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4.14 대하20:22 대적 3국, 원래 신앙 동지, 미래가 탈선한 것, 자기 속 탈선이 자기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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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3.4.14 대하20:22 대적 3국, 원래 신앙 동지, 미래가 탈선한 것, 자기 속 탈선이 자기 원수

관리1 1 255 2023.04.14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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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4 금새

제목 : 대적 3국은 원래 신앙 동지와 미래가 탈선한 것, 자기 속 탈선이 자기 원수

찬송 :

본문 : 역대하 20장 22절 -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심으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전쟁의 모든 형태는 아닙니다. 전쟁의 한 형태입니다. 항상 노래와 찬송을 앞에 세울 때 하나님이 뒤처리를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처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 유다를 치러 온 암몬과 모압과 세일이라. 유다는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 나라 안에서도 바로 믿기 위해 버티는 작은 세력이었습니다. 12지파 중에 둘, 12지파 중에 둘이면 열에 한 둘이라, 이렇게 계산하면 됩니다. 그 다음, 그 나라 밖에는 암몬과 모압이라. 아브라함의 동지, 아브라함을 따르던 처음에는 아브라함과 함께 아브라함을 따라 나온 신앙에 본류였습니다. 가다가 여기서 옆으로 뻗어나간, 옆으로 방향을 비껴버린 쪽이 소돔으로 간 모압과 암몬입니다.

그 다음 세일산이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 이스마엘 계통입니다. 아예 아브라함을 따라 나온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아브라함이 신앙을 출발할 때 함께 했던 동지가 세일, 어, 모압과 암몬. 그 다음, 모압과 암몬의 롯이 나간 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 이스마엘 자손, 아브라함의 오른손 왼손이라 할 만큼 아브라함의 왼발 오른발이라 할 만큼 아브라함의 뼈대만 남고 아브라함에 속한 전부라 할 만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훗날이지요? 롯은 아브라함의 현재의 절반입니다. 아브라함 부부가 나이가 많은 삼촌이었으나 아이가 늦어. 롯은 부부에 또 딸 둘, 그러면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 교인이 총 몇 명이 되나요? 여섯 명입니다. 아브라함 부부 둘, 롯의 집안 넷. 여섯명 개척교회에 네 명이 소돔으로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그 소돔으로 방향을 틀 때의 고 원인, 그 문제는 밖으로 드러난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 보이는 계명이 아니라 계명 안에 진리 안에 말씀 안에서 차선 안에서 어느 것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까? 