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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금새
제목 : 원한적 기도 3가지, 원한보다 더 큰 충성과 감사일 때 참된 원한적 기도
찬송 : 77장(어지러운 세상 중에)
본문 : 누가복음 18장 7절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원한적 기도라. 생사를 걸고라도 받아내고 해결을 해야겠다는 그런 기도의 제목. 반드시 해주셔야 되겠다, 생사를 걸고. 영원한 문제니 단 번의 결정이니, 이렇게 손꼽아가며 헤아리는 것을 원한적 기도라고 그랬습니다. 수요일밤 원한적 기도의 3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하늘의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른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기도인데, 원한적 기도보다 더 큰 기도인데 도무지 모르고 그냥 지나가니 원한적 기도 근처에 갈 사람도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장이 하루에 10만 번을 뛴답니다. 하루에 10만 번. 한 번만 박자가 잘못되면 가슴을 쥐어짜고 뒹굴게 됩니다. 5분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초상칩니다. 뭔 손가락이 이뻐서 감사하니 눈매가 이뻐서 감사하니, 그거 감사하고. 심장이 하루에 10만 번씩 평생을 뛰어도 이거는 고생한다고 불평하지도 않고 알아달라고 데모하지도 않고 근데 이게 만약에 고장 나면 이것은 뭐 그냥 얼마나 끔찍한지 대책도 없습니다. 그 어떤 병도 몇 달은 버텨볼 수 있고 조치할 수 있는 기회는 있는데, 심장은 뭐 그냥 딱 한 번이면 쥐어짜고 5분 해결하지 못하면 갑니다. 심장에 대한 감사를 되돌아보며 어마어마한 감사라고 느끼는 사람. 하늘의 태양이 오늘도 어김없이 저렇게 움직인다는 사실. 그 규모, 그 비용, 그 정확성. 햇빛으로 인하여 천하 만물이 이렇게 유지가 되고 있다는 압도되는 놀랄 만한 이 사실에 지난 날을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를 하고. 원한적 기도에 앞서는 원한적 감사입니다. 인체의 심장과 하늘의 태양은 문제가 생겼더라면 그 순간에 끝나는 건데. 이것은 생사 문제입니다. 아예 영원한 단번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도 않는 그런 문제입니다. 이것은 돌아봄으로 묵상함으로 마음속에 새겨보며 지난 날을 감사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참 감사하다, 감사하다. 이 감사가 예배당 공간만큼 차고 넘치며
두 번째로 이제 주먹만한 감사는, 해야 할 일을 매일 매일 또박 또박 음식 습관, 건강 습관, 학생이면 공부 습관, 또 일반이면 하루에 해야 될 일을 꼬박꼬박 해 내려온 모든 습관들. 이게 들어 사람의 만사를 구비시켜 주는 것입니다. 구비라는 것은 갖출 것을 다 갖춘다는 말입니다. 눈도 있고 발도 있고 손도 있고 이런 가지가지가 필요한데, 그것은 이제 세끼 밥 잘 먹고 먹은 만큼 잘 움직이고 배워야 될 때는 고루고루 성실하게 잘 배우고, 배웠으면 자기 위치에서 자기 사명을 묵묵하게 감당했어야 됩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하나님이 나를 어디에 쓰시는고? 나를 쓰실 앞날에 필요한 준비가 갖춰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만약에 소홀한 게 있었더라면 원한적 기도는 이거부터 해야 됩니다. 세끼 밥 잘 먹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데, 입맛이 이러니 저러니 그러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잘 먹지 않은 것. 결과적으로 신체가 약하다면 하나님이 쓰실 준비를 잘못해서 죄송합니다. 이게 깊이 사무쳐야 됩니다.
