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3.3 사51:3 더해지는 소망의 은혜, 첫 감사의 기쁨이 이어지는 즐거움, 터져나오는 찬송은 당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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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3.3.3 사51:3 더해지는 소망의 은혜, 첫 감사의 기쁨이 이어지는 즐거움, 터져나오는 찬송은 당연한 것

관리1 0 101 2023.03.0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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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묵상기도, 통성기도)
(예배: 찬송, 기도, 설교)


230303 금밤

제목 : 더해지는 소망의 은혜, 첫 감사의 기쁨이 이어지는 즐거움의 터져나오는 찬송은 당연한 것

찬송 : 121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본문 : 이사야 51장 3절 -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내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말씀으로 살아가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낙망 절망하기 쉬우나, 존귀하게 불러 귀하게 길러가는 연단의 기간인 줄 알고, 인내하며 소망 중에 끝까지 주님만을 바라보는 저희들이 되게 하사, 때와 기한을 주시고 지난날의 고난 끝에 맺어진 열매 귀한 결과, 우리가 생각 못한 여러 가지 영육에 복된 날들을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시며, 격려하시며 더 큰 환란도 연단과 주님 주시는 복인 줄 알고 용감하게 맞설 수 있는 저희들로 자라감으로, 한 번 두 번 경험하고 천하를 맞서며 영계를 향하는 이 밤에 저희들 되도록, 이곳에 불러주신 모든 교인들 어린 심령까지 붙들어 주시고, 주신 형편 인하여 곳곳에서 홀로 또는 가정 단위로 이 밤에 예배를 동행하며 귀 기울이는 우리 모든 교인들 위에 함께 해 주옵소서. 훈련 중인 두 아들에게 또 군무에 두신 모든 아들들에게, 또는 수술 입원 좋아서 방심하고 실망되어 낙심하는 모든 우리 교인들 시대를 읽으며, 말씀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길 중단 없이 끝까지 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한 주간 이 말씀을 살피는 목표는 제일 끝에 신앙의 생활은 따라 하십시다. 기뻐함과(기뻐함과), 즐거워함과(즐거워함과), 감사함과(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창화하는 소리). 네 가지가 신앙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따라오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들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첫째가 기뻐함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성경에 함께 씁니다. 근데 첫 순간에 접촉으로 좋을 때는 기뻐함과 기쁘다고 보통 표시를 하고, 이것이 이어지며 즐길 때는 즐거울 때는 즐거움이라고 그럽니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좋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나오는 반응은 기쁨, 그렇게 좋은 결과를 좋은 모습을 접하며, 접하며 접할 때 이어지는 기쁨을 즐거움이라고 그럽니다. 마치 성경의 거룩과 진실의 거룩이란 무엇이 옳은지를 살피기 위해서 따져보고 구별할 때 거룩이라 그럽니다. 이건지 저건지 따져보는 것. 이게 좋은 건지 저게 좋은 건지 달아도 보고 재보고 비교를 하는 그 과정, 따져보고 살펴보고 비교해보고 구별해보는 것을 거룩이라 그러고, 구별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것이 맞다 단정이 되었을 때는 진실이라 그럽니다. 찾아가는 과정은 구별 마지막 결론을 냈을 때는 진실 그래서 거룩과 진실은 늘 하나로 이어져 있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옷을 세탁을 해서 씻고 씻고 씻는 것이 거룩이라면, 이제 깨끗하게 되어 더 이상 씻을 필요가 없는 깨끗한 옷 끝이 났을 때 그럴 때를 진실이라. 거룩의 끝이 진실이라. 진실을 위하여 찾아가는 과정이 거룩이다. 이것처럼 좋은 소식을 접했을 때는 주로 기쁨이라고 그럽니다. 그런 좋은 소식을 또 쳐다봐도 또 돌아봐도 또 다시 한 번 더 살펴봐도, 좋은 거는 좋은 거니까 자꾸 이렇게 즐긴다고 그럽니다. 즐긴다. 기쁨은 순간 즐거움은 이어지는 기쁨. 신앙이란 매일매일 새로운 은혜를 접함으로 새로운 기쁨도 있고, 또 그 기쁨이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잘 들여다 보면, 이건 두고두고 볼수록 얼마나 좋은지 돌아보면 또 좋고 돌아보면 더 좋을 때 즐긴다고 그럽니다. 기쁨과 즐거움 둘을 함께 가져야 되고 이 기쁜 것 즐거운 것을 어떻게 하다가 내가 가지게 되었는가. 과거를 살펴보고 과정을 살펴보니까 참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구나. 그러면 감사할 거 아닙니까. 참 감사할 일입니다. 감사

