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30929 금새
제목 : 말씀으로 씻는 물두멍 생활이 되려면 받쳐 주는 신앙의 받침이 필요
찬송 : 77장(어지러운 세상 중에)
본문 : 열왕기상 7장 28절 -
그 받침의 제도는 이러하니 사면 옆 변죽 가운데 판이 있고 변죽 가운데 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고 또 변죽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이 있으며
성전을 크게 돌과 나무로 짓는 집들 건물 건축이 있었습니다. 본관이 있고 현관이 있고 둘러가며 다락과 골방들이 있고 여기까지가 말씀을 모시는 성소, 지성소, 현관 또 둘러있는 다락방입니다. 건축입니다. 말씀을 모신 건축 그다음 구조,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머리가 있고 몸 있고 팔다리가 있고, 라고 하는 것처럼 또 마음으로 말을 한다면 생각이 있고 또 지성이 있고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고 욕심도 있는 것처럼 크게 크게 이렇게 기본적인 건물을 말하는 겁니다.
그다음, 말씀을 모신 건축 구조에 여러 가지 장식이랄까, 또는 필요한 도구 기구들이 있습니다. 집을 건축해놓고 아파트로 생각해 보시죠. 아파트 본체를 만들어 놓고 들어오는 현관 문짝 없이 그거 집 되겠습니까? 문짝들 다 있어야 될 거고 또 들어오는 현관에 신발장 있어야 될 거고 또 부엌 쪽에 싱크대 부엌 설비들 있어야 될 거고 이게 이제 실제 집을 움직이는 살아가는 도구들입니다.
말씀을 모신 성전. 본관 현관 또 부속건물 달아 이건 집이고 이 집을 사용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오면 뜰 한가운데 먼저 놋으로 된 제단 놋 제단이 있고 놋 제단 바로 조금 뒤에 제사장이 씻는 바다라 이름 붙인 큰 물통이 있고 그 물통 뒤쪽으로 양쪽에 5개씩 좀 작은 물통 그 이름이 물두멍입니다. 물두멍. 큰 물통은 제사장이 씻는 바다 또 놋 제단 위에 올려 태워버릴 짐승을, 짐승을 잡아서 씻는 제물을 씻는 것은 물두멍, 큰물은 제사장이 씻고 바다, 좀 작은 물통은 태워드릴 짐승을 쪼개고 씻어버리는 씻는 작은 물통은 물두멍, 이것들은 전부 다 놋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본관 들어가는 앞에 있는 놋기둥 둘, 그 놋기둥 둘도 놋으로 만드는 도구들입니다. 이게 이제 굵닥굵닥하게 큰 배치물 들입니다. 놋기둥 둘, 놋 제단 하나, 두 가지 그다음 놋 바다 셋, 놋으로 만든 물두멍 넷, 이거는 뜰에서 보면 보이는 큰 도구들 기구들 설치물들입니다. 그다음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고 놋으로 여러 가지 작고 큰 여러 가지 도구들도 다 만듭니다.
일단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은 놋기둥에 이어 놋바다 둘, 세 번째 놋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물통 물두멍을 27절부터 공부하고 있습니다. 27절부터 39절까지 물두멍. 번제로 태울 제물들 양이나 소를 먼저 잡으면 조각조각 각을 뜬다 그럽니다. 이 부분 저 부분 조각조각 각을 떠서
이걸 씻은 다음에 올려놓습니다. 이 각을 뜬 다음에 놋제단에 태우기 전 씻어놓고 올리는데 이 제단의 제물을 씻는 곳이 물두망, 물두멍은 위의 세숫대야처럼 크기는 아주 큽니다. 이거 두 배니까 약, 큰 물 다라이 다라이보다 더 좋은 말이 없나요? 세숫대야는 너무 작고 윗부분은 씻는 물통 씻는 싱크대처럼 밑에는 받침, 아래위로 이렇게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먼저 씻는 물두멍에 밑을 받쳐주는 이게 28절의 받침입니다. 물두멍에 받침은, 받침은 제도가 이러하니라 이렇게 만들어라, 사면 옆 사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뒤 좌우 옆 사면으로 되어 있다,
씻을 때는 말씀으로 자기가 회개해야 되는 것 이게 잡는 겁니다. 말씀으로 자기가 헌신 희생해야 되는 것 이것도 자기를 잡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죄와 칭의라고 그러지요 내 속의 말씀이 틀려 말씀으로 죽여 버려야 될 악습, 그런 부패성, 그런 잘못된 나의 안팎의 모든 것 이거는 잡아버려야 되는데 이거는 사죄에 해당이 되고 또 말씀으로 새벽에 교회 가자, 일어나라, 가라 죽이는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따라 나아가는 순종의 자기를 잡아끌어야 되니 칭의가 되어 집니다.
