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3.5.30 마10:22 말씀 생활 세상의 모든 반대, 적극으로 한단계 높게 더욱 달려가는 방법만이 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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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3.5.30 마10:22 말씀 생활 세상의 모든 반대, 적극으로 한단계 높게 더욱 달려가는 방법만이 이김

관리1 0 49 05.3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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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0 화새

제목 : 말씀 생활 세상의 모든 반대, 적극으로 한단계 높게 더욱 달려가는 방법만이 이김

찬송 : 84장(날 대속하신 구주께)

본문 : 마태복음 10장 22절 -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죄악 세상은 죄를 짓게 한 악령이 공중의 권세를 잡아 세상을 주님 오실 때까지 다스리기 때문에 세상의 구조도 내용도, 모든 성질도 말씀과 다르고 하나님 중심이 아니며 하나님 동행이 없고 그리고 천국과 완전히 끊어져 버렸습니다. 말씀 없는 세상의 말씀으로 살려면 다르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자기중심으로 살게 만든 세상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서로 끌어당기는 것이 달라서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고 ‘주님과 동행’ 마음속에 이 생각 그 노력을 하는 순간 세상과 역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역주행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신앙이란 세상을 거슬러 역주행을 하는 거다, 그 고장은 생기고 충돌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다르니 그런 겁니다. 그 말은 세상과 내가 같은 부분이 있으면 이거 고장이 난 겁니다. 같아 보일 수는 있습니다. 같아 보일 수는 있으나 속까지 같으면 이거 지금 문제가 생긴 겁니다. 나는 세상 속에 같은 가 다른가? 친구와 사상이 같고, 학교 가는 이유가 같고, 동료와 직장에 가는 이유가 같고, 하는 일이 같고 모든 것이 같으면 문제는 생긴 겁니다.

말씀의 인도를 따라 학교를 가고 출근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고, 말씀 때문에 가는 것은 빼버리고 자기 때문에 가던 세상에 뭔 일이 있어 가든 그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이 세상 사람입니다. 생활에 상관없이 이 생활 속에 주님은 뭘 원하실까를 생각하면 믿는 사람이고, 그 생각할 리가 없는 것이 안 믿는 사람입니다. 평소에는 별로 이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가다 보면 한 번씩 피할 수 없이 충돌이 생깁니다. 목축지가 넓을 때는 아브라함과 롯이 생각이 달라도 한 곳에 있었는데, 때가 되어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 생기니까 마음속에 주의 인도, 주의 말씀을 먼저 찾는 아브라함은 롯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고 롯은 소돔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나안과 소돔을 두고 택일의 선택은 나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같을 때는 왜 같았는가? 같아도 되기 때문에 같았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가다가 보면 맞설 때가 있습니다. 또 달리 가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속에 뭐가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주님 때문에 교회를 다닌 건지, 날 위해서 교회를 다닌 건지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오늘 아침은 하나 더 더하여 세상보다 말씀 생활이 모든 면으로 나으니 그 나은 걸 그냥 두고 보지는 않게 되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타락은 하여 하나님은 없어도 자연양심이 있어 뭐가 좋고 뭐가 싫은 것은 아는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고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물리쳤습니다. 달라서 문제고 첫째, 나하고 같지 않으니까 그냥 두지 못하고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나으니 나보다 앞선 거는 끄잡아 내리는 것이 생존경쟁의 본능입니다. 앞선 사람이 있어 보고 따라가고 배우면 좋겠는데 그렇게 자꾸 앞선 것을 좋아하고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의 운동이 자꾸 넓어질까 봐 나은 것은 뒤에서 끌어당겨 자기처럼 만들고, 또 좀 가다 보면 자기보다 뒤서도록 밀쳐버리는 것이 모든 제도며 모든 나라며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자기중심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이런 현상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신앙생활 안에서도 깨달음이 하나 앞서기 시작하면 참 옳다, 맞다 이거는 배우는 것이 내게 좋겠다, 이러는 경우는 없고 다르니 비판부터 하고 나으면 잘못된 걸 연구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는 쥐어박는 것이고 잘못이 나오지 않으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거는 끄집어 내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지금 다 세상 소식 듣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쪽은 그렇지 않고 저쪽만 그런가? 우리가 안정적으로 모든 것이 되어 지면 또 그러게 되어 있습니다. 뭐 그거는 끝이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자기중심이 되고 자기중심이라는 것은 자기가 1등이라 해야 되고 자기가 중심이라 해야 되고 나머지는 나의 이용물이라야 되고 나 뒤로 그거는 쳐져야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한 교단 한 교회 안에서도 새로 믿는 사람이 옳게 믿고 바르게 믿으려고 노력하면 저렇게 믿는 것이 옳은데 나는 저렇게 못 믿었는데 저 사람이 먼저 앞서가니 그 뒤를 따라가면 내게 도움이 되겠다, 저렇게 본 받고 저렇게 나가는 것이 맞겠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고 자기보다 앞선 사람은 가다가 넘어져 코가 깨지기를 원하는 것이 그게 타락한 인간 본성 속에 들어있는 자기중심의 악입니다. 자기중심의 악.

