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4.7 신31:20 젖과 꿀의 인도, 복음의 앞선 경험이 주체 못할 간절이 되어 주변을 적셔 변화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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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3.4.7 신31:20 젖과 꿀의 인도, 복음의 앞선 경험이 주체 못할 간절이 되어 주변을 적셔 변화시킬 것

관리1 0 58 2023.04.0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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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7 금새

제목 : 젖과 꿀의 인도, 복음의 앞선 경험이 주체 못할 간절이 되어 주변을 적셔 변화시킬 것

찬송 : 28장(갈보리 산 위에)

본문 : 신명기 31장 20절 -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명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젖과 꿀이 흐른다 라는 젖은 신앙의 양식을 말합니다. 신앙의 양식. 그냥 양식이라 그러지 왜 젖이라고 그랬을까? 아이들이 먹는 양식, 어릴 때 먹는 양식, 신앙을 출발할 때 필요한 양식, 신앙에 새 생명이 있을 때 필요한 양식 이때는 구약입니다. 구약은 눈으로 보이는 신앙이 좋은 신앙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신앙이 전부는 아니지만은 출발은 눈으로 볼 때 좋아야 그게 구약의 좋은 신앙입니다. 구약은 겉이 험하고 속이 좋은 게 없습니다. 그러면 겉 좋으면 속은 다 좋은가 그건 아닙니다. 겉이 좋아야 출발이 좋고 겉이 좋아야 속이 좋을 수가 있는 것이 구약입니다. 육이 좋아야 좋은 것이 구약입니다. 그래서 다윗때 솔로몬 때 역사에 신앙생활을 잘 할 때 국민의 숫자가 많았고 영토가 넓었고 먹고 살아가는 형편이 우선 좋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제사가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인구 많고 성전의 제사가 들락날락하고 먹고 살기 좋으면 완성이 되고 다 좋았는가 겉 좋은 것은 시작이고 겉이 좋고 보이는 게 좋으면 그다음 안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출발이 되어 진 것 이게 구약입니다. 구약은 눈으로 봐서 안 좋으면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 대신에 신약이 되어 지면 신령한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겉 좋다고 좋은 거 아니고 겉으로 험하다고 속이 희망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겉은 이러나저러나 속이 좋아야 그게 좋은 겁니다. 신명기는 구약이니까 구약의 젖이 흐른다, 모든 짐승들이 새끼를 낳아 저지 넘치면 새끼는 많이 먹고 잘 자랍니다. 엄마들도 젖이 넘치면 아이가 다 빨아들이지를 못해서 그냥 있으면 젖몸살하지 아이는 많이 먹어도 배가 불러도 못 먹지 더 먹으면 아이가 토해버리니까 그리고 흘러서 주체를 못 할 때 젖었다 그럽니다. 젖다, 젖었다 그게 젖이라고 되어 집니다. 물, 물컹하다, 문드러졌다, 물렁물렁하다, 무너지다 전부 물에서 나가는 단어들입니다. 물이 많으면 젖는 겁니다. 새끼 낳은 암소가 편안하고 잘 먹으면 젖이 넘칩니다. 새끼가 먹고 잘 크고 또 주인이 짜서 덕분에 잘 먹고 젖이 넘치는 그런 가나안이다, 어린 신앙 생명이 출발하는 이런 운동이 활발하다 새 생명이 부족하지 않다 새로이 믿는 사람, 신앙의 출발에 열심인 사람, 또 그냥 교회를 생각 없이 오고 가다가 좀 정신 차리고 해봐야 되겠다 이게 신앙의 새 출발이며 신앙의 새 생명이며 새 출발 새 생명에 필요한 모든 양식을 일반적으로 젖이라고 그럽니다.

