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3.31 삿2:2 신 불신간에는 생사화복 취미 선호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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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3.3.31 삿2:2 신 불신간에는 생사화복 취미 선호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 정상

관리1 0 59 2023.04.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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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1 금밤

제목 : 신 불신간에는 생사화복 취미 선호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 정상

찬송 : 91장(환난과 핍박 중에도)

본문 : 사사기 2장 2절 -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 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늘 현실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매번 바뀌고 늘 변동만은 우리를 복되게 생명의 역사로 자라가도록 하시려고,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 안에 늘 변화되는 성령의 음성으로 각자를 고치며 배우며 길러 가시는 이 밤에 은혜를 감사 하옵고, 천하가 뒤흔들어도 말씀의 울타리는 지켜내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우리 안팎의 별별 유혹과 욕심이 솟구쳐도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 앞에 복된 길 걸어가는, 어린 학생들 청년들 노년의 종들이 되도록 돌아보아 주옵소서. 연년이 저희의 부족으로 허락하신 집회를 오가는 행사가 아니라 평소에 깨닫지 못하고 변화시키지 못한 자신을 바꾸어, 세상과 맞서고 초월하며 참으로 이 땅 위에 천국을 끌어오며 가야 할 천국을 열어가는, 복된 우리들이 되어 세상과 상관없이 신앙의 한 걸음 걷는 공회 되고 우리 교회 되고 가정 되도록 마음 마음 붙들어 주옵소서. 이 밤도 예배당으로 오고 가는 발걸음 발걸음 지켜주시고 주신 현실 환경 인하여 눈과 귀를 기울이는 곳곳마다 연결에 은혜 주시고. 한 달의 훈련 무사히 마무리하고 1년 반 객지에서 만사를 살펴보며 세상을 겪으며 둘러볼 우리 청년들에게, 어떤 현실이든지 피동 되지 않는 복된 진주 같은 깨끗한 신앙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이 조상들과 세운 언약이 있었습니다. 1절 뒤편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인도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고 영원토록 어기지 아니하겠다. 근데 2절에 와가지고 너희는 이 땅 거민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하였는데 왜 왜 약속을 어겼느냐. 이 땅 백성들이 좋다고 섬기는 이런저런 단들을 헐라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지난번 요절로 신명기 5장 3절 지금 본문 앞에 앞이었습니다. 신명기 5장 3절 요절지 가지고 계신 분들은 신명기 한번 봐주실까요. 다 같이 읽어봅니다. 신명기 5장 3절 시작 신명기 5장 3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조상들과 세운 언약 따로 있고 우리 언약 따로 있고 후손 언약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들과 세운 그 언약 그대로 오늘도 변치 않고 앞으로도 변치를 아니합니다. 시대 따라 환경 따라 변하지 않을 때 진리라 그럽니다. 이런 걸 언약이라고 그럽니다. 그 언약의 길 그 언약의 범위 안에서 남자에게 부탁하는 것 있고 또 여자에게 부탁하는 것도 따로 있는 것이고, 아이도 있고 어른도 있고 제각각 다를 수 있지만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약속. 그 약속은 이 땅 거민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라. 안 믿는 사람들하고는 맹세를 함께 하고 미래를 함께 하고 몸과 마음을 하나 되어 추진하는 그런 일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많이 먹어 배가 부를 때는 장난삼아 짐승 잡고 그러지를 않습니다. 그것들이 새끼를 치고 잘 먹어야 나 배고플 때 먹기가 쉬우니까, 맹수가 배고프지 않을 때는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 이상 눈앞에 사슴이 지나가도 그냥 구경하고 놔둡니다. 맹수 사자 눈앞에서 같이 놀았다고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항상 같이 그렇게 사이좋을 줄 알면 맹수 저녁식사로 들어가는 겁니다. 맹수가 자기 배고플 때는 뭐든지 잡아먹어 버립니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 눈앞에 있는 동물들이 다 음식이니까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장난치거나 그냥 심심풀이로 사냥하거나 그러지 않고 놔두는 겁니다. 필요할 때만 먹기 위해.

