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5.15 마10:16 위험 속에 던져진 신앙이 주님을 붙들면, 세상을 초월하는 하늘의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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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3.5.15 마10:16 위험 속에 던져진 신앙이 주님을 붙들면, 세상을 초월하는 하늘의 인격

관리1 0 65 2023.05.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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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월새

제목 : 위험 속에 던져진 신앙이 주님을 붙들면, 세상을 초월하는 하늘의 인격

찬송 : 61장(이 세상 험하고)

본문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내니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기도)
귀한 세월 천국을 향한 매일로 주시고 세상 속에 하늘을 향하는 이 복된 기회를 주신 주님 천지의 창조도 역사도 오늘의 세상과 만민의 만 심리와 우리가 아는 것 모르는 것 우리를 둘러싼 모든 안팎의 현실을 말씀 따라 걸어가는 한 순간순간을 위하여 일점일획도 가감 없는 정확무오의 복되고 귀한 선물로 현실로 인도해 주시니 한량없는 이 은혜를 금번 기회에 새겨볼 수 있게 하여 주셔서 마음에 무한 감사하고, 이런 역사와 현실과 만 가지 복을 적어도 알 수 있도록 어두운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열어 보여 주시며 우리가 있는 곳곳을 앞날을 위하여 특별한 목적이 있어 우리 교회들을 두시고 두신 교회마다 귀한 종들의 밝은 눈을 주시며 기도와 충성과 인도를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강단들이 약함으로 특별하게 불러 충성시키는 종들에게 더욱 크신 은혜 내려주시고 앞에서 끌며 또 부족할 때는 보충하고 채우고 밀어주시며 주님만 바라보고 받은 말씀으로 걸어가는 저희들이 되어 지금은 약하고 보잘 것 없으나 정한 때 정한 장소 쓰시고자 하실 때 주의 그날을 준비하는 생명력, 이어가는 각 교회 되게 하시고 이 자리 저희들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성경을 읽다가 또 설교를 했다가 또 살아가며 새로운 현실, 어떤 기회, 어떤 순간에 내 마음속에 말씀으로 복된 깨달음이 하나 생긴다면 보통 내가 깨달았다, 내가 알게 되었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느껴집니다. 또 좋은 말씀을 배우면 배우는 순간 그 설교에 내가 은혜를 받았다 나 혼자 깨달았던지 설교 중에 좋은 말씀을 마음속에 잡게 되어 지면 내 생각이 저분에게 배웠다, 내가 깨달았다 보이는 것만 보게 됩니다. 주님이 내 마음속에 직접 알려주시는 것도 있고 내가 노력해서 알게 된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을 통하여 간접으로 알려주는 것도 있고 설교자를 붙들고 그다음 내 마음에 깨닫도록 해주는 것도 있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을 갑자기 열어 깨닫게 되면 이런 것은 보통 꿈속에 환상 속에 또는 갑자기 직접 알게 되었다, 보여주셨다 보통 그것만 계시라 그것만 특별하다 그러는데 내가 노력하거나 내가 생각해서 깨닫게 된 것도 내 의지, 내 인식이 내가 깨달은 거지 내 마음을 흔들어 열어놓은 것은 소리 없이 주님이 하신 겁니다. 오늘 하늘에 금덩이가 10억짜리가 직접 떨어져 횡재를 해도 주의 은혜고 내가 마당을 파다가 금덩이를 하나 발견을 한 것도 그런 현실 그런 인도를 하신 주님의 직접은혜고 이것보다 이 아침에 또 떠오를 하늘의 태양은 하나님이 6천 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정확무오하게 아침 해를 주시고 계시지만은 그것도 하나님의 사실은 직접 은혜입니다. 내가 인식하기를 내 노력이다, 어떤 기회였다, 누구 때문에 내가 배웠다 그러나 중간에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는 것, 내 생각을 통해 알게 하시는 것,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책을 통해 글을 통해 그 다음 내 마음을 열어주는 거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이 알려줄 걸 보낸 겁니다.

