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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배치)
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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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30528 주전
제목 : 모든 면으로 예사롭지 않은 세상과 신앙, 고요히 철저히 잘 준비해야 할 상황
사회 : 김 희락
찬송 : 5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52장(샘물과 같은 보혈은) / 60장(날 구원하신 예수를)
본문 : 마태복음 10장 22절 -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성정을 가진 저희를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을 삼으시고, 그 목적대로 당신의 살과 피를 찢어 대속의 구원을 이루신 주님으로 인하여, 매 순간순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성령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저희를 붙드시는 이 은혜로 인하여, 옳고 바른 구원의 길을 가야만 하고 갈 수밖에 없는 저희들인데, 이리떼와 같은 현실 구원을 싫어하고 구원의 길을 멀리하려는 내 안에 내 속성과, 구원을 가로막는 자타에 의하여 깨어지고 다치고 상처 난 부족한 모습뿐이오나. 귀하고 복된 날을 주심으로 상한 심령으로 주님만 바라봄으로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주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과 다르고 더럽고 고쳐야 하는 모든 원인과 요소가 밝아지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죄송함과 그 은혜를 아직 부족하여 감당치 못하는 연약함을 넘어, 주님 앞에 더욱 깨끗하고 성결한 신앙으로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지혜와 성결의 권능을 받기까지, 어려도 또 주님 앞에 설날이 가까운 노년의 종들도 해외에 두신 이들 군무에 두신 아들들. 입원 출장 요양 또는 여러 곳에서 우리 신풍강단을 사모하며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모으는 가정, 가정, 개인, 개인 마음속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각자의 양심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생각과 마음과 행실을 씻고 씻어 끝까지 인내하는 한 주간이 되도록 특별한 은혜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하여 주시며 부족하오나 이 노선을 굳게 붙든 강단 위에 특별한 은혜로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5월에 비까지 오는 날이 되다 보니까 좋은 날 또 주일 오전 10시 예배라 분위기가 지금 차분합니다. 교회는 기뻐야 되고 즐거워야 되고 신이 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지금은 대세가 다 그렇습니다. 근데 기억하실는지 431년 전 2023년에 431년을 빼면 몇 년쯤 되는지 혹시 계산이 나옵니까? 전국이 좋다고 웃고 행복하게 떠들 때 이곳 신풍만 고요했습니다. 전국이 잔치하고 다 좋다고 떠들썩할 때 431년 전 신풍만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망할 나라를 신풍 바다에서 시작해서 7년간 투쟁하고 여기서 끝을 냈습니다. 신풍 사람들이 이런 걸 모르고 신풍 사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고, 신풍 사는 사람들은 알아야 될 텐데 제가 직접 1:1로 신풍 오래된 분들과 대화하면 그런 거 아는 분을 못 봤습니다. 431년 전에 시작이 됐다가 7년 이 나라 전부가 도륙이 나버렸습니다. 엉망진창이 돼버렸습니다. 이곳만 지켜졌습니다. 이 신풍이 보통 땅은 아닙니다. 그리고 84년 전 전국이 흥청망청 멋모르고 편할 때 이곳 신풍만 고요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50년을 여기에서 정리했고 이후에 지금 80년을 신풍에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근데 아는 분이 그렇게도 없어 다른 데는 몰라도 신풍은 알아야 되는데 왜 신풍에서는 이런 걸 가르치지 않았을까? 말을 하고 말을 하면 그게 그거구나 아는데 신풍은 알아야 되는데, 두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74년 전 전국이 흥청망청 뭐 그냥 놀자 판 살판났다고 정신이 없을 때 모두가 행복하다고 그럴 때 신풍만 고요했습니다. 그게 우리 찬송 36장입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아이 좋아서 전국이 떠들썩하고 잔치판이 벌어지는데, 우리 교회 저 앞에 신풍 바닷가에서만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아니 좋아서 잔치하는데 왜 눈물을 머금고 난리야 잔치판을 갖다가? 2절에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전국이 좋아서 떠들썩한데 왜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저러고 있을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여름에야 날이 그렇다 보면 갑자기 소나기도 오는 거고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는 거지 뭔 구차하게 궁색 맞게 그러고 있을까. 다 좋아서 흥청망청 좋은 게 좋은데 좋은 게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좋은 게 끝까지 좋으면 가장 좋지만, 좋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버리면 그때는 좋은 게 아니라 그건 자해입니다. 자살이라고 그럽니다.
