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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2 수밤
제목 : 죄악 세상 먹장 같은 내 마음, 책망으로 깨끗히 고쳐 씻어가는 자부심
찬송 : 141장(예수 더 알기 원함은)
본문 : 잠언 25장 11절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 이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귀하게 복된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시고 잠깐의 세상이 측량 못할 영광의 길로 이어지도록, 사활의 대속으로 길을 열어주시고 영원 전 목적으로 불변의 목표를 세워주신 주님. 이 밤도 부르셨으니 마음을 열어 들리게 하시고 들리는 말씀 말씀 속에 성령이 직접 가르쳐 주시고, 능력으로 깨달으며 감사함으로 배우고 고치고 자라가는 남녀노소의 저희 교인들이 되어, 세상은 세상으로 발전하고 우리는 말씀으로 자라가는 우리의 길 복되는 날 되도록 이 밤도 함께 해 주옵소서. 고르지 못한 일기에 예배를 마음에 두고 오고 가는 차량 또 걸어 오고가는 모든 분들에게 교통 위험 없도록 늘 안전을 지켜주시고, 병원 요양 출타 근무 해외까지 두신 우리 모든 식구들. 이 시간도 예배를 기억함으로 연결에 예배에 동참케 하시고 그리되지 못할 때는 마음속에 더욱 애타는 갈급을 주사, 주님이 직접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받게 해 주옵소서. 사모하고 준비하는 5월의 집회를 주님이 개최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오가는 행사가 아니라 말씀 속에 성령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가정가정 한량없는 복은 베푸시는데 깨달음으로 감사하게 하시고, 또 역량을 따라 감당 못하여 어려운 가운데 있는 가정들. 연단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되어 지면 주의 은혜 넘치게 됨을 소망하게 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귀에 금 고리 귀고리를 다는 것은, 좋게 듣겠습니다. 라는 광고입니다. 귀에는 아름다운 귀고리 걸어 놓고 나쁘게 듣고 잘못 듣고 그냥 안 좋은 거 듣고 그러면, 그 돼지 코에 돼지 코에 걸려 있는 그 코걸이하고 같아집니다. 돼지가 귀고리 코걸이 목걸이 한다고 그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름다워지겠습니까? 더 우스꽝스러워 지겠지. 하나님이 사람은 참 좋게 만들어 놓고 참 좋게 만들어 놓고, 귀에는 귀고리를 달면 좋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 때부터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저는 제 체질이 안 맞아서 귀고리 뭔 코걸이 이런 걸 좀 못 보는 성격인데 그건 제 사정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놨을 때 그에 귀고리 목에 목걸이 정도 이렇게 좀 잘 달아놓으면, 사람이 더 좋게 되도록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묘하게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사람의 발도 봐보십시오 얼마나 이게 참 좋은 발인지. 그런데 신발을 신고 돌아다녀보면 좋은 발이 더 좋아집니다. 근데 신발을 신고 안 갈 데를 가니까 뭔 다리가 부러지라 말아라 오만 소리가 다 나오지. 맨발로 다니는 것보다 신발을 좋게 잘 신고 사용하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겁니다. 우리의 손도 봐 보십시오. 따뜻한 장갑으로 또 작업할 때 좋은 그런 고무장갑으로 일이 되도록 곱게 좋게 만들어 놓으면, 고무장갑 없던 옛날에 부엌에 일하면서 얼마나 참 험했습니까마는 지금 분들 다 곱지 않습니까? 신발도 그렇고 장갑도 그렇고 귀고리 목걸이도 보기 좋게 적절하게 곱게 사용하면, 구약은 물론 신약까지도 금지는 하지 않습니다. 근데 좋게 쓰라고 줘놓으면 꼭 안 갈 데를 가고 안 할 일을 하고, 귀에는 귀고리 예쁘게 달아놓고 안 들을 것 듣고 못된 것 듣고 엉뚱한 것 듣고, 아니면 뒤집어 듣고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해 싸니 그러니 이제 그 귀에다 대고, 귀고리 뭐 귀고리만 달면 되냐 이제 이런 말이 나가는 겁니다. 귀고리 자체 잘못된 거 아닙니다.