이런 좋은 가을날 이런 좋은 추석 새벽에 또 추석이 주일과 마주치면 가정 예배 보는 날이라고 요즘은 또 교회에서 이름을 ‘가정예배의 날’ 해서 추석은 교회 휴가 들어가고 30년 전에도 부산 해운대 살기 좋은 동네 예배당에는 명절과 주일이 걸리지 않았으나 명절 주변에 이렇게 딱 걸리니까 이번 한 주간은 다 고향 가시고 집에서 가정교회 예배 보시고 우리 교회는 휴가 들어갑니다, 해서 뭐 그냥 간판을 커단하게 붙여놓은 정도입니다. 30년 전에 그랬지. 그래도 차마 가는 분은 가더라도 또 교회는 교회대로 주일은 당연하고 수요일 금요일도 그대로 가야 되지 않느냐 이게 좀 지켜지다가 코로나 2년이 들어가지고 완전 다 무장해제 다 해버렸습니다. 코로나 2년에 세계가 뒤흔들면서 한 번 뒤죽박죽 시켜버리니까 아주 급할 때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조건을 붙여놓으니까 그다음, 명절 겹쳐버리면 이제 주일은 다 나가떨어지게 생겼습니다.
이런 안팎의 시험, 이런 안팎의 뒤흔들어 대는 세상이 타락 후 죄악 세상입니다. 내 속의 말씀과 다른 것은 죽여 꺾어야 되고 사죄, 이게 속죄제에 주로 해당이 됩니다. 크게 말해서 번제는 주의 인도를 따라 가다 보면 새벽도 나오고 주일도 나오고 모두들 휴가 가는데도 휴가를 가서라도 또 예배는 예배고 이게 이어질 때에 번제라 그럽니다. 둘, 그런데 그 속에 들어있는 마음이 감사해서, 감사해서 주님과 동행하면 화목이라 그러고 화목제입니다. 그대로 끝까지 이어지면 그게 바로 영생의 소망입니다.
영생의 소망은 레위기 1장에서 7장까지 5대 제사를 기록해놓고 마지막 부분에 가면 각종 서원제라는 게 있습니다. 이 서원제가 주로 사죄 칭의 화친 다음에 소망에 해당되는 겁니다. 너 원하는 대로 끝까지 나가 봐라, 이렇게 되어 지는 겁니다. 여기 번제란 5대 제사의 두 번째, 5대 제사의 두 번째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5대 제사의 첫 번째지요, 5대 제사의 첫 번째가 번제, 소제, 속제죄, 속건죄, 화목제 순서가 잘못됐죠, 번제 두 번째가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중에 번제는 다 태워버린다고 번제고 속죄제 속건제 태우지 않는가, 태우는 방법이 달라 그렇지 번제도 태우고 속죄제, 속건죄도 태우는 제사입니다. 무엇을 태우든지 놋제단 위에 자기를 잡아 올려놓아야 된다면 그게 죄로 인하여 잡아 올리든 실수로 인하여 잡아 올리든 또는 말씀을 따라 헌신하고 순종하다 보니까 자기를 잡아놓는 것이 되어 집니다. 놋제단 위에 태우는 제사 제물은 먼저 물두멍에서 씻고 올라가라, 말씀으로 닦고 말씀으로 흔들고 말씀으로 헹구고 말씀과 다른 것은 전부 털어 내고 라는 말입니다.
왜 놋제단 위에 올라가야 되는가? 왜? 이유가 뭔가? 말씀으로 살아야 될 인간이 선악과 먹고 말씀으로 벗어난 것이 인류의 모든 불행의 시작입니다. 이걸 해결하는 게 주님의 십자가고 그 십자가를 미리 바라보며 예표적으로 주신 구원의 구약의 구원의 방법이 여기 성전의 제단에 올라가기 전에 먼저 씻는 물두멍입니다. 물두멍. 이 씻어 올려놓는 물두멍 밑에 “받침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받침에는 사면이 있어야 되느니라. 한 면, 두면, 세면으로 안 됩니다. 창세기 1장 네 번째 날에 주신 춘하추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봄날 시작이 있고 마무리하는 가을도 있는 것이고 혹독한 겨울에 버텨야 될 때도 있는 것이고 또 여름에 땀 흘려 절정의 고생을 겪어야 되는 때도 있는 것이고 시기로 말하면 사철이 있는 것처럼 똑같은 봄, 똑같은 여름이라도 빈부귀천이 있는 것처럼 많아서 좋을 부, 없어서 애 터지는 빈, 빈부도 있는 것이고 있든 없든을 떠나서 사람이 품위 있고 사람이 형편이 좀 귀할 때도 있는 법이고 물품은 없어도 사람은 귀할 수 있습니다. 물품은 차고 넘치는데 강아지다, 돼지다 소리 딱 듣기 좋은 천박함도 있는 겁니다.
