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3.9.20 왕상7:16 신앙의 유지 인내 감당이라는 기둥의 꼭대기에는 말씀으로 판단하는 머리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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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3.9.20 왕상7:16 신앙의 유지 인내 감당이라는 기둥의 꼭대기에는 말씀으로 판단하는 머리가 필요

서기 0 63 09.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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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0 수새

제목 : 신앙의 유지 인내 감당이라는 기둥의 꼭대기에는 말씀으로 판단하는 머리가 필요

찬송 : 122장(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본문 : 열왕기상 7장 16절 -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이 머리의 고도 다섯 규빗이요 저 머리의 고도 다섯 규빗이며

신앙의 기둥, 좌우로 필요한 겁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하신 신명기 5장 32절의 말씀에 따라 여기 두 기둥은 좌우가 꼭 같게 만들었습니다. 무늬까지 모든 면으로. 그리고 기둥에는 “꼭대기에 머리를 두었더라” 떠받치는 게 기둥입니다. 떠받치면 되는가? 죄를 짓든 하나님과 멀어지든 난 순수하게 떠받쳐주기만 하면 되어 지는가? 왜 어떤 면을 두고 떠받쳐야 되겠는가? 이게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입니다. 머리가 방향을 잡고 머리가 생각을 하고 머리가 결정을 하면 그다음 머리의 방향에 따라 떠받치는 기둥. 기둥. 목회자가 이리 끌든 저리 끌든 장로님들은 기둥이 되어 떠받쳐 가기만 하면 되는가? 손수레 리어카 구루마의 바퀴는 2개입니다. 주인이 어디로 끌든지 따라갑니다. 주인이 옳은 일을 할 때는 옳게 따라갑니다. 주인이 도둑질하러 갈 때는 물건을 훔치든 말든 그건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충직한 종이다, 그리 되겠습니까?

주님 앞에는 완전자, 주의 인도 앞에는 무조건 따라만 가면 최고입니다. 그러하더라도 알면서 가고 감사함으로 가고 순종함으로 가면 기계적인 기둥이 아니라 유기적인 기둥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만들면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런데 첫날 만들고 첫날에 만든 다음에 둘째 날, 셋째 날 먼저 만든 걸로 뒤에 이어가며 물에게 물고기를 내게 하고 공중을 먼저 만들고 공중에게 그다음 공중에 사는 생물을 내게 하며 앞서 만든 걸 통해 뒤를 만들어 이렇게 계통을 이어갔습니다. 그런 관계를 유기적이다 그럽니다. 주님이 원하면 싫은 데도 가느냐, 굉장한 신앙입니다. 싫은데 끌고 가는 것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죽는 날까지 끌려만 가면 그건 노예입니다. 맹종, 생각도 없이 따라가는 사람 그거는 곡괭이입니다. 좀 낫게 말하면 그건 소입니다. 주인이 끌면 어디든지 갑니다. 뭐 알게 있겠습니까? 곡괭이와 같은 단순 도구는 맹종, 생각이 없습니다. 속으로는 싫은데 명령하니 할 수 없이 갑니다. 이건 노예입니다. 또 좋게 말하면 소도 그렇습니다. 놀고 싶지 일하고 싶겠습니까? 주인이 당기면 싫든 좋든 가는 것은 복종이라 그럽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두드려 대니 끌어대니 뭔 말인 줄도 모르고 순종을 하느냐 곡괭이, 싫지만 따라가느냐 신앙이 어릴 때는 옛사람이 많은데 자기를 꺾어야 되니 처음부터 만만하겠습니까? 싫어도 말씀으로 꺾어가며 이게 반복이 될 때 싫어한 이게 큰일 낼 일이구나, 그리고 싫은데도 해보고 나니까 결과가 이게 굉장하구나, 반복을 해가면서 알게 되고 느끼며 비교를 한 다음 이제는 말씀이 가자면 뭔지는 몰라도 엄청 좋은 일이 기다릴 터이니 이제는 좋아서 따라가면 그때가 순종이 되어 집니다.