내가 하루에 죽도록 땀 흘려 일당을 받고 오늘도 태양을 주셨고 오늘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과 우주 전체를 무사하게 주님이 보존해 주셨고 이게 어마어마하게 큰 거지 이건 잊어버리고 내가 가서 내가 땅을 파고 내가 돈을 벌었다 이것만 강조하다 보면 똑같은 하루를 살고도 늘 인본이 되어 집니다. 내 노력이다, 내 수고다, 내가 하면 된다 하다가 안 되면 환경 이것저것 때문이다 하나님을 자꾸 빼버리는 통에 살아갈수록 자꾸 인본 인간만 자꾸 드러납니다. 오늘 하루 일당을 위해 하나님이 저 무한한 우주 전체를 정확하게 운영하고 보존 섭리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하루를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 이 비용이 사실 어마어마한 건데 그리고 일하러 가는 나의 인체 속에 뇌나 심장이나 그리고 신경 이쪽 조금만 삐꺽하면 이거 뭐 그냥 일하러 가지를 못합니다. 머리가 조금 틀어져 버리면 미쳐버리지 뇌에 문제 생기면 호흡이고 뭐 다 중단돼 버리지 심장 박동 전기 신호 미세한 게 순간 잘못되면 심장마비 오지 뇌와 심장이 건전해도 신경 계통에 문제 생기면 그리 되지 밖으로 우주와 지구와 모든 환경을 하나님이 붙들고 움직이고 계시는 것이 크고 이걸 감사해야 되는데 내가 가면 가는 줄 아니 이 미련한 것이 세 살짜리 걸으면서 제가 모든 걸 먹고 살고 해결하는 줄 아는데 그 부모라는 존재와 보호하는 그 가정과 모든 것이 이게 이 아이를 지금 까지 밀어가고 있는데 자기만 아니까 자기가 전부입니다.

환경도 그렇지만은 내 내면의 생각과 신경 심장 뇌의 인체 활동이 자기가 노력한다고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뭐 아스피린을 먹었니 뭐 혈압 약을 먹었니 운동을 했니 참 거의 이루 말도 못 하는 겁니다.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어항을 하나님이 만들어 이게 우주 공간의 총알보다 더 빠르게 더 회전을 하는데도 태평양이라는 이 어항이 이게 유지되는 것도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보존 섭리 역사고 이 안에 고기들이 이 어항의 고기들이 태평양 바다에 온갖 해양 생태계 해양 그 운영계를 하나님이 운영하기 때문에 이 속에 물고기 한 마리가 나서 자라는 겁니다. 이거 돈으로 또는 물리학적으로 측량도 못할 일입니다. 내가 배를 타고 가서 그물에 하나가 고기가 건져지니까 그 고기를 자기가 키워서 자기가 만들고 자기 건 줄 아는데 하나님이 만들어온 태평양이라는 어항이 하나님이 기르는 이 물고기를 자기는 밥상까지 옮겨다 놓은 시장까지 옮겨다 놓은 그 운송만 수고를 한 겁니다. 우주 가운데 물고기 한 마리가 그냥 생겨집니까? 이게? 우주가 있어야 되는데 우주 안의 모든 물리 우주 물리학이 다 짜 맞아져야지 이게 배경 속에 생겨지는데 그 다음 내 속을 주님이 작은 우주로 운영을 하시니 바깥 우주와 내부 우조가 짜 맞춰지면서 물고기 한 마리를 물속에 있는 걸 시장까지 올려놓고 한 마리 1만 원 한 마리 천 원 곧 천원 만원이라는 것은 태평양이라는 어항을 만든 값도 아니고 운영한 값도 아니고 이 물고기라는 생명체가 자라간 비용도 아니고 여기 있는 걸 여기까지 옮겨 놓은 운반입니다. 운반. 하나님께서 이거 청구하려면 한도 없습니다. 이게 이제 인체와 우주와 여러 가지를 상식적으로 알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하루하루 매 순간을 사는구나, 한량없이 감사하고 한량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고 그런데 주님이 원하는 게 있으니 충성하고 인간적으로 엄청 충성하면서도 속으로는 만 가지 주의 은혜입니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이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그 만들었다는 표시를 “이리 가운데 양을 보냈다” 보냈다고 표현을 한 겁니다. 오늘 하루의 현실을 짜놓고 우리를 밀어 넣은 겁니다. “보냈다” 단순하게 내 밖의 환경, 지구와 우주 전체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그냥 상식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내 속에 인체가 움직이는 역학관계를 보면 그렇습니다. 이 두 개가 맞물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는 단순하게 이런데 그런데 이 전부 속에 내가 너한테 깨달음을 주는 신앙은 양이고 이 신앙을 뒤흔드는 모든 환경은 이리라고 본다면 주님이 짜놓은 이 환경 속에 주님이 내 속에 던져 넣어준 이 신앙 양자의 관계는 환경이 신앙을 흔들어 버리고 집어삼키는 구도입니다. 세상을 이리로 만들어 놓고 거기다 대고 먹이를 던져 놓듯이 양이라는 먹이를 툭툭 던져 놓고 계시느냐 그 양이 목자만 바라보고 목자를 의지하며 목자의 인도를 따라 걸어만 가면 잡아먹는 전체 환경 속에 신앙을 마음속에 또는 현실 속에 던졌는데 주님을 붙들고 던져지면 던져진 신앙이 주님을 붙들면 환경 전체를 활용을 하고 이용을 하고 사용을 하고 오히려 집어삼켜 신앙이 자라버립니다. 신앙의 박해 신앙의 위험한 현실 속의 형편도 외부는 이리, 내부는 양 내 속의 신앙을 깨달음을 유지시키려는 것은 양, 아니 뭐 꼭 그래야 되겠는가? 이런 나태한 이런 여러 가지 내 마음은 환경 내적인 이리 가운데 양, 외적으로 내 외부가 이리고 나는 양 이 안팎의 양과 이리의 관계에 주님 빼버리면 이거는 환경의 소산물 또는 내 마음속에 신앙에 반대되는 마음이 신앙의 마음을 늘 순간순간 눌러버리게 되어 집니다.

