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5.19 마10:1 말씀과 다른 문제 보일 때 먼저 자신을, 한올한올 자타를 깨끗게 하는 주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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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3.5.19 마10:1 말씀과 다른 문제 보일 때 먼저 자신을, 한올한올 자타를 깨끗게 하는 주의 제자

관리1 0 43 2023.05.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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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9 금밤

제목 :  말씀에 다른 문제가 보일 때,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한 올 한 올 자타를 깨끗케 하는 주의 제자

찬송 : 124장(내 주는 강한 성이요)

본문 : 마태복음 10장 1절 -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죽는 세상을 먼저 주시고 영생을 이 땅 위에서 만들 수 있도록 중생의 복과 영생의 복을 함께 주신 주님. 죄악의 세상 사선을 넘어갈 수 없는 부족한 인간인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대상이 되어, 영생을 목표로 주님의 절대 주권을 붙들고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복되게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가 우리를 알지 못하여 세상사람 중에 하나로 자기를 낮추어 비하함으로 주의 크신 은혜들이 다 막혀 있나이다. 이 밤도 우리는 여호와 앞에 존귀한 자임을 스스로 깨달아 세상에서 천국을 자기 마음을 꺾고 주님을 모시고, 오늘 현재를 통해 영생을 마련하도록 어려도 마음을 열어주시고 노년에 단단한 마음도 시급히 열어주시고, 입원 수술 출장 군무에 있는 아들들, 해외까지 두신 우리 교인들. 너무 좋아 세상 속에 붙들린 이들로가 세상에 자기 목표가 어려워 어렵다는 모든 이들에게, 이 밤도 이리 가운데 두신 우리임을 깨달아 주님으로 복된 이 시간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지난 주일에 요절이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짧으니까 다 외우셨겠지요? 너희는 시작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뱀은 꾀어서 우리가 스스로 죄를 짓게 만듭니다. 믿는 사람은 강제로 죄를 짓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 안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 짓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게 만들어 우리 손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래서 이런 꾀어서 스스로 죄를 짓게 한다. 라는 이 방법을 두고 성경은 주로 뱀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놓고 떼고 놓고 떼고 좌로 우로 좌로 우로 흔들다 보면 그만 알아서 죄를 지으니, 좋기야 알아서 죄짓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겁니다. 이렇게 간사로 꾀로 죄를 짓게 하니 죄 짓게 만드는 마귀의 그 꾀 그 지혜를 넘어서라. 속지 말아라. 이게 “뱀같이 지혜롭고” 라는 말입니다.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죄 안 지었다고 큰 소리 치는 것도 참 우스운 일입니다. 옳은 일, 좋은 일, 바른 일 하다보면 죄 지을 시간이 없는 것이 가장 좋은 겁니다.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성령의 역사를 비둘기와 같다. 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깨끗을 말한다고 했었습니다. 의료적으로 병원에서 말하는 그런 깨끗 말고 세탁소에서 말하는 깨끗 말고, 문명국에 예절 도덕의 깨끗한 거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은 깨끗하다 하십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아닌 쪽으로 두리번거리면 하나님은 그거 더럽다 이래버리십니다. 성령이 내 마음을 어려워도 학생이니 학교로 가자라고 하면 선생님 부탁 부모 부탁 전에, 성령이 내 마음이 내 마음을 감동하여 학생이니 공부하러 가자 할 때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하나로 딱 먹어버리면 그 마음을 성령이 깨끗하다 그러십니다. 위생 적으로 깨끗하고 세탁소에서 깨끗하고 경찰이 볼 때 전과가 없어 깨끗하다 해도, 믿는 사람의 마음이 학교 가서 배워야 내 마음대로 나중에 살 수 있지 않겠냐. 이래버리면 하나님은 더럽다 그래버립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성령이 내 마음을 신앙으로 인도할 때 꼭 한 길만 따라가면 그걸 깨끗하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걸어가는 길이 결국 보면 평화의 길이고 좋은 길입니다.

