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6.2 마10:1 복음 운동의 본질과 자세, 1-15절 전체 주해, 복음의 사명으로 살아야 하는 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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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3.6.2 마10:1 복음 운동의 본질과 자세, 1-15절 전체 주해, 복음의 사명으로 살아야 하는 매 순간

관리1 0 46 2023.06.0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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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2 금밤

제목 : 복음 운동의 본질과 자세, 1-15절 전체 주해, 복음의 사명으로 살아야 하는 매 순간

찬송 : 117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본문 : 마태복음 10장 1절 -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나중까지 견뎌내며 끝까지 견뎌내며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어둠 속에 불을 끄지 아니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보고 말씀으로 내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고, 더러운 귀신도 병든 것도 약한 것도 말씀으로 고쳐보며 권능의 주의 역사를 체험해보며, 주님을 향하여 시대를 꿰뚫고 끝까지 걸어가는 변치 않는 이 밤에 저희의 각오, 저희의 걸음, 우리 교회 우리 공회 되도록 소원을 주시고 길을 열어주신 주님. 길은 찾았고 길은 열려있으나 저들의 마음 연약하고 병들고 말씀을 떠나 어지러워지면, 길은 있어도 가지 못하여 길이 없는 자와 꼭 같은 형편 될 수 있사오니 5일 예배로 다시 모인 저희들 정성을 보시고 마음마음 열어주옵소서. 이 밤도 예배를 향하는 마음들 되게 하시고 시공을 초월하여 필요한 곳곳마다 말씀의 은혜가 성령으로 함께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구원의 주님께서를 요약하면 예수입니다.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내 마음속에 또 신앙으로 노력해야 되는 모든 사람을 열두 제자라고 그럽니다. 제자란 말은 특별히 배운다 말이고 배우면서 고친다는 말이고 배우고 고치고 반복하면 자꾸 닮아간다. 자기를 고칠 때를 제자라 그러십니다. 자기를 고친 만큼 더러운 귀신을 내 내면에서부터 먼저 청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과 달라 내 속에 신앙에 병들고 고장 난 걸 고치면 육체의 질병과 세상 살아가는 활동까지 다 고쳐집니다. 뚜렷하게 틀린 것이 아닐지라도 연약한 것도 문제인데, 그 연약한 것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은 그 말씀을 가지고 계속 새겨보고 말씀으로 실행을 해보면, 힘을 얻게 되고 힘을 얻으며 병든 것이 고쳐지고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집니다. 내속에 마음이 말씀으로 다 정리가 되고 내 행위 내 생활이 바로 되고, 그렇게 되면 나와 관련된 가정과 교회가 바른 모습을 가지게 되어 지고, 이게 시대적으로 특별히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면 한 사람이 자기를 말씀으로 바로 고쳐 한 교회가 바로 되고 나면, 교회 밖에 세상이 교회를 멀리서 쳐다보며 세상을 사는 데도 저게 맞기는 맞을 것 같다. 이렇게 울타리 밖에까지 빛이 비취어지게 되면서 불신자들까지도 구원은 없으나, 그 교회를 좋게 보며 따라가는 그런 일들이 역사에도 중요할 때마다 있었고, 또 오늘도 우리 주변에 그런 일들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나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이 구원의 믿음은 주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으나, 세상 살아가는 면으로만 봐도 그 신앙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이면은 가져야 그게 1절입니다. 그다음 2절입니다.

