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3.6.10 눅18:8 심각을 느낄때 원한 맺힌 기도, 두고갈 땅은 난리면서 신앙은 취미이면 비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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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3.6.10 눅18:8 심각을 느낄때 원한 맺힌 기도, 두고갈 땅은 난리면서 신앙은 취미이면 비 양심

관리1 0 40 06.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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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0 토새

제목 : 심각을 느낄때 원한 맺힌 기도, 두고갈 땅은 난리면서 신앙은 취미이면 비 양심

찬송 : 99장(아 하나님의 은혜로)

본문 : 누가복음 18장 8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원한적인 기도를 속히 풀어 주시리라, 불의한 재판관에게 힘없는 사람이 자주 가서 사정을 하니까 불의한 재판관도 결국은 자기 때문에 해결해 주더라, 세상의 원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시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이게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며 운영의 형태인데 그런데 이걸 믿는 자가 있겠는가, 세상 급하면 모두들 난리가 나지만 세상에 문제가 생기면 로비를 하든 뭐 논밭을 팔아서 대학만 보내면 된다고 모두들 전국이 난리였고 뭔 수단 방법 가리지를 않았었습니다. 요즘도 백으로 이걸로 저걸로 뭐 다 나름대로 할 사람들은 끝장 보면서 다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하는데 하나님 앞에 원한적 기도로 하나님 앞에 해결해야 될 일을 두고 해결하는 사람은 봤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이 오실 때 신약 전체를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40일 후에 승천한 다음 그 순간부터는 늘 매 사람사람 다시 찾아오고 계십니다. 믿는 자를 보려고 찾아오십니다. 뭘 믿는데? 주님을 믿겠지요. 어떤 주님을 믿는데? 원한을 해결해 주시는 주님, 주님을 그런 주님인 줄 알고 있는가?

아이는 배고프면 울면 되는 줄 압니다. 안 우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배고프면 울어 젖을 해결하는데 신앙의 젖이 필요할 때 울어 찾는 신앙의 사람을 봤냐? 두고 갈 땅의 것이 필요하면 난리지만은 신앙에 관계되는 것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오히려 있어도 그거 좀 많아 놓으면 세상사는 데 불편해서 그냥 적당하게 무늬로, 그냥 적당하게 가정 화평에 좋을 만큼, 자녀 교육의 하나의 방법이 될 만큼 딱 그만큼이면 되지 공부를 미뤄 놓고 제쳐 놓고 공부를 짓밟고 만약에 교회를 간다, 그건 너무 지나친 것이다, 가정에 분란이 나도 신앙 생활은 제대로 해야 되겠다 이렇게 되면 이단에 사이비라고 생난리입니다.

 두고 갈 땅에 부부 살고 아이 기르는 데 딱 필요한 그만큼 국가도 기독교가 어느 정도로 필요하냐, 사람들 좀 부드럽게 순종하고 인자하게 사는 데 적당한 만큼, 나라와 사회를 뒤흔들 만큼 그리 되면 이거 큰일 나는 겁니다. 코로나에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어야 기독교지 코로나에 나라가 가만히 있으라 그러는데 교회는 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거는 있을 수가 없다 나라에서도 펄쩍 뛰지만은 교회가 먼저 나서서 국가가 코로나라고 집에 있으라면 집에 있어야 되지 코로나라고 그러는데도 교회를 가겠다고 나서면 그 교회는 이단이라고 교회 신학자들이 먼저 나서서 설쳤습니다. 이름 깨나 내 놓는 것들은 2020년에 마구 성명을 발표하고 생난리를 다 했습니다. 그런 인간들을 ‘앞잡이’라 그럽니다. 앞잡이. 또 사냥하는데 ‘몰이꾼’이라 그럽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괘씸하다고 결국은 한 편이 돼서 살살 달래가는 그런 방법입니다. 쥐어박기만 하면 가버릴 테니까 하나는 마음껏 쥐어박고 하나는 도망은 못 가도록 또 이제 뒤를 딱 붙들고 앉았고 세상 살아가는 세상 살아가는 다 이치입니다.

