부부제도에 자기를 묶지 않고 자유하면 7계명 죄의 쇠사슬에 묶여 생지옥 갑니다. 생지옥 유황 불 구렁텅이에 그 죄와 악령과 사망의 쇠사슬이 무서워 그걸 끊고 싶거든, 그냥 가정 부부가 두 바퀴가 놋 축으로 연결해 버리면 간단합니다. 부부의 둘도 자녀 둘도 세대가 달라도 그러면 벌써 네 바퀴가 되는 거죠? 교회는 목사 장로가 보통 앞바퀴 두 축이라 그럽니다. 교인은 그러면 뒤따라오는 머슴인가요? 교인의 남녀 반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오래된 교인과 이제 출발한 교인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 형편이 서로 좌우에 나란히 묶여 말씀으로 묶여 말씀으로 하나로 한 방향으로 인도를 따라가면, 각각 네 놋 바퀴가 있고 바퀴와 바퀴 사이에는 놋으로 된 축이 있고. 근데 이 모든 것을 받쳐주는 받침이 네 발, 받침 네 발 밑에는 받쳐주는 받침 네 발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으며. 성경에 어깨가 나올 때는 짐을 지는 책임을 감당하는 말씀으로 씻는 이 일을 감당하는. 아 뭐 주일 지키는 거야 말씀 누가 모릅니까? 불신자들도 기독교 교인은 주일을 안다고 다 아는데. 근데 주일을 주일답게 지내려면 공부에 돈벌이에 가정에 일정에 많은 문제가 따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하고? 양 어깨에 메고. 이럴 때 쓰는 게 어깨입니다. 어깨. 어깨란 가족을 책임을, 의무를, 내 사명을, 내가 맡아야 될 걸 지라고 하나님께서 양쪽 어깨를 이렇게 선반처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선반. 이 선반 위에 그냥 쌀가마니 하나를 얹어 봐서 메고 가면 남자고, 쌀가마니 하나를 어깨에 멨는데 푹 쓰러지면 그거 남의 ‘남’자는 떼 버려야 합니다.
여자는 한 마을 진다 그럽니다. 그래서 성경의 밭과 에바라는 말이 보통 여자 분들이 어깨에 메는 걸 그 분량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 가마니는 80kg입니다. 남자가 메면 메야 그게 남자입니다. 이런 게 어깨입니다. 소도 어깨에다 대고 모든 걸 걸어서 끌고 메고 전부 다 그럽니다. 그래서 성경에 어깨가 나오면 말씀이 맡긴 의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요구하는 위치 사명을 감당을 해라 이게 어깨입니다. 말씀으로 세면대에서 씻으려면 밑에 밑받침이 받쳐줘야 됩니다. 합판으로 받쳐도 세면대는 올려놓지만은 말씀으로 나의 인격을 씻는 이 일은 합판으로 안 되고, 놋으로 된 네 판이 받쳐주는데 여기에 사자가 있고 소가 있고 그룹이 있어, 말씀으로 살아가는데 하나님 앞에 승리의 사자와 충성의 소와 하나님을 모신 그룹 천사가 지켜줄 테니 담대하게 말씀으로 씻고 나가거라.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이 가라하면 네 모퉁이에 바퀴를 달고 어디든지 따라갑니다. 요즘 차바퀴 네 짝 달면 여수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건강한 사람이 옛날에 걸어서 10일 걸립니다. 요즘 바퀴 네 짝만 바로 달았다 하면 서울까지 서너 시간이면 그냥 쫙 가버립니다. 이게 바퀴 네 짝입니다. 바퀴가 없을 때는 주님이 서울로 가자해도 예 가겠습니다. 하고 선교사들 말 타고 걸어서 서울까지 6일 만에 갔네. 7일 만에 갔네. 10일 만에 겨우 갔네. 이게 바퀴 없는 걸음입니다. 바퀴란 반나절이면 가버립니다. 말씀이 가자면. 말씀으로 생각해 보니 씻어야 되겠고 말씀으로 생각하니 이거는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단정이 되거든, 바로 굴러가겠습니다. 질주하겠습니다. 마구 달려가겠습니다. 얼마나 빠를 건가? 바퀴를 달아놨습니다.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동차가 나올 때까지도 이 땅에 빠른 것을 가르칠 때 바퀴라 그럽니다.
