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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배치)
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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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30924 주후
제목 : 씻을 물을 담은 10규빗에 둥근 모양, 내 있는 힘 다해 말씀 앞에 모든 원만하게 씻어
사회 : 김 희락
찬송 : 61장(이 세상 험하고),136장(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 60장(날 구원하신 예수를)
본문: 열왕기상 7장 23절 -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영을 중생시킨 저희이지만 죄로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은 버려야 하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지켜보실 수 없어서 물두멍과 놋 바다로 저희를 친히 씻어 가시는 주님. 하나님과 말씀으로 씻어갈수록 인간의 속성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만 남는, 그리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 모실 수 있는 그런 귀하고 복된 저희가 되어 질 수 있도록. 오전 예배에 이어 오후 예배에도 진리와 영감으로 마음마음 열어주시고 깨달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씻어갈수록 한 번 씻고 두 번 씻고 씻어가고 씻어갈수록 깨끗한 사람 깨끗한 영생의 사람 깨끗한 자유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배 후에 있을 장례 일정에도 주님 동행하시고 오늘 주일을 기억하고 복된 주일이 마지막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출애굽 직후에 성전에 앞서 천막으로 된 성막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성막에는 제사장이 씻는 곳을 물두멍이라고 했습니다. 규모가 작았습니다. 이제 솔로몬이 만든 돌과 나무로 된 정식 성전. 신앙이 본격화가 되고 자리를 잡고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답게 제대로 믿어가려면, 세상 속에 살다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내면의 신앙이 있어야 되고. 그런 자기 내면의 신앙이란 구약은 성전 신약은 말씀생활입니다. 성전 울타리 안에 제일 중심에 말씀을 모신 본관 현관 다락으로 된 집들이 있는데, 그 집 앞에 마당 한가운데 놋 제단이 있어 지은 죄를 짐승을 잡아 태워드리므로. 오실 주님 날 위해 이렇게 당신을 바쳐 구원할 것이라 구원의 소망을 담아 예표로 놋 제단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구원하시는 놋 제단, 구약의 백성들이 짐승을 잡아 태워드리는 놋 제단. 그 놋 제단과 성전 사이에 큰 물통 이름을 바다라고 했습니다. 놋으로 된 놋 바다를 두어 물을 많이 담기 때문에 물두멍보다 큰 이름을 바다라고 했습니다. 한정 없이 한량없이 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물이 한량없으니 물은 뭘까? 죄를 지은 죄인에게는 죄를 씻는 것이 물입니다. 말씀에 틀린 생각, 말씀에 틀린 행동, 말씀에 틀린 행위가 죄입니다. 흰 옷으로 입고 살다가 얼룩이 묻으면 이걸 물로 털어버려야 깨끗해집니다. 부모님에게 배운 고운 말을 친구들하고 놀다가 쌍욕이나 안 할 말이 끼어 들어가면, 부모님에게서 배운 옳은 말 바른 말 아닌 말투를 빼버리는 것이 물로 씻는 것과 같습니다. 옷이야 물로 씻으면 되고 말버릇 눈 버릇 마음씨 생활 별의별 것 이것이 더러워지면 문제인데, 안 믿는 사람은 양반 부모에게서 배운 것 나라가 가르친 것 공자님이 가르친 것 이것이 기준이지만은, 믿는 사람이야 당연히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라 그러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멋대로 별별 죄를 지으며, 자기가 말하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써먹어 싸니 그래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1학년으로 1차로 기본으로 우선 말씀에 맞춰 보거라. 그 말씀이 우리의 표준이고 말씀과 다른 것은 죄가 되어 말씀과 다른 것을 씻어내는 것이 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을 물로 비유를 해놨습니다.
말씀으로 씻어 이렇게 표시를 해놨습니다. 말씀이란 내 마음 내 행위를 씻는 것이구나. 성경에 물이 나오면 말씀 또는 진리 진리의 말씀을 물이라 한다. 이걸로 씻는 겁니다. 말씀과 다른 것을 말씀으로 씻어버리는 것이 말씀이 물과 같다. 죄인은 놋 제단 위에 죽여 태워버려야 되는데 죄인 내 몸 내가 천주교에 화형 당하듯이 장작 위에 탄다는 말이 아니고, 나를 태운다고 내 죄가 타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불속에 집어넣으면 악과 독이 더 나오지. 이 몸과 이 마음은 그대로 두고 요 몸속에 들어있는 나쁜 말투 나쁜 눈 버릇 나쁜 손버릇 나쁜 주먹질 발길질. 내 몸속에 들어있는 잘못된 습성 이걸 빼버리는 것이 말씀으로 몸을 씻는 겁니다. 내 마음속에 가지면 안 되는 생각, 잘못된 목표, 잘못된 지식, 사상, 이런 것을 말씀으로 가지고 이건 내 성격의 잘못이구나. 이건 내 성깔에 좀 죽여야 되겠구나. 