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3.4.15 대상6:33 광야에서 모세 비방하며 원망에 앞장 서다 죽은 고라, 그 자손은 찬송의 중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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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3.4.15 대상6:33 광야에서 모세 비방하며 원망에 앞장 서다 죽은 고라, 그 자손은 찬송의 중심에

서기 0 58 2023.04.15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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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 '이스마엘'은 모두 '에서'로 정정합니다.



230415 토새

제목 : 광야에서 모세 비방하며 원망에 앞장 서다 죽은 고라, 그 자손은 찬송의 중심에

찬송 : 148장(이 죄인을 완전케 하옵시고)

본문 : 역대상 6장 1절 -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그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아므람의 자녀는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이요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며

역대상은 1장에서 9장까지 아담으로부터 노아 또 아브라함. 그리고 열두 지파를 일일이 짚어가며 성경의 족보 중심으로 기록해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 중에 6장은 레위 지파의 족보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세 번째 아들이 레위입니다. 레위의 아들은 1절 게르손 그핫 므라리 3명이었습니다. 성경의 이름을 읽을 때 아들이 세 명뿐이라, 요렇게까지 적으면 셋으로 읽는 것이 맞고 그냥 적었을 때는 더 있을지 모릅니다.

또 게르손 그핫 므라리 라고 이렇게 순서를 적어줬을 때는 이 나이 순서인지 신앙의 순서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 늘 출생 순서가 아닐 수도 있다, 하고 읽어야 됩니다. 일단 기록에 쓰면 그대로 읽는 겁니다. 12지파 중에 세 번째 아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 그핫 므라리라. 또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 이 그핫을 성경 다른 데서는 고핫으로 표시할 때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이름을 두 개 가지는 경우도 있고 똑같은 사람을 번역하면서 이름을 달리 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레위의 셋 아들은 게르손 그핫 므라리라. 2절. 셋 아들 중에 가운데 아들, 그핫의 아들들은 그게 레위 지파의 제일 중심으로 내려옵니다. 그핫의 아들들은 아브라함 이스라엘 헤브론 웃시엘, 네 명을 기록했습니다. 레위의 아들은 셋, 두 번째 그핫은 아들이 넷이라. 아므람 이스라엘 헤브론 웃시엘인데, 아므람의 자녀는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이요. 아론이 모세보다 3살 위입니다. 나이가 적혀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형 아우를 구별하기가 쉽습니다. 미리암은 밑에 적었는데 모세와 아론의 누나가 되어 집니다. 남자를 먼저 적고 여자를 대개 뒤에 졌기 때문에 아론 모세 그 다음 미리암이요.

그 다음부터입니다. 아론보다는 모세가 더 중요하나 출애굽 때는 모세 중심으로 인도를 하셨으나 이스라엘 역사를 두고 주님 오실 때까지 내려가는 신앙의 중심은 레위 지파의 모세가 아니고 아론입니다. 모세 아론이 살아있을 때는 모세가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몇 천 년 내려오는 기간은 늘 아론 지파가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에 제일 중심에서 내려옵니다. 오늘의 지도자가 내일에 따라 오는 교인 되고 지도자 밑에 한 교인이 그 다음에는 지도자가 되어 더 오래 갈 수도 있고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인도하실지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 곤란하다 이것은 항상 기억해야 되는 상식입니다.