춘하추동도 있는 법이고 같은 봄, 같은 여름인데도 빈부귀천도 있는 것이고 똑같은 빈, 똑같은 부 안에서도 희로애락도 있는 겁니다.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고 언제든지 빠짐없이 주님 앞에 헌신, 자기를 잡아야 될 때는 언제라도 어느 때라도 어떤 형편에라도 라는 말이 물통의 받침의 사면입니다. 사면. 너를 잡아야 될 일이 있느냐, 사면 뺑 돌아가며 하나라도 떼놓지 말아라, 기쁠 때는 견딥니다. 슬플 때도 견뎠습니다. 그런데 아주 좋은 소식이 들어올 때 또 견뎠습니다. 그냥 뭔가 좋아서 흥얼거리고 나태해질 만 할 때 죄에게 붙들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쁨, 슬픔 다른 것은 다 이기는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그 자리에서 그냥 다 끌어 엎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10년 노력했다가 화딱지 한번 나면 뒤집었고 새 출발, 또 이번에는 20년 버티고 유지하다가 또 한 번 자극받으면 휙 뒤집었고 끝, 60년 주님 앞에 순종하고 한 길 걸어가다가 61살에 60년 믿은 걸 다 뒤집는 사람도 있습니다. 독화살이란 머리에 맞아야 죽고 발가락에 맞으면 괜찮고 그런 거 없습니다. 몸의 어느 부위에든지 독화살은 맞으면 독으로 죽는 겁니다. 화살로 죽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성경의 화살은 전신 갑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부를 다 뒤집어 쓴 방어가 있어야 된다, 전신갑주란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여기에 주님 앞에 바치는 말씀으로 자기 일을 바쳐야 되는 경우 바치기 전 말씀으로 먼저 따져보라, 저하고 관계된 사례 중에서는 해외 선교 나가는 단체가 우리나라에 아마 몇 백 개는 넘을 겁니다. 100개는 족히 넘고 몇 백 개는 될 겁니다. 몇 백 개 되는 선교단체 중에 한두 손가락 꼽을 만큼 제일 선발이 어렵고 정의의 선교사를 뽑느라고 몇 년 훈련시키고 머리도 아주 탁월해야 보내는 그런 선교부 몇 년을 노력하고 이제 드디어 파송받기 직전 자꾸 망설여지는 겁니다. 이거 하나님의 인도가 맞냐, 안 맞냐 질문이 종종 들어옵니다. 그때마다 드리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부인은 선교를 하셨나요? 부부 둘이 마음이 똑같으면 보통 망설이지 않습니다. 부인은 선교하셨나요? 남자가 간다니까 여자가 이혼할 수 없고 남자가 좋으니 남자 거슬리고 옳은 일 하는데 거슬리기가 어려워 그냥 함께한다고 준비는 했으나 저는 순교 준비가 100%인데 아내는 영 뭐 그냥 이그적 거립니다, 그 상태로 선교지 가 놓으면 아내 선교하느라고 원주민 선교는 겉돌지 어려워집니다. 선교도 안 가본 분이 어떻게 아느냐? 한국에 온 선교사들 내막을 뒤져보면 그렇습니다. 부부가 같으면 선교를 하는데 같기는 어려워도 이해는 하고 맞춰주면 그래도 되는데 네가 가니 나는 따라왔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이제 이래 놓으면 이거는 내부 전쟁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는 게 급한 게 아니라 아내도 믿는 사람이고 잘 믿는 사람이나 그 안에 아직도 선교를 못한 부분, 마저 선교하시고 가셔야지 일부 이래놓고 끌고 가 놓으면 전쟁터에 끌려간 아군이 있으면 얘들이 뒤로 빠지고 움직이다가 전선이 무너져 버립니다.
제단 위에 올려놓는 제물 중에 선교가 제일 센 어려운 헌신입니다. 그다음이 일반 목회고 목회 위에가 선교입니다. 선교, 일반 목회, 그다음 가정을 가지고 세상생활도 하면서 절반 정도 움직이는 전도인도 있을 것이고 여러 청리?가 있습니다. 제단 위에 태워드릴 제단 위에 바칠 최고의 절정의 선물인 선교라는 제물 자기를 완전 잡고 자기 가정을 잡고 자기의 자녀까지 다 잡아서 바쳐야 되는데 바치기 전에 어떻게 한다고요? 물두멍에서 이걸 씻어야 됩니다. 말씀으로 이면도 보고 저 면도 보고 이건 말씀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니 나도 가는 것은 아닐까, 또는 명예심이 아닐까, 또는 국내에 있을 데가 없으니 국내에 자리 잡고 있을 데가 없으니 현실 도피 삼아 가는 것은 아닐까 아예 해외 여행감으로 아예 선교라는 이름 걸고 가는 것은 아닐까? 이건 뭐 모두가 다 알지만 도배칠을 해놓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문에다 대고 일주일 필리핀 단기 선교 갑니다. 체험학습 놀러 가는 겁니다. 체험학습 놀러 가기는 한도 없이 많습니다. 또 이 사람들이 와서 많이 주고 가니까 현지 선교사들은 돈 버느라고 또 단기 선교 불러댑니다. 그러면 안 봐도 그거 선교 아닙니다. 많이 해봤으니까.