나는 욕심이 약한데 좋은 욕심은 좀 강하게 만들어야 되겠구나. 말씀으로 이렇게 자꾸 만들어가는 걸 말씀으로 씻는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성경의 물은 말씀, 물을 말씀으로 비유한 것은 말씀으로 좀 씻어라. 말씀으로, 말씀으로 만들어 놓아라. 그 뜻이 하나 있고 두 번째는 물이란 생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수입니다. 생명수. 물 없으면 못 사는 근데 그런데 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장 좋은 물이 하늘에서 부어줘야 그래야 강도 있고 샘물도 있고 씻을 물도 있고, 별 별물도 땅에서 나오는 물도 하늘에서 부어줘야 이게 지하수도 되고 그럽니다. 하늘은 뭘까 하늘에서 부어주는 물은 무엇일까. 이건 인간이 노력해서 끌어오는 것도 아니고 물건 돈 주고 어떻게 사오는 것도 아니고, 하늘이 주면 한량없이 부어지고 하늘이 닫아버리면 제아무리 어떤 옥토라도 마지막에는 사막 되고 죽음의 땅이 됩니다. 그래서 물이란 위에서 부어주는 은혜라는 면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에 다른 것은 더러운 건데 말씀으로 다시 고쳐놓는 것. 아 말씀은 씻는 역할이 있구나. 말씀은 깨끗하게 하는구나. 말씀은 씻는 것이 되는구나. 어디든지 물이라는 것은 가면 씻습니다. 깨끗하게 만듭니다. 얼굴도 씻고 손발도 씻고 가정도 씻고. 저 서쪽으로 가면 우리와 지구 반대쪽으로 가면 유대인들이 어쨌든지 뭐 씻고 닦고 씻고 닦고, 이건이 사람들은 손발도 씻고 옷도 씻고 늘 물로 씻어대느라고 유대인의 풍속은 수천 년 동안 물로 씻는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성경에 가르쳐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성경을 몰라도 눈치가 있어서 체질적으로 씻고 닦고 씻고 닦는 민족이 우리로서는 좀 괘씸하지만은,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물로 씻고 닦는 거는 몇 천 년부터 이 사람들은 뭐 그냥 생활화가 되어 있다 그럽니다. 이쪽은 구약 성경 때문에 이쪽은 세상을 살아가는 눈치 때문에. 우리는 원래 안 씻는 민족입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지금은 뭐 그냥 샤워하고 다 그러지. 6.25에 이 나라 구한다고 온 미군들 수만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왔다 갔는데, 부산에 내리면 화장실 냄새 때문에 그냥 화장실 냄새 때문에 군인이 총 쏘다가 총 맞아 죽는 것은 각오를 했으나, 온 나라의 시내고 어디고 이렇게 똥 냄새 때문에 그냥 이 전쟁은 생각도 못한다고. 그 당시 직접 겪어본 사람들한테 들었고 또 역사 자료로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 깨끗한 민족 아닙니다. 이런 미신에 더럽고 유교에 더럽고 절에 가서 뭔 공들인다고 더럽고, 또 살기가 어렵다 보니까 그렇고 이런 우리에게 옆에 일본은 안 믿어도 씻고 닦으니, 원수의 나라든 옆집이든 좋은 거는 베끼는 게 좋은 겁니다. 청년들, 학생들. 일본이라면 무조건 욕을 해놓는 그 인간들 뒷조사해 보면 전부 역적들입니다. 어쨌든 원수가 말을 해도 옳은 거, 좋은 거는 베껴야 됩니다. 또 구약 성경에 물이라는 것은 빼버리면 구약 성경이 없어질 만큼 물 이야기가 그렇게 많습니다. 왜 물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가. 말씀에 죄 지어 더러워진 것이 말씀과 다른 걸 털어버리고 씻어버리고 돌아와야 되는 건데, 이게 어려우니까 물로 가지고 구약 유대인들을 많이 가르쳐 놓은 겁니다. 우리와 딴 세상을 산 유대인들의 구약 때문에 오늘 살아가며 씻는 거 좀 생각하시고, 또 옆에 우리보다 불리한데도 씻고 닦고 좋아진 저 사람들을 베껴서라도 모두들 체질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씻고 닦고 그러다 보면 좋아집니다. 저도 한 지금 30% 정도는 올라온 것 같습니다. 영 씻는 거는 뭐 그냥 기가 막히고 싫고 그랬는데 한 30%쯤 좋아진 것 같습니다. 마음은 자꾸 씻고 닦는 것이 좋다 말은 그리 합니다.
성전 뜰 한가운데 이름을 바다라 붙여놓고 큰 물통을 만들어 놨습니다. 좀 씻어라 는 말입니다. 좀 씻어라 좀 씻고 닦고 씻고 닦고 자꾸 씻고 닦고 해 보거라. 말씀 없이 씻어놓으면 일본 사람들처럼 몇 천 년 씻든 말든 저 사람들은 지옥 갈 거의 미신의 사람들이고, 말씀 때문에 수천 년 씻고 닦아도 유태인들은 예수님이 없어 씻고 닦아봐야 이건 또 다 지옥감입니다. 우리들은 원래 깨끗지는 못하나 구약 때문에 옆 나라 때문에 또 신약에 주님이 오셔서 말씀으로 씻는 구원의 도리를 알려주셨으니, 우리는 고요히 말씀으로 마음도 좀 씻으시고. 주일 오전 한 번만 오시는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딱 설교를 듣고 한 주간 씻으면, 오후 예배까지 두 번 듣는 사람보다 한 번 제대로 들으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한 번 가지고 부족하면 오후까지 두 번 들어 씻는 겁니다. 두 번 가지고 안 되면 밤 예배 네 번 씻는 거고 그것도 부족하면 새벽 예배 나와서 씻는 거고, 저녁 기도 나와 또 하루를 돌아보며 말씀으로 씻고 말씀으로 닦고. 막내 아이 인격도 말씀으로 좀 들여다보고 큰아이 습성도 말씀으로 좀 들여다보고, 내일 월요일 돈 벌러 가면 내 마음이 어떤 자세인지 미리 좀 씻고. 토요일 한 주간을 마무리하며 돌아보며 이번 주간은 돈을 많이 벌었다 적게 벌었다. 시험 점수가 잘 나왔다 못 나왔다 안 믿는 사람은 이것만 계산하고 믿는 사람은, 시험을 치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가운데서도 말씀으로 이번에는 좀 깨끗하게 했는가. 자꾸 돌아보셔야 됩니다.