예전에는 주먹 억세면 전부인데, 주먹이 억센 집안이라고 똘똘 뭉쳐 옆을 쥐박아 되다가 이게 뒤집어져가지고 참 고생하는 그런 경우도 있고. 부모 때는 이쪽 집안이 굵직 굵직해서 짱짱하고 그 옆에 치여서 어렵게 살았는데. 늘 그럴 줄 알았는데, 이게 바뀌어가지고 참 딱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이게 다시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고 안 뒤집어지고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참 그렇습니다. 오늘 억세다고 오늘 잘 나간다고 소리를 높이면 철이 없어 그런 겁니다. 경험이 없어 겪어보지를 못해. 근데 인간이 어떻게 남의 인생을 다 겪어봅니까? 겪는 것은 하나밖에 못 겪어보는데. 나는 내 인생 하나를 사나, 눈치로 이 집 저 집 이런 저런 것을 쭉 둘러보고 비교를 해보면,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살아놓고는 10명 100명 천 명 만 명을 읽어내는 경우도 있고. 인생 기구해서 수많은 사람이 겪어야 될 기이한 환경을 다 겪고도 놀랍게도 그거 참 자기 살아온 것도 기억에 남지 않아서 겪은 세월이 다 헛 일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신풍에서 일제와 반란 사건과 6 25를 겪은 사람들이 지금 80세는 일제 때를 기억을 못하고 한 85은 그래도 넘어야 기억을 할 건데, 일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반란 사건과 6.25를 고대로 기억한 분들 치고 일제 때를 겪어봤나? 겪어 봤을 리가 없다, 딱 싶은 분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심보라 어른, 그분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일본 경찰한테 맞아 그냥 죽어버린 일을 직접 본 분입니다. 반란 사건을 생생하게 두 눈으로 봤고 그것 때문에 스물도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 전쟁 났다니까 총 들고 제일 먼저 뛰어 나간 사람입니다. 그분만 일제와 반란과 6.25를 아는 사람, 딱 한 명. 나머지는 불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와 놓고도 불구덩이에 다시 들어가는 사람, 불구덩이에서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면 아직도 불맛을 못 봤다는 것이 되어집니다.

레위의 아들이 셋이고 레위의 아들 중에 가운데 아들이 그핫인데, 그 그핫의 아들이 아므람입니다. 이 아므람의 자녀가 아론 모세 미리암 입니다. 이 셋을 기른 것은 아므람이 아니라 아내 요게벳인데, 근대 요게벳은 적지도 않았습니다. 적지 않았으나 아므람 속에 요게벳이지, 아무 없는 아므람을 벗어난 요게벳이 아닙니다.

오늘 새벽 말씀은 레위 그핫 그 다음 아므람, 3대가 내려오고 4대째 모세가 나오는데. 출애굽으로부터 늘 모세 이름이 나왔고 아론을 대제사장 세울 때도 모세가 세우고 지도를 했는데 모세와 아론 당대의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자녀 때로 오면서는 모세의 자녀는 이름이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아론이 늘 이스라엘의 중심이 돼가지고 이스라엘이 망하는 마지막에 에스라서에 에스라도 아론의 직통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4명인데, 나답과 아비후는 아들이 없이 죽었다고 성경에 고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엘르아살 이다말로 내려옵니다. 4절에 엘르아살은 비느하스를 낳았고 그리고 쭉 내려오는 것이 어디까지 내려오지요? 15절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여호사닥도 갔었더라.” 아론 엘르아살 비느하스로 내려오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 제일 중심. 일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는 대제사장. 이스라엘의 제일 신앙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을 직접 모시는 계통이 1절에서부터 15절까지 쭉 내려옵니다.

그 다음 16절에 보면 레위의 아들이 앞에 셋이라 했는데, 한번 더 적고. 1절에서부터는 그핫으로 대제사장을 적었는데, 이번에는 그핫 위에 게르손의 아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17절, 그리고 그핫의 아들들은 아므람 이스할 헤브론 웃시엘이요 해놓고 므라리 계통을 또 쭉 적고 이렇게 내려옵니다, 넘겨서. 1절에서 30절까지는 쭉 내려오면서 제사장 중에서도 레위지파 중에서도 제사장, 제사장 중에서도 제일 중심을 적어오다가 31절, 언약궤가 수 100년을 그냥 떠돌아 다녔습니다, 400년 이상. 그러다가 31절, 다윗 때에 언약궤를 편안한 곳에 모셔다 놓고 솔로몬이 32절에 성전을 세우는데, 항상 언약궤를 모신 곳이 성전이 되어지고 하나님을 모시는 제일 중심이 언약궤, 언약궤입니다.