바퀴 4개를 달고 바퀴끼리 축으로 연결시켜 양쪽 바퀴가 따로 놀지 않도록 연결시키는 그 축을 말합니다. 오늘 저녁 여기까지입니다. 말씀으로 나를 씻을 것. 기억력 좋고 신앙생활 잘하는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나와서 딱 들어보면 일주일 동안 말씀으로 씻을 테니까, 일주일에 두 번씩 교회 나오고 그럴 게 없습니다. 근데 한 번 듣고 헷갈리고 한 번 듣고 기억은 하는데 발이 실행이 잘 안 되면, 일주일에 주일 한 번 가지고 안 되니까 수요일 한 번 더 나오면 되는 겁니다. 수요일 예배가 그래서 생긴 겁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정규 수업에 잘 들으니까 학력고사 1등 했습니다. 인터뷰에 그래 나옵니다. 1등 말고 일반적인 학생은 수업시간에 들었는데 애매해서 학원도 다녔습니다. 그럽니다. 학원 다녀서라도 서울대 가면 됐지 뭐. 학원 다니기 싫다고 떨어지는 것보다야 가는 게 안 낫습니까? 주일만 예배 보고도 천국 가는데 지장이 없는 우수한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다니는 게 원래 정식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가지고 안 되면 학교 공부도 방과 후가 있고 학원이 있고 과외가 있고 방학 특강이 있는데 교회라고 없어 되겠습니까? 교회는 더 하지. 주일만 가지고는 아쉬운 분들. 주님 날 위해서 십자가에 이 고난을 당했는데 일주일에 하루 가지고 성이 차지 않는 사람. 또는 배웠는데 기억을 못하는 사람. 기억은 했는데 한 3일 말씀으로 살다가 배가 고파 엎어지는 사람은 수요일 한 번 더 나오시면 됩니다. 좋은 차에 준비를 잘하는 사람은 여수에서 출발하면 서울까지 바로 가버립니다. 차가 고물이면 돈이 없으면 또 급하면 중간쯤 가다가 전주쯤 가서, 휴게소 들러서 물 채우고 기름 채우고 바퀴도 한번 쳐다보고 엔진 쳐다보고 쉬고 한 번 쉬고 잘 가는 게 낫지, 좋은 차 운전 잘하는 사람 흉내 낸다고 여수에서 출발해서 서울까지 직행 간다고 같이 따라가다가 차가 고물이라 엎어지든지. 저처럼 나이가 많아가지고 가다가 조는데 끝까지 간다고 그러다가 사고 나면 그거 될 일입니까? 중간에 휴게소 한 번 들르는 거지. 휴게소 한 번 가지고 안 되면 어떡하면 되죠? 금요일 한 번 더 오시면 됩니다. 주님 가신 길은 너무 높고 나는 너무 낮고, 세상은 죄와 흑암이 너무 강하고, 내가 준비한 신앙과 기도는 너무 부족하면 매일 새벽 나오셔도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돈벌이에 문제가 됐는데 요즘은 뭐 돈 안 벌면 국가에서 다 먹여 살리고 마지막 장례비까지 다 나옵니다. 묘지까지 공짜입니다. 천집사님 돌아가실 때 보니까 장례비 다 나오고 묘소 값 다 나오고, 오는 사람 밥값 다 나오고 아끼면 돈이 남겠더라고요. 요만하면 천국 아닌가요? 이렇게까지 말세를 퍼부어 댔는데 돈에 환장에서 더 기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거 괘씸하게 보지 착하게 보지는 않을 겁니다. 조심하시고 만사 알아서 오늘 저녁 따라 하십시다. 물두멍(물두멍). 씻는 겁니다. 씻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다고요? 받침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도 뒷받침하는 거고 아이를 위해서 뒷받침하는 거고 다 알아 들으시지요? 근데 부모가 뒷받침해가지고 올려놓으면 이것들은 부모 뒷받침 절대 모릅니다. 아는 놈의 인간 하나도 못 봤습니다. 저도 몰랐으니까. 제가 몰랐는데 알아요? 그럼 저보다 더 훌륭하신가요? 와서 설교하시고 제가 배우겠습니다. 부모 초상 치고 나니까 받침이 굉장히 좋고 나는 그 위에 올라앉아서 공짜로 믿고 공짜로 살았구나. 초상 쳐야 아는 것이 부모의 뒷받침입니다. 그래서 초상 때는 울었습니다. 요즘은 초상에 울지도 않습니다. 짐승들만 사니까 괴물들만 사니까. 주인 죽으면 애완용 개도 100만 원짜리 더 나가는 거는 같이 울어나 주던데. 애완용 개 이거 저 개장국 해야 될 개가 애완용 하는 개들은 주인 죽어도 이거 또 이주인 저 주인 찾아가지고 울 줄도 모릅니다. 참 희한한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내가 씻는 것이 복인데 이 복을 위해서 밑받침이라는 게 있다. 이 밑받침 밑에는 바퀴가 4개가 있는데 말씀이 가자면 순종하는 거다. 근데 순종은 4개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둘 둘 묶어서 나란히 가야 이게 한쪽으로 좋게 가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자기 살아온 지난 5일을 돌아보며, 주일은 동쪽 월요일은 서쪽 예배 때는 남쪽 또 학교 가면 북쪽 나는 사방으로 흩어져 살았는가. 말씀을 따라 곧게 한쪽 방향으로 순종을 했는가. 여러 가지 면으로 살펴봅니다.
1차: K.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