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5.29 마10:22 말씀과 다른 충돌, 첫 은혜의 한정된 기회에 객관의 말씀 생활로 전환하여 인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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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3.5.29 마10:22 말씀과 다른 충돌, 첫 은혜의 한정된 기회에 객관의 말씀 생활로 전환하여 인내로

관리1 0 64 2023.05.2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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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월새

제목 : 말씀과 다른 세상 충돌의 불가피, 첫사랑 첫 은혜의 한정된 기회에 이성 판단의 말씀 생활로  전환하지 않으면

찬송 : 148장(이 죄인을 완전케)

본문 : 마태복음 10장 22절 -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미움을 받을 것이나” 세상은 죄악 아래 있고 죄악 아래 세상에서 말씀으로 살려는 것이 예수의 이름인데 세상과 신앙은 다르니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살면 뭔 말 때문에 불편하겠습니까? 미국에 가서 영어만 쓰는 그 사람들 안에서 우리말을 쓰려면 당연히 말이 불편한 것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고 멀쩡한데 뭔가 불편이 생기는 법입니다.

세상은 말씀 없이 사는 세상이고 말씀 없는 세상 속에서 말씀으로 살려면 기본적으로 그거는 뭐 역주행을 하듯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물고기야 물에 사는 것이 편하고 물고기 아닌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바로 그건 숨이 막히는 법입니다. 모든 것이 다 방해가 됩니다.

세상과 다르니 세상은 알든 모르든 말씀으로 사는 행위는 그런 사람은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원망할 것 아니고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고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법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이게 가정으로 오면 부부가 20년 다른 집에서 다른 걸 먹고 다르게 살았으니 부부라는 말 한마디에 그게 해소가 된다는 것도 우습고 될 리는 없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너무 다르기 때문에 붙어 살 수가 없는 건데 그래도 붙어살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이 남녀 이성의 사랑에 첫 순간입니다. 그거라도 있으니 일단 둘이 손을 잡는 것이고 그런데 그거 오래 가는 거 아닙니다. 부부 사랑의 애정을 다른 둘이 하나 되라고 주셨으니 일단 그것으로 하나 된 다음 부부 사랑의 애정이라는 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 일시입니다. 그 기간에 얼른 눈치 채고 얼른 서로 잘 맞추면 애정 때문에 둘이 하나 되고 이거는 슬슬 사라지는 것이고 급속히 이거는 줄어드는 건데 애정을 매개로 얼른 말씀으로 서로 살아가야 되는 부부로 바꿔버리면 출발은 애정이나 살아가는 것은 애정으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그걸 부모가 가르치고 걸어본 선배가 표시를 잘 해서 도움이 되면 얼마나 참 좋겠습니까?

가정에 부부의 애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 대한 첫 사랑이 모르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그냥 다니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그 어느 순간 그때는 몰라도 되돌아보면 첫 은혜라는 것이 있습니다. 첫 은혜. 이게 들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남녀 부부의 다른 것보다 훨씬 더 다른데 그런데 첫 은혜라는 것이 들어서 나는 보지도 못한 주님을 좋아하고 뭐 이유도 없고 따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품안의 아이가 엄마를 그냥 좋아하듯이 맹목적입니다. 말도 안 되는 건데.