세상이라는 것은 하나님 없는 사람 하나님 모르는 세상이라는 것은, 신앙을 삼키는 맹수와 같습니다. 신앙이 이해가 되고 좋아서 밀어주고 친구 되는 법이 없습니다. 세상 자기들 계산으로 볼 때 그냥 교회를 좀 놔두는 것이 좋고 칭찬하는 것이 좋을 만하니까 그냥 풀어놓다가, 자기들이 배고프거나 화가 나면 공산당들만 교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미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교회를 출발시키고 우리를 전도한 저 사람들이 손대면 더 험하게 됩니다. 공산당들 교회 탄압하고 들어오는 거는 멋모르니까 보이는 것만 탄압하고 들어오는데, 기독교 선진국이 속에서부터 교회의 신앙을 뿌리를 뽑으려고 들면 그건 대책이 없어집니다. 쥐 고양이라는 말을 옛날 분들은 혹시 기억하십니까? 고양이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쥐를 사냥할 때 쥐 소굴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끝없이 쥐들이 들락날락하니까 이거 참 애가 터지는데, 쥐 한 마리 잡아다가 항아리 안에 집어넣어 놓고 바짝 굶겨놨다가, 이거 굶어 죽기 전에 작은 생쥐 던져놓고 작은 생쥐 던져놓고 해가지고, 쥐가 쥐 맛을 보고 나면 쥐만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쥐가 쥐 맛을 알고 난 다음 쥐를 풀어버리면 이것들은 쥐구멍을 쫓아다니면서 쥐만 잡아먹습니다. 이런 걸 시골에서 쥐 고양이다. 그럽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인데 쥐를 가지고 고양이 역할을 맡긴 겁니다.

교회를 가져보고 교회를 믿어보고 교회를 운영해보지 않은 사람이 교회를 쥐 박는 거는 보이는 거나 쥐 박는데, 믿어 본 교회가 타락을 하고 탈선을 해가지고 그다음 교회 내면을 치고 들어오면, 이거는 세상의 박해와는 비교를 못 합니다. 원리가 그러하겠지요. 아마 제가 우리 여수 순천 그냥 통치를 할 수 있으면 여수 순천 경찰서 서장을 조폭을 시켜놓으면, 여수 순천 안에 폭력배들은 다 잡을 겁니다. 여수 순천에 제일 도둑놈을 경찰서장을 시켜 놓으면 도둑놈들은 아마 못 움직일 겁니다. 여수 순천 쓰리꾼을 갖다가 경찰서장 시켜놓으면 소매치기 쓰리는 꼼짝을 못 할 겁니다. 그 원리가 그런 겁니다. 교회 안에 내면의 신앙을 다 빼먹는 것은 교회를 다니다가 세상으로 들어간, 타락한 교회가 교회 안을 제일 잘 털어먹습니다. 아예 믿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를 때려야 되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불교 탄압하면 불교 탄압 눈에 보이는 절이야 없애겠지, 근데 그 절중에 어디어디를 쳐야 누구누구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제가 알겠습니까? 전혀 모르는데. 그래서 우리 교회 우리 공회도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수백 건 고소하고 들어오니까 제일 아픈 데만 딱딱 다 잡았지요? 그리고 저하고 제일 가까운 쪽에서 치고 들어오니까 제일 어려운 세월을 지금 한 10년을 보냈지 않습니까. 지나간 10년에 얼마나 불편했고 어려운지 느낀 만큼 저하고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러면 한 자리 예배를 봐도 그냥 영 천리만리 떨어진 것과 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정말 부부면 아내가 마음 아파하는 것은 남편 마음속에 고통으로 다 와야 되는 겁니다. 아니 뭐 친정의 조카 누가 다쳤는데 왜 아내가 그렇게 아파하죠. 아마 특별한 가 봅니다. 기억도 없는 처갓집에 조카 하나 아픈데 아내가 특별히 마음 아파하면 그 특별한 관계가 있는 거고. 이 아픔이 남편 마음에 바로 들어오면 그거는 그만큼 한 부부라는 뜻이고, 뭐 그런가 보다 그냥 물 건너 불구경처럼 그러면 호적의 부부라도 심정적 마음 적 동행 적 부분은 안 되는 겁니다. 유리 두 장 붙여놓으면 멀리서 보면 딱 들어붙었습니다. 근데 안에서 보면 눈곱만큼도 주고받는 게 없습니다. 유리 두 장 붙어 놨으니 누가 봐도 명확하게 하나인데 두 장 사이를 보면 붙어본 적이 없는 남남입니다. 언제든지 떼놓으면 먼지 하나 서로 함께 할 것도 없습니다.