이 언약궤가 광야에서는 계속 옮겨 다녔기 때문에 언약궤를 메고 이 언약궤에 드리는 향과 제일 중심 물품을 가지는 것이 대제사장인데, 솔로몬이 성전을 만들고 성전이 집을 지어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성전이 되고 부터는 그래도 대제사장은 대제사장이나 옮겨 다닐 때는 별별 직분이 많았다가 옮겨 다니지 않게 되니까. 31절, 다윗이 이 아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했더라. 언약궤가 옮겨 다닐 때는 메고 다니는 것이 제일 중심이었고 그다음 언약궤가 자리를 잡아 솔로몬 성전에 모셔지니까, 대제사장 하나만 언약궤 안으로 들어가고 늘 하나님을 모시는 진설병 등대를 관리하고 그리고 언약궤를 모시는 일은 말할 것 없고. 그 다음 찬송하는 일을 맡겼더라. 이 아래에 무리를 세워 32절,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놓고

그 다음, 그때까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반열이라는 것은 이쪽 저쪽 이렇게 열을 맞춰 놓는 걸 말합니다, 1반 2반 3반으로. 33절 찬송하는 직무를 보니까 그핫의 자손 중 헤만이 있는데, 헤만이라는 사람이 제일 중심에 서는데, 이 헤만의 족보를 쭉 살펴보면 헤만은 37절에 조상으로 쭉 올라갔습니다. 스바냐는 다핫의 아들이요 다핫은 앗실의 아들이요 앗실은 에비아삽의 아들이요 에비아삽은 고라의 아들이요. 그 다음 38절입니다. 고라 아버지는 이스할, 그 위에가 그핫입니다. 그리고 레위입니다. 레위 그핫 그다음, 이스할의 아들이 바로 고라입니다. 모세와 한 사촌 정도 됩니다. 고라가 모세를 대적하다 죽었는데, 고라의 아들들은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 셋은 죽지 않습니다.

그 고라의 아들로 에비아삽으로 쭉 내려오며 그 다음 솔로몬 때 있었던 고라의 아들이 바로 헤만입니다. 그 헤만이 찬양대에 중심이 있고 좌우 편이 있는데, 중심에 선 헤만이 고라의 직통입니다. 조상 고라는, 하나님의 역사에 불만이 많았고 불평이 많았고 나는 왜 두목이 못 되냐고 반란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모세 아론 너들만 다 해 먹냐 너만 잘났냐? 나도 레위 지파 아니냐, 그러다가 두목이 되어 죽었습니다. 반란의 두목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반란이라고 그러는데 쉽게 말하면 불만이 많았고 불평이 많았고 원망이 많았고 뭔 놈의 입이 벌어졌다 하면 원망 불만 왜 이러냐? 투덜투덜 짜증만 내는 사람이 고라입니다.

