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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0 금새
제목 : 시공 초월 신약 오늘의 말씀 성취, 세밀한 매 순간의 구원과 심판 판별
찬송 : 157장(고요한 바다로)
본문 : 이사야 51장 5절 -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구약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시대기 때문에 만사를 눈에 보이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말씀을 지켜 받는 복, 세월이 필요했고 또 아합처럼 또는 이스라엘의 열왕 들처럼 또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랜 세월 죄를 짓고 그리고 마지막에 심판을 받는 그 기간이 멀었습니다. 주님의 대속으로 신령한 신약이 시작이 되었고 신령한 신약은 시공의 초월이 되어 시간이 걸리지 않는 때가 되었습니다.
신약 오늘도 구약의 기준으로 보면 믿는 사람이 믿고 나서 믿은 표시가 나는데 3년 걸리는 사람 10년 걸리는 사람 자기 형제는 표가 없다가 자녀 때에 표시가 나는 사람 그런 경우가 흔하지 않느냐 이런 이유로 막 바로 표시가 나는 정도는 극히 드물지 않느냐라는 그 기준이 구약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기준을 삼아 그렇습니다.
항상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 시공을 초월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으로 순종했으면 그 순간 그 현실은 이미 복이 되었고 이미 하늘의 것으로 옮겨져 버렸습니다. 말씀에서 이탈되는 순간 그 현실 그날은 벌써 영원한 지옥으로 보낼 그런 자기중심의 악습의 기능 이미 판별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 30년 한 20년 전 입시 제도는, 한 30년 전 입시 제도는 12년을 놀아도 대학 시험 한 번만 잘 보면 얼마든지 좋은 학교를 가는 제도였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 공부가 어땠는지 출석이 어땠는지 이런 거 하나하나를 전부 다 매겨서 그다음 합산을 하고 있습니다. 1년 전에는 출석이 어땠냐, 2년 전에는 활동을 어떻게 했냐, 3년 전에는 너는 어땠냐 미국 쪽으로 가면 아예 뭐 태어나서부터 다 본다 할 만큼 그렇습니다. 어떤 집안에 어떻게 태어나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며 초중고를 어떻게 어떻게 어디서 어떤 공부와 활동을 했는지를 쭉 다 보고 이렇게 쭉 추세를 보니 우리 학교 들어온다면 좋겠다, 안 되겠다 이렇게 우리나라처럼 대학 시험 본다고 한꺼번에 몰려가고 그런 거 없습니다. 전부 개별적으로 면담을 합니다. 또 서류를 제출합니다. 사실은 그게 더 정확하긴 합니다. 심사하는 사람이 공정하다면 늦게 틔는 학생들이 있거든요. 늦게 튀는 학생은 초등학교는 꼴찌 중학교는 중간 고등학교는 이제 이렇게 많이 더 발전이 되었으면 점점 늦게 트이니 이걸 뽑아놓으면 대학 4년을 통해서 아주 좋아지겠구나, 이렇게 쭉 추세를 보는 겁니다.
초등학교 때는 천재 중학교 때는 영재 고등학교 때는 수재 대학 갖다 놓으면 평범하겠구나, 평범한 학교 가지 최고의 학교는 오지 않아도 되겠구나, 불러놓으면 우리 손해 보겠구나, 이런 것, 수학을 주로 해야 되는 학교인데 전 과목이 좀 문제지만 수학만은 아주 특별하다 욕심 난다, 뭐 다른 과목 다 엉망이라도 점수가 아주 낮아도 이건 희망이 있겠다, 숨은 보배다 싶으면 선발해 버립니다.
우리나라한테 그렇게 해놨다가는 저 조 머시기 장관 아들 딸 같은 사람은 빼곡하게 들어가고 그 사람들이 자리에 차지하는 만큼 정말 필요한 사람은 다 빼버릴 걸요? 누구를 욕하고 누구를 욕할 것이 아니라 또 그 장관 쥐어박을 것이 아니라 우리 수준이 그러하다 수준대로 가는 겁니다. 그 나라인들 부정 없겠습니까? 또 우리나라인들 정직하게 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전반적으로 사회의 분위기가 섞여 들어오고 일부 모순이 있을지라도 전체를 봐가지고 나가는 겁니다. 각자에게 맡겨 놓으면 이리 되든 저리 되던 뒷돈 받고 봐주고 봐주다 보면 그 학교는 나중에 저절로 내려가서 학교 자체가 망해버리겠지 또 공정하게 하는 학교는 살아보려고 자기가 노력하다 보니까 자꾸 좋아지겠지 넓게 보고 그다음 선발을 뭐든지 결정을 좀 자유롭게 맡겨 놓는 겁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심어 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열매 따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뭔가 세월이 필요한 겁니다.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라 여기 5절의 말씀처럼 “내 의가 가깝다” 어느 정도 가까운가, 내 영 속에 이미 충만이 들어와 있어 내 마음이 원하면 막 바로 그냥 시간도 걸리지 않고 돈도 필요하고 바로바로 해결됩니다. “내 의가 가깝다 내 팔이 만민을 심판 한다” 안 믿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아버렸습니다. 세상이 있기 전 택함 속에서 이미 심판은 끝났습니다.