1절에서 배우고 고치며 자꾸 닮아 가면 제자인데, 그렇게 자기를 고치고, 배우고 자라간 것만큼 2절에 사도가 되어 자기를 고친 것으로 그다음 남을 고치러 나가게 되어 지니, 제자는 내면에 배우는 면을 배운 것을 밖으로 사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은 사도의 이름이라고 그럽니다. 성경을 기록하는 사도의 자격은 여기 열두 제자에게만 주셨으나, 성경기록 외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함께 할 수가 있는 줄 아셔야 됩니다. 2절에 여러 제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다 적었습니다. 나는 이 열두 제자 중 어떤 면이 내게는 특별히 많은가 늘 살펴보셔야 됩니다. 주로 여기 있는 열두 제자들은 사회적으로 천민 좀 못난 출신들입니다. 세무서 소장을 했던 잘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 중에는 나중에 예수님을 돈으로 바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면이 우리 내면에 다 있습니다. 그 다음 5 절로 넘어갑니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1절에는 열둘에 제자라는 이름이 들었고, 2절에는 열둘 이름에 사도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다음 5절에 보면 제자와 사도라는 말은 빼고 그냥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우리 안에는 자기를 고치는 제자 되는 면 하나, 또 남을 위하여 움직이는 사도의 양면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며 예수님 당대는 사방으로 다니면서 열두 제자들에게 배운 대로 다시 가르치고 고치고 그러라고 보냈고, 오늘 우리는 선교를 가든 저 먼 곳으로 교회에 심부름으로 순회를 가든 목회를 가도 내어보내시며 가는 길이 되는데, 신풍에서 태어나서 신풍에서 살다가 신풍에서만 돌아가셔도, 나는 그 자리에 있어도 신풍에 오가는 사람과 환경을 계속 바꾸어 주십니다. 내가 장소를 바꾸면 파송을 받는 것이 되는데 내가 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나를 접하는 환경과 사람이 바뀌게 되면 바뀌는 현실에 내가 파송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 마태복음 10장 때문에 꼭 교회들마다 준비된 교인들을 뽑아서 어디로 가라 어디로 가라 자꾸 보내는 것만 파송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현실 한 자리에 죽는 날까지 움직이지를 않아도 나 주변에 사람이 바뀌고 매일 매일이 다 바뀌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파송을 하나마나 늘 파송이 되어져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식탁의 가정의 분위기와 내일 식탁의 분위기는 다를 겁니다. 늘 다른 현실을 주시는데 어떤 현실을 주시든 그 현실 속에 나는 보내졌고, 그 현실 속에 주님의 제자로 내가 말씀으로 배우고 다른 사람도 말씀으로 배우도록 하면 그것이 제자고 사도입니다. 어떤 현실을 주시든 하나님의 인도는 있는 법인데 이방인의 길로는 가지 말아라. 구약 또는 주님 당대는 주님 계실 때 마태복음 10장은 구약 끝자락입니다. 신약이 시작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이방인의 고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이방인의 길로 가지를 말아라. 구원의 범위에 벗어난 그 길은 아예 걷지를 말아라. 주일만 출근하고 돈 버는 직장이 있으면 그거는 안 봐도 그거는 이방인의 길입니다. 주일날만 출근하는 직장이 있다면 그거는 안 봐도 이방인의 길입니다. 믿는 사람은 가는 거 아닙니다. 주먹질만 하는 것이 직업이라 주먹질하고 돈을 준다는 데가 있으면 믿는 사람은 그거는 자기 양심에 그거는 이방인의 길입니다. 자기진로 자기전공 곤란합니다. 연예인들 스포츠 하는 사람들 주색잡기라는 먹고 놀고 하는 것은 대개 주일을 끼고 움직입니다. 전공도 그거는 진로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아라. 그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녀 사이에 아이의 머리가 굵어졌는데 세 살도 아닌 스무 살 서른 살을 갖다가, 강아지처럼 질질 끌어서 오면 올까 그러지 않고는 못 데리고 올 정도가 되면 그건 이방인의 길입니다. 그러지 말아라. 지난날 기회를 줄 때 그때가 이스라엘의 우리 안에 든 양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밖에 나가버린 것 구원의 하나님이 주지 않은 현실, 주지 않은 범위, 주지 않은 대상이 전부 다 이방인의 길입니다. 휴전선을 철조망을 넘어서 북한에 가면 전도할 데가 많습니다. 휴전선은 이방인의 길이니 가지 말아라. 그래서 우리는 안 갑니다. 지금도 그곳을 들어가서 전도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그분들 양심에 맡겨 놓고 우리는 이방인의 길이라 생각하고 가지를 않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아라. 술친구한테 가서 술을 자꾸 마셔주면 전도되지 않을까? 그 이방인의 길입니다. 그 방법 가지고는 전도할 생각 말아라. 돈은 많은데 친구는 노름을 좋아하는데 내가 도박 노름을 하면서 자꾸 돈을 잃어주면 은혜를 받고 구원이 되지 않겠느냐. 그 길은 아예 잡지 말아라 이런 뜻입니다. 여자 아이를 남자 아이로 바꾸면 세상이 존경하고 전도가 많이 되지 않겠느냐. 딸아이를 갖다가 남자만 들어가는 군인을 만들어 놓으면 군인의 세계에 가가지고 전도를 많이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부엌에서도 사람 만들 방법은 많습니다. 애하나 의지하여 하나님이 주지 않은 길은 가지를 말아라. 내가 나를 고치는 면도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것은 하지를 말아라. 남에게도 그렇습니다.