찬양대 학생들 연도 세 가지 기억하시나요? 지금부터 몇 년 전 431년 전 1592년. 신풍만 고요했습니다. 신풍만 땀 흘려 죽자고 자기위치에서 자기 할 일에 충실했습니다. 신풍만. 전국이 흥청망청 난리인데. 그리고 여기에서 준비하고 7년 마무리를 여기서 했습니다. 왜 신풍에 대대로 살면서 왜 모르지요? 차 씨 대표되는 분, 문 씨 대표되는 분 다 나라의 위대한 분들 많은 집안에 제일 어른들께 여쭤보니까, 자기들 역사도 모르고 있다가 들어보니 그렇답니다. 들어보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게 역사고 사실입니다. 주일날 오전에 교회에 오면 신이 나야 되고 세상 어디 간 것보다 더 기뻐야 되고 좋아야 되는데, 왜 교회가 장례식 초상집처럼 이렇게 조용할까. 왜 엄숙할까. 교회라는 데는 수천 년 역사적으로 교회라는 데는 주일이 되면 조용했습니다. 그게 교회다운 데입니다. 교회가 북치고 나팔 불고 좋아서 두드리면 다윗 정도 되든지 아니면 타락을 해서 막 가는 데입니다. 우리가 다윗 정도는 되지 않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법조계에 판검사 제일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가 순천고등학교입니다. 경기고등학교가 아닙니다. 지난 30여 년 대한민국 사법부에 제일 꼭대기에 앉혀놓은 간부를 배출한 학교가, 경기고등학교 서울 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가 아니고 광주 일고도 아니고 순천고등학교입니다. 순천고등학교에 주변을 들어가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바보들입니까 벙어리들입니까? 왜 순천고등학교는 1년 12달 고요할까요? 한 학년이 700명입니다. 그 작은 고등학교에 2천 명이 들어갔는데 조용합니다. 왜 그렇죠? 고등학교니 공부를 하겠지. 공부를 하니까 조용하겠지 모르니까 책 들고 보고 앉았겠지. 죄송하지만은 그 옆에 공고 상고 뭐 그냥 운동하느라고 노래 부르느라고 축제 하느라고 흥청망청 입니다. 고등학교라는 데는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데는 순천고처럼 전국 법조인을 제일 많이 배출한 이런 인문계 고등학교란, 3년 뒤 대학의 합격증을 위해서 입 닥치고 조용하게 공부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동부 육군에 제일 우수한 애들은 전부 거기 갔습니다. 돈 없어 못 갔지. 성적이 안 돼서 못 갔지. 순 고생들만 되면 전부 뭐 지가 뭔 대통령이나 된 것처럼 자부심 있게 설쳐서 참 꼴 보기는 싫었지만은 그게 정상입니다. 아닙니까? 자녀 중에 순 고 하나 다니면 부모가 죽는 날까지 순 고 아들이 있다고 어깨 펴고 자랑하고 그랬습니다. 다 알지 않습니까? 학교가 조용하니까 공부하면 됩니다. 걔들이 주먹질을 모릅니까? 노래를 모릅니까? 노름을 못합니까? 고등학생 술 먹이면 다 술 잘 먹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아무것도 안 합니다. 이유는? 3년 뒤 대학 입학 날을 위해서 공부하느라고.
안 믿는 세상도 그런 학교를 인류라 그러고 못 들어가서 난리고 하나 들어가면 온 집안이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전부 다 그 학교 쳐다보며 이 나라 법조계 지금 검 판사 전부 다 꼭대기 위에 다 잡고 있습니다. 한 30년 통계가 그렇습니다. 교회는 어떤 모습이 교회일까? 한 주간 세상은 돈을 벌든 큰소리를 치든 도둑질을 하던 노래를 부르든 뒷골목을 다녔든, 주일날이 되면 주님의 날이니 주님을 생각하면 마음에 죄송해서 목사처럼 잘 믿는 사람도 주님 앞에는 죄송해서 고개를 숙이는 곳이고, 뒷골목 조폭들도 안 오면 몰라도 교회를 오면 주먹 가지고 교회 오는 건 아닙니다. 교회에 올 때는 주먹을 포켓에 넣고 등신처럼 와야지. 밖에 가서는 떠들지도 못하는 게 주일 오전 예배당만 오면 뭔 두목 온 듯이 그냥 그거 안 좋은 겁니다. 그건 누가 그래도 그건 안 좋은 겁니다. 목사가 그래도 건방진 목사고 교인이 그러면 그것도 또 못된 교인이 되는 겁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니 주님 때문에 조심 주님 때문에 내 마음 돌아보며, 주님은 말씀을 이렇게 했는데 난 어떤가. 비교해보면 상 받을 것보다는 죄송한 게 많은 게 기본적으로 교회고 믿는 사람의 주일입니다. 지금 마태복음 10장을 두 주 공부했습니다. 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 같도다” 주님이 세상 속에 신앙을 가지려면 이리떼 속의 양이다. 이랬는데 양이 목자도 잊어버리고 이리떼 속에서 막 좋다고 설치고 돌아 댕기면, 그 이리떼가 보고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그 이리떼들이 보고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양은 숨어도 색깔이나 덩치가 못 숨습니다. 숨어도 그거 다 한 입인데. 어린 양들이 뭐 이리 떼 속에서 좋아서 그냥 춤을 추고 앉았으면 이리는 고맙지요. 이리 가운데 양을 풀어놓은 목자는 목자만 바라보면 살 길은 있다. 목자 없으면 너희들은 다 같다. 이게 마태복음 10장 16절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안 믿을 때는 세상을 휘잡고 마음대로 살다가,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을 하면 숙연해져야 됩니다.
