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5.26 마10:6 말씀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만 잃어버린 양, 하나씩 실행으로 신앙의 권능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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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3.5.26 마10:6 말씀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만 잃어버린 양, 하나씩 실행으로 신앙의 권능이 역사

서기 0 49 2023.05.2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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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금밤

제목 : 말씀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만 잃어버린 양, 하나씩 실행으로 신앙의 권능이 역사

찬송 : 191장(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186장(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본문 : 마태복음 10장 6절 -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신앙의 힘을 더하여 주시려고, 주님의 사활의 대속에 그 고난 그 살과 피를 우리의 양식과 음료로 주셔서, 얼마든지 신앙의 힘을 삼고 자라가는 생명이 되도록 주의고난 주의 대속 마음속에 새기며, 내 생애와 내 생활과 비교하며 주님이 은혜 주실 때 더욱 힘쓰고 애쓰는 저들이 되어, 포기하지 아니하고 중단하지 아니하고, 포기하거나 중단할 만큼 힘을 잃을 때마다 고난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므로, 또 주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부탁의 말씀 기억하여, 이 좋은 세상에 한 번 더 또 한 시간 더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작은 충성이어 진압 태산으로 큰 충성이 되기까지 나아가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하시도록 5일 예배를 허락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시간도 이미 출산하고 조심하는 우리 교인들 또 출산 직후 조심하는 우리 교인들, 또 가까이 닥친 출산을 앞에 두고 기도하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우리 교인들. 가정들 가족들 우리 공회 모든 교인들 시대를 맞서며 결혼과 출산과 자기 현실에 충성하며, 이 말씀으로 살기가 어려울 때 이 고비 이때에 더욱 힘을 씀으로 주님은 지켜보며 더하여 주는 은혜를 받도록 이 시간도 함께 해 주옵소서. 특별히 군무에 있는 아들들 지켜주시고 수술과 요양 중인 종들에게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세상은 신앙을 삼키는 맹수와 같다. 본능적으로 세상의 환경은 그러합니다. 뱀이 간사 간교로 속여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뱀의 지혜를 알지 못하면 눈 뜨고 당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셔야 되고 읽으시면서 이게 뭔 말인지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또 모르면 배워야 됩니다. 읽고 생각하고 배워도 모르면 이럴 때는 이게 뭡니까 알려달라고 신앙의 양심으로 간곡하게 기도하면 됩니다. 감당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못 풀 문제는 주지 않는다. 그건 모든 시험의 상식이지요. 풀만한 실력, 기회, 수준을 봐가면서 문제를 냅니다. 만약에 닥친 현실을 아무리 살펴도 내가 감당을 못하겠다 싶을 때는, 시험문제는 문제인데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내가 준비하고 내가 노력하면 되는 것 이것만 내게 시험입니다. 악령은 우리를 속여 우리 손으로 죄를 짓도록 유도하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제일 많습니다. 모르면 당하기 때문에 어쨌든지 알아야 됩니다. 목사만큼 알아야 되느냐 교인마다 수준마다 다 다르니까 평소 성경 읽으시고, 또 이게 뭔 말씀인고? 생각해 보시고 또 배워보시고, 그리고 내 마음에 열리고 닫는 것 하나를 붙들고 실행하면 그 다음부터는 다 풀려버립니다. 그리고 1절에 구원의 주님이 12 제자를 불러, 말씀과 다르면 생애고 생활이고 생각이고 다 더러워집니다. 말씀으로 자기 마음과 행위를 고쳐버리면 저절로 깨끗해지고 깨끗해졌다는 말은 귀신은 벌써 도망갔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말씀과 달라서 고장이 생긴 것은 말씀으로 살면 고쳐져 버립니다. 해결이 됩니다. 둘. 말씀으로 살면 되는데 살지 않고 주저앉은 것은 약하고 힘이 없는 건데, 이건 힘이 없는 것은 먹으면 되고 먹었는데도 힘이 없으면 그다음 움직이면 됩니다. 고장도 없는데 병도 없는데 못 움직이고 있다면 안 먹었던지 1번, 먹었는데도 못 움직이고 있다면 먹기는 먹고 안 움직이면 몸의 근육이 풀어져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겁니다. 신앙의 양식을 먹었는가? 신앙의 양식을 먹었는가 말씀을 입고 말씀으로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양식을 먹는 겁니다.

