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3.3.4 사51:3 황폐 < 광야 < 사막으로 악화, 지금 신앙 부족을 채우려 돌이키면, 더 큰 소망의 복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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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3.3.4 사51:3 황폐 < 광야 < 사막으로 악화, 지금 신앙 부족을 채우려 돌이키면, 더 큰 소망의 복…

관리1 0 92 2023.03.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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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좌석 정리: 앞쪽으로)


230304 토새

제목 : 황폐 < 광야 < 사막으로 악화, 지금 신앙의 부족을 채우려 돌이키면, 더 큰 소망의 복 대기

찬송 : 157장(고요한 바다로)

본문 : 이사야 51장 3절 -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기도)
한없이 큰 은혜를 좌우로 앞뒤로 상하로 넘치게 흘려주시는데 우리의 그릇이 작아 담지를 못하고 또 우리의 그릇의 내부가 깨져 흘러버리고 새어 남는 것이 적은 것이나, 외부로 원인을 보고 내 속의 그릇의 적음과 깨져 있는 부분을 고치는 것을 소홀히 하여 이 아침도 주님 앞에 다시 모여 훈련 중인 우리 아들들 또는 여러 곳에 복잡하게 흩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 현실 넉넉하게 감당함으로 복된 앞날을 열어가는 귀한 교인들 되도록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의 마음가짐 생활도 바로 갖게 하시고 현재 주어진 현실의 자신을 살펴 매 번의 말씀으로 빛을 삼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저 외솔이인가요? 한 두 줄만 좀 앞으로 와주시면 새벽에 출석하는 것만 해도 귀한데 좌석이 뒤로 다 몰려 있으면 전체적으로 좀 보기가 그렇지요. 김현숙 선생님도 저 챙길 식구 없으면 새벽에는 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한 박선애 집사님 옆으로. 이춘희 집사님처럼 허리가 아픈 분은 제일 뒤에 앉아야 맞고 좌석이 제 부탁대로 안 되면 제가 한 달이나 두 달이나 또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어떡하겠습니까, 회사면 월급을 많이 준다든지 또 공무원이면 직급을 하나 내려버리면 뭐 그냥 알아서 다 잘 하겠지마는, 교회는 눈치 주면 옆 교회 가버릴 거지 또 목회자는 욕을 하면 얻어 먹어야지 뭐 맞서지도 못하지. 그러니 또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오은아 선생님 두 줄만 더 앞으로 오시고 오귀례 집사님도 두 줄 더 앞에 오시면 참 감사하겠고, 예. 나머지는 됐습니다. 불신자 기준으로 좋은 일이 있어야 기쁜 것이 아니냐, 그러면 불신자 되는 겁니다. 주님 앞에 기뻐할 일. 외솔이, 저 동생보다 앞줄입니다. 예. 동생보다는 앞줄.

저 요즘 결혼할 사람들이 자꾸 저한테 아가씨들을 물어봐요. 저 뒤에 앉은 사람, 앞에 앉은 사람. 뒤에 앉은 사람 물어볼 때는 그 부모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나오는 게 아닌가 이렇게 자꾸 물어봅니다. 그래서 아이 뭐 조금 늦게 일어나 그렇고 이제 회사가 늦어 그렇고, 열심히 제가 좋게 다듬습니다. 얼굴은 미장원 가서 다듬고 인격은 왜 늦었냐 하면 저 직장이 멀어서 막 그냥 7시에 배우느라고 얼마나 바쁜데 안 그렇겠냐고 또 아가씨가 뻔뻔스럽게 앞에 오면 누가 또 뭐라 그러지 않겠냐고 그래서 이제 뒤에 앉습니다 라고 열심히 변호는 제가 해드립니다. 속에 양심에 좀 가책은 있지요. 나오기 싫은데 그냥 와서 앉아서 이제 큰 사람 뒤에 이렇게 딱, 눈치 있는 사람은 제가 무슨 말해도 아마 알긴 알 것입니다. 또 신앙 있는 집사님들이 뒤에 앉는 것은 설교가 은혜가 안 되니까 화가 날 때 뒤로 가는 것입니다. 저 같아도 안 그러겠습니까? 또 이제 추예심 우리 모친 같은 분은 은혜가 되든 말든 늦게 믿었으니까 제일 앞에 앉아야 하나라도 더 배우지. 이런 분도 계시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이제 목회자도 저 제일 뒤에 앉았다가 저한테 욕을 한마디 해버리고 교회에 안 나와요. 요즘. 이놈의 교회를 교회 나와? 내가 목사인데, 안 나와도 목사 앉으면 다 교회지. 이제 또 목사님들은 교회를 안 나와도 또 제가 또 넓게 이해를 합니다. 아니 목사님이야 집에 앉아서 누워 계셔도 뭐 그 자리가 예배당인데. 우리 목사님은 두 가지입니다. 조사도 목사고 목사도 목사입니다. 공회는 특별해서.