믿는 사람은 항상 현실마다 말씀으로 살 수 있는 기회는 주어졌는데 오늘 말씀으로 살 기회를 오늘 내가 꺾어버렸으면 이미 망한 겁니다. 나뭇가지를 끊으면 끊는 순간 그 나뭇가지는 죽은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푸른 잎이 검게 바뀌어 흙이 되는데 시간은 그게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그게 몇 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거름을 좀 푹 썩혀야 그게 걸음이 되지 않습니까? 나뭇가지 막 쳐놓고 그걸 갖다가 땅에 걸음으로 파묻는다고 바로 걸음이 되겠습니까? 지푸라기도 좀 쌓아놓고 떠야 그것이 거름이 되지 밥도 입에 들어가서 그래도 한두 시간 몇 시간 지나야 이게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입에 넣어 넣는다고 바로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약의 우리의 말씀의 순종은 내 마음이 순종하는 순간 내 몸이 순종으로 실행하는 순간 바로바로 의가 되고 그다음 말씀에서 벗어난 것은 바로 말씀과 끊어진 행위 말씀과 끊어진 행위는 그 순간 벌써 심판받아버렸습니다. 처음 믿을 때는 잘 모르니까 말씀으로 살면 3년이면 뭐 희망이 있지 않냐 10년이면 뭐가 되겠지 말씀을 모를 때는 목표와 결과를 멀리 잡습니다. 신앙이 자꾸 새로워지고 좋아지면 한 현실을 한 주간 정도로 잡는 사람 좀 더 눈이 밝아지면 하루를 하나의 현실로 잡아 오늘은 이런 현실 주셨다, 오늘은 저런 현실 주셨다, 이렇게 느끼고 판단하게 됩니다.
마음이 더 밝아지면 오전 오후 저녁으로 하루 서너 쪼가리를 내버립니다. 눈 뜨고 새벽은 좋았다, 늘 마음이 좀 새롭다, 오전엔 출근할 때라 그래도 좀 긴장하고 좀 낫다 그런데 점심 먹고 오후가 되면 나는 좀 그냥 회사에서 또는 사회생활하면서 주변에 많이 휩싸인다, 저녁이면 그냥 거의 불신자가 된다, 새벽에는 믿는 사람으로 출발하고 저녁에는 안 믿는 사람으로 돌아왔다가 잠잘 때쯤 되어 자기 전에 기도할 때 또 아침이 성령으로 시작했고 저녁은 그냥 육체로 환경 따라 살다가 맞춰졌구나, 내일은 그러지 않아야 되겠다, 눈이 더 밝아지면 이렇게 하루를 한 서너 조각으로 내면서 각각 다른 현실로 볼 수 있습니다.
눈이 더 밝아지면 시간 단위로까지 하루에 현실을 수십 개로도 나눌 수 있어집니다. 과학이 미개했을 때는 사람을 보면서 그냥 통째로 건강하구나, 문제가 많이 생겼구나, 이 정도로만 봤습니다. 경험이 쌓여가고 자꾸 세분화가 되니까 외과 내과 안과 모든 과가 이렇게 나눠져서 한 10개나 나누어졌습니다. 한 50년 전에는 내과는 그냥 내과지 내과는 따로 없었습니다. 치과 내과 그다음 외과 내과 정형외과 그 다음 이비인후과 이 정도로 한 10개 내과 하나 안에 세월이 더 지나가니까 심장과 혈액을 보는 순환기내과 숨 쉬는 데 문제가 되는 호흡기내과 또 소변을 잘 씻어서 내보내야 되는 이 신장 문제 콩팥 문제 신장내과 내과 안에도 세 개, 네 개로 자꾸 이렇게 분화가 되다가 지금은 뭐 심장 안에도 심장 판막 하나만 보는 사람, 심장의 혈관에 쌓인 쓰레기만 청소하는 사람 계속해서 분화가 됩니다. 그 하나만 들여다보고 앉았어도 평생 끝도 없습니다.
하물며 육체를 들여다보는 전문도 서너 개가 열개 스무 개로 분화가 됐고 지금 백 개 천 개로 이렇게 분화가 되었는데 그런데 신령한 진리의 말씀으로 육체보다 더 복잡한 우리의 내면 마음 우리의 신앙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냥 통짜배기로 잘 믿는 사람 어린 사람 요즘 좀 이상해진 사람 대충 그렇게 두 세 개 구별하고 말 것인가, 지난 한 해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살았으니 잘 믿었다. 그런데 지난 한 해에 여름은 어떻고 겨울은 어떠했는가, 지난 한 해 여름 속에 시작할 때는 어땠고 뒤에는 어떠했는가, 자꾸 자꾸 분할을 시켜 오늘은 한 주간 중에서도 금요일 밤 예배가 있는 날 저녁 밤 예배를 미리 두고 마음속에 하루의 일정을 잡는 것과 밤 예배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루해를 지나 보내다가 한 오후 서너시나 돼가지고 아차 오늘 밤 여배가 있는데, 그러는 것과 다릅니다.
의가 가깝다 어느 정도 가까운가, 신약은 매 순간입니다. 말씀에서 떠나면 심판이 있다 그 심판이 언제쯤 있을 것인가 구약은 수십 년일 수도 있고 수 백 년일 수도 있고 노아 홍수는 1천 오백여 년이 지나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서가 오시는 주님을 기다렸으나 적어도 한 4백년 뒤에 올 주님입니다. 말라기서 기준으로. 이사야서가 되면 5백년도 더 남은 구원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 마음이 정신 차리면 구원과 멸망은 내 속에 이미 들어와 매 현실을 보내고 있습니다. 좀 세밀하게 보는 눈을 가지도록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