차가 교통질서 잘 지키면 아무리 차가 많아도 그냥 서로가 좋은데, 한 대가 역주행하고 신호등 무시하고 흔들어버리면 자기는 좋고 전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은 좋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조용하게 가다 보면 결국은 이게 가장 좋은 일입니다. 전부에게 좋은 것. 근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갈 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지나치게 신앙 반대하는 주변과 투쟁하거나 싸우는 그런 일 하지 말아라. 주의 인도만을 따라 충실하게 따라가거라. 신앙 아닌 것 가지고는 부딪힐 것이 없다. 라는 말입니다. 지난 한 주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수요일은 동천에 우리 결혼식 때문에 실시간으로 다 동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부터는 마태복음 10장 외솔이 몇 절? 마태복음 10장 기억을 하셔야 되나? 16절 마태복음 10장 16절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다 같이 어디라고요? 마태복음 10장 16절이었습니다. 주일부터 내려오다가 수요일 저녁에는 오 수영 씨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란 다른 것이 많이 달라서 이렇게 십자가처럼, 가로세로만큼이나 생각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겁니다. 같은 남자라도 서로 다를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란 이렇게 많이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것이 하나 다르고 둘 다른 것이 제멋대로 다르면 실타래가 엉겨버리는 것처럼, 요즘은 실을 안 쓰니까 실타래 엉긴 걸 잘 모르지. 예배 마치고 집에 가시면 실타래 얽혀진 것을 아는 엄마들이 요즘 학생들에게 자꾸 그런 건 좀 일부러 가르쳐야 됩니다. 이게 얽힌 거다. 실타래 얽혀놓으면 참 골치 아픕니다. 실타래가 얽혔는데 당기면 당길수록 더 단단해져가지고 나중에 잘라야 되지 풀리질 않습니다. 이게 얽힐듯하면 그 자리에서 중단 그리고 온 길을 따라 솔솔 펴내면 그게 부드럽게 풀립니다. 그 이상 더 좋은 방법도 있습니까? 불 질러버리고 잘라버리면 되지. 불 지르고 잘라버리면 실로서는 빵점입니다. 좀 얽힐듯하면 그 자리에 일단 좀 멈추고 돌아온 길로 솔솔 풀어보면 풀립니다. 그리고 다시 짜면 실과 실이라는 것은 앞을 보시지요. 이렇게 하나 둘, 둘 셋, 셋 넷 이러다 보면 이걸 천이라고 그럽니다. 이 모든 옷 모든 천은 집에 가서 돋보기로 한번 봐보십시오. 전부 한 올 한 올 한 올 한 올이 전부 가로 세로로 이렇게 짜가지고 옷이 되는 겁니다.

그런 걸 뭐라고 한다고요? 수요일 날. 여학생들만 그런 걸 뭐라고 한다고요? 그런 걸 결혼이라고 그럽니다. 나는 가로 저 사람은 세로 내가 가로면 너도 가로인데 내가 세로면 너도 세로인데. 옛날은 부창부수 남자 가는 길을 여자는 무조건 따라가라. 지금은 여자 좋은 길을 무조건 따라가라 그리 하셔야 됩니다. 약속도 하셨고 일단 여자 원하는 대로 해야 그냥 출발은 되니까 출발을 하다가 어느 정도 서로 좀 눈치가 생기고 나면, 한쪽 원하는 대로 하면 길고, 길고 긴데 실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은 천길 만길 길어도 실은 옷을 만들지 못합니다. 한 올 한 올 이렇게 얽히며, 얽히며 짜여가지고, 실들이 가로세로로 잘 한 올도 안 빠지고 일일이 이렇게 올올이 다 짜여 졌을 때 이런 옷이, 옷이 되는 천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에 간 믿는 사람의 평생을 따라하시지요. 세마포 옷(세마포 옷). 성도의 옳은 행실은 세마포 옷이다. 세마포란 굵은 실로 만든 옷이 아니라 실이 굵은 걸로 만들면 마대라고 그럽니다. 감자 모래 같은 거 담는 거. 또 한눈에 딱 보면 옷이 아주 천한 옷은 실이 굵은 걸로 짜니까 그렇습니다. 이거 옷 만들기는 쉽습니다. 근데 바람 새지 춥지 비새지 엉망입니다. 좋은 옷일수록 가는 실. 가는 실을 반드시 한 방향이 아니라 하나하나를 전부 이렇게 겹칩니다. 겹치면서 하나 위로 가면 하나 밑으로 가고 밑으로 간 것이 그다음 위로 가면 그다음 내려가고.