올해 1월 첫 주일 요절 요한복음 6장 55절입니다. 요절 제일 위에입니다. 같이 외워 볼까요. 시작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나님이 날 구원하기 위하여 그 몸을 다 버렸는데 그 피를 다 쏟으셨는데 이게 신앙의 양식입니다. 근데 내가 이래서야 되겠느냐. 첫째는 말씀을 배우고 말씀으로 생각해 보면 신앙의 양식,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보면 그게 신앙의 양식, 세 번째는 자기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여 보면 그러면 그게 신앙의 양식이 됩니다. 이걸 교리적으로는 따라합니다. 피와 진리와 성령(피와 진리와 성령). 피는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진리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신앙의 양심이라 보면 되어 집니다. 시골에서 애써 돈 벌어 등록금 생활비 올려놨는데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녀가 공부할 맛이 안 난다. 공부할 힘이 안 난다. 공부할 용기가 안 난다. 5월에 나른한데 모두들 놀러 가는데 나 혼자 도서관을 가야 되나. 학생이 공부할 힘이 나지 않으면 이것도 지금 약한 겁니다. 나 공부하라고 이 돈을 버느라고 부모는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어떻게 고생했을까? 이거 생각하면 그냥 못 앉아 있습니다. 부모가 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수고를 했느냐 자꾸 연구해 보고, 연구해 보려면 시장 바닥에 앉아서 물건을 팔아보는 분들은 아이들 학교를 한 이틀 결석시키고, 시장 바닥에 같이 앉히든지 길 건너편에서 하루만 지켜보게 하면 됩니다. 그 파 한 다발 그 생선 하나 팔기 위해서 지나가는 사람 쳐다보고 내 거 사달라고, 애절한 그 눈동자로 추운데 비 오는데 놀기 좋은 날 좋은 날, 이런 날 저런 날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 쳐다보는 그 부모의 눈망울을 갖다가 한 이틀 쳐다보면, 이 돈을 벌기 위해 부모가 어떤 수고를 했는지 알면 느끼면, 그러면 이제 그 돈을 쓰고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할 맛이 안 난다 공부할 힘이 안 난다 그 소리는 안 하는 겁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와서 돈 벌면 됩니다.

부모가 그 돈 때문에 얼마나 애가 탔는지 땀을 흘렸는지 얼마나 억울했는지 하나. 또 부모가 노름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부모가 뭘 보여 줄 수가 없다면, 공부할 때 공부를 한 사람의 선배의 10년 뒤와 공부 안하고 슬금슬금 그러다가 대충 공부하다가 실패하고 나고 한 10년 후에 선배의 모습. 20살짜리 대학교 1학년이면 30살 35살의 선배들 중에 공부 열심히 해서 자리 잡은 사람과, 뺀돌뺀돌 그러다가 낙오한 사람 현장에 데리고 가서 공부한 저 모습 봐라 논 저 모습 봐라. 이렇게 구경을 시켜서 공부할 때 공부 안하고 얼마나 당하는지 얼마나 억울한지를 체험을 시키고, 공부할 때 공부해서 얼마나 덕 본 것을 구경을 시키면, 그러면 그거 뭐 그냥 저절로 사람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지금 이 돈을 벌기 위해 부모가 어떤 고생을 하느냐 하나, 지금 공부할 걸 안하면 훗날 어떻게 되느냐 두 가지 구경조차 시킬 수가 없으면, 매를 들고 죽도록 패버리면 됩니다. 맞아죽기 싫으면 공부하든지. 이건 지금 경찰이 개입을 해서 이 나라의 양심을 앞세운 사람들이 법을 바꿔가지고 그거는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마는, 그 양심을 말하는 그 인간들은 그들은 매로 가지고 타작을 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지 놈들은 그래놓고 남들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그럽니다. 비겁한 것들 아주 못된 것들. 공부할 맛이 안 납니다. 힘이 안 납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그럴 때 약을 몇 가지 얘기했나요? 다솔이. 그 약 세 가지 얘기했습니다. 이 돈 벌기 위해서 지금 고생을 얼마나 하느냐. 공부할 때 안 하면 훗날 어떻게 해야 되느냐 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카메라 없는데 데리고 가가지고 그냥 죽도록 패버려서, 맞아 죽니 차라리 공부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그러면 공부 다 잘합니다. 아마 공부 다 잘하게 돼 있습니다. 요즘 말로만 하면 이제 평양 끌고 가다가 떠나버리면 아마 사람 될 겁니다. 거기는 아직도 그런다니까.

