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3.6.3 마10:23 끊임없이 자신을 배우고 고치며 주변에 전하는, 끝까지 포기없는 복음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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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3.6.3 마10:23 끊임없이 자신을 배우고 고치며 주변에 전하는, 끝까지 포기없는 복음의 소망

관리1 0 40 2023.06.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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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3 토새

제목 : 끊임없이 자신을 배우고 고치며 주변에 전하는, 끝까지 포기없는 복음의 소망

찬송 : 36장(낮에나 밤에나)

본문 : 마태복음 10장 23절 -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제자들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나안 지역 가나안 동네 전부를 다 다니다 보면 죽기 전에 다 다니지를 못할 것이라,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이스라엘은 우리 전남북 정도의 지역입니다. 열두 제자가 나누어 다니다 보면 그 다 다니지를 못하겠습니까? 다니면 다니겠지. 그런데 어느 정도로 다니느냐 집집마다 하나씩 다 훑치고 다니려면 그거 모자랄 수도 있겠을 것이고 그냥 노방전도 하듯 그냥 문을 두드리며 계속 움직이면 다니면 다니지도 않을 건가, 그게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이스라엘 나라 국경선 안에만, 이렇게 말을 한다면 그러면 사도행전 이후부터 말씀은 전부 이스라엘 밖의 동네가 되어 집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안에서 전한 것은 앞에 몇 장이고 그리고 나서는 전부 로마까지 아시아 지방 헬라나라 성경에 헬라나라는 오늘날 그리스입니다. 이스라엘 북쪽, 이스라엘 북서쪽 대부분 특히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활동 시작에 주로 사도 바울의 활동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끝을 냅니다. 대부분이 전부 다 이방 전도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끝이 나는데 사도행전부터는 왜 이방을 주로 기록을 했을까? 그 앞에 5절에서 “이방인의 길로 가지도 말아라” 이 길로 가면 저 국경선 밖으로 간다 그러면 그 길 들어서지도 말아라 그 말인데 또 사마리아인의 고을이라 말은 그 사마리아라는 동네가 작은 동네가 아닙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 중에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했고 전도한 기록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빌립이 전도하고 베드로가 뒤따라가고 성령이 임하여 방언을 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지리적으로, 지리적으로 거리적으로 지역적으로 이스라엘인가가 아님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찾아 나서라. 이스라엘 나라 안에 있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든 하나님의 백성이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현재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현재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 속에는 택자가 없을까? 자기 현실에 누구를 만나든 이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일 것이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이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준 것도 있고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고 짐작으로만 하게 한 것도 있는데 택자인지 아닌지는 사람이 사람 감별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죽는 순간에 믿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생에 교회 박해하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 돌아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 어찌 알고 너는 불택자다, 전도 안 하겠다 그러겠습니까?

택자인지 아닌지 모르게 해놓은 것은 우리에게는 내가 전도할 기회가 되어 진 사람은 이 사람은 택자 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택자로 보고 상대할 의무가 있습니다. 택자는 택자지만 중될 때 중생될 순간에 전도를 해야 내가 전도하는 그 말씀을 붙들고 이 사람을 중생시킬 건데 택자지만 10년 후에 중생될 사람은 지금은 아무리 전도해 봐야 전도를 받지 않게 돼 있으니 전도해 봐야 소용도 없는데 왜 전도할까? 저 사람은 택자가 아닐 것이다, 저 사람은 전도해도 아직 전도 받아 중생될 때가 아닐 것이다, 이 짐작 이 계산 그런 기대는 금지가 되어 있습니다.

신약의 첫 순교자 스데반 그를 죽일 때 현장의 책임자가 사도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택자며 중생될 사람이며 복음을 위하여 역사에 가장 많은 고난을 받을 사람인지 스데반이 알았겠습니까? 그때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저희도 회개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라, 그 마음 그 자세로 오는 돌을 맞았습니다. 그게 복음의 기본자세입니다.