5절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사마리아인들은 출처 출신은 택자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하고 반반 뒤섞어버렸습니다. 왜 뒤섞었느냐. 믿는 방법 믿는 모양을 세상과 적절하게 뒤섞으면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지 않겠느냐. 아예 하나님이 주지 않은 울타리 너머 길 너머 것은 이방인의 길이고 그 다음 예배를 1부로 2부로 3부로 이런 저런 식으로 여러 가지 다 아시죠? 하나님을 상대하는 예배를 하나님을 상대하는 신앙을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는 믿음의 그런 신앙의 도리를, 이걸 적절하게 잘 버무리면 되지 않겠느냐. 아예 그런 것 하지 말아라. 이방인의 길은 구원 울타리 밖으로 아예 하나님이 주지 않은 길을 손대지 말아라. 이거는 하면 하겠는데 조금 방법을 바꾸면 되겠는데 그게 사마리아인의 고을입니다. 딱 말씀이 인도하는 길 말씀이 주는 기회 안에서 전도되면 좋은 거고 은혜 받으면 좋은 거고, 그 속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면 너무 감사한 거고.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데려오라 나이 많은 사환을 불러 심부름을 보내면서, 가나안 여기서는 아니 된다. 그때 가나안은 구원 밖에 있는 함의 자손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이삭의 아내를 찾아오너라. 찾는 데는 이 주변이 편리하겠지만 이 주변은 구원밖에 함의 민족이 사는 데라. 이건 구원 밖이다 아예 여기서는 구하지 말아라. 없으면 차라리 말아라. 그 다음 아람 밧단아람 고향에 가서 그 속에서 데리고 오너라. 신앙의 출발의 차이는 있지만은 노아 셈 계통으로 내려오다가, 노아 셈 계통으로 쭉 내려오다가 아브라함은 한 걸음 더 인도를 받아 나갔고,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은 아브라함이 떠났고, 아브라함은 한 걸음 더 가는데 한 걸음 처졌고 늦어져 주저하고 있는 데입니다. 너와 같은 신앙이 좋은데 이 안에서는 사람이 없으면 너와 같은 방향에 뒤진 사람, 뒤처진 사람, 늦어진 사람 끌어다가 붙여라. 다른 거는 안 된다. 라는 말입니다.

송아지 결혼을 시키려면 좀 멀어도 가서 송아지를 데리고 와서 암수 송아지를 맞춰라. 송아지하고 말은 풀을 뜯어 먹는 것은 비슷하나, 송아지 짝이 없다고 망아지를 데리고 오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오지는 말아라. 말하자면 그런 말입니다.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절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원래 아브라함은 하란 사람이 아닙니다. 아람 아람지방, 밧단아람 하란지방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이전에 갈대아 바벨론 쪽 갈대아우르라는 쪽이 원래 고향입니다. 아브라함의 원래 고향의 원래 고향은 갈대아우르라는 곳인데 하나님의 인도를 찾으려고 방황하고, 방황하고 가나안으로 오다가 중간에 주저앉은 데가 하란입니다. 가나안까지 가려고 전부 따라오다가 중간에 전부 힘들다고 주저앉는데 아브라함만 한 걸음 더 온 것이 가나안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주의 인도를 따라 한 걸음 더 와버리면 될 건데, 한 걸음 덜 오고 주저앉은 그 사람들은 잃어버린 양이 아닙니까? 그 사람들 잃어버린 양입니다.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우리 공회로 말하면 우리 말고 다른 공회가 서너 개 있습니다. 꼭 같이 한 길을 가겠다고 나섰는데 가다가 그냥 한 35년 전에 머뭇거리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우리에게는 잃은 첫 번째 양입니다. 거기서 한 번 더 들어가 보면, 해방 후에 고신교단과 우리는 이전에는 이 길로 걸어가겠다고 함께 출발을 했는데, 고신교단 사람들은 1959년에 그냥 주저앉고 우리만 한 걸음 더 나왔습니다. 그분들도 잃어버린 양입니다. 그 이전으로 가면 일제 때 믿은 교회들은 전부가 다 함께 믿었던 대부분 하나의 신앙입니다. 일제 말을 통해서 그냥 더 이상 가지 않고 주저앉은 겁니다.