학생이란 학교를 갈 때는 숙연해져야 됩니다. 수업 시간이 되면 혹시 놓친 게 있는가. 이래야 위로 올라갑니다. 공부한 혜택을 봅니다. 학생의 얼굴이 좋아서 희희낙락하면 지금 놀이터 가는 애지 그거 학교 갈 애가 아닙니다. 교회가 그렇고 예배가 그런 겁니다. 일부러 교회 분위기를 절처럼 이렇게 눌러서 억압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양심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는 좀 죄송해야 되지 않나요? 정말 학생이 센 공부를 하려면 16년 공부를 하고도 마지막 자격증 시험에 만에 하나, 하나 잘못 찍어 탈락할까 봐 실력 있고 수석 합격을 할 학생도 조심조심 그렇게 문제를 읽는 겁니다. 신앙의 기본의 자세가 그런 걸 좀 살펴서. 부모님은 교회를 안 다니는데 선생님 때문에 여기 안 믿는 가정에서 초등학생 중학생도 많이 앉아 있습니다. 그래도 이게 교회 정상적인 분위기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입니다. 절에서 술 먹고 삼겹살 지져 대면 그건 절이 아닙니다. 그거는 삼겹살 고기 식당이지. 365일 뒷골목에서 중이 고기를 먹어도 대웅전 4월 초파일날은 입 닫고 양치치고 고요하게 폼이라도 잡아야 됩니다. 교회는 이렇게 좀 생각을 하고 조용해야 이게 교회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상적입니다. 흥청망청 그거는 밤에 가면 노래방이 잘하고 그거는 술집이 잘하는 데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 같도다” 주님이 마지막에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오늘까지 신앙이란 착실해야 된다. 차분해야 된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난주는 10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생활과 자기 생각에 더러운 걸 말씀으로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럼 말씀은 어떻고 나는 어떤지 비교를 해봐야 더럽고 씻을 걸 알지 않습니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내속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걸 전부 해결할 수 있게 해 주셨다면 이런 좋은 일이 있습니까? 말씀으로 무엇이 더러우며 말씀으로 무엇이 고장 났으며 말씀으로 무엇이 약해서 문제인가. 좀 조용하게 자기를 살펴봐야 그다음에 해결이 되는 겁니다.
얼마 전에 수술실 의사 간호사들이 환자 배 째놓고 인증 샷이라 그럽니까? 사진 찍고 생일이라고 킥킥거리고 나 오늘 처음 수술 대 잡았다. 뭐 바늘이 이렇다 그러고, 수술실에 환자 마취 시켜놨으니 누가 압니까? 수술실에 아무도 못 들어오는데. 의사 간호사들이 수술실에 환자 배 갈라놓고 사진 찍고 생일 사진 찍고 그러다가 전부 줄줄이 큰일 났었지요. 내 부모 수술하는데 나 수술하는데 의사 간호사들이 그러면, 아니 뭐 피곤하니까 한 5분 그럴 수 있지 그러겠습니까? 난리가 나겠습니까? 병원에서는 좀 조용해야 되지 않을까요? 환자 심장에 청진기를 갖다 댈 때는 옆에서 찍소리를 안해야 그게 좋은데 아니겠습니까? 수술을 할 때는 총력을 기울여 내 목숨 내 건강을 위해서 집중을 해 주면 좋지 않을까요? 이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신 주님이 신앙의 분위기 신앙의 근본을 말한 겁니다. 장사에 손님을 부를 때는 신나게 부르시고 여기 노래방 주인이 계신다면 우리 쪽에 오면 뭐 행복합니다. 광고도 하시고 그래도 마음속에 신앙으로는 주님 앞에 인간은 뭐며 내 인생은 뭔가. 이건 좀 숙연해야 그게 정상입니다. 적어도 어른들이면 알아들을 거고 여기에 10대 안팎도 안 믿는 가정에 주일오전 예배에 앉아 있는 우리 학생들은, 분위기가 이래 되면 5분도 못 앉아 있는데 1년 12달 오시고 앉아주니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교회가 맞지 않아서 좀 행복한 교회로 가겠다고 가시더라도 교회는 이런 데도 있더라. 알기는 아셔야 됩니다. 알고 가서 비교해 보시고 좋은 데로 선택하면 됩니다.