태어난 아이가 본능적으로 엄마를 좋아하고 엄마는 모성애가 있고 이러니 그게 생존이 되지 엄마에게 모성애가 없고 아이에게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 그 순간을 빼버리면 아이가 생존을 하겠습니까? 엄마를 불편케 하는 아이와 유아 때에 젖을 사모하는 그 생존의 잠깐의 기회를 통해 둘이 한 편이 돼 가지고 그 다음, 생존의 기회를 넘깁니다. 이게 오래 가지 않지 않습니까? 이런 엄마와 아이의 첫사랑 그때 이게 나중에 변한다고 알고 미리 조심하고 자기만을 바라볼 때 그 때 기도 많이 하고 훗날을 보며 세팅을 잘해버리면 그래도 참 위험한 사춘기니 뭐니 하는 그런 기간을 다 무사히 넘길 수 있고 유아 때 무조건 좋아하던 그것이 계속되는 줄 알고 우리 아이는 워낙 착하고 나를 좋아하니까 걱정도 없다고 안심하면 삐뚤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방심이 들어 태어나면 모성애와 젖을 사모하는 아이 사이의 첫사랑, 없어지기 전에 그걸 붙들고 아이를 훗날을 보며 기르고 두 번째, 장성하여 결혼하게 되면 남녀라 참 다른데도 남녀 이성의 애정에 첫사랑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이걸로 손을 잡은 다음 이건 쉬 사라지니 얼른 그 기간에 눈치를 채고 서로 장단점을 파악하여 그 다음, 뜨거운 첫사랑의 애정이 식어지고 없어지더라도 그건 잠깐 주신 것이니 당연히 없어지는 거고 그건 떼 내버리고 경제 이해관계가 필요하고, 생존 생활 이해관계가 필요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맞춰보니 저 사람 아니고는 이거는 내가 곤란하고, 이 사람 아니고는 내가 곤란하다, 빨리 파악해서 해결을 해버려야 그래야 평생을 살며 좋은 가정이 되어 지는 겁니다.

이걸 그대로 주님과 나 사이에 신앙으로 연결을 시키면 하나님과 인간이 다르기를 얼마나 다릅니까? 이건 뭐 그냥 하늘과 땅보다도 더 차이가 나는데 첫 은혜라는 것은 계시록 2장 1절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처음 사랑을 잊었도다” 신앙도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알지도 못하는데 이유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데 내가 주님이 좋아지고 교회를 향해서 생기는 이 열심이 태어난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듯, 첫사랑의 애정으로 부부가 좋게 출발을 하는 것처럼 신앙도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지성이 없고 이성이 없는 겁니다.

지성이라는 것은 도서관의 책에 있는 지식으로 따져서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고 이치를 따지는 이성, 논리적으로 비교해보고 논리적으로 연구를 해볼 때 엄마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손해만 보는 건데 뭐 할라고 그 애를 쳐다보고 있는가, 부부의 첫사랑의 애정이란 논리적으로 영업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이거는 지식적으로 하나 되기 어렵고 따져보면 손해 보는 게 많은데 그 전부를 넘어서는 것이 애정이듯이 첫 은혜라는 것도 하나님을 보기나 했습니까? 뭔 돈을 받았습니까? 거기에 자기 장래의 뭔 혜택 볼 것이 있습니까? 전부 손해인데 이 첫 은혜 내려 주셔서 일단 주님과 하나 되는 이런 기회를 주십니다.

이 첫 은혜의 처음 사랑이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면 다 필패입니다. 이게 내 아이가 처음은 생존을 위해 엄마를 좋아하다가 자라가며 변심하는 것처럼 변심이 되는 줄 알고 엄마가 미리 지켜보면 그거 좋게 만듭니다. 대책 없이 서로 좋아하던 첫사랑이 이게 얼마 가지 않으면 식어지고 없어지는 줄 알고 얼른 이해관계를 잘 계산해서 아, 이 사람은 애정을 떠나 이 사람은 나한테 꼭 필요하구나, 알고 그다음 붙들며 이 합리적인 이해관계에 이성이 들어 따져보는 이치를 통해 그 다음 이것이 끝까지 가는 겁니다.

