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3.3.15 신5:3 어제와 오늘로 매 순간 인도, 생명의 가속 말씀 안에 소망의 인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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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3.3.15 신5:3 어제와 오늘로 매 순간 인도, 생명의 가속 말씀 안에 소망의 인내로

관리1 0 77 2023.03.1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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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5 수새

제목 : 어제와 오늘로 매 순간 인도, 생명의 가속 말씀 안에 소망의 인내로

찬송 : 145장(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본문 : 신명기 5장 3절 -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넓게 해석을 하면 우리 조상과 세운 언약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와 현재 진행되는 그런 계약 그런 언약이다. 이제 신명기 전체는 광야 40년이 마무리되고 건너가야 할 요단강 넘어 가나안을 보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발은 아직 광야고 눈은 받아야 될 가나안이 펼쳐지는 이런 시점 말하자면 하루해의 새벽이 되어 지난밤은 모두 다 지나갔고 또 이제 하루해가 열리는 직전 이런 상황입니다. 지난 날 저녁을 감사하고 이제 밝아지면 하루해를 또 열심히 시작해야 되는 이런 시점입니다.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라” 앞에 2절에서는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웠나니” 그때 이스라엘은 다 죽었습니다. 출애굽 한 첫해는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고 성막을 만드느라고 거의 시간을 다 보냈고 출애굽 한 다음 해 가나안으로 바로 들어가면 되는데 가나안에 정탐을 보냈더니 땅은 좋으나 좋은 땅에 먼저 자리 잡은 가나안 민족들이 얼마나 덩치가 좋은지 우리 보기에도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같았다, 그 잘못된 보고 때문에 정탐이 40일을 가나안 전부를 다 살펴봤는데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서 40일 가나안을 둘러본 그 죗값으로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하고 40년 헛고생하고 그냥 헛고생이 아니라 출애굽 할 때 성인, 어른 멀쩡한 사람 알아들을 만한 사람 전부가 광야에 다 죽어버리고 모세도 아론도 미리암도 출애굽의 3명의 지도자도 다 광야에서 죽고 성인으로서 출애굽한 사람 중에는 딱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지도자가 되어 이끌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이고 출애굽 할 때 아이들이라 뭘 몰랐던 사람들 말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언약 계약의 말씀을 주실 때 알아들었어야 되는 사람은 여기 신명기로 오면 이미 다 죽어버렸습니다. 이게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우리와 세운 거다, 과거와 세운 것이 아니다, 그냥 과거가 아닙니다. 어제도 과거고 천년 전도 과거입니다. 어제 일을 잘 기억하여 오늘은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사람은 항상 자라 갑니다. 그 뭐 자라가 봐야 얼마나 자라갈 건가, 라는 마음이 우리 안에 들지만 생명이란 작년 5월 에녹의 성 쌓기 창세기 4장에서 가속의 원리가 있다 그랬습니다. 가속의 원리라, 모든 물체는 떨어지면서 점점 속도가 붙는다 라는 말입니다. 건물 높은 데서 돌을 던지면 돌을 이렇게 놔버리면 처음은 속도가 별로지만 내려갈수록 속도가 더 붙어진다,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생명이란 자라가기 시작하면 꼼지락 꼼지락 한 발, 두 발 그렇게 자라기 때문에 저 언제 자라겠느냐, 그 한 달짜리 쳐다보고 앉았으면 언제 사람 되겠냐 싶으고 서너 살짜리 애 먹이면 저거 철들려면 언제까지 시간이 걸리려는지 라고 생각이 드나 1년 지나 말 한마디 하면 얼마 안 있어 또 한 마디하고 또 한 마디 하는데 몇 마디 나오고 나면 그다음에는 쏟아져 버립니다. 첫 걸음이 어렵지 한두 걸음 걷기 시작하면 그냥그냥 걸어버리고 좀 있으면 이제 사방 천지를 뛰어다녀 난리가 되는 겁니다.

생명이란 처음이 그렇게 어렵고 될까 말까 그렇지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다 보면 그만 가속이 붙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영원무궁영계를 우리에게 다 주시기는 주시는데 다 주는 방법을 이렇게 쉽게 만들어 놨습니다. 이 땅 위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이렇게 똑같은 거 연습해 봐야 뭐 늘겠느냐 싶은데 어느 날 좋아져 있고 바뀌어져 있고 늘어났고 그러다 보면 그 정도 속도가 아니라 쑥쑥 자라버리고 이런 상태에서 천국에 갖다 놓으면 그 무한을 전부 다 섭렵하고 끝없는 하나님 본체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영원히 출발하게 되어 집니다. 시작을 쉽게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죄도 악도 옛 사람의 습성도 한 번 실수할 때 얼른 그냥 돌아서면 쉬운데 한 번 실수가 두 번 세 번 겹치면 알면서 하는 고의가 되어 집니다. 첫 번째가 실수일 수 있는데 똑같은 게 두 번 세 번 되면 실수라도 그건 이미 실수를 넘어서는 건데 그런데 그냥 실수입니다, 이참에 슬금슬금 실수를 눈감아주면 안에서 갑자기 치고 나오면서 이제는 손 밖으로 나가버린 새처럼 다시는 거두어 들이지를 못하게 되는 이런 악습으로 자라버립니다.

