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3.31 삿2:1 출처가 다른 하나님 아들, 불신 세상에 동화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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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3.3.31 삿2:1 출처가 다른 하나님 아들, 불신 세상에 동화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

관리1 0 48 2023.03.3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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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1 금새

제목 : 출처가 다른 하나님 아들, 불신 세상에 동화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

찬송 : 157장(고요한 바다로)

본문 : 사사기 2장 1절 -

여호와의 사자가 길가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사람이 전혀 할 수 없는 일 천지창조는 하나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조된 세상에 인간이 땅을 일구고 짐승을 길러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사람이 어느 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하도록 맡겨 두셨습니다. 농사짓고 먹고 사는 거 보면 사람의 노력 같습니다. 그 땅을 없는 가운데서 만든 것은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이 하도록 환경만 주시고 지켜보십니다. 그러면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자기 마음대로 하면 다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아예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하나님이 절반 돕고 사람이 절반 노력해야 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크게 세 단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역사입니다.

400년 종 된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출애굽과 홍해 바다를 건너는 것은 인간이 꿈도 못 꾸는 것 하나님이 전적 은혜로 해결해 주셨고 그 다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의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장대한 사람들이 많은 그런 억센 곳인데 열두지파가 죽기를 각오하고 전쟁을 벌였고 그런데 사람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람도 칼을 들고 목숨 걸고 앞장을 섰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도 분명히 있어서 여리고를 하루에 한 번씩 나팔을 불고 하루에 한 번씩 돌고 마지막 날은 일곱 바퀴나 돌고 나팔까지 불고 목숨 걸고 사람이 성벽에 저기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밑을 함께 돌았던 일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성벽이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이 헐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적을 치러 들어가는 것은 또 사람이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협동을 하며 역할을 분담하며 함께 손발을 맞추는 일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적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 있고 하나님과 사람이 반반 나누어 교대하며 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사사기 2장에 점령한 가나안 안에 원래 있던 거민들과는 원래 있던 “그 땅 거민과는 언약을 세우지 말아라” 이건 죄를 짓든 말든 하나님이 맡겨놓고 뒤로 빠져버립니다. 이게 바로 시험입니다. 시험. 여리고를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라, 한 주간을 계속 돌아라, 마지막 날은 일곱 바퀴를 돌아라 이것도 시험입니다.

그런데 성벽을 헐어버리는 것은 일곱 바퀴 아니라 천 바퀴를 돈다고 허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시험은 작은 시험 초기 시험 믿음의 시험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라” 이건 세워도 되고 말아도 되고 “그들의 단을 헐어버려라” 안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세상에 이거라야 된다, 이게 전부다, 이게 도와줄 거다, 하나님 대신에 세워놓은 단들이 있는데 헐어버려라, 헐어도 되고 놔둬도 되고 가서 절을 해도 되고 이건 다 맡겨놓고 뒤로 빠져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겁니다. 100%로 은혜의 단계, 시켜놓고 도와주는 걸 보이는 단계, 마지막이 되면 네가 알아서 너 원하는 대로 너 결정대로 해라 난 지켜만 보겠다, 그게 언약을 세우지 말며 단을 헐라 하시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 백성을 전부 다 없애주셨더라면 그리고 그 땅에 있는 모든 단을 천둥 번개와 지진을 통해 다 헐어버렸더라면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세울 대상도 없고 헐어버릴 단도 없도록 다 해 주셨다면 좋지 않았겠는가, 우리를 그렇게 약하게 기르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100% 다 해 주실 것 같으면 아예 세상을 만들지도 말고 천국만 만들면 되어 집니다. 천국의 천군 천사처럼 영물처럼 처음부터 영원무궁토록 죄 없이 살도록 했더라면 이 땅 위의 죄와 우리의 고생은 없을 뻔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는 천사만큼만 되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를 못합니다. 천사란 재벌회사 직원입니다. 천사장은 재벌회사의 부장이며 이사들입니다. 재벌 회사 취업도 어려운데 그만하면 됐지. 이건 아들이라도 더 이상 아버지의 혜택을 못 보게 돼 있습니다. 재벌회사 취업만 해도 되지, 취업뿐이 아니라 진급을 해야지, 부장이 돼야 되지, 이사가 되어야 되지 이게 최종의 목적이면 종이 밑에 종 다르고 위에 종이 다를까 다르기야 다릅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는 종은 종입니다.