요즘은 요양시설이 있어 심청이보다 더, 더 좋은 세상이 됐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 다 그렇지요? 긴병에 효자 없다말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1990년에 어머니가 약간 중풍기가 있어서 부산에서 모셔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한의원에 몇 번 드나들었는데, 여수에서 제일 유명한 한의사 연세도 많은 분이 한 몇 달을 지켜보더니마는 그런 말씀을 해요. 긴병에 효자가 없는데 효자가 없는데 참 효자입니다. 그래요 세상에. 차 가지고 한의원에 갔다가 모시고 오가는 그걸 보고 효자라 해서는 되겠습니까? 얼마나 모두들 엉망진창이다 그 뜻입니다. 그런 게 돋보였으니. 나중에 돌아가실 때 전화를 드리니까 뭐 새벽에 그냥 기사를 데리고 와서 직접 왕진을 할 만큼 그렇게 감동을 받았답니다. 긴병에 효자가 없는데 몇 달 한의원 모시고 다녔다고 세상에 이런 세상입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대소변 뒹굴어보지요. 대책이 있겠습니까? 선교사들 때문에 복음 받아 이 나라 교회가 많아져서 별별 복이 많이 들어왔는데, 그중에 하나가 저 요양 제도가 돼가지고 우리 예배당 옆에도 지금 열 분 또 열 분, 앞으로 한 40명이라도 모실 수 있도록 해놨는데 심청이보다 더 잘할 겁니다. 하기는 더 잘할 건데 이게 돈이 되니까 하는가? 그건 본인 마음에 들어있는 거라 남이 알기는 어렵습니다. 돈이 되니까 하는 거니까 돈이 되는 거니까 하는 건가. 돈이야 나라서 주고 나라가 복 받아 하나님이 열어주니까 당연하지만. 이왕이면 다른 직업보다는 하나님 앞에 갈 마지막 정거장에 오신 분들 잘 마무리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 땅 위에 여기서 나서 저기서 살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서기 전 예배당 옆에서, 어떤 분은 몇 달 어떤 분은 10년 예배당 옆에서 잘 보호받고 신앙생활 하다가 가게 될 때 하나님 앞에 가가지고. 낳아놓은 10명의 자녀보다 예배당 옆에 별관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마무리를 해주는 그 손길이 더 고맙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기도를 한다면 이런 게 위에서 쏟아지는 빗물입니다. 한량없이 쌓이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인간이 제 부모도 긴병에 효자 없는데 남을 그리 하겠습니까? 선교사들이 전도해서 미신의 나라, 불교의 나라 유교의 나라. 천주교는 우리보다 몇 백 년 전에 들어왔습니다. 이 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정확하게 1400, 1592년도에 들어왔습니다. 세상에. 그런데 이 사람들은 들어오나 마나 내나 서양 불교니까 별로 차이가 안 나는데, 불과 한 백 몇 십 년 전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제대로 믿는 걸 가르쳐서 그 열매 끝에 하나 이런 요양 제도라는 것도 생겨서. 우리처럼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교회조차도 예배당 옆에 교회 창문 쳐다보며 교회 지붕 쳐다보며 이 예배당 예배 보는 걸 커단하게 텔레비 안에서 함께 보며. 대통령은 되어야 국민이 텔레비에서 구경하지 어떻게 목사 얼굴을 텔레비 커단한 화면에서 보는 이런 나라가 되었습니까? 또 시골에 자기 교회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는 이런 때가 되었으니 참 좋은 때가 된 겁니다.