어려워 호소할 때가 없는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못난 사람 그런데 원한이 있어 그냥은 있을 수 없는 사람 그 도시에 재판관을 찾아가 이 원한은 풀어줘야 되지 않겠느냐 자주 가서 자꾸 자꾸 호소를 했습니다. 너희들은 다 그러지 않느냐? 세끼 밥 먹는 걸 두고는 깡통 들고 집집마다 얻어 먹으러도 다니지 않느냐? 양반 배고프면 구걸 안 할 것 같습니까? 배고프면 이 집 저 집 문 두드리고 다 얻어먹고 댕깁니다. 꼭 안 되면 옆 동네를 가서라도 얻어먹지 그냥 앉아서 굶어 죽는 수는 없습니다. 얻어먹든, 안 되면 도둑질 하든 뭘 하기는 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이란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생명의 본능입니다. 생명의 본능. 세상을 살아가라고 세상 살아가는 생명을 주니까 그 생존을 위해서는 조금 더 편리한 데를 확보하기 위해서 박이 깨지고 생난리가 나고.

백 년 전에 서울의 인구가 한 이십만 명 그렇게 잡습니다. 지금 천만에 서울 주변이 천만입니다. 나라의 절반이 다 서울 주변에 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 거의 전부 가 고향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좀 더 세게 말하면 고향을 배신한 사람들입니다. 서울 경기권에 2천만 명은 그 입에 고향을 사랑하라니, 뭐 시골을 사랑해야 된다니 그딴 소리 하면 비겁한 인간들입니다. 고향 버리고 다 도망 가놓고 뭔 소리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고향이라면 버려야 된다, 고향은 잊어버려야 된다, 고향을 찾거나 고향을 거론하는 것들은 처형을 해버려야 된다, 요래야 양심이라도 있습니다. 북한처럼 이사 못 가게 막습니까? 잡습니까? 고향이 좋은가요? 얼마든지 오시면 됩니다. 집집마다 텅텅 비어서 마음껏 와도 됩니다. 온다면 온 나라가 박수를 칠겁니다. 난 못가지만 넌 가라고 다 밀어내고 앉았습니다. 세상에 발 뻗고 사는 것 한 평이면 넘칠 건데 그거 좀 더 확보하려고 생난리를 하고 경쟁을 하고 뭐 남을 쥐어박고 있는 힘을 다해서 생 발버둥을 하면서 신앙? 신앙? 그건 마음속에 한번 그려보면 되지 아니 정말 신앙을 위해서 교회를 가? 자주 가? 또 가? 갔는데 또 가? 아니 새벽에도 가? 저녁에도 가? 사이비로 쇠뇌가 됐구만! 귀신은 그딴 소리합니다. 이런 귀신을 어떻게 씻어버릴까? 이게 예수고 이게 복음 운동입니다. 뭐 간단하게 이렇게 딱 부딪히는 겁니다.