맹종, 복종, 순종으로 가지 않고 믿는 가정 부모가 업고 다니니 업혀 다니던 아이, 초등학교 시절은 뭐 좀 불편한데 가자니 눌려서 오는 것 복종, 이게 계속 지나가면 10대 때 버티면 끌고 올 겁니까? 멱살 잡고 올 겁니까? 그러다가 결국은 이제 10대 후반에 덩치가 커지게 되면 그때는 이제 부모하고 자녀하고 두 동강이 나버립니다. 맹종, 복종 다음에 순종으로 만들지 않으시면 부모는 신앙이 있어 좋아서 교회에 오고 자녀는 좋아서 교회를 아니 오고 안 가는 게 좋은데 머리 없는 기둥을 만들어 놓은 결과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맹목적으로 전도하고 업어 데려오고 복종으로 시작하면 귀한 신앙이라고 다독거리고 그러나 겪어보고 비교해보니 굉장히 좋은 거구나 이게 느껴져 원하고 원하는 걸음으로 가게 되는 데까지 자라가야 되고 순종도 결국 순종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그거보다 왜 이렇게 광야로 인도하시는지 광야가 아니면 왜 안 되는지 까지 깨달아 매 순간순간 이해가 되어 질 때 이게 점점 머리와 하나 된 유기적인 몸이 되어 지는 겁니다.

성전 현관 앞에 세워놓은 큰 두 원통의 놋기둥, 기둥입니다. 전체적으로. 기둥 안을 들여다보니 기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냥 받쳐주는 몸체가 있는데 그 위에는 공처럼 둥근 기둥이 있더라, 머리가 원만하게 머리가 알고 머리가 말씀을 모시는 길은 이런 길이다, 말씀을 모시지 않으면 이리 된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고 마지막에는 주와 같이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데까지 이르러야 된다, 이 사상, 이 방향, 이 목표 잊지 말고 충성하라는 겁니다. 머리가 둥급니다. 그런데 다섯 규빗입니다. 다섯이라, 인간 다 하는 것이 열인데 열이 좋지 왜 다섯인가 너 하고 싶은 일, 너 노력 너 힘의 절반만 하나님께 드려도 된다, 설마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성전의 기둥 위의 머리입니다. 좋게 옳게 바른 일에 5를 줄 때는 10이라야 되는데 하나님 떼놓고 나 혼자 독단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주와 하나 되어 내가 해야 될 일을 하라, 주님 다섯 투자하고 나 투자하고 그 10의 5대 5 지분이 그렇다는 말인가, 수치적인 5 대 5가 아닙니다. 주님이 99% 다 하고 1%만 부탁을 합니다. 이것만 해라.

다니엘이 사자굴 들어갔다 나오는 일은 다니엘은 들어갑니다, 하고 웃으면서 얘하고 뛰어 들어가면 됩니다. 강제로 밀어 넣지는 않습니다. 유기적인 인도이기 때문에. 그런데 온 나라를 움직이고 나머지 부총리와 모든 행정조직을 총동원해서 법을 만들고 밀어 넣고 왕까지 거기에 쏟고 그다음 던져버렸을 때 배고픈 사자들이 입을 닥치고 발톱을 후퇴시켜 따뜻하게 재웠다가 다음 날 아침에 내어 보내는 이 일은 하나님 앞에야 뭔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마는 인간 우리가 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은 99.999999 풀었고 다니엘이 하는 것은 주님이 역사하시는 인도니 감사함으로 들어갑니다, 말 한마디 생각 하나로 그냥 담대하게 들어갔습니다. 인간으로 볼 때는 다니엘이 한 일은 없습니다. 기도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다니엘이 함께 만사 모든 일을 해 나가셨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지옥 갈 인간이 천국 가는 것도 이런 식으로 시민 협동, 합동 공동으로 해야 된다 까지 나가버리면 감리교회 오해가 되는 거고 지옥 갈 인간을 완전히 깨끗케 대속하여 천국 가게 하는 것은 전적 은혜다, 이거 하나만 알아가지고 믿는 사람 중생 뒤에는 이러나저러나 저절로 다 천국 가게 되어 있다, 성령이 견인을 해서라도 견인, 차가 고장 나면 견인차가 와가지고 레카 차가 와가지고 목을 달랑 들고 끌고 간다고 우리는 레카, 레카 그럽니다. 목을 끌고 간다고 레카 차 그럽니다. 영어로는 그냥 토우라 그럽니다. 끌고 가다라는 뜻입니다. 견인, 성령의 견인 중생된 거는 어떻게 해서든지 마지막에 천국에 집어넣고 만다. 칼빈의 5대 교리를 오해를 해놓으면 중생이 확실한 순간부터는 천국 가면 똑같고 천국은 안 갈 수가 없으니 뭐 하려고 애쓰고 믿을 겁니까? 결국은 결론이 그리 갑니다.

