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9.25 왕상7:23 규격과 장식, 신인유기적 말씀 성결생활, 그 은혜 결과는 분리되지 않는 확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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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3.9.25 왕상7:23 규격과 장식, 신인유기적 말씀 성결생활, 그 은혜 결과는 분리되지 않는 확신 신앙

관리1 0 61 09.2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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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월새

제목 : 규격과 장식, 신인유기적 말씀의 성결생활, 그 은혜의 결과는 분리되지 않는 확신의 신앙

찬송 : 87장(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본문 : 열왕기상 7장 23절 -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말씀 생활 성전, 성전의 한복판 들어가며 제일 중앙에 우리의 죄 해결을 위해 잡아들이는, 잡아서 태워드리는 놋 제단이 있습니다. 그 놋 제단 조금 들어가면서, 들어가면서 놋 제단 조금 왼쪽 그다음 뒤쪽으로 놋 제단과 성전 사이 여기에 바다라 이름 붙인 큰 물통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재료는 놋입니다. 완전히 녹여 그다음 주님이 원하시는 틀에다 대고 부어 만들어내는 겁니다. 놋은 어려움 속에 연단 속에, 내 생각 내 마음 말씀을 알기 전에 나, 세상에서 만들어진 나, 말씀과 다른 나를 완전히 부인해버리는 것이 녹이는 겁니다. 안팎 환경을 어렵게 해주시고 그 환경을 통해 나를 완전히 부인할 때 내가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아니구나, 완전히 녹여버릴 때 그리고 주님의 현실의 인도 그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만들어지는 것이 이게 놋으로 만든 제품들입니다.

여기에다 대고 물을 많이 부어 그 이름을 바다라, 한량없이 씻고, 씻고 한량없이 씻어야 되는 게 우리들입니다. 그렇게 씻는 만큼 은혜는 부어집니다. 이런 면을 가르쳐 씻는 바다를 부어 만들었는데 직경이 십 규빗이요 한 규빗은 한 사람의 몫입니다. 좌우의 폭, 넓이라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되는 내가 함께 가야 되는 내게 주어진, 한 규빗은 한 폭입니다. 열 규빗이란 내가 좌우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열이라고 그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이면도 씻고 저면도 씻고, 씻고, 씻고 전부 말씀으로 나 자신도 이면 저면 전부, 내 식구도 내게 준 모든 면으로 다 씻어 열 규빗입니다. 그 모양이 둥글었더라, 둥근 원이란 그 말 그대로 원만하게, 모든 면으로, 빠짐없이, 동서남북도 전부라는 뜻은 뜻입니다. 동서남북. 좀 줄여서 말한 겁니다.

“좌우에 두 기둥이 있더라” 앞뒤 기둥은 없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나아가라” 인생살이 신앙살이 걸어갈 때 좌로나 우로나 흐트러지지 말고 중앙에 딱 말씀으로만 걸어가고 좌나 우나 흔들리지 말아라, 그래서 두 기둥입니다. 또 사면이라는 것은 동서남북을 강조해서 전부라는 뜻입니다. 원만이라는 것은, 원이라는 것은 아예 빈틈없이 완전히 뺑 둘려 어떤 면으로든지 모나서 튀어나지 말아라, 남들이 죄 짓는데 너만 죄 안 짓겠다고 버텨서 튀지 말아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회식하는데 술잔이 들면 죄 짓는 사람 죄 지을 때 이럴 때는 또 슬쩍 한잔하면서 원만하게, 그 원만이 아니라 말씀으로 걸어가야 되는 말씀 인도를 따라가는 이일에 아침에도 저녁에도 바쁠 때도 한가할 때도, 좋을 때도 궂을 때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든 면으로, 모든 면으로 꼭 같이 씻어라, 그래서 물통이 일부러 둥근 물통으로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직경이 십 규빗인데 높이는 오 규빗이면 원을 절반 자른 정도입니다. 무조건 완벽한 반 원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일단 원통의 절반을 자른 모습으로 생각하시면 되어 집니다. “높이는 오 규빗 이라” 왜 다섯일까? 사람에게 주신 전부가 열인데 성경에 좋은 뜻으로 다섯을 쓸 때는 둘이 합해야 되는, 두 사람의 몫 두 사람이 함께 해야 되는 일에 너희에게 주신 몫은 네가 다 하거라, 그럴 때 항상 5를 씁니다. 부부 둘이 함께 가야 되는 가정교회에 나 하나를 보고 다 하는 것은 열인데 둘이 함께 해야 되는 일에 한 사람의 몫은 5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래 위에 높이가 5가 되면 위의 5는 누가 담당할 것인가? 하나님께 맡겨놓고. 다섯 규빗은 아래로 다섯 규빗은 네가 씻고 네가 해야 될 전부고 그 위로 다섯, 하늘에 향한 것은 주님께 맡겨놓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그 한날이 우리가 다 하는 다섯입니다. 오늘은 주님을 따라 내가 이렇게 하는데 그 다음 날은 어떻게 됩니까? 그건 맡겨 놓거라.
 
