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6.9 마15:21 자녀가 귀신 들린 상황에 애절함이나 있는가? 부모가 오히려 자랑하지 않았는가?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금밤23.6.9 마15:21 자녀가 귀신 들린 상황에 애절함이나 있는가? 부모가 오히려 자랑하지 않았는가?

서기 0 99 2023.06.09 20:04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30609 금밤

제목 : 자녀가 귀신 들린 상황에 애절함이나 있는가? 부모가 오히려 자랑하지 않았는가?

찬송 :

본문 : 마태복음 15장 21절 -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지난 한 주간 누가복음 18장 7절의 말씀, 한 맺힌 기도 원한적인 기도를 하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전체적으로 우리가 급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제목보다 열배 백배 천배 만 배나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주셨고 미리 주셨고 앞으로도 무조건 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헤아려 감사만 하면 된다고 그랬습니다. 크게 두 가지. 하늘의 태양이 저렇게 정확하게 오늘도 돌아가고 있고, 하루 10만 번씩 평생을 고장 없이 뛰어가는 이 심장의 은혜는 그냥 알면 됩니다. 감사하다 원한 맺힌 기도의 제목보다 이게 말도 못하게 더 중요하고 감사하다. 기도 중에 느껴보고 이거는 자꾸 생각하며 감사만 하면 됩니다. 이런 걸 원한적 감사라고 그럽니다. 원한적 감사. 그다음 두 번째는 하루 세끼 밥 잘 먹고 열심히 살아가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차 필요한 것을 구비시켜 준비시켜주시니,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양치치는 것처럼 또 열심히 생활하는 것 이런 것은 원한적인 충성이라 그럽니다. 원한적 감사, 원한적 충성. 이게 원한적 기도로 구할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는 누가복음 18장에 불의한 재판관에게 막혀 억울함을 풀지 못하는 어느 불쌍한 사람이, 계속해서 재판관을 찾아가니까 결국은 들어주더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손을 꼽아가며 이거저거 이렇게 기도해야 되는 숙제를 한 번씩 주십니다. 내가 잘못해서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고, 내가 별로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큰 숙제를 주셔서 너는 따로 기도하지 않고는 안 되도록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은 누가복음 18장에 원한적 기도에 한 맺힌 기도, 이것은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해야 되겠다. 라는 원한적 기도가 되어 집니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운영이 되고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좋게 살아있다는 것, 원한적인 감사로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원한적 감사가 원한적 기도로 자라가는 겁니다. 또 믿는 사람이면 또 사람다운 사람이면 마땅히 해야 될 일, 이런 충실 그런 생활에 충성이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 간과하는 굉장한 기도가 되어 지니, 원한적인 충성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해야 될 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끔찍한 일 당합니다. 둘.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잘못해서 닥치든 내 잘못이 없는데도 닥치든 딱 하나를 찍어 놓고, 이거 해결해 달라고 매달려야 되는 그런 원한적 기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게 하십니다. 원한적 기도로 기도해야 되는 그런 일들은 기본적인 감사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또 평소 충성한다고 주지도 않으십니다. 반드시 원한적 기도로 꼬박꼬박 기도해야 되는 것은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살아가다가 아무래도 이것은 손꼽아가며 간곡하게 기도해야 되겠다. 그렇게 가정문제든 국가 문제든 나 개인의 다급한 문제가 생길 때는, 그냥 줘도 되고 말아도 되면 그냥 두시고 반드시, 반드시 꼭 이 문제는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때 원한적 기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태복음 15장에 21절은 원한적인 기도에 하나의 예를 여기 들어주셨습니다. 간단하게 기록하셨으나 누가복음 18장에 원한적 기도, 모든 기도 생활의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 시작부터 끝까지 잘 나옵니다. 21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두로와 시돈이라는 지방은 안 믿는 막가는 강퍅한 이방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입니다. 헌데 마태복음 10장을 기억하십니까? 마태복음 10장 1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면서 어디로는 가지 말라고요? 이방인의 길로는 아예 가지 말아라. 세상과 신앙을 반반 섞은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잘못된 것만 고치고 불러도 시간이 없는데, 이방인의 길 그건 아예 길도 그거는 택하지 말아라.