아버지가 고 짓을 하면 밥상에서 살아가며 그 돈 받고 얼굴 보고 그 말 듣다 보면 아버지가 투덜거리면 아들도 그러고 그러다 보면 짜증 원망 불만 불평이 나오고 마지막에 기회가 되면 뒤집으려고 나오는데. 전체를 세팅해 놓은 게 하나님인데 세팅해 놓은 하나님, 체계를 만들어 놓은 하나님, 체제를 만들고 반열을 만들어 놓은 것 자체를 뒤집어 버리면 모세가 찔리는 게 아니라 모세가 뒤집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세 반석을 뒤집으려는 것이 되어집니다. 그 두목이 고랍니다. 그래서 성경 역사 전체에 원망이 제일 많았던 사람, 불만이 많았던 사람, 짜증이 제일 많았던 사람, 그 이름이 누구라고요? 그 이름이 고라입니다. 왜 나는 둘째로 태어나 늘 형아 걸 물려 받냐? 저도 한 몇 년 투덜거려 봤던 것 같습니다. 새옷 하나 사면 전부 위에 형 꺼고. 1년 2~3년 입고 나면 그 다음 애매할 때 새 옷은 또 저쪽 가고 그 다음 물려 입는 것은 저고. 애들이 뭐 한두 번이고 아니고 남자애들이니까 그런 거 신경도 안 쓰는데 이게 1년 2년 3년 계속되니까, 그 다음 어느 날 나오는 겁니다. 난 뭐냐? 이러고 저러다 보면 다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믿음의 조상, 아버지로 볼 때는 아브라함이고 제일 용명한, 왕 중의 왕이라 할 때는 다윗이고 모든 걸 다 합해서 구약 전체에 하나밖에 없는 지도자 할 때는 이스라엘은 무조건 모세입니다, 모세. 예수님이 오셨을 때 다윗과 아브라함 이름으로 쥐박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이름으로 쳤지. 모세가 우리의 구원이요, 구주요, 우리의 지도자요, 우리의 가나안 천국까지 인도할 뿐인데 어떻게 모세와 다른 말을 하냐? 이래서 처형해 버렸습니다.

매일 매일이 반석에서 물을 내고 만나로 40년을 인도한 모세, 뭐 이게 참, 주신 가나안 나라를 지켜낸 다윗, 더 넓힌 다윗보다 400년 종살이 한 걸 전부 데리고 나온 모세입니다. 그 모세의 매일 매일을 보면 그 두려웠어야 되는데, 고라가 제일 큰 두목이었습니다. 원망 불만 원망 불만 짜증과 반대 말이 뭐지요? 저 뒤에? 원망 불만 짜증 불평의 반대말은? 찬송입니다, 찬송. 단어로는 감사고 이 감사가 듣는 사람이 들을 때도 감사의 종류도 많습니다. 울음의 종류도 많고. 속에는 넘치는 만족이고 넘치는 만족이 밖으로 튀어 나오면 감산대, 그 감사를 감사하는 방법도 유교에 우리나라 감사는 혀를 꽉 깨물고 말을 안 해야 이게 점잖은 감사가 되고. 서양 사람은 마음 편하게 한다고 감사 한다는데, 그 놈의 감사가 하나인지 열인지 하도 뻥튀기를 해서 속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사실은 좀 모르겠습니다. 너무 감사를 많이 말하니까.

이 감사가 듣는 사람이 들을 때도 취해서 같이 빨려 들어가게 되어지는 그걸 찬송이라 그럽니다. 방향은 하나님을 향하는 건대, 하나님 감산대, 속에 있는 것이 나오면서 듣기에도 좋은 노래지요? 제일 노래 위의 노래가 찬송입니다. 솔로몬 때가 되면 조상 고라가 모세를 맞상대하다가 주변 250명이 전부 땅을 땅이 삼켜버리는 그 두목이 고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손 여자들까지 들어 붙어서 함께 떼거리로 반대 했는데, 고라는 아들 셋이 전부 아버지 불만에서 벗어 났었습니다. 망할 아버지 불만에 포함이 되지 않았더라, 그때는 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망할 짓 했는데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그 아버지 짓을 하면 보통은 다 들어가는데,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 편에 들지 않았구나! 나쁜 편 멸망할 편에 들지 않았구나! 정도로 읽었는데, 역대상 6장에 고라의 자손이 쭉 내려가면서 그 직계에 헤만이라는 이름이 턱 나옵니다.

이 사람은 뭘 맡았는고? 크게 레위 지파니까 성전에 관계되는 일인데, 제사장은 엘르아살 쪽으로 쭉 내려오나 이 뭐 하는 사람들인고? 그핫 쪽에 아므람의 아들 엘르아살로 쭉 내려오면서 성전의 대제사장과 제일 중심 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전체 레위 지파는 문지기도 하고 옆에서 하는 일이 많은데, 그중에 원망하다가 죽은 고라, 그놈의 아들의 직계가 헤만인데 솔로몬이 수백 년 지난 400년 지난 고라의 아들 중에 하나님 나라에 가장 감사가 넘치고 감사를 가장 잘 표시하는 사람, 헤만을 찬양대의 중앙에 세웠습니다. 