코에는 왜 코걸이를 달지요? 향기로운 냄새를 맡는 이런 내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약속입니다. 근데 귀고리는 가끔 이렇게 하시는 것 같은데 코걸이는 왜 안 하지요? 귀고리 하실 바에야 코걸이도 하시고 뭐 그냥 여기저기 그냥 그리하셔도 성경에 죄 되는 거 아닙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 게시판에 술이 죄냐 이렇게 질문이 들어왔는데 술 죄가 아닙니다. 근데 한국 교회는 100년 전에 우리 스스로 안 먹겠습니다. 자기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내 약속은 내가 지켜야지. 내가 내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이 있겠습니까. 뭐 이건 끝도 없는 겁니다. 그다음 양식 안 되는 것은 돈 주고 사 먹지 말아라. 이 말씀 때문에 안 먹는 겁니다. 술이 음식이 되고 건강에 좋으면 얼마든지 보약 되고 음식 됩니다. 가끔 좀 문제 있는 의사들이 한두 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건강에 좋다고 그러는데, 양심이 있는 의사들은 한 잔도 건강에는 치명적이라는 소리, 이건 다 세계적으로 공통입니다. 암 걸리려면 먹어라 이제 이렇게 돼 있는 겁니다. 그냥 마셔서 안 좋은 거 마셔서 배부르지 않는 거 돈 안 되는 것 일하는데 안 좋은 거. 아니 뭐 재미로 말하면 마약이 낫겠지요. 재미로 말하면 도박이 낫겠지. 저 같은 사람들은 어릴 때 재미가 그냥 골목에 가면서 돌 던져서 남의 집 유리창 깨는 건데, 재미로 말하면 그게 좋겠습니다마는 네가 재미있으면 해라. 그 집에 가서 좀 돌 좀 던져보고 그래도 되냐 이렇게 물어보면 아니라 그럴걸요. 조금 양심껏 넣고 떼고 이렇게 계산해보면 모든 것은 명확해집니다. 그 어려운 거 하나도 없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주일부터 말씀이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세 가지로 구별했었습니다. 말씀에 맞냐 안 맞냐. 옳은 말. 두 번째는 옳기는 옳은데 네가 네 처지에 네 입에다 대고 그런 말을 해도 되느냐. 말은 옳은 말이나 네 입으로는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이런 게 있는 겁니다. 둘. 그 믿는 사람은 첫째 말씀에 옳고 맞는 말 근데 그 말을 내 입으로 해도 되느냐? 사람이 경우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에 맞는 것은 옳은 말. 내 입장 내 환경에 맞는 말은 옳은 말이 그 다음 맞는 말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근데 옳은 말을 맞게 해야 되는데 세 번째는 이왕이면 단어도 좋은 단어가 좋으니 고운 말 쓰시라. 고운 말이란 들은 사람의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이렇게 세 가지로 살펴봤습니다. 옳고 틀린 문제. 빨간 신호등에 차가 직진해도 되느냐 그건 누구한테든지 안 되는 겁니다. 이건 옳으냐 그르냐 문제입니다. 빨간 신호등에는 차가 서야지 가버리면 안 됩니다. 옳고 그른 문제. 근데 자기는 빨간 불에 늘 오고 가면서 남들한테는, 요즘 젊은 것들은 빨간 신호등에 무시를 하고 저렇게 댕겨? 말은 옳은 말인데 너는 더 그러는 인간이 네 입으로는 하는 말이 아니지. 이게 이제 맞냐 안 맞냐라는 말입니다. 적당한, 적당한. 옳으냐 아니냐. 이건 지식으로 배워야 되고 알아야 됩니다. 근데 이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느냐. 그건 환경을 둘러보고 나를 보고 옆을 이렇게 봐보면 그거는 딱 판단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내 처지에 나 서 있는 자리에서 나 있는 데서 그런 말해도 되겠냐.