말하자면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으로 말하면, 상고가 맞아서 상고 간 학생을 인문계로 데리고 와서 공부시키려고 하지 말아라. 대학을 들어가는 인문계 학생도 있으면 좋은 거고, 은행 취직하겠다고 상고 가서 상업 배운 학생도 필요한 거고, 공장에 가가지고 돈 벌겠다고 공고 간 학생들도 그거 나쁜 거 아닙니다. 갈 수 있는 거고 공고가 맞고 상고가 맞는 학생들은 공고 상고 다니도록 두고, 인문계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중학교 졸업하고 공부하기 싫어서 공고도 안 가고 상고도 안 가고 인문고도 안 가고, 중학교 졸업하고 집에 앉아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 친구가 있거든 그 친구를 찾아가서, 공고도 있고 상고도 있는데 넌 중학교 3년 나하고 공부할 때 보니까 나처럼 인문 고등학교를 올 만큼 실력도 있고 가정 형편도 되고, 네가 나처럼 인문 고등학교 오면 나만큼 나보다 더 잘할 것 같은데 너 지금 앉아 놀고 앉았는데, 우선은 놀고 앉으면 좋겠지만 그거 계속 있다가 나중에 큰일 나겠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하고 나는 고등학교 입학하고 친구는 같이 들어와야 되는데 집에 놀고 앉았다면, 입학하지 않은 친구에게 가서 중졸 후에 고등학교 입학 함께 하자고 끌고 오는 것은 얼마든지 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게 잃어버린 양을 전도하는 길입니다. 인도하는 길입니다. 공고 상고를 갔는데 공고 상고가 맞지 않으면 인문 고등학교를 빼와야 되겠지요. 학습력을 보나 체질을 보나 가정 형편을 보나 시대를 봐도, 인문 고등학교 10번을 줘도 나는 공고가 더 좋다고 체질이 맞고 좋아서 공고 간 사람은 공고 가야 됩니다. 그 인문계로 편입하면 안 되고.

여기 이방인의 길이란, 이방인의 길이란 공고든 상고든 인문고든 아예 이거는 공부가 안 맞고 저기 아예 이거는 학교 다닐 필요도 없는데 그런 학생 데려다가 공부시키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사마리아인의 고을이란 인문계 와야 틀림없이 좋을 친구가 공부하기 싫어서 공고 가가지고, 공고가 자기한테는 맞겠다고 뻑뻑 씌워대면, 그거 석 달 열흘 붙들고 앉아서 납치를 해온다든지 일부러 끌고 온다든지 그러지 말아라. 안 되거든 놔둬 버려라. 그 대신에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되는데 나가지 않고 머뭇거리는 뒤떨어져 있는 사람, 너와 함께 길을 걸어가야 되는데 길을 잃은 사람을 먼저 찾아 같은 계통의 사람을 끄는 것이 먼저다. 6절입니다. 그러면 6절에 잃어버린 양이란 내 마음 속에 좀 성경을 더 읽어봐야 되겠는데, 그냥 게을러서 안 읽고 주저주저하고 있다면 이게 잃어버린 양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될 시간을 성경을 읽어야 될 사람이, 성경을 읽어야 될 시간에 엉뚱한 짓 하고 앉아 있는 그 마음을 깨우쳐서 좀 성경을 읽어보자. 저녁 기도도 해보자. 다른 것이 바빠도 너 정도 되면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게 내속에 잃은 양을 찾는 방법입니다. 7절입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면서 길을 가면서 노력을 하면서 마구 떠들어 대거라. 전파 하거라. 설명 하거라. 천국이 가까웠다 기회는 이번뿐이다. 믿는 사람의 모든 기회는 평생 늘 현실 현실이 전부입니다. 80에 준비해야 될 노년은 80에만 준비하지 70에는 준비를 못합니다. 그때는 철이 안 들어서. 80에 준비해야 될 사람이 5년 뒤에 준비하지 그러다가 일찍 가면 어떡할 겁니까? 10살도 마찬가지고 80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100살이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매 현실은 이때만 기회입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다. 현실은 기회(현실은 기회). 현실은 기회인데 그 기회는 몇 번씩 온다고요? 딱 한 번입니다. 한 번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마지막입니다. 앞에 한 번 있고 두 번 있고 세 번 있고 10번 있는데 10번째가 마지막이 아니냐. 그 마지막도 마지막이라는 말이 맞기는 맞습니다. 하나밖에 없어도 마지막은 마지막입니다.