마음속에 결혼 급한 사람이 있나요? 결혼이 뭔지 아시겠나요? 결혼생활 10년 이상 해본 분들 대충 이해가 되십니까? 이게 한쪽에 올이 한 번 올라가면 내려가야 되는데 이게 한 번 올라갔다 안 내려가고 두 번 그대로 가버리면 이게 옷에 흠이 져서 옷값 못 받습니다. 보기도 싫고 거기서 나중에 다 풀려버립니다. 한 번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간 사람 올라가고 이번에는 그쪽도 양보하고 이번에는 나도 한 번 말하고, 말도 행동도 생활도 전부가 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얽히는 것은 이건 부모자녀 사이에도 그러지 못합니다. 딱 부부만 그러는 겁니다. 동지도 또 동료도 동업자도 친구도 부모자녀 사이까지, 이 땅에 하나님께서 100% 양쪽을 완전히 짜 맞추도록 살게 한 것은 부부밖에 없습니다. 이거는 경제, 취미, 사상, 이성, 출산 이건 그냥 100% 다 이리 돼야 됩니다. 근데 누가 그게 그리 되겠습니까? 이게 올이 잘못되었을 때 참 보기도 싫고 문제다. 그러면서 하나 둘 하나 둘 더 정밀하게 실수 없이 짜 맞출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주님이 붙들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말 잘하니까 너 말을 한 번 할 때 나는 말 두 번 해버린다. 너는 말 잘하면 난 또 주먹이 있다. 이렇게 이게 얽혀버리면 예배 마치고 가서 한번 실타래 얽힌 걸 아이들에게 주셔서, 조금 얽힌 상태에서 줘보시고 그대로 한번 당겨봐 보시고 약간 얽히려고 할 때 되감아 풀어도 보시고 그러며, 이게 부모 자녀라는 거다. 부모자녀라는 것은 이거는 잘 얽히지도 않고 그 정도는 쉽다. 부부가 되는 것은 이거는 100% 이렇게 짜 맞춰 가는 거다. 그렇게 가르치면 교회에서는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가르치는 하나의 자연계시다. 뭐 한 줄 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이걸 가정에서 생활 속에 못 배우면 강단에서 세상 말하느라고 시간 다 가버립니다. 맨날.

지난주일 오전은 다 같이 고개 드시고요. 마태복음 시작 마태복음 10장 16절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그다음 수요일 날에는 요? 에베소 5장 말씀이었습니다. 부부란 행동도 생활도 식사도 경제도 유일하게 부부에게는 남녀 이성문제까지 100% 완전하게 한 올도 빠지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가 되어져라. 이게 실을 가로로 세로로. 실은 가로 세로라 그러지 않고 날과 씨라고 그럽니다. 우리말로 옛날. 예전에는 집에서 어머니들이 일일이 실 하나 실 하나를 이렇게 해가지고 천을 짰기 때문에, 이렇게 실을 가지고 이렇게 천을 만드는구나. 이걸 눈으로 봤기 때문에 옛날 분들은 학교는 못가도 산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었고, 오늘은 남 말하는 것만 책으로 화상으로 봐가지고 입만 뺑뺑 베껴서 돌고 앉았지, 따 붙여서 붙이고만 앉았지 산교육은 거의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거 어디서 가르쳐야 된다고요? 이런 것 집에서 다 가르치셔야 됩니다. 특히 성경은 실과 천이라는 것은 출애굽기 25장 성막으로부터 계시록 마지막까지, 한 행동 한 행동이 겹치며 짜여 지며 올올이 하나가 되어 천이 되고 옷이 되고 그게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의 성도의 신앙이 된다. 행위가 된다. 영광이 된다. 이렇게 중요합니다. 모든 부부와 모든 교회와 모든 자기 주변과의 갈등이란, 잘 보면 갈등이 아니라 가로세로 실을 이렇게 겹치며 천을 짜 가는 겁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은 욕하는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가면 나는 그 욕하는 행위에 잠언 25장 11절요. 경우에 합당한 말 욕하는 사람의 말에는 경우에 합당한 말로 세로를 놔버리고, 복음을 위해서 옳고 바른 말 할 때는 순종과 환영으로 또 세로로 놓으면, 좋은 것도 좋아지고 안 좋은 것도 좋아지며 기가 막히게 참 좋은 신앙을 만들고 행위를 만드는 것이, 수요일 저녁 예배의 부부 설교였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0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성경에 예수께서가 나오면 뭐라고 읽는다고요? 구원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열두 제자에게 구원을 가르치고 계시는구나. 구원을 주시고 구원을 맡기셨구나.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예수라는 말이 나오면 구원으로 읽는 것이고 그다음 열둘이라는 숫자 12라는 숫자가 나오면 전부라고 그랬습니다. 열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고 열둘이라는 12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의 전부 그럴 때 10입니다. 앞에 수요일 가로세로 이 결혼 관계를 설명 드린 것은 그게 아니었는데 하나 잊었습니다. 수요일은 동천교회 결혼식 때문에 실시간으로 예배를 드리고 저는 사무실에서 화면을 봤습니다. 화면을 보면 앞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저 뒤에서도 이렇게 카메라가 삼면으로 보여서 굉장히 잘 보입니다. 예배 때 교인을 보는 것보다 제가 사무실에 있으면 눈빛 하나 전부 아주 생생하게 봅니다. 근데 저 뒤에 카메라로 보니까 수요일 날은 예배당이 텅텅 텅 비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수요일 날 왜 밤 예배에 출석이 많이 비었을까요? 결혼식 가느라고. 왜 결혼식 가느라고? 가족이라. 이 앞에 결혼식에 가족 또 이번 수요일 결혼식에 가족 양쪽이 다 사촌입니다. 남 결혼하는데 사촌 사촌 두 줄이 얽히면 복잡한 것이 아닌가. 한 줄 두 줄, 세 줄 네 줄 층층이 다 짜가지고. 구약의 유대인들 오늘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 어디 있든지 야곱의 몇째 아들 쪽이냐 그러면 그냥 족보 다 나와 버립니다. 그래서 이제 이쪽 가정 결혼 저쪽 가정 결혼 이렇게도 하나 짜 매지고, 또 이쪽저쪽도 짜 매지고 이리도 저리도 자꾸 자꾸자꾸 자꾸 이게 잘 짜여 져서, 좀 더 가면 어떤 집안이든지 우리 공회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사돈이 되지 않고 사돈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할 만큼 이렇게 짜여 지면 그거 참 기가 막히게 좋은 교회가 되어지는 겁니다.

