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3.9.20 왕상7:17 신앙의 감내는 먼저 말씀으로 생각하되, 원만 충성 기회 연결 생명의 말씀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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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3.9.20 왕상7:17 신앙의 감내는 먼저 말씀으로 생각하되, 원만 충성 기회 연결 생명의 말씀 따라

서기 1 107 09.2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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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0 수밤

제목 : 신앙의 감내는 먼저 말씀으로 생각하되, 원만 충성 기회 연결 생명의 말씀에 따라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열왕기상 7장 17절 -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이 머리의 고도 다섯 규빗이요 저 머리의 고도 다섯 규빗이며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스레다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우리 속의 옛 사람 하나님을 알기 전 인간으로만 살아온 저희들. 말씀과 하늘을 모르고 땅과 땅에 있는 것만 보고 살아온 우리들. 인간과 이 땅이 결합하여 만든 그 역사와 그 산물이 되어 살아온 지난날. 이것은 진리의 말씀과 배치되는 것이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오니, 녹여서 말씀을 따라 어디까지든지 순종으로 만드는 행위, 생활, 인격이 되어야 하겠는데 솔로몬의 성전을 통해 성전 앞에 두 기둥을 통해 두 기둥 위에 올려놓은 공같이 둥근 머리를 통해, 말씀은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는 알고 순종함으로 이 밤도 자기를 꺾고 바꾸는 앞자리에 있는 신앙의 열심의 교인들, 바쁜 가운데 어린 교인과 또 예배를 기억하며 서둘러 오는 뒷자리의 교인들, 교만하여 하나님을 밑으로 깔고 호령하는 철없는 사람들, 말씀 앞에 순종은 해야 되겠는데 알지를 못하여 방황하는 이들 가릴 것 없이, 두 기둥의 신앙이 되고 말씀의 지도를 받는 이 밤에 복된 저희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설 마지막의 한순간을 요양으로 보내는 우리 주변 모든 어른들에게, 하나님 앞에 소년 소녀가 되어 끝까지 소망 가운데 기도하고 그날을 사모하게 하시고, 시술 수술 치료 후 강건함을 소망하는 우리 교인들에게 강건함으로 더욱 충성하는 각오를 주시고, 여러 형편에 바쁜 우리 학생들 먼저 말씀 앞에 자기를 꺾는 것을 배우는 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군무에 둔 아들들 고르지 못한 일기에 오고 가는 차량 안전까지 이 밤도 헤아려 주시고 살펴주옵소서. 우리와 한 길을 가기를 소원하여 곳곳에 개척하고 또 교회를 이루어 우리와 늘 한 몸으로 살펴보는 강단들과 세운 종들에게, 기둥의 은혜와 기둥에 머리 위에 은혜가 있어 알고 깨달음으로 순종하는 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짙어져가는 세상 속에 우리는 소망 가운데 더욱 이 한길을 밝히 보며 끝까지 주님 동행하는 실상의 신앙이 되게 해 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하시고 결혼과 출산의 복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멸시하는 망령됨도 회개하게 하시고, 겸손히 애절히 주님 앞에 말씀으로 나아가는 우리 온 교회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건물도 가정도 건강도 공부도 기술도 회사도 교회도 무엇도, 무엇도 전부가 다 보이는 기둥이든 보이지 않는 기둥이든, 떠받치는 기둥이 있어야 건설이 되고 조직이 되고 앞날이 있습니다. 내게는 두 기둥이 뭘까. 좌우 둘을 똑같이 만들어 치우치지 말아라 떠받치는 기둥은 묵묵히 감내하고 가난하고 버텨야 된다. 놋으로 만들었으니 어려움 속에 환란 속에 감사해라 이런 말씀으로 주일부터 계속 살펴오고 있었습니다. 또 새벽부터는 이 기둥 위에 공같이 둥근 5규빗의 기둥에 머리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차렷하고 서면 몸통은 기둥처럼 이렇게 직선이나 머리는 누구든지 둥글지 않습니까? 왜 기둥에 둥근 머리를 올려놨을까 떠받치는 것만 말한다면, 그냥 민자로 기둥이면 충분한데 왜 기둥 위에 공같이 둥근 머리 모양을 두셨을까? 보기에도 좋습니다. 난 내가 결정하고 내 마음대로입니다. 그 말버릇보다는 좋은 제안이나 좀 생각도 해보고 물어보겠습니다.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보라 그런 것이 아니라 계산을 못해서가 아니라 어떤 좋은 게 눈앞에 와도 보이면 덥석 무는 사람, 낚싯바늘에 매운탕 들어갈 사람입니다. 어떤 것이 좋아도 이 땅 위에 좋은 게 그렇게 있을까 좀 생각해보고. 이런 사람이 머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머리 없는 사람 보셨습니까? 머리 없으면 장례 치러야지. 머리는 있는데 머리가 머리 노릇을 못하니 그것도 머리라야 머리라고 해야 될까. 그런 머리는 ‘대’자를 붙여서 그냥 세 글자로 말합니다. 자기 머리는 머리입니까? 뭐 그런 겁니까? 그거 그리 되면 안 됩니다.