화나면 교회 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화난다고 교회 안 나오고 그러면 안 됩니다. 늘 평생 설교한 사람이 어느 날 화난다고 교회 안 나와 버리면,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지만은 설교하던 네가 그러면 안 되지. 경우가 안 되지. 이런 걸 합당한 말이라 그럽니다. 그다음 빨간 신호등에는 차가 가면 큰일 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빨간 신호등을 잘 지켰습니다. 근데 이 사람 빨간 신호등 안 지키다가 한번 큰 사고가 날 듯 하면, 내가 말을 해도 좋은 사람이면 그 말을 한다면 그게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그런데 죽인다. 살린다 뭐 빌어먹는다. 죽인다. 살린다 그러면서 말려도 되지만은, 그 빨간 신호등에 가다가 만약에 한 번 사고 나 놓으면 너 가족 너 식구들이 어떻게 되겠냐. 가족 때문에라도 좀 참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족 때문에라도 내가 참는 것이 맞겠구나. 이렇게 말이 설득이 잘 되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네가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하냐 마냐 이걸 떠나, 빨간 신호등 지나가다가 사고 나서 내 가족한테 문제가 생기면 아 이거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라도 만약에 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조심을 한다면 이건 고운 말입니다. 신앙에 도움 되는 말이 고운 말. 나는 진리에 옳은 말 했다. 맨날 그러는데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남 말만 하는 사람 참 문제. 또 옳기는 옳고 나는 내 인생을 잘 살았기 때문에 누구한테든지 큰 소리를 칠 수 있다 치고, 똑같은 말인데 더 강하게 더 세게 더 박박 긁어서 말을 하니까, 너 얼굴을 쳐다보고 너 말만 들어도 그냥 들 정이 없고 그냥 진절머리가 난다고 도망을 가버리면 또 문제가 아닙니까? 그런 것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 세 가지를 다 합해서 옳은 말을 하나님이 주신 내 입장을 잘 생각해서. 그 다음 세 번째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이 저 사람 신앙에 도움이 될까. 이게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근데 이 모든 것을 두고 상대방의 신앙에 꼭 필요하여 이걸 잊지 아니할 때 아로새긴 은쟁반이라 했습니다. 금 사과니라. 말씀에 옳은데 하나님이 주신 내 환경을 생각하고 그리고 상대방의 구원에 꼭 필요한 말씀을, 주님 주신 대속으로 저 사람도 구원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변치 않는 요 마음으로 잘 전했으면 이건 주님이 영원무궁토록 너의 그 한 마디는, 영원무궁토록 하늘나라의 모든 천군 천사와 만물이 박수치고 저런 말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막 그냥 모두 박수 치는 그런 말이 된다. 그랬습니다.
사택 식구니까 그냥 이해하고 들으십시오. 오늘 아침에 아이가 몇 킬로라던가요? 3.8kg 출산이랍니다. 사택 식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3.8kg라 하면 한순희 집사님 어떤 생각이 먼저 딱 들어오나요? 3.8킬로 예? 정상이요? 오은아 선생님은 무슨 생각이 들어가나요? 아이가 3.8kg라고 그러면? 아이고 산모 죽다 살았겠구나. 사람 따라 다 다릅니다마는 한 2.8 2.9 이 정도면 작아서 안타까운데 그건 뒤에 잘 크면 되는 겁니다. 작다고 나중에 뒤에 작은 건 아닙니다. 크게 나왔다고 크게 크는 아이도 있지만 크게 나와 가지고 또 안 크는 애들도 있습니다. 그걸 모르니까 그냥 옛말에 그런 말이 있죠. 작게 낳아 크게 길러라 다 그럽니다. 뭐 얼마나 그거 중요한 말인지. 작게 낳는 방법은 혹시 아십니까? 오혜진 선생님. 목소리가 자신이 없는데요. 아이를 작게 낳는 방법을 아십니까? 100%로 되는 건 아닌데 좀 크게 몰라요? 한 집사님 아십니까? 엄마가 고생을 하면 또 죄송하지만은 시집을 독하게 살려놓으면, 열 달 아이 때문에도 치이는데 막 그냥 사방에 그래놓으면 일하느라고 정신없다 보면 아이가 크지를 못합니다. 근데 이게 작게 나오면 엄마 고생을 덜 하거든요. 그리고 이제 나오고 나서 잘 먹이면 얼마든지 키웁니다. 작게 낳아 크게 길러라 그 말은 집안의 내력대로 대체로는 가지만은, 아이를 가지고 아이가 떨어질 만큼 돌아다니거나 무거운 걸 들면 그거는 아이가 못 견디는 거고, 아이 조심하면서 산모가 좀 움직여 고생을 하면 아이는 적게 낳습니다. 참 뭐 얼마나 하나님께서 묘하게 공평하게 해놨는지 안 봐도 왕궁에 왕비들 아이 낳다가 많이 죽었거든요. 우리나라 역사뿐이 아니고 세계 역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왕궁의 왕비가 고생하겠습니까? 애를 가졌는데. 그러니 잘 먹고 애 낳을 때 반 죽어버리고 아니면 진짜 죽어 버리는 겁니다. 못 사는 집은 못 먹으니까 이거는 서러운데 먹고 살자니 움직였고 움직이다 보니까 아이를 적게 낳아 이런 거는 도움이고, 일을 했는데도 크게 낳은 사람은 일을 안 했으면 더 커져서 출산하다가 죽습니다. 그러니 선택은 알아서 하시는 겁니다.