전도서 4장 12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어떻게요?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는 저주받은 자다. 이게 전도서 4장 10절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는 혼자 간다. 성경은 널 저주를 하는구나. 저주 받기 싫으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는 낫다. 그 말씀대로 가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결혼식이 가면 갈수록 결혼식 한 번 하면 그 결혼 때문에 전국에 온 공회 우리 교인들하고 전부 다 얽히고 섥혀 버리면, 이게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형성입니다. 나쁜 거 아닙니다. 친인척이 되고 가족이 된다고 죄를 봐준다든지 죄를 빼준다든지 밀어준다든지 이리 되면 이거는 하나님하고 싸우는 거고. 불교인하고 결혼하는 게 낫겠습니까? 종교 없는 사람하고 결혼하는 게 낫겠습니까? 공회 식으로 믿는 것은 이단이라고 욕하는 쪽이 낫겠습니까? 이왕이면 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쪽이 당연히 더 낫지 않나요? 재벌들 결혼하는 거 봐보셨습니까? 재벌들 전부 재벌들하고 결혼합니다. 재벌이 재벌하고 결혼하지 않으면 재벌 묶어 넣을 때를 대비해서 전부 다 판사 검사로 엮어버립니다. 아니던가요? 그러고 싶지 않던가요? 우리 신풍 근처에 어느 국회의원 엄청 높게 잘 나갔는데 100% 교도소 갈 건데, 그 집에 검사 사위가 있어서 이리 빼고 저리 빼고 뭐 묻고 그냥 다 막아버리고, 참 그 위험하게 검찰 조사 많이 받고 측근이 자살까지 하고 아마 그랬죠. 그때. 측근 자살 있었지요? 또 모르나요? 그 정도 되면 엄청 크게 일은 벌인 겁니다. 근데 집안에 사위 하나가 검사가 돼가지고 이리 빼고 저리 막고 그냥. 천국 가서는 못 그럽니다. 신앙의 세계에 그 짓 했다가 하나님께 직접 두드려 맞습니다. 근데 안 믿는 세상은 그렇게 얽히고 섥혀 가지고 죄를 짓고 사는 게 세상입니다. 그런 걸 보면서 하늘나라 갈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가족이 아니 아이들이 많은데 하나 또 장로님, 하나는 목사님, 하나는 새벽 기도 잘 다니는 분, 하나는 교회 충성하는 분. 이렇게 저렇게 잘 엮어놓으면 신앙 생활하는 데 얼마나 도움 되고 좋겠습니까? 이런 거 나쁜 거 아닙니다.

첫 번째는 마태복음 10장 16절 신앙이란 신앙답게 살아보려는 순간 주변은 전부 이 신앙을 삼키는 이리와 같다. 그렇게 되어 있다. 주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속을 들여다보면 내 속에서 나의 신앙을 삼키는 이리는 더 무섭다. 이게 16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은 결혼식 설교였습니다.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넷 그러면서 자꾸 자꾸 올올이 날로 씨가 되어 가로 세로가 되어, 실 하나만 있으면 끊어지고 아무것도 아닌데 실이 천으로 짜여 지며 기가 막힌 세상을 오늘 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 1절 구원의 주님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믿는 우리를 대표해서 열둘이라 그럽니다. 믿음의 마음 믿는 신앙의 모든 것은 열둘입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참 오해가 많은 성구입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에게 귀신을 쫓아내 버리는 권능, 또 귀신 말고 모든 육체의 병을 다 치료시키는 권능. 귀신도 아니고 병도 아닌데 그냥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드는 이런 권능을 주시니라. 전부 마태복음 10장 1절을 읽고 은혜 받고 좋으면 귀신 쫓아 댕긴다고 여기저기 다 다니고 그럽니다. 우리나라도 귀신만 잘 쫓아낸다는 몇몇 이렇게 유명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 교회의 핵심으로 이렇게 일을 하시다가 한번 신풍교회에 15년 전인가 한 번 오셨었는데 어느 선교사님. 그 막 귀신 쫓아낸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알고 보니까 다 짜고 그러더랍니다.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인데 멀쩡한 사람인데 귀신 쫓아내는 기도한다고 나오시라고 그러니까 갑자기 절면서 나가더랍니다. 그리고 이마에 손 딱 올라가니까 그냥 목발 집어 던지면서 할렐루야 나았습니다. 펄펄 뛰니까 몇 만 명이 은혜 받고 연보하고 생난리가 났는데 이분은 본 겁니다. 쫙 보고 이거 무슨 사기꾼들이구나. 그러고 나서 나오시고. 엄청 우리 좋아하는 분입니다.

