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3.4.26 대하19:4 모든 판단 요소를 쪼개어 말씀으로 재판, 노력하는 분량 그 부분은 하나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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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3.4.26 대하19:4 모든 판단 요소를 쪼개어 말씀으로 재판, 노력하는 분량 그 부분은 하나님의 것

관리1 0 84 2023.04.26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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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6 수새

제목 : 모든 판단 요소를 쪼개어 말씀으로 재판, 노력하는 분량 그 부분은 하나님의 것

찬송 : 34장(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본문 : 역대하 19장 4절 -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더니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순행하며 저희를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또 유다 온 나라 견고한 성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마다 있게 하고 재판관에게 이르되 너희는 행하는 바를 삼가하라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17장에서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다윗의 처음 길을 자기 노선 자기 주력으로 선택하고, 그대로 걸어가다 보니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 하나님은 위에서 은혜 주시고 백성들과 심지어 이방 나라까지 예물을 드리며 존경하고 따랐더라.

18장 1절,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고. 먹어 배부르니,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여, 그 다음 그 언약을 어기었더라. 아합은 북쪽 타락한 교회인데 말이 교회이지 이것은 작정하고 그냥 바알을 섬겼던, 아주 하나님이 미워한 행위, 해서는 안 되는 신앙의 노선을 걸어갔던 아합과 연혼하여 한 몸이 되었더라. 여호사밧은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붙든 상대방이 더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더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뻔한 위기를 거쳐 넘어오며 다시 재출발을 하며 19장에 여호사밧이 1절에,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왔더라. 앞에 바로 믿은 그 행위 때문에 기회를 주셨다. 2절에 선견자 예후가 왕이 악한 자를 도왔다.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 위에서 없이 하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을 찾았으니” 이번 모든 일이 이렇게 되어진 것이라.

재출발의 기회를 잡은 여호사밧이 4절에, 왕이니 예루살렘에 사는 것이 당연한데, 저 먼 브엘세바부터, 저 위쪽의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을 순행하였더라. 곳곳을 다 살피며, 왕이 친히 민간 산골 곳곳까지 순행하였더라. 뭐하려고 순행을 하였던가? 백성들, 하나님의 양떼 하나님이 맡긴 하나 하나를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였더라. 이게 맞고 이게 되지 않는 것이라. 순행하였더라. 돌아오게 하였더라.
 
5절, 온 나라 견고한 성에, 든든한 곳에 곳곳에 재판관을 세워서 성마다 있게 하고, 왕이 예루살렘에서 아래 위 전국을 순행했는데, 성마다 재판관을 두고 재판관은 자기 근무지에만 있게 하겠습니까? 와서 재판 받을 사람은 와서 재판 받아야 되지만은 왕도 전국을 순행하였으니 재판관도 또 순행해야 될 때에는 순행해야 될 것입니다.

6절에 재판관에게 이르되, 행하는 것을 삼가라. 재판관 너 멋대로 이러고 저러고 그러지 말아라. 조심해라.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것이다. 원래 재판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랬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이 그러한데 여호사밧이 재판관을 세우며, 이거 인간을 봐가면서 인간 너 마음대로 그거 인간의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것이다. 재판은 여호와를 위함이다. 하나님 앞에. 어느 것이 옳으냐? 이게 재판입니다. 꼭 분쟁을 해서 원고 피고가 있어야 재판이라 생각 마시고, 부모 마음에 큰 아이 작은 아이를 두고 이 아이의 진로는 저 아이의 진로는, 내 마음 속의 선택을 둔 모든 선택의 판단이 전부 재판입니다. 법원까지 가는 것만 재판이 아닙니다. 나는 내 마음의 모든 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진로의 재판 선택, 결정. 어느 사업을 할 것인가? 직업을 무엇을 가질 것인가? 학교를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은 왼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하루의 일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전부는 옛사람과 새사람 사이에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 것인가? 이게 다 재판입니다.