3.8kg 딱 말을 들으면 아이고 산모 영 죽다 살았겠구나. 이랬는데 이제 아이를 안 낳아본 남편은 저한테 데다대고 뭐라고 축전을 보내느냐? 3.8kg인데 무사히 출산했답니다. 그래서 3.8kg가 무사히 나와? 그것도 결혼 처음해서 첫 아이를 가질 때야 누가 알겠습니까. 남자들이야. 세 번째 아이라면 3.8kg면 영 죽다 살았는데 그냥 죽지는 안 했고 고장은 없습니다. 이제 이렇게 돼야 되는 겁니다. 남자가 그렇게 말을 해야 딸 준 처가 집에서 우리 딸을 아끼는구나. 마음씨가 저러면 던져놔도 그냥 안심해도 되겠구나. 이러는데 3.8kg 의사가 장애 아니랍니다. 죽지도 않았고 졸도도 안 했습니다. 이래버리면 참 말은 맞고 그거 경우에 어떻다고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닙니다. 아이 낳느라고 고생한 엄마는 아이 뭐 은혜로 잘 낳았습니다. 그게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남자는요? 죽다 살았을 건데 그런 말도 또 애써 한다고. 이렇게 도란도란 이렇게 살면 부부들이 짧은 생애가 얼마나 좋을 건데. 여자는 아 낳아 줬다고 오만 소리 다하고 또 남자는 속으로 그냥 4kg도 낳고 요새는 5kg도 낳고, 급하면 그냥 제왕절개로 꺼내기도 하고 유도분만도 있고 무통주사도 있고 뭐, 이 좋은 세상에 뭐가 문제야? 이게 이제 서로 안 맞아서 서로 박치기 하는 겁니다. 유리창하고 고드름하고 둘이 박치기를 하면 막 엉망진창이 되는 겁니다. 똑같은 말 곱게곱게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곱게 한다는 말은 말의 표현이 부드럽게, 부드럽게 그런 말이 아니라 경우가 바로 되면 말은 고운 말이 되는 겁니다.
3.8kg입니다. 너무 고생해서 참 그냥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남자 말이 그리 되면 그게 고운 말입니다. 여자 말은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어 인류가 이 모양이 꼴 되었으니, 죽을 고생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그게 마땅한 거고.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으니 아이를 낳을 때 고생을 더하는 것이 내 구원에 더 좋으니 뭔 말을 합니까. 이러기 때문에 출산을 통해 고생하므로 여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남자가 알지 못하는 구원의 세계를 주셨으니 이것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이 오고가면 이게 참 그냥 좋은 가정 되는 겁니다. 이거 하나 삐꺽 해놓으면 이제 바로 그냥 비행기 두 개 공중에서 뻥 충돌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 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12절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11절과 12절을 하나로 딱 합해서 겹쳐서 마주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할 줄은 모르고 아이큐가 높다. 그 아이큐 높은 것은 슬기롭다 그렇지 않습니다. 슬기롭다 말은 가장 간단하게 눈치 있다. 뭔지 눈치 있는 사람이다. 그 말입니다. 성적표 말하고 두뇌 성능 좋고 그런 거 말하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그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이게 옳으냐 저게 옳으냐 옳고 바른 걸 알아야 1번이라고 그랬습니다. 근데 옳은 게 뭔지는 알겠는데 나로서 이 말을 해도 되느냐 이제 아주 달라지는 겁니다. 참 달라지는 겁니다. 옳기는 이게 옳은데 옳기는 옳은데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입장과 환경을 생각할 때 이 말은 꼭 하는 것이 맞겠구나. 그러면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마지막에 뱉을 때는 표현할 때는 그 듣는 상대방이 이해가 되어 그 감동이 되어 맞다 참 그래야 되겠다. 또는 들을 때는 속에서 반발을 했지만은 그 말이 콕 찍혀서 죽는 날까지 맴돌며, 참 그렇다 맞다 그렇다 맞다 그렇다 맞다 이리 되면 그게 고운 말입니다.