전국에 학교 중에 한 학년에 한 명만 다니는 학교들이 참 많답니다. 여수에도 여러 곳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그 학교에 전교생이 3학년에는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 한 명한테 제가 안 봐도 너 1등이야 틀림없이 1등일 겁니다. 다른 말로 바꿔서 너 너희 학교에서 꼴찌지? 공부 열심히 해. 그 말은 또 사실이 아닙니까? 한 명밖에 없는 한 학년에 한 명밖에 없는 아이에게 너 1등이야 너 수석이야 우등상해서 상주고 계속 칭찬하면 이 아이가 공부를 할 것 같습니까? 안 할 것 같습니까? 그거 안 하게 돼 있습니다. 전교생에 그 학년이 한 명밖에 없는데 개한테 다대고 너 꼴찌야 너 한 명이기 때문에 꼴찌야 인간아. 꼴찌다 너는 막내다 너는 마지막이다 너는 탈선하기 쉽다. 이 말을 계속하면 듣기는 싫겠지만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데는 유리할지 모릅니다. 전교생이 한 명인데 네가 한 명밖에 없으니 넌 1등이고 동시에 꼴찌야. 그런데 너 1등도 되고 꼴찌도 되는데 전국 30만 명 50만 명 학력 평균을 보니까, 너 지금 위치가 30만 명의 1등이냐 중간이냐 꼴찌냐. 전교생이 한 명밖에 없는 학교는 안 봐도 그 학교는 다니는 사람이 없고 시골이라 아마도 그냥 30만 명 전국 중에 꼴찌일 겁니다. 전국 등수를 보며 공부하자. 그런 방법도 교육의 방법입니다. 근데 그 말 했다가는 요즘 잡아갈걸요? 잡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말도 못하게 생난리를 합니다. 생 귀신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러니 세상이 전부 이 모양 이 꼴이 될 때 우리는 너 신풍초등학교에 한 학년에 몇 명? 올해 은유 1학년인가요? 1학년. 1학년이 총 몇 명인가요? 세 명. 은유 공부 안 해도 3등입니다. 세상에.

1학년에 반장 부반장 회장 세 개 중에 하나는 하는 겁니다. 저는 초등 6년 동안에 회장 반장 부반장 분단장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보다 낫지요. 초등 중등 고등 대학까지 16년 공부하면서 분단장 한 번 못 해봤고 부회장 못 해봤고 회장 못 해봤고, 부반장 못 해 봤고 반장 못 해봤고 전교회장 못해봤고 전교 부회장 못해봤고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훌륭한 목사님이 근데 전교생이 3명이라 반장 하든 부 반장하든 회장하든 세 개 중에 하나는 잡는 겁니다. 빵점을 맞아도 3등입니다. 그래가지고 격려를 계속해서 너는 공주고 너는 네 인생이 펴지는 거야. 그런 교육의 방법이 하나 있고, 놀아도 3등이지? 근데 3등을 자세히 보면 그게 꼴찌란다. 너희 반에 1등도 전국 30만 명 중에 중간도 못하고 밑인데, 그러면서 자극을 줘서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동기를 줄 수도 있는 것도 교육입니다. 두 가지 방법 중에 지금은 아마 한 80% 넘는 사람 90% 넘는 사람들이 오냐 오냐 기르라고 다 그러고 앉았지요? 우리 공회와 교회는 아예 그런 거 50년 전 100년 전에도 체질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런 교회를 딱 다닐 때는 교회를 바꾸려 하지 말고 자기 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서로 행복합니다. 생쥐 한 마리가 태평양에 다이빙을 해가지고 태평양물을 주여 다 없애주시고, 태평양 바닥을 다 쥐 소굴로 만들어 주옵소서. 그게 쉽겠습니까? 물고기가 노는 태평양 바다 근처는 안 가는 게 서로 낫겠습니까? 생쥐 한 마리가 바닷가 떨어져가지고 온 바닷물이 없어져야 내가 살겠다고 그러면, 그러면 태평양 바다에 있는 고래는 어떡할 겁니까? 상어는 어떡할 겁니까? 멸치는 어떡할 겁니까? 그게 숫자가 한둘이 아닌데. 네가 생쥐면 쥐 소굴에 살고 네가 멸치면 바다에 살고. 우리 공회는 또 여기 교회는 7절입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이걸 두 글자로 줄이면 말세. 말세 이래놓으면 신학자 그런 인간들도 발끈해가지고 어디 말세라는 말을 해? 너 이단 아니냐고 난리 난리를 해놓고 봅니다. 자기들이 적은 교과서에는 말세가 있다고 적어놓고 교회에서 동네에서 살아가며 말세니 조심하자 그러면 또 이단이라 그럽니다. 참 욕을 하자면 한도 없는데.