출애굽기 16장 18절에 광야로 인도하시던 주님이 먹을 것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한 사람이 한 호멜씩을 거두어 오거라,  한 집의 식구대로 한 명당 한 호멜입니다. 성경의 호멜이란 그냥 대충 우리말로 한 되입니다. 한 되보다 조금 더 된다는 말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 되입니다. 성경에 이런 단위가 나올 때는 생활로 연결해 보면 대충 감이 잡힙니다. 두 손을 펴서 이렇게 들 수 있는 정도 이게 한 되입니다. 한 규빗은 한 사람이 이렇게 지나갈 수 있는 이 길이고 한 사람당 한 호멜 분량으로 거두거라, 한 사람 앞에 한 대 정도인데 식구가 다섯 명이면 다섯 되, 식구가 열 명이면 열 되입니다. 우리는 열 명이니까 대충 열 되 그런데 좀 넉넉하게 담아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이 걷은 자도 집에 가서 먹고 마지막에 계산해 보니까 남음이 없더라, 괜히 하나님이 오늘은 만나를 주셨으나 내일 만약에 주지 않으면 어떡할 건가? 한 사람에게 한 호멜 씩 거두라고 했는데 식구 수대로 호멜인데 오늘은 만나를 주셨으나 내일 만약에 하나님이 깜빡 잊거나 못 주시면 어떡할 건가? 이런 인간들은 한 호멜를 계산하면서 고봉으로 그냥 어쨌든 많이 가져갔는데 많이 가져간 자도 남음이 없었더라.

하늘에서 만나를 깔아 놓을 때는 무한하신 하나님이 나 굶는 꼴은 못 보겠다 하시는 뜻이니 그냥 또 다른 사람 좀 많이 퍼가도록 전부 떼거리로 몰려 나갔으니 뭐 멀리 가서 거두는 것보다는 가까운 데서부터 거뒀을 텐데 촘촘히 거두다가 옆 사람 설치는 바람에 좀 한 호멜을 좀 덜 담은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었더라” 하나님은 이렇게 관리 역사를 하는데 싸워가며 이리저리 하나 둘 긁어대기를 부지런해서가 아니고 성실해서가 아니라 욕심이 지나쳐 남을 쥐어박고 무리하게 무리하게 박박 긁어대면 더 모일 것 같은데 그 사람의 분량대로 “각기 분량대로 거두었더라”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고 한 호멜 씩 거두라 해 놓고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결론이 가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말씀 보면서 오늘 주일이면 주님이 책임지십시오, 하고 책을 덮고 돈벌이 딱 덮어버리는 겁니다. 이런 편법 저런 비법, 불법, 빼고나리를 쳐봐야 결국 자기가 자기 속는 겁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내일은? 내일의 주님이 세상을 없애고 재림을 하실는지 또는 나를 불러가실는지, 내가 내일을 살아야 된다면 내일에 필요한 것은 내일에 주님이 알아서 하실 테니 내일 일은 주님께 맡겨놓고 내일이 위쪽에 오 규빗입니다. 오늘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은 내가 씻고 내가 감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물통의 높이가 오규빗입니다.

그러면 직경이 십 원이면 뺑 둘러 3을 곱하면 십 규빗이니까 뺑 둘린 주위, 주위라는 것은 옆이란 말이 아니라 뺑 돌아가는 길이는 “삼 십 규빗 줄을 두를만 하며” 삼 십 규빗, 3이 붙었으니 하나님이 보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세계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7이란 하나님의 완전수, 하나님이 보실 때 됐다 할 때까지 3일은 삼위일체 3의 하나님 자체의 숫자니 오늘 내가 씻을 거 다 씻고 내가 할 수 있는 이것으로 위를 향해 또 다시, 또 다시 쭉 올라 하나님의 형상 닮을 때까지 우리는 원래 만들어지기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말씀을 떠나 이게 묻고 저게 묻고 엉망이 돼버렸지. 다시 말씀으로 다 씻어버리면 원 모습이 나옵니다. 이게 삼십 규빗입니다. 엄마가 아침에 아이들을 깨끗하게 씻어 딱 입혀 풀어놨는데 엉망진창 놀다가 저녁에 보니까 그냥 전부가 다 엉망입니다. 전부 담가서 씻어서 빗어서 또다시 이제 말끔하게 해놓으니까 원래 모습이 나오는 것처럼 이게 삼십 규빗입니다.
 