수고하는 분들은 나라에서 월급을 줘서 수고하니 뭐 그것도 고마운 일이나, 이왕 하는데 다른 직장도 있는데 하필이면 이 직장일까. 만약에 그 중심이 주님 날 씻느라고 어떤 수고를 하셨는데 이까짓 걸 못해? 라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 마음속에 직업을 물로 씻어버린 겁니다. 물로 씻어버리고. 하루 이틀 3일 작심 3일은 누구든지 한답니다. 그런데 이제 시작이 아니라 한 석 달, 한 석 달 가면 돈 때문에 하면 하지 이걸 해서야 하겠느냐. 이제 이런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럴 때에 돈이 되니까 그래도 해야지 그러면 말씀에서는 떠난 마음입니다. 말씀에서 떠난 마음이란 때가 묻어버렸다 그 말입니다. 아침에 씻고 나갔는데 저녁에 돌아올 때는 황사의 매연에 땀에 이리저리 다 어지럽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저녁에 들어와서도 샤워하고 또 옷을 갈아입는 참 기가 막힌 깨끗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요양 쪽에 사업하는 분들 한 석 달 지나며 돌아볼 때, 처음의 마음은 이랬지만 한 석 달 가면서 내 마음이 말씀과 좀 달라지지 않았나. 무엇이 묻지 않았나. 또 돌아보며 처음에 출발할 때의 말씀으로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다시 자기를 거머쥔다면 요게 바로 성전 안에 물통 바다에 물로 자기를 씻는 겁니다. 한 사람이 씻으면 그 시설 안에 종사자와 모든 신세지는 분들이 함께 씻겨 질 겁니다. 제사장이 먼저 씻어야 되는 것은 제사장이 씻으면 나머지는 씻어 갈 수가 있고, 제사장이 씻지 않으면 나머지는 안 봐도 다 어지럽게 됩니다. 수술하는 외과 의사의 손 장갑이 오염이 됐다면 수술하고 치료한다고 이거 설치면 다 오염이 됩니다. 치료가 아니라 감염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두 손을 먼저 소독해서 깨끗하게 하고, 그리고 이제 이 손이 기술로 가는 곳곳마다 바로잡고 깨끗하게 만들어 건강하게 살려가는 것처럼.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죄를 씻기 위하여 짐승을 잡아 태워드리는 놋 제단이 먼저 있는데, 이건 소를 잡고 양을 잡고 엉망이 되는 피투성이가 난리가 되는 겁니다. 그 제물을 씻는 것은 좀 작은 물통 물두멍에 씻는데 뒤에 나옵니다. 이 모든 일을 책임진 제사장 대제사장은 자기가 깨끗해야 그다음 뭐 깨끗하고 말고가 있기 때문에, 제단 위에 바치는 짐승을 씻는 물통은 작고 제사장은 깨끗한데 손발도 작은데, 제사장 씻는 물통은 이름이 바다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물통입니다. 드럼통으로 몇 백 드럼통에 물을 부어놓고 바다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씻어라 또 씻어라. 오늘도 씻고 내일도 씻어라. 네가 그 직업에 익숙해져 전문가가 되어도 또 돌아 보거라. 교사 첫날 출근할 때 누가 교사의 깨끗한 마음을 없겠습니까? 교사 첫날은 다 교육대학에서 배운 그 자세로 마음껏 출발하지. 근데 한 달 석 달 1년 3년 가다 보면 돈 때문에 이 짓 하지 참 이 요즘 아이들 이게 보통 아이들입니까? 전부 괴물들인데. 이걸 괴물을 기른 부모들이 그냥 생난리인데. 어쩌자고 내가 그냥 직업을 교사하는 바람에 이 모양 이 꼴일까. 그래도 이게 돈벌이 하는 데는 괜찮으니 견뎌보자. 교사 10만 명 중에 아마 9999명이 다 그럴걸요? 저는 출발해서 죽는 날까지 그 마음이 안 변하는 교사 한 사람을 압니다. 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를 가르친 그분은 무주구천동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3까지 가르치고 죽어버렸습니다. 이분은 처음부터 죽는 날까지 마음이 안 변합니다. 내가 교사인데 어떤 인간이든지 나는 가르쳐서 무조건 바꾼다. 내가 인간을 못 바꾸고 인간을 못 만든다면 난 교사가 아니지. 그분은 교사로 사람을 만들 때 이만한, 이만한 몽둥이 가지고 죽으라고 패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그랬다가는 뭐 그냥 가차 없이 그거 교도소지요. 그 방법은 놔두고 마음은 변치 않더라. 근데 그분은 성경의 말씀으로 아이들을 가르쳐 보겠다고 시작은 했는데, 마지막에 가니까 성경은 없어지고 엉뚱한 소리하다가 그냥 그리 갔습니다. 그 제자들이 온 나라의 교육을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어 놨습니다. 이 나라의 교육의 뿌리를 파보면 쑥이 들어 가가지고 완전히 그냥 다 쑥물로 가지고 다 잠가버렸습니다.
성전의 바다의 물은 말씀으로 내 오늘을 씻어보고 내 첫 마음을 씻어보고 내 마지막 마음을 씻어보고. 여기도 지금 의료인들 많지요? 나이팅게일 선서라? 참 선배들이 보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이죠. 불 끄고 촛불 들고 나는 나이팅게일이 되겠다. 간호사 치고 뭐 귀신 아닌 간호사 있는가요? 시작은 천사로 시작했는데 1년 못 가서 전부 다 대부분 귀신 돼 있을 겁니다. 한 3년 5년 되면 귀신 대장이 돼가지고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오는 것들을 들볶아서 그냥 첫날에 귀신 만들고 다 그럴 겁니다. 간호사 위에도 그럴 거고. 그런 세상을 쳐다보며 목사 너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지금도 성령이냐. 시작은 성령인데 지금은 육체냐. 네가 첫 은혜 받고 주님 날 위해서 이렇게 씻어주시고 당신을 버렸으니, 나도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씻어 나가 보겠다 넌 그 정신이 가다가 흐려지지 않았느냐. 자기를 자꾸 들여다보면 왜 바다라는 물통에 물이 이렇게 많은지, 내가 나를 씻을 것이 많다 그 말입니다. 매일 씻었는데 또 씻어야 되는가. 하루 씻고 열흘 씻고 씻다 보면 씻을 것이 더 나오는 것이 옛 사람입니다. 말씀으로 씻어보면 말씀으로 눈이 자꾸 밝아지고 세밀해져가지고, 이전에는 이게 죄인 줄 몰랐던 것까지 발견이 되어 더 씻을 것이 자꾸 나와 바다 속에 들어가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씻을수록 바다와 같은 한량없는 은혜가 쏟아지는 게 바다의 세계입니다. 이 바다의 규모를 보십시다.