지옥 갈 죄인이 천국 가는 의인으로 바뀌는 것은 주님의 전적 대속이고 이거는 우리가 모를 때 다 해결을 했고 모를 때 죽었을 때 중생을 시켜놨고 중생된 것은 달래가며 하나씩 둘씩 길러갑니다. 그리고 성경 읽어보면 다 풀립니다. 몰랐을 때도 성경을 신학 없이 지식 없이 선입관 없이 그냥 차분하게 읽어보면 지옥 갈 죄인이 천국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거는 주님이 우리 알지 못할 때 일방적으로 무조건 다 해결해 놓으셨구나, 때를 따라 어느 날 중생이 되면 그때부터는 일일이 가르치며 기다리며 끌며 그다음 도와주며 그러다가 우리 속에 옛 사람이 버티면 또 물러나 계시다가 또다시 달랬다가 이건 뭐 그냥 어린아이 길러가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처럼 부부의 관계처럼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처럼 그러는 것이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겁니다.

“기둥이 있고 기둥 위에 머리가 있더라” 난 뚝심이 있어서, 머리에 머리 없는 기둥이다 그 뜻입니다. 머리 없는 기둥. 난 평양을 가도 수령님을 모시고 목숨 걸 때 힘 다할 거다. 나다 보니까 서울에 낫고 나만을 위해서도 그렇다 도둑놈이 붙으면 복수를 위해 난 죽어도 변치 않는다, 기둥이라 뜻입니다. 머리 없는 기둥, 거울을 보면서 자기 머리를 마음속으로 딱 자르고 난 머리는 없다 그러나 뚝심이 있다, 그리고 거울을 봐 보십시오. 이게 머리 없는 기둥 꼴입니다. 지조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지렁이처럼 전부 흐물거리는 세상이니 좀 기둥이 되라, 전체적으로는 기둥을 강조하지만은 기둥 내면을 보니 머리와 머리가 꼭대기에 있어야 되겠구나,  기 머리 자기 꼭대기에 올려놓고 계시는 분계십니까? 자기 머리 떼 가지고 그냥 축구공 차듯이 툭툭 차고 다니는 사람 요즘 청년 다 그렇습니다. 그냥 예전에는 뭐 그냥 10대 10대 10대만 그랬는데 지금은 30대들도 제 머리 떼다가 발로 툭툭 차면서 웃어댑니다. 이게 괴물이지 인간입니까? 이게? 이게 과학의 발달이 만들어 놓은 sf라 그런 거던가요? 그게 sf(에스에프)라 그러죠 그게? 공상과학 세계, 머리로만 생각해 본 세상 30대까지가 지금 이 모양입니다. 이게 지금 40대로까지 지금 번져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허리에 차고 댕기는 사람, 평소에는 말씀이 가지면 부족해도 갑니다. 이 머리인데 선거 때만 되면 갑자기 자기 머리 떼 가지고 발로 차버리는 사람, 선거 때만 되면 갑자기 불신자가 되는 사람 기이합니다. 기이해요. 주변과 동네와 온 지역이 다 그래도 난 내 머리 내가 떼서 내 발로 차는 그 꼴까지는 못 보겠다, 이 정도가 되어야 그래도 인간일 건데 기둥에 머리를 두셨습니다.

기둥에 머리, 다섯규빗입니다. 내게 주신 분담 내게 요구하는 충성 그게 죽음이면 죽음으로 그게 감사하면 감사로 주님이 내가 다 할 테니까 너는 기도한다, 말 한마디만 해라. 다니엘은 그게 자기의 5규빗입니다. 요셉의 5규빗은 17에서 30살까지 13년 인간이 못 견딜 고난은 다했습니다. 요셉의 성공을 보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요셉이 99%하고 하나님은 그때 어디 가서 뭘 하셨나 싶을 만큼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이후에 예수님 오실 때까지 400년 이스라엘 나라를 떠나 계셨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정말로 우리 안에 계셨던가, 주님 오실 때는 이스라엘의 초림 말년의 형편이 그랬습니다. 지금 주님 재림의 말년인 오늘 하나님이 계시는지 헷갈리는 때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치료한 환자보다 이 나라의 몇 십 개가 되는 대학병원 한 군데서 살리는 부활과 나을 수 없는 장애자를 마구 치료시켜버리고 걸러내는 것이 지금은 저 애양원 병원이 그러지 않습니다마는 제가 올 때 수술 환자 한 3만 명 대기시켜놓고 수술 날짜 잡으면 3년 아는 빽이 있어야 되고 5년 후에 수술 한다 그랬습니다. 평생 못 걸어본 사람 걸리는 게 저 병원입니다. 평생 짝발로 걷는 사람을 두 발로 나란히 걷게 하는 게 저 동네입니다. 목발 짚은 사람 목발 던져버린 데가 저 병원이었습니다. 주님보다 애양원 병원이 드러누운 사람 걸렸고 짝발을 온전하게 만들었고 목발 팽개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보다 훨씬 잘 아는 답니다. 이래놓으니 과학이 예수 어디 있고 구원 어디 있고 천국 어디에 있냐 자기들이 다 하나님인 줄 압니다. 말하자면 그렇다 그랬는데 ai라는 말이 이제 과학이 하나님 되어 인간을 틀어쥐고 온전한 세상이 와버렸다 그게 ai입니다. 요즘은 어느 교회도 ai 부정하는 데는 없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학교에서는 그거 하나님의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거기 까지는 나가지 못한다고 고함질렀습니다. 지금은 교리가 이제 다 죽어버렸습니다.