자기의 심장이 하루에 10만 번을 평생 뛰고 하늘의 태양이 6천년 어김없이 움직이는 것은 그런 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줄 알면서 느끼는 감사는 이 예배당 다 채울 만큼 감사해야 되고, 내게 맡겨 내가 했어야 되는 일은 잘했다면 비율로 말하면 주먹만한 감사입니다. 주먹만한 감사. 세끼 밥은 잘 먹었는데 먹은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체중을 감당하지 못해 보기도 좋지 않지만은, 안 먹은 거나 너무 많이 먹은 거나 똑같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따져보면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죄, 그 죄가 나한테 한 맺힌 원수이며 이 원수와 싸워서 이거는 이겨야지 져서는 안 되겠다. 10년이든 50년이든 지난날 바르게 살았어야 되는데 바르게 살지 못한 잘못, 바르게 살지 못하게 만든 그 원수. 이게 원수인데 그것을 원수인 줄 알고 그것을 괘씸히 생각하되, 원한적 원수인 줄 알고 식사, 건강, 할 일, 평소의 생활, 신앙의 기본적인 것. 누구라도 똑같이 해야 될 것을 성실하게 해버리는 것이 원한적 기도입니다. 태양이 돌고 심장이 뛰는 것은 알고 감사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쉽습니다. 알고 감사만 하면 되는 것. 이게 이 예배당 공간만큼 이렇게 차고 넘치는 은혜이고, 마땅히 해야 될 일을 안 했다면 마땅히 할 일을 하겠다고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은 주먹만한 은혜입니다. 잘못되면 원수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보통 누가복음 18장에 원한적 기도를 두고 말할 때, 취업이 어려운 이런 때에 이번 이 취업만 되면 참 좋겠다. 이런 자리는 나기가 어려운데 이건 꼭 잡아야 되겠다. 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원한적 기도를 해라. 이거는 사실은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그런 것입니다. 내 마음이 공연히 기에 뭐 하늘만큼 중요하게 느껴서 그런 것이지. 병원의 검진을 받았는데 이게 죽을병입니다. 라는 판단을 받았을 때 내 주관으로서는 이게 원한적 기도의 제목이 되어 꼭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며 하나님 앞에 누가복음 18장 7절의 말씀으로 기도 들어달라고 발버둥을 치지만은 사실은 그것은 주먹만한 은혜와 비교를 한다면 손톱만한 은혜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사실은. 죽을 짓 했으니까 데려가시겠지.
100프로 죽는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나든 누구든 그 인간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더 오래 산다면, 우리 주변의 통계를 한번 내봐 보십시오. 저 인간 죽었으면 하나님 앞에 자기도 옆에도 다 좋았을 건데, 저런 인간은 살아있으므로 본인의 불행이며 많은 사람의 불행이며 하나님이 영원무궁토록 책임을 묻겠다 싶은 그런 행동 그런 인간이 적은지 많은지 따져보면 압니다. 성경의 히스기야왕은 위대한 왕입니다. 죽을 병을 주셨는데 벽을 향하여 울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할 때에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습니다. 반드시 죽을 병인데 15년을 건강하게 더 살도록 해주셨으니 이거야말로 누가복음 18장 7절에 원한적 기도로 응답을 받고 대박을 친 것 아닙니까? 히스기야 15년 더 산 덕분에 히스기야 인생 앞에 잘 산 것 다 헛일하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고개 숙이고 후회하고. 그 자손들은 말하자면 수백만 명이 처참한 꼴 당했습니다. 말도 못하는 처참한 꼴.