이사야 51장 3절, 한 주간을 공부해도 한 절을 못 나가겠습니다. 내 속에 무엇이 황폐한가? 통장에 돈이 없으면 이거 경제가 황폐해서 큰일 났다 이건 깜짝 놀래고, 또 병원에 검진을 받아보니까 막 숫자가 당뇨 숫자 간 수치 이런저런 수치가 안 좋으면 건강이 뭐 그냥 엉망이 돼서 어떻게 하나 이렇게 모두들 그것은 황폐한 줄 압니다. 큰 애 시험에 떨어졌지, 둘째 직장 다니다가 말았지, 셋째 부부 사이 안 좋지. 먼저 이리 되면 이것은 황폐하다고 모두들 정신이 없는데, 이사야 51장의 황폐는 너 요즘 은혜가 되냐? 네가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요즘 있냐? 바빠서 못 읽지 아이 좀 성경을 읽어야 될 건데 이 마음은 위로라고 그럽니다. 성경 그거 뭐하려고 읽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오면 황폐해진 신앙이 된 것입니다.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하나님께서 자꾸 이렇게 이제 은혜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라. 썩을 공부 죽을 공부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 말짱 헛일 공부, 그것도 10년씩 요즘은 20년씩 하는데 세상 공부한 것 천국 가지고 가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명확합니다. 신앙생활하는 데 좀 도움이 될까 써먹을까 싶어서 배우면 배우는 거지, 세상 공부는 천국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대한민국 법학을 천국 가서 써먹겠습니까? 세계 무역학 경제학을 배워서 천국에서 돈 벌겠습니까? 한글을 잘 알고 영어를 잘하는 것 천국 가서 써먹을 말이 되겠습니까?

오혜진 선생님 두 줄 앞으로 오시고, 예. 그리고 이제 전체적으로 봐보십시오. 예배당 모양이 좀 그림이 좋잖아요. 전부 이쪽에 다 몰리고 저쪽에 다 몰리고 그러면 좀 곤란합니다.

무엇이 황폐한가? 있던 것이 없어진 것이 황폐입니다. 있던 것이 없어진 것. 있던 것이라니요? 내 속의 암세포 내 속의 악성은 뽑아 버릴수록 좋아지는데, 내 속에 있으면 좋은 진실 내 속에 있으면 좋은 소망 내 속에 있으면 좋은 믿음, 이게 무성한 것이 에덴동산이고 이게 무성한 것이 여호와의 동산이라고 그럽니다. 처음 믿고 첫 은혜 받을 때는 뭐 그냥 그 마음이 에덴이오 그 신앙이 다 여호와의 동산 같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1년 세월이 지나가면 악령이 우리 마음속에 와서 그래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냐? 그래도 무식해서 바보 되면 곤란한 거 아니야? 또 좋은 세상 오래 살아야 되는데 건강 문제 있지 않냐? 맞기는 다 맞는 말인데 공부로 돈으로 건강으로 자꾸 자꾸 흔들다 보면 나중에 신앙의 뿌리가 휘청해 버립니다. 아니 뭐 두 번 죽냐? 한 번 죽지. 일단 믿는 것은 열심히 내고, 신앙은 열심을 내고 신앙을 위해서 건강을 챙긴다. 아 그건 좋지. 경제? 아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맨날 앞뒤에 얻어 먹으러 댕기면 남 보기 그러니 그래서 신세 지는 것보다는 자립하는 게 낫고, 자립보다는 어떻게 좀 옆을 도와주나 이게 낫기 때문에 경제도 필요한 거지 기본적으로 주일과 예배와 성경과 말씀과 기도와 주님 동행의 기본을 손해 보면서까지는 그런 돈은 그냥 일단 제쳐 놓겠다. 이렇게 작정한다고 손해 볼 것도 사실은 없습니다. 뒤에 마지막에 계산해 보면 다 괜찮지.