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마태복음 10장 1절 이하에 그렇게 꼬박꼬박 짚었는데 여기 두로와 시돈 지방은, 예수님이 들어가지도 말아라. 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지금은 15장이지요. 5장 앞에 마태복음 10장 5절에 이방인의 마을은 길도 잡지 말아라. 길도 그쪽으로는 방향을 잡지 말아라. 이방인하고는 아예 상종하지 말아라. 죽든지 말든지 던져두지 뭔 이방인까지 그런다고. 택한 백성 믿을 사람 잘 믿어야 되는데 그 사람들 중에 고장이 나고 잘못된 사람은 잃은 양이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사람 그중에 길을 잃어 잘못된 사람만, 더러운 귀신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챙기거라.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잘못된 사람만 복음으로 희생하지 이방인은 그쪽으로 쳐다도 보지 말아라. 그랬는데 마태복음 10장 5절에 그리 말씀해 놓고 예수님이 15장 21절에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쪽은 길도 가지 말라고 했는데 두로와 시돈 쪽으로 길에 섰고 그 지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방인의 길로 들어가지 말아라. 또 사마리아인의 고을에 들어가지 말아라는 말씀은 아 그거 그냥 읽을 것이 아니구나. 이쪽 말씀하고 비교를 해봐야 해석이 되는 겁니다. 이게 오늘 해석이 나옵니다.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아라. 가지 마라 한 그 길로 가서 그 고을에 안으로 들어가시니, 22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 주님을 맞았습니다. 마을은 길은 이방인의 길이고 이방인의 마을이지만은 믿는 사람이 거기 섞여 살 수 있으니, 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이스라엘 안에서만 살아야 되는 것이 원칙이나 룻기에 룻도 모압 지방으로 갔지, 또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면서 주님 오시기 400여 년 전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이스라엘 나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보다 밖을 떠도는 사람이 더 많았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 길에 가셨는데 가셔서는 이스라엘 출신만 상대하겠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들어가셔서 그중에서도 가나안 여인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방 동네에 이방인입니다. 지역은 두로와 시돈 지방이고 이방입니다. 사람은 가나안 사람이라 가나안 사람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미리 살고 있던 가난한 지방 사람은 한 명도 살려두지 말고 다 죽이라 한 바로 그 가나안 여자입니다. 살아 있는 것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도로와 시돈 지방에 살고 있으니까 예외입니다마는, 지방도 이방 지방이고 사람도 그 안에 불택자 가나안 이방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게 누가복음 18장에 무슨 기도라고요? 그게 원한적 기도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님 옆으로 살짝 와가지고 주여 좀 어떻게 안 되겠나이까 이게 아니라 “소리 질러 가로되” 왜 소리를 질렀는가. 주님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을 치료를 하고 가르치다 보니까 어딜 가도 주님이 나타났다 그러면, 주님 주변에는 열두 제자와 70문도가 가득 차고 짜고 있지요. 그 주변에 먼저 따라다니는 하나님의 백성들 배우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이방인의 길로는 가지도 말아라 이방인은 상종도 하지 말아라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만 치료해도 급하다. 그러는 주님 옆에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분인데 유대인인데 예수님 얼굴을 한번 보려고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둘러싼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멀리서 예수님 얼굴을 보는 것이 어려워, 예수님이 길을 가고 있는 방향 앞으로 쫓아가서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위에서 내려다보고 주님 얼굴을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주님이 가는 데는 사람이 몰려 어려운데, 이방 여인이 주님을 가까이 하기는 이거는 참 어렵습니다. 제자들이 물리치니까.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까 소리를 질러 버렸습니다. 날 살려달라고 “주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내가 귀신 들려야 급하지 뭐 딸이야 귀신 들렸든 말았든 상관있습니까? 딸이야 입원을 하던 수술을 하든 죽든 말든 귀신이 들어가서 미친 여자가 되어 사방천지를 돌아다니든 말든, 딸 그런 것 하고 엄마 그런 것하고 뭔 차이가 있습니까? 신세대 어머니들 굉장히 우수하고 많이 배우고 잘난 분들, 딸 그깟 년 죽든 살든 나하고 뭔 상관이 있어 요즘 식이 혹시 그런 식입니까? 여러분들이 무식하게 보는 나 많은 분들은 내가 죽어도 딸을 살리고 싶은 분들입니다. 요즘은 딸 팔아 먹어도 아마 자기 잘 되고 싶고 다 그럴걸요? 설마? 설마? 통계를 가지고 다 이야기하는 겁니다. 다 그럴 리 없지만 대부분 다 그러니까