봐야 아나요 그거? 그걸 딱 목격해야 압니까? 딱 보면 알지. 커닝해서 올라간 점수인지 공부를 해서 올라간 점수인지 모르는 사람이야 모르지만은, 공부를 1년 3년 5년 같이 해 본 친구들끼리야 얼굴 딱 보면 저것은 커닝이다 저것은 실력이다 그건 뭔 촬영을 해야 합니까? 그런 거는 경찰이 하는 거고 뭐 아는 거야 아는 거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입니다. 암 병이고 선천적인 병이고 모든 병 모든 약한 거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둘이 댕기면 이스라엘에는 장애자도 없고 죽는 사람도 없고 다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열둘을 들여다보면 열둘 안에 센 귀신들은 거기 다 들었습니다. 12 제자 안에 귀신 중에 예수님 팔아먹는 귀신보다 더 센 귀신이 또 있을까요? 나머지는 다 배신하고 열두 제자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다. 그래서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간 귀신 쫓아낸다고 평생 달려가면 그 사람 속에는 더 큰 귀신 갖다 붙습니다. 귀신에 붙들려 놓으니 참 좋은 사람이 말도 귀신 말, 행동도 귀신 말, 살림살이도 순 귀신. 이런 걸 볼 때마다 진리의 말씀 이 깨끗게 하는 말씀으로 저 생활을 저 지식을 어떻게 좀 깨끗하게 해볼까. 주님 빼버리고 내가 저 사람에 더러운 귀신 들린 걸 해결하려면, 그 귀신이 나를 이기기 때문에 못 쫓아내고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마태복음 10장 1절의 말씀으로 가라 권능을 줬다. 이 말씀을 가지고 가면 됩니다. 이 말씀이 성경입니다. 성경과 그 사람의 성경과 그 사람의 생활 성경과 그 사람의 경제 성경과 그 사람의 직업을 겹쳐봐 보면, 말씀과 틀린 거는 다 귀신이고 다 더러운 겁니다. 말씀을 가지고 말씀에 맞게끔 말도 행동도 습관도 모든 것도 하나씩 둘씩 맞춰 가면, 그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가장 쉽고 좋은 길입니다. 하나.

그러면서, 그러면서 위장만 수술하는 의사가 위 내시경으로 오는 환자 위를 보니까 이 사람은 1기, 이 사람은 2기 이 사람은 위궤양 남의 위장을 계속 내시경으로 1년을 보고 10년을 들여다본 의사가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걱정을 먼저 하라고요? 내 속은 어떨까? 마음속만 들여다보고 웃으면서 수술해서 돈을 벌어야 되겠습니까? 멀쩡한 사람 왔다가 위암 3기까지 진행이 됐습니다. 다 잘라내고 죽을지 살지 모릅니다. 그리고 상대방은 아이고 멀쩡했는데 그런 일도 있냐고 펄쩍 뛰는 이런 모습을 한번 딱 보며, 나도 멀쩡한데 내 속에도 혹시 저런 게 있을까. 남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돈벌이에 즐겁게만 갈 것이 아니라 직업이니 그렇게 하면서, 휴일 날 평일 날 퇴근 후 내 속은 어떤고. 자기 속도 좀 봐야 될 거 아닙니까? 남들한테는 2년마다 한 번씩 속을 들여다봐야 됩니다. 오만 짓을 다 하고 자기는 뭐 한 20년에 한 번씩 하지 나야 건강한데? 남 속을 2년에 한 번씩 들여다봤으면 자기는 자기 속을 1년에 한 번씩 들여다보고 심지어 6개월에 한 번씩을 들여다봐야 되겠지. 어렵습니까? 뻔한 거 아닙니까? 열두 제자를 불러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내거라. 그러고 가면 다 쫓겨나갑니다. 저희들이 가니까 주님이 보내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가니까 귀신이 마구 도망을 갑디다. 이게 이제 보고가 그렇게 들어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러고 나면 갔다 와서 제자들끼리 서로 속을 좀 봐주셔야 되겠지. 제자들끼리 서로 속에 든 귀신을 못 보거든 자기가 자기 속을 얼른 살펴서, 나는 내 마음씨가 말씀과 같으냐 다르냐. 말씀과 다르면 그게 더러운 겁니다. 차가 차 부속품이 설계도대로 그대로 앉아 있으면 이게 차가 기능적으로 깨끗한 겁니다. 설계도와 부품이 다르면 그건 기능적으로 지금 고장 난 겁니다. 그게 병입니다. 그게 더러운 겁니다. 얼른 고쳐야 되겠죠?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사람 아닌 사람은 김치도 안 먹고 이런 인간이 있냐. 