사람이 몸통이 이렇게 기둥처럼 올라가다가 머리도 기둥처럼 그대로 쭉 올려놨다 하고 자기 아내 자기 남편 자기 아이를 그렇다고 봐보십시오. 그거 되겠습니까? 기둥처럼 쪽 곧으면 기둥으로야 쓰기 좋겠지만, 기둥 같은 다리와 몸통에 머리는 둥근 게 올라붙어야 보기도 좋을 거 아닙니까. 자기의 어떤 중요한 결정 누가 막 그냥 천만금을 준다고 제안을 해도 전부가 쏠려간다고 전부 시내로 가고 어떻게 해도, 사람이란 머리를 꼭대기에 하나님이 만들어 두셨으니 어떤 기둥 어떤 행동 어떤 몸통도 좀 생각해 보고. 따라 합시다. 생각 좀 하시고 (생각 좀 하시고). 생각 좀 하는 겁니다. 뭐든지 생각 좀 하고. 창원에 공회교회 창천교회라고 좋은 교회에 있습니다. 언제 한번 딱 가보니까 들어가는 예배당 큰 벽에다 대고 먼저 기도하고. 냅다 질러버리고 보이는 대로 말해버리고 이게 뭐 그냥 신앙이 있든 없든 다 그리 살거든요. 먼저 기도하고. 아무리 좋은 게 눈앞에 보여도 먹고 보는 것이 아니라 먹어도 되는 건가. 그 생각하다가 놓치는 것은 손해 보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기회라는 게 있어서 잡을 때 얼른 잡아야 되는 게 있습니다마는 생각 없이 잡고 보면 대개는 망합니다. 죽습니다. 애들일수록 좋은 게 있으면 잡고 봅니다. 이러니까 낚여서 추어탕 신세 되는 겁니다. 자기 인생. 나이가 많으면 그래도 좀 생각은 합니다. 근데 요즘 노인들은 노인이 돼 가지고도 생각을 하지 않으시니. 지금 노인은 예전 노인과 다릅니다. 생각하면 노인이고 생각 없으면 유치원 애들입니다.

성전에 입구에 두 기둥을 두셨더라. 기둥에 대해서는 많이 살폈습니다. 기둥 꼭대기라 그랬습니다. 기둥 꼭대기에는 뭐가 있더라고요? 머리가 있는 겁니다. 그 머리를 하필 둥글게 만들었으니 원래 기둥도 원통이니 머리도 당연히 둥글어야 되지만, 일부러 둥글게 만들어놓고 둥근 머리를 두셨다고 강조까지 해놨습니다. 우리 머리가 둥글지 않습니까? 내 또래 청년 천만이 달려가도 생각 좀 해보고 나는. 요즘 다 그래도 나는 생각 좀 해보고 이거는 뭐 조건 없이 공짜라 해도 생각 좀 해보고. 먼저 생각해보고 그러면 어른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어른 위의 노인입니다. 백발의 영광의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떤 것도 생각 없이 설치면 이건 짐승이고 이거는 죽은 목숨입니다. 평생을 말을 하고 되새겨도 필요한 말씀입니다. 기둥 꼭대기에 기둥머리를 만들어 두었더라. 모든 행동 모든 인내 모든 기둥에는, 이걸 버텨야 될 건지 안 버텨야 되는데 기둥으로 버티고 앉았으면, 북한이 저렇게 불쌍하게 저렇게 다망해 엉망이 되는데 조금 날랜 사람들은, 해방 후에 공산당 5년 꼬라지를 딱 보고 5년 딱 보니까 이건 영 앞날이 없겠다 그러다가 전쟁 통에 내려온 사람들이 일사후퇴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거의 그 사람들은 이 나라 꼭대기로 다 올라갔습니다. 전쟁 때 못 내려온 사람은 한 30년 동안 내려올 기회가 없었다가, 한 30년 지나면서 90년대 들어 와가지고 북쪽을 떠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온 사람들은 그래도 우리나라 와서 성공하고 유명한 사람들 많습니다. 여기저기 다 떴다 그러는데 70년 넘도록 지금도 평양에서 난 북한의 기둥 되겠다고 버티는 사람들. 기둥은 기둥인데 이 기둥에는 머리가 없습니다. 눈치가 없습니다. 생각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오다가다 그냥 교회 다녔으니까 나는 한 번 가면 죽는 날까지 간다. 그러느라고 교회에 계신다면 우리로서야 이왕이면 감사지요. 감사하긴 한데 머리 없는 기둥 생각 없는 기둥 판단 없는 기둥 뭐 그냥 돌처럼 던져졌으니 그 자리를 지키는 기둥. 발전이 없으니 안타깝고 어느 날 누가 메고 가면 끌려갈 테니 참 불쌍한 겁니다.

기둥 꼭대기에 머리를 두셨더라. 인내 감내. 인내 감내 견디는 인내 감내 기둥입니다. 머리가 있어 생각은 하셔야 됩니다. 머리에 위치는 보니까 꼭대기라 그랬습니다. 생각하고 움직이지 생각 전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때 꼭대기라 그럽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머리통 떼다가 발로 툭툭 차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놔두는 거죠. 어떡하겠습니까? 제 머리를 떼서 제가 발로 툭툭 차다가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리는 사람. 꼴에 또 자기는 지성인이라 그러고 앉았습니다. 지성인이라는 말을 안 하면 한마디 말이라도 해주겠는데 싸우려드니 머리 없는 한 사람하고 싸워서 이기겠습니까? 장애인 중에 말싸움해서 절대 못 이기는 사람들이 귀머거리들입니다. 내 귀는 막아놓고 지 소리만 하는데 누가 이기겠습니까? 그냥 놔둬야지. 머리를 발에 차고 다닌 사람 머리를 허리춤에 차다가 한 번씩은 써먹고 한 번씩은 이렇게 흔드는 사람. 머리란 제일 꼭대기에 올려놓고 생각한 다음 행동한다. 생각이 옳다 하면 난 몸이 으스러지고 부서지더라도 그대로 간다. 이게 머리의 위치입니다. 머리라는 것. 머리는 꼭대기에 두었는데 그 머리에 높이가 보니까 5규빗입니다. 성경에 열이란 인간의 최선이고 절반은 인간의 최선의 반입니다. 네 노력 절반만 하라는 뜻의 나쁜 5 불충의 5가 아니라,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옆에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 됩니다. 그 면을 가르쳐 다섯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17절입니다. 기둥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다고요? 다같이. 머리가 있긴 있습니까? 사진 찍어보면 머리가 있긴 있는데 생각이 없으면 머리 없는 사람입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 그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의 얽은 그물을, 그물을 앉혀 놨습니다. 기둥이 있고 기둥 꼭대기에는 둥근 머리가 있습니다. 이 둥근 머리에다 대고 가로세로 격자, 가로세로 체크무늬. 그물처럼 바둑판처럼 이렇게 머리에다 대고 얽어놓은 겁니다. 가로와 세로가 있어야 되는 거다. 시간의 흐름은 한 줄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한 줄에다 대고 오늘은 어떻게 했으며 내일은 어떻게 하며, 젊을 때는 어떻게 하며 주일은 어떻게 하며 월요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게 촘촘할 때 세로 줄에 가로줄에 세로줄이 되는 겁니다.