요 정도였습니다. 속에 들어 있는 방향, 중심. 방향을 조금 바꾼 겁니다. 자세와 방향이 약간 달라졌는데, 세월이 지나가니까 아주 쭉 그냥 많이 떨어져 버린 겁니다. 이게 신앙에 함께 갈 때 미세하게 일어나는 그 마음, 그 자세 때문에 이게 세월이 하나 둘 가다 보면 환경과 세월이 흔드는 바람에 점점 멀어져 오늘 우리가 되돌아보니까, 어떻게 망할 소돔과 고모라로 제 발로 걸어갔을까 싶지만. 그 출발의 처음을 살펴보면 그렇게 큰 죄인, 작정하고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죄 짓고 그렇게 된 것도 아담이 없을 때 하와를 뱀이 찾아왔더라. 아담이 없을 때, 머리가 없을 때. 우리 같은 머리야 떼 놓을 수가 없지만 아담이라는 남편은 늘 있는 것이니까 늘 대장이니까 늘 함께 있으니까 그 일 때문에 좀 떨어질 수도 있고 눈에 안 보일 수도 있지. 출장 못 갑니까? 출타 못 합니까? 출근하면서 부부들이 손 잡고 다니라는 얘기인가요? 오늘도 그런데. 직장을 가는 속마음이 뭐냐 그게 문제지요. 아까와서 아껴야 되니까 고생시키기 싫어 있는 힘을 다해 더 좋게 하려다 보니까. 돈은 밖에서 벌어와야 되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걸음, 보고 싶어 그냥 함께 있어야 되는데. 더 아끼고 더 책임 때문에 잠깐 밖을 가는 겁니다. 내부 때문에 좀 밖을 나간 겁니다. 출발이 이렇게 될 때는 출근하고 출타하는 공간의 이동 때문에 마음은 더욱 여기 있는 건데. 근데 계속 세월 속에 오고 가다 보니 늘 집에 있는 안 사람이고 늘 보는 그 얼굴이니 첫사랑이 좀 식어졌고 표가 나질 않습니다. 출근 퇴근 겹치다 보니까, 이제 퇴근 시간이 슬슬 늦어지고. 안 볼 때의 그 마음 속에는 집에 있는 아내와 가족이 옅어지고 흐려지며. 그게 바로 에덴동산 타락에 시작이 되고 동기가 되고 배경이 된 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는 겁니다. 멀어지고 흐려지고 옅어졌는데, 귀신이 그 틈을 그냥 버려둔다? 그건 있을 수 없는 겁니다. 뱀과 귀신을 욕을 하자니 잘 나가는 에덴동산에 들어와서 그런 나쁜 죄를 짓고 이간질을 했다 그리 되지만. 귀신을 불러들이려고 환장을 했지, 이게 에덴동산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문제도 제사를 드리는 그 속에 들어있는 중심 문제였습니다. 금지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늘 이렇게 이렇게 내려왔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과 롯도 본토 친척 아비 집에 흩어졌고 함께 모여 있는 많은 식구들 중에 두 가족만 빠져나왔으니, 둘은 더욱 가까웠고 동지였고 한몸이었고 그 가는 과정이 그랬고 애굽에 갔다 나올 때의 과정도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같은 복을 받았고. 같은 복을 받아 함께 있을 수 없도록 넘치게 된 것을 보니까, 아브라함과 롯은 똑같은 걸음을 걸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애굽에 다녀올 때의 마음에 아브라함이 더 낫고 롯이 덜 했더라면 구약이라 보이는 복을 준 것이 달랐었는데, 양쪽에 맡긴 것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뉠 때까지는 한 걸음이었는데, 아브라함과 롯 사이를 들여다 보니까.

