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3.24 삿2:1 가나안의 좋은 환경은, 신앙의 복이 아니라 탈선으로 사용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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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3.3.24 삿2:1 가나안의 좋은 환경은, 신앙의 복이 아니라 탈선으로 사용이 되고..

관리1 0 55 2023.03.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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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4 금새

제목 : 가나안의 좋은 환경은, 신앙의 복이 아니라 탈선으로 사용이 되고..

찬송 :

본문 : 사사기 2장 1절 -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총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성경의 보김이라는 곳은 여기 한 번만 나옵니다. 5절에 보김의 보자에 보면 숫자가 1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난 밑으로 보면 보김이라 무슨 뜻이라고 적어놨지요? 우는 자들이라. 말씀을 듣고 울기라도 하면 희망은 있다라는 뜻입니다. 뭔 말인지도 모르고 이런 말을 듣고 저 뭐하는 사람들인고, 왜 우는고? 이 좋은 날. 아니 우리가 어때서? 뭐 뭐가 문제야? 다 그런데 그리 되면 사사기가 시작이 되어 집니다. 사사기 1장의 여호수아 끝자락에 이스라엘 점령이 시작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좋은 것을 주면 배가 부르게 되어 있고 인간은 배 부르면 그 다음부터는 이제 자기 현실 자기 좋은 환경을 자기 손으로 엎어버립니다. 유교 믿는 사람도 공깃밥을 먹다가 마지막 한 숟갈은 먹지 않고 남깁니다. 그 배고프던 시절에. 아침에 밥을 하면 아침 점심 저녁 중에 원래 우리 한국 식사는 아침 식사가 제일 풍성합니다. 없을 때라도 아침이 제일 많고 점심 식사는 좀 줄이고 저녁 식사는 더 줄입니다. 아침을 많이 먹는 이유는 뭘까요? 죽을 고생을 해야 되니까 일하기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점심은 왜 줄어들었을까요? 일이 좀 절반 줄어들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저녁은 왜 제일 적겠습니까? 자면 되니까. 문화가 발전하고 돈이 많아지면 아침은 일 나간다고 조금 먹고 일이 고된 일이 아니니까. 점심은 조금 더 먹고 그 다음, 뭐 별일 안 했고 이제 일을 하는 것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하루 일을 했으니 일 일찍 마치고 저녁에는 넉넉하게 시간 잡고 밥상을 펼쳐 버립니다. 그래서 그것을 만찬이라고 그럽니다. 아침에 먹으면 조찬, 일어나자 먹을 조찬, 아침 일어날 조자입니다. 그 다음 점심 때 먹으면 정오, 해가 중간에 걸렸다고 정오, 오찬이라고 그럽니다. 정오, 오찬. 만찬은 하루 해를 마치고 꽉 채워 펼친다고 만찬이라고 그럽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잘 먹고 사는 세상이 되면 저녁 식사가 제일 많아집니다. 생존에 허덕이면 있는 대로 아침을 채웁니다. 점심은 겨우 먹고 저녁은 그냥 자는 밤이니까 대충 덮어버리고. 먹을 것이 많으면 저녁에 많이 먹고 저녁에 많이 먹은 걸로 밤 새도록 죄를 지어야 배가 꺼집니다. 이제 저녁 실컷 먹고 뭐 서양 사람들은 댄스를 하고 뭔 시끌벅적 그냥 부어라 마셔라 별의별 소리 다 해가면서 그렇게 벅적벅적합니다. 텔레비 안 보기는 어려울 건데 드라마나 그런 화면에 그런 모습 봐 보셨습니까? 지금은 손바닥 휴대폰 안에 이런 그림들이 다 들어와 있을 건데, 서양 사람 생활의 그림도 그렇고 또 드라마만 봐도 생활은 딱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배고프면 생존을 위해 허덕거리고 허덕거리다 보면 발전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발전하게 되면 배가 불러 그 다음 이제 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면 신령한 세계는 산꼭대기에서 천국까지 끝까지 올라만 가야 되는데, 죄악 세상 물질과 이 땅 위에 사는 육의 생활은 산꼭대기까지는 허겁지겁 올라가는데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이제 내리막만 남는 겁니다. 끝없이 밑으로 바닥까지 내려갑니다. 하나님이 이것은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생존이 걱정되면 발버둥 치고 발전하고 끌어다가 모으고, 먹을 게 많고 입을 게 많고 살기가 편하면 그 다음부터는 이제 자기가 자기 선 자리를 파서 엎어서 진 뭉개서 모두 다 거름을 만들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게 사사기입니다. 성경의 시작과 끝을, 그 한번 그랬으면 됐는데 또 그리하고 또 그리하고 또 그리하고 끝까지 뒤죽박죽 뒤죽박죽 하다가 마지막에는 거의 영 다 죽어야 되는데 어떻게 겨우 목숨 하나 끄집어 낸 것이 사사기입니다.