일 월화수목 금 토 7일이 옆으로 흘러가는데 주일의 내 행위가 옳았다면 주일은 이렇게 한 줄이 가로세로 마주친 겁니다. 하나님이 월요일을 주시는데 월요일은 자느라고 깜빡했으면 이 그물 이 바둑판 모양의 가로 세로가, 줄은 지나가는데 그다음 줄이 없어져 버리면 이거는 얽어버린 겁니다. 가로, 세로, 가로, 세로, 가로, 세로, 일, 월, 화, 수. 이래서 한쪽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가 흘러가고 기회마다 나는 충성으로 나는 내 위치에서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교회에 오면 교인으로서 할 일이 하나 이렇게 지나갑니다. 가정에 가면 가정의 가족으로 할 일이 또 위에 지나갑니다. 자녀는 자녀의 줄로 돈벌이 나가면 직장의 줄로, 성경 읽을 기회도 지나가고 기도할 기회도 지나가고 교인으로 충성할 기회도 지나가고. 결혼할 기회도 하나님이 주셔서 결혼할 때도 되지 않는데 설치면 이것도 탈. 때를 주셨는데 우습게 알면 그것도 탈 그것도 탈. 결혼 많이 늦어지면 복지부에서 앞으로 장애인 증명서 발급할 겁니다. 언젠가. 지금 발급이 되고 있는데 못 알아차리고 있지요? 결혼을 생각하지 않아야 될 때 이때 생각하면 범죄라 그럽니다. 생각할 때 생각하지 않으면 장애자입니다. 생각이 있고 없고 간에 결혼할 때를 주셨는데 때를 놓치면, 전도서 3장 4장을 읽어봐 보십시오. 때 놓친 사람들 엇박자가 어떻게 되는지. 또 낳아야 될 때는 낳아야 되는데 뭐 계획이 좋아 몇 년 후에 5개 년 개발을 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러면, 하나님을 앉혀놓고 내가 하나님 할 테니까 하나님은 내 시다나하십시오. 그러는 망령된 죄가 되어 집니다. 믿는 사람은 태어났는데 이 집안이면 이 집안을 감싸고 태어났는데 저 나라면 저 나라를 내 조국으로 삼고 그러는 겁니다.