조상들과 세운 하나님의 언약 처음 믿을 때 하나님의 언약 오늘의 하나님 언약, 내일의 언약 영원무궁토록 변치 않을 때 언약이라 그럽니다. 여러 가지 언약 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가나안 좋은 신앙의 환경을 하나님이 마련해 주면, 오늘 우리가 가나안보다 나은 데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신앙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면 신앙에 더욱 열심을 내라고 세상 걱정하지 말라고 세상 환경을 좋게 주는데, 세상 환경을 좋게 준다고 세상에 빠져버리고 바빠서 믿는 생활이 후퇴를 하면, 그다음 하나님은 그 좋은 환경을 빼앗아 가시고 막아버리고 깨버리는 겁니다. 컴퓨터 사주는데 컴퓨터 이용해서 공부에 도움이 되면, 그리고 공부하다 머리 식힐 때 컴퓨터로 적당하게 잘 활용하면 좋은 걸로 사주지. 그거 붙들고 앉아가지고 공부 안 하는 쪽으로 계속 달려가는데 이건 분명히 끝나겠다 싶으면, 그때는 그 컴퓨터를 없애 버리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만사의 원리가 그런 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모세가 예비했고 여호수아가 들어 가가지고 나눠서 한 가정 가정별로 다 품에 안겨 다 배분을 했고, 그 다음 사사기가 되면 이제 우리 지파 우리 집안 내 가정 한 식구 식구별로 땅을 주셨고 들을 주셨고 집을 주셨으니, 내게 준 것은 신앙생활 잘 하는데 집과 들과 환경을 사용하면 젖과 꿀이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잘 섬기고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국방과 안전과 복은 하나님이 챙겨주고 이리 되어져야 되는데, 신앙에 좋은 환경을 주니까 신앙의 좋은 환경 환경을 붙들고 전부 다 신앙과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게 2절입니다.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했지 않느냐. 언약이란 너하고 나하고 한 팀이 되어 너하고 나하고 동지가 되고 한 몸이 되어 이러자 저러자 하는 겁니다. 불신자와 믿는 사람은 멍에를 함께 지지 않는 겁니다.

동업은 할 수 있고 동지 할 수 있고 공부 같이 할 수 있는 친구 될 수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나가는 사상, 세상을 쳐다보는 눈빛, 세상에 소식을 들을 때 이게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 이게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이건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달라야 합니다. 이걸 하나로 만들면 이게 언약을 하나로 만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보면 이미 남의 사람이 된 겁니다. 사람과 개가 들판을 함께 걸어가다 보면 옛날 배고플 때 사료 말고 자연스럽게 나아 기르던 옛날 개하고 사람하고 들판을 가다 보면, 어디 대변 눠 놓은 데는 개는 맛있다고 쫓아가서 얼른 먹습니다. 사람은 고개를 돌립니다. 개하고 나하고는 제일 가까운 한 편이라도 응 해 놓은 걸 볼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개는 좋아서 뛰어 들어가는 겁니다. 강아지하고 주인하고 수풀 속에 한 덩어리 누가 응 해놨는데 개하고 사람하고 주로 같이 확보해서 망 봐주고 우리 나눠 먹게 하자. 이게 언약을 함께 하는 겁니다. 강아지가 내 거고 내 장난감이고 내 취미고 내 사랑을 준 것이라 안고 사는 것 하고, 이 강아지하고 사람하고. 개하고 고양이는 사이 안 좋은 거 알지요? 개가 난 고양이를 싫어합니다. 주인이 나도 너 때문에 싫어해 줄게. 사람이 개하고 같습니까? 입맛은 달라야 되고 가치관은 달라야 되고 무엇이 성공이냐 무엇이 실패냐 무엇이 좋으냐 나쁘냐는 것은, 남자 여자라도 그건 다르게 돼 있지 않습니까? 세 살 다섯 살 여자 아이한테 인형 주면 좋아서 붙듭니다. 칼을 주면 갖다 버립니다. 남자애들은 막대기라도 들고 칼싸움을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그런 겁니다. 남자애가 막대기 싫고 총 싫고 인형만 좋아서 여자애들하고 계속 어울려 댕기면 이건 남자의 남성 고장 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겁니다. 고장이라는 것은 눈 고장 귀 고장 무슨 고장 다 나는 겁니다. 남녀 사이에 종별 고장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남자와 여자는 좋아하는 것도 다를 수 있는 것이고, 옷도 여자들은 빨간 계통을 더 좋아할 것이고 남자들은 좀 이상할 것이고 뭐 등등 그런 겁니다.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똑같은 태양을 보면서 안 믿는 사람은 태양을 보면서, 하늘에 저렇게 밝은 것이 있으니 저건 신인가 보다. 그 앞에 떨고 그 앞에 절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믿는 사람은 그 참 허공에 대단한 걸 갖다가 하나님이 매달아 놨구나. 과연 태양은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밖에 없는 그런 중심이구나. 하나님이 날 위해서 주신 선물이 저렇게 크구나. 마지막은 이렇게 뺑 돌아와서 생각하는 게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