기본적으로 젖이란 것은 먹는 것은 엄마가 먹고, 남이 먹은 겁니다. 신앙의 지도자 엄마 남이 먹고 피가 되고 살이 된 다음 돌아 나오는 것이 젖입니다. 신앙생활의 첫 은혜 신앙생활의 새 결심 또 아예 안 믿던 사람이 새로 믿는 이 모든 과정은 앞서 믿는 사람이 고생하고 앞서 있는 사람이 전해야 되겠다고 깨닫고 전도하고 앞서 믿는 사람은 복음을 알고 전해야 되겠다고 깨닫고 수고를 하고 이게 엄마가 음식을 먹고 온몸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그다음, 아이가 생기고 아이에게 젖이 들어가 그 아이에게 신앙의 육체의 양식이 되는 겁니다.

복음을 받아 먼저 복음을 겪어본 미국 나라가 이 좋은 복음을 갖다가 좀 전해야 되겠는데 라고 했는데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복음을 못 받아드린다고 버티고 있는 이 나라에 생명 없는 이 나라 복음의 새싹이 없는 이 나라에 먼저 말씀을 지켜 복을 받아 본 넘치는 그 복을 가졌고 받아본 선교사들이 이 땅 위에 와서 말아 듣지도 못하는 말도 안 통하지 모든 게 통하지 않는 이 나라 와가지고 애 터지게 애 터지게 애 터지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귀신이라고 사람 잡아 먹는다고 사람 잡아간다고 처음에는 놀라서 도망갔고 겪어보니 사람들은 좋고 위대하다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신기해서 구경하느라고 주변에 끌었고 그다음은 세월이 지나가다 보니까 우리가 좋으면 그냥 좋다고 그러지 뭐 돌을 던진다든지 아니 나그네에게 돌 던지면 나쁜 인간인데 이게 좀 못나 놓으니까 좋다는 표시를 그리 하는 겁니다. 멀리서 돌도 던지고 뭐 죽으라고 큰 돌이야 던졌겠습니까? 자갈이나 당겼겠지. 그 다음에는 이제 욕도 하고 연세 많은 분들은 선교사들한테 욕 좀 해보신 분들이 여기 계실까요? 다 착하게 커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서양 놈, 미국 놈, 코 큰놈 꼭 거기다 대고 이름을 갖다 놈 자를 붙였습니다. 더 좋고 좋고 넘치는 나라에서 이역만리 와가지고 생고생하며 복음 전하는데 하나라도 주지 걷어 간 것이 없었는데 또 전쟁 났을 때는 얼마나 와서 이 나라를 살려줬는데 우리의 말이라는 것이 이게 좀 민족적으로 좀 수줍어가지고 또 판을 벌려 놓으면 미친 놈 널뛰듯이 생난리를 하는데 처음에는 좀 수줍어가지고 약간 그럴 때 이럴 때는 신기하니까 궁금하니까 이상하니까 이걸 표시를 잘못하니까 괜히 험한 말로 욕을 하고 놀리고 걸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들이 일제 때 온 선교사는 말 모르고 와가지고 말을 배운 선교사지만 제가 어릴 때 선교사들은 아버지가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해 가지고 선교사들끼리 결혼을 해서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뭣도 모르고 막 여행이나 온 미국 사람인 줄 알고 시내버스 타서도 미국 놈 코큰 놈 저 놈은 이럴까 저럴까 그래서 싸면 이 선교사들이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한국말로 유창하게 다 듣고 있으면서 화내지 않고 다 포용하고 그분들이 진짜 신사였고 잠잠했고 그랬었습니다. 왜 이역만리 여기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을까요? 우리 신풍교인들 우리 공회교인들 옆집에도 선교하러 안 간다는데, 옆집에도 선교하러 안 간다는데 옆집에 선교하러 안 간다는 말 혹시 알아듣고 계십니까? 붙어사니까 옆집에는 선교 하러도 못 간답니다. 그렇게 남을 배려할지 모르고 앞뒤 막히고 숨 막히고 자기 좋은 것만 쏙 쏙쏙 뽑아다가 먹는 2023년에 신풍교회 교인들도 그러한데 백 년 전, 백 몇 십 년 전 그 옛날에 벌써 먹을 게 넘치고 모든 게 넘쳤던 그 나라가 그 나라의 모든 걸 두고 이 나라 그 험할 때 와가지고 생고생 다 하면서 길도 없어 걸어 다닐 때 말이 통합니까? 말이 통한다고 그 미신에 찌들던 100년 전에 믿으려고는 합니까마는 그 메아리 없는 저런 소리를 또 할까 또 할까 해봐야 안 되는데 13개 도 전국 13개 도 단위로 보면 경상남도가 복음을 제일 늦게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냐, 일단 첫 선교도 제일 늦었지만 경상남도에 진주부터 거창까지의 경상남도의 절반을 서부 경남이라고 그럽니다. 서부 경남은 호주 선교부가 10년을 돌아 댕겨도 10년을 돌아 댕겨도 교회 하나를 못 세웠습니다. 교회 하나를 못 세웠다, 말은 한 가정을 전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첫 교회를 세운 게 서부 경남의 절반 진주 통영 밑에서부터 전도를 해나가다가 거창군까지 갔다가 거창군 안에도 12개 읍면동 중에 제일 꼭대기가 고제면인데 고제면에서도 제일 꼭대기 개명, 개명 안에서도 삼개명이라고 제일 골짜기 들어가 가지고 한두 가정 전도해서 그래도 교회 이름 붙인 게 겨우 첫 교회입니다. 얼마나 강팍한지 얼마나 버텼는지 선교사들이 한 번 온 것 아니고 10번 온 것도 아니고 1년 온 것 아니고 그렇게 서부경남 전체를 쓸고 댕기고 쓸고 댕기고 쓸고 댕기다가 겨우 하나, 그래서 첫 선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전도라는 것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얻어 걸리는 거다, 천 번 만 번을 헛일하고, 헛일하고, 헛일 하다가 겨우 하나 왜 그렇게 돈 벌려고 물건 팔려고 선거에 표 하나 얻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했던가? 복음의 은혜를 받아 젖이 넘치니까 이 좋은 말씀 복음을 좀 전해야 되겠는데 받은 게 너무 많으니까 젖이 넘치고 젖이 넘치니까 그래서 경상남도의 서쪽 절반 경상남도의 절반 절반에 교회 하나 세우는 데 더 어렵게 그리 되어진 겁니다. 여기다 대고 선교사들이 만사를 다 쏟아 붓고 그래야 하나 믿고 둘 믿고 복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처음 시작을 합니다.

