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3.3.17 출1:11 애굽을 가야 한다면 신앙의 소망과 실현에 소망과 기도와 인내를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금새23.3.17 출1:11 애굽을 가야 한다면 신앙의 소망과 실현에 소망과 기도와 인내를

관리1 0 49 2023.03.17 18:05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30317 금새

제목 : 애굽을 가야 한다면 신앙의 소망과 실현에 소망과 기도와 인내를

찬송 : 77장(어지러운 세상 중에)

본문 : 출애굽기 1장 11절 -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창세기 46장에서 야곱이 가족들을 다 데리고 애굽으로 넘어와서 바로 왕을 만나고 그러면 바로 왕은 애굽을 살린 보배라 그 가족들 살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은 문제가 없었고 환영하는 자세였습니다. 애굽으로 들어가는 것이 신앙의 근본 사는 방향과 위치에는 잘못이었으나 야곱 때 130살에 훗날을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정을 해두셨고 뜻하지 않게 그렇게 불러 간 것은 야곱이 애굽에 구경 간다든지 또는 땅 위에 소망이 있어 간 것이 아닙니다. 조상 때로부터 또 앞날에 주실 가나안 여기만 목표를 삼았는데 가나안이 가나안 되도록 하기 위해 애굽을 거쳐 봐야 되는 경험이 필요했고 그 경험이 뭐 몇 년이 아니라 장장 400년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그려보는 게 싫습니다. 사람이라. 우리가 그려본 것 그 누가 자기가 그려본 것 싫어할 사람이 있고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우리를 만들 때부터 무지자로 무능자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아는 것이 당장에 짧은 생각에는 좋은 것 같은데 넓게 멀리 두루 살펴보면 어리면 철없는 일 하게 돼 있고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야 뭘 좋아하는지 우리가 다 알지 않습니까? 애들 원하는 대로 풀어놔가지고 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는 부모가 데리고 가는 방향이 있고 아이들은 이걸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교육이 있고 교육이 어렵다는 거고 참 그거 성공해본 사람은 없다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세상 부모의 서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있어 그 이스라엘 가나안을 가나안 만드는 데 애굽의 400년이 필요하다면 영 내키지 않아도 이게 주의 인도가 확실하면 이럴 때는 믿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에 틀렸다 이러면 하나님 앉혀놓고 혼내는 것이고 지도하려 드는 것이니 이거는 일 계명 위에 더 큰 죄가 되어 집니다. 일 계명이 하나님 자체를 부인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인데 하나님 앞에다 대고 하나를 더 넣는 건데 하나님은 뜻이 있어 애굽으로 인도하고자 하나 야곱이 어, 그 생각 틀렸습니다. 그러면 야곱 자기가 하나님 되고 하나님은 자기 시종이 되는 겁니까?

결혼을 두고 수요일 저녁부터 아마 오늘 저녁 내일까지 이어갈 듯 한데 교회 안의 결혼이 만사 좋은데 좋으면 좋은 줄을 모르기 때문에 좋은 걸 좋게 알도록 하기 위해 그래서 약도 쓴 약이 있고 약은 전부 씁니다. 쓰게 해서 건강을 위하는 것처럼 가나안이 가나안되게 하기 위해서 400년을 아브라함에게 가난을 주셔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산 것이 또 이삭이 산 것 그리고 야곱의 130년을 더해보면 애굽의 400년보다 적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온 게 65세인가요? 175세에 가지요? 간단하게 한 100년 살았습니다. 그리고 백세에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이 이어간 게 한 75년 정도 계산이 됩니다. 합해서 한 백 팔구십 년? 한껏 잡아도 2백년이고 여기에 야곱의 백삼십년을 더한 데 이삭이 야곱을 낳을 때 나이가 몇 살이던가요? 사십에 결혼하고 이삭이, 야곱의 출생도 좀 늦었습니다. 그리 보면 3백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가나안을 받아 가나안이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줄 알고 기다린 3대의 세월이 2백년 좀 넘는 세월이었는데 그 얼마 되지 않은 2백 몇 년 에다 대고 가나안을 가나안으로 느끼게 만들려고 애굽 4백년이나 주신 겁니다. 그게 우리의 계산으로 보면 너무 비효율적이고 투자 대비 생산이 너무 적다 그러는데 그건 인간이 생각이고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 애굽에 4백년을 돌아오게 함으로 가나안에 대한 그리움과 가치를 심으려 한 것처럼 교회 안에 공회 안에 결혼이 얼마나 복되다는 것은 인간이 짧게 생각해 보면 그건 뭐 그냥 답이 딱 나오는 겁니다.