전국이 교회란 축제의 시간이다 해서, 더 기쁘게 더 즐겁게 더 행복하게 하느라고 정신이 있든 없든 우리는 그냥 출발 때부터 늘 이렇습니다. 주님 앞에는 우리는 죄송한 사람들이다 말씀 앞에는 참 나는 부족해서 고칠 게 많다. 그런 교회도 하나쯤 있어야 되겠고, 혹시 신앙생활을 하다가 종교란 그게 당연하지 않느냐 라는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오시고, 주일 오전에 교회 와서 그냥 뛰고 굴리고 행복해서 웃고 즐거워서 정신도 없는 것이 좋은 교회라면, 시내에 많고 전국에 많아서 별로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오늘 날씨도 이 좋은 날에 꾸무리하고 또 오늘 사회 보는 분은 거기에다 대고 장례식 장송곡을 하는지 더 그렇다 보니까, 제 마음은 이게 믿는 식은 식인데 앉아 계시는 모든 교인들은 더 기가 막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이거 서론이 아니라 이게 바로 설교입니다. 이게 신앙의 기본입니다. 이게 삐꺽 잘못되면 아무리 믿어 봐도 우리와는 믿어가는 길이 다릅니다. 학생들 지금부터 몇 년 전이라고요? 431년 전. 연도로 말하면 몇 년도라고요? 1592년. 431년 전에 있었던 날을 두고 오늘도 바다 건너 일본만 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근데 경북 안동 유 씨 집안에 류성룡이라는 사람이 일본을 욕하기 전에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까지 되었나. 라고 일기를 적은 게 있습니다. 그 자서전 일기를 혹시 세 글자인데 아시나요? 그런 책 혹시 이름 들어보셨습니까? 다 같이. 뭐 참 이런 거는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이런 거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어떡하다가 이 나라에 이런 참혹한 일이 생겼냐. 좀 아셔야 됩니다. 그 징비록을 적은 사람이 당시 총리입니다. 그 인간 하나 머리에 제정신 들어 있고 나머지는 다 흥청망청 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친구 하나 저 어느 구석지에 처박혀 있는 친구 하나를 여수시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신풍 앞바다에서 모든 걸 7년간 해결한 겁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84년 전에 또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랬지요? 그건 교회사입니다. 74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랬죠? 이 세 가지 역사의 큰 일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와 오늘 우리의 신앙을 이렇게 복되게 방향을 잡고, 우리는 그 뿌리 그 둥치 그 가지 끝에 우리는 열매처럼 맺혀서 꽃처럼 활짝 피고 좋은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오늘은 흥청망청 할 때인가. 고요히 조용히 한번 나를 돌아봐야 되는 때인가. 431년 전처럼 전국이 흥청망청할 때 고요히 준비한 그 결과가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었다면, 84년 전과 74년 전에 이 나라의 교회가 모두 흥청망청할 때 신풍의 한 사람이 고요히 준비한 그 고요한 한 사람의 준비로, 오늘 한국의 교회가 세계 최고의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다른 교회 그러든 말든 우리는 주님 앞에 주일날 마태복음 10장을 읽어보며 참 죄송하다. 우리의 마음과 분위기가 엄숙하다면 숙연하다면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면, 내년이든 10년 뒤든 그 어느 날 역사가 흘러가고 또다시 돌이킬 때, 2023년 5월의 마지막 주 전부 휴가로 흥청망청할 때, 비가 와서가 아니라 원래 이 시간에 고요히 주님 앞에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는 신풍교인 몇 명 때문에, 한국의 교회는 또다시 앞날이 열리게 됐다. 그리 될는지 안 될는지 아십니까? 될는지 안 될는지 모르면 해봐야지요. 로또 복권이 10만 분의 1, 100만 분의 1이라도 돈을 주고 사던데. 보험의 사고가 차 100번 운전하면 한 번 사고 납니까? 10년 20년에라도 한 번 사고 날까 봐 생돈을 매달 매년 넣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이렇게 크나 큰 사건이 신풍 앞바다에서 시작하고 신풍마을에서 시작하고 이렇게 천하가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역사가 대단한지 다 잘 모르실 듯합니다.
오늘도 주일날이라 5월의 마지막 이 좋은 때에 마태복음 10장 22절을 읽어봤습니다. 한번 따라하시지요. 내 이름을 인하여(내 이름을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 인하여(예수님의 이름 인하여). 이 말씀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이름 때문에. 예수님 이름 때문에 예수 이름을 딱 붙들고 정말로 걸어가 보려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 너 말고는 주변에서 다 싫어 할 거다는 말입니다. 우리 가정은 전체가 신앙이 똑같아서 그럴 일이 없다 그럴지 모르는데, 부부와 온 가족의 신앙이 정말 다 좋아도 그 안에서도 한 사람이 예수 이름 주님의 이름을 한 번 더 생각하면, 옆에서 너무 지나친 거 아니냐. 그러고 벌써 견제가 들어오고 벌써 불편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랬든 말았든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어주셨으니 정확무오 합니다. 이 말씀은 맞고 이 말씀이 문제가 있지 않냐 라고 생각을 하시면 자기생각이 틀렸다면 맞습니다. 10월마다 11월마다 대학 수학 능력시험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시험 치는 날. 문제가 나오면 문제가 나오면 이 문제는 맞는데 내가 이 4개 중에 어느 것이 답인지 모르고 있다 그러고 문제를 풀어야지. 문제를 딱 보니까 문제가 틀렸고 내가 맞다 여기는 답이 없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가끔 문제가 틀릴 수도 있지만은 학생으로서는 시험 문제지를 받아들면, 이 문제는 맞을 건데 내가 못 배웠거나 내가 잘못 알았거나 내가 지금 잊었거나 그런 거지. 나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문제가 틀린 거고 내가 틀린 게 아니라고 그러면 그 학생으로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이 나오면 말씀은 맞고 내가 틀렸다 그러고 말씀에 나를 맞춰야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고, 내속에 신앙의 병이 고쳐지고 내 신앙이 가라앉고 내 생애가 주저앉은 것이 벌떡 일어나고 건강하게 쫓아가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22절 “너희가” 믿는 우리를 말합니다. “내 이름을 인하여” 예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당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셨으면 그렇겠지 라고 맞추는 것이 이게 선생님 말을 잘 들어 희망 있게 배워가는 사람입니다. 뭔 그놈 소리 또 하나 그러지 마시고. 뭐 간단하게 그냥 주일날 오전 예배는 말하자면 좋든 말든 말하자면 이런 식이 게 이게 원래 식입니다.