아마 그때는 제가 한 20대 됐을 건데 집 안에 결혼식이 하나 있어 이렇게 쭉 모두 모였는데 숙모 중에 한 분이 그래요. 숙모 중에 한 분이. 결혼식에 집안 결혼식 사진을 찍으면 아니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어야 창피하지 않는데, 남자들은 다 일찍 가고 여자들만 소복하게 있으니, 누가 봐도 아 저 집 안에는 남자들이 전부 단명이라. 숙모들 동서들 어머니들은 오래 살고 아버지들은 전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모든 일찍 돌아가셔서 결혼식 사진을 찍는데 온 집안 한 눈에 딱 보면, 남자 쪽은 다 가셔버렸고 여자들만 있으니 신랑 신부를 보면서 뭐라 그러겠습니까. 저 집에 남자니 저것도 오래 살겠냐. 이제 그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이 집안은 단명이 돼서 결혼식에 남자들은 사진에도 안 나오니 그 말이 아름다운 말입니까? 집안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린 나쁜 말입니까? 한 번 듣자 지금 죽는 날까지 제가 안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이 제 마음속에는 아 그렇다. 우리 집안은 남자가 좀 많은데 다는 아닌데 대체로 성깔이 전부 다 포악합니다. 못 됐습니다. 막 그냥 막 나갑니다. 그게 막 나가니 그게 뭐 싸우다 죽었던지 뭐 어디 뭘 지뢰를 밟았던지 그 곱게 살겠냐. 그놈의 성질이 그러니 오래 못 살겠지. 이게 이제 연상이 되면서 목사가 좀 오래 살아야 교회에 짐이 안 될 테니 성격을 고치는 게 좋겠구나. 이 집 안에는 남자는 다 일찍 죽고 여자밖에 없어 창피하다 그 말이 제게는, 평생에 잊지 않고 경우에 합당한 말이 되어. 왜 일찍 죽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부친도 그렇고 밑에도 그렇고 위에도 그렇고 사촌도 그렇고, 전부 울컥 벌컥 휙 다 뒤집어 엎어버리니 머리가 터지든 심장이 터지든, 속이 썩어서 내려앉던 참 오래 못 살겠구나. 그러면 저한테는 뭐가 되지요? 나도 막 있는 대로 성질을 다 풀다가 위에 일찍 간 사람처럼 휙 가야 되는지, 나도 내 멋대로 살다가는 요절하겠구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살면서 조심조심 그렇게 산다고 산 게 요 정도입니다. 그 말 안 들었으면 더 심했겠지요? 그 말을 제게 한 사람은 아름다운 말 고운 말을 한 겁니까? 독하고 악하게 남의 집 안에다 대고 저주를 퍼부은 겁니까? 그 말씀을 하신 분은 숙모니까 이 씨가 아닙니다. 성씨가 다릅니다. 이 집에 시집 와가지고 시댁을 갖다 그렇게 욕을 해? 이렇게 안 받고 그렇겠구나. 성격 생활 모든 걸 바꾸는 게 좋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오래 살면 남 줍니까? 나한테 좋지. 이게 고운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고운 말이지. 그때 뭐 이러고 저래서 이분도 이러고 저러해서 할 수 없이 갔고 이분도 이러고저러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갔고 이렇게 잘 포장을 해서 이 집안은 다 좋은데 이렇게 했더라면, 그 제 머릿속에 남았겠습니까? 제가 조심을 했겠습니까? 세상은 그냥 무조건 그냥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냥 대충대충 유치원 애들 놀이동산처럼 말해라 사랑해요. 뭐 해요. 이게 고운 말이라 그러는데 믿는 사람은 그런 거 치우고 말씀에 옳으냐. 말씀에 틀리면 하늘에서 천벌을 때립니다. 말씀에 옳으냐. 이게 경우에 일차 당한 말입니다. 두 번째 네 형편 너의 입장은 하나님이 세팅을 시켜줬는데, 이런데 이렇게 살려고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펼쳐 놓았는데, 네 입장을 생각할 때 그 말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둘. 마지막에 이 말을 했을 때 상대방 신앙에 어떻게 되겠는가. 3단계로 생각해서 옳은 말 맞는 말이 그 다음에 신앙에 곱게 나갈 때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슬기로운 사람.