신앙의 양식이란 주님 날 위해서 어떤 고생을 하셨는데 그냥 자기 손바닥에 한번 핀 하나 한번 꼽아봐 보십시오. 안 죽으니까. 핀 하나 가지고 감이 안 잡히면 못 하나 박아보십시오. 그냥. 근데 왜 자기 손에 못 박을 겁니까? 병원에 응급실에 가면 뭐 구경 다하는데. 이전에는 병원 응급실 누구든지 들어가면 다 개방을 했습니다. 요즘은 술 먹고 일 벌이는 사람들 때문에 응급실을 다 막고 있어서, 이제 구경하는 것도 금지가 되어 불행한 세대는 되었습니다. 응급실 중환자실 이전에는 다 들어갔습니다. 주사 바늘 꼽고 누워 있는 거 딱 봐보면 죄 안 짓고 여기 안 오는 것이 낫겠다. 이거 생각이 딱 들어오지 간 큰 소리 절대 못합니다. 이게 주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신앙의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주님 날 구원하시고 신앙으로 살려고 이 기회 주시는데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부모가 나 공부하라고 돈 벌 때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이걸 느끼면 본능적으로 그거는 움직이게 되듯이 주님 날 위하여 십자가 고난이 뭘까? 자꾸 연구해보면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내게 이제 그런 기회가 없다든지 그럴 수 없으면 공부 안 한 사람 미래는 어찌 되는지 봐가지고, 글 몰라서 법 몰라서 세상 세상 다 속고 사는 사람들 실제로 겪어봐보면, 공짜로 시켜주는 돈 가지고 그냥 그때 공부하지 몰라 가지고 이렇게 눈 뜨고 당해서는 안 되겠다. 이제 결심이 생기면 공부하게 되어 있다 그랬지요? 성경의 말씀 올라가서 어떤 바보가 되고 어떤 손해를 보는지, 말씀 하나를 안 것과 모르는 차이를 그것도 연구해보고 좀 살펴보면 자료는 지금은 많습니다. 생생한 자료 많습니다.

돈 벌기 위한 고생을 느끼는 방법 공부 안 해서 훗날 10년, 20년, 30년 뒤에 어찌 되는지를 체험 학습하는 방법,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공부 하루 안하면 따끔한 맛을 들여서 안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 이렇게 몇 가지가 있는 것처럼 신앙으로 열심히 힘을 내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어 못하겠습니다. 이 소리 저 소리 할 때 주님 날 위해서 얼마나 고난당하셨느냐 하나. 말씀으로 살펴 자꾸 읽어보고 자꾸 연구해 보면 이거이래서는 안 되겠다. 두 번째 신앙의 힘입니다. 세 번째는 신앙 양심의 힘이라는 말은 내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여 자꾸 양심을 써보면, 그러면 신앙의 힘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어 있고, 이 세 가지 노력을 해도 되지 않으면 주님이 힘을 주셔서라도 해결을 하십니다. 학생의 경우와 신앙의 힘 네 번째입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학생은 무조건 그만 공부 열심히 해보면 다 해결이 됩니다. 학생이 공부해보는 것과 공부 안하고 다른 짓 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알듯이, 신앙이라는 것은 믿어지든 안 믿어지든 말씀으로 한 번 실행해보고 두 번 실행해보고 실행해 보면 그거는 실행은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나무 백 그루 심어보고 사과 열리라고 해보고 1년, 3년, 4년, 10년 감나무 심어놓고 사과 열리도록 기다려 보면 감나무 심고는 사과가 안 열리는구나. 그거 알게 됩니다. 심어보지도 않는 것들이 입으로만 떠들고 앉았지. 신앙의 세계는 1계명 지켜보고 4계명 지켜보고 5계명 지켜보고 지켜보면 됩니다. 근데 빠르게 효과를 알고 싶으면 1계명 어겨보고 2계명 어겨보고 4계명 어겨보고 5계명 어겨보면 결과는 더 빠릅니다. 굉장히 빠릅니다. 절에 가서 부지런히 절하고 한 번 1년 버텨봐 보십시오. 그 1년 가는지 안 가는지. 주일을 잘 지켜 복 받으려고 1년, 2년, 3년 이렇게 실행하는 것보다 주일날 안 갈 데만 한 달, 두 달, 석 달 가면서 대충 집에 놀지 말고 주일날 술집만 계속 가보고 노름만 계속 해봐 보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매를 들고 일찍 돌려 세웁니다. 큰 죄를 지어보면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지 안 살아야 되는지 빨리 결판 나버립니다.