옳은데 내가 소속을 하면 나도 옳아지고 옳은 데 사용이 되면 나도 영생의 나라에 생명에 속한 것이 되어 지는데 이걸 보면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의 소망의 사람이 되는데 그거 말씀 생활 밖에서는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공회 교인들은 공회 밖에 공회보다 더 좋은 거 있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 있어야 그게 공회 교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넓게 보면 자기중심.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를 않습니다. 내 것은 상대방이 보고 배우고 상대방의 옳은 것은 내가 보고 배우고 그 어떤 교단 어떤 교회에도 반드시 배워야 될 걸 서로 섞어주십니다. 한 교회가 99점이고 한 교회가 1점이라도 1점밖에 안 되는 교회의 그 1점이 바로 99점 맞은 교회로 옮겨와서 99점에서 하나를 배워 하나를 채워야 99점이 100점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생각을 잘못하면 99점이나 되니까 뭐 1점보다는 99배 나은데 라고 하는데 둘 차이는 그렇게 나와도 하나님은 완전 완성을 합격으로 보기 때문에 100에 하나 부족하여 99점으로 불합격한 거나 100에 99이 부족하여 1점으로 불합격한 거나 하늘나라 들어가지 못하는 데는 똑같습니다. 그게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은 남보다만 나으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남보다 나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걸 목표로 줘 놓았습니다. 내가 말씀 생활로 나 속을 먼저 고치고 그리고 남 속에 말씀 생활을 배우고 따라가면서 나를 또 고치고 그리고 고쳐나가는 그 속에 신앙의 완성이 있다는 거 이 아침에 기억하십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젖 먹는 어린 아이의 하나를 보고도 배울 것이 있고 배워야 된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젖 먹는 아이가 뭘 말을 해서 가르치고 우리는 배우겠습니까? 그 피부, 그 눈망울을 봐보면 죄가 적어서 그게 깨끗한 겁니다. 그것도 20년, 40년 죄 지으면 20년만큼 늙을 것이고 40년  만큼 추해질 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못 피합니다. 아이들은 죄가 없어 깨끗하다 그러는데 그건 틀린 말이고 죄는 있는데 죄가 덜 쌓여 그렇습니다. 죄가 덜 쌓여 상대적으로 나아 보입니다. 넌 나보다 지은 죄가 적다 죄가 들어갈수록 늙고 죄가 들어갈수록 추해진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 영원히 추해지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니 말씀 생활로 사죄로 살고 사죄라는 것은 지은 죄를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은 죄를 넘어서 말씀으로 사는 이런 생활로 바뀌게 되어 집니다. 늙는 걸 노화라고 그럽니다. 덜 늙도록 늦게 늙도록 만드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고 전부 뭐 건강약이라고 난리입니다.

말씀 생활은 나이 많은 사람이 아이가 되는 것이고, 아이가 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죄 없는 존재가 의로운 존재로 아담이 죄 짓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아담이 죄 짓기 이전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깨끗으로 달려가는 길입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보다는 말씀으로 살아가야 된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급할까? 이거 생각하고 달리다 보면 말씀 어기는 생활은 벌써 멀어져 생각도 나지 않게 돼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말씀과 다르니 세상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상식입니다. 두 번째, 말씀으로 살다 보면 세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세상이 그냥 두진 않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말씀 생활로 달려가면 복이 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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