선생님들이 전부 다 아이들 교과서로 가르칠 때는 정직해라 가르치고, 그 선생님들 뒷조사해 보세요. 정직한 거 있는 가. 제가 알기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있으면 벌써 잘렸지. 세상은 그렇다 치고 교회까지도 그래야 되겠는가. 주님이 마태복음 10장이면 지금 주님이 가르치는 말기가 아니고 초기를 지나 지금 중기 근처입니다. 제자들을 파송하며 어디든지 가거든 천국이 가까웠다 해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을 두 글자로 말하면 말세다 그 말입니다. 세상이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모르니까 평안할 때가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정신 차리자. 그 정도가 아니라 조심하자. 기회는 지금뿐이다. 배우는 것도 지금뿐입니다. 내일 배우면 되지. 오늘 배우는 것은 오늘 배우지 내일은 내일 걸 또다시 배워야 됩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 공부 할 학생은 올해 놀고 내년에 3학년 또 해도 됩니다. 다른 친구들은 내년에 4학년 하는데 자기만 3학년 하고 있으면 이런 문제가 되는 겁니다. 배울 걸 안 배우고 배울 걸 늦게 배워서 그것 때문에 손해 보는 거는 전부 다 자기한테 심판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뒤에는 항상 단번이다. 8절 병든 자를 고쳐라 오늘 병든 것은 오늘 고치고 내일 병든 것은 내일 고치고, 아이 때 가르칠 것은 아이 때 가르치고 청소년 때 가르칠 것은 청소년 때 가르치고, 아이 때 못 가르친 인사성을 10대 되면 가르치면 되지 10대 때 가르친 인사성과 아이 때 가르쳐 놓은 인사성은 딱 보면 표가 납니다. 냄비에 끓어 나온 국과 가마솥에 고아서 나온 국은 아는 사람은 아마 구별할 겁니다. 다른 겁니다. 병든 자를 고치 거라. 네가 너를 고쳐봐야 네가 남을 고치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예수님만 하나님이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리지 제자들도 죽은 자를 살릴 수가 있는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걸 죽었다고 그럽니다. 이걸 다시 이어놓으면 살렸다 그럽니다.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우리에게 맡긴 것은 이게 들어가면 전부 살린다고 우리에게 맡겼기 때문에 살리는 겁니다.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신앙이 썩어 내려 앉아버린 걸 문둥병이라 그럽니다. 이 중에 한 3분의 2는 해당될걸요? 3분의 2가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3분의 2는 죽었다 정도가 될 걸요? 나머지 3분의 1이 나병 정도지. 죽은 것은 끊어진 겁니다. 문둥병이 나오면 자체가 썩어 지금 내려앉고 있는 겁니다. 신앙이 내려앉아버린 것. 11번 예배에 나올 분이 한 번 내려앉으면 중증 환자입니다. 근데 아예 한 몇 달 안 나오면 죽은 지 서너 달 되는 겁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에 냄새가 나나이다. 그랬는데 나흘에 냄새가 났는데 넉 달 죽은 송장하고 사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아침밥이 맛있다고 그러고 점심밥도 맛있고 저녁밥도 맛있고, 맛있는지 안 맛있는지 어찌 압니까? 얼굴 보면 알지. 사람이 하루만 마음에 걱정을 하면 얼굴이 타 들어가는데 석 달 넉 달 송장하고 밥 먹고 뒹굴고 누워도 끄떡없으니, 이거는 엽기 중에서도 이런 엽기가 없고 이거 참 뭐 괴물 중에 이런 괴물이 없는데, 연구하다 보면 남 보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에 고장 난 것은 병이고, 하나님과 끊어져 버린 것은 죽은 것이고 내 신앙 자체가 내려앉고 붕괴되는 것은 문둥병이고. 레위기 13장부터 나옵니까? 내 위기 13장부터 나오는 피부병이 그렇습니다. 피부가 우묵하여지거든, 피부가 우묵하여지거든 이렇게 피부가 들어가야 될 데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면 안 되는 피부가 꺼져버리거든 붕괴가 되거든 내려앉거든, 얼른 제사장에게로 가봐라. 한 번 지나가는 피부병인지 속에서 전부 다 내려앉고 있는 거지. 가정들도 보시고 자기 신앙도 보시고 자꾸 그래야 됩니다. 나 하나 교회 가서 열심히 기도하니까 다른 식구들은 다 내려앉아도 끄떡없다. 집에 기둥이 네 개인데 내가 한 기둥 버티고 앉았으니까 기둥 세 개가 내려앉아도 이 아파트 35층 끄떡없다. 가능할까요? 한강대교에 철판이 수십 개인데 다 내려앉아도 나 하나 버티니 끔쩍도 없다. 