코로나 2년에 학교 휴교 다 해버리고 직장 다 문 닫아 놓고 출근 안 해도 월급 줍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냐. 겉으로는 그냥 불편하다 그러면서 2년 출근 안 하고 월급은 다 받으니 그냥 막 그냥 한 10년 죽는 날까지 이랬으면 좋겠다. 안 믿는 사람은 좋은 직장을 가졌을 때 코로나 2년에 출근하지 마라 할 때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도 지금 초등교사 중등교사 다 있지요? 2년 학교 갈 것도 없이 그냥 월급은 그대로 다 나옵니다. 뭐 얼마나 좋습니까. 그냥. 믿는 사람은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8계명인데 공짜로 주니 받기는 받지만은 내가 돈 앞에 죄송하다. 이거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못 만날 때 개별 지도를 좀 더 열심히 해서, 교사로서 나를 접한 이 아이들이 평생에 믿는 교사는 다르구나. 이런 기억을 가지게 해볼까. 출근하지 말라고 해도 믿는 사람은 머리가 이쪽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불신자야 돈 놓고 돈 먹는 것이고 그냥 지나가면 그뿐인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 거 있어. 그냥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활용하는 거지 뭐 자영업자들은 애 터지는 거고. 출근 안 해도 그냥 직장과 위치가 보장된 사람은 횡재한 거고, 믿는 사람은 그런 직책을 가졌을지라도 그거 참 월급 앞에 미안하다. 그렇다고 이 돈에서 세상에 연보하기는 싫고 그 대신에 내가 맡은 직책에 칠판의 강의를 할 때가 있었고 지금은 칠판의 강의를 못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런 기회에 더 믿는 사람다울까. 이게 교인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남편이 도둑질을 해서 가정을 먹여 살려도, 안 믿는 사람은 들키지만 마십시오. 들키지만. 들키지만 않고 뒤탈만 안 나면 뭐 이거나 저거나 많이 벌면 되지. 안 믿는 사람 다 그렇지요? 혹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 같지요. 세상을 덜 살아봐 그렇습니다. 펴놓은 도둑이냐 뒤로 감싸놓은 도둑이냐 큰 거 먹었냐 작게 먹었냐 그거지. 하나님 없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남의 걸 털어 먹고 살 수밖에 없는데 탈나지 않으면 좋겠다. 안전하게 해먹었으면 좋겠다. 이게 안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직업이 같고 남이 볼 때는 같아 보여도, 말씀으로 살면서 오는 것은 하나님이 주는 거지 내가 세상에서 받는 것이 아니다. 말씀 어겨 사는 것은 내가 내 땅을 내가 일구어 살아도 이것은 남의 것을 손대는 거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생사화복이 달라야 되고 선호가 달라야 되고, 모든 것이 강아지하고 사람하고 길을 가다가 무엇을 더 좋아하냐 마냐. 이렇게 다르듯이 달라야 그게 정상입니다. 믿는 사람이 유치원에 가니까 유치원에 안 믿는 집 아이와 믿는 아이가 똑같고, 안 믿는 집 초등학생과 믿는 집 초등학생이 초등학교 6년이 똑같고, 중고 6년이 똑같고 대학 생활이 똑같고 직장생활이 똑같고 군 생활이 똑같고 가정생활이 똑같으면 속에는 안 믿는 사람입니다. 탈은 겉은 양 잡아먹고 양가죽을 뒤집어썼는데 속에는 이리가 있습니다. 양 잡아먹고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새끼 양 털러 간 늑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늑대가 양털 입었다고 무스탕 입었다고 양 되는 거 아닙니다. 양털을 면도 해가서 미끈하고 털 없다고 그게 양이 늑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속이 뭐냐. 넌 돈이 뭐라고 생각 하냐. 신앙생활 하다 보니 들어오는 돈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게 믿는 사람의 돈의 정의입니다.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 과정에 들어오는 돈은 부모가 준 거든 사장님이 준 거든 누가 준 것이든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짓고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 들어와도 하나님 금지하는 걸 가진 그건 시한폭탄이 되어 집니다. 똑같은 돈을 보면서 그 돈은 신앙생활 결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작아도 그거는 큰 거다. 저거는 말씀 떠나 챙겨온 거니 저거는 천하를 다 가져도 저건 좋지 않은 거다. 만사가 다 달라 해야 됩니다.

너희는 이 땅 거인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라. 언약이란 우리 둘이 함께 약속을 지키고 이러자 저러자 이런 사상의 통일 목적의 통일, 그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서로의 협력 협조를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과 우리는 바닷물과 배와의 관계라 그랬습니다. 수요일 마지막에 말씀을 드렸던가요? 바다에 떠 있는 배 물을 떠나는 배는 없습니다. 근데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그때는 물이 아니라 이거는 침몰해서 죽는 원수가 됩니다. 물 떠난 배는 없다. 물에 빠지면 배가 아니라 그건 묘지가 됩니다. 물 위에서 물을 이용하며 물을 밟고 물을 건너가는 것이 세상과 우리의 사이입니다. 안 믿는 친구? 안 믿는 직장 동지? 안 믿는 회사? 안 믿는 학교?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해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혼자 살면 7계명의 죄 짓기가 쉬운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부부라 7계명의 죄를 막아주면 얼마든지 부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서 그런 사람을 찾으려 했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어떡하겠습니까. 믿는 사람의 결혼이 가장 좋은데 믿는 사람들끼리는 7계명을 지어도 그런 건 싫다 그러니, 건강한 사람은 혼자 살면 7계명 죄 짓는 것이고 7계명 죄를 막기 위해서 내 입장을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부부될 수 있습니다. 1등은 아니라도 2등은 됩니다. 3등보다 낫고 꼴찌보다야 낫지.