내가 내 현실에 만나는 사람, 그런데 이게 전도할 기회가 된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는 이 사람 택자일 것이다, 이 사람 내가 지금 전도하는 이 말씀으로 중생을 시키실 것이다. 혹시 중생은 되었으나 자기도 자기가 중생된 사실을 모를 수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내가 전하는 이 말씀이 뿌리는 씨앗이 되어 때가 되면 말씀을 붙들고 이 사람을 중생시킬 것이다, 심신방 전도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는 늘 그리 되어야 그게 옳습니다.

신풍 동네에서 가장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 저 사람이 전도 받을 리는 없다, 이건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자리에서만 결정하는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이걸 인간이 건들면 이런 걸 범성죄라 그럽니다. 한번 따라 하시지요 범성죄 (범성죄) 하나님의 자리를 밀고 들어가는 걸 범성죄라 그럽니다. 신하가 아무리 충신이라도 아무리 훌륭해도 임금님만 앉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앉아보면 역적이라고 그럽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 하나님만 앉는 자리 없는 가운데 천지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주권 운영하는 분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목적 예정은 아예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그들이 내가 말씀으로 처음 전하면 전도, 두 번째 전하면 심방이 되어 집니다. 나는 심방하고 전도할 자유 그 권리 그 의무만 있습니다. 딱 보니 이 사람은 내가 노력해도 사람 될 것 같지 않다, 참 위험한 말입니다.

최근에 공회 안에 이렇게 서로 나뉘어 10년 복잡게 된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우리 공회로 들어오는 교인이 있으면 딱 봐서 저분은 와서 애만 먹이고 나갈 사람이다, 그러니 저런 사람은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된다, 도와주지를 말아야 된다, 이렇게 감별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 말은 거의 다 맞습니다. 다 맞은 것은 아닙니다. 백번 천 번 예수님이 가룟 유다가 자기를 팔 사람인지 모르고 제자를 삼았습니까? 연보궤에 손 넣는 거 다 알고 계셨습니다. 유월절 마지막 성찬의 떡을 떼어 입에 찍어 넣기까지 해 주셨습니다. 가서 먹고 힘을 내어 나  팔아먹으라고. 예수님 팔라고 준 떡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주는 이 떡을 먹고 회개하라고 주님은 주셨습니다. 그 떡까지 먹고 힘을 내어 주님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기에게 맡긴 양떼는 끝까지 사랑하는 게 주님의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을 악용하고 팔아먹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가룟 유다가 하는 일이라도 나 할 일은 내가 하고 너 할 일은 네가 하는 겁니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로마 병정들이 하는 일이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겁니다. 악한 자도 악한 날에 합당하게 지어놓은 겁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나무, 그 못, 그 망치 그날 못 박은 그 사람들 그들은 그들의 일 하는 거고 주님은 그들이 못 박을 때 죽는 것이 주님이 하는 일이고 못 박는 걸 잘한다 할 수는 없습니다. 도와주지 못하고 그거는 잘한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자체를 왜 저런 걸 만들었을까, 이건 하나님의 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경험이 생기고 경험이 많이 생기다 보면 저 사람은 위험하고 저 사람은 배신할 사람이고 저 사람은 뒷소리 할 사람이고 그리고 이 사람은 끝까지 나한테 혜택이 될 사람이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일인데 오늘 주지 않고 오늘 보여주지 않는데 내일을 당겨서 미리 보고 미리 본 것으로 확정을 하고 확정한 가운데 오늘을 설계하면 하나님의 예정, 주권, 섭리에 손을 대는 겁니다.

이게 이제 가까이 결혼과 결혼의 결정에 저 사람 딱 보니까 이렇겠다, 저렇겠다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런 사람인데 그다음 어떻게 만들는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장애자다, 지금 장애자면 장애자는 장애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애자를 내일 주님이 고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멀쩡한데 그래서 결혼했는데 결혼 다음날 장애자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안 죽고 평생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오늘 감당할 수 있는 계산으로 계산하고 그다음 결정하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는 겁니다.