여기에 가나안 여인은 이방 여잔데 구원이 없는 멸망의 족속인데, 그런데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든 것은 내가 죽을 일이고 내가 목숨을 걸고 이거는 해결을 해야 되겠다. 정신머리가 바로 박혔습니다. 이방인이라도 자연의 계시 인간의 근본에 자세가 바로 되면 이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 뭔 길이고 뭐고 다 만들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의 직계라고 큰소리치는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제사장들 이 사람들은 예수님도 잡아다가 처형시켜 버릴 만큼 이렇게 억센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도 눈에 보이면 갖다가 죽여 버리는 심각하게 좀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금요일 저녁 예배까지 나온 이 자리에 하나님이 눈에만 보이면 갖다가 그냥 은행에 잡혀먹고 돈이라도 좀 타 쓰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이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금요일 예배 그런 거 뭐 하려고 모여? 라는 사람이 신앙은 없어도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습니다. 이건 뭐 이건 참 내가 죽을 일입니다. 이래가지고는 못 살겠다고 난리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보기의 신앙생활을 잘하는 듯해도 인간의 근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인간의 근본에 충실하고 안 믿는 사람과 비교할 때 조심하셔야 됩니다. 아무리 썩을 교인도 천국은 갑니다. 그러나 썩을 행동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 앞에 고개 숙이고 있어야 됩니다.

인간으로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들 그런데 안 믿는 사람, 끝까지 안 믿으면 가기는 지옥을 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하늘에 간 우리에게 비교를 시키며 지옥 간 저놈의 인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저렇게 떨며 성실하게 제 가족이 소중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않았느냐.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너희들은 뭐 하는 짓이냐 이렇게 되어 집니다.

우리 편이라고 다 좋은 거 아닙니다. 우리 편인데 뇌 속의 암세포는 내가 싸워야 될 원수입니다. 원수 속에 들어 앉아 있어도 내가 배울 지혜는 나에게 선생 됩니다. 여기에 가나안 여자는 구원 밖에 있는 불신자입니다. 예수님이 전도하러 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고장 난 사람들만 전도하고 고쳐 주거라 그래도 바쁘다. 이방인들, 두로 지방에 가나안 여인 같은 것들은 흉악한 귀신이 들어갔든지 말았든지 상관도 없다. 내버려 두거라. 이렇게 마태복음 10장 1절에 이하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10장 1절 이하에 말씀을 했는데 여기 15장 21절에 가니까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고, 이방 여인 구원의 내 버려진 가나안 여인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나는 멀쩡한데 이 딸이 지금 더러운 귀신 중에서도 상 귀신이 들어갔나이다. 이건 내가 그냥 두고 보지를 못하겠나이다. 발버둥을 치면, 금요일 저녁 예배까지 앉아가지고, 아이 뭐 딸년 더러운 기신이 10개 들어갔던 100개 들어갔던지 내가 안 들어갔으면 됐지 어떡할 거야? 뭐 어때서 그거 귀신이 들어갔던지 말았던지 내가 뭐 귀신 들어가라고 했나 시켜도 안 되는데 라는 우리를 주님이 들여다보며, 아니 지옥 갈 이방여자가 제 문제도 아니고 딸년 문제가 생겼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부르고 따라오고 난리인데, 믿는 너는 네 딸을 맡겨놨더니마는 흉악한 귀신이 들어가도, 들어갔든 말았든 나하고 뭔 상관이 있어? 이렇게 빈둥빈둥 물 건너 불구경처럼 하고 앉았으면 예수님과 원수 됩니다. 엄마와 딸 사이만 그렇습니까? 여기 엄마와 딸 사이를 비교한 것은 아버지하고 아들들은 이건 그냥 참 막가니까 그냥 떼 놓은 겁니다마는 원리는 같습니다. 아들놈이 흉악한 귀신이 들어 가가지고, 예배당마다 불을 지르고 다니던 예배 보는데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든 말든 내가 예배 잘 보면 됐지, 아들놈이 뭐 그러든 말든 나하고 뭔 상관이 있느냐. 그리고 여기에 앉아서 별 문제가 없는 분들이 아마 많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 예배당 지금 모자랄 걸요 좌석이. 성경은 어떤 말씀이든지 한 말씀 속을 들여다보면, 내 문제 한량도 없고 우리 문제 한량도 없고 남 말할 시간도 없는 그런 문제들입니다.