나는 몰랐는데 전도를 받았는데 장로교의 첫발을 디뎠으면 장로교 교인으로 사는 겁니다. 신풍교인으로 전도를 받았으면 신풍교인입니다. 다른 교단 다른 교파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그다음 신앙의 앞날에 이제는 신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 이게 하나님이 열어주시고 인도하는 뜻이라고 보여 지면,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오듯이 대학 졸업하고 직장 가듯이 그거는 그럴 수 있는 겁니다. 인간적으로 취미 때문에 화난다고 이러고 저러는 거는 곤란해도, 여러 가지 기회를 하나님은 가로줄로 이렇게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내가 행동하는 것은 충성하는 것은 전부 세로줄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로 세로가 마주치면 모눈종이, 바둑판, 장기판, 체크무늬. 여기는 바닷가 시골이니까 그물 그러면 쉽게 알아듣습니다. 어떤 것으로 예를 드느냐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 그물 모양이라 그랬는데 원문에 보면 그물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가로세로가 마주친 무늬 그렇게 돼 있는데 100년 전에 성경을 기록할 때는 그물 모양 해야 알아듣지 체크무늬 하면 못 알아들을까 봐, 그냥 그만 그 당시는 바둑판 모양을 잘 알기 때문에 바둑판이라 이렇게 적은 것 같습니다. 바둑 계산하면 안 됩니다. 가로 세로. 바둑판이 가로 세로 줄이 여반들은 잘 모를 거고 저 김명선 씨 바둑판이 가로세로 몇 줄이죠? 헤아려보지 않았어요? 남반들 몇 줄인지 혹시 아십니까? 19줄입니다. 열아홉, 열아홉. 그러면 하나님이 인생 전체에 19번의 기회만 준다. 바둑판이라 했다고 해석을 그리 해버리면 엉뚱한 데로 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흘러갑니다. 그 순간 놓치면 다시는 복구 못합니다. 어느 정도 못하느냐 홍포 입은 부자 누가복음 16장 영원히 애 터져도 되돌리지를 않습니다.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기회 오늘 매조지 딱 매듭을 짓고 또 매듭짓고. 기둥은 버티는 겁니다. 버틸 게 버텨야 가정도 되고 교회도 되고 뭐든지 다 되죠. 버티고, 버티고. 버티는데 무조건 버티는 것이 아니라 기둥 꼭대기에 머리를 두었더라. 생각 좀 하고 위에서 생각하고 그다음에 버티는 겁니다. 둥글다 했으니 어 원만하게 만사 모든 면으로 그 뜻이겠지요. 이게 5규빗이니 하나님의 인도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전념합니다. 그런데 그 둥근 기둥 위에다 대고 놋으로 그물에 가로세로 그물 모양을 얹어놨습니다. 근데 이렇게 놋 기둥 위에다 대고 그물을 올리려면 하나는 파는 방법이 있고, 하나는 붕어빵처럼 형태를 만들어놓고 놋을 부어버리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 놋 그물 놋은 16절에 또 놋을 녹여서 부어서 기둥머리를 만들었는데, 그 기둥머리에 바둑판 모양의 얽은 그물 같은 무늬가 앉았더라 하는 걸 보니까, 녹여서 부을 때 그물 모양이 나오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붕어빵을 구워냈는데 붕어빵에 눈도 있고 비늘도 있는 것처럼 틀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보니까 그런 모양이 나오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내가 그거 좋아합니다. 그건 녹지도 않은 게 버티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저렇게 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내가 그리 좋아하거든요. 교회는 안 되는 겁니다. 목사하자는 대로 하십시오. 그럼 목사가 교주가 됩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우리 교회 빼놓고는 교회는 민주주의로 운영해야 됩니다. 전부 그렇게 적어놨습니다. 민주주의로 교회를 운영하면 하나님은 어디 가셨죠? 망할 놈의 교회가 된 겁니다. 그런데 그걸 모두 다 자랑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민주주의 교회입니다. 민주 운영을 합니다. 예배당 밖에서는 민주주의가 좋다고들 그래 쌌습니다.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모두가 다 좋으면 다 따라가고 하나 좋으면 하나 따라가고 둘 따라가고, 머리 그거는 숫자에 상관없이 하나님과 말씀이 어느 쪽인가 오로지 이것만 딱 교회 운영의 하나밖에 없는 법입니다. 여기에 틀리면 민주주의든 독재주의든 목사든 교인이든 연보를 많이 하는 억센 사람이 그러든 말든 그건 다 집어치워버리는 겁니다. 한 명도 빼놓지 말고 예배당 안에서는 자기 소리 하지 말아라 그 뜻입니다. 목사부터. 목사 너도 네 소리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천벌 줍니다.

성경에 있기 때문에 또 성경에 있는데 이거는 하나님이 꼭 교회에 필요해서 전하라 하기 때문에, 그것만 강단에서 발언할 수 있는 겁니다. 뭐 그랬든지 말았든지 너는 네 소리하고 나는 내 소리 한다. 녹여 붓는다는 뜻도 모르고 머리가 돼서 위에서 제소리하고 싶은 이런 겁니다. 그건 세상도 운영이 안 됩니다. 부어 만들었더라 내 성격 빼고 내가 생각해 본 것도 녹여버리고 내가 더러운 것도 녹여버리고, 내 평생에 이것은 꼭 지고 간다는 내 속에 깔려 있는 것도 다 뽑아서 다 녹여버리고. 말씀 따라. 말씀을 따라 부었는데 부어지고 찍혀 나오고 보니까 공 같은 머리 위에 가로세로 그물 모양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로로 하나는 세로로. 가로 세로 가로 세로가 촘촘히 이렇게 머리 위에 올라붙었습니다. 멀리서 사람을 볼 때 머리가 희어서 머리가 새서 이렇게 허여면 오래 살았구나. 질병이 아니면 나이가 들어야 머리가 희어집니다. 머리가 희어졌구나. 많은 세월을 살았으니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봤겠구나. 그래서 이제는 좀 지혜로워졌겠구나. 그게 머리 위에 올라붙은 머리카락의 색깔입니다. 멀리서 보니까 저처럼 이마가 이렇게 넓은 사람은 이 말 저 말 듣고 속을 속이고 좀 계산을 하고 참을 줄을 아는구나. 머리 이마가 이렇게 넓은 사람들은 생각이 좀 폭이 넓은 사람입니다. 억울하든 아니든. 이게 좁은 사람들은 코뿔소처럼 막 그냥 쥐 박고 돌진만 하는 겁니다. 제 머리 같은 게 유리하다 그 말하는 거 아닙니다. 생각 많이 하다가 기회 놓칩니다. 마구 돌진하는 사람은 기회를 많이 잡습니다. 실수도 합니다. 그러니 소가지가 좁은 사람은 넓히면 좋은 거고 저처럼 소가지가 넓은 사람은, 다 받아주려다가 내려앉으니 좀 속을 좁혀야 됩니다. 이거 딱 알아차린 사람이 모덕입니다.