저로서는 이 순간 이거 계산했고 저거 계산했고 모든 것은 저대로는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법으로 첫째 신앙 보고 둘째, 사람 속에 들어있는 속사람을 보고 사람 볼 때 겉사람을 봅니까, 속사람을 봅니까? 무식한 옛날로 돌아갈수록 속사람을 봤고 지성인들이 모여 살고 다 다 날래고 똑똑하다는 오늘이 될수록 가면 갈수록 겉을 보지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하도 천재 박사가 돼 놓으니까 오늘을 보는 겁니다. 참 사실은 눈은 떴는데 못 보는 당달봉사들인데.

그래도 나이가 많으면 이전에는 더욱 지혜가 있었고 지금은 나이가 많아도 뭐 젊은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저 많은 세월을 갖다가 살아보고도 아직도 저런 철없는 소리를 하나? 거의 다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나이가 많아지면 머리가 희고 머리가 휘어지면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라 영화의 면류관이라“ 그것은 인생을 살아보고 속아보고 겪어보고 알지 지혜란 책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보고 살아본 현실이 많아져서 맞는 경험도 있고, 속아본 경험도 있고, 착각의 경험도 있고 많은 경험이 쌓이고 이제 눈이 생기는 건데 지금은 염색을 해가지고 나이가 많아도 모두 새까마니까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속아보고 하나님 앞에 설 날이 가까운데 아직도 100% 속고 앉았으니까 지금 나이 많은 분들은 그냥 나이가 많다고 노인이 아니라 헛 나이 먹어 나이가 많은데도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버렸습니다. 이제 나이 많은 사람한테 물어보라 소리도 겁이 나서 못할 지경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때 말씀으로 잘 살펴 젊은 나이인데, 젊기는커녕 아직까지 어린 나이인데 미리 다른 사람의 실수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자꾸 연구해서 젊은 사람, 어린 사람이 인생 살아보지 않고도 빠르게 인생의 경험을 습득하면 노인 위에 지혜로운 사람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오늘 아침 말씀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강조를 한 번 더 했습니다. 우리가 참 차마 우리가 그러지 않을까봐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내 속에 이 부분 저 부분이 이스라엘 동네입니다. 죽는 날까지 자기 속을 들여다보며 내가 나이가 90이라도, 나이가 100살이라도 아직까지 회개하고 고칠 것이 있지 않느냐 하루를 더 살게 해도 그 하루에 다시 내속에 고칠 것이 있지 않냐 이게 이스라엘 동네를 끝까지 찾아도 다 다니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내면도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끝없이 새로 배우고 고쳐나가시고 그리고 내가 접하는 사람은 택자인데 내가 전하는 이 말씀으로 이 순간에 중생이 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미 중생이 되었다면 다시 전하는 나의 수고로 이 사람이 한 번 더 깊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이 소망은 놓지 않고 끝까지 가야 되는 겁니다.

‘너는 우리 교회에 나올 자격이 없으니까 나오지 마’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평생을 교회를 다녀서 너무너무 잘 믿어 영안이 밝아도 너는 죄인이니까 우리 교회에 나오지 말라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을 하면 신풍 유치원에 가셔야 됩니다. 80이라도 신풍 유치원 가셔야 됩니다. 내 실력, 내 신앙으로 감당할 수가 있을까, 그거 염려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염려되면 주님께 저 사람을 신앙으로 한 번 더 전하기 위해 제가 수고를 하고 싶었는데 제게 시간과 경제와 건강과 신앙이 되겠나이까, 주님이 은혜 주시면 제가 해보겠나이다, 지금 제 신앙과 실력으로는 부족하고 어렵습니다. 도와주옵소서. 이것이 들어 평생 계속 자라가는 사람 되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습니다. 30년, 50년 살아봤으니 뭐 서로 뻔 하게 아는 거 이제 말한다고 상대방이 고치겠나, 죽는 날까지 우리는 끝까지 하는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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