불신자는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교회도 모르고 예수도 모르는 사람은 아들놈이 이러고 앉았으니 큰일 났습니다. 아버지가 난리인데 믿는 사람은 천국의 백성이라며, 예배와 구원을 안다며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떠들어 놓고 교회 안 다니는 거 어떡하라고? 믿든 말든 그건 지 자유인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머리 굵은 걸. 머리 굵은 걸 어릴 때만큼이야 못하지만은 시도는 해봤냐? 말이나 해봤냐? 요즘 애들 말하면 화가 나서 더 난리니까 말도 못 했습니다. 잘한다. 너희 집에 도둑놈이 와서 훔쳐가도 말도 안 하겠구나 그때는 신고라도 해볼 건데, 공무원 시험은 10년 아니라 수십 년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해볼 건데, 예수 그거야 뭐 돈이 안 되고 뭐 해도 말아도 그만이니 그냥 성의 표시 하는 사람, 성의 표시도 안 하는 사람 이거 주님이 다 섭섭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지난 월요일에서 수요일 3일간 내계 목회자들만 기도 가려고 생각했다가 건강 문제 때문에 한 주간 미뤄놓았습니다. 눈 감고 기도하는 것은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할 것이라 굳이 함께 모일 것이 없습니다. 목회자 기도회 따로 모시는 이유는 그런 겁니다. 한 명 한 명 이름 불러가며 교인들은 전도했고 가족에게는 전도했습니까? 그거 제가 물어볼 겁니다. 교인 집집에는 이래야 됩니다. 저래야 됩니다. 했는데 자녀들한테는 그 말했습니까? 하나하나 다 물어볼 겁니다. 목회자들끼리만 모이는 것은 목회자들끼리 몰래 어느 공회 목사들처럼 개나 잡아먹으려고 좋은 산속에 가고, 우리는 그런 일 평생에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목회자들만 모이면 교인이 상상도 못할 만큼 우리는 자아비판 더 하는 목회자들입니다. 적어도 그런 양심은 있습니다. 목회자끼리 딱 모여서 비밀로 싸고돌고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그런 짓은 안 합니다. 목회자들끼리 모였다면 저부터 시작해가지고 우리는 뭔 문제가 있는가. 하나 둘 깊숙하게 이렇게 따져볼 겁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역사적으로 여기서는 발 귀신이라고 구약 전체를 통해 제일 센 발 귀신에 본거지입니다. 발 귀신의 이방 나라의 가나안 여인이라 했으니 여자는 구원밖에 있습니다. 전도도 하지 말고 귀신이 들어가도 내쫓아줄 시간도 없다 내버려 두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원 밖에 있고 교회도 안 다니고 성경도 모르고 복음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딸이 귀신 들었다고 자기가 안면 체면 다 던져놓고 마구 예수여 살려달라고 생난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딸에게 닥친 문제는 엄마로서 내 문제입니다. 내 문제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내가 죽지 딸이 이러는 꼴은 못 보겠습니다. 안 믿어도 이리 되어야 이게 믿기 전에 기본적으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인간이 기본에 충실해도 인간만이면 지옥 갑니다. 그런데 왜 인간이 인간 기본에 충실해야 되느냐. 믿고 나면 믿은 이후에는 인간의 충실한 사랑과 인간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신앙의 발전이 하늘과 땅 차이 납니다. 그래서 여기 일부러 이방 여인 하나를 데려온 겁니다. 교회도 모르고 안 믿는 여자는 딸이 귀신이 들렸다고 생난리인데, 믿는다는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딸이 귀신이 덜 들어갈까 봐 귀신에 담가가지고 생기신 더러운 귀신 흉악한 귀신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 딸이 요즘 시내가면 예쁘다고 따라 댕깁니다. 이러고 자랑을 하고 앉았으니 여기에 복음이 상관이 있습니까? 천국은 예수님을 팔아먹어도 갑니다. 그러나 행동은 말씀에 틀리면 더러운 귀신이거나 병들거나 아니면 약하여 이거는 다 하늘나라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어갔는데 흉악한 귀신이 들어가서 생난리를 하니까 온 동네 온 시내가 다 쳐다봅니다. 우리 딸이 스타가 되었습니다. 축하해 주십시오. 이걸 욕을 하면서 소개를 해야 되지 이걸 강단이라고 고운 말을 하면 그 강단이 귀신의 강단이겠지마는, 마음 문을 닫으면 설교가 들지 않을까 봐 지금 극한 표현은 다 자제하고 있습니다. 알아서 다 해석하십시오.