들판에 뛰어 돌아 댕기는 들개와 주인과 함께 자고 먹는 애완용 개와 다르기는 한없이 다릅니다. 그러나 개 예쁘다 돌본다고 사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와 사람 둘 중에 어떤 거 하겠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강아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직원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손발로 쓰지만 노예나 머슴처럼 그렇게 처음부터 목표를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 앉은 그 자리에 앉아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꼭 같이 하게 되면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과 그 영광을 함께 누리는 이걸 한마디로 줄이면 아들이라 그럽니다. 완전자가 세운 완전의 목적 이보다 더 큰 목적이 없어 우리에게 세상을 주시고 세상의 여러 형편을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취업이 아니다, 승진이 아니다, 이사 사장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위에도 있는가? 회사 주인이다. 아버지를 닮은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그런데 아버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고 부딪히는 것이 아니고 뺏어오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낳았는데 자라서 아버지와 하나가 돼 버리는, 뒤에는 아버지가 다 하는데 앞에서는 아들이 다하고 전부는 아버지가 주고 아들은 다 받아 불편한 것이 아니라 꼭 아버지가 한 것처럼 그렇게 하게 되는 그런 인격 그런 영혼 그런 영광 이걸 만들어보려고 하면 아예 없던 것은 만들어주셔야 되고 어린 것은 안고 일일이 먹여 죽고 돌보지만 점점 자라게 되면 아버지의 역할과 아버지의 도움은 푹푹 빼버리고 자기가 하는 일은 많아지며 자꾸 자라가게 되는 그리고 마치 어느 날 아버지 없이 훌륭하게 잘 사는 것처럼 되어 지는 여기까지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애굽 땅 종 되었던 데서 불러 광야를 통과하는 것까지 이거는 뭐 그냥 하나님이 업어다가 옮겨 놓은 정도입니다. 그다음 가나안을 주고 가나안을 쳐서 정복해 나갈 때 열두지파의 장소를 구별하고 각 지파가 자기 현실을 점령해 나가는 것 원래 열두 정탐이 40일을 정탐하며 샅샅이 훑어 볼 때 그들은 장대하고 아낙 자손이고 우리는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 이건 뭐 해볼 수도 없는 이런 수준의 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순종했고 하나님은 뒤에서 도우셔서 충분히 점령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리 잡고 안정하고 열두지파별로 가족별로 전부 제자리 잡은 다음 이제는 됐다, 이제는 평안하다, 이제는 살만하다 여기까지 왔을 때 그다음, 주변 사람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라, 믿는 사람은 천년 만 년을 살아도 믿는 사람이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다. 사람이 먹는 것과 가장 먹는 것이 가까운 게 개입니다. 소는 육식을 못 합니다. 사람과 먹고 사는 것이 가장 가까운 게 개입니다. 그래서 개를 잡아먹으면 사람 몸에 제일 좋다는 것이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과 먹고 입고 사는 것이 아무리 같아도 개가 사람 되지는 못합니다. 개는 도둑을 잡고 짖어주고 사람 심부름을 하고 그거 예쁘고 보기가 좋고 아무리 그래도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착한 사람도 있고 더 실력 있는 사람도 있고 더 예쁜 사람도 있고 더 친절한 사람도 있고 가나안을 받기는 받아도 사사기를 끝까지 읽어보면 참 못 됐기를 이건 짐승보다 이거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고 험하다 그런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아들이 못생겼다고 아들 안 되는 거 아니고 아들이 아버지 재산을 주저앉힌다고 그 아들이 강아지 되고 망아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속 썩이는 아들이고 말 안 듣는 아들이고 답답한 아들이지 아들은 아들입니다. 어떤 아들이 되어 지느냐, 하나님과 어떤 교인으로 살아가느냐, 이건 우리에게 맡겨놓고 네가 100프로 결정해 봐라,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이 요즘은 이러니 나도 거기에 자기를 싣고 그런 사람 되어 지느냐 주변이 아무리 그래도 그거는 불신자의 행위고 난 그럴 수 없다, 구별을 하느냐, 집에 기르는 강아지들이 땅을 파는 걸 좋아하니 나도 맨손으로 땅을 팔 건가, 집에 있는 강아지들이 동네가 짖을 때 함께 짖으니 나도 그때 목소리를 높여 함께 짖을 것인가 참 문제입니다.