그런데 이 슬기로운 자가 12절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칭찬을 많이 해야 남한테 모두들 말 잘한다 말 듣지. 도둑놈한테도 뭐 도둑질을 안 했을 겁니다. 사기범한테도 아이 사기를 안 쳤을 겁니다. 경찰 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또 커닝한 아이한테도 뭐 커닝을 했으려고? 그냥 우연히 봤는데 그게 답안지가 보였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을 건데. 이게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까? 죄 지은 것들은 가차 없이 처벌을 받아야 다음에 그런 짓을 안 하고 그래야 그 인간이 좋아지고 사회가 좋아지는 거다. 이게 옳은 말입니다. 그게 맞는 말입니다. 근데 내가 내 입장을 생각할 때 그 말을 남한테 할 처지가 되느냐. 처지가 된다면 커닝해서 점수 올린 아들한테 어떻게 말을 해야 고운 말이 될까? 얘야 우선은 커닝이 빠르지? 우선은 커닝이 빠른데 그 옛날 고속도로에 90년대까지 붙여놓은 간판에 이런 게 있습니다. 5분 빨리 가려다가 50년 빨리 간다. 서울까지 보통 여수에서 400km 부산에서 400kg 천리 길입니다. 남쪽에서 서울까지 천리 길인데 시속 100km로 그대로 가면 딱 4시간 걸립니다. 근데 그냥 빨리 가려고 있는 대로 밟아 봐도 마지막에 시간 계산해 보면 한 5분 댕깁니다. 그 5분 때문에 엉망이 되거든요. 그래서 고속도로 곳곳에다 대고 5분 빨리 가려다가 50년 빨리 간다. 너 우선 커닝해서 점수 올리는 것은 굉장히 효율적이고 좋아 보이지? 나중에 10배 100배 손해 보는 거다. 어떤 예를 들고 어떤 단어를 써야 저 녀석이 다음에는 내 말이 기억나서, 아이 끔찍해라 커닝을 안 해야지. 이렇게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요즘은 cctv가 다 쳐다보고 있다? 이게 좋을까. 요즘은 거짓말 탐지기 딱 넣어보면 100% 나와 버립니다.
어느 아버지 장관까지 올라간 거 딸이 커닝 한 번 하다가 그냥 교도소까지 떨어져 버렸다. 어떠냐? 부모가 저렇게 위대한 사람도 그런데 너 부모 실력으로 너 때문에 집 안 풍지박산 나야 되겠냐? 어떤 말을 해야 이 애가 내 말을 듣고 말이 먹힐까. 강한 게 좋으면 강한 게 고운 말입니다. 약하게 말을 해도 타고 나기를 아이들이 겁이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타고나기를 겁이 많은 아이들한테는 표현을 좀 낮춰야지, 겁이 많고 부드러운 아이한테 단어를 세게 세게 치면 이 아이의 면역력이 강해지고 살결이 두꺼워져가지고, 독한 말을 해야 알아듣게끔 되어 집니다. 원래 아이의 성격이 좀 부드러우면 말을 좀 낮춰야 되는 거고, 낯짝이 그냥 철판이 돼가지고 웬만큼 쳐도 꿈쩍도 안 하면 망치로 좀 두드려야 되는 거고. 우리처럼 이렇게 한 교회가 한몫에 모였을 때는 여기가 서울 중심이 아니고 순한 사람 착한 사람 모인 순천도 아니고, 전국에서 알아주는 막 가는 사람이 모인 여수에 신풍 바닷가 예배당에서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도, 워낙 거친 분들이 평생을 살아오셔서 웬만큼 거친 말은 꿈쩍도 안 할 겁니다. 그래서 이제 목소리를 좀 높일 수도 있는 겁니다. 교회마다 가정마다 사람마다 그거 좀 다른 겁니다.