우리 아이가 흉측한 귀신이 들어가서 요즘 주일날 시험 쳐서 합격했습니다. 목사들부터 자랑하고 앉았으면 흉악한 귀신 들어갔다고 목사가 광고하는 겁니다. 그거. 뒤로는 몰래 그럴지라도 앞에서는 입이라도 닫고 앉았어야 되는데, 경찰서 서장이라는 인간이 우리 아들이 큰 놈은 조폭이고 둘째 아들은 강도고 셋째 놈은 도둑놈인데 셋 다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랑을 하고 댕기면 그놈은 경찰서장에서 단번에 목을 잘라야 될 놈입니다. 뒤로는 그럴지라도 입장이 자기가 경찰이면 아닙니다 소리는 못해도 자랑은 못하는 겁니다. 그게. 흉악한 귀신이 들어갔는데 딸한테 아들한테 흉악한 귀신이 들어가면 부모가 자랑을 하고 생난리인데, 플래카드까지 붙이고 생난리인데 교회마다 다 그런데 공회도 이제 다 그런데, 이렇게 평소에 큰소리 쳐놓고 우리 공회 일곱 목회자 모였을 때 하나하나 다 물어볼 겁니다. 혹시 뒤로 그러지 않으시느냐고. 또 저도 하나씩 다 물어볼 거고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여러분들이 볼 때도, 신풍강단도 자녀 흉측한 귀신 들어간 거는 맨날 자랑하고 그러지 않았냐고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그럴 겁니다. 따져보고 사실이면 저는 사과를 해도 공개 사과를 꼭 합니다. 인터넷에 도배치를 합니다. 제 것에 관계되는 것은. 남의 것은 최대한으로 아껴주고 제 것은 도배 칠을 마구합니다. 며느리는 아들이 아니지요? 며느리는 아들이 아닙니다. 며느리 아들이 아니니까 며느리 넣지 마시고 며느리는 남의 집 사람입니다. 평생 심청이 노릇을 해도 친정집에 좋은 사람이지 저하고는 남남입니다. 평소에 다 그러고 있습니다. 네가 네 자식이라고 네가 알고 있고 남이 아는 사람, 그게 흉측한 귀신이 들어갔을 때 가나안 여인도 흉측한 귀신이 들어갔다고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했는데, 신풍교회 목사가 우리 아들이 흉악한 귀신이 들어가서 금요일 예배를 안 나오고 여수 뒷골목에 술 쳐 먹고 앉았는데 다 본 받으십시오. 그러면 이게 바로 그 말입니다. 이런 게 바로 그 말입니다.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23절입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엄청 사람이 따라 댕기고 몰려 댕기고 가나안 여인은 급해서 예수님을 붙들어야 되겠는데, 거리가 머니까 소리를 질러 살려달라고 생난리입니다. 주변에서 전부 다 듣고 있습니다. 소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더라. 이방인 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말아라. 듣지도 말아라. 가지도 말아라. 이방인의 길은 상관도 없다. 가르쳤고 지금 그대로입니다. 가르친 그대로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방 여인인데 이방인에 길로는 가지도 말아라 했으니, 이방 여인이 살려달라는 소리는 흉악한 귀신이 들렸든지 말았든지 그것들이야 원래 그런 것들인데. 두로와 시돈 지방에 어쩌다 보니까 여기 끼어 사는 이스라엘 본토 잃어버린 양이 있을까 싶어 왔지.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고을에 안 믿는 이방 가나안 여자 딸까지? 딸까지? 그럴 시간 없습니다. 여자는 죽겠다고 고함을 질렀으니 이게 원한적 기도입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믿는 택하신 백성들의 원한적 기도를 들으시지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해결해 준다. 믿는 사람의 원한적 기도에 반응을 하시지, 안 믿는 이방인이 고함지르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어? 예수님 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23절 중간 제자들이 와서 주님께 부탁을 합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부탁을 하면 23절에 뭐라고 적혀 있지요? 다 같이. “청하여” 요청 간청 청하여, 말하되 저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 우리 뒤에서 막 소리를 냅다 지르고 생난리가 났습니다. 들리지 않습니까? 소리를 지릅니다. 이방인의 길로는 가지도 말라 했으니 이방 여자가 살려달라는 말은 쳐다도 안 보는 것은 이해를 합니다. 이 제자들이 기억을 잘하기 때문에 이방인의 길로는 가지도 말아라. 그래서 뒤에서 이방 여자가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는데 눈을 주지 않는 겁니다. 눈길도 안 주는 겁니다. 이방인에 갈 것이 없으니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살려주지 않을 것이니 도와주지 않을 것이니 들어주지 않을 것이니,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니 너하고는 상관없다. 복음은 이방인의 길로 가는 것도 아니다. 내가 평소 제자들에게 그리 가르쳤다. 제자들이 보는데 내가 그렇게 내가 말한 약속을 어길 수 있냐. 가거라 너는 상관없다. 알아서 그냥 얼른 돌려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끄러우니까 보내소서.