남이 보면 안 믿는 사람과 부부까지 되었으니 그 안 믿는 사람과 결혼 서약을 하고 언약을 한 것이 아니냐. 남은 그리 보는데 내 속의 중심은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과 하나 되고 싶은데, 주변에 믿는 사람들이 전부 다 나 못 났다고 밀어내니 돈 못 번다고 밀어내니, 근데 7계명의 죄는 이기기가 어려우니 7계명 죄를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을 하나 구한다면 좋은 사람 구한 겁니다. 말세에 7계명을 막아주는 사람이면 노아와 함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말세의 죄는 모든 죄 모든 죄 중에 하나님은 7계명을 보고 판단을 하십니다. 체육학과 선수 뽑으면서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뽑겠습니까? 미술학과 뽑으면서 공자 차는 사람 뽑을 것 같습니까? 미술 잘하고 공 잘 차면 그건 뽑을 수 있겠지. 미술이 아니라 공 잘 차니까.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선발하면서 유도 잘하는 사람 뽑는 거 보셨습니까? 노아 홍수 때에 방주에 탔을 때의 기준이 뭐냐. 그때 기준과 오늘이 같다고 그랬습니다. 한 사람이 다 지킬 수는 없는데 그중에 하나 7계명을 보십니다. 그것 때문에 안 믿는 사람과 그 면으로 결혼했다 그거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칭찬할 수 있는 겁니다. 믿는 사람끼리 결혼했는데 이거는 그냥 두 욕심보가 서로 협업을 했으면, 교회 안에 결혼도 하나님께서는 불신 결혼이다. 그런 경우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이 땅 거민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라. 언약이란 우리 둘이 이런 목표로 이 앞날을 위해서 이 알지 못하는 현실을 둘이 손잡고 이렇게 저렇게 헤쳐 나갈 때, 너는 이렇게 하고 나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이렇게 서로 의무 책임으로 한 몸이 되어 함께 나가자.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원리적으로 기본적으로 그거 아니 된다. 근데 신앙에 좋은 환경을 잔뜩 마련해 주니까, 신앙에 좋은 환경이란 주변이 좋고 이웃이 좋고 농사가 좋고 목축이 좋고, 환경이 워낙 좋다 보니까 하나님 은혜 아니라도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오는 길에 첫 번째 아말렉 민족이 가로막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무찔렀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그 언젠가 이 아말렉을 진멸하라. 아말렉에 속한 것은 짐승 하나도 살려두지 말아라. 이렇게 명령을 해놨다가 때가 되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생명 있는 것은 짐승 하나도 남겨두지 말아라. 하나님이 요래 말했는데 사울이 똑똑한 아각 왕 친구할 만하니 살려놓고 짐승 중에 살찐 거 좋은 거 쏙쏙 빼서 뒤로 빼돌리고, 병 든 거 다리 저는 거 싹수가 노란 거 늙은 거 애 먹이는 거는 전부 다 도살을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하나님 앞에 복 달라고 기념비 세우고 상 달라고 설쳐 된 것이 사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처리하라 했으면 해야 되는데 왜 안 했던 고. 이 사람은 아깝지 않습니까? 이거 아깝지 않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언약입니다. 아각을 죽이지 않았는데 아각을 죽이지 않은 것 본질을 보니까 사울이 바로 아각입니다. 아말렉이 가지고 있는 좋은 짐승을 살려놓는 거 보니까, 하나님은 이것은 죽여야 될 것인데 이걸 살려야 된다고 본 사울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죽어야 될 인격과 신앙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간단하게 안 믿는 친구와 믿는 친구가, 사상이 같고 취미가 같고 취향이 같고 선호가 같고 일정이 같고 모든 것이 같으면, 그 사람이 믿으려고 지금 준비가 다 되었든지 아니면 내가 가짜배기로 믿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게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넌 누가 너의 제일 가까운 친구냐 그 친구가 도둑놈이면 나도 도둑 절반 가는 사람입니다. 네 친구는 전부 미술 하는 사람밖에 없냐. 난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림 친구가 많다는 말은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에 소질이 있든지 아니면 그림을 응원하는 사람은 된다는 뜻입니다. 누가 친구입니까? 누가 가깝습니까? 하늘이 그립고 하늘이 좋습니까? 소망이 있는 사람이라 꿈이 있는 사람이라 그 뜻입니다. 난 땅바닥만 보고 산다. 오늘만 보고 내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몇 살 때까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오랜 시간 걸어가면 무조건 땅만 보고 걸었습니다. 1원짜리 10원짜리 동전 하나 떨어진 거 있는가 싶어서. 하도 땅만 보고 살다가 이렇게 목이 거북목이 접친 겁니다. 저는 컴퓨터 때문에 목이 접친 게 아닙니다. 하도 어려서부터 땅만 보고 사니까 함께 걷던 어머니가 어느 날, 좀 허리를 들고 좀 고개를 펴라 해서 내가 이렇게 많이 숙어졌구나. 그때서야 느껴 본 적이 있는데 이미 습관이 되고 굳어져 버리니까 이거 고치느라고 평생 걸렸습니다. 이 습관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왜 땅만 쳐다본다고요? 네 거든 내 거든 아까운 것이든 남의 것이든 뭔가 땅에 뭐 하나 흐른 게 있는가 싶어. 오늘만 보고 당장만 보고 지난날에 남의 수고 그 귀한 돈을 써야 되는데, 만약에 남이 그냥 이걸 모르고 그냥 잊어버렸으면 그 사람이 내일과 그 사람의 앞날은 어찌 되느냐. 아 이런 생각 없다는 겁니다.