먼저 먹어 배부르고 먼저 먹어 젖이 도는 것은 엄마고 어미 소고 엄마가 먹고 다 돌고 그다음 이게 젖으로 나올 때 새 생명은 신앙의 출발은 남이 고생한 거 그냥 빨아먹으면 되는 것이 첫 신앙이며 신앙의 출발입니다. 그 말은 먼저 믿는 사람이 애가 터지고 기도하고 인생 살아 봤고 믿어 봤고 하나님의 은혜 받아 봤고 죄 짓거나 실수하다가 하나님 앞에 맞아도 봤고 이게 쌓이고 이게 쌓이고 이게 쌓이고 마지막에 이게 넘치면서 도무지 저 집안을 그냥 두고는 못 보겠다, 오늘의 20대 이 정신없는 것들을 이 불구덩이에 마구 불나방들처럼 막 튀어 들어가는데 불나방이라고 아십니까? 불을 질러 놓으면 사방 천지 나방들이 와서 불꽃을 보고 좋아서 난리를 하는데 전부 불속에 들어가서 다 타 죽는 겁니다. 불나방. 요즘 20대 10대들은 제 눈에 다 불나방들입니다. 팝송의 불나방, 유행가의 불나방, 옷 입는 것도 불나방, 생각하는 것도 불나방, 좋아하는 것도 불나방, 커피가 뭔지도 모르고 몇 천 원짜리 꺼내 들고 하루에 그게 몇 천 원이면 한 달에 그게 돈이 얼만데 이런 데 폼 잡고 앉아가지고 나도 오늘에 뒤지지 않는다고 그러고 앉았고 온 민족이 결혼 안 해서 전부 50대 총각이 미어 넘치고 그들이 가만히 있을 겁니까? 탈을 내지. 안 내면 오히려 이상하지, 인구가 폭 줄어서 전국에 학교가 없어진다고 생난리고 보지도 못하게 이상하게 생기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을 수십만 명을 데려다가 신부라고 깔아놓고 조선 양반들이 알았으면 뭐 그냥 생 온 나라가 전쟁보다 더 했을 겁니다.