24절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만 왔다. 하늘에 하나님이 나를 보낼 때 하나님의 백성 중 우리 안에 있어야 되는데 우리 밖에 기 돌아다니는 것들만 찾아서 회개시키라고 보내셨다. 잃은 양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다른 데로는 가지 말아라. 다른 데 가라고 보내준 것이 아니다. 이 말만 딱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그렇지. 뒤에서 고함지르는 여자는 가나안 이방 여자니까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 중에서 신앙 없는 사람들만 전도하러 다니는 거지. 우리 아브라함 자손 우리 하나님의 백성 아닌 사람들은 죽든지 말든지 던져두고 내버려 두는 것이 주님인데, 저 여자가 멋모르고 고함을 지르는데 돌려보내소서. 사는데 말할 것도 없다 상관할 것도 없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왔다라고 하는 말을 여자가 어느 틈인가 가까이 와서 들었습니다. 25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도우소서. 이제 눈앞에 딱 보입니다. 2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되 “자녀의 떡을” 너는 네 딸년 먹을 떡을, 배가 고파 죽겠다는 딸의 먹을 떡을 뺏어다가 너희 집 개한테 던지겠냐? 지옥 갈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여 천국으로 구원하려고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 강퍅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망을 가고 듣지도 않고 사방천지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잃은 양들, 도망간 양들 하나님의 백성들만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해도 지금 바빠 죽겠는데, 구원밖에 있는 이방인 여자가 와가지고 자기도 복음을 나눠. 너한테 줄 것도 없다. 너는 개 아니냐 하나님의 백성들 기준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은 천국 갈 사람이고 이방인들은 지옥 갈 사람들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개 취급을 했습니다. 요즘처럼 예쁘다고 데리고 노는 애완견 시절이 아니라 더럽다고 걷어 차버리는 개 취급을 했습니다.