하늘만 보고 사는 사람, 별을 노래하는 사람, 구름을 그리는 구름을 그리는 사람. 모든 것을 하늘만 진뜩 지는 사람 이 사람 처자식은 굶고 앉았는데 헛소리 할 사람입니다.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오늘을 위해 당장을 향해 내 할 일은 열심히 하면서, 그러나 나아지기를 원하여 인간이 갈 수 없는 저 먼 곳은 뭔고. 이게 적절하게 섞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늘만 쳐다보면 몽상가. 몽상가라는 말 아시나요? ‘꿈 몽’자 ‘생각할 상’자 꿈꾸는 것만 머릿속에 드는 사람 몽상가. 별 노래하는 노래, 달 그리는 사람, 시든 노래든 그림이든 하늘만 진뜩 가지고 있는 사람들. 발바닥 밑에는 지금 가시밭길인데 가족들은 굶고 앉았는데, 호주가 하늘을 쳐다보면 그 가정 앞날이 없는 겁니다. 매일 매일 매일 매순간 가족을 위해서 그냥 땅바닥만 쳐다보고 발버둥을 치는데, 하루 먹고 사는 데는 이런 남편을 가진 가족들은 좋습니다만 인생 살아가는 꿈이 뭐냐. 이렇게 이렇게 살아 나이 많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이의 오늘도 돌아봐야 되지만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방향도 잡아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애 공부해봐야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무조건 전부 박사 만든다고 그러고 앉았으면 이것도 애 터질 일 아니겠습니까? 고생하고 뒤끝이 없는데. 안 믿는 사람들과는 언약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계약서 쓰지 말라는 말 아니고 취업 각서 쓰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학교 입학할 때 아마 학교 입학 뭔 신청서에 보면 학칙을 잘 지키겠습니다. 그런 거 아마 쓰는 거 있을 겁니다. 그거 하지 말라 말 아닙니다. 배는 물을 떠나지는 못합니다. 물 떠난 배는 배가 아닙니다. 배 안에 물이 들어가면 그것은 사망입니다. 멸망입니다. 침몰입니다. 세상과 접할 수는 있다. 세상과 접할 수 있다가 아니라 세상을 떠나지 말고 세상을 접해야만 한다. 그러나 세상과 너는 경계가 있고 담이 있고 어디까지나 달라야 된다.