그다음 24절입니다. 공과 같은 둥근 것을 절반 자른 게 바다라는 물통 모습입니다. 삥 두르면 삼십 규빗인데 그 삥 두르는 제일 끝부분을 가장자리라 그럽니다. 가장자리. 강단으로 말하면 이렇게 되어 있는 이게 가장자리입니다. 이 가장자리 바로 밑에 돌아가며 박을 만들어 놨습니다. 박. 호박 수박, 박 박 종류는 넝쿨에 달리는 걸 박이라 그럽니다. 주렁 주렁 주렁. 지난 1년을 살았으면 지난 1년의 1월 2월 여름 가을 겨울 너는 무엇이 네 끝에 열렸던가? 젊은 날을 살고 나니 주먹만 열렸습니다. 사방에서 저놈 나이 많으면 두고 보자, 원한이 주렁주렁 열린 사람, 나이 많아서 사방에서 마구 쥐어박아 나뒹굴어져도 오래 살아본 분은 그놈 젊을 때 주먹질하더만 사방에서 주먹질로 쥐어박아서 나둥그려져도 당연하지, 그 사람은 이게 열린 박 입니다. 20년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더만 그렇게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 권력이 그런 돈이 그런 명예가 주렁주렁 열렸구나. 오늘 내게 열려 있는 것은 지난날 내가 노력한 그 열매입니다. 열매 중에 주렁주렁 열려 참 잘 보이는 이게 박 입니다. 삼십 규빗 뺑 두른 원형, 그 밑에다 대고 박을 주렁주렁 만들어 놓거라, 한 규빗에  열개씩 한 규빗에 10개씩의 박을 쭉 사방에 다 둘러놨으니.

그런데 24절 끝에 보면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겁니다. 이거는 물통에서 떼놓지를 못합니다. 물통과 일체입니다. 그리고 박을 한 줄이 아니라 한 줄의 밑에 두 줄로 박아놨습니다. 촘촘하게 말씀으로 씻고 또 씻어 말씀을 닮은 인격, 말씀을 닮은 행위, 말씀을 닮은 생애, 말씀을 닮은 말투,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까 생겨지고 앉혀진 그런 형태들 한 줄이 아니라 두 줄로 겹쳐 둘러놓았습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씻으면 말씀으로 실행하고 말씀으로 씻고 걸어가다 보면 말씀의 열매들이 이렇게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마다 무엇이 열려 있는지 결혼과 출산에 충실하다면 가정의 아이들이, 손주들이 조례교회 사택처럼 두 줄로 촘촘하게 열려야 될 겁니다. 신풍사택처럼 조금 부족해 놓으면 남이 보면 멀리서 보면 많은 듯 한데 자세히 와서 보면 한 규빗의 열이 아니라 좀 성글 겁니다.

원통의 물통인데 바다는, 귀찮다고 안 낳아버리면 물통에 씻기는 부지런히 씻는데 열린 박은 하나도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물통은 모양이 떡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니까 박으로 된 물통이 없더라, 열린 것이 없더라 ,가정 출산 면으로는 그런 겁니다. 한 해가 지나가며 성경을 5독했습니다. 5독을 두 번 10독 해버렸습니다, 이런 것도 있을 거고 기도 생활, 이면 저면 여러 면을 가르쳐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10개씩 있어서 하나 둘 열개인데 오늘 우리로서는 내게 준 이면, 이면 이면마다 열개의 박이 다 열려 또 겹으로 열려 아이는 하나 낳았지만 나로서는 낳고 싶었고 달리 피하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이 주신 게 하나면 하나가 열이 되는 거고 둘 낳는 것이 나로서는 건강과 모든 형편에 그것이 최선이었으면 둘 낳은 둘이 열이 되는 거고 구약의 열은 숫자로 열이고 신약의 열은 내게 준 기회에 저는 있는 힘 다했습니다, 각자 다 다른 겁니다. 1

“열 개씩 있어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 함께 만들었더라” 말씀으로 씻는 것과 그 말씀이 주는 은혜의 열매라는 것은 이게 따로 놀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말입니다. 국가를 상대로 공사하고 나면 돈 떼먹지는 않습니다. 개인을 상대로 건축하고 사업하다가 돈 못 받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일은 했는데 돈은 따로 떨어져 나뉠 수가 있지만 부부는 약속하고 살다가 하나가 나가떨어질 수는 있지만 주님과 동행한 것에 주님이 어길 리는 없는 거고 말씀의 성결 생활이란 반드시 말씀이 주는 그 은혜의 열매가 있을 터이니 의심하지 말라, 당당하게 단단히 소망을 붙들고 믿고 나가거라.