주님이 우리의 신앙의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다시 이제 돌아와 신앙으로 좀 열심을 내자 이렇게 주님이 좀 은혜를 주시면 “그 광야로 에덴 같고 ”있던 것이 없으면 황폐인데 황폐가 세월이 지나가면 광야처럼 돼 버립니다. 뭐 이거 있을 것이 없는, 이런 데 어떻게 사나 할 만큼. 저러고도 교회를 다니나? 교회 올 때마다 인상을 콱 찌푸리고도 10년씩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얼굴이 황폐가 아니라 그 얼굴이 광야입니다. 예배당 문만 열고 나가면 세상을 향할 때는 생기가 도는데 교회를 오는 얼굴은 어둡고 그냥 화가 나 있는 얼굴 광야 같은 얼굴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와주시니 교회로서는 뭐 고맙기 이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합니다. 강단의 은혜가 샘물 같아 이게 우로가 되고 은혜가 되면 세상을 살면서 화가 나고 찌푸린 얼굴이 교회를 올 때는 그때는 마음이 편해지고 소망이 생기고 또 예배를 마치면 받은 말씀으로 또 한 번 새롭게 잘해봐야 되겠다. 이게 반복이 되어야 강단이고 교회인데 이걸 강단과 교회가 제공을 해 드리면 오라 하지 않아도 모여 들 건데 샘물은 없이 수도꼭지는 있는데 수도꼭지를 틀어봐야 물은 안 나오지, 목이 말라 왔다가 별로 시원한 것도 없지. 뭐 그러니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모든 교인의 신앙과 교회의 분위기는 1차 책임은 월급 받는 목사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다른 사람은 세상에 돈 번다고 애를 썼는데 넌 주는 돈 가지고 밥 얻어 먹고 예배당에 앉아서 성경을 어떻게 읽었길래 그 말씀 속에 은혜가 없어 세상을 향하면 생기 있던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오면 그냥 상을 찌푸리고 화가 나가지고 그냥 전부 다 분위기가 그 모양 꼴이냐?

교회 전체를 놓고는 하나님께서 저한테 그 책임을 묻겠지마는 교회란 종류가 세 가지입니다. 이렇게 함께하는 교회도 교회 가족끼리 앉은 교회도 가정교회 혼자 앉았으면 혼자 앉아 있는 그 마음속에 성령이 오셔서 네 심보가 이게 뭐냐 라고 야단칩니다. 신풍교회 전체와 공회 때문에는 저한테다 대고 이말 저말을 해도 한다 해도 집에 가서 혼자 계실 때는 그때는 교회 목회자 교단 교계 핑계 대지를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뭐 교단을 이끌고 가난이 왔더냐? 방주를 마련할 때 온 교인들이 총출동을 했더냐? 다윗이 교계의 환영 가운데 등장을 했더냐 아니면 온 교계와 온 교회와 온 가정이 다 반대를 하는 데도 주님 붙들고 혼자 걸어감으로 다윗이 되고 아브라함이 되고, 이 바로 앞에 1절 2절에도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 생명이란 많아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을 생명이라고 그럽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은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도 아직까지 찾아내지를 못했답니다. 참 신기하지요. 전자 원자 뭔 또 중성자, 돋보기를 키워서 별의별 것을 다 찾아내는데 지금은 세포도 세포 속에 들어 있는 구성 배치 다 들여다보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연결의 생명 생명은 아직까지도 그는 탐색을 못 해낸답니다. 얼마나 적은지. 하나님과의 연결, 이것을 생명이라고 그럽니다. 생명 역사는 몇 개냐? 덩치가 크냐? 이것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살았냐? 죽었냐? 살았으면 얼마든지 길러갈 수 있고. 연결 끊어져버렸으면 일단 끝났다 이렇게 되어집니다.