교회는 몇 천 년 남반여반 이렇게 나눠앉았습니다. 그런 교회에 아마 제 알기로는 없지요. 또 교회의 찬송은 이번에 부른 이런 찬송식이 이게 교회의 찬송입니다. 우리 교회와 찬송의 풍이 다른 것은 신식이 아니고 좀 곤란한 겁니다. 원래 식은 이런 식이 맞는 식입니다. 근데 이런 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려면 그거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라는 말이 멀리서가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 교인들 마음속에서도 다 있지 않습니까? 꼭 이런 식이라야 되나? 저도 제 마음속에서도 한 번씩 그런 마음이 나옵니다. 찬송가 그때 그런 찬송이 이런 찬송 당장 틀어놓으면 온 교인이 좋아서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팍 열리고, 교회가 이렇게 좋아지면 좀 다닐 만하지 그런 줄 알지 않냐. 저는 겪어봤기 때문에 압니다. 어떤 걸 하면 그런 거 좋아하는지. 그러면 단번에 교인들의 눈이 떨어지고 그러면 설교도 더 잘 들을 건데. 목사 네가 10대 때 네가 신앙 없을 때 네가 제일 싫어하는 찬송만 불러대니 그 교인들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제 마음에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도 아무리 예수의 이름이 그래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좀 바꿀 때는 바꿔야 되지 않느냐. 제 마음에도 반대하는 마음이 있는데 요래 누르고 저래 누르며 한걸음 한 걸음 지금 그렇게 걸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 공회도 다 그렇습니다. 우리 말고는 지금 공회 교회들도 우리 식으로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전국에 200개 총 공회도 신풍 교회 식으로 이렇게 유지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하느냐 마태복음 10장 22절 예수 이름으로 정말 붙들고 걸어가려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그건 그렇고 그러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 구원이 다른 말로 말하면 병이 낫는 것이고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는 것이고 “구원을 받으리라” 천국 가는 것이고 신앙의 성공을 하는 것이고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학생으로 말하면 놀 때 놀고 공부할 때 공부해야 되지 책만 붙들고 앉아가지고 되겠냐? 그러는 바람에 흥청망청하는데 내 아들이 고3 끝까지 공부만 하다가 원하는 학교의 합격증 덜컥 합격했으면 그날 웃을 겁니다. 합격증 받았으니까 그날부터는 적당하게 놀아도 될 겁니다. 그날 전까지는 조심하는 겁니다.
오늘 오전에 우리가 사는 지금 오늘 환경 우리 환경을 돌아봅니다. 현재 우리 환경은 이것저것 다 봐도 마지막은 마지막입니다. 세상도 마지막은 마지막 같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세상의 마지막이라니요? 이러다가 우주가 어느 날 폭발하는 거 아닐까? 지금 어느 날 지구가 그날로 끝장나는 것이 아닐까? 과학과 상식이 있는 사람은 바짝 졸아서 삽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이렇게 얼어대면 온 지구가 몸살을 하고, 몸살을 하다가 어느 날 다 끝나는 거 아니냐고 전부 그냥 난립니다. 모르는 사람은 죄송하지만 무식해서 배짱 있는 것이고 아는 사람들은 지구 걱정하느라고 벌벌 떨고 앉았습니다. 불신자도 그렇습니다. 세상을 만든 주님은 이 세상 얼마 가지 않는다고 시한을 딱 정해 놓았습니다. 마지막 때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을 것이다 했는데 그거 다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세상이 끝나도 정상입니다. 알고는 계셔야 됩니다. 이런 세상의 마지막을 말세라 그럽니다. 말세? 그런 흉측하고 끔찍한 말을 좋은 말을 하지. 세상은 영원하리라 세상은 행복하리라 세상은 늘 기쁘리라. 그 말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오늘 세상은 말세입니다. 그런 말로 협박하는 거 좀 그렇지 않냐. 1592년 임진왜란 일어나기 하루 전날까지, 일본에서 쳐들어온다고? 이런 것들이 역적이라 이랬습니다. 선조 대왕이 하늘의 도움을 받아 온 조선민족을 이렇게 행복하게 잘 다스리는데 일본에서 쳐들어와? 택도 없는 소리. 임진왜란 일어나는 그날까지 떠들었습니다. 그날까지 떠들다가 부산이 싹 쓸리고 나니까 임금부터 버선발로 도망갔지 온 나라는 완전히 엉망이 됐지. 1년 전부터 숙연하고 엄숙하게 땀 흘려 또박 또박 그날을 준비한 신풍 바다만 고요했습니다. 그 놈들 오기만 오면 여기다 대고 다 집어넣는다고.