주님이 주신 처음 은혜도 처음 은혜라는 것은 이거는 오래가지 않는데 많이 가면 뭐 석 달, 보통 그렇습니다. 그럴 때에 처음 은혜로 가지고 말씀으로 들어와서 말씀으로 따져보고 놓고 떼 볼 때 신앙이란 건강에 좋고 가정에 좋고, 나한테 좋고, 내 마음에 좋고, 내 평생에 좋고, 죽어도 좋고 살아 좋고 아무리 따져 봐도 이거는 목숨을 바치고 평생을 바치고 온 가정을 다 희생시켜서라도 쥐고 가야 될 절대의 복이구나, 빨리 지성과 비판을 통해 거머 줘야 참 은혜가 식어져도 끝까지 실행으로 “주의 이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주변의 미움 전부와 주의 말씀으로 걸어가는 이 두 계산을, 계산을 해봤기 때문에 밖에서는 어려움을 넘어갈 수가 있는 겁니다.

차 시동을 걸면 승용차 같은 경우 차 시동을 걸면 주먹만 한 선풍기 뒤에 뒤꼭지처럼 선풍기 뒤에 주먹만 한 뒷꼭지가 모터입니다. 이게 들어서 팬을, 부채를 붙입니다. 차 엔진 옆에도 주먹만 한 모터가 붙어 있습니다. 차 시동을 걸면 세루모터라는 거 이 모터가 엔진을 돌립니다. 이게 엔진을 돌려주면 엔진이 걸리는 순간, 걸리는 순간 이 모터가 뒤로 빠져버립니다.  모터는 엔진을 돌릴 만큼 조금만 돌아갑니다. 그런데 엔진은 돌기 시작하면 이 모터를 갖다가 잡아 돌려서 태워버립니다. 그거 잠깐입니다. 그래서 차 시동을 걸면 바로 키를 놔버리면 키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모터가 빠지는데 엔진이 걸렸는데 키를 계속 잡고 있으면 모터가 엔진을 돌렸는데 엔진이 돌아가면서 모터를 갖다 질질 끌고 가버리면 그거 당장에 타버립니다.

부부의 첫사랑이 엔진을 움직이는 모터라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남녀 애정으로 만나 끌리는 그 애정으로 하나가 됐고 하나가 됐을 때 그 애정은 좀 뒤로 제쳐 놓고 남자 여자 다른 데 다르니 이거는 절대로 필요하구나, 얼른 지식으로 얼른 비판 평가로 계산이 딱 나와 버려야 이건 엔진이라 평생을 부부와 가족을 끌고 가는 힘이 되어 집니다. 이걸로 가지고 끝까지 가는 거지 첫사랑의 애정에 그것만 가지고 부부가 끝까지 간다, 뭐 그거는 불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이유 없이 성경을 읽고 싶고 교회는 또 가고 싶고 설교는 또 듣고 싶고 뭔 교회 일이 있으면 또 가고 싶고 한 번 오라는데 두 번 가고 싶고 두 번 오라는데 세 번 가고 싶고 이건 지식으로 따져보지 않고 지식을 넘어서는 무작정의 은혜인데 그거 오래 주질 않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오래 가면 그게 바로 이단 됩니다. 큰일 나는 겁니다. 따져볼 것 없이 좋아지고 아는 것도 없는데 아는 것처럼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기회 그 힘으로 가지고 못 본 주님을 붙들고 얼른 성경을 읽고 얼른 성경 말씀으로 실행하는 자기를 만들고 그렇게 했는데도 첫 은혜가 더 이어지면 그건 뭐 그냥 참 시대의 종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느 분, 어느 분 참 그 생애가 그립고 사모가 되고 부럽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끝까지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런 분들은 첫 은혜로 성경을 읽고 성경의 말씀으로 비판을 하고 평가를 하고 그런데도 계속해서 이 점 은혜가 함께 해버리면 상상도 못하는 그런 성녀가 되어 집니다. 일반 교인들에게는 못 본 주님을 느낄 수 있도록 알 수 있도록 첫 은혜만 주시고 그다음 첫 은혜를 얼른 거두어 가십니다. 그 첫 은혜의 기간에 교회를 정하고 첫 은혜의 기간에 자기가 걸어갈 신앙의 방향을 정하고 자기 위치, 자기 사명을 붙들고 그리고 좋기는 성경을 깨닫는 면까지 은혜를 받아 놓으면 무조건적으로 은혜 되던 첫 은혜를 거두어 가셔도 식어져도 없어져도 성경의 말씀이 나를 붙들고 가고 성경의 말씀이 나를 붙들고 갈 때 내 이성 비판이 따라갈 때 이게 이제 신앙의 정말 만세반석 위에 우뚝 서게 되어 집니다.