10년 전에 모덕이 뒤집고 저 난리 다 부릴 때 이유가, 왜 이 사람 저 사람 무조건 다 품고 가려고 그러냐. 탁탁 잘라서 안 될 사람 일찍 솎아내야 되는데. 여기 앉아 있는 교인 이 가정 저 가정을 두고도 대부분 다 얘기했습니다. 서로가 다 아니까. 그 사람 신풍 와서 딱 할 거 알지 않느냐고 솎아내고 그 사람 배제하고 그 사람 기회 주지 말고. 지나 내나 똑같은데 왜 우리 둘은 괜찮고 나머지는 다 쳐내라 그러지요? 마지막에 둘 남으면 갈라먹을 때 5 대 5로 형제간에 좋을지는 모르겠지마는. 절을 절반 아는 사람은 속이 좁다 그럽니다. 저를 많이 아는 사람은 속이 넓다 그럽니다. 너무 넓어 큰일 났다 그럽니다. 그분이 모덕입니다. 그 사람 안 될 거 알지 않냐고 마지막에 그랬지 않냐고 그런데 왜 붙드느라고 노력을 했냐고. 이거 가지고 한 사람 두 사람 10사람 한 100명 지나가다 보니까 너하고는 도무지 못 살겠다 이제 그리 된 겁니다. 저는 좀 속을 좁혀서 신풍 오는 사람 중에 입회원서를 적어봐라 해서, 돈이 있고 가족이 든든하고 이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 말을 잘 들은 사람은 가입하시고, 초등학교부터 학교 다닐 때 결석도 많이 하고 선생님 말을 안 들어서 생활기록부의 평이 안 좋으면, 당신은 결국 교회 와서도 마지막에는 나쁜 짓 할 것 아니냐 옆 교회 가라 그러고 뭐 그러자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 놓으면 모덕 자기 생활기록부나 제 생활기록부나 비슷할 건데? 조례 조사님 생활 기록부도 보면 뭐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한 절반 빼먹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의 결석이 절반입니다. 이런 사람은 목사 임명해 놓으면 교회도 안 다닙니다. 그래 맨날 조례 같은 사람은 일찍 솎아내자. 그래야 우리가 희망이 있지 않겠냐 그러고 신풍의 방향은, 너나 내나 우리는 조례보다 더한 사람인데 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한테 구시렁거려? 조례는 우리보다 착하지 않냐 좀 기다리면 훌륭하지 않겠냐. 집안이 엄청 실력이 있으니 좀 기다려주면 빛 볼 날도 오지 않겠느냐 저는 10년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가 다 조례 덕보고 있습니다.

하나하나하나를 두고 이렇게 다 틀렸습니다. 근데 그분도 이마는 저처럼 이렇게 넓습니다. 이마가 넓으면 좀 넉넉하게 생각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아듬고 가지 왜 그랬을까. 기둥 위에 둥근 머리가 있고 둥근 머리 위에 뭐가 있고요? 그물 모양이 올라붙어야 됩니다. 그물 모양.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그 기회 놓치지 아니하고 이 기회 주시면 이 기회 놓치지 않고, 한 기회 한 기회 한 기회 또박또박 이렇게 생각하고 기둥으로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13년을 버티고 총리 된 사람도 있습니다. 좁은 이 나라의 총리가 아니라 미국 나라 같은 총리. 그렇게 버티고 마지막에 좋은 꼴도 못 보고 죽었는데 하늘나라 가서 보니까 하늘나라 오는 사람은 전부 자기의 자손이 되는 아브라함도 있었습니다. 이랬든 저랬든 기둥이 있고 기둥 위에 머리가 있고 머리 위에 모양이 그물 모양을 올려놓았다면, 가로가 있고 세로가 있다는 뜻이구나. 무엇이 가로며 무엇이 세로일까 무엇이 가로고 무엇이 세로일까. 또 마주치고 또 마주치고 또 마주치고 무엇이 계속 마주치고 마주치고 이렇게 촘촘 얽혀 있을까. 그러고 나서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아 기회와 행위의 관계를 다른 성경에서도 이리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이 그 말이구나. 그리고 읽어보면 다 맞아집니다.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을 둥근 머리 위에 올려놓아라. 하나 그물 두 번째는, 고리를 사슬은 고리입니다. 고리. 고리 다 아시죠? 고리 고리 고리를 이어나가면 사슬이라 그럽니다. 사슬. 맨 줄로 나가면 그냥 끈이라 그러는데 끈으로 나가는 것을 그냥 꼬면 보통 실이라 그러는데, 고리 한 개 금반지 같은 거 반지 같은 것을 고리 고리를 다 만들어 가지고 고리 고리를 이어나가면 그걸 꿰어간다 그럽니다. 땋아간다 그러기도 합니다.

사슬 모양의 딴 것을 만들었으니, 사슬 모양의 딴 것을 만들었으니 계속 꼬아 댔으니까 얽혔습니다. 그냥 새끼때기처럼 그리된 것이 아니라 고리 고리가 이어진 것처럼 되어졌는가봅니다. “사슬 모양의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신앙이란 한 행위 그 행위 자체가 옳아야 됩니다. 또 그다음 행위, 그다음 마음, 그다음 생활, 그다음 단계 하나하나 하나가 옳고 바르게 되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 따로 저것 따로 이리 되면 흩어진 목걸이처럼, 진주 목걸이 줄 없애버리고 그 구슬을 다 던져버리면 흩어지듯이 그리 말고 이어져 엮여 얽혀가도록 하라. 어제는 저 친구가 화를 내더니만 오늘은 좋아서 히죽거리는데, 어제 화난 얼굴과 오늘 찡그린 얼굴은 이게 따로 노는 건데 그런데 어제 왜 화가 났는지 오늘 왜 좋아했는지를 보니까, 어제는 말씀에 부족한 것 때문에 회개를 했고 오늘은 말씀을 이제는 회개하여 좋아져서 웃고 있는 걸 보니까, 말씀이라는 것으로는 하나가 다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엮어 땋아 가는 사슬 모양이 되어지는 겁니다. 쭉 이어지는데. 학교 다닐 때 공부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더니만. 훌륭한 학생입니다. 고리가 따로. 졸업하고 나니까 오로지 돈만 압니다. 그 고리 또 따로입니다.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이 학교 저 학교 나이 들어 토막토막토막이 다 따로 같은데 쭉 연결을 해보니까 땋은 머리처럼 이거는 풀지를 못합니다. 따로 떼어놓지 못하는 하나의 연결입니다. 말씀에 붙들려 월, 말씀에 붙들려 화 수 목 금토 말씀에 붙들려 춘하추동,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강건하거나 병들 때도 변치 아니하겠느뇨. 결혼을 두고 꼭 물어봅니다. 둘이 좋을 때는 뭐 금가락지 서로 바꿔가면서 좋아서 생난리 더만, 또 하룻밤 자고 다음 날에는 뭐 서로 빼서 물려달라고 생난리를 하더만. 하나는 저리 튀고 하나는 이리 튀고 유리구슬 그냥 마루에 쏟아놓으면 10개든 100개든 산산조각 제 나름대로 굴러다니듯이 이렇게 조각조각 따로 놀면 아니 되는 겁니다. 이어져야지.