아버지가 술 먹고 개기면 싫다 아니다, 나는 안 그러겠다 해도 결국은 뱅뱅 돌아 엄마 닮는 것이 딸이고 아버지 닮는 것이 아들인데, 그렇다고 이게 전부입니까? 고라의 직계 속에 하나님 찬송에 제일 앞에 선 사람, 중앙에 선 사람이 헤만이고. 고 헤만 오른쪽 왼쪽에 하나씩 있는데 오른쪽에 선 사람이 누구라고요? 아삽입니다. 그래서 고라 아삽 그 다음이 에단이지요? 몇 절인가요? 44절, 그 좌편에서 직무를 행하는 자는 에단이라. 또 에단의 족보를 쭉 살펴보면 므라리 쪽입니다. 레위 지파 중 아므람 고핫 아므람 아론으로 내려오는 쪽은 제사장, 제일 중심에 섰고 그 다음 하나님을 섬기는 이 제사장 옆에 감사를 맡아 찬양을 하는 새 반열. 가운데가 헤만, 오른쪽이 아삽, 왼쪽이 에단. 제일 가운데 선 헤만의 족보를 보니까, 수 백년 자자손손 내려 오는 고라의 직통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족보 욕할 것 없이 족보가 원망 불만의 민족이며 집안이며 지역이니, 눈 똑바로 뜨고 난 찬송하는 사람이 되겠다. 그리고 여호사밧 때에 이스라엘 역사 전체 중에 가장 큰 전쟁에 찬양복 입고 찬양대가 앞에 서고 하나님이 내부를 전부 다 내려 앉혀 단 한 명도 죽지 않은 전쟁, 그리고 다 가지고 온 전쟁이 바로 이 전쟁입니다. 구약의 신기한 참 묘한 그런 일일하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는 늘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내가 대제사장 되어 내 마음속에 늘 주님 모셔야 되고. 그것이 밖으로 표시가 되면 안에 감사가 밖으로 찬송하며 살아가는. 구약은 대제사장 아론의 계통과 찬송하는 헤만과 에단과 아삽의 계통 계통이 사람이 다르고 서로 위치가 달랐으나 오늘 우리는 우리의 한 생애 우리의 하루 우리의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담아 이리 보니 감사요, 이리 보니 제사요, 이리 보니 하나님 모시고 늘 다니는 대제사장이며 그리 돼야 됩니다.

어, 어제 시편을 짚어가다가 고라의 자손의 고라가 고라가 죽을 때 자자 손손 옆에 모두 다 함께 묻혔기 때문에 늘 그 선입관 때문에 이번 양성원에서도 역대상 6장을 살폈고. 5월이 아니라 8월 집회 교재 때문에 계속 지금 열왕기상 역대상 이쪽을 살폈는데도 또 깜빡하고 이게 그 동안 선입관 때문에, 광야에서 죽은 고라와 시편의 찬송을 맡은 고라의 자손은 동명이인으로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고랍니다. 그러다 보니 또 더 은혜스러워 설교 진도 중에 고라를 잠깐 살폈습니다. 감사의 사람. 받은 게 많고 감사를 겪어서 감사하는 사람도 있고 조상이라는 인간이 일 천년 억울하다고 욕을 신풍에 들이 부어도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풍 안에서 감사가 더 많이 나올 수가 있어야 되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원망하는 자 불만하는 자 하나님을 못 봅니다. 원망이 그냥 소망의 다른 표현이 아니라 진정 원망이 사무치면 그 인간 하나님 못 봅니다. 그 말해도 원망만 쏟아 놓으실런지요.



1차 -J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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