23절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직경이 10규빗이요. 규빗은 여기 팔꿈치에서 어디까지라고 그랬던가요? 손가락 끝까지를 한 규빗이라고 대충 그럽니다. 한 사람의 폭입니다. 내가 담당해야 되는 내 몫, 내게 주신 나의 할 일, 내가 감당할 나 하나가 한 폭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너만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지고 도망댕기지 말고 사회적으로는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만 한 규빗입니다. 하나님 앞에 성전으로 계산할 때는 여기다 대고 손바닥 하나를 옆에 더 붙여서, 너의 한몫을 좀 더 넓혀 네가 가는 곳곳마다 너의 감당이 넘치게 해라. 그래서 성전의 한 규빗은 약간 넓은 규빗입니다. 이게 인터넷에 보니까 45.2m다. 뭐 45.6이다 그 계산하는 건 전부 귀신 소리니까 잊어버리시고 성경에는 cm 이런 게 안 나옵니다. 팔꿈치에서 손끝 손바닥 요까지만 나옵니다. 작은 사람은 이거 작을 테니까 작은 거고 키 큰 사람은 이것도 클 테니까 크게 감당하면 되는 겁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적지 않고 대략으로 적었을 때는 대략으로 나가야지. 성경이 대략으로 주셨는데 이걸 몇 밀리다 몇 밀리다 그러면 그 성경을 갖다가 어지럽히는 귀신입니다. 성경이 여기 열 규빗이라고 열은 숫자를 박았는데 열을 피해가면 그것도 귀신입니다. 규빗은 대략입니다. 한 몫, 나 하나. 그런데 이걸 10번을 거듭해라. 10은 정확하게 찍어주셨습니다. 이 바다의 직경이 10규빗이다. 너를 씻고 씻고 씻고 너 있는 힘 다하여 씻고 씻고 씻어라. 모르는 것은 못하지만은 알면서 슬쩍 넘어가는 것은 묵인이다. 그런 걸 묵비라 그럽니다. 묵비. 가난할 때 집에 이 정도 맛있는 게 밥상에 올라올 리가 없는데 아내가 저 밭에 갔다가 오면서 남의 집 고추 슬쩍. 다 뭐 다 해보셨죠? 요즘 해봤다 그러면 미안하고 안 믿을 때는 한 번씩 해보셨죠? 안 해본 사람이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그런 거 안 해보는 사람은 깨끗해서 교회 안 나옵니다. 착해서. 본인이 안 했으면 옆집에 사는 거 다 아시겠지. 못 보던 우리 밭에 없던 못 보던 게 밥상 위에 올라오면 남자들이 이거 어디서 났냐고 물어봅니다. 안 물어보면 여자가 슬금슬금 계속해서 도둑질 해다가 쌓아놓거든요. 그리 되면 남녀 부부가 공범 되는 겁니다.
모르는 것까지 알아낼 수는 없지만은 내 눈에 보이고 내가 하면 하는 데까지는 들여다보고 씻어보고 따져봐야 됩니다. 이게 10규빗입니다. 우리는 시골이니까 집 안에 잘 가둬 기르면 가게에 가서 나쁜 짓 하는 아이가 별로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초등학교로 가면 초등학교 중학교로 가면 학교 앞에 문방구에는 들락날락하면서 우리 교인들은 용돈을 많이 안 줄 테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많으니까 친구들은 사니까 친구들 따라 문방구 학교 앞에 가게 들어갔다가 한 개 슬쩍 집어넣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집에 오면 엄마는 뒤져가지고 엄마는 그런 거 잘 아니까, 엄마들은 다 그런 거 많이 해보지요? 자기들이 도둑년이니까 그런 걸 잘 알지. 남자들은 잔 도둑질을 못 해봐가지고 그런 건 잘 몰라요. 큰 도둑놈들이지. 엄마가 봐서 아이 가방 안에 이 지옥에는 이 볼펜은 이건 이거 내 거 아니겠는데 그럴 때는 반드시 물어봐야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대답이 보통 2개 나와요. 친구가 줘서 가져왔어요. 아니면 주웠어요, 그게 바로 도둑질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겁니다. 이런 것은 목사가 반듯하게 착하게 자란 사람은 이런 설교 못합니다. 천하가 다 저 같은 줄 알지. 딱 보면 알지 그거. 엄마는 아는데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한데 뭐 그런 나쁜 짓을 하려고? 믿어줘야지, 그러면 이제 엄마 도둑년하고 아이 도둑놈하고 둘이 이제 짜고 자라면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 도둑놈 같은 저런 인간 됩니다. 천하를 다 도둑질해놓고도 몇 년 버티면서 악을 악을 쓰고 있는 겁니다. 그거 바늘 도둑을 살금살금 기르면 저런 소도둑이 됩니다. 텔레비 보고 욕할 것이 아니라 내 집에 내 밑에 우리 아이가 이거 뭐 도둑놈으로 자라는 거 아니냐고, 이것부터 찾아야 되는데 이것도 과도하면 또 아이가 또 문제가 생깁니다. 이거 다 교육해보고 하는 얘기입니다.