이렇게 감사가 마음속에 쌓이면 꼭 눌러놓고 표시를 안 내는 것이 조선 양반이다. 이래서 유교는 좋은 거든 나쁜 거든 표시를 내지 않아야 인품이 넓고, 양반이라 해가지고 표시를 안 내는 게 양반이라고 이렇게 눌러놓는 건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되어 회개할 때는 옷을 찢으며 지난 날 내 행위가 틀렸습니다. 왕도 옷을 찢어 모두가 보도록 나 잘못됐습니다. 돌아서겠습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또 주신 은혜가 감사할 때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이렇게 좀 표시도 내는 것이 그게 맞습니다. 그러면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네 번째 창화란, 네 번째 창화란 예배 순서 중에 어느 것이 제일 가까울 것 같습니까? 찬송입니다. 찬송. 찬송 시간에도 소리를 내면 갖다가 옆에서 잘난 듯 목소리 좋다고 뻐기냐 그럴까 봐, 그냥 중 염불하듯이 꾹 입을 깨물고 나는 목소리를 안 내고 이렇게 경건하다 그러시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원래 목소리도 좀 좋지 않고 노래도 잘 모르고 또 자기 표시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까 주로 시골에 살겠지마는, 하나님 앞에 감사를 표시할 때는 누가 뭔 저렇게 사람이 가볍냐. 저건 원래 그러냐. 그러든지 말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한 여기 예배 한 두세 살 아이들 눈치 있습니까? 예배인 줄 압니까? 입에서 나온 대로 말해버리지.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나이가 우리교회 평균 연령을 따져보니까 한 40대 후반 50 안팎 이 정도로 애매하게 잡힙니다. 평균 나이 50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살이고 두 살이고 그런 겁니다. 인간끼리는 어른도 하시고 누울 자리 봐가며 점잖게 하시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만 어린 아이처럼 솔직한 것이 가장 복 받고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은혜 되면 은혜 되면 표시하는 게 좋고, 찬송 시간에는 소리가 좋은 분 소리가 안 좋은 분 박자를 맞추든 말든 막 그냥 열심히 어쨌든 찬송한 소리 높여 감사하자. 이게 약속이 되어 있는 겁니다.

예배는 크게 세 가지라 그러지요. 기도 찬송 말씀. 말씀은 주로 이 말씀이 뭔 뜻인고. 일반적으로 말씀은 들어보는 겁니다. 함께 읽든지 들어보는 겁니다. 이게 뭔 뜻인고. 좀 조용해야 됩니다. 말씀을 떠들고 난리하면 그 속에 들어있는 뜻을 알기가 어려워집니다. 말씀은 좀 조용하게 들어보시고 또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 고 그 뜻을 발견한 다음에 부탁하는 것이라. 기도는 고요히 주님의 뜻을 찾는 것과 뜻을 찾은 사람들은 간절히 구해야 되기 때문에, 기도는 조용한 기도와 시끄러운 기도가 섞이는 게 정상입니다. 근데 한쪽은 고요히 기도하고 한쪽은 확신이 되어 떠들어버리면, 서로가 어지럽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다. 이렇게 하셨지요? 그래서 이제 예배 제일 처음 시작할 때는 통성기도라고 그럽니까 아니면 묵상기도 묵도라고 그럽니까? 학생들만 다 같이. 주일 예배 어느 예배든 우리는 시작할 때 묵도 드리겠습니다. 그러지요? 예배를 처음 시작할 때 기도는 오늘 주님이 이 자리로 부르셨으니 좋은 말씀 필요한 말씀 주시면 좋겠다. 고요히 함께 기도하자 그래서 소리 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함께 찾읍시다. 이런 약속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작할 때 묵도드림으로 예배 시작합니다. 아니면 목도 합니다. 그러면 신앙은 자유지만은 함께 예배드릴 때 그런 말이 나오면 좀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반대로 설교 전에 통성 기도하겠습니다. 설교 후에 통성 기도하겠습니다. 통성이란 말은 소리 내서 기도하십시오. 소리 내도 됩니다. 내도됩니다. 내십시오. 내도됩니다. 이게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안 내도 되지만은 내면 더 좋은 겁니다. 이렇게 부탁하면 하나님 볼 때 좀 착한 사람들은 말을 하면 듣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못 되게 괘씸하게 보는 사람들은 네가 떠들어라 내가 한번 듣는가 봐라. 한 10년 봐봐라 내가 꿈쩍도 하는 가. 10년? 내가 한 삼십 년 꿈쩍도 안 할 테니까 한번 너 강단에서 떠들어봐라. 그거 목사는 인간이니까 별 거 아닌데 모두가 함께 약속했는데 어깃장 내서 딱 틀어쥐면 못된 인간입니다. 본 데가 없는 인간입니다. 본 데 없다 그러지요. 경우가 없는 사람입니다.