세상 살며 생명에 필요한 것은 생존이라는데 생존은 본능적으로 모두들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하고 필사적으로 생난리를 합니다. 강아지 중에 우수한 강아지는 초등학교 아이들보다 더 우수한데 아무리 우수해도 개 밥그릇 손대면 주인한테 신호를 보냅니다. 이빨을 딱 드러내고 손  댈래? 물릴래? 하고 이렇게 신호를 보냅니다. 개도 밥그릇 손대지 않는다는 말이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문제가 생기면 목숨 걸고 생난리가 나고 신앙 생활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를 살펴보는 사죄의 생활 말씀 속에 주의 뜻을 찾아보는 칭의의 생활 그런 것은 그냥 좋게 좋게  덕담으로 그러려니 하고 그렇게 들어두는 것이고 한 번씩 또 오고 가면 늘그막에 사람 볼 데 없는데 노인당 가서 앉아있는 것 보다야 그래도 젊은 사람 몇 있는 예배당에 오는 것이 노인당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생활 사교 생활 사람 만나 그래도 도닥거리는 이런 문화생활에 교회라는 것이 그거 어느 정도 괜찮다, 신앙 생활은 이렇게 취미 생활 정도로 제쳐 놓고 세상 살아가는 거는 필수적으로 생각을 하니까 땅에 문제가 생기면 원한적인 기도가 쏟아지는데. 원한적인 기도가 쏟아지는데 식구 중에 난치병, 불치병 수술 환자 생기면 원한적인 기도가 마구 쏟아집니다.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면 저 가해자 아이들 없애 달라고 통성기도 금식기도 쏟아집니다. 잘 먹고 잘 살아 이만하면 넘치는데 진학 진로에 문제가 생긴다 싶으면 절에도 가득 차고 천주교 성당에도 가득 차고 수능 시험 다가오면 교회들은 광고 하니 뭐 생난리를 전부 다 합니다. 수능 50일 기도, 수능 10일 기도, 절에서는 수능 50일 불법회, 목탁 두드리는 10일 뭔 무슨 날 두고 갈 땅에 것 위해서는 생난리를 하면서 신앙 그거? 그 어느 짝에 쓰지? 그거? 안 바쁘면 가는 거고 바쁘면 못 가는 거고 아니 그게 신앙이지 그게 기독교지 어데 바쁜데 사람을 불러대! 응? 노는데 바쁜데 못 놀게 해? 그 이단 아니야? 이 사고 방식이 그 생활의 패턴이 다시 오신 예수를 잡아다가 십자가에 뭐 못을 몇 번이나 박아 놨는지 이 기둥 교인 가정에도 예수님 십자가 하루에 몇 번씩 박아 놓고, 저 부부 사이에 말하는 말투도 보면 예수님 쥐어 박기를 몇 번 쥐어 박았는지 모르겠고 또 교회 가요? 주일 오전 오후 두 번이나? 아니 또 밤 기도? 또 밤 기도? 집사니 가지 말라 말은 못 해도 밤 기도가는 아내를 붙들고 싶어 눈치를 주지는 않고 계시는지 그게 다 새로 오신 주님 쥐어 박는 일입니다. 그 주님에게 밤낮 원한적인 기도를 하다니? 목회자 사이에도 그런 거 없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공회 내부 목회자 사이에도 그런 거 없어진 지 오래된 분들 하나 둘은 아닐 겁니다. 절반은 된다고 봐야 그래도 냉정한 평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한적인 기도.

오늘 아침 두고 갈 땅의 걸 위해서는 원한적인 기도에 목매어 통성으로 기도하다 밤을 새다가 뒹굴다가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라는 분들은 오늘도 있지 싶습니다. 많을 겁니다. 가정에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난치병 수술을 두고 기도 안 할 어린 아이들이 있을 것 같습니까? 어제저녁 그 정도 얘기 해 놨는데 지금 사택에 둘 새벽 기도도 안 나오는 거 봐 보십시오. 이 친구들 10살 안팎에 엄마 교통사고 나서 하루에 두 번 뇌 수술할 때 새벽 4시 새벽 기도 나올 때까지 밤  새도록 울고 기도했습니다. 저녁부터 새벽 기도까지 4시간이 아니라 8시간 9시간 울면서 모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0살이라도.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지 뭔 천국을 위해서 기도해? 있는 아이 죽는다 산다 하는 이 문제 생기면 전부 다 원한적기도 하게 돼 있습니다. 안 시켜도 그거는 하게 돼 있기 때문에 조그만 한 아이들 수술이 필요하다 하면 목사 심방 갈 것 없습니다. 심방 간 목사 예배와 기도보다 가족들이 한 맺힌 기도를 10배는 더 세게 할 테니까. 그런데 태어날 아이들 못 태어나게 막는 것은 이거는 또 잘한다고 모두들 난리입니다. 있는 거 일찍 가는 건 안 되고 태어날 거 막아서 못 나오게 아예 봉쇄를 해버리는 건 괜찮고? 이게 양심입니까? 그래도 차를 탄 사람은 오리를 가든 십리를 가든 타기는 타봤는데 차를 타보지도 못한 사람 타지도 못하도록 다 막아 놓고 차 출발해 버립니다. 너희들은 세상에 합류도 못하도록. 그건 살인 아닙니까? 그 잔인한 거 아닙니까? 태어난 것들은 한 달이든 1년이든 10년이든 20년이든 살아나 봤지만 살아보겠다고 나오려니까 나오지도 못하게 전부 다 용접을 해버리고 만에 하나라도 결혼했다가는 아이 생길까 봐 결혼 자체를 안 해버리고 반인륜 범죄인들이 이것들 다 히틀러한테 보내서 처형해 버려야 되지 않는가요? 이게 센 말입니까? 히틀러보다 더한 사람들이지.