이거 잘 다루면 좋게 자라고 이때 한 번 삐꺽 해놓으면 영 프로가 되든지 아니면 영 꺾여져 엉망이 돼버립니다. 이런 거는 남자가 돈 벌고 여자는 집에 앉아서 이 아이 하나 때문에 골몰하고 연구를 해도 될까 말까 그런데, 애를 여기저기 던지고 나도 골목에 직장에 오늘 21세기에 맞춰 산다고 돌아다니면 그 집 아이? 길러놓으면 다 그 모양 그 꼴 되어 집니다. 잘 따져서 10규빗이라. 바다라는 물통이 열 규빗이라 한 규빗은 나 하나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모저모, 이모저모. 있는 힘을 다할 때 열입니다. 못하는 것은 할 수 없고 내 손으로 손 못 대는 것은 할 수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대로는 잘 살펴 씻어라. 너도 씻고 아이도 씻고 아내가 벌어온 돈도 들여다보고. 옛날 배고플 때 여자가 밖에 가서 돈 벌어오는 것은 대개 몸을 절반 팔았든지 10분의 1 슬쩍슬쩍 팔며 가져오는 겁니다. 뭐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술집 안 가도 몸 파는 방법 많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아내 그런 꼴 안 보려면 어릴 때부터 이를 깨물고 돈을 벌어, 내 여자는 아이를 기르는데 전념하고 나는 돈벌이에 모든 걸 다 하겠다. 뭐 이 정도가 되어야 될까 말까 그럴 건데, 요즘은 뭐 세상이 다 그 모양 그 꼴이 되어놓으니까 더 말하기도 죄송하고 어쨌든 바다라는 것은 열규빗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전부 다 씻고 닦고 씻고 닦고 나도 씻고 내가 맡은 사람도 씻고, 그런데 그 모양이 둥글더라. 이 바다라고 이름을 지어놓은 물통은 둥근 물통입니다. 모든 면으로 똑같이 어떤 면으로든지. 집에서는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착한데 이게 유치원가 가지고 있는 지보다 작은 걸 쥐 박아서 가해자 될 수 있거든요. 우리 아이가 피해자 됐다면 온 집안이 총출동을 하고, 우리 집 아이가 가해자가 돼 놓으면 뭐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넉넉하게 전부 다 그리 되고. 요래 양심 없는 부모가 돼놓으면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겁니다.
우리 아이가 당할 때는 이 정도는 당해야 세상의 뜨거운 맛을 알겠다 싶을 때는 그건 좀 넘어가셔야 됩니다. 큰 거한테 까불었으니까 두드려 맞겠지. 큰 거한테 까불면 맞는다는 것이 입력이 돼야 이것이 세상을 살 때 안 까불고 무사하게 사는 겁니다. 부모가 끝까지 봐줄 수 있나요? 집안의 형제들끼리도 밑에 것이 위에 거한테 대들다가 한 개 쥐 박으면, 장애자 될 거 아니고 너무 큰 거 아니고 그럴 만할 때는 부모가 어느 정도는 좀 두고 보셔야 되는데. 민감하게 계속 개입을 해놓으면 얼러얼러 얼러 길러서 유치원 갔다가 오늘 아이들을 보니까 내 마음이 슬퍼져요. 울고 온 집안이 유치원을 들들 볶아서 그냥 생난리를 하고. 안 그런 집 하나도 없지요? 그래 길러놓으면 오늘과 같은 이런 놈의 세상이 안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견딜 수도 없는 고통을 받는데 놔두면 그건 학대고, 그건 하나님께 받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건 안 되는 거고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약간의 눈물 약간의 쥐 박히는 것은 그거 세상을 알아차리는데 필요한 훈련이고 공부입니다. 훈련이고 공부. 이면저면 두루두루 원만하게 씻고 원만하게 가르치라. 그래서 바닷물은 원통입니다. 둥글게. 가정에서 부모에게 곱게 곱게 자라다가 첫 직장 가서 윗사람 동료 말 몇 마디 했다고, 엉엉 울고 짜고 그냥 휙 사표 내고 와버리고 이거 원만하지 않은 겁니다. 모난 겁니다. 모난 거 별로 안 좋은 겁니다. 약아 빠져서 약해 빠져서 곯아 떨어져서 못 씁니다. 부모가 너무 과잉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부모가 하나님이면 야 끝까지 지켜주지만은, 부모가 하나님입니까? 영생 불변입니까? 부모가 못 견디고 못 막아주는 부모보다 더 강한 쪽에서 쥐 박으면 그때는 엉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미리부터 자꾸 부모가 들어서 길러줘야지.