해수욕장 가서 시원 한다고 모두 수영복 입는데 오버 코트 뒤집어 입고, 아이 뭐 모두들 가볍게 촐랑거린다. 그럼 오지를 말아야지. 또 점잖은 무슨 강연회에 수영복 입고 설치면, 저게 병원 갔다 도망을 나왔나. 자유의 나라 자유인데? 야 인간아 자유인데 여기는 강연해라 서로 점잖게 오기로 했는데 넌 약속을 어기는 사람 아니야? 경우도 없지 이리 되는 겁니다. 묵도란 고요히 주의 뜻을 함께 찾습니다. 부탁입니다. 들어주는 게 그게 좋은 겁니다. 연세 많은 분들이 그런 말을 먼저 들어줘야 밑에 젊은 사람들이 딱 보고 베끼는 겁니다. 아 저러는구나. 그리고 이제 어린 아이들도 묵도 하면 조용히 하면 좋은 겁니다. 근데 오래 믿고 제일 소위 자기 말로 제일 오래 믿어 어른이라는 사람이 묵도? 나는 떠든다. 통성? 나는 묵도 한다. 이래가지고 광고를 다 하는 것은 사회성이 없어 그런 겁니다. 사회성. 공부를 안 했다 말이 아니라 눈치가 없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는 못 돼서 매 맞는 일이 생깁니다. 묵도 통성기도 구별할 줄 아시겠지요. 그다음 예배 순서의 찬송은 반주를 넣어가며 원래 노래 잘하는 사람은 반주 없어도 잘해야 되는데, 우리는 뭐 노래 실력이 원래 그러니 예배당 안에서는 원래 반주는 안하는 법입니다. 이것도 상식입니다. 예배당 안에는 원래 반주하는 게 아니다. 우리 좀 오래 믿은 분이 별로 없지요. 오귀례 집사님 예배당에서는 원래 반주 안 하는 겁니다. 혹시 상식 알고 계시나요? 모르셨지요? 우리는 돈이 없어 풍금인데 돈 많은 교회는 피아노 산다. 돈 더 많은 교회는 피아노보다 더 큰 그랜드 피아노 산다. 우리 교회는 그랜드 피아노보다 그냥 전자오르간으로 가지고 온 예배당을 갖다 휘 잡아서 그냥 뱅뱅 잡아 돌린다. 이게 발전된 교회인 줄 아는데 그 무식해 그렇습니다. 무식해서. 절에서 삼겹살을 찢어 먹으면 그는 번창한 절이 아니라 그거는 무식해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신풍에서 저 공항 너머를 보면 지금은 그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그 교회가 없어져 버렸는데 그 교회를 세운 분이 오은아 선생님의 이모 되는 황정엽 권사님이 세운 교회. 삼간도 교회는 삼간도의 가구가 60가구 삼간도 섬 안에 사는 사람 다 합해서 60가구인데, 예배당에 피아노가 12대? 그때 다녀오신 분 기억하십니까? 누가? 섬에 60가구에 교인이 20 30명인데 예배당 안에만 피아노가 12대, 이게 또 이제 자랑입니다. 우리는 피아노가 열두 대입니다. 저는 그런 소리 들을 때 아이고 그 교회 사모님이 얼마나 피아노에 한이 맺혔으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12대? 이런 거는 좋은 게 아닙니다. 근데 그 피아노를 손보러 가는 걸 뭐라 그러지요? 피아노 손보는 사람을 조? 조율사. 피아노 조율사 분이 그쪽을 갖다 오셔가지고 예배당에는 피아노가 12대쯤 되는데, 삼간도 섬마을 나 많은 사람들만 있는 섬마을에 피아노가 총 50대라던가요? 굉장하지요? 집집마다 피아노가 다 있답니다. 또. 너희 집 피아노 있어? 나도 있다. 너만 있냐? 나도 있다. 피아노 치는 젊은 사람들은 다 시내 나갔는데 뭐 설날이나 올까. 그게 이제 그쪽 섬은 아마 옛날에 안 봐도 돈을 못 벌어봤을 겁니다. 도시 나와 친척 집에 갔다가 돈 많은 집에 가니까 피아노가 있더라. 피아노가 있더라. 이제 이게 기억이 되면 뒤에 돈을 벌면 제게 이제 뭐 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갔다가 그냥 놓는 겁니다. 그 피아노 조율사가 삼간도 한 번 들어가면 한 50대 손보고 오니까 그냥 뭐 좋아서 횡재하는 겁니다. 피아노를 치지를 않으니 또 손 볼 거나 있나요. 예배당이 12대라 저 별관 쪽이 6대 7