이사야 어, 신명기 31장 20절 약속한 땅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드린 후 먹게 되고 먹어 배부르면 이게 가나안에도 이어졌고 그 앞에 소돔으로 갈 때도 이어졌고 이게 에덴동산 안에도 먹어 모든 것이 만족이니까, 그 만족이 감사로 방향을 틀어버리면 영원불변인데. 먹어 배부른 것이 감사가 아니라 살이 쪄 받아놓은 은혜가 여러면에 꽉꽉 쟁겨버리니까, 주신 분이 좀 떨어져도 받아 가진 것이 많으니까 버틸 수 있고. 이걸 가지고 방향을 틀어버리니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떨어지는 만큼 방향은 다른 데로 갑니다.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방향이 바뀌며. 방향을 바꿨으니까 하나님 아닌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 멸시가 되는 거고. 그러면 나중에는 길까지 벗어나는 것이고. 이게 차례대로 그렇게 가는 겁니다. 모압과 암몬이 그렇습니다.

모압과 암몬의 롯이 나간 다음 큰 아들, 첫 아들 이거는 아브라함의 내일인데 아브라함의 다음인데, 이삭보다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아브라함의 다음인데. 이스마엘도 벗어난 것이 세일 거민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의 계통 안에 동지였고 내 일이었고 한몸이었는데 한몸 속의 방향이 조금 조금 달라지며 세월이 가면서 아주 달라져, 이번에는 치러 들어올 때 셋이 합해서 치러 들어왔습니다. 구약에 전쟁의 역사고 민족들의 역사인데, 크게 보면 전쟁이란 남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남북이 어디 뭐 일본만큼 멉니까? 중국만큼 말이 다릅니까? 그러니 이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38 이북에 북한 떼 놓고, 남쪽에 동쪽 서쪽 투표할 때마다 전쟁이 벌어져 차라리 칼 들면 한 번 싸우고 하나가 지면 끝이 나는데 칼을 못 드니까 이제 입 싸움 주먹 싸움은 이건 마음의 미움은 더 강해지는 겁니다. 부부의 싸움도 그렇고 부모 자녀의 전쟁도 그렇고 한 몸이 지식적으로 끝까지 하나 되면 더 좋아지는데. 겉이 하나인데, 속에 있는 사상 지식 들어간 게 다르면 결국 안에서 소리 없는 전쟁은 더 커집니다. 옆집이 미워봐야 얼마나 밉겠습니까? 밥상을 두고 그냥 부부끼리든 아니면 부모 자녀의 세대 간이든 지식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면 결국은 이건 더 큰 전쟁이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가 미워 가지고 이렇게 이를 갈며 우주의 저 많은 별 중에 어느 별이 미워서 밤잠을 못 잡니까? 내 나라 대통령이 미워서 밤잠 못 자는 사람은 가득 찼지요. 저한테도 매일 전화가 옵니다. 문자가 옵니다. 저 호랑이가 잡아갈 저놈이 아직도 잡아가지 않으니 밤잠이 안 온답니다. 신풍의 제일 지성인들이!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고 연세도 그렇게 많으면 철이 드는데. 애들은 애들 소리가 하지만은 나이가 많으면 철이 들어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가 되니, 세상이 어느 정도일까 눈에 훤한 거죠.

여기 지금 암몬 모압 세일산 3개 나라, 3개 민족이 연합에서 이스라엘의 북쪽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남쪽을 치러 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여덟 아홉이 안에 있으면서 이미 방향을 바꿨고 열에 하나 둘 밖에 없는 걸 치러 들어온 것이 바로 유다 나라가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있었던 암몬 모압 그리고 세일쪽입니다. 내 마음속으로 얼른 돌리지 않으면, 그러면 총공회 교단이 출발될 때 고신에서 나왔는데. 하기야 고신 합동이 이렇게 똘똘 뭉쳐 우리를 오랫동안 뭐 비판하고 정죄했으니 그들을 말하는가? 당연히 교단적으로도 그렇고 교계적으로도 그렇고 천주교 기독교가 남입니까? 500년 전에는 하나였는데. 천주교를 기준으로 보면 기독교가 천주교 안에서 나오는데, 눈을 바꿔 놓고 보면 구원의 계통이 내려가다가 대부분이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 천주교입니다. 천주교 평생에 하는 일이 그냥 기독교 토벌하고 없애다가 못 없애니까 물타기를 하는 게 지금까지 역사입니다. 다 그렇습니다. 세계사도 그렇고 밥상의 가정사도 그렇고 한 교회도 그렇고 다 그런데, 그것보다 구약은 보이는 걸 가지고 먼저 살피고 신약은 내 속에 들어와 내 속에 있는 어느 지식이 모압이며 어느 지식이 모압을 따르는 동생 암몬이며 그런데 전쟁 치러 올 때는 암몬이 앞서고 모압이 또 뒤에 들어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 속에 어떤 습관 어떤 사상 어떤 나의 과거가 오늘의 신앙의 나를 뒤흔들고 있는가? 모두가 태어나면서 믿었고 부모가 업고 다닌 거 말고.