동창생 좋고 후배 좋고 선배 좋아 주변에 득실득실 이렇게 다 사이좋은 분들 계십니까? 선배 전도해 보고 후배 전도 해보고 동창 전도해 보면 세 번 네 번 이상 만나려고 그러지 않을 걸요? 한 번 이상은 만나려고 그러지 않을 걸요? 한 두 사람 만나고 나면 소문이 나서 전부 다 피해버릴 걸요? 물에 가면 물이고 술집에 가면 술이고 그런 걸 짐승 중에 정윤이 무슨 짐승? 여기 가면 여기 짐승 저기 가면 저기 가 짐승 되는 거? 새도 되고 새도 되고 들짐승도 되는 거. 박쥐라고 그러나요? 박쥐. 공중의 새들과 기어댕기는 짐승들과 패싸움이 붙었더랍니다. 독수리가 위에서 공격하고 올빼미가 밤에 가서 쪼아대니까, 새들이 이길 것 같으니까 박쥐는 날개를 펴고 나도 새다 하고 이쪽에 갖다 붙더랍니다. 낮에 보니까 그냥 새들은 맥을 못 추고 전부 다 절단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날개를 접고 박쥐는 나도 쥐니까 이쪽이다. 그러고 이쪽으로 딱 붙더랍니다. 여기가 또 저기 또 여기 간에 붙었다. 쓸개 붙었다. 그걸 잘해야 사업성이 있는 것이고 외교를 잘하는 것이고, 그걸 잘해야 세상사는 데는 유리합니다. 근데 어느 날 새들하고 이쪽 짐승들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해가지고, 한 편이 되고 나니까 박쥐는 어디 붙어야 되지요? 저놈은 변질해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그러더라. 그래서 돌라 내버렸더라. 그 이후로부터 박쥐는 지금까지 그 어두운 동굴에서만 살더라. 불신자가 거짓말로 적어놓은 우화라 그럽니다. 이야기라 그럽니다. 근데 이게 맹탕 거짓말일까요? 인간사는 거 딱 보면 다 그렇습니다. 우선은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요랬다 저랬다 하면 우선은 먹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멀리 보면 밤 눈 밝은 괭이 결국은 사고 칩니다. 원숭이가 떨어져 죽을 때 나무에서 떨어져 죽지 길 가다 떨어 죽는 수가 없습니다. 원숭이는 나무가 제 집인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우선은 커닝이 수월하고 우선은 거짓말이 수월하고 우선은 간에 붙었다 쓸개 붙었다 하는 게 수월하고, 우선은 나 주변 본토친척 아비 집에 치우치는 것이 붙어사는 것이 편리해 보이는데, 이게 뒤에도 좋을지 다음에도 좋을지 철이 지나도 좋을지 늘그막에도 그것이 좋을지, 마지막에 하룻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넌 가나안에 젖과 꿀이 흐르도록 좋은 환경 주니까 넌 불신자로 살았지 아마? 그때 주님의 얼굴을 볼 때 그때 주님의 얼굴은 영원무궁토록 봐야 되는데, 하룻밤 그냥 눈 질끈 감고 전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게 낫지. 주님과 세상 사이를 이랬다저랬다 하면 곤란합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도 유치원에서 우리 믿는 아이들은 뭔가 좀 다르더라는 소리는 나와야 됩니다. 기도 하나 때문에라도 말하자면. 신풍교회 남반 사람들이면 군대를 가면 술 담배 때문에 별나다 소리가 들려와야 그게 정상입니다. 군 생활 잘했는데 그러면 저는 그래 듣습니다. 술 담배 좀 했구먼. 그거 안 하면 별 소리가 다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주일 내주고 술 담배에 내주지 않으면 벌 소리 별별 소리가 다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직장도 그렇습니다. 동창회도 그렇습니다. 동문회도 그렇습니다. 집회하는 그 창에 내계 가려면 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친구들이 그 복실복실합니다. 20년 친구들이 복실복실합니다. 저하고 눈 마주치려는 사람이 아마 없을 걸요? 저것들한테는 걸렸다면 끈질기게 전도할까 봐 보고는 싶은데 그냥 아이야 외면하는 게 좋지 않겠냐 이 정도로.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답게 살면 저절로 물과 기름이 붙어는 있지만은 별개처럼 그리 되는 게 정상입니다. 근데 뭐 물하고 기름하고도 또 결혼한다고 해 싸니까 그게 가능할까? 안에서 찾아서 없어서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으로 더해 주시고 전도할 기회를 주시는데, 마음먹고 안에 거 걷어치우고 밖으로 나가면 하나님 가출로 보십니다. 가출과 출장은 다릅니다. 내 가족을 위해서 돈 벌러 가면 출장이라 그럽니다. 여자 잔소리 꼴배기 싫어서 출장 핑계 대고 나가면 아무리 출장이라 해도 그거는 가출입니다. 이 밤도 마음은 예배당에 있지만은 직장 핑계 대고 슬금슬금 한 번 두 번 빠지는 사람들. 저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실 것이고 그리고 한 달 두 달 겹치면 그 다음 사람도 알게 되어 있는 겁니다. 마음은 콩밭인데 형편이 그러니까 그렇다. 마음은 콩밭인데 형편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아예 그쪽에 가가지고 그냥 그쪽 사람이 돼버렸구나 이거 다 다릅니다.