세상 공부의 네 가지 신앙의 힘을 얻는 방법 네 가지를 설명 드렸습니다. 네 가지 다 기억하시나요? 주님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부모님 이 돈 버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거 하나면 다 해결됩니다. 두 번째는요? 나처럼 학교 다닐 때 20년 왔다 갔다 공부 안하고 40이 된 사람, 50이 되는 사람 3명, 4명, 5명 연구를 해보고 남들 다 놀 때 열심히, 열심히 공부해서 10년 20년 30년 뒤에 성공한 사람들을 비교해서 두 인생을 딱 보면, 공부할 때 해야 되겠구나 그리 됩니다. 두 가지입니다. 세 번째는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여 신앙의 양심에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주님이 빛을 주셔서라도 인도해 주십니다. 마지막 네 번째 안 할 짓을 해보면 빨라집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왕 할 걸 해버리는 것이 낫고 아주 강퍅한 사람은 죄 실컷 지어라고 그냥 던져버리는 것이 자기도 낫고 교회도 낫기 때문에, 한 십년 부탁, 부탁, 부탁 100년을 부탁하니까 갈수록 더 하면 뭐 그냥 좋은 대로 사시라고 그냥, 그냥 웃어버립니다. 그래야 마음껏 죄를 짓지. 큰 죄를 지어봐야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빨리 알지. 이게 잔인한 건지 이게 큰 사랑인지 그 길밖에 없을 때 마지막에 이제 특효약을 쓰는 겁니다. 비법을. 좋기는 실행해보면 압니다. 무슨 실행을 해보느냐. 여기 열두제자에게 5절에 이방인의 길로는 가지 말아라. 하나님이 주지 않은 길 하나님이 구원밖에 던져버린 것은 아예 그거는 돌아보지를 말아라. 두 번째 신앙의 길과 세상길을 적당하게 섞어 놓은 거 아예 그거 상관하지 말아라. 6절입니다. “차라리 이스라엘 집을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저 사람은 교회에 앉아야 되는데 저 사람은 이 시간에 틀림없이 교회에 앉아야 되는데 입원을 했는가. 다른 사람을 살피느라고 할 수 없이 묶였는가. 피치 못한 일인가. 반드시 이래야 되는데 저 사람은 지금 뻔히 지금 저거는 안 되는 길인데 그게 잃은 양입니다. 잃어버린 양. 금요일 저녁 7시에 온 교인들 다 있는데 제가 시내 술집에 가가지고 술 한 잔 취해서 시시덕거리고 앉았으면 목사도 잃은 양입니다. 목사도 잃은 양입니다. 그것도 잃은 양이고 내가 내 속을 들여다 볼 때 내가 이 정도로는 믿어야 되는데, 내가 적어도 이 정도는 믿어야 되는데 그런데 못 그러면 그 부분이 바로 잃어버린 양입니다. 여기다 대고 전력하거라. 여기다 대고 총력을 기울이거라.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다 함께 모여서 10년 전에 회개하지 못한 걸 갖다가 그때의 회개를 못 했던 고?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우리 새 출발하자. 그거는 이방인의 길입니다. 아예 하나님이 구원 범위 밖에 던져버린 겁니다. 10년 전으로 가서 새로 시작은 못 합니다. 잃어버린 그거는 이방인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아예 손 못 대게 던져버린 것은 포기해라. 이거는 방법으로 해도 되는 것 같고 또 하면 곤란한 애매한 것 같은데 그런 어중간한 방법 손대지 말아라. 잃은 양에게로 가라. 잃어버린 양. 신풍교회 잃어버린 양은 누군가요? 멀리 갈 것 없이 한 20년 기준으로만 봐도 여기 아마 교인 한 500명은 앉아야 될 겁니다. 그럼 뭐 한 200~300명이 지금 잃어버린 양이겠지. 그분들도 잃어버린 양은 양일 겁니다. 근데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모르고 왔다가 여기 내 생각한데 하고는 구조가 틀리네. 하고 가시는 분들은 잃은 양이 아닙니다. 그건 사마리아 고을에 들어갔던지 아니면 이방인의 길입니다. 신풍교회 가면 저 시청에 돈 받아주는 데는 1등이라더라. 그것 때문에 오신 분들은 이방인의 길에 간 게 된 분들입니다. 놔두고 친절하긴 하지만 그런 거는 놔두고. 신풍교회 오면 박수 치고 무대에서 그냥 밤 노래를 가르쳐 주는 줄 알았는데 재미도 없네. 이거는 사마리아인의 고을 쯤 되는 겁니다. 이런 거는 치우고. 이렇게 믿는 것이 옳기는 틀림없이 옳다. 옳긴 옳은데 힘이 들어 그렇다 이래서 그렇다 저래서 그렇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양입니다. 미래적으로는. 그런 교인인 줄 생각하고 아무나 전도를 하고 지나간 분들 중에서는 이 길이 뭔지 아는 분들은 잃은 양입니다. 기도를 하던 뭔 노력을 하든. 근데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을 내가 들여다볼 때 하나님이 아예 구원할 돌이킬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제쳐놓고, 그런 게 있습니다. 이건 하면 하겠는데 방법상 문제가 된다. 그것도 일단 놔두고 내가 나를 들여다볼 때 이건 내가 틀림없이 해야 되는 것, 이것만은 꼭 해야 되는 것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복음이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서 가면서부터 전파하여 말하기를 천국이 가까웠다. 예수님으로 깨끗하게 예수님으로 병을 고치고 세 번째 예수님으로 힘을 내어 다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이 기회라는 것은, 지금 할 일은 지금 해야지 지금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또 그거 헛일이다. 이게 7절에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여기에 천국은 세상 전체가 끝나는 천국에다대고 매 순간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줬는데 그 기회를 놓치는 걸 말합니다.