기둥이 있고 기둥 꼭대기에 머리가 있고 그 머리 위에는 바둑판처럼 가로세로 얽은 그물을 올려놨는데. 이게 기둥과 머리와 이 그물 모양이 전부 부어 녹여놨기 때문에 이거 떼 내지를 못합니다. 쇠를 녹여 부어서 틀을 만들어 놨으니. 교회에 기둥 되고 신앙에 기둥 되고 가정에 기둥 되고 내가 맡은 일에 내가 기둥이 될 때마다 말씀으로 생각하고 이게 따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거죠. 생각을 할 때 이게 주님이 주시는 기회가 맞냐. 이 주님이 주시는 이 기회에 내가 이 행동이 맞냐. 이 기회가 맞냐 이 행동이 맞냐. 이게 가로 세로 가로 세로 촘촘히 엮이면서 가는 것이 하나 있고. 또 사슬 모양의 땋은 것도 만들었으니 사슬 모양이라. 한편으로는 주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충성충실로, 또 한편으로는 한 행위 행위가 다 이어지도록 두 가지를 만들었는데,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성경에 일곱은 하나님이 볼 때 됐다. 하나님의 수준입니다. 하나님 완전. 그다음 18절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다니요?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잘랐으니까 앞을 한번 요약하고 가셔야 되겠지요.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본당이 나오는데 본당 앞에 현관이 있고 현관 앞에 좌우 두 기둥이 있더라. 이서진 좌우 기둥 몇 개? 두 개요? 서진이 집에는 아들이 몇 개인가요? 두 개요? 두 아들이 이렇게 집에서 두 기둥이 지금 되어 있는가요? 서진이는 기둥 같은데 서인이는 기둥 같질 않죠? 이거. 비슷해요? 서진이는 든든한 기둥 같은데 서인이는 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잘 몰라요? 이게 마음에 안 들면 이거 떼 내는 게 아니고 이걸 자꾸 달래서 만드는 겁니다. 나처럼 기둥은 둘이라 좋은 겁니다. 하나 잘라 내버리면 큰일 납니다. 두 기둥

두 기둥이 두 기둥 되려면 두 기둥 꼭대기 위에 머리가 있어야 기둥이지 머리 없는 게 기둥이냐? 머리 없는 것도 인간이냐? 송장이지. 역적은 목을 쳐버렸습니다. 두 개가 못 붙어 있게. 인간이면 붙어 있어야 됩니다. 생각도 없이 이랬다저랬다. 이랬다저랬다. 이랬다저랬다 안 되는 겁니다. 이런 거는. 강단의 설교가 이랬다저랬다 누구 말대로 신풍교회 행정이 이랬다저랬다 화가 나거든. 지금은 사이트에다 대고 인터넷에 마음껏 누구든지 욕하도록 해놨으니까, 실명도 좋고 비실명도 좋고 남의 이름 옛날 누구처럼 빌려서 그냥 거짓말로라도 적어가지고 있는 대로 욕을 하시면 좋습니다. 그냥. 없는 욕하면 그냥 내둘 겁니다. 없는 욕하면 그냥 놔두는 거고 틀린 거 있으면 아 그거 잘못 된 것 같습니다. 그때 나는 제가 실명을 적습니다. 저도 다를 때는 실명을 잘 안 적는데 틀린 거 딱 찍어줄 때는 제 이름 걸고 예 이거 잘못 되 쓴 겁니다. 이거 이렇게 고칩니다. 목사가 자기 틀린 거 교인이 지적할 때 실명으로 고치면 그게 무슨 뜻인지 혹시 아십니까? 교인도 자기 틀린 거 있으면 실명으로 적고 돌아서라 그 뜻입니다. 자신이 없어 못 그러거든 저렇게 하는 것이 맞기는 맞는데 나도 신앙이 자라 틀린 것은 내 이름 걸고 저렇게 고쳐야지. 이래 되는데 입 쓱 닦고 그냥 모른 척하고 꽁하고 앉았으면 속에 암 걸립니다. 암이라는 단어가 불빛이 안 들어가서 껌껌하다 그 뜻입니다. 암이라는 단어가 껌껌한 방, 불 꺼진 방, 마음속에 불 꺼진 방 불 꺼놓고 혼자 꽁 하고 앉았으면 풀래? 암으로 바꿔줄까? 하나님이 물어보십니다. 그래서 그냥 딱 얼굴 보면 해맑게 웃으며 열심히 살면 좋은데, 만상을 찡그리고 뭔 도사나 된 것처럼 아니면 뭐 5천만에 그냥 고생을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인상을 그리고 앉았으면 속에 건강에 좋지 못합니다. 우리 남반에 한 서너 명 계시지요? 자꾸 거울보고 얼굴을 펴셔야 됩니다.