다리 교량이 원두막입니까? 장대입니까? 하나가 흔들거리면 그다음 그 다음 게 계속 연쇄적으로 내려앉습니다. 하나 흔들릴 때 여기에다 대고 총력을 기울여야 되는데 아직까지 나는 괜찮으니까. 그게 지혜롭고 그게 남의 일에 얽히지 않고 쏙 빠지는데 그렇게 쏙 빠지면 주님은 곶감 빼먹고 혼자 잘 먹고 잘 살아? 한 몸인데 혼자 빠져서 잘 먹고 잘 살아? 단체 책임 반드시 묻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내 집 팔아서 남면 그냥 주라 말 아닙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고치고 말씀으로 고치고 말씀으로 복음 운동을 하는 데는, 여기에다 대고는 두고 갈 세상의 값을 매기지 말아라는 말입니다. 그 값을 매기지 말아라. 세상에 단체 가입할 때 회비는 그 단체 권리행사를 하는 돈입니다. 교회의 연보는 교회 운영비에 써달라고 내는 거지 복음의 값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으로 천지를 없는 가운데서만 들었습니다. 그건 값으로 못 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연보 10년 했는데 그 정도 설교는 들어야 되는 거 아니냐? 그거하고 이거하고는 다릅니다. 말씀으로 배우고 말씀으로 고치고 말씀으로 복음 운동하는 것은 천국 건설입니다. 그건 돈으로 붙여서 전할 수 없고 돈 주고 그건 바꿀 수 없고, 예배 한 번 빠졌는데 연보 천만 원 하면 그 대가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 안 되는 겁니다. 그런 거는. 재벌 회장이 우리 교회 나오시고 제가 주일 한 번 빠질 때마다 한 10억씩 드리겠습니다. 천주교 가면 이게 통합니다. 천주교는 돈으로 천국도 사고 돈으로 지옥 간 사람도 빼내고 그럽니다. 보석금처럼. 기독교는 그게 틀려서 새 출발한 겁니다. 틀려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복음은 말씀은 말씀으로 나를 고치는 생명의 운동은, 돈을 더하고 돈을 빼고 돈으로 주고받고 못하는 거다. 9절, 전도가는 너희의 돈주머니를 돈 주머니를 여학생들 뭐라고 그러죠? 이태영 선생님이 뭐라고 그러죠? 전대라 그래요. 전대. 9절 “너희 전대에” 전도가는 사람들이 돈 주머니에 돈 주머니에 돈을 채워서 가야 되지 않겠느냐. 목회자도 목회하는데 사례를 받습니다. 돈 주머니에 80만 원씩 매달 채워줍니다. 그게 있어야 먹고 설교하지. 근데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종이나 가지지 말아라. 뭔 말이지요? 사례 받지 말고 설교해라 그 말일까요? 심방부 비용도 받지 말고 차 기름 값도 받지 말고 하라 그 말인가요? 복음운동에는 어떤 대가도 어떤 비용도 계산하지 말아라. 돈으로 계산하는 것 아니다. 돈으로 복음 운동하는 것이 아니다. 돈 주머니는 아예 생각하지 말아라. 여행을 위하여 전도를 가는데 현실이 바뀌는데 말씀으로 실행할 때, 딴 주머니 차거나 입은 옷 말고 옷 한 벌 더 가지고 가거나 신도 하나 더 챙겨 가거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아라. 복음을 전할 때는 딱 복음만 들지 복음에는 어떤 것도 섞지를 말아라 그 말입니다.

열심히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를 들어보니까 3.1 운동에 오라는 뜻이구나. 이리 되면 그게 지금 다른 걸 섞어버린 겁니다. 선교사들은 세계 어디로 선교를 가도 선교사들이 가서 대개는 독립운동을 부추겼습니다. 독립운동 부추기면 그 선교사 아닙니다. 그 나라 독립운동가가 되는 거지. 한국에 온 선교사가 이 마태복음 10장을 아는 사람은 예수 없는 것이 지옥입니다. 예수가 없으면 고종 황제 밑에나 천왕 밑에나 중국 황제 밑에나 미국 밑에나 독립국으로 사나 죽은 몸입니다. 예수가 복음입니다. 현재 이 나라는 고종황제가 왕이면 열심히 순종하시고 국민으로서는 열심히 순종하시고, 신앙으로는 독립이니 뭐니 그러지 마시고 그냥 복음만으로 걸어가야 됩니다. 그러다가 이제 1910년 선교사들이 한 15년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그 선교사들 중에 복음을 바로 배운 사람들은 독립운동 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는 천왕을 왕으로 삼고 세금도 내시고 열심히 법을 잘 지키십시오. 요래 가르쳤습니다. 그래 가르친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 가르쳤다가는 돌 맞아 죽지. 근데 성경은 그렇게 적어놨습니다. 복음운동을 가지고 교회를 가지고 신앙을 가지고 사업에 써먹지 말아라. 노후수단으로 쓰지 말아라. 결혼의 방법으로 삼지 말아라. 사람 사귀는 기회로 삼지 말아라. 가정 화평을 위하여 교회와 신앙생활을 사용하지 말아라. 복음은 딱 복음으로만 사용해라.