네 마음속에 황폐한 것이 뭐냐? 교회로 말하면 얼른 볼 때 주일 학생이 있고 청소년이 있고 장년반이 있고 노년이 있는데 시골 교회 치고는 노년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 15프로 20프로 되니까 시골교회 노년이 15프로 20프로 되면 그냥 좀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 교회의 40대 50대 장년의 숫자를 보니까 또 한 20프로 됩니다. 그 모습도 괜찮고, 그럼 교회의 2, 30대는 몇 명이나 되느냐? 교회의 2, 30대도 한 20프로 정도가 됩니다. 아 이것도 또 어떻게 시골인데 괜찮네 싶습니다. 주일 학생은 몇 프로인고? 주일 학생도 한 13프로로 15프로 되니까 주변에 비해서는 괜찮은데, 어디든지 아이가 많아야 되겠냐 아이는 줄고 위로 갈수록 많아져야 되겠냐? 들어오는 물이 점점 줄면 나가는 물은 나중에 고갈됩니다. 아직까지는 주일 학교가 황폐하다 정도는 아닙니다. 전국적으로는 황폐해서 난리가 났는데, 학교가 없어지고 일개 면에 울음 소리가 1년 동안 없었다. 10년 동안 없었다. 이런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는 이어 가니 다행이지만 추세를 보니 이게 앞으로 좀 나아질 건가 어떨 건가? 이런 것도 두루두루 좀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아마 제가 교인이라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 요즘 정도 분위기면 나 평생 번 것 내 손주든 옆집 손주든 아이 제일 많이 낳는 집에 내 재산 다 주고 가고 싶다. 전 그럴 겁니다. 아마. 저 목사 아니라도 아마 제 성격이 그럴 겁니다. 아이 안 낳고 너 둘만 죽는 날까지 잘 살아도 내 재산은 아들 녀석 너 다 주겠다. 전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내 자식이지만은, 우리 집 아이들은 둘이 놀러 다니려면 애 낳고 못 다닙니다. 이 젊을 때. 그런데 우리 교회에 제 손주는 아니더라도 제 아들은 아니더라도 교회를 위해서나 주님 앞에서나 모든 걸 봐도 뭐 힘들어도 좀 아이를 낳는 게 좋겠습니다. 애를 쓰는 가정이 있으면 내 회사 내 번 것 그냥 너 다 해버려라. 결국은 그게 좋지 않을까요?

주님은 황폐한 곳을 위로한다. 무엇이 황폐한가? 신앙에 사상에 내 속에 들어있는 면 이면 저면 좀 살펴봐야 됩니다. 황폐한 곳이 계속되면 결국 광야 됩니다. 광야. 성경의 광야는 사막과 광야가 뒤섞여 인간 살기 어려운 곳 또는 못 사는 곳 이 정도입니다. 사막이 되면 이것은 뭐 볼 것 없이 그냥 끝난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예배 생활은 황폐냐 황폐로 가는 도중이냐? 이걸 돌이켜 다시 예배 생활에 출석이 좌석이 은혜가 또는 사모하는 나의 열심이 점점 나아지고 있느냐? 자꾸 자꾸 좀 살펴봐 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내 속에 어떤 부분이 황폐해져 있느냐 좀 아쉬우냐? 그런 면에 더 노력하라 하는 뜻입니다. 주님이 위로해 주시겠답니다. 내가 도와줄게 네가 힘쓰면. 그러면 우리가 마음 먹으면 벌써 주님의 위로에 따뜻한 눈길이 오고 한두 걸음 걷는다고 힘을 주기 시작하면 위에서 우리를 아듬고 가는 길이 신앙의 복된 그런 길입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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