목사님 가시고 대구공회 부산공회 소송 벌어질 때에, 첫 번째 소송이 저 쪽에서 들어온 백태영 목사님 쪽에서 들어온 가처분이었습니다. 가처분이라는 것은 재판하다보면 없어질까봐, 미리 재산을 잡아놓고 일단 이겼다 졌다를 떠나서 저 재산을 잡아놓고 손을 못 대게 해놓고 그 다음 재판에서 이기면 가져오고 지면 넘기겠다는 것이 가처분입니다. 일단 잡아놓는 것입니다. 가처분이 들어올 때에 이쪽에서 맞상대를 했는데 교역자회에서 소송하지 않기 위해서 출발해놓고 소송부터 시작하면 되겠느냐 그러니까 소송을 하지 말라고 그랬지 이것은 성경은 송사를 말했지, 소송을 말했지. 성경에 보면 소송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송사라고 그럽니다. 성경에 소송이라는 글자가 있느냐? 이번에 들어온 것은 소송도 아니고 가처분이다. 가자는 가짜 가자다. 진짜가 아닌 것이다. 제가 뒷동네 불신자 노인당에 가 가지고 주일을 이래야 됩니까 저래야 됩니까, 신앙의 모든 결정을 불신자한테 가져 가서 물으면 전부 재판입니다. 전부 소송입니다. 전부 송사입니다. 이 말로 가지고 서로 옳다 그르다 하면 말로야 누가 이기겠습니까? 부부 두 사람이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되느냐? 안 믿는 부모한테 가서 판단을 받으면 그것도 불신 소송입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신앙의 원칙을 두고 어느 것이 옳으냐? 신앙 문제는 그렇게 가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믿는 부부가 믿는 부모한테 물어봐도 그것은 불신 재판 될 수 있습니다. 부부 둘은 신앙이 있는 사람이고 부모는 이제 믿어서 신앙 없는 사람이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는 부모에게 묻고 지도 받을 수 있으나, 신앙이라는 것은 신앙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물어야, 그게 소송 송사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범위가 넓은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재판관을 세웠더라” 성마다 든든하게 곳곳에 두어, 주변 어느 마을 어느 골짝에 있는 사람에게든지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 길에서, 이 사람의 이 말이 잘못 됐고 저 사람의 저 행위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나누고 쪼개어 하나 하나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학교 간 아이와 학교 가지 않은 아이, 학교 간 것이 맞습니다. 등교 시간 엉뚱한 데로 간 것이 틀렸습니다. 학교 간 아이는 학교 가서 갈 때부터 올 때까지 다 100점입니까? 학교 간 것은 옳습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다른 짓 한 것은 잘못됐습니다. 하나 하나 하나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게 재판입니다. “재판은 여호와를 위함이라.” 이럴 때에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하나님이 맡긴 사람에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일일이 살피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이 나라를 치러 들어왔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재판할 때에 7절,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조심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틀리지 않다. 불의하지 않다. “편벽됨도 없으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의도 지나치면 기한 전에 죽는다 그랬습니다.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여기에서 인간 세상 살아가는 재판관이야, 그거 뭐 뇌물을 받든 좌우로 편벽되든 말든 세상은 그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는 공의롭고 공정해서 편파 됨이 없다 그러는데 그 사람 생각은 그렇겠지. 지구가 돌아가는데 편벽됨이 없습니까? 인간의 마음이 영원불변이 아닌데 영원불변이 가능하겠습니까? “불의함도 없으시고” 원칙대로. “편벽됨도 없으시고” 좌로 우로.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연세 많은 분들은 장남이면 전부 옳습니다. 또 지금 사람들은 우리 집 애 행동은 전부 옳습니다. 이것은 내 아이가 한 행동이라도 행동이 틀린 것은 맞다. 이런 것을 양심이라고 그럽니다. 양심. 우리 편이 먹은 것도 먹은 것은 먹은 것이다. 우리 편은 천하를 다 먹어도 그럴 수 있지. 우리 편이 아니면 안 먹은 것도 먹었을 것이라 잡아놓고 보고. 아마 5천만 명이 거의 다 그럴 걸요. 세상은 마지막 결론만 좋으면 됩니다. 마지막 결론만. 마지막 결론 딱 봐 보면 세상으로서는 그래도 네가 낫다 안 낫다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결론이 좋습니다 그거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을 보십니다. 출발을 보십니다. 그 다음에는 가는 길을 보십니다.

8절에 “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과 제사장과 이스라엘 족장 중에서 사람을 세워서 여호와께서 속한 일과 예루살렘 거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충의와 성심으로 이 일을 행하라.” 그리고 예루살렘이 아닌 전국 어느 성읍에 있든지 전부를 하나 하나  하나 하나님 앞에 챙기고 조심하고 살폈습니다. 겉으로 보면 여호사밧 왕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내면을 보니까 이것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석 구석을 다 살펴놨습니다. 이것을 20장 1절에 모압 자손 암몬 자손, 그리고 세일 에돔 쪽에 마온 사람들이 치러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딱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쳐? 나를 쳐? 그러면 야하시엘을 세워 15절에 “여호사밧 왕이여”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여호와께서, 이 전쟁이 너희 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오늘 아침 말씀. 크게 보면 말씀으로 사는 길, 내가 말씀으로 사는 길, 말씀으로 살려는 그 부분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것. 말씀 안에서 신앙의 양심을 통해서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이렇게 찾으려는 순간. 그 마음 깊은 곳까지 하나님의 모든 것이 뻗혀 있습니다. 온 몸에 피를 보내는 것은 이 주먹만한 혈관이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몸 중에 어디든지 베어 보면 피가 나옵니다. 살 핏줄에까지 뻗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연결이, 온 나라 온 백성에게 뻗혀 있는데 치러 온다? 하나님이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몸이 되어 있는데 몸을 치면 하나님께서, 이것은 해결을 직접하시는 것입니다. 결혼도 직업도 아이에 대한 교육도 진학 진로의 방향도 내 가정의 내 직업의 모든 사안의 판단 하나 하나를 주님을 생각하고 말씀 안에 그 다음, 무엇을 원하실까? 이게 20장에 19장에 여호사밧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 이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나도. 왕궁의 왕자가 머리 좋아서 왕자로 선발 되었습니까? 왕궁의 공주가 공부를 잘해서 시험 쳐서 들어간 합격증입니까? 왕이 낳아놓으면 왕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 순간 신분이 왕족이 됩니다. 이것을 치면 왕이 나를 무시해? 이렇게 되어집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신앙이 자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신앙이 더 자라면 하나님의 손발 몸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이렇게 지켰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손바닥에 새겨놓는데 신앙이 더 자라서 더 하나님께 붙들리면 하나님이 나는 머리고 너는 몸이고 나 원하는 대로 너는 움직였으면, 그 가는 길이 이게 시온의 대로가 되어집니다. 만사 모든 결정을 두고 분쟁도 염려도 소란도 별별 일이 많아도, 믿음은 주의 것, 주께 순종하고 걸어가는 이 걸음 걸음이 모든 것의 해결이라. 앞날을 맡겨놓고 가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재판관을 세웠더라. 재판관을. 내게 주신 내 범위 내 식구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주님 앞으로. 내 내면 내 마음 내 일정 내 하루를 주의 것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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