세례 요한처럼 뱃속에서부터 중생이 되어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내 안은 하나였다. 그런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세레 요한은 배 속에서부터 믿었으니 세례 요한 속에는 미중생이 없고 옛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까? 원죄도 없을까요? 없는 사람 없습니다. 나 속에 믿기 전 나, 이게 롯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함께 나왔으니까. 롯 조카 가정 떼 놓고 나왔으면 외로워도 훗날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터인데, 그것도 해석이 잘못된 겁니다. 아브라함 안에도 옛 사람, 새 사람 섞여 있습니다. 저런 인간을 갖다가 전도해 놓으니 저것이 교회에 와가지고 처음에는 덕을 보다가 나중에는 해꼬질 해서 그렇지 않은가? 저런 거는 전도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된다. 이런 얘기도 교계 안에서는 흔하고 우리도 흔히 듣습니다. 넌 태어날 때부터 반쪽아리로 태어났고 3분의 1만 가지고 나왔어야 되느냐? 이래 말하면 그건 펄쩍 뛰면서 그렇지 않다 하겠지요. 근본적으로 일부러 하나님이 하나 안에다 대고 둘을 섞어 안에서부터 싸우고 안에서부터 옳은 걸 더욱 긴장하고 가꾸려고 주신 겁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는 자기 속에 믿기 전 자기가 있었습니다. 이걸 떼내느냐 없애느냐? 그리 되면 세상을 떠나 산속에 들어간 수도원 수녀원. 요즘 말로 공동체 그래가지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산속에 들어가 우리 내계 들어가서 우리끼리 거기서 마을 이루고 살면 마음은 편하지 않겠냐? 그 안에는 그러면 한 쪽일 것 같습니까? 늘 항상 두 길인데. 내 마음속에 믿기 전 나는 어떤 지식인가? 어떤 습관인가? 어떤 사상인가? 늘 지켜보지 않으면 그게 들어 내 속에서 나를 쥐어박습니다. 이게 암몬 모압 세일입니다. 이들이 들어왔는데, 이들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치러왔는데 이스라엘 중에서도 바로 믿는 몇 안 되는 이쪽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걸 막는 이걸 이기는 방법은 앞에 22절 이었습니다. 다른 전쟁은 군인이 앞에 서는데, 모압 암몬 세일이라는 내면 신앙 안에 함께 가야 되는 신앙의 동지면 나의 일부, 나의 선배가 밀고 들어올 때는, 그럴 때는 노래를 불러라 노래 중에서도 더 강조한 것이 찬송입니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좋을 때 일반적으로 기쁜 겁니다. 그 중에 특별히 하나님만 딱 찍어 모든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요렇게 모아질 때 찬송이라 그럽니다. 믿는 사람의 일반적인 노래는 그 속에 찬송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의 모든 노래는 그 속을 분해 해 보면 찬송이 들어 앉아 있어야 됩니다. 아이가 옷이 좋아 자랑하고 먹을 게 많아 친구들과 자랑하고 그 속에는 모두 나는 부모 때문에 그렇다는 그 노래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이거 좋고 저거 좋고 좋은 것이 노래인데, 그 모든 노래 속에는 알고 보면 찬송이 들어 앉아 있어야 됩니다. 이 노래와 이 찬송이 흔들린 것이 세일입니다. 이 노래와 찬송을 빼버린 것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에덴동산에 타락의 시작이 에덴의 하늘을 볼 때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에덴의 앞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은혜는 이걸 해결하라고 주신 것이니 감사하고 에덴에 사는 부부가 땅을 내려다 볼 때마다 우리는 저기 출신인데, 몸둘 바 모르고 감사를 했어야 됩니다. 늘 이 노래 그 노래 속에 늘 찬송, 하늘은 저렇게 맑다 저렇게 무한하다 이건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얼마나 더할까? 없는 가운데 저걸 만들었으니 이리 되면 찬송입니다. 펼쳐진 눈앞에 수도 없는 존재들을 볼 때마다 위에서 받은 은혜로 이거, 이것이 내가 할 일인데 참 감사하다. 참 아름답다. 조화롭다 이건 노래입니다. 이렇게까지 오묘하게 조밀하게 이렇게까지 배치시켜 주시다니 참 우리 하나님 정확무오하다. 이리 되면 찬송입니다. 아래로 땅을 보며 참 든든하다 무한하다. 이렇게 받쳐주니 마음껏 주를 섬기며 내가 할 일을 더 잘해야지, 이리 되면 노래입니다. 저 속에서 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셨으니 이리 되면 찬송입니다. 하늘을 하늘로 보며 하나님의 세계를 빼버렸고 보이는 만물과 만 존재를 보면서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빼버렸으니 이 노래와 찬송이 빠진 것이고 땅을 보며 이게 든든하니 참 이렇게 떠받쳐주니 내가 이렇게 산다. 