신풍교인들 신풍 교회 앞에 첫마디가 신풍입니다. 안 믿어도 신풍에 사는 사람은 이거는 상식적으로 아셔야 됩니다. 그 신풍을 조금 넓히면 뭐라고 그러는지 혹시 아시나요? 그걸 여수라 그럽니다. 여수 저 돌산 끝 말고 여수의 제일 구석의 제일 요지에 틀어박힌 여수의 요지가 여기입니다. 전부가 흥청망청할 때 임금과 전국이 흥청망청 부산 경남이 흥청망청하다가 임진왜란에 다 쓸려 나갈 때, 신풍 이 바다는 고요하게 이대로 가다가는 그리 오래 가지 않겠다. 준비하자. 그리고 여기에서 또박또박 준비하고 그리고 밀려왔을 때 여기에서 7년을 다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제일 마지막 마무리한 데가 신풍바다입니다. 노량으로 알고 계시지요? 신풍 구 예배당 신풍 3층에 옥상에서 보면 앞에 보이는 바다가 바로 노량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광양만이라면 전국에서 알지요. 광양에서 보면 광양만입니다. 신풍에서 보면 이게 신풍바다입니다. 성경에 갈릴리 바다도 갈릴리 마을에서 보면 갈릴리 바다고 게네사렛이라는 동네에서 보면 게네사렛 바다고 그래서 갈릴리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그 갈릴리 바다에 붙어 있는 동네는 전부 자기 동네 이름으로 말하다 보니까 그런 겁니다. 광양만 광양 바다 노량 바다가 바로 신풍 바다입니다. 신풍 사는 사람이야 신풍바다라 그러지 뭐 하려고 남의 동네 이름을 불러줄 겁니까? 신풍 사람은 신풍바다입니다.
주님이 예수 이름을 정말로 붙들고 바로 믿어보려고 하면 모든 사람이 미워할 거다. 미워하면 하루 견디는 사람, 3일 견디는 사람. 백두산 동굴에서 호랑이하고 곰하고 마늘 먹고 버티다가 며칠 버텼다고 그러지요? 초등학교 교사는 아실런가요? 최지연 선생님 혹시 누구 아십니까? 마늘을 100일을 먹었대요? 마늘만 100일을 먹고 단군 할아버지의 사모님이 됐답니다. 모르는 불신자들은 그렇게 이제 족보를 만드는 거죠. 우리가 곰 자손이랍니다. 불신자는 그렇게 적고, 불신자가 봐도 호랑이처럼 날랜 거는 마늘 먹다가 며칠 만에 튀 도망가 버렸습니다. 못 앉아. 곰이니까 미련하게 100일을 버텼지. 곰이 100일 마늘 먹고 버티고 단군 할아비에 사모님이 돼서 왕비가 됐으니 왕비 될 것 같으면 한 100일 먹고 한번 견딜만하지 않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끝까지 버티는 자는 끝까지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는데, 하루는 예수 이름을 붙들지만은 어떻게 이틀을 붙들고 가냐. 주일학교 6년은 예수 이름으로 주일학교를 다녀도, 중학생이 됐는데 아직까지 예수 이름 배우려고 교회를 다니냐. 10대 때는 부모한테 밥 얻어먹느라고 교회를 다니지 내가 스무 살인데 아직도 교회를 다녀? 그런데 성경은 10대 20대가 아니라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이랬습니다. 이 나중까지 견디는 자를 다른 성경에 보면 끝까지라고 이렇게 딱 적어주셨습니다. 끝까지 주님이 됐다 할 때까지. 신앙은 끝까지입니다. 열흘 하다 말거 아니고 장사는 석 달 3년 하다가 안 되면 업종을 바꿔야 되겠지요. 교회도 교회 업종 하다가 교단을 바꾸고 종교를 바꾸고 그럴까요?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아야지. 예수 이름으로 끝까지 견디는 자는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지난날 우리를 좀 돌아봐 보십시다.