우리 공회에 설교록에도 아마 나오는 개일 건데 잡견입니다. 똥강아지. 요만한 걸 사다가 아무 개한테나 집어던집니다. 주인이 있으면 개는 웬만하면 이겨요. 근데 너무 크면 질 때도 있습니다. 많이 밀리면 장대로 가지고 주인이 저쪽 개를 때려서 이깁니다. 이렇게 주인이 제 강아지를 한 번 두 번 기를 살려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이거 뭐 천하 어떤 개든지 다 이겨버립니다. 주인이 없어도 맹견이 됩니다. 강아지도 그렇게 기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얘가 이길 만한 거 얘가 할 만한 거, 살살 길러가듯이 그냥 악하고 독하게 남을 물어뜯는 세상에 그쪽으로 기르지 마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살려다 보면 기본적으로 말씀을 삼키는 원수는 세상이고 악령이라 이건 교회가 못 이기는 거다. 세상이 말씀대로 산다고 삼키러 올 때 우리는 주먹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광화문에 100만 명이 가서 데모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려는데 못 살도록 세상이 쥐 박을 때는 맞으면서 박히면서 그다음 견디는 거다. 그럴 때는 이 말을 해도 견디고 저 말을 견뎌도 들볶아도 견디고 마지막에 굶겨도 견디고 잡아가도 견디고 죽인다 해도 견디고, 마지막엔 총을 탕 쏴도 이 총을 맞고 주님 앞에 갑니다. 그러도록까지 강하게 강하게 요래 기르는 것이 죄악세상을 상대하며 놋쇠로 길러가는 신앙의 지도입니다. 세상에 몽둥이 들고 오거든 너희들은 칼을 휘두르라. 이거는 육탄전이고 혈육전이라 신약에서는 금지를 시켜놨습니다. 좌로 우로 치우치면 실패합니다. 신약에 믿는 사람은 나는 말씀 배워 말씀으로 나를 깨끗하게 내가 맡은 사람을 말씀으로 씻으며 간다. 이렇게 걸어가는 길에 만약에 방해가 올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말씀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고 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인내로 간다. 가다 막히면 어떡하느냐 어떻게 할 거냐. 막히면 막히더라도 내가 넘어지지 아니한다. 쥐 박으면 쥐 박히지 말씀은 놓지를 못한다. 쭉 가다가 그러면 죽이면 어떡할 거냐. 그러면 순교하는 거고.
이렇게 기르려면 누가 옆에서 뭔 소리하든지 그런 소리를 꿈쩍하지 않을 수 있는 아이를 만들어야 되는데 참 이것도 장단점이 섞여 있습니다. 저처럼 나쁘게 자란 사람은 선생 말을 우습게 알고 교장 말을 우습게 알고 부모 말을 우습게 알고, 교회 목사 말을 우습게 알고 요래 커 놓으면 평생 누가 무슨 소리 하든지 저는 눈 하나 깜짝도 안 합니다. 원래 어릴 때부터 어른 말이라는 것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저 같은 사람은 누가 와서 무슨 욕을 다해도 그건 뭐 잠자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나쁜 사람이라서 뺀돌뺀돌해서 남의 말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남이 말한다고 상처는 안 받는데, 이런 사람은 또 남을 상처를 주게 돼 있습니다. 인간이 또 나빠서 이거는 또 말씀에 틀린 죄인이 되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곱게 길러놓으면 곱게 아름답게 길러놓으면, 누가 한 번 째려봤다고 누가 말 한마디 했다고 엉엉 울고, 우울증이 걸렸니 이제 뭐 자살을 할까 말까 그러니 나는 이 교회에 실망을 해서 안 다녀. 교회에서 뭔 말을 들었는데요? 아니 그런 말에 그렇게 삐지면 요새는 여자보다 남자 삐지면 더 무섭습니다. 남자 삐져 놓으면 이건 뚝심이 있어서 이건 또 몇 십 년 갑니다. 뭐 여자 삐진 거는 뭐 아침 삐져봐야 저녁까지 가지 뭐 하룻밤 갑니까? 여자가 오늘 삐지고 내일까지 가면 여자가 아니고 남자지. 곱게 길러놓으면 말 한마디에 울고불고 상처가 났다고 공무원 사표 내버리지 대기업 사표 내버리지. 나중에 이제 대통령이 아이 이놈은 대통령 못 해먹겠네. 소리까지 나와 버렸지. 그 자리에서는 혀 깨물고 죽어도 그런 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5천만의 목숨을 책임진 사람은 속으로 그래도 겉으로는 내가 죽어도 이 나라를 지킨다. 이래야 될 건데 대통령 되는 양반이 그냥 에이 대통령 못해 처먹겠네. 소리를 갖다가 방송에 나와서 하는 정도니 그거는 솔직한 게 아니고 무책임한 겁니다. 뽑은 인간들이 다 무책임하니까 그런 세상이 되는 겁니다.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요즘이야 말 한마디 하면 막 뽀르록 뽀르륵 그냥 막 생난리가 다 나는 거지.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갈 사람이 말씀으로 한마디 듣는다고 난리를 내면, 고문 고형 갈 거나 있습니까? 순생 순교라는 말이 해당이 있겠습니까? 말씀으로 내가 옳은가 보자 잘 따져 말씀으로 나를 만들고, 말씀에 옳으면 옆에서 이단 사이비 뭔 욕 뭔 소리 다 들어와도 그것은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 정도가 되어도 고문 고형은 그다음이고 순교는 그다음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시험 쳤다고 중학교 시험 자신 있나요? 중학교 시험 합격했다고 뭔 대학 시험 자신 있나요? 그 앞에 시험이 층층이 남아 있는데. 말로 한마디 듣는 것이 그게 초등학교 시험 정도입니다. 주먹질로 한 개 맞아도 넘어가야 중학교지. 잡아간다고 난리를 하고 협박을 해도 걸어가야 이게 고등학교 공부 정도 되는 거지. 매를 몇 개 맞아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걸어가야 그다음에 이제 대학생이 될까 말까 그런 건데, 이 좋은 주일날 예배당 안에서 눈 한 번 끔뻑했다고 집사님들이 뿌리가 흔들려버리지. 또 한마디 들었다고 이제 한 열 마디 해버리니까 저쪽은 이제 다른 교회 간다고 또 이제 신고 들어오지. 또 이제 교리를 좀 아는 사람은 이 신풍교인은 바리새인이 돼가지고 또 이제 육두문자 한 마리를 떡 합니다. 바리새인. 바리새인 입에 올리는 인간 치고 바리새인의 정의를 아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저는 못 봤습니다. 입에다 바리새인이라고 입에 올린 사람이 바리새인 스펠링 아는 사람 그 말 뜻 아는 사람 거의 못 봤습니다. 바리새인의 앞에 알파벳이 두 개만 뭘로 시작하는지 저 오혜진 선생님. 예? ph로 시작을 합니다. 스펠링 안다고 아는 게 아닙니다. 바리새인은 행위로 천국 가지 은혜로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이게 바리새인의 1단계입니다.