이런 면을 두루두루 좀 보셔서 지금 뭐 아이들 동창회 군대 얘기 했으니까 이제 연세 많은 사람들 노인 회관 얘기도 하셔야 되겠죠. 장애인들이 장애인 회관에 모여서 장애인 소리 같이 섞으면 불신자 됩니다. 장애인들이 장애인 센터에 모이면 우리나라 장애 정책은 이래서 틀렸고 저래서 틀렸고 소리가 진동을 합니다. 내가 장애자라도 장애센터에 가기는 가지만은 장애 정책이 이러니저러니 하면, 오늘처럼 장애인이 대우받는 때가 어디 있냐? 우리가 고마운 것은 알아야 되지 않겠냐. 믿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나할 줄 알아야 5계명을 아는 사람입니다. 5계명을 아는 사람들. 사택에도 1급 장애자가 있어서 이 소리 하지 아니면 오해받기 딱 좋겠지만 사택에도 1급 장애자 있습니다. 혜택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까지 혜택을 주면 이 돈을 어느 인간이 나한테 주는 고? 돈 주는 인간이 자기 돈으로 주는 거야 고맙지만은 남의 돈 끌어다가 자기 이름으로 주면 그건 도적이지.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나이 많이 먹었다고 내 나이 내가 먹었지, 근데 나이 많다고 무조건 돈을 갖다 퍽퍽 대주면 주는 게 고맙지만은, 이렇게까지 팍팍 긁어서 이렇게까지 집집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돈을 소복하게 소박하게 부어대면. 나 많은 사람들한테 돈 많이 주자고 말한 인간이 어느 인간인지 그 인간 네 돈은 얼마나 냈는지 그거 물어봐야 되는 겁니다. 주니까 좋다 더 준다면 더 좋다. 나 많은 사람이 유치원 학생으로 내려가 버린 겁니다. 노인당에 노인들이 모여서 노인 소리하고 장애인 센터 장애인 소리 하고, 여자는 여자 소리 하고 신풍 동네는 신풍동네 소리 하고, 공항에 다니는 직원들은 공항에 다니는 직원들은 뭐라는지 아십니까? 신풍 사람이라도 공항에 다니는 사람들은 신풍 사람들은 참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인지, 17번 국도에 다니는 차 소리가 비행기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데 아십니까? 17번국도 비행장 앞에 있는 우리 도로에 다니는 차 소리가 비행기 소리보다 더 시끄럽습니다. 근데 덜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에는 저렇게 난리를 내고 더 시끄러운 차 소리는 왜 데모를 안 하는고? 신풍 사람이 공항을 다니면서 욕을 또 그리 합니다. 공항에 얻어먹으니까 그 소리 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양심을 못 쓰면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게 문제라고 그랬습니다. 한국사람 5천만 명이 모인다고 한국 사람과 믿는 사람의 말이 같으면 곤란합니다. 안 믿는 사람 되는 겁니다. 일본의 교인은 일본에 1억 2천만 명이 똘똘 뭉쳐 천왕폐하 해도, 왕은 왕이지만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그러는 건 틀렸다. 일본의 교인은 그 소리  해야 되는 겁니다. 일본의 천왕은 태양 하늘의 태양신의 후손이랍니다. 1억 몇 천의 일본인들이 다 그 소리해도 일본의 기독교 교인들은, 태양의 아들이면 불똥인가 지가? 자기가 불똥거린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 대명천지에 그런 거짓말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게 태양인데 태양은 우리의 등불인데. 일본의 기독교가 천왕을 신의 아들로 말하는 순간 일본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일제입니다. 못씁니다. 미국의 기독교가 한때 미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흑인들은 천국을 안 간다고 가르친 사람들입니다. 흑인은 사람이 아니고 천국에 갈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사냥도 하고 그래서 노예로 부려먹은 겁니다. 그거 다 기독교 교인들이 그 짓을 한 겁니다. 아무리 미국 사회가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고 천국 못 갈 짐승이라고 그럴지라도, 미국의 교인은 그 소리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미국 교회가 미국 사람들 하는 말하고 다 같아져버리면 그럼 미제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일제 미제 요구를 했으면 이제 국산으로 와야 되겠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는 한국교회도 마음이 맞아야 된다. 택도 없는 소리. 한국의 교회가 국산이 되면 좋아지는 게 아니고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한국의 여론과 한국의 여당과 야당과 한국의 이 사람 저 사람 이 동네 저 동네 뭔 소리해도 교인은 성경을 보고, 보자 성경은 뭐라 했는고? 그럴 수 있으면 교인입니다. 이 땅 거민 이 땅 백성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하고 붙어살아라. 떨어지지 말아라. 그러나 사상을 섞어버리거나 아예 따라가는 그런 일은 하지 말아라. 유치원부터 연세 많은 분들까지 건강하거나 장애자거나 사업을 하거나 월급 받고 종업원을 하거나, 본토 친척 아비 집 상관없이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이것으로만 보고, 이것으로만 듣고 이것으로만 내 속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내 속을 서울 산다고 서울 사람 만들고 시골 산다고 시골 사람 만들고, 일본 가서 살았다고 내 신앙을 일제 만들어 버리고, 내가 미국 생활 많이 했다고 내 교리와 내 신앙의 신조를 미제를 만들면 안 되는 것처럼, 교회와 신앙이라는 것은 국산화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미제도 안 됩니다. 우리 집안을 위해도 안 됩니다. 나도 너도 국가도 사회도 교회란 신앙이란 세상을 바꾸어 신앙을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세계입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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