오늘 아침 하나 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말씀 생활에 집착하면 왜 안팎의 모든 것이 반대를 하느냐, 세상과 말씀은 다르니까. 심지어 나와 말씀도 원래 다르니까 이게 타락한 세상의 결과입니다. 선악과 먹은 세상은 내 마음속 내 생애까지 다 포함해서 이 땅 위에 말씀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중생으로 어느 날 내 속에 첫 은혜를 주셨고 그 첫 은혜 속에 말씀을 넣어주며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라, 이랬지 첫 은혜를 붙들고 살라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예수의 이름 말씀 생활이 이게 구원입니다. 말씀에 맞춰 보니 내 마음을 이렇게 내 생애를 이렇게 생각을 이렇게 바꿔야 되겠다, 이게 구원입니다. 이걸 붙들고 걸어갈 때 도움이 되라고 첫 은혜를 준 겁니다. 이 첫 은혜의 기간에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붙들고 나면 첫 은혜는 빠집니다. 무조건적인 은혜 무작정 따라 나서는 것은 잠깐이고 말씀을 읽어보니 이 속에 이렇구나, 이래야 되겠구나, 이걸 붙들고 걸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

세상 속에 내 마음속에 들어온 말씀은 나와 다르고 주변과 다르고 세상과 다르다 다르면 부딪혀지는 겁니다. 필연적으로 그거는 말씀 생활이란 나 전부와 싸우고 나 주변과 전부 부딪혀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생활이란 아예 직장을 가든 부부 끼리든 내 마음 안에 든 다른 데 말씀이 옳으니 구원이니 말씀을 따라가면서 해결을 하는 거지 여기는 타협이 없다, 그렇게 알면 그다음 해결은 저절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여행 가고 미국 이민 간 사람이 미국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말도 못 알아듣겠다, 전부 내 말을 해야 되는데 뭔 놈의 강아지 짖는 소리 하나, 에이! 이놈의 나라는 말이 틀려서 그냥 딱 그냥 첫 느낌이 틀렸고 이 나라는 다 뒤집어 버려야 된다, 전부 내 말을 알아야 되고 나처럼 말을 해야 된다, 그러면 그 정신병원 가버려야 됩니다. 그 미국 가지를 말아야지.

죄악 세상에서 말씀을 붙들었으니 내 마음과 다르고 내 주변과 다르고 천하와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다르고 다르면 큰 것이 이기고 많은 것이 이기고 내 속에 있는 말씀은 하나니 이건 쥐어 박히고 이거는 어렵게 되어 있는 거다, 다르니 당연히 충돌이 있는 거다 알고, 그런데 이 말씀을 붙들고 갈 때는 주님이 권능으로 함께하기 때문에 말씀이 나를 먹고 말씀이 주변을 능가하고 초월하고 마지막에 모든 것을 뒤집어 놓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 하루 생애의 말씀 생활의 근본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기고 출발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은 내가 붙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면 주변도 좋아해야 된다, 그건 억지 소리고 내가 말씀이 좋으니 직장에서 나를 이해를 해야 된다, 이게 전부 다 그건 누가 하는 그런 소리입니다. 내가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붙든 순간 살아 온 내 생애부터 반대를 할 거고, 앞날의 내가 반대를 할 거고, 나 주변은 말도 할 것 없이 다 반대할 거다, 말씀을 자꾸 붙들고 이면 저 면으로 살펴봐서 이 말씀이 너무 귀하고, 이게 능력이고, 이게 복음이고, 이게 구원이니 이것 때문에 말씀을 붙들고 모든 것은 해결을 해 나가는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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