원한적인 기도라, 뭐가 원한인데? 저놈의 아파트 한 채를 어떻게 하든 한번 요절을 내봐야 되겠습니다. 다 이거는 한이 맺혀 있습니다. 회사를 가든 공부를 하든 잠을 자든 일을 하든 뭘 하든 나도 아파트 한 채, 나도 아파트 한 채 저놈의 시내의 아파트, 저 놈의 것 저거 하나를, 하나면 둘을 이건 원한적인 기도에 뭐 그냥 온 정신이고말고 우리 교회 예배에 휴대폰 못 보게 하는 것은 젊은 애들 그거 가지고 그냥 게임이나 하고 그럴까 봐 그 정도인데 시내 교회 휴대폰 켜면 앉아서 주식하고 앉았을 걸요? 아파트 이거 투자하고 앉았을 걸요? 이전에 그런 말 하면 목사가 뭔 말을 저렇게 과장을 한다, 그랬을 건데 대한민국 제일 양심적이고 제일 어지신 국회의원이 생 국회에서 발언하면서도 주식 투자하는 거 봐보셨습니까? 그 주식은 주식 투자가 아니라 그건 노름입니다. 한동훈이 욕하면서 노름하고 앉았더만요? 한동훈이 욕을 하면서 노름하고 앉았더만요? 국회의원이 국회 안에서?

도시 교회 예배 시간에 휴대폰을 뭐 하겠습니까? 주식하겠지. 놀음하겠지. 우리 교인 이나 되니까 그래도 노름까지야 하지 않겠지. 예배 때 휴대폰을 봐도 게임하고 말지 노름까지는 안 합니다. 이 정도라도 우리 신풍 교인은 국회의원보다는 낫습니다. 국회의원 300명 중에 꼴찌가 아니라 300명 중에 제일 위대하고 다음에 대통령 될 만한 그 국회의원보다는 낫습니다. 두고 갈 땅에 걸 위해서 기도하지 뭔 놈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기도해? 교회 빈자리를 채우는 데 전도 할 사람이 없으면 아이 주시는 아이로 채우면 더 좋은데 그걸 못 해? 그 설교한다고 전부 다 그냥 다 목까지 그냥 이마까지 그냥 입에까지 그냥 화가 가득가득 차 있을 겁니다마는 신학자면 그런 말 안 하는 게 좋은 학자고 목사는 그 말하다가 그 말 때문에 십자가 못 박혀 죽는 것이 벳세메스를 향해 가는 두 암소입니다.

이 정도 말씀을 가지고 각 가정의 목회자는 여러분들이니 새벽 기도 나오는 분들은 자기 가정에 자기는 목사입니다. 자기 식구들 세 끼 밥 잘 먹고 애양원의 닭처럼 애양원의 돼지처럼 통통하게 잘 먹고 잘 사는데 뭔 걱정? “도살할 날에 살을 찌웠도다” 성경의 말씀은 그렇게 딱 쳐다보고 앉았습니다. 도살할 날에 돼지를 통통하게 먹여서 살찌워 놨으니 그거 참 도살자는 좋아하겠다, 주님의 심판 가족들을 향해 도살막처럼 지금 이런 상황인데 느끼지 못하면 모르게 돼 있습니다. 느껴야 원한적인 기도가 나오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무엇이 걱정이 되어 입맛이 떨어져 버렸는가? 무엇이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가? 뭔 걱정에 말라 비틀어 죽을병이 든 사람처럼 되어졌는가? 정말 그렇게 되면 자기를 아끼는 가족은 해결하게 돼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입어 그냥 얼굴까지 뽀송뽀송 그냥 윤기가 나니 늙어도 윤기가 나니 거기 원한적인 기도가 나올 리가 있습니까? 끝까지 버티면 주님이 직접 마른 걸레 짜듯이 짜버립니다. 그럴 때는 교회 심방 청하고 안 그래도 됩니다. 주님이 매 들고 패면 목사 설교보다 훨씬 원한적인 기도를 하고 지금 해결은 다 되게 돼 있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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