10절 끝입니다.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 이니라” 말씀으로 오늘 살고 말씀으로 오늘 살았는데 이 말씀으로 내일도 살고 내일 가르치고 내일 고칠 일이 있으면, 말씀에 충실하다 보면 내일 먹을 거 하나님이 내일 주실 건데, 오늘은 말씀 생활했고 내일은 어디 갈지 쫓겨날지 어찌 될지 모르니 한 벌 더 챙기자. 여윳돈 가지자. 적금 넣어놓고 은퇴 뒤를 벗고 이것도 저것도 마련하자. 그러면 10절 말씀에 전부 다 어긋나는 겁니다. 그냥 맡겨놓고 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11절 가다가 아무 성이나 어떤 성, 어떤 촌, 어떤 현실, 누구를 만나든지 그 현실 속에 말씀을 전할 때 필요한 숙소가 있거든 먹을 곳이 있거든 누울 곳이 있거든 앉을 자리가 있거든, 주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감사히 신세져라. 남들이 볼 때는 신세 진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의 말씀으로 복음 운동하고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해서 주님이 주신 기회니까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말씀으로 사는 오늘 하루 위하여 말씀으로 사는 올해 한 해를 위하여 신풍교회 집 짓는 신풍 이 번지를 위하여 건축을 위하여, 나라의 법이 있고 우리나라의 안전이 있고 우리나라의 건축의 자재가 있고, 앞뒤 마을에서 반대하지 않으니 받아준 거니 이분들을 위하여 평안을 빌라. 교회는 어디를 가든지 주변의 평안을 비는 게 맞습니다. 앞뒤 동네가 교회를 싫어하니 천벌을 때려서 벼락이 나게 해 주시라. 그 기도는 우리 입으로는 하는 게 아닙니다. 12제자 중에 야고보하고 요한하고 둘이 별명이 보아너게입니다. 천둥번개라는 뜻입니다. 눈에 안 맞은 게 보이면 주여 그냥 번개로 가지고 구워버릴까요 때려버릴까요 다 죽여 버릴까요. 성질이 이렇게 급한데 그러는 거 아닙니다.

13절. 평안하기를 빌었는데 그 동네가 그 나라가 그 사회가 그 가정이, 너 복음 운동을 위하여 배경이 되고 도움이 되면 그러면 그 평안이 그 집에 들어갈 것이고, 너희들은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려고 해도 저 북한처럼 도무지 평안을 받을 그릇이 되지 않으면 네가 빈 평안은 너 머리 위로 돌아오고, 매 맞을 것들은 주님이 직접 매를 들 겁니다. 14절 근데 주는 현실 말씀으로 복음 운동을 하는데 복음 운동한다고 미워하고 쥐 박고 오히려 쫓아내버리고 박해를 하거든, 그러면 주님이 기회를 주지 않거든 또 말씀으로 전해야 될 때를 찾아 보거라. 그리고 그렇게 반대한 곳에서는 너희 발에 먼지를 떨어버려라. 복음에 반대되는 곳에 그런 분위기, 그런 지식, 그런 사회의 것은 발에 먼지도 묻히고 오지 말아라. 그런 행습 배우지 말아라. 그렇게 된 역사도 가지고 오지 말아라. 참 조심할 일입니다. 신앙 있는 사람이 가난하여 부잣집에 식모 살다가 머슴 살다가 자기는 믿는 사람인데 남의 집 식모 머슴하고, 주인은 안 믿는데 잘 살고 또는 신앙생활도 대충하는데 주인이고 이럴 때에, 어떻게 저 사람은 믿지도 않는데 저렇게 잘 되는고? 이런 흉내도 내지 말아라. 발에 먼지를 털어라. 일당 받기 위해서 그 집에 출근은 할 수 있다. 그 집에 머슴으로 평생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의 지식, 그 집에 부러운 것은 한 내끼도 없도록 하라. 14절입니다. 그리고 15절, 너희들을 박해하고 복음을 반대한 그 현실 그들은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소돔과 고모라 늘 기억해야 말씀으로 살아야 되는데 말씀과 맞서고 뒤로 쏙 빠지면 그다음 소돔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16절 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이렇게 이어져 왔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복음 운동은 꼭 복음운동만이라야 된다. 잘 구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세상 무시하는 것도 죄, 세상 속에 빠져서 얽혀버리는 것도 죄. 살기는 세상에 사나 나는 세상에 물의 기름처럼 신앙은 신앙으로 복되게 살아 봐 보십시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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