기둥에는 머리가 있어야 됩니다. 머리의 위치는 꼭대기라야 됩니다. 어떤 행동도 어떤 결정도 어떤 방향도 말씀으로 결정하고 말씀으로 결정이 되고 나면 자기의 생애가 따라가야지 아무리 교회 교회해도 내 아이를 위해서는, 내 가정을 위해서는, 내 정치 사상을 위해서는, 저는 보수 같고 여러분은 좌파 같지요, 제가 보수 따라가는 것 같습니까?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회는 원수가 돼가지고 전국 조사 다 당했습니다. 이승만 정권 서면서 첫 번째 요구한 게 국기 앞에 90도 절입니다. 주일학생까지 목숨 걸고 다 반대했습니다. 그건 반대고, 교회가 있는 이 나라를 옳은 방향으로 만든 것은 교인이 아니라도 그건 당연히 찬성할 일인데 공산당 되면 교회는 다 처단하는데 교회가 그거 잘한다 그래야 되지 교회가 교회 뿌리 뽑는 북쪽을 잘한다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게? 불교도 그래선 안 될 건데, 뭐 말하자면 그런 식입니다. 이쪽에서 봐도 저쪽에서 봐도 그러든 말든 기둥에는 머리가 있습니다. 그 머리는 사회도 국가도 정치도 내가 좋아하는 정당 위에도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 이 머리를 보면 “꼭대기에” 그랬습니다.

성전은 말씀 생활인데 말씀 생활의 성전의 기둥이 되고 그 기둥의 꼭대기란 말씀으로 생각하고 말씀으로 방향 잡으면 그러면 기둥 되어 뚝심 있게 죽어도 버텨낸다, 이걸 성전 입구에 두 개를 세워 신앙이란 저런 거다 똑똑히 보거라, 그런데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머리는 떼서 공  차는 사람, 바구니에 넣고 덜렁덜렁 돌아다니다가 화딱지 나면 내버리는 사람 나의 신앙이 이런 괴물로까지 나가지 않았는지 심각하게 16절을 보셔야 됩니다.

“기둥 위에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집집마다 부모가 자식 밑에 내려가 발에 치이는 것은 뭐 흔할 거고 강제가 아니라 대화로 설득으로 그다음 권위로 자기의 눈물과 노력으로 자식 꼭대기 위에 아직도 올라 있는 분계십니까? 별로이 없지 않습니까? 뭘 보면 아느냐 부모는 이 교회가 옳다, 이 교회 다니면서 자녀는 천주교 댕기면 종교적으로는 부모가 머리 노릇 못한 겁니다. 부모가 세상에 젊은 놈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나이 많은 일을 그래서 안 된다 너도 나이 많아진다, 네가 나이 많은 이들을 쥐어박는 것은 집에 와서 날 쥐어박는 것과 같다 어른이 말하는 것은 항상 조심해라, 그 말 때문에 자녀가 천하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해도 젊은 것이 세상을 쥐어 움직이는 게 옳다 그 소리를 못하면 부모가 머리 된 사람입니다. 부모 앞에서는 엎드려 절하고 밖에 나가서 제멋대로 하고 부모가 자기 집안에 말로는 기둥 머리, 꼭대기고 실제로는 발에 치어서 축구공처럼 그렇게 휘둘리면 곤란합니다. 돌아보시면 회개할 게 많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내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에게 인생의 큰면, 신앙의 중요한 면만은 방향은 잡아주셔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둥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꼭대기 위에 둬라 이렇게까지 적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5규빗에 둥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살 내 인생, 나와 관계된 교회, 가정, 자녀 두루두루 이거 죽는 날까지 할 일이 많아지는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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