부모 된 마음으로 새벽 예배 앉는 신앙으로 시절에 대한 이 울분, 이 애 터짐, 이 간절함을 차고 넘치고 차고 넘쳐서 이것이 주변에 양식으로 뻗혀 가면 이게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젖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잘 먹어 아이들이 많이 생산이 되었고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은 보이는 아이를 낳아 덩치를 키운다는 말이 아니라 신앙의 새 출발 시골에 이만큼 다니면 그래도 많은 축이 아니냐? 아 빈 껍데기 오고 가는 빈 그릇 그거 많아봐야 뭐 필요가 있습니까? 농사짓고 껍데기 쭉정이는 많고 안에 알맹이 없으면 뭐 할 겁니까? 알맹이가 있어야 농사지. 그릇에 음식이 담겨야 이게 음식이지. 그냥 시골이니까 예배당만 오고 가고 빈 데기 오고 가고 산송장이 오고 가는 건지 신명기 31장 20절 말씀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현실을 하나님은 제공해 줬다 보이는 아이도 많이 낳을 수 있는 환경 주셨고 신앙의 새 생명 새 출발이 될 수 있는 신앙의 좋은 노선과 말씀도 주님은 우리에게 주셨고 여기에 젖이란 말은 새끼의 잘못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길러 놨길래,

젖이란 태어난 새끼가 태어난 아이가 노동에서 얻어가지는 양식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알고 부모가 깨닫고 부모가 생고생하고 부모가 다 알고 넘치는 것이 차고 그다음 밖으로 밀고 나가야 이게 젖어 나가는 젖입니다. 미국 사회에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보고 이 복을 미국 안에 가둬 놓을 수는 없다 세계를 향하여 요즘 선교보다 10배 010배 어려운 때에 세계를 향해 밀고 나갔고 그중에 한 줄기가 한국에 와서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우리는 젖 먹고 이렇게까지 세계 최고의 한국 교계를 만들어 놓고 혼자 먹고 쏙쏙 뒤로 빠져 미꾸라지처럼 돌아 틀어쥐고 앉았으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 훑쳐 내기 위해서는 좀 고생 좀 시켜야 되겠다, 하나님의 전반적인 역사는 이쪽으로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그렇게 전면적인 멸망과 불행이 엄습하고 들이닥칠 때 미리 말씀으로 또박또박 산 사람들은 바벨론이 와서 초토화를 시키고 임금 두 눈을 빼고 개처럼 끌어갈 때 예레미아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은 점령국의 제왕이 극단적으로 모셨습니다. 너 가고 싶은데 다가라,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가고 싶거든 뭐든지 다 도와줘라 원수까지도 원수가 와서 이스라엘을 짓밟으며 들어봐도 너 나라의 예레미아 에스겔은 하늘의 선지자가 맞다 오늘 우리의 현실 판단 오늘 우리의 이 현실에 나의 안타까움 돌아보셔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저자는 무슨 뜻일까? 좀 생각해 보면 이거는 누구든지 다 알 수밖에 없는 그런 말입니다. 자녀들의 신앙이 어설플 때 부모는 자녀가 부모를 볼 때 아 저러다가 돌아가시겠구나, 그만큼 울부짖어야 되는데 뭐 아들이 교회를 나오나 마나 뭐 맹숭맹숭, 목사 하던 아들이 주일까지 안 나오고 불신자가 돼도 너는 네 인생 네가 살고 나는 내 인생 내가 살고 이렇게 맹숭맹숭하면 부모로부터 젖이 안 나오는데  뭐 먹고 살 것 같습니까? 애가 터져 발버둥을 쳐야 지켜보는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시지 말로만 잔소리하고 취박을 것이 아니라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족하다가 죽겠구나 참 일편단심 저거밖에 없구나 라는 것이 젖어 들어가도록 같이 노력하십시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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