주님을 모셔버린 주님을 주의 말씀을 주의 말씀에 인도를 노력하면 내 속의 별별 말씀과 배치되는 것이 전부 고쳐지고 자라가고 그리고 배워가고 그 한량없이 넓은 미국 대륙에 서양사람 하나가 와서 자기가 달리고 자기가 활동하는 건 자기 것이 되고 아이를 낳고 또 뒤에 더 해지며 더 해지며 더 해지며 미 대륙 전부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만든 만큼 그 황무지의 미개한 미개척지가 영국화가 되어졌습니다. 유럽화가 되어졌습니다. 신앙화가 되어졌습니다. 인디언들이 보면 화나겠지. 주님 없이 살던 유교식 내 사고 방식이 보면 어느 날 복음이 들어와 가지고 남녀의 가치관도 살아가는 인생관도 내세관도 흥망성쇠 모든 기준과 판단과 모든 가치관도 다 뒤집어 놓았으니 수천 년 내려왔고 수백 년 형성이 된 그리고 태어나고 나도 모르게 익혀진 내 기존 지식과 사고방식이 되며 보면 어느 날 선교사가 온 게 믿고 어느 날 내 집안에 믿는 사람이 하나 생겨진 게 이게 원수고 내 속에 복음 하나가 들어와서 나의 모든 걸 뒤집어 놓은 게 괘씸하겠지. 유교가 보면 공자가 보면. 그렇지만은 복음이 생명이고 복음이 은혜고 이 복음이 영생이라면 복음 없는 대통령 속에 복음 없는 종교 지도자 속에 복음 없는 내속에 복음의 씨가 떨어져서 내 생각을 내 활동을 내 일정을 내 행위 전부를 내 인생 전부를 복음이 뒤집어 놓은 것은 개화며 문명이며 이건 복된 겁니다. 미국사를 두고 자꾸 먼저 있던 원주민들이 주인인데 말이지 서양 것들이 와가지고 말이지 다 쓸어버리고 이 침략자들 이러는데 야 인간들아 인디언은 그러면 거기서 창조돼서 자기들이 만들었냐, 인디언 없이 행복한 미 대륙을 그 인디언이라는 애들이 어느 날 데려와서 자기 멋대로 살았는데 미국과 신대륙의 자연환경이 인간 이것들이 어느 날 들어와 가지고 지금 마음대로 그냥 사냥을 하고 들소는 그러면 행복했습니까? 인디언한테 당했으니까 억울하지. 자연주의가 채식만 하고 육식은 안 합니다. 그러면 채소들이 또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조금만 따져보면 타락한 이후에는 해결도 없는데 그 어디에 기준 잡아 누구를 욕하느냐에 따라서 이제 내 편이 되고 네 편이 되고 이렇게 세상이 갈라지고 엉망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없는 내 환경은 좋게 말하면 자연환경이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여기 지옥 갈 귀신이었습니다. 귀신이 두목 되고 죄악 세상의 내 인생관, 내 속을 복음의 씨가 하나 들어와 가지고 바꿔 가는 만큼 내 전부가 살아가는데 코로나가 들어와서 온몸을 다 잡고 앉았는데 코로나 해결하는 약이 투약이 돼서 약이 코로나를 다 죽이면 약을 기준으로 보면 내가 나아가고 있는 거고 이 코로나 병균들 기준에서 보면 이 진압군 원수들이 들어와서 우리를 무찌르고 앉았으니 얼마나 화가 날 겁니까? 너는 코로나 편이냐 너는 코로나 반대편이냐 그걸로 보고 나서 해석을 하면 모든 것은 명확해집니다. 내 속에 주님이 말씀 하나를 이렇게 저렇게 던져버렸습니다. 이게 억울하냐? 너는 귀신의 사람이고 너는 하나님이 밉겠지 그럼 너희들만 영원무궁토록 죄악의 자유를 누리는 곳이 지옥이니까 잘 가거라? 결론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면 지옥은 생지옥인데 귀신이 보면 지옥은 영원무궁토록 자기들의 세계입니다. 평양 좋아하면 위로 가면 되고 남한이 좋으면 목숨 걸고 탈출해서라도 오면 되고 와서 좋은 사람은 오고 왔다가도 안 좋으면 또 올라가면 되고 남한에서도 북한 좋다고 기어 올라간 인간들이 더러 있습니다. 가서 보니까 생각이 다르면 또 목숨 걸고 다시 오면 되고. 지옥이 좋으냐? 이 땅 위에서부터 악령 좋아하는 대로 성경의 말씀만 거꾸로 네 멋대로 살고 그런 생애로 지옥을 가시면 됩니다. 우리는 천국 가면 되고. 천국 지옥 자체는 택함과 불택으로 나눠 놓았으나 내 생각과 내 하루해는 주님이 또 이 죄악 세상 속에 오늘의 기회 속에 오늘을 사는 말씀을 주셨으니 말씀 붙들고 오늘을 산다, 