밥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막 소리를 내고 먹어야지 뭔 밥을 먹으면서 소리도 안 내냐. 한국사람 식사법은 그렇겠지만 서양 사람들은 식사할 때 음식 소리 내면 아주 미개하게 봐버립니다. 어느 나라 누구의 법으로 맞냐 안 맞냐 깨끗하냐 깨끗하지 않냐 성경은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고 그랬죠. 말씀으로 다른 사람은 속을 모르니까 말씀으로 저 사람의 말, 말씀으로 저 사람의 행동, 말씀으로 저 사람의 생활, 말씀으로 저 사람의 경제 관계, 주일 예배 하나씩 하나씩 맞춰보고 말씀과 다른 것은 다 더러운 겁니다. 고치도록 달래든지 돕든지 어쨌든 그렇게 하는 것이 자꾸 깨끗해지는 겁니다. 말씀에 맞추는 것이 깨끗한 것이고 깨끗해지면 그게 벌써 귀신은 나가떨어진 겁니다. 말씀과 다른 것은 전부 뒤에 귀신이 한 일이고 결과는 더러운 겁니다. 말씀으로 맞추면 깨끗해진다. 귀신은 벌써 나가떨어진다. 열두 제자를 보내니까 열두 제자가 곳곳마다 고을마다 다니면서 귀신을 다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뒤에 보면 와서 보고를 합니다. 마구 다 쫓아내니까 다 쫓겨나갑디다. 그리고 끝납니다. 그 다음 기록은 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 더 급한 거는 뭐죠? 내 속은 말씀과 100% 같으냐. 남을 딱 보니까 말씀과 다른 것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그 말씀으로 내 속은 같으냐. 다르냐. 말씀과 다른 남은 그냥 막 혼을 내버리고 더럽다고 쫓아내고 야단을 치고, 말씀과 내 욕심이 다르고 말씀과 내 양심이 다른 거는 이거는 우리 편이니까 다 듣고 그냥 지나가고, 내가 말 안 하면 누가 압니까? 말씀과 다른 것은 남이 말씀과 다른 것은 말이나 행동이 나와야 압니다. 말씀과 내가 다른 것은 말 안 하고 행동 안 나와도 내가 내 속을 알기 때문에 내가 눈 감아 보면 말씀과 어느 것이 틀린지 속에 것이 다 나옵니다. 속의 걸 다 고치면 겉에 것은 거의 다 해결이 되어 집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 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격을 준분이 2절에서 4절까지 열두 제자 이름을 다 적었습니다. 그리고 5절에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보내시며 명령을 했습니다. 이방인 상관하지 말아라. 사마리아 사람? 가지도 말아라. 이방인한테 가지 말아라. 사마리아?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택한 사람1. 둘째로 중생된 사람. 3 택한 사람이 중생 되어 믿는다고 하는데 믿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고장 난 것만 고치거라. 이거 모르면 성경 다 겉돌고 맙니다. 귀신 쫓아낸다고 유명한 사람치고 자기 속에 말씀과 다른 것을 찾아내고 회개하고 그런 분 있는 가 한번 봐보십시오. 제 알기는 없습니다. 전부 헛소리 하는 사람 고친다고 그러고 난리 하는 사람 붙든다고 난리고. 정신과 의사가 신경안정제 한 개만 쳐버리면 낫는 것만 해결한다고 난리인데, 말씀과 다른 말씀과 다른 행동 말씀과 다른 생활을 말씀과 맞춰놓는 것이 더러운 걸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그게 귀신을 저절로 쫓아내는 겁니다. 귀신 들린 다른 사람은 밖으로 표가 났을 때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귀신은 말하기 전 행동하기 전 밖으로 표신나기 전,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상부터 내 속에 감추인 과거까지 말씀으로 들여다보면 이거는 환하게 나옵니다. 마치 엑스레이처럼 CT처럼 MRI처럼. 머리가 핑 돌아서 멀쩡한 사람이 쓰러지면 이제 119 타고 병원 가면 그때서야 조사해보니까 뇌경색입니다. 이게 일반적으로 이제 다른 사람 고치는 의사입니다. 그걸 고치는 의사는 쓰러져서 일부 왔다 갔다 하기 전에 몰래 자기 사진 찍어보고 나는 혈관이 멀쩡하구나. 뇌경색은 아직까지는 염려가 없고 뇌 심장 뇌에는 끼인 게 많아서 어느 날 갑자기 퍽 난리가 나겠구나. 