첫 은혜 받고 며칠간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까? 보통 오래 가는 사람이 3년 간다고 그럽니다. 결혼의 첫사랑은 옛날에 석 달 간다고 그랬습니다. 석 달. 요즘은 3일도 잘 안 갈걸요? 요즘은 결혼식장 들어올 때 손잡고 나가고 나갈 때 도장 찍으러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고속이다 보니까 뭐든지 고속이다 보니까 이렇게 발전을 한답니다. 이게 발전입니까 이게 붕괴입니까. 여권신장입니까? 아니면 여권 해체입니까? 자기 좋아하는 대로 가면 됩니다. 주님은 2천 년 전 이 말씀을 기록해주며 나중까지 견디거라. 끝까지 견디거라. 동지가 떨어지고 전우가 떨어지고 친구가 떨어지고 가족까지 주저앉고, 나중에 부모 처자식까지 붙들고 늘어져서 이 길이 너무 힘드니 이제 그만 업종을 바꿉시다. 예수 이름을 좀 어떻게 해보시지요라고 해도, 나는 독립으로 나 혼자라도 주님 모시고 무언의 용사로 끝까지 간다. 이게 우리 교회 말하자면 구호와도 같습니다. 오늘은 세상도 이거 더 이상 못 견디겠는데 다 그리 보고 있습니다. 이 앞에까지 발전한 것은 그냥 발전인데 현재에서 발전 하나 더하면, 그야말로 인류와 세상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끔찍한 날이 된다고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AI의 발전이 지금 그 단계로 와버렸습니다. 인간이 마음먹으면 실험실에서 마구 인류를 새 종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안에도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하루 전날까지는 행복했는데 그날 갑자기 모든 것이 돌변하듯이 그리 될 수 있겠구나. 세상도 벼랑 끝에 섰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죽으면 자기는 그 순간이 마지막입니다. 인간의 죽음 개인의 마지막입니다. 근데 일반적으로 좋게 말하면 세상이 시대가 변혁 좋게 자꾸 바뀌어서, 구시대는 물러가고 새 시대가 열렸다 변혁, 변혁 그러고 있습니다. 이걸로 보나 저걸로 보나 그렇게 과거처럼 조용하게 그냥 가지는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환경입니다. 첫째는 내가 개인적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급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급변하는 시대가 어느 순간 한 번 더 좋게 바뀐다는 게 스스로 세상을 끝장낼 수가 있는 때입니다. 그러든 말든 주님은 정한 시간이 되면 세상 정리하실 겁니다. 이런 종말적인 마지막적인 끝장 날 일이 올 수 있다. 라는 느낌이 있으면 신풍 사람들은 431년 전처럼 84년 전처럼 74년 전처럼, 다른 사람들은 뭐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 할 때 신풍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그리고 신풍의 준비 때문에 400년 500년 전에도 새로운 기회는 열렸고, 84년 74년 전에도 신풍의 한 분으로 한국의 교회와 오늘의 우리의 좋은 날은 새로 열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다가 세상도 시대도 우리 가정도 아니면 내가, 나라도 어떻게 손 쓸 수 없게 끝장 날 수 있으니 조심하자라고 생각하면, 그런 나 하나로 그 나 하나로 훗날 신풍의 그분 때문에 이런 세상이 열릴 수도 있었구나. 그게 바로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습니다.
74년 전 84년 전 1592년 그때도 훗날은 알았지만 그날까지 그 사람이 그런 사람 될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심지어 본인도 몰랐습니다. 본인도 그리 될 줄 몰랐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근데 세상은 남들이 몰랐는데 진짜 모를 수가 있지만은 주님은 하나님이시라. 마태복음 10장 22절로 조심하고 살피는 사람은 주님이 책임지고 이 사람을 보라 그러실 겁니다. 그러라고 적어주신 말씀입니다. 세상이 예사롭지 않은 겁니다. 또 자기도 자기를 살펴보면 자기 가정도 어느 날 갑자기 뭐 초상 치고 다 그래 봤지 않습니까? 아니 뭐 아버지가 죽었지 내가 죽었냐? 근데 아버지는 갑자기 죽을 수 있고 난 영생불멸입니까? 보험 넣어 놨으니까? 세상도 시대도 나도 어찌 될지 모릅니다. 내게 그런 현실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면 좋은 겁니다. 뭘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은 지난번에 네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첫 번째는 말씀 생활이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말씀 생활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성경을 다 알려고 그러지 말고 성경 말씀 중에 내 마음에 와 닿는 거 하나씩은 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가는 게 예수 이름으로 인하여 끝까지 견디는 자입니다.
주님 책임집니다. 예수 이름 두 번째는 뭐였던가요? 주 뜻 생활이었습니다. 주 뜻. 말씀생활 주 뜻 생활, 세 번째는 주와 동행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세상에 사는데 천국생활입니다. 지금 천국 생활 하고 계십니까? 지금 내 마음만은 정말 천국에 온 것과 같다 천국만큼은 되지 않아도 정말 천국 비슷하다 자신 있습니까? 이게 주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 말씀생활. 말씀이 이러니 이 말씀 붙들고 나는 끝까지 간다. 두 번째 말씀 속에 주였던 주님의 뜻이 이러니 이 뜻은 나는 끝까지 붙들고 간다. 이게 예수 이름으로 끝까지 견디는 자입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주님과 내 마음 붙들고 동행한다. 주와 동행. 그 결과는 천국생활입니다. 천국 생활.