거짓말 하는 것도 뭐 다급해서 그냥 자기도 모르게 야단을 치니까 엉겁결에 한 마디에 엉뚱한 소리 했는데 그래서 위기를 넘겨보면 그 다음에 이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또 엉겁결에 실수를 했다는데 벌써 두 번째가 되면 절반 알고 시작합니다. 세 번째가 되면 그거 작정하고 하는 겁니다. 자라나가는 아이들이 옆집을 상대로 그러겠습니까? 경찰을 상대로 그러겠습니까? 부모를 상대로 연습을 했겠습니까? 부모란 그거 아는 겁니다. 알기 때문에 이게 정말 단순한 실수다 해도 반복이 될까봐 똑똑하게 이게 이제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장악이 되어 지면서 그러면서 옳은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솔솔 자라가면 어디 사무엘이 성경에만 사무엘이 같으면 하나님이 사무엘서는 적어주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기 때문에 성경에 적어주며 성경에 사무엘을 적었을 때는 사무엘서를 읽는 네가 사무엘이 되고 네가 만약에 여자라면 네 손에 들어온 사람은 사무엘을 만들어라 이게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지 사무엘서를 사무엘과의 약속이고 그 시대 말씀이면 왜 성경에 옮겨놨겠습니까?

출애굽 때 언약은 이 신명기 기록할 때 기준으로 40년 전의 일입니다. 40년이면 그때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그게 아니라 시내산에서 첫 계명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데려가 버리십니다. 두 번 들을 것도 없다고. 신명기 말씀을 다시 듣는 사람들은 어제 들었던 말씀인데 어제가 오늘로 다시 오늘이 되어 어제를 다시 돌아보면 이게 옛적이고 그때 내가 바로 조상이며 열조였습니다. 어제가 오늘 되고 오늘이 내일 되며, 참 쉽고도 어려운 말인데 신풍에서 서울까지 400k 약 천리 길입니다. 자동차 바퀴는 한 2m 정도 될 겁니다. 둥글기 때문에. 한 2m? 2m 50 정도, 사람 키 정도 될 겁니다. 자동차 바퀴 하나는 사람 키 하나의 길이지만 그걸 또 굴리고 또 굴리고 또 굴리니까 방향만 바로 되면 천리 길을 한 뼘 같은 그 자동차 하나만 돌려가지고 서울까지 갑니다. 한 바퀴가 한 번 돌고 다음 바퀴 바꾸고 두 번 바꾸고 그래서 만 번, 이 만 번 바꾸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 가지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 보면 내나 그 바퀴인데 서울까지 나를 데려다 놓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어제와 오늘을 번갈아가며 우리 평생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똑같은 현실을 매일 바꿔가며 어제와 오늘을 잘 비교하는 사람 이 새벽 예배에 어제와 오늘을 잘 비교하며 복되게 한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은 한 걸음이 아니라 지난날 역사 전부를 다 알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 전부를 다 잡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누가 능가하겠습니까? 이건 시공을 초월한 신령의 세계인데. 인간은 자연을 살아가는 세상의 과거와 미래는 대충 눈치를 봐가며 맞춰가며 이게 좀 되는 사람은 나아지고 이게 잘 되는 나라는 강대국이 되고 그만 그만 그렇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요한복음 14장 26절 성령, 다 같이 시작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신앙의 세계에는 성령이 지난날에 알려주신 것 생각나게 하시고 또 지금부터 살아가야 될 앞날은 또다시 가르쳐 주십니다. 믿는 사람은 신앙으로 믿는 사람은 신령한 신앙의 세계에 필요한 것은 양심에 귀만 기울이면 여기 신명기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나 역사에 하는 말이요 오늘 새벽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애굽의 400년 출애굽의 그 순간의 감격과 그 열 가지의 기이한 기적들 홍해를 넘어 40년을 먹이시고 마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신 그 모든 날들을 생각하라,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믿는 사람의 어제와 지난날은 출애굽의 지난날과 광야에 지난날과 같습니다. 자기가 자꾸 잊어버리는 바람에 난리지. 출애굽과 광야의 40년은 하나님이 기적을 덜 보여주고 아끼는 바람에 모두들 난리가 났고 갈증이 있었던가, 너무 많이 보여줘서 얼러 기른 뭐같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 한 번 그럴 수 있으나 두 번은 또 눈치 싸움에 고쳐야 되고 이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렇게 할 줄 몰라 우리처럼 오냐 오냐 그러다가 이런 인간을 만들어 놨겠습니까? 광야 40년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난날 100년을 사신 분도 계시고 지난 날 15년 20년을 살아 짧지만 그래도 알아야 될 만한 사람도 함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어제와 오늘 하루하루 단위만 잘 살펴봐도 작년과 올해 한 해씩만 살펴봐도 모든 것은 명확하여 더듬을 것 없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다 맡겨놓고 아무 소리 말고 말씀으로 현실마다 또박또박 좀 인내로 꾸준히 걸어가라, 세상에도 큰 것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남다르게 좀 길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배짱 작은 사람 봇장 작은 사람들은 다 나가떨어지는 겁니다. 저렇게 큰 걸 설마 내가 할 수 있겠냐? 생각이 들어서 자진 포기 다 해버리고 가는 데까지 가본다고 꼬박꼬박 버틴 사람들이 마지막에 전부 성공하게 되는 것 다 주변에서 아실 겁니다.

어제와 오늘을 지난 역사 전부와 앞으로 하나님이 내게 펼쳐줄 모든 소망으로 생각하고 이 새벽에 개 양쪽 가운데 서서 광야 40년 마치며 주시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보면 두고 보는 신명기의 말씀으로 가족의 어제와 지난날 아쉬운 점 마음속에 딱딱 헤아리고 오늘을 미리 눈으로 보며 오늘 하루 더 복된 하루가 되면 이 작은 몇 걸음이 몇 번이 상상 못할 나를 만들어 복이 되고 남들이 볼 때는 기적인데 내가 보면 그냥 그렇게 묵묵하게 걸어갔을 뿐인데 그리 되는 게 신앙의 세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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