노래는 있고 찬송이 빠져버린 겁니다. 찬송 빠지고 노래만 남고. 노래와 찬송까지 다 빠진 걸 보고 충분히 빠진 걸 보고 귀신이 들어와 “아니 이 좋은 세상에 하나님은 제 멋대로 하고 너들은 늘 하나님 눈치나 보고 뭐냐?” 바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까지는 롯과 아브라함이 한 몸이었는데. 아브라함의 롯이 빠진 다음 살아가며 아브라함의 다음이 이스마엘이었는데. 함께하던 동지도 함께 가며 다음 일해야 되는 이스마엘 안에도 무엇이 빠졌냐?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몇 장이었죠? 이사야 51장이었습니다. 혈혈단신 앞에 나오는 겁니다. 51장 2절이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불렀다. 아브라함이 언제 혈혈단신이었습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이 꽉 차서 밧단 아람이 아니고 꽉 차서 하란에 있었는데, 하란에 있을 때 이미 결혼해서 한 몸이 있었고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 하나뿐일 때 불러다가 그러면 와서 결혼을 뒤에 했습니까? 올 때 여섯 식구가 왔는데. 여섯이지만 하나님 눈에는 하나로 보인 겁니다. 에덴동산에 부부 둘, 떨어져 따로 놀았지만 이거는 한 몸이고 하나였어야 됩니다. 하나라야 되는 것이 마음이 둘이 되니 빈틈은 생겼고 여섯이라도 혈혈단신 아브라함 하나로 표현을 해야 되는데, 그 속에 오니까 두 쪽이 났고. 롯하고는 두 쪽이 나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큰아들 하고는 아브라함의 오늘과 내일이며 한 몸이라야 되는데, 이 사이에도 보니까 빈틈이 생겼습니다. 그 이스마엘을 가진 하갈 속을 들여다 보니까. 하기야 뭔 나야, 나야 종이니, 나야 여종이니 주모 처분 마음 먹으면 나야 던지면 억울한 거고. 버리면 나가 떨어지는 거지, 이게 들어있었습니다. 종이라도 주모를 뚫고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가졌더라면 그리 되지 않았을 터인데. 이렇게 내면을 살펴야 되는 것이 오늘도 내 속에 이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안에 이스마엘은 뭔가?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 가서 좋은 직장 잡아 신앙으로 더욱 매진해야지. 뭐가 되지요? 이스마엘이 될지 이삭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험을 치고 나니까 성적이 좋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걸 잡았으면 이때는 이삭이 아니고 이스마엘 쪽 갈 확률이 많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과 함께 아브라함의 다음이나 더 억세고 더 강하고 더 번창한 게 이스마엘입니다. 이삭은 외롭게 갔지요. 그래도 아버지는 하나인데 이스마엘, 이삭은 쌍둥이라도 가지기는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나가자 거친 사람이 되어 벌써 열 두 민족을 뻗치고 시작을 합니다. 이삭과는 세상을 무대로 삼는 그 수준이 달랐습니다. 야곱과 에서 사이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해야 된다는 좋은 마음, 깨끗한 마음까지는 좋은데, 이게 쭉 가다가 마음 먹은 대로 쫙쫙 뻗어져 나가면 이놈 이스마엘 되고 에서 되기 십상입니다. 이스마엘, 에서가 누굽니까? 아브라함의 결과입니다. 이삭의 첫째입니다. 이건 에서는 이삭이 되어야 마땅하고 안 되면 안 되는 1번입니다. 이스마엘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 주신 은혜로 이제 더 좋은 미래를 받았는데, 왜 그것들은 전부가 다 좌로 우로 세상 속으로 빠지지. 찌거리기 남은 거나 붙들고 가늘가늘 그냥 어떻게 어떻게 이어 내려온 것이 유다입니다. 구약의 교회사를 보며 오늘의 교회 환경을 보며 딱딱 들어맞으라고 이렇게 적어놓고 이렇게 운영하십니다. 이걸 가지고 내 속을 들여다 보면 나를 만들고 나를 길러갈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이 새벽에 내 속에 이스마엘은 뭔가? 내 속에 모압과 암몬의 요소는 뭔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들이 똘똘 뭉쳐 이렇게 치러 들어 오게 한 것은, 오늘은 내 속에 내가 약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다윗 되면 이거 다 내 손발이 됩니다.




1차 -JHJ

Comments

서기 2023.04.15 07:46
세일 = 마온 = 에돔 = 에서, 이스마엘이 아니라 '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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