8절입니다. 병든 자를 고쳐라. 한 번 더 나옵니다. 병든 자를 고쳐라. 너 스스로 말씀으로 너 속을 좀 들여다봐라. 말씀을 잘못 깨달아 고장 난 것, 말씀과 틀려서 고장 난 게 있는가. 들여다봐라. 얼른 고치는 게 낫지 병을 붙들고 오래 가면 병이 불치병으로 바뀌어 난치병으로 바뀝니다. 난치병을 좀 더 놔두면 무슨 병이 되지요? 불치병 됩니다. 불치병이란 말은 그 병 때문에 죽어야 됩니다. 죽을 때쯤 돼가지고는 안 죽겠다. 그러지 말고 불치병을 만들지를 말지. 불치병은요? 난치병을 만들지 말지. 난치병은요? 고칠 수 있을 때 고치지. 그냥 세상 얘기로 하면 공부할 때 하지. 아이 공부할 때 하지. 나이 좋지 학교 공짜지. 온 사회와 온 가정이 총력을 기울여 학교 가서 공부한다고 생 그냥, 가정과 온 사회가 이렇게까지 밀어줄 때 그때 공부하지. 부모 죽고 머리가 굳어지고 이제 이 나이에 새로 초등학교 가려니까 나이 스물에 초등학교 1학년 가라니까 이거 멋쩍어 못 가겠고, 그때 돼가지고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간다고 생 학교를 갖다 뒤흔들고 뉴스에 나오고 난리하지 말고 밥 줄 때 떠먹지. 공부하라 할 때 공부하지. 마음껏 병 고칠 수 있을 때 그때 고치지. 몸에 병이 난치병 되고 난치병이 불치병 되고 불치병으로 젊은 사람이 안 죽을 사람이, 죽니 마니 그때 돼가지고 불행하니 뭐 세상이 이럴 수 있냐 병원에서 안 고쳐줄 수 있냐. 세상이 다 틀려서 나는 피해자다 그딴 소리 다 남한테 던지고 그냥 건강 조금 돌보면 좋을 때 그때 건강을 돌보지. 공부할 때 공부하지. 밥 먹으라 할 때 밥 먹지. 얼마든지 교회 다닐 수 있는 영육의 환경을 마음껏 퍼부어줄 때 그때 교회 다니지. 그 때 교회 다니지. 나이 많아 걷기도 어려운데 이리 될 줄 알았으면 한 번이라도 교회에 더 나갈 걸. 발이 펄펄 날 때 그때 교회 가지. 발도 그렇고 성경 읽기도 그렇고 기도도 그렇고 만사 똑같습니다.

세상과 믿는 도리를 원리적으로는 비슷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세상을 봐서라도 신앙생활을 쉽게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일부러 만들어 놨습니다. 어른 되어 보면 아이들을 보며 참 좋을 때다 공부할 때 해야지, 그 마음 안 드는 부모 하나도 없을 겁니다. 난 공부할 때 그때 해서 이렇게 공부를 잘했다. 근데 내 아들도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를 하니까 이건 나 같이 잘 되겠다. 뭐 그런 집도 가끔 하나씩 있을 겁니다.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난 공부해야 될 때 나는 했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 잘 나간다. 근데 얘들은 왜 공부해야 될 때 안하고 있는가? 애간장 녹을 겁니다. 나는 부모가 공부하라고 그렇게 애탈 때 뺀돌뺀돌 오만 짓을 다하고 혼자 시시덕거리면서 웃었다 지혜롭다고. 근데 내 자식이 딱 나 닮아 그러면 이건 뭐 복장 터지는 정도 이상일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애타는 마음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부모 자녀의 관계에서 이런 걸 훤히 보여주시며 자식이 말 안 들을 때 애가 타 죽겠더냐? 너 그 짓 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그랬다 인간아.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라. 다 그런 겁니다. 이 정도가 되면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라도 가진 사람은 아이를 가지는 순간 세상으로 철드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철이 퍽 들어야 됩니다. 신앙의 철이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되어졌겠구나.