뭐가 맞지 않으면 어려운 건데 맞추기가, 다른 거 다른 거 다 맞춰도 신앙을 내 마음대로 맞춘다? 그거 큰일 날 소리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교회 안에서 찾는 거고 공회 안에서 찾는 거고 그런데 본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하여 세상 모든 조건을 다 버리고 찾았는데도 불구하고 없으면 혼자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금지해 두셨고 결혼을 해야 되고, 사도 바울 정도 되면 안 해도 됩니다. 결혼을 해야 되고 그다음 교회 안에 공회 안에 없으면 그러면 결혼적으로는 요셉처럼 떠밀려 애굽으로 가듯 그래서 요셉이 애굽 갔지 애굽이 좋아 간 것이 아닌데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과 말씀 둘 때문에 간 겁니다. 두 번 꿈으로 주신 게 계시 말씀이고 형 열이 아버지에게 보고한다고 떠밀어 낸 것이 애굽에 간 이후였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의 결혼 가정은 필요하고 하나, 교회와 공회 안에 내가 세상 조건을 다 포기해도 사람이 없으면 마치 형들 열이 요셉을 애굽으로 떠밀어 낸 것처럼 나의 결혼을 교회 밖 공회 밖으로 떠밀려 나간 것이니 요셉이 애굽 가서 손해 봤습니까? 애굽에 가서 본전 찾았습니까? 정말 그 마음의 중심이 말씀 때문에 결혼은 맞는 거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밀쳐내면 공회 결혼하고 싶어 공회 안에서 선을 보러 가는데 키가 작니 못생겼니 뭐 이러니 저러니 이래가지고 밀어내는 것이 그게 형 열이 요셉 밀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애굽을 향하면 애굽에 가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야 할 일이 있는가 보다 그게 선교고 그게 목회고 목회자 선교사라는 이름이 없어도 가기는 결혼 때문에 가도 그 속의 내용이 요셉이 애굽에 가서 애굽화가 되어 지고 불신화가 되어졌으면 그건 잘못된 건데 요셉의 중심도 요셉에 걸어가는 걸음걸음도 환경과 다음 기회와 때는 하나님이 정하고 요셉 반 순종만 했을 뿐입니다.

속으로 세상 좋은 사람을 구하는 데 교회 안에서 구해야 자기에게 유리하여 기준은 세상을 잡고 본인은 교회 안을 들여다보고 없으니 나간다, 하나님이 속은 압니다. 그런 사람은 또 하나님께서 그대로 알아서 인도하실 것이고 그럴지라도 말이라는 것은 요셉을 통해 애굽에 들어갈 때 애굽에 그 넓고 그 좋은 땅 골라잡으면 되는 시기에 가나안으로 돌아갈 그날을 위해 가장 유리한 고센 땅을 택한 것이 창세기 46장이었습니다. 고센 땅에 속한 곳이 여기 출애굽기 1장 11절에 비돔과 라암셋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출발은 라암셋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주시고 애굽으로 밀어내면 따라는 가도 몸은 애굽에 가도 마음은 가나안을 뺏긴 적이 없고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게 복입니다. 교회 안에 공회 안에 내가 신앙의 마음으로 나를 바꿨는데도 없으면 또 상대방도 그렇지만은 나도 교회 안에 공회 안에 사람을 구하지만은 내 대로 내 세상에 이런 방식 저런 방식 때문에 마다하고 교회 밖을 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요셉은 가나안을 고수하려 했으나 형들 때문에 밀려갔다면 형들은 요셉을 밀어내는 바람에 따라간 사람입니다. 공회 결혼 그거 마음속에 정말 붙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 계산해보고 자기 세상 살아가는 자기 방식에 유리해서 전부 계산하는 거지. 뭐 어쨌든 공회 결혼을 고수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은 요셉이 되는 거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형 열과 같은 입장에서 애굽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마지막에 4백년을 거치고 다시 나올 때 보니까 들어갈 때 잘했던 요셉이라고 나올 때 지도자 된 거 아니고 들어갈 때는 동생을 밀어냈지만 나올 때는 보니까 모세라는 레위지파 사람 모세와 아론은 레위지파입니다. 레위지파 모세와 아론이 지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왔고 그때까지도 유다 지파는 이름도 없고 형들 중에 하나였는데 애굽의 4백년 그 다음 가나안으로 돌아간 지 사사시대 약 4백년. 4백년, 400년이 지나 장장 8백년, 천 년 세월이 헤아려지고 나니까 유다 지파에 다윗을 세우고 주님이 그 계통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으로 고운 마음 바른 길 가는 게 제일 좋고 고운 길 바른 마음으로 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가 험지로 인도하면 갈렙처럼 자진해서 험지 산지를 향해 갔는데 그게 유다 지파의 앞날에 베들레헴이 되고 에브랏이 되어 오시는 주님을 맞는 그런 좋은 성지가 되기도 했고 또 밀려갔든 좋아서 갔든 이래 갔든 저래 갔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복된 앞날을 주시기 때문에 교회로서는 어려움 덜 당하고 좋을 때 좋게 살라고 1차 권합니다.