북한의 김일성이 같은 것은 좀 일찍 죽어버렸으면 6. 25 전쟁에 600여만 명의 사상자가 없었을 건데 말하자면. 그 인간이 일본 총칼에 죽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바람에. 김일성이 일본군한테 맞아 죽었더라면 좋을 것 같습니까? 그 인간이 왜놈들한테 안 죽고 살아난 것이 잘 됐습니까? 북한에서야 잘 됐다고 그러겠지. 그런데 이제는 북한에서도 잘 됐다는 소리 하는 인간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급하면 나 하나 살기 위해서 천이 죽고 많이 죽어도 상관없이 그냥 이것만 봐주시라고 사람이 자꾸 그리 됩니다. 누구든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식으로 따져보고 살펴보고 자꾸 연구를 해보셔야지. 덮어놓고 울어놓고 보는 것은 세살까지입니다. 집에 초상이 났던 뭐 엄마가 죽는다 산다, 병원에 엄마가 수술을 한다 만다 해도 자기 소리만 하고 억지 소리만 하고 드러눕는 것은 한 세 살 정도까지고, 유치원 정도만 되어도 좀 따져봐야 됩니다. 용돈 받아 놀러 가는 것이 좋은가 지금 엄마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석 달 뒤에 엄마가 죽으면 어찌 되는가? 석 달 뒤에 엄마가 죽어도 아이들은 용돈만 주면 우선은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석 달 후에 그 이후의 인생은 어찌 되는지? 계산해 보면 빤히 나오는 건데. 내가 죽을 병이 걸리고 내 자녀에게 손 못 대는 난치병과 불행이 떨어져도 이건 불행이나 이건 있는 것이 나으냐, 없는 것이 나으냐, 어떻게 되는 것이 나으냐? 그건 뭐 그냥 쉽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하늘의 태양과 내 몸 속에 심장의 은혜란 모르고 살았는데 이거는 알기만 알면 되고 묵상하며 감사만 하면 됩니다. 이것을 자꾸 감사를 하다 보면, 내가 죽고 말고 내 자녀가 이리 되고 저리 되고 내 앞에 당장에 닥친 문제가 이렇게 크다 적다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을 오늘도 운영해 주시고 이 못난 날을 붙들어 오늘도 무사히 하루 살게 해 주셨으면, 이만하면 천만금, 억만금을 공짜로 받은 감사에 넘쳐서, 저깟 시험 합격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그것은 손톱만 한 정도. 오히려 이렇게 큰 판을 깔아주셨는데 내가 사람답게 할 일을 했나? 어떻게 나를 쓰실지 모르는데 내가 건강 관리를 제대로 했나? 신앙도 좋고 사람도 좋은데 건강이 없어서 일찍 가버리면 참 애터져 참 애터져 죽는 것입니다. 참 사람 치고 저만 하면 완벽한 사람이다 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냥 그만 일찍 가는 분이 계셨습니다. 좋아봐야 좋은 것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 더 기가 막히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의 은혜 한 량 없이 감사하고 자연의 은혜에 원한적인 감사를 하고. 다 주셨습니다. 받아 쥐고 감사하고. 내가 사람으로, 내가 믿는 사람으로 꼬박꼬박 해야 될 일 열심히 하는 그 행위, 그 충성 생활에 충실한 그 행위가 바로 원한적 기도입니다. 이 몸이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 건강관리 잘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저로 말하면 신풍에 평생 살지만은 오늘이라도 한국 교회를 맡기실는지 압니까? 오늘이라도 세계 교회를 주님이 맡긴다 부르실지 아십니까? 모세도 80에 불렀는데 아직 저는 80이 안 됐는데. 제가 80 되는 날, 세계 교회를 네가 맡아 앞에 서야 되겠다. 세계 뉴스 중계를 생방송을 앞에 놓고 제가 설교를 하게 되는 그런 때가 온다면, 그런데 건강 관리를 하지 못해서 그렇게 약속 잡아 놓은 날 배탈이 나서 병원에 링겔 꽂고 앉아 있다면 참 건강 관리를 잘 했어야 되는데, 참 그렇구나. 이게 작은 일이겠습니까, 이게?
안 믿어도 마땅히 해야 될 일반 생활. 믿는 사람이면 차별 없이 누구든지 평소에 열심히 했어야 될 그 생활. 그 생활을 잘 하는 그 행위 그 충성이 바로 원한적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육의 생명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죄악의 낙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날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니 나로서는 늘 충실하게 대비하자. 그 생각으로 열심히 먹고 그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그 생각으로 열심히 생활을 했다면, 이것을 지켜보는 주님이 원한적 충성을 하는구나. 원한적 감사, 원한적 충성 두 단계를 넘어 그리고 나서 다급한 문제를 두고. 시대가 이런데 이런 문제는 해결해 주셔야 되겠나이다. 한국교회의 중요성이 이렇게 많은데 안보의 위험은 해결해 주셔야 되겠나이다. 아직도 이 복음의 앞날은 막강한 데 환경을 주셔야 되겠나이다.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데 그래도 이 어린 아이들 때문에 저를 지켜주셔야 되겠나이다. 마지막 세 번째 원한적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원한적 기도를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원한적 감사, 원한적 충성, 두 개를 넘어선 원한적 기도. 그 기도가 탈 없는 기도 되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L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