차라리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시간은 유한합니다. 사람이 10가지 100가지 한꺼번에 다 못합니다. 한 현실에 하나 정도 하는 거지. 이번 주말 금요일 저녁 토요일 안 믿는 아이들은 일요일까지 2박 3일 공부할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 뭐 공부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하겠습니까? 하나 집중하다 보면 시간 다 가는 거지. 몇 가지나 하면 하겠습니까? 일반적으로 한 번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신앙생활에 이 순간 금요일 저녁에 십계명 전부를 다 지키고 창세기 50장을 다 지키고 계시록 22장을 다 지키고, 그럴 기억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5일 저녁예배 시간에 이런 말씀을 지금 접하며 얼른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한 가지는 있을 겁니다. 여러 가지가 있다면 그중에 제일 급한 거 하나를 딱 틀어쥐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느 것이 급한가? 내가 마음먹으면 이것만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붙들고 수요일 밤 설교였지요. 하나를 붙들고 쉬운 것부터 하나 둘 그 다음에는 하나 둘 셋, 그 다음에는 하나를 더 붙여 하나 둘 셋 넷 한 걸음걸음걸음을 하루하루 더해서 나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뭐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그 참 인내 있다 한번 결심하니까 오래 간다. 참 희망이 있다 저렇게까지 사람이 바뀐다. 난 아직 속으로 바뀐 적이 없는데 그냥 몇 번 그러다 보면 옆에서 알아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아줘 미안할 만큼 그렇습니다.

하늘에 별의 따려고 생각 말고 바다를 건너 뭘 가져오려고 생각 말고 현재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신앙의 양심에 먼저 떠오르는 것. 내가 배운 말씀 내가 읽는 말씀 중에 참 이 말씀은 내 마음에 딱 걸린다. 그 말씀 하나 정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주님 날 위해서 이 고난을 당하셨는데 내가 좋다고 너무 주저앉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서, 어떤 것이든지 하나는 해보셔야 됩니다. 그 마지막 하나까지 안하면 약도 없이 주저앉고 주저앉으면 그다음 정말 가버립니다. 신앙으로도 이거는 약이 없습니다. 해결의 법이 없습니다. 약한 것을 일으켜 올리는 것은 실행입니다. 큰 죄를 지어보면 결과는 빨리 나온다고 그랬지요? 그렇다고 끔찍한 큰 죄를 짓는 것보다는 큰 죄를 지어서 그냥 단번에 서면 교도소 독방에 앉는 죄를 지으면, 이틀도 안 가서 통회 자복하고 눈물로 회개하고 다 그럴 겁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가지 말고 아무 탈도 안 나는 거, 그냥 뭐든지 꼭 해야 되는 거 하나를 붙들고 이건 내가 마음먹으면 한다. 그거 하나만 하면 됩니다. 내일은? 한 번 더 해보면 됩니다. 한 번 더 해보면 됩니다. 뭐 그런다고 그것이 그렇게 큰 힘이 될까? 별로 큰 것 같지 않은데 말씀을 실행한다. 신앙의 실행이다. 이 말이 딱 갖다 붙으면 하늘도 땅도 주님도 삼위일체 하나님도 다 지켜보며 옳아 저게 실행을 하네? 저게 움직이려고 노력을 하네? 저게 한 걸음을 떼네? 천군 천사 애 터지게 쳐다보고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능력으로 들여다보면서 한 걸음만 더 해라 한 걸음만 더 가라 마구 밀어줄게. 이런 운동이 총 집결을 하는 것이 신앙 세계의 실행입니다. 거창한 실행 말고 유명한 그런 실행 말고 내 양심에 적어도 이것만은, 양심에 적어도 이것만은. 말씀을 들은 내가 적어도 이 말씀 하나 앞에는.