그러면 이 말씀을 붙들고 사는 만큼 내 시간과 내 내면은 전부 다 복음화가 되어 지고 문명화가 되어 지고 천국화가 되어지는 것이고 말씀이 내 생각과 내 하루를 잡아먹는 것만큼 억울하면 내속에 천국이 있지 않냐 말씀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냐 이런 결심이 생길 때마다 진압을 해버리면 됩니다. 어느 쪽이냐? 말씀으로 깨달아진 것은 주님이 내 속에 집어넣은 거다, 양을 집어넣은 거다, 말씀과 다른 모든 것은 이리다. 안팎이. 말씀이란 이 땅 위에서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은혜 속에 살 때만 이리를 능가할 수 있다. 이리 가운데 살아남은 양은 이리를 초월한 양은 이전 양과 이후의 양은 같은 양이 아니다. 주님을 붙들고 양이 이리 가운데 생존했다면 이리를 능가하고 넘어서는 하늘의 깨달음입니다. 인격입니다. 하루해가 구성된 겁니다. 이리가 달라 들어 양이 죽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오히려 이리를 물리쳤다면 양의 훈련이 아닙니다. 양이 가진 이빨이 아닙니다. 양이 의지한 주님이 대신 무찔렀고 주님을 의지한 이 양을 보시고 이 양을 붙들고 주님이 무찔렀고 주님이 한 번 무찌르고 나가면 주님이 도와준 이 능력과 실력과 이 경력은 양에게 고스란히 남아버립니다. 양으로 시작했으나 이리를 익힌 다윗이 되는 것이고 바울이 되는 것이고 오늘 하루 우리의 생애가 되어지는 겁니다.

신앙생활에 유리하면 약한 이리 가운데 두셨고 신앙생활에 내 속의 내면 때문에 어렵거나 환경 때문에 어려운 때 그때는 이제 양이 이리를 초월하고 그 다음 인간이 하늘 세계로 자기를 바꾸어가는 때입니다. 복되게. 주님만 바라보고 하루해를 시작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셨다. 내 마음속에 깨달음 하나 주신 것이 양이 파송을 받은 겁니다. 주님 뺀 양은 100%로 실패입니다. 주님 모신 양은 이리를 이기는 양이 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내가 되다니 내 속에 옛 사람을 이기는 나의 신앙이 되다니 그거 기적입니다. 우주를 만들어주신 주님의 은혜와 같은 차원의 근원입니다. 이게 좋아 행복하게 여기에 정신없이 사는 걸 크리스찬이라, 교인이라고 그럽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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