그리고 참 안 됐지만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사사기 시대입니다. 뭐 아무리 사사기 시대가 아닌 쪽으로 끼어 맞혀보려고 해도 먹을 게 넘치고 입을 게 넘치고 사는 집이 넘치니 이게 의식주라는 것이 생활인데, 먹고 입고 살아가는 의식주 이것을 생활이라고 그러는데 인류 역사에 오늘처럼 이렇게 된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시기가 솔로몬 때 잠깐 있었고 실은 없었습니다. 성경을 면밀히 읽어봐 보시면 아브라함, 그 참 복을 받아 겨우 그리 되었지 늘 주변은 팍팍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들어갈 때 가나안을, 풀이 없는 자산이라. 성경의 자산은 붉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땅은 썩비리 좀 회색이 나와야 풀이 못 자라는 땅인데, 이스라엘 땅은 풀이 없으면 맨 땅이 드러나고 그 맨 땅 자체가 약간 좀 그런가 합니다. 풀 없는 땅이 가나안입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이삭도 이삭의 평생이 우물 하나 파서 물 해결하는 여기에 전력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우물 파서 물 만나는 게 전부였고 하나님이 도우셔서 그리되었고, 야곱도 끝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찾아갔다가 당하는데 형들이 이리 갔다더라, 저리 갔다더라. 형들 간 곳을 찾아다녔는데 그게 오래 걸리는 자리입니다. 그냥 옆 동네 뒷동네 정도가 아닙니다. 도단으로 갔다더라. 성경에 도단이 나오는 데를 읽어보면 압니다. 얼마나 먼데인지. 끝없이 풀을 찾아 짐승 떼가 주변을 다 먹어버리면 옮겨야 되고 옮겨야 되면 방목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니는데 땅이 좋지 않아서 한번 나가면 그렇게 멀리 가고 오래 가는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다니?

그리고 400년 애굽에 있다가 다시 돌아올 때, 아 그 땅이 비옥했으나 비옥한 땅에 먼저 터전 잡고 400년 자손을 버려놓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땅에 많이 먹고 덩치가 너무 커서 이스라엘은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서 좋은 땅 하나 차지하려고 참 전쟁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그게 여호수아기입니다. 신명기까지 모세가 죽던 신명기까지를 읽어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준다 그랬습니다. 또 가서 포도 한송이를 들고 오는데 장정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고 올 만큼 그렇게 크고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사기에 여호수아 곳곳에 하나씩 점령해 나가는 그 모습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을 비교해 봐야 해석이 되어집니다. 창세기 1장에 첫날 빛을 만들고 셋째 날 땅을 만들며 각종 채소와 씨 맺는 열매와 과목을 냈고 마지막 물고기와 새와 육지의 짐승으로 채워 온 천하가 창세기 1장에 보면 그냥 무성해 보입니다. 그런데 2장에 딱 들어오면 아무것도 없었더라, 땅에서 안개만 올라오더라, 보이는 게 없었더라.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향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기본의 은혜는 주셔도 채워 나가는 것은 기본구원 주신 다음에 건설구원으로 순종으로 충성으로 채워 가게 하듯이,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종류별로 인간이 할 수 없는 모든 시작은 시켰으나 그 시작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은 충성을 보시고 가질 수 있는 실력을 보시고 그리고 세월 속에 더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모세가 마지막 죽기 전에 가나안을 소개할 때는 젖과 꿀이 흐른다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막상 24장까지 이스라엘을 점령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피 터지는 전쟁이었고 그마저도 그렇게 살기가 좋은 땅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곳에는 가나안의 일곱 억센 본토인들이 먼저 뿌리박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사기, 이 사사기에 1장에 갈렙이 유다 땅을 점령해 나가는 과정을 적고 2장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애굽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고 이 땅을 줬는데 이 땅을 줄 때 약속이 있었습니다. 사사기 2장 2절입니다.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라” 너 또래 네가 사는 그 사회 그 현실 그 세상이 어떤 식으로 가도 휩쓸리지 말아라. 명확하게 얘기를 해놨는데, 한국에 살면 한국식 교회 되고 일본 살면 일본식 교회 되고 미국 살면 미제식 교회가 되지 않았느냐, 10대는 10대 노릇하고 30대는 30대 행동하고 50대는 50대 생각을 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 여기에 휩쓸리지 말고 거기에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너 주변에 가나안을 주셨는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현실 우리 환경에 전부 세어놓은 단, 하나님 없는 그들이 세운 단, 인도는 불교의 단 일 것이고 중국은 유교의 단 일 것이고 한국은 불교와 유교와 미신의 단,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그런 단을 세우지 말라고 했는데 너희들도 다 그 짓 아니냐? 요즘은 이런 공부해야 됩니다. 이 공부를 위해서는 이래야 됩니다. 너희들은 그런 단을 세우지 않느냐? 요즘은 이렇게 마련해야 되고 저렇게 꾸미며 이런 길을 가야 된다고 그러는데 너희들도 그렇지 않느냐? 이래야만 한다. 이래야만 하니 나도 그리 하겠다. 이게 단을 세우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단이라는 것은 높은 것을 말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 하룻밤 자며 돌베개 했던 돌을 단으로 세웁니다. 돌베개면 뭐 한 자지 돌베개가 한 1m 5m 되겠습니까? 베개는 높이가 높은 겁니까? 옆이 긴 겁니까? 돌베개란 받치는 거는 받치는 건데 옆으로 좀 길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세우면 돌단이 되는데 그 돌단이 몇 미터나 되겠습니까? 뭐 몇 뼘 되면 그게 전부지. 그 작은 돌이라도 돌을 가로 눕히지 않고 그것을 세워놓고 그 단에다 대고 맹세하고 무사히 돌아오게 하면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단이라는 것은 높이 세우는 것을 단이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하겠다. 표시, 표식, 기호, 목표, 목적을 단이라고 그럽니다. 전 이러겠습니다. 요즘은 이래야 됩니다. 전부 단입니다. 나는 이럴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은 이렇습니다. 요즘은 이렇습니다.