공회 목회자 세계에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목사가 교회 월급 받으면 밥값은 해야 되지 않냐? 전 성수 목사님이라는 분이 맨날 밥값 밥 값 그래가지고 또 한 번이고 두 번이지 뭐. 지금 뭐 삼 년이고 4년이고 그냥 그분 입에서는 죽는 날까지 맨날 밥값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교회 밥값도 있냐? 늘 그랬습니다. 그리고 40년 전에 가셨는데 그분 가시고 40년 동안 제 머릿속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난 지금 신풍교회 월급 받고 밥값은 하고 있는가? 지금 예배당의 빈자리가 밥값을 못 했다는 그 뜻입니다. 제 밥그릇은 밥그릇이 보면 밥이 다 차있지 가운데 이리 빈 데가 없습니다. 밥그릇에 안에다 대고 밥을 안 채우고 빈 곳을 만들던 거 기억하시는 분들만 손 들어보실까요? 60부터는 그런 거 다 아실 건데요 50은 모르겠습니다. 아침 밥그릇 아침 밥상에 밥그릇에 밥을 담으면서, 밥을 담으면서 밥 속을 텅 비워 가지고 부풀려서 그냥 대충 이렇게 발라 맞추고, 안에 밥을 꼭꼭 안 눌리고 이렇게 밥을 그렇게 뜨는 거 보신 분 안 계시나요? 다 저희 집보다는 다 부자인가요? 강양순 집사님 혹시 그런 거 몰라요? 밥그릇을 이만한 밥그릇 그러니까 이만한 밥그릇에 고봉으로 밥을 올렸는데, 속에다 대고 저 간장 종지기를 담아가지고 그래서 밥만 위에 이만큼 있지 속에는 지금 한 주먹만큼을 빼버린 겁니다. 먹고 싶어 전부 난리지 싸움은 벌어지지 그래서 그냥 밥그릇 안에다 대고, 작은 그릇을 넣어서 텅 비게 만들고 위에 올리는 그런 일들이 옛날에는 있었습니다. 저보다 연세 많은 분들은 다 알 것 같은데 그럴 밥도 없어서 아마 그냥 그랬는가. 실행이라는 것은 실행이라는 것은 신풍교회 목사는 교회 빈자리는 전부 지금 밥값을 못 한 겁니다. 한 80만 원 중에 앞에서 5만 원 빼고 중간에서 3만 원 빼고 마지막에 2만 원 빼고 빼야 됩니다. 옛날 김윤선 장로님이 계셨으면 아마 월급 좀 빼자고 그러지 않았을까?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내 집만큼 사랑하니까. 내가 땀 흘려 번 돈인데 내가 일꾼을 100만 원을 줬는데 일당을 주고 월급을 100만 원 줬는데, 오전에 1시간 어디 담배 피우러 슬쩍 도망가고 오후에 2시간 어디 낮잠 자고 슬쩍 오고, 그거 알면 일당과 월급을 다 채워주고 싶겠습니까? 1시간 2시간 뺀 거는 빼고 주고 싶습니까? 자기 돈 같으면 다 그럴 겁니다. 노동법 때문에 못 그럴지라도.