자녀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던진다? 그럴 리 없지 마땅치 않다 잘못된 거다. 자녀를 위해서 가지고 온 복음의 떡은 자녀에게 주는 거다. 자녀가 먹고 그 떡으로 힘을 얻어 믿고 천국 가는데 필요한 신앙의 양식이다. 이방인은 개와 같으니 상관없다. 26절입니다. 27절 “여자가 가로되” 보통 이제 이 정도가 됐으면 화딱지가 나서 에이 더러워 너희 교회 쳐다도 안 본다고 그러겠지. 지금 이 밤에도 앉아야 하는 사람 적어도 10명 더러워서 너희 교회 안 가고 옆 교회 간다고 아마 옆 교회는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옆 교회는커녕 그냥 내가 천국을 안 가고 지옥을 가버린다고 다 그러고 있을 걸요? 저 오수인 씨 화난다고 한 번씩 그렇게 말이라도 하시면 큰일 납니다. 제가 10년 20년 말을 안 해도 10년 20년 참다가 한 번 딱 말하면, 수십 년 두 번 다시 거래 안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조심하셔야 됩니다. 말조심. 예수님 날 살려달라고 고함지르니까 쳐다도 안봅니다. 무시입니다. 100% 무시. 네가 사람이냐? 살려달라고 와서 절하니까 자녀에게 줄 떡을 개한테 줘? 마구 욕을 들입다 위에서 쏟아 부어버립니다. 에이 더러워서 오기로 안 먹는다. 가버리지. 세상 것이야 안 먹으면 뭐 다이어트도 되고 좋겠지요. 천국에 복음은 오기난다고 내다 버리면 홍포 입은 부자 꼴 딱 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경시킵니다. 복음을 상대로 잘 나갈 때 젊을 때 돈 잘 벌릴 때 건강할 때 큰소리 땅땅 치고, 죽을 때까지 두 눈에 눈물 흘리면서도 해결 못해서 뒹구는 사람 참 하나가 아니고 둘이 아니고 열이 아니고 평생에 참 많이 봤습니다. 오래 믿어 좋은 것 중에 하나는 그런 겁니다. 그런 걸 많이 보다보면 잘 믿지는 못해도 어라. 복음과 교회 상대로는 오기를 부리거나 쥐어박거나 그런 거 아니구나. 차라리 안 맞으면 좀 조금 뒤로 물러가 있지. 복음을 상대로는 성을 푹푹 내면서. 예배당에서도 그냥 다 기억하십니까? 오래돼서 잊었지요? 예배당 제일 앞에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가지고 뒤를 보면서 아니 나를 무시해? 그러고 예배당 안에서 주일 오전 오후 손가락으로 휘두르는 사람 여기도 지금 계십니다. 여기도. 옛날 분들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나를 무시해? 목사도 예배당 안에서는 하나님 때문에 조심, 교인도 목사나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 앞에서는 조심, 어쨌든 하나님 앞에서는 서로 조심조심하는 게 좋은 겁니다.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여자가 귀신 들어가면 보통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성경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거의 같습니다. 첫째, 머리를 풀어버립니다. 미친 년 머리카락이 먼저 표시 납니다. 그리고 여자 미치면 두 번째는 뭔지 아시죠? 입에 담기도 죄송하지만 옷을 훌떡 벗습니다. 미친 년 두 가지는 첫째는 머리를 풀고 두 번째는 벗어버립니다. 요즘 시내 가면 머리 풀고 벗고 댕기는 것들 꽉 찼습니다. 온 골목에 가득가득 다 찼습니다. 제 눈에는 흉악히 귀신은 들어갔는데, 이것들이 자존심이 이래가지고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미안해서 제가 쳐다도 못 보고, 제가 눈길을 저 밑으로 깔고 도망을 옵니다. 근데 그 딸들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이 또 더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딸 좀 보시라고 얼마나. 엄마는 늙어 놓으니 더 벗을 것도 없고, 딸년은 벗어놓으면 볼 게 많아가지고 훌떡 벗고 엄마들은 뒤에서 그냥 흐뭇해 깜빡 죽어버립니다. 어느 미친놈이 와서 하나 얻어걸리라고. 끼리끼리 모이거든요. 엑스포 100만 명이 박실 거려도 쓰리꾼들은 처음 봐도 딱 보면 서로 알아버립니다. 도둑놈들끼리 서로 알고 잡놈은 잡년끼리 서로 알아차립니다. 미제는 미제끼리 알아봅니다. 꼬막 캐던 엄마들끼리는 아무리 곱게 입고와도 꼬막 캐는 사람들끼리는 얼굴 딱 보면 서로 압니다. 목사는 아무리 연극하고 가도 옷을 아무리 바꿔 입고 가도 목사 표가 난답니다. 여자 미치면 첫 번째는 머리카락 표시, 두 번째는 옷을 훌떡 벗어버립니다. 성경은 부끄러운 것이라 이렇게 적어놨습니다. 한 군데 두 군데가 아니라 수도 없이 부끄러운 것이라 적어놨습니다. 부끄러운 걸 부끄러운 줄 모르면 그게 미쳤지 뭐 뭐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정신 착각 정도로 좋게 말을 해야 되겠습니까? 내 딸년이 이 정도가 되었으니 멀쩡한 엄마가 죽을 지경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엄마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더라. 이런 걸 무시라 그럽니다. 무시. 살려달라고 와서 절을 하니까 개들한테 주겠냐? 그럽니다. 이거는 무시 다음에 멸시라 그럽니다. 멸시 무시는 그냥 안 쳐다보는데 멸시라는 건 쳐다보면 이 지렁이 같은 것, 이 개 같은 것, 이 돼지 같은 것, 이 빈대 같은 것 그러면서 쳐다볼 때 이게 멸시입니다. 무시하다가 멸시까지 하면 오기로라도 돌아설 건데 화딱지가 나서 그냥, 교회라는 교회는 죽는 날까지 욕을 해버릴 건데 근데 27절입니다.