그런데 기어코 밥그릇을 엎어버리고 고생을 좀 해보겠다고 그러면 어떡합니까? 고생을 해서라도 또 사람 되는 길이 있고 그 길을 통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사람도 있으니 안타깝지만은 부모의 마음 교회의 마음은 고난 없이 잘 되기를 원하여 최선을 다하고 본인이 꼭 고난을 통해 사람 되겠다고 작정이 되어 있다면 좋게 지도를 해볼 때 꼭 비틀어 버립니다. 비틀면 결정은 본인이 하고 지도하는 사람은 속으로 생고생 좀 하겠구나, 그 한마디가 쉬운 말이 아니라 그 고생을 한 사람은 나중에 그냥 돌아온 둘째 아들처럼 그렇게 난리가 납니다마는 돌아온 둘째가 집에 있던 첫째보다 나은데 뭐라 할 겁니까? 그래서 교회의 방향 부모의 방향이 바로 되면 그다음부터는 이제 뭐 좌로 가든 우로 가든 하나님께서 알아서 인도하시고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선 좋은 노선이고 계통이 바르기 때문에 교회로서는 들어 좋을 말 훗날을 생각하면 참 고마울 말 돌고 돌아도 가야 될 곳은 그 길밖에 없다는 말만 해놓습니다. 곱게 시간도 장소도 범위도 상대방도 그냥 말하는 대로 예 예 예 하고 가는 사람은 그리 그리 복되게 잘 가겠구나, 라고 짐작을 하는 거고 다른 거는 몰라도 때는 제가 정합니다, 때를 네가 정해? 때는 순종하겠으나 누구냐 하는 것은 내가 정하겠습니다. 네가 정해? 때도 정하는 것도 순종하겠으나 기준은 제가 가지겠습니다, 기준을 네가 정해? 해봐라. 어떡합니까? 강제가 안 되니까 기준 중에 다른 것은 다 알겠는데 이 기준은 제가 정합니다, 그 말이 나오는 만큼 그 사람의 앞날이 그거는 그 고생을 하겠구나, 뭐 겪어보고 알지 그 안 겪어보고는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갈 때 가더라도 가나안의 백성이 애굽에 갈 때는 말이라도 애굽이 좋아 갑니까? 잠깐 옮겼다가 돌아올 겁니다. 그래서 고센 땅을 원하는 겁니다, 속은 애굽이 좋아 호기심이 있고 가서 출세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켜보시니 말은 우리가 가나안에 살지 어디 가겠습니까? 인도하시니 잠깐 갈 뿐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가는 것이 예쁜 입이고 나중에 돌아올 때 고생을 덜 합니다. 불신 결혼을 해도 제가 전도갑니다, 선교 갑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뻔히 아는데 교회 안에는 인간이 없습니다, 공회 안에는 전부 나쁜 놈 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생지옥이라고 유학 이민 간다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 나라 한 절반 된다던데 조상을 욕을 하는 거고 배은망덕한 겁니다. 이 나라는 좋으나 또 외국을 둘러 더 좋은 걸 배워보겠습니다, 도망을 가도 그렇게 말하면 돌아올 때 얼굴이 좀 나은 겁니다. 혜택이라는 혜택은 모조리 다 봐 놓고 이 나라 지옥입니다, 울면서 악을 쓰면서 나가면 저 인간 죽는 날까지 고생은 참 실컷 하겠다, 저놈의 입이 들어 저 인간 가는 데는 천하 어디를 가도 하나님이 지옥을 따라다니며 위에 부어주겠다, 이렇게 됩니다. 내가 세상 결혼이 좋아 교회 안에 세상 잘 가진 사람 찾다가 안 되면 교회 밖에 또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 나서더라도 입으로는 공회가 더 좋은데 제가 부족해서 밖을 살펴 어느 날 또 한 분을 모셔보겠습니다, 말은 그리 하는 게 좋은 말입니다. 좋은 말. 못난 사람 못난 사람이 한 걸음 더 나가면 못된 사람, 부잣집에 밥 주면 아니 어렵게 번 돈을 이렇게 주다니 감합사니다, 제가 열심히 기회를 찾아 앞으로 갚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 그렇게 말을 하고 얻어먹는 거지 그 자세가 진짜면 그런 거지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배고파 얻어먹어 놓고 나를 거지라고 무시를 해? 식은 밥을 줘? 응? 건방지게! 이렇게 투덜거리고 그렇게 마음  먹으면 거지는 다리 밑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날 위해서라도 그 누구든지 자기 거 먹고 싶지 남 주고 싶으냐마는 그거 참 좋은 분이다, 감사하다,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자세와 말이 고와야 성경은 그걸 소망이라고 그럽니다. 소망을 주시고 좋게 만드시는 하나님이라, 이렇게까지 기록을 해 주셨기 때문에 공회 결혼이 맞춰 봐도 어려우면 나는 좀 부족하니 밖으로 보내시는 가보다, 그렇지만은 밖으로 나가면 그때부터는 안 믿는 사람보다 달리 믿는 사람들보다는 신앙이 밝고 앞서 있으니 이거 내가 못 났는데 참 부족한데 그런데 앞에서 끌어야 되니 참 기도 많이 하고 준비 많이 해야 되겠구나, 자세가 그렇게 되면 교회 밖으로 결혼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정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남이 볼 때 가장 신앙의 결혼은 광고하고 한다고 다 해 놓은 사람들 얼마나 얼마나 막장으로 가는지 과거 서부교회도 그런 경우 많고 공회적으로도 많고 우리 교회 안에도 모두가 보고 알  듯이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시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자세 살펴봅니다.



1차-khs

Comments

Category
State
441,335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