이 죄악 세상의 말씀으로 자꾸 씻어놓으면 경쟁을 할 건가 돈을 벌건가, 대학교 4년 다닐 때 공부할 때 제일 어려웠던 게 커닝을 100% 합니다. 모두 외워서 쓰는 시험인데 아무리 외운다고 인간이 한계가 있는데 다 외우겠습니까? 똑같이 열심히 하고 전부 빡빡하게 커닝해가지고 열심히 다하고 앉았습니다. 그거 커닝이야 성경의 죄는 아니니까 하면 하지만 그때는 이제 신앙이 들어 대학 4년의 성적 중에 제 성적에 학교 안 가고 뭐 이렇게 좋은 것도 이것도 박이었지만 커닝 한 번도 안 하고 한 것 이것도 참 돌아보면 굉장한 겁니다. 전부 커닝하는데 점수 때문에 두고 갈 인격이라도 그건 안 하겠다, 한 명도 안 빼고 다 합니다. 이런 것도 그래가지고 더 긁어 온 그 학점이 그 인생에 정말로 도움이 될까? 별 그런 것도 없는데 사람이 살다 보면 마지막에 무리하고 다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신앙이 있을 때니까.커닝 안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강의실에서 성경 펴놓고 읽고 뭐 믿는 표시가 다 나버렸으니 제가 커닝하면 성경 읽은 저놈도 우리하고 똑같네, 그 소리 들을까 봐 전도에 지장이 있을까 봐 안 한 겁니다.

말씀과 말씀이 주는 은혜 말씀의 결과는 둘이 되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물통을 만들 때, 바다라는 놋 물통을 만들 때 부어 만들었는데 부어 만들 때부터 박이 표시가 되어 함께 찍혀져 나온 겁니다. 이건 떨어질 수 없는 하나다, 그렇게 살고 그리고 받아본 은혜가 촘촘하게 이렇게 열릴 때 이게 두 줄 박이 되는 겁니다. 이런 증거를 한 번이 아니라 겹쳐, 겹쳐, 겹쳐 촘촘하게 빽빽하게 이어가면 이제 간이 커지고 자신이 확신이 되고 확신이 하늘의 소망이 되며 주든 안 주든 말씀의 복은 틀림이 없는 거니까 나는 걸어간다.

아브라함은 이 땅 위에서 결국 가나안 땅을 등기이전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은 이전을 받았다 하고 천국을 가니 천국이 주고자 했던 진짜배기 가난이었습니다. 이 땅 위에 가나안 준다 해놓고 이 땅 위에 가나안을 못 주니까 뭐 볼 수 없는 천국 가나안을 줬다 이렇게 억지로 갖다 붙인 거냐! 못 믿는 사람은 할 수가 없고 여기까지 믿고 간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7시에 발인 예배가 시작입니다. 7시에 도착하시면, 안 믿는 가정이라 아주 간단하게 그냥 한 10분이나 15분 정도 걸릴 겁니다. 둔덕 올라가는 오른쪽 여천 장례식장입니다. 그 가정에 모친, 믿고 가셨고 부인, 우리가 장례 치렀고 남편까지 장례 치르면 딸만 셋인데 셋은 다 객지 생활하고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이제 그 가정을 우리가 볼 일은 별로 없을 건데 아버지 장례까지 우리가 정성 기울이고 그 가정의 자녀와 앞날은 우리는 오규빗 우리가 할 일은 다 있습니다. 그 가정에 앞날에 믿고 믿지 않는 것은 주의 예정 주권입니다. 어떤 경로로 그들의 앞날에 어디선가 믿게 될지 그 믿은 것이 이 땅 위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고 그분들이 장례식 때 심겨진 말씀이 10년 뒤든 언젠가 결실이 나서 또 우리가 알게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충성의 결과가 눈에 보이면 확신이 생기고 힘이 나는데 충성하고도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이거 사람이 힘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 신앙이 참 신앙으로 우리를 시험하는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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