절 가르치는 선생님은 좁은 방 안에 거울을 열한 개를 놓고 자기 얼굴 보면서 얼굴 연습을 하십디다. 거울 열한 개를 놓고 누워도 거울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누워도 보이고 옷 입어도 보이고, 나갈 때 문 열 때도 보이고 문 열고 들어올 때도 보이게 거울 열한 개를 달아놓고, 예쁘게가 아니라 내 상다구를 보면 은혜가 안 된다니 나도 모르게 얼굴의 모양이 잘못된 건 내가 고쳐야지. 해서 참 도인인데도 자기 얼굴 표정을 자꾸 고치다 보니까, 나중에 한 팔순 가실 때는 그분을 직접 만나 악수하는 분들은 그냥, 내가 안 믿으려 그랬는데 그분 얼굴을 보고 손을 잡아보니 내가 열심히 믿어야 되겠다. 이렇게 자꾸 얼굴 보고 바뀌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뒤에 보니까 그렇습니다. 저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폭 녹아져서 감동을 받아 나도 열심히 믿고 목사님처럼 참고 그래야 되겠다. 그런 교인이 여기 많으면 싸움이 있을 리가 없는데, 원래 본디 착한 마음이 목사 얼굴을 보고나니까 나도 땅가시처럼 좀 더 독해도 되겠구나. 이렇게 힘을 얻어 놓으니까 뭐 예배당에 그냥 박쥐 두 마리 싸우지, 독사 두 마리 싸우지, 고슴도치끼리 싸우지, 멧돼지 하나 설치고 싸우지, 여기 혹시 안 그런 사람 계신가요? 제 눈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 눈에는. 저도 여러분도 시골교회니 도시교회보다는 기둥은 기본적으로 유리합니다. 근데 시골교회라 기둥은 도시보다. 도시는 날랜 것들이 참새처럼 설치거든요. 도시 교인들은 기둥 될 리는 별로 없다. 이리 보면 맞습니다. 시골교회는 기둥들은 도시보다는 많을듯한데 머리가 없는 기둥들입니다. 난 나대로다. 난 머리 없어도 기둥이다. 기둥도 있고 기둥 꼭대기 위에 머리를 얹어놓으면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둥글면 더 좋습니다. 표 나지 않게, 모나지 않게, 별스럽지 않게, 말씀 앞에 원만하게.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하나 둘 하나둘 놓치지 않고 다 충성해서 교회에서도 충성하는 교인, 집에서도 충성하는 아내, 충성하는 자녀, 식탁 위에서도 고루고루 먹고 건강 위해서 조심하는 좋은 식구들, 뭘 주든지 약 삼아 맛이 없어도 약 삼아 맛있게 먹는 사람.

저 목사님 손주 집에 하나 그런 게 있습니다. 밥상에 앉으면 오만 욕을 다 합니다. 이러니저러니 짜니 그런데도 싹 다 닦아 먹어요. 몸이 엄청 좋습니다. 미국 손꼽는 대학의 유명한 선수입니다. 밥상 차려놓으면 모조리 다 먹습니다. 그런데 맨날 앉을 때마다 구시렁구시렁구시렁 하고 먹습니다. 이왕 먹을 거 곱게 먹지. 또 하나는 뭐 그냥 뭘 주든지 불만이 없습니다. 예, 그래놓고는 안 먹습니다. 그래서 비실비실 그냥 꼬실꼬실 그렇습니다. 이건 장애 자급입니다. 엄마의 사랑은 욕을 하든 말든 다 닦아 먹고 가는 아들이 고맙고, 예 해놓고 안 먹는 아들이 그렇게 밉다고 아들 둘 비교를 할 때 그래요. 기둥도 있고 머리도 있고 어떤 기회든지 충실하게 그물 모양입니다. 그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땋은 사슬 같은 것이 또 있더라. 행위 행위 행위가 이어지며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것 같은데 알고 보니까 다른 게 아니라, 주시는 환경에 순종을 하다 보니까 달리 보인 겁니다. 바로 왕궁에 있을 때 40년 모세가 다르지 않았고, 미디안 광양에 쫓겨 돌아다니던 망명 40년의 모세가 다르지 않았고, 광야 40년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고 하나님을 대신할 때 모세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이 보면 바로 왕궁 40년은 바로 밑에 간신배 배신자였고, 저 시내산 미디안 광야에 있을 때는 처량한 40이었고, 광야 40년은 하나님처럼 그냥 홍해바다를 갈라버리지 바위를 치면 물이 나오지 모세는 그냥 보이는 하나님 정도였습니다. 이 고리 저고리 저고리가 다 달리 보이고 따로 보이는데 보니까 꼬이고, 꼬이고 연결이 되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의 생각, 믿는 사람의 방향, 믿는 사람의 판단, 믿는 사람의 기둥 역할의 생각과 판단은 이 두 가지로 이어져야 됩니다. 또 넘깁니다.