교인이 교회에 연보를 했다면 교인이 교회의 정말 주인이라면 저 인간 월급은 또박또박 받아가고 밥값은 하긴 하냐? 월급 값을 하긴 하냐? 그 생각이 나쁜 생각 아닙니다. 근데 이제 교인 입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아마 99%는 가룟 유다 될 걸요? 교인이 그 말하기 전에 그런 마음 들기 전에 목사는 내가 월급만큼 일을 하고 있냐. 이걸 쉽게 말하면 내가 밥값을 하고 있냐. 월급만큼 기도하고 있냐. 성경 연구하고 있냐. 지난 하루 한 주간 지난 한 달 지난 1년 자꾸 돌아보며 월급 앞에 미안한 게 없냐. 미안한 게 없냐. 그러다 보면 힘은 나지 않아도 돈을 받았으니까 돈 값은 해야지 일당 받았으면 일당 노가다는 해야지. 일당 돈 받아놓고 일당 일도 안 해요. 도둑놈들 망할 놈들 쳐 죽일 놈들. 내 돈 줘보고 그거 일당 일 안 하면 속의 마음이 저 같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안 들겠습니까? 다 그렇지. 신앙에 힘이 나지 않습니다. 주님 날 위해서 죽었는데 1등은 못해도 중간은 못해도 주일만큼은 목숨 걸고라도 지켜야 되겠다. 어떤 사람은 그래야 될 거고. 주님 날 위해서 죽은 날이 금요일 밤인데 금요일 저녁은 천하 없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예배당에 앉아야지. 뭐 사람마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보면 그런 겁니다. 학생이 도서관에 공부를 하다가 자꾸 생각이 공부에 안 가고 놀러 가고 마음이 자꾸 뜨면, 지금 시장 통에 앉아 물건을 팔면서 직장에 가서 지금 이 사람한테 쥐 박히면서 오는 손님 때문에 애 먹으면서, 부모가 이 돈을 벌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니지, 뭐 공부하고 싶든 말든 내가 강제라도 억지로 해야지. 어떤 것은 마음이 들어야 공부하는 것도 있는데 구구단처럼 무조건 외우면 외워지는 게 있습니다. 이걸 마음 없이 외웠다가 잊을지라도 내가 외우는 흉내는 내야지. 이렇게 자기를 스스로 최소한 독촉을 하고 이렇게 붙들고 애를 먹으면, 위에서 지켜보는 하나님께서 은혜도 없고 신앙도 없고 별 것도 없는 것이 그 신앙의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있어 저렇게 애를 쓰니, 내가 속에 좀 우러나오는 마음을 좀 줘야 되겠다. 해서 내가 애를 조금 쓸 때 주님이 그 마음을 좀 열어주시면, 그때부터는 빛이 오면서 말씀 공부가 재미가 있고 신앙으로 열심히 하고 싶은 소망이 생기고 그 결과가 나오고, 내속에서 솟구치는 끝없는 이 샘물이 솟구쳐 그다음 이게 내가 되고 이 생명수의 강이 뻗히는 곳곳마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과실을 맺으며 그 생명수가 가는 곳곳마다 전부 생명의 운동이 마구 일어나더라. 그리되어집니다. 이건 오늘 처음 믿는 사람이나 오래 믿은 사람이나 강퍅한 사람이나 이런 사람이나 저런 사람이나 다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일반 모든 세상도 교계도 공회도 우리 교회도 돈 많지 먹을 거 많지, 놀 때 많지, 시간 많지, 차 좋지, 구경거리 좋지. 뭘 애써 믿으려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병원이 해결을 다 해주는데 정부가 돈을 다 못 쓰도록 고봉으로 자꾸 현금을 밀어내주는데. 급해야 하나님을 찾지 안 급한데 누가 하나님을 찾습니까? 아이가 건강한데 배가 부른데 아픈 데가 없는데 친구가 있는데 재미가 나는데 왜 엄마를 찾습니까? 아프든지 맞았든지 배가 고프든지 아니면 해가 지든지 일이 생겨야 이제 엄마를 부르면서 돌아올 건데, 만고 좋은데 애가 왜 엄마를 찾습니까?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가지. 오늘의 시대가 이렇게 좋은데 왜 하나님을 왜 찾겠습니까? 왜 신앙에 열심을 내야 된다는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럴 사람이 있겠습니까? 만은 아무리 세상이 좋고 아무리 내가 만고 좋은 세상에 산다 해도, 주님 앞에 그래도 대예배는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나정도 되면 새벽은 주님으로 시작을 해야 되지 않겠냐. 가족을 위해서라도. 나정도 되면 재수 삼수를 해도 성경은 한 해 세독을 하고 열독은 해야 되지 않겠냐. 자기대로 뭔가 기준을 하나씩 만들어 실행할 수 있는 기준 하나 틀어쥐고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이어져 나가면 지켜보는 하나님이 그 요즘에도 쓸모 있는 사람이 하나 보이네. 근데 3일 갈란가? 일주일 갈란가? 지켜보십니다. 지켜보시다가 이 정도 계속되면 이거는 뭐 뭔가 좀 챙겨줘야 되겠네. 싶으면 그 다음부터는 쏟아지는 은혜를 받아.

100년 전에 살다간 미국의 무디 선생이라는 분이 그랬답니다. 무디라는 분이 이렇게까지 은혜를 마구 퍼부어주시니 주시는 은혜를 감당을 못하겠나이다. 그랬답니다. 100년 전에 미국의 무디 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오늘은 무디가 아니라도 이 시대가 하나님의 은혜의 홍수를 만난 때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을 향하여 이렇게 넘치는 시대에 살게 해주셨냐고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나와도 모자랄 판에, 이것밖에 안 주냐고 전부 다 욕을 하고 앉았습니다. 마음을 돌이켜 참 좋은 때를 주셨다. 내가 인간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냐. 자기대로 실행할 작은 하나 시작의 하나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될 목표를 꼭 잡기 바랍니다. 10점 맞는 아이가 11점 맞겠다. 그것도 목표겠습니까 마는 전부 다 수준들이 그러니 우리의 수준이 5점 10점 그러니, 학교를 다니면서 10점이 뭐냐 20점은 그래도 맞아봐야 되지 않겠냐. 그런 것들은 학교 다 내보내야 되는데 전부가 다 그러니까 전부가 10점짜리들이니까 20점이라도 맞아야 되겠다. 그 목표 세우라는 겁니다. 10점짜리한테 지금 100점 맞으라는 목표 말하는 거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가능한 목표 한 걸음 더 나가는 목표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면 참 부족하다. 근데 한 걸음 실행하면 주님이 돕겠다니 소망이 있다. 그렇습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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