전국에서 서부교회 주일학교 소문 듣고 밀려와가지고 주일 아침 심방 가는 거 토요일 날 심방 가는 거 직접 따라가서 배우고 싶습니다, 이래가지고 뭐 반사 한 명에게 2명 3명 4명을 이렇게 데리고 가는데 그래가지고는 전도 심방 안 됩니다. 상대방이 딱 알아버립니다. 뭐야? 우리 집이 뭐 관광이야? 관람이야? 그 부모 사이사이 가가지고 겨우 겨우 하나씩 데리고 가는데 얼른 딱 봐도 매일 오는 그 반사 옆에 분위기가 딱 보니까 이거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한눈에 봐도 이거 뭔 취재처럼 왔는데 실제 전도 심방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까? 밀려와서 오는 분들이 하도 보자니 희생 각오하고 보여주기는 보여주는데 참 10년 이상 그렇게 했습니다. 서부교회 주일 학교가 뒤에 이렇게 주저앉게 되는 여러 가지 요인 중에 중요한 한 면입니다. 그렇다 해도 불가피한 경우는 있지만은 아예 대놓고 ‘단기 선교’ 그냥 광고에서 전부 선교는 앞에 핑계 대고 이번에는 말레이시아, 여행 터키 여행 이번에는 미국 여행 미국으로도 단기 선교 여행을 갑니다. 너희 예배당에다 대고 단기 선교를 차라리 하지.
제단 위에 나를 태워드릴 때 제단 위에 내 시간을 태우는 것도 있고 내 기술을 태우는 것도 있고 내 돈을 태우는 것도 있고 내가 선교사로 파송이 되는 나 인생을 태우는 것도 있는데 태워만 대면 제물이냐 태우기 전에 이게 태울 것인지 털어버릴 것이 있는지 먼저 씻어대라, 이걸 묻혀서 올라가서는 안 되겠고 이거는 털어버리고 씻어버리고 올려 놓거라, 너는 잡아다가 올려 놓거라, 그런데 너를 잡아 올려놓을 때 떨어버리고 털어버리고 헹궈 버릴 것이 있는지 잘 보라, 말씀으로 씻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물두멍에 받침이 있는 겁니다. 그 받침은 사면이 다 막혀 있고 그 사면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을 다 박아 넣었습니다. 씻을 때 말씀으로 씻을 때 사자의 승리 잊지 말아라. 말씀으로 씻는 것이 전부 승리하는 거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그룹의 세계다, 말씀으로 씻을 때 소처럼 무언의 용사로 끝까지 걸어가라. 말씀으로 씻어 바치는 이 일이 주님 앞에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그런 충직한 충성이 되느니라. 이걸 어떤 면으로든지 다 감안하고 쉬고 그다음 걸어가는 걸음이 물두멍의 밑받침입니다. 이게 받침이 되고 그 받침이 되고 그 받침이 떠받쳐주고 그 위에 씻는 물통이 올라가지 밑받침 없는 물통 없습니다. 공중에 그냥 떠 있는 거 아닙니다. 죄악의 세상 땅바닥에 그냥 놓고 엎드려 씻는 것이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살려면 헌신은 필수인데 나의 헌신 나의 자기 부인은 그 밑받침 받침이 뭐냐 무엇이 먼저 있어야 되느냐 선교 갈 사람이 놀기 좋아하는 아내하고 결혼해 놓으면 아예 그냥 선교는 포기를 하는 겁니다. 네가 마음속에 선교를 어릴 때부터 소망에 품었더냐, 결혼할 때부터 선교 갈 그 날에 적합한 사람을 골랐어야지, 이게 밑받침입니다. 그 받침 위에 올라가는 겁니다.
결혼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목회 제 마음대로 못 나가는 겁니다. 해외를 나가려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야 되겠지요? 나는 교회에 충성해야 되겠다, 내가 교회에 충성할 때 박수 칠 수 있는 여자를 만나야지. 그런 남자 만나야지. 나는 기도 생활을 해보겠다, 어떤 희생, 헌신이든지 내 마음의 자세는 그리 되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