신풍 와서 아마 아이 뗀 수술 이야기는 첫 상담이었을 건데, 아가씨 말이 아를 떼버렸는데 천국 갑니까? 지옥 갑니까? 그래요. 그래서 아를 떼다니? 말도 좀 단어 좀 골랐으면 좋겠다. 여자 입에서 할 수 있는 말이 똑 단어도 그 단어밖에 없겠냐. 그랬습니다. 아마 거칠게 살다 보니까 곱게 말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 됐겠지. 11절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그리고 12절에 슬기로운 자의 칭찬이 아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아이 뭐 그까짓 것 칭찬하고 남 듣기 좋게 좋게 좋게 말하는 거야 누가 못합니까. 뭐 아무나 다 잘하지. 카나리아가 저보다 더 잘하고 꾀꼬리가 더 잘하겠지. 그렇다고 또 까치 소리에 또 까마귀 소리 그거 들어서 되겠습니까? 진절머리 나게.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경우에 합당한 말로 가르쳐야 되겠는데 경우에 합당한 말로. 저 사람을 어떻게 고쳐야 귀에 쏙 들어가고 잊지 않고 고쳐서 저 사람이 좋아질까. 그게 경우에 합당한 말인데 이 경우에 합당한 말 야단치는 말을 말합니다. 책망. 야단을 쳐야 사람이 되고 고쳐지지. 저든 누구든 이 땅 위에 모든 인간은 죄악세상 아래에 사는 우리들입니다. 내 속의 죄악의 마음을 고치는 게 우리의 평생입니다. 그래서 알고 보면 우리는 칭찬받을 일이 사실은 거의 없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없다 생각하면.
평생에 사슴 노루 토끼 잡아먹고 살던 사자가 어느 날 배가 불러서 토끼 한 마리 안 잡아먹고 그냥 돌려보냈다고 그걸 착하다 해서 되겠습니까. 사자는 직업이 잡아먹는 건데. 타락한 인간은 죽는 날까지 자기 마음 자기 생활을 고치는 게 평생에 하는 일입니다. 아예 칭찬받을 일이라는 것은 남의 일로 제쳐놓아야 되지. 이 정도 했으니 칭찬받아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가는 순간 그 사람 해결은 없습니다. 아예 난 죄인 중의 괴수 죄인이고 나는 영은 구원이 됐지만은 내 마음은 죄악 속에 푹 담겨 있으니 얼마나 고치고 가느냐. 이게 문제니 이걸 고치려면 남한테 책망 받고 나도 내 양심에 책망 받고 늘 책망 받고 고치는 거다. 학생이 학교 가서 배우고 시험지를 받으면 이것도 틀렸고 이것도 틀렸고 그래야 실력이 자라겠습니까? 이것도 맞고 이것도 맞고 그래야 실력이 자라겠습니까? 고등학교 1학년한테 초등학교 1학년 문제 내주면 전부 100점입니다. 아이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뭐 그냥, 너는 천재고 너는 공부 안 해도 100점이고. 사기꾼들 아닙니까? 고등학교 1학년 공부를 제일 잘하는 것들은 따로 특수반에 모아가지고 대학교 문제를 풀어서, 틀린 것이 많이 나오게 해서 너희가 앞으로 배울 것이 이렇게 많은데 여기서 1등 한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이렇게 뒤를 쫓아야 될까 말까 그런 겁니다. 시험을 출제를 했는데 틀린 게 많이 나와야 그게 발전의 소망이 있고 그래야 학교를 다니는 거지. 그걸 달리 말하면 책망이라 그럽니다. 설교하는 저도 이 설교를 하면서 제 속에 고칠 것만 눈에 많이 보여야 되고, 듣는 교인들도 들어보면서 참 엉망으로 살았다. 멋모르고 살았다. 참 대나 개나 살았다. 거꾸로 살았다. 참 많이 고쳐야 되겠다. 한꺼번에 다 못 고치니 오늘 이 밤에는 특별히 한두 개 뭘 고쳐야 될까. 이것 때문에 교회 세우고 이것 때문에 설교하고 이것 때문에 예배드리고 이것 때문에 집회 가는데, 아니 좋은 말 좋은 말 칭찬이나 진뜩 하시지 뭐 그냥 그렇게 야단을 치십니까. 그러면 이건 종교를 몰라 그런 겁니다. 종교와 교회를 몰라 그런 겁니다.