그 짓 하지 말라고 대속하시고 새 출발을 시켰는데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애굽에서 끌어 가나안 땅을 주시며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살아가면 위에서 복을 줄 건데 그래야 젖과 꿀이 흐를 건데, 하나님이 주신 현실 자기 환경에 요즘은 이렇습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전부 자기대로 일정이 있고 목표가 있고 자기 가치가 있고, 제가 해외 유학을 갈 건데 언제 부모님 얼굴 볼 시간이 있겠습니까, 시험이 앞으로 다가왔는데 뭔 새벽 예배가 있을 겁니까. 이단 저단 하나님 앞에 세워 놓은 단 치우고 요즘은 이럽니다 저럽니다 부지런히 세웠었는데

2절에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일, 이 땅 거민들이 세워놓은 단은 전부 헐어라 했는데 도무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니 그러면 하나님도 너희 옆구리에 3절, 찌르는 가시가 되게 하고 너희들이 참고하는 신들이 올무가 되리라. 올무라는 것은 멧돼지 뒷발을 갖다가 철사로 감아 놓으면 100킬로 200킬로 되는 곰도 멧돼지도 발목을 자르기 전에는 못 나갑니다. 호랑이도. 호랑이가 뭐 덜 무서워 호랑이입니까, 멧돼지 곰이 등치가 적어 올무입니까.

“그들의 신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네가 참고하고 네가 걸어가고 나도 이런 세상에 이리 살아간다는 그것이 올무가 되고 네 허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리라.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모습이 안타까워 전했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그 말을 듣고 소리 높여 운지라” 아직도 양심이 있어서 소리 높여 우는 때입니다. 이때가 지나가면 그런 감정도 없어집니다. 밑밑해집니다. 뭐 이 정도면 어때서 왜 저런 말을 할까 이렇게.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이 울어야 될 때인지 오늘이 뭐 그냥 하루 종일 갈 때 많고 입을 것 많고 볼 것 많고 오늘만 같아여라. 배고프던 시절은 8월 추석이 되면, 8월 추석이란 음력 8월을 말합니다. 9월이 되지요. 배고플 때는 8월 대보름 오늘만 같아여라. 오늘만 같으면 임금이 뭐 부러울 거냐. 오늘 이 세상은 추석까지 1년 열두 달 지금만 같아여라. 참 좋은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울어 밤을 지새며 이 정도면 이건 그 다음이 이제 참 어찌 되는데 그리 보는 겁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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