우리 교인들은 다 아시죠? 우리 교회 1급 장애자 사택에 계십니다. 제가 23년째 같이 살고 있습니다. 1급 장애자 23년째 살면서 하는 말입니다. 건강할 때 15년 살았고 1급 장애자 지금 23년째 삽니다. 지금이 옛날보다 10배 100배 더 행복합니다. 교인들 앞에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거짓말 탐지기를 붙여도 자신이 있습니다. 뭣 때문에? 말씀을 알고 보니 그런 겁니다. 말씀 속에 1급 장애자 부부도 살아봐라 그 뜻이 파악이 되니까 그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주님과 가까워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건강할 때 15년보다는 그 이후에 23년이 더 천국생활입니다. 그렇게 겪어보고 안내를 하는 겁니다. 남한테만 좋은 말하고 자기는 뒤로 쏙 빠지는 게 아니라. 이게 예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게 나하고 뭔 상관이 있습니까? 이 말씀과 말씀 속에 주의 뜻과 주님을 마음속에 동행하며 천국생활이 죽어서 가는 거야 믿는 사람은 가지만은, 살아생전에 자기 생활을 천국생활로 바꿔버린다면 이 이상 좋을 게 있겠습니까? 그 생활 함께 하자고 간단하게 부탁하는 겁니다. 오늘 설교는 세상역사를 말씀드렸습니다. 431년 전 전국이 흥청망청할 때 신풍 앞바다에 몇 명만 고요하게 혹시 모를 그날을 준비했고, 그리고 역사는 신풍 바다를 말합니다. 84년 전과 74년 전에 한국의 교회가 아무도 모르고 준비 안 할 때 이곳은 준비했고, 두 번을 연거푸 승리하고 한국 교회의 성지 1번지가 신풍이 되었습니다. 신풍 분들만 모르고 계시더라고. 신풍의 낯선 동네 처음 와가지고 신풍교인들을 가르쳤습니다. 뭘 가르쳤습니까? 신풍동네 1939년 1940년 신풍의 1948년 1950년 여러분의 역사인데 여러분의 역사인데 왜 모르고 있습니까? 그러니 오늘도 이곳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또 던져버리겠지. 신풍밖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돌기는 돌아도 신풍 안에 이 보배가 있는 줄 모르면 신풍교인은 교회 이름 앞에 신풍 빼버려야 됩니다. 따라 합시다. 신풍교회(신풍교회), 준비신앙(준비신앙).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지식적으로 옳아야 되고 이성 비판으로 옳아야 되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속에 느낌이 와서 아 참 맞다. 맞는데 몰랐을까. 내일의 준비는 오늘 내가 한다. 각자 그러십시다.
(기도)
생활 속에 기억해야 되는 말씀. 주님이 주신 말씀이니 그 말씀 붙들고 사는 것이 예수 이름으로 사는 것이며, 말씀 속에 주의 뜻이 있으니 주의 뜻을 생각하며, 주와 동행함으로 오늘 세상을 사나 이미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활이 천국의 생활을 앞당겨 누리며 감사할 수 있도록, 예수 잃은 말씀의 생활 세상이 흔들고 안팎에서 어렵게 반대를 해도 끝까지 견디며 지켜나가라 하신 말씀. 오늘 오전 신풍 이 지역 이 이름을 우리교회 이름으로 주신 이런 세상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까지 기억함으로, 오전예배 저희들 어려도 또 병원 요양 군무에 있는 아들들까지도, 늘 주님 원하시는 말씀 마음속에 붙들고 주로 이어지는 한 주간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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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5.28주전 마10:22 인내의 구원 총공신풍
■ 시대의 어려움
1. 오늘의 우리 환경
① 말세 : (세상)의 마지막 말세는 말세라, 세상도
② 죽음 : (개인)의 마지막 자기의 마지막 기회, 죽음
③ 변혁 : (시대)의 마지막 구한말 일제말 천지개벽 가속
2. 신앙의 어려움 비> 숲> 동물> 인간 = 인격> 사상> 종교> 진리
① 세상 : 기술 (발달), 인간 (퇴화) 인간 노력이 인간 노력을 축소
② 종교 : (빛)을 찾는 노력, (멸종) 육체뿐 아니라 인격 생각까지
③ 진리 : (박해) 역사, (방종) 말세 당겨만 오다, 갑자기 풀어버림
■ 인내의 구원
1. 예수의 이름
① 예수 : 구원
- 사죄 : (말씀) 생활 - 칭의 : (주뜻) 생활
- 화친 : (주와) 동행 - 소망 : (천국) 생활
② 이름 : 역사
- 중생 : 처음 믿는 (순간)
- 성화 : 믿은 이후 (평생)
2. 주변의 미움
① 주변
- 자기 (내면)
- 자기 (가족)
- 주변 (사회)
- 세상 (문화)
② 미움
- (다르)니
- (나으)니
- (빛)이니
- (어려움)
3. 나중까지
① 끝까지
- 성공은 (최종)이 결정
- 중간의 실패는 (전패)
- 끝을 (계산)할 것
② 매일을
- 사다리로 보인 (천국)
- 하루를 (이어) 갈 것
- (경력)을 만들어 갈 것
③ 지금을
- 내일 일은 (내일) 염려
- 내일은 (오늘)처럼
- 오늘에 (전부)를
④ 힘들 때
- 상대도 (힘들)고
- 고비가 (성패)
- 성패가 (승패)
4. 견디는 자
① 인내
- (이어) 가는 자 출25장의 ‘실’
- 인내가 (비결) 우리가 약하니 충성만 요구
- (감당) 할 시험뿐 주권자를 믿고 따를 뿐
② 목적 달성
- (구원)을 얻으리라
- 주님만 아는 (계획)
- 소망 중 (순종)만
* 참고 성구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눅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