3.8선 군인들한테 이거 위험하게 총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장난감을 가지고 노셔야지요. 또 비행기 조종사들한테 그 하늘 날다 떨어지면 어떡할 겁니까. 비행기 가지고 살살 앞뒷집 그냥 골목이나 다니십시오. 선생님에게 애들 가르치면 골치 아파하는데 왜 애들에게 고통을 주십니까. 그냥 도란도란 놀다가 보내면 되죠. 그래도 월급 나오는데 뭐. 이게 나라입니까? 교육입니까? 이런 데를 생지옥이라 그럽니다. 이미 죄를 지어 우리는 죄악세상 속에 살고 이미 죄를 지어 우리 마음은 먹장보다 검은데, 오늘 씻는 것만큼 천국에 깨끗하게 갈 수가 있으니 하나라도 더 씻어보자. 또 씻어보자 또 씻어보자 취미가 씻는 거고 소질이 씻는 거고 배우는 것이 씻는 거고, 많이 씻는 걸 우리는 자랑스러워하자 이렇게 생각을 바꿔놓으면, 누가 무슨 말해도 그 말을 가지고 날고치면 더 좋아지지 마음 아플 리가 없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돼야 되는 겁니다. 이게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듣는 사람을 청종한다고 그럽니다. 듣는 사람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 이니라” 왜 귀에 귀고리를 다느냐? 어떤 말이든지 아름답게 들을 겁니다. 좋게 들을 겁니다. 복된 말만 골라 들을 겁니다. 라는 겁니다. 누가 저주를 퍼부어도 그 저주가 내 귀에 들어올 때는 금고리라. 불변에 변치 않는 복음이 되도록 복음이 되도록. 야 이 망할 인간아 누가 나를 그렇게 욕을 하면, 그렇지 아담이 죄를 지어 망하게 되어 있고 죄와 악령과 세상 속에 망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런데 이 망할 세상에서 주님으로만 구원이 있으니 망할 놈아 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렇지 주님으로 더 나아가야 되겠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한 번 더 용기를 내면 뭐 저주는 저주라서 좋고 복은 또 복이라서 좋고. 누가 뭔 말하든지 귀를 막아서 영향을 안 받는 것이 아니라 뭔 말을 해도 좋게 골라 들을 수 있는 걸 귀고리라 그럽니다. 근데 이 귀고리가 끝까지 변치 않으면 금 고리가 됩니다. 금귀고리.
정수기 물통을 다 아십니까? 어떤 물을 퍼부어도 나쁜 거는 딱 걸러내고 마셔서 좋은 물만 쏙 건져서 드십시오. 그걸 정수기라 그럽니다. 그 정수기를 귀에 하나 달아놓은 걸 금귀고리라. 12절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의 금 고리와 같다. “정금 장식이니라” 뭐 귀에 금 귀걸이 하나뿐이겠습니까 별의 별 걸 다 붙이되 붙여서 저 사람한테는 멀리 말을 해도 복되게 바꿔 들을 줄 알더라. 복된 거는 복되게 그대로 듣고 저주는 또 뒤집어 잘 듣고. 뭔 말하든지 복되게 들어 복되게 저 사람은 쑥쑥 자라가더라. 그런 사람들 되도록 함께 노력 좀 하십시다. 좀 그러면 좋겠습니다. 학교 보낸 아이한테 교장도 야단 못 치게 막아주고 담임도 야단 못 치게 다 막아주고, 선배들도 말 한마디 하면 학폭에 넘겨서 전부 다 막아버리고 그건 쉽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를 내가 공주병 왕자 병을 만들어 몹쓸 아이를 만드는 겁니다. 뭔 말을 듣던지 그 말을 들을 때는 이유가 있을 거다. 그걸 잘 돌려 생각하면 복된 사람이 된다. 이걸 가정에서 한번 두 번 가르쳐 어디 내놔도 말은 조심하고 어떤 말을 듣든지 그 말을 복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으면 명품이 되는 겁니다. 명품.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복된 말 복되게 할 수 있어야 되고 동시에 어떤 말을 들어도 복되게 들을 줄 알아야 되고 주님 앞에 신앙에 도움 되도록 이것은 사명입니다.
1차: K.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