세상이 짖으면 신풍교인들도 함께 짖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신풍 사람이 동쪽, 그러면 믿는 사람도 동쪽이고 여수 사람들이 서쪽이면 믿는 사람들도 서쪽이고 한국 사람들이 전부 반일이면 신풍 교인들도 반일하고 그러지는 않으시는지요? 보통 문제 아닙니다. 집에 애가 3살 4살 때는 자기가 강아지인지 뭔지 모르고 똑같은 수준으로 뒤엉켜 똑같은 짓을 하지만 열 살이 됐는데 스무 살이 됐는데 동네 개들이 짖는다고 집에 애들이 그때마다 같이 짖고 같이 어울려 댕기면 큰일 난 겁니다. 그거 그러지 말라 한다고 그거 왜 교회에서 그런 걸 간섭하냐? 그럽니다. 스무 살이 개처럼 짖고 댕기는데 아버지가 스무 살은 네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놔둘 일입니까? 잡아다가 병원에 입원을 시키든지 약을 먹이든지 아니면 어디 데리고 와가지고 사람을 뭐 좀 고치든지 그래야지. 스무 살이 동네 깡패들하고 양아치 노릇을 하고 아무나 주먹질을 하고 매질을 하고 돌아 댕기면 그 아이의 인권이 있고 자율성이 있는데 왜 부모가 그러지 말라 그러면 된다 안 된다 그러느냐? 그걸 놔두면 그게 부모입니까? 그걸 놔두면 교회입니까? 믿는 사람 보는 눈은 동네 사람 보는 눈과 다른 게 있어야 되고 믿는 사람의 입은 동네 사람들과 말을 맞춰보면 달라야 되는데, 달라야 되는데. 저 공항 넓힐 때 그거 뜯어 없애라고 몇 천 명 신풍 분들이 데모하고 뱅뱅 돌아 쌓는데 지금은 왜 가만히 있지요? 저거 더 커졌는데? 동네 간부들한테 떼서 입 먹여 놓으니까 전부 조용하고 그러니까 전부 다 짖던 소리가 그쳐 버렸지 않습니까? 옳으면 지금도 짖어야 되는데. 오복상회 오영만 어른이 광주 전남의 교회 1500개 도장을 다 받았는데 신풍교회 자기가 첫 교인인데 신풍교회 도장을 못 받아서야 체면이 서겠냐고 광주 전남 1500개 도장을 다 받고 와서 저한테 신풍교회 도장을 찍어 달라 그래서 1500개의 교회가 도장을 다 찍어도 교회가 도장 못 찍는 거는 못 찍는 겁니다. 그래서 손양원목사님이 그 고생을 한 겁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이런 거 계셨으면 도장 받으러 왔다면 손 목사님은 도장을 찍었겠습니까? 혼을 내버렸을 걸요? 그리고 제가 한마디 더 했습니다. 대전교회도 도장을 안 찍었을 건데? 안 찍더랍니다. 순천에도 그런 데가 한 군데 있을걸요? 그러니까 어 순천에도 한 군데 찍지 않더랍니다. 그 공회 교회들이란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 본 눈과 믿는 사람 말하는 입이 불신자고 이러나 저러나 이러나 저러나 계속 같아지면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자기가 자기를 좀 들여다보셔야 됩니다. 요즘 애들 일요일 끼고 해외 갑니다, 두 번도 갑니다, 10번도 갑니다, 나도 그럽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지. 절의 중이 요즘은 다 고기 먹습니다, 그래서 나도 먹습니다, 그러면 절의 중을 하지 말아야지. 불교를 불 질러 놓고 고기를 먹으면 되지. 중들이 골프 치러 다닌답니다. 그런데 머리 밀고 골프 치면 사진에 나오니까 가발 쓰고 골프를 친답니다. 그럼 중을 하지 말아야지. 머리를 깎지 말자고 그래야지. 절에서 돈 받을 때는 머리 깎고 돈 받고 골프 치러 댕길 때는 가발 쓰고 그건 종교사업가지 종교인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란 목사 믿는 예수 따로 있고 교인 믿는 예수 따로 있지 않습니다. 어떤 뉴스를 봐도 어떤 생활을 봐도 어떤 시대를 봐도 믿는 사람이 본 눈은 안 믿는 사람이 본 눈과는 다른 게 있어야 됩니다. 말씀의 안경으로 봤으니 말씀의 눈으로 봤으니 말씀 없는 사람이 본 것과는 똑같이 봐도 달라야 됩니다. 옛날에 개는 길을 갖다가 응 해놓은 걸 보면 맛있다고 달라 듭니다. 사람은 똑같이 보고도 아이고 냄새가 보기가 그렇다고 눈을 돌립니다. 사람의 눈과 강아지의 눈은 달라야 됩니다. 개들이 좋다고 덜렁 먹는 걸 사람도 좋다고 덜렁 먹어버리면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자유를 내버린 겁니다. 아이들도, 젊은 사람들도, 연세 많은 분들도, 서울 사람도, 시골 사람도, 부산 사람도, 순천 사람도,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의 보는 눈이 같고 나가는 입이 같고 생각이 같고 나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됩니다. 모두들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요즘 아이 돼버렸고 학생 청년들은 요즘 학생 요즘 청년들처럼 돼 버렸고 그거 끝났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은 요즘 어른들처럼 되어 버렸고, 그 평생 믿어 헛일했다 그 말입니다. 미국 교회는 미제 소리 하고 일본 교회는 일제 소리 하고 한국 교인들은 국산 소리 하고 그 예수 문제가 생긴 겁니다. 성경이 뭐라고 했는가? 주님이 뭘 원하는가? 어쨌든지 여기에만 주력하도록 하십시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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