어떡하지요? 쓰러지고 갈 것이 아니라 미리 가서 얼른 치료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말씀이 바로 쉽게 그런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 귀신 들린 거 구경 하거라 해결해 주거라. 기가 찰 거다.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꼴 말하는 그 행동을 보거라. 귀신도, 귀신도 이스라엘 안에 이런 귀신이 이렇게 많은 거 마을, 마을 고을고을 가서 별별 귀신 다 전부 구경 하거라.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쫓아내라. 내가 가서 다 해결할게. 이게 전부인 줄 압니다. 이러고 와서 주님 앞에 성자가 된 것 같고 앞으로 귀신은 우리가 다 쫓아내겠습니다. 야 인간아 밖을 다 구경하고 남을 해결했으면 그게 전부가 아니다. 네 속에 들어 있는 말씀과 다른 그 귀신 그게 진짜 귀신이지. 남 쫓아내라고 보낸 게 아니다 남을 쫓아내며 내 속에도 저런 게 있겠구나. 내 속에도 저런 게 있겠구나. 내 속에도 저런 게 있으면 저 정도가 되고 더 심하겠구나. 그리고 남을 고치고 들어와서 남을 고쳐보니 내 속에도 별의 별 것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배운 말씀으로 자기 속을 딱딱 하나씩 둘씩 점검해서 바로 잡아버리면 그러면 자기 속에 귀신을 빼버립니다. 자기 속에 귀신까지 빼고 나면 그다음 남을 귀신 쫓아내러 갈 때는 힘이 더 생기고 더 능숙해집니다. 남을 고치고 나를 고치고 나를 고친 걸로 남을 고치고 그러면서 한 발자국씩 쭉 올라가는 사람은, 그 사람 만나면 웬만하면 고쳐 놓더라. 이런 소리를 듣는 거고 안 그러면 점점 더 일곱도 흉측 한 귀신까지 들어 가가지고 참 괴상한 일이 자기 속에 벌어집니다. 이게 마태복음 10장 1절입니다. 그리고 16절로 넘어가는 겁니다. 이 귀신 쫓아내는 얘기가 한 바퀴 쭉 돌고 16절에 와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 같도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이 권능으로 마을 고을 돌아다니니까 얼마나 모두 죽이려고 싫어서 난리더냐. 그것도 맞고 말씀으로 네 속에 들어와 있는 네 속에 들어와 있는 더 무서운 그 귀신 한번 잡아보려고 나서봐라. 네 속에 있는 모든 옛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들고 일어날 건데 못 이길 걸? 열두 제자 하나도 못 이겼습니다.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간 것이 귀신이 아니라고 해석을 할 재주가 있겠습니까? 이게 보통 귀신이겠습니까? 마귀겠습니까? 성경에 사단이 들어갔다고 그랬습니다. 귀신 대장이 들어가서 예수 팔고 이게 가룟 유다입니다. 나머지 12제자는 귀신 마귀들이 들어 가가지고 전부 다 도망가고 주님 십자가에 열두제자 중 끝까지 따라간 제자 하나도 없습니다. 남은 구원하고 자기를 잃었습니다. 남을 구원하고 자기를 잃은 사람에게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뇨. 그래서 성경은 창세기로 계시록까지를 차분하게 읽어야 해석이 되고 모순이 없이 진리로 자꾸 이렇게 되는데, 구약만 읽는다든지 신약만 읽는다든지 자기 좋아하는 말씀만 쏙쏙 골라 뽑고 하면 편식이 돼가지고, 편식은 우선은 좋은데 나중에 보면 건강을 해칩니다. 모두들 성경 다 차분하게 읽고 계시지요? 지금이 5월이니까 5월쯤이면 뭐 한독은 지금 대부분 다 끝을 냈어야 됩니다. 성경 이런 게 중요해서 몇 번 부탁하면 한 번 말하면 다 알아들을 건데 왜 두 번 세 번 그러냐 라는 말이 들리면 또 이제 중단입니다. 말 안하면 또 다 안 봅니다. 또 기도 말하면 또 그렇고 뭐 주일 말하면 또 그렇고 예배 말하면 또 그렇고 말조심 또 그렇고. 한 바퀴 삥 돌고 나면 10년 지나갑니다. 원래 목회 설교란 하나를 고칠 때까지 계속해야 되는데, 이게 참 계속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고 다른 것도 급하니까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 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말씀과 다른 걸 말씀으로 고쳐놓는 게 귀신을 쫓아내는 겁니다. 더러운 귀신.