“두 줄 석류를” 앞에 그물이 있었습니다. 그물 위에다 대고는 석류를 또 둘러놓았더라. 석류를. 성경에 석류가 나오면 겉으로 보면 씨가 하나입니다. 겉으로 보면 씨가 하나. 포도 열매는 겉으로 보면 열매가 하나인데 안에 먹어보면 씨가 한 네댓 개 보통 되던가요? 배는 주먹만 한데 먹어보면 씨가 크지만은 한 개만 나옵니다. 배는 씨가 한 개 나오고 그런데 큽니다. 자두도 씨앗이 한 개만 나옵니다. 큽니다. 포도는 씨는 작은데 그 안에 열매는 작은데 한 송이 한 포도 한 알 안에 씨가 네댓 게 있습니다. 말하자면. 석류라는 것은 겉으로는 주먹만 한 씨 한 개처럼 보이는데 속을 열어보면 껍데기만 있지, 속에는 또다시 열매가 몇 백 개가 꽉 알이 배겨서 가득 차 있습니다. 알밖에 없습니다. 겉보기는 하나인데 속에 들어가면 수많은 생명이 들어있는 이걸 성경에 석류라 그럽니다. 월말에 아빠가 일을 해서 월급을 한 번 받아왔는데, 예전에는 이렇게 봉투로 받아왔습니다. 한 달 일하고 월급봉투 하나를 가져왔는데 이 월급봉투에는 30일 출근한 출근이 들어있습니다. 그 30일 매일매일 가기 싫은데 가족 위해서 할 수 없이 갔던 겁니다. 돈 타 쓰는 여자는 봉투가 얇은데 요거냐 그러지만은 그 봉투 하나 월급 받아오기 위해서 남자는, 더럽고 아니꼽고 추접고 그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100번이 더 생겨도 쳐다보는 가족들 때문에, 한 달을 출근해서 별의별 소리 듣고 그리고 마지막에 봉투 하나 가져오는 겁니다. 봉투 하나 속에 고생이 10개, 100개, 천개 만개가 들어앉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이리 말하면 이제 남반들은 이 남자의 수고를 여편네들이 알아줘야 되는데 그러시겠죠? 퇴근해서 저녁에 만나는 여자 얼굴 안에는, 남자 돈 벌러 갔을 때 애하고 하루 종일 치대느라고 속 썩은 것이 남자 직장 가서 속 썩은 것보다 더 하지 못하지는 않을 건데요? 요즘은 그런 일은 없지만 예전에는 여기다 대고 이제 시댁이라는 것이 하나 더 붙어 버리면, 그냥 둘이 아니고 곱하기 2가 아니하고 제곱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그래서 여자도 나도 이 고생이지만은 밖에서 돈 벌어오는 남자도 나도 모르는 내가 모르는 많은 사연이 있을 거다. 남편도. 나도 돈 벌어오느라고 별별 걱정 수고도 있지만, 가정 안에 그냥 좋아 보이나 그 얼마나 많은 게 있을까. 조금 이해를 하면 참 서로 참 좋을듯한데. 그러고 사는 분들이 좀 더러 계십니까? 연세가 많으면 좀 그럴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젊을 때는 잘 모를 듯하고 그렇습니다. 강단에 설교하는 저는 교인들이 한 주간 연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참 많이 애를 먹었을까. 그래서 설교 때 하고 싶은 말을 한 10분의 1로 줄인 겁니다. 평소 때보다 설교 강단의 말이 너무 세더라. 그러는데 저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철공장에서 태어나서 철공장 쇠 깎는 소리만 듣고 평생 살아서 제 속에 있는 말 그대로 나가면 보통 강한 말보다 10배도 더 나갑니다. 줄이고 줄이고 줄이는 이유는 교인들 1시간 설교 듣느라고 얼마나 속으로 애 먹는가. 또 교회 연보하려면 뭐 같은 세상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까. 그래서 확 줄여서 이제 곱게 한다고 하는 게 이 모양입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하면 교인들도 성깔이 저쪽 부산 사람들 보니까 보통이 아니고 그 사람들보다 제가 더하다는데, 그런 망할 놈의 인간들한테도 당하는 걸 보니 참 그래도 자기 속을 많이 죽였는가 보다. 강단을 맡아서 천사 연극하느라고 애를 많이 쓰는가 보다 이렇게 서로 이해해 주면 좋은 교회가 되어 집니다.

뭐든지 좋게 나가려면 한없이 천국이 되어 집니다. 뭐든지 찍 삐꺽 해가지고 망쳐 먹으려면 뭐 그냥 멀리 갈 것 없이 생지옥 됩니다. 행동 위에 생각이 있고 그 생각에는 그물이 있고 두 번째는요? 땋아 나가는 사슬이 있고 이어지는. 세 번째는 석류가 있고. 세 가지 하나만 생각해도 되겠지만 이렇게 마음속에 생각하면서 출근도 하시고 퇴근도 하시고, 일하시다가 생각할 기회가 있으면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참 좋습니다. 제가 밥 먹으면 한 30분 집 안에서 걸어 다닙니다. 걸어 다닐 때 요한복음 6장 55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이렇게 요절을 외우고 다닙니다. 그럴 때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목사니까 이제 그 말이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참된 양식이요. 참된 양식이요 그 속에 은혜 많이 받고 또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이렇게 외우느라고 바쁘게 나가지만 말씀 말씀 말씀 속에 매이고 사무치고 이어가고 나를 비교해가면서, 겉으로는 집 안에서 30분 운동한다고 걷고 속으로는 이럴 때에 암송하지 언제 할 겁니까? 그냥 암송해서 기계적으로 머리에 놓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 가면서, 기억해 가면서, 저를 돌아봐가면서. 이렇게 살면 좋은 세상 좋게 삽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이길수 집사님 치료 잘 받으시고 예후가 좋아서 아마 곧 내려오실 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충성하는 종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도 건강할 때 더욱 충성하시고 다 그러시면 좋겠습니다.



1차: K.Y.Y

Comments

서기 09.20 20:05
다시보기는 항상 담당자가 목록의 요약과 제목을 적는 것이 원칙입니다.
설교자는 담당자가 적은 것을 보며 좋으면 그냥 두고, 필요하면 일부 수정이나 내부에 보충을 합니다.
설교자가 꼭 적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설교 직후 적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담당자가 목록 적기를 그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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