여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27절입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습니다. 저는 개같이 못난 사람이며 지옥 갈 불신자며 저는 구원밖에 있는 인간도 아닌 게 맞습니다. 옳소이다. 저야 신세가 개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이건 말대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말싸움으로 이긴 것도 아닙니다. 말대꾸도 아닙니다. 화가 나서 내다 질렀는데 예수님이 그놈 말이 기특하네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정답을 딱 찾은 겁니다. 그냥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지옥 갈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빛을 보고 나니까 지옥만 가고 끝날 것이 아니라, 지옥을 가는 이 인간은 개만도 못한 인간임을 너무 잘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개들도 주인의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일 좋은 거 예수님의 자녀 다주시고 넘치게 주시고 마구 주시고,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아끼는 사람들 마음껏 먹이다 보면, 잔칫상에 떡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습니까? 저는 강아지니 부스러기라도 하나 주워 먹게 해 주옵소서. 성경 전체에 누구의 신앙이지요? 다 같이 소리 크게 성경 전체에 사람 이름입니다. 누구의 신앙이지요? 이건 나사로 신앙입니다. 네가 나사로구나. 남들은 너를 두로 시돈 두로 지방 이방인 마을에 가나안 여인이라는 혈통으로만 알고, 너를 구원밖에 강아지 취급을 하지만은 만유 주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너를 하나님의 택한 백성, 제일 한가운데 갖다 놓은 너는 택자다 그 말입니다. 불택자처럼 이방인처럼 껍데기는 그런데 알맹이는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 딱 잡아낸 겁니다. 맞다. 너 껍데기는 이방인이다. 못 쓴다. 내버려라. 그건 강아지만도 못한 거다. 그건 무시되고 그건 멸시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너 속에 들어 있는 중심 복음의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부터 주시옵소서. 사도바울부터 주시고 열두 제자부터 마구 내려주옵소서. 저는 제일 꼴찌에 제일 꼴찌에 기다리고 있다가 떡 부스러기 하나만 해도 저는 넘치나이다. 이게 세리의 기도가 또 이런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와가지고 주여 7일에 두 번씩 금식하나이다. 십일조 많이 바치고 있습니다. 하늘을 떡 쳐다보며 기도했습니다. 내 얼굴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께 얼굴을 하늘로 향하면서 주여 내 얼굴 보시옵소서. 이 얼굴이 바로 주의 자랑스러운 일등입니다. 이랬습니다. 죄인 세리는 기어와서 얼굴을 땅에 파묻고 주여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는 죄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세리를 뭐라고 그랬던가요? 세리를 의인으로 바리새인을 죄인으로 못을 딱 박았습니다. 이 밤도 한 주간 또 더 범위를 잡으면 한 달간 말씀의 요약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속에 이런 마음은 참 강아지만도 못하다. 알기는 알아야 되는데. 나의 한 주간 중에 이런 생활은 참 이건 미친 여자의 생활이었다. 알기는 알아야 되는데. 나는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왔지만은 내가 책임진 이 사람은 내가 책임진 이 손주는 내가 책임진 우리 가족은, 이건  미쳐도 이거는 거꾸로 미쳤는데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이러면 이거 뭐 주님의 1대 원수 되는 겁니다. 원한적인 기도가 어디를 향해야 될는지 아시겠지요? 주여 저 미친 걸 힘으로 하자니 힘도 없고, 힘으로 할 수 있을 때는 힘으로 하시고 돈으로 할 수 있을 때는 돈으로 구워 삶으시고, 마지막에 방법이 없으면 애절하게 기도하며 주여 긍휼이 여겨주옵소서. 필요한 때입니다.



1차: K.Y.Y

Comments

Category
State
434,167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