정신과 병원에 데리고 가는 악 쓰는 사람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그러는데 그건 정신과에 가서 불신자가 주사 한 개, 약 한 개 딱 처방하면 딱 잡혀버립니다. 뭐 주사약이 그러면 성령입니까? 그 주사약을 넣는 의사는 그러면 성부 하나님 아버지십니까? 성경은 진리라 다 해당이 됩니다. 육체의 정신과 문제 있는 것도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낮게 해야 될 것은 낫게 하십니다. 구약으로 갈수록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눈에 보이는 거 해결이 전부입니다. 신약으로 올수록 보이는 것은 세상에게 맡겨놔도 된다. 볼 수 없는 신령한 것에 집중하라 말씀과 다른 나의 행동. 말씀과 다른 행동은 전부 더러운 겁니다. 아무리 소독약을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이 볼 때 말씀과 다른 것은, 사상이고 정신머리고 전부 더럽다고 그러십니다. 그걸 더러운 귀신이라 그럽니다. 남만? 남을? 남을 고치고 남만 고칠 거냐. 남을 고치되 남만 고칠 것이 아니라 남을 고치며 자기를 들여다보고 남을 고치며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 눈으로 자기를 못 보지요. 그런데 거울로는 자기를 볼 수 있지요. 그게 귀신 들린 사람들의 행동이 자기 거울입니다. 저 좋은 사람이 저게 하나 미쳐가지고 제 인생 저렇게 망치네. 그 사람의 그 행위가 나의 거울이라 그 얘기입니다. 남을 거울로 삼아 나를 봐서 나부터 고쳐라 날고치기 위해서 남고치고 남을 고쳐보는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것 때문에 목사 교인의 교회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서로 보면서 고치라고. 이것 때문에 부부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 가지고 서로 고치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한 올 두 올 한 올 두 올 잘 짝짝짝 맞아지면 그 짧은 세월에 웃어가며 좋게, 좋게 그리 살 수가 있을듯한데 한눈으로 쭉 봐도 그냥 결혼하는 처음부터, 5년이든 10년이든 문안하게 사신 분은 여기는 하나도 없지요. 제 눈에 다 그렇습니다. 저도 한 15년은 복잡했습니다. 15년 후에 20 한 3년은 잘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말해봐야 기가 막혀 그냥 포기하고 살자. 주님이 잃은 양 한 마리는 없던 걸로 치자 그 말이 되는 겁니다. 그거 주님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잃은 양 하나를 두고 주님은 아흔아홉을 우리에 두고 끝장을 봤는데 넌 그냥 포기를 하자? 내가 너 구원하러 이 땅 위에 온 것은 잘못 왔다는 말이냐? 주님은 이렇게 우리와 자문자답을 하는 겁니다. 내가 고치려 들어서는 안 되겠지마는, 고칠 소망과 고칠 목표와 고칠 기도와 고칠 노력과 고칠 범위는 끝까지 이거는 못 놓는 겁니다. 방법은 빨리 할 수 있고 조심할 수 있지만. 이번 한 주간 말씀이 마태복음 10장 16절, 에베소 5장, 수요일로 갔다가 10장 1절로 돌아왔습니다. 말씀으로 내 마음을, 말씀으로 내 생각을, 말씀으로 내 생활을 말씀으로 나의 경제를, 말씀으로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을 하나 둘 하나 둘 맞추다가 맞아떨어지는 거는 귀신 쫓아내고 깨끗해진 부분입니다. 안 맞는 것은 이게 바로 지금 속에는 귀신이고 겉에는 더러워진 겁니다. 귀신 들어가면 왜 더럽게 이렇게 만들어 놨을까요? 더러워야 알고 고치니까. 차를 운전하다가 차 계기판에 빨간 신호등이 뜨고 막 스위치가 올라가면 지금 속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얼른 세워서 보라고 그래서 스위치 선 그냥 잘라버리면 삐삐 소리 안 나니까 좋겠지. 이제 차가 이 엉망이 되겠지. 그래서 죄를 지으면 악령이 들어가면 더러워지는 것이란 우리 눈에 더러우니 그거 참 고치는 게 맞겠다. 이걸 가르치는 표시판입니다. 남의 더러운 걸 볼 때 내가 책임질 식구면 어쨌든 뭐 야단을 치든 달래든 업어주든 뭐 하여튼 사람마다 다 방법이 있으니 알아서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저녁 다른 사람의 문제가 보일 때 그 문제를 가지고 내속에 나를 들여다보면 아주 잘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나를 고쳐라 이게 말씀의 방향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 1절까지 내려왔습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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