바리새인의 2단계는 은혜로 가기 때문에 말씀을 죽도록 지켜야 된다. 요리 돼야 됩니다. 그것까지 알고 바리새인 입에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 저 말 적어도 가정이란 뭔 말이 나와도 가정의 앞날을 위해서 어떤 말을 들어도 넘어가야 되고, 그래야 가정이 되어 집니다. 옛날 시어머니 그 시집에 모찰스런 소리 수십 년 듣고 며느리가 참고 그 가정이 가정이 됐습니다. 한마디 듣고 요즘처럼 휙 내버리면 가정 출발도 못하지요. 이것처럼 교회란 안팎의 별별 말 별별 말 별별 말 다 듣고도 그걸 새겨보고 따져보고 말씀에 맞는 것은 나를 씻고 말씀에 틀린 것은 그냥 이해하고, 말에 흔들리는 신앙은 신앙 출발도 못합니다. 그 단계를 넘어서도 그다음에 이제 손으로 쥐 박는 걸 또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고비 고비를 많이 넘고 넘으면, 그다음에 이제 마지막 단계에서 아무도 가지 못하는 고난을 넘어가느냐 마느냐 이제 여기에서 훌륭한 분이 나오고 말고 그러는 겁니다. 한량없는 바다의 물로 한량없이 씻자 라는 뜻입니다. 씻는 만큼 위에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신앙과 주일과 설교와 말씀이란 나를 돌아보며 씻는 거다. 씻는 만큼 하늘에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는 거다. 좀 강하게 길러야 됩니다. 견딜 수 없는 걸 두고 오면 안 됩니다. 견딜 수 있는 것은 견디면 연단이 되어 이거는 횡재하는 겁니다.
(기도)
한 주간 바다 같은 한량없는 말씀의 물로 자기를 씻는 저희들 되어, 주일과 예배와 한 주간 주간 지날 때마다 이전보다 알아가는 말씀이 많아지고 깊어지고, 말씀이 많아지고 깊어질수록 내 속에 알지 못한 잘못된 걸 씻는 것이 많아져, 나는 깨끗해지고 내 마음은 점점 씻을 것이 많아지는 복된 바다 생활 되게 하시고. 누구든지 다 말씀 앞에 자기를 씻는 이 일 위하여 한 평생 세상을 주셨으니, 외면으로는 공부와 사회와 직장과 여러 가지 개인의 생활에 분주할지라도, 내면의 목적은 말씀으로 자기를 씻는 한 가지 변치 않게 인도해 주옵소서. 지난 주간에 이어 또 하나님 앞에 불러 가신 귀한 아들 장례 진행에도 함께 하사, 믿지 않는 가정의 장래 인하여 복음이 심어져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기본 죄악이 씻어지고, 하늘을 향한 기본의 성결함이 출발되도록 주님이 마음을 열어주옵소서. 이 시간도 마음마음 곳곳에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창석 어른 어제 돌아가셨고 오늘 주일이라 심방예배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황 권사님처럼 둔덕 가는 오른쪽에 장례식장이 있습니다. 내일 8시 발인 예배입니다. 권찰회 없습니다. 모두.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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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9.24. 왕상7:23 성전의 바다 총공신풍
■ 바다
1. 이름
바다, (한량) 없이
무한한 (은혜)의 세계
2. 용도
제사장의 (씻는) 곳 대하4:6
*에베소서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3. 제작
놋, (연단) 왕하25:16
녹여, 자기 (부인) :16
부어, 인도 (따라) :23
만들다, 주님의 (형상)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4. 규모
직경: (10) 규빗, 사람의 (전부) :23
높이: ( 5) 규빗, 사람의 (분담)
둘레: (30) 규빗, 하나님 (형상)
두께: 한 (손) 넓이, 현실 (분량) :26
용량: (2)천 밧, (한량) 없이
5. 위치
성전의 (동남)쪽
본당과 (제단) 사이
주님의 피로, (자기)를 씻고, (말씀)의 세계로
주님을 따라 자기를 (죽이)고, 말씀으로 (씻고), 말씀의 (세계)로
6. 모습
가장자리, 바다의 (결말)은
박이 있는데, (달리)는 것
매 규빗에, (주시니) 기회마다
10개씩 있어서, (꽉) 채우고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
두 줄로, (겹)으로, 빠지지 않도록
바다를 만들 때 부어 만들었으며, (성결)과 (열매)는 하나
7. 받침
① 배치
12마리 소, 신앙의 모든 면으로
3은 북향, (역경)에도
3은 서향, (암흑)에도
3은 남향, (순경)에도
3은 동향, 하나님을 향해 (전진)을 하면서도
② 구조
받침: (밑)에
바다: (위)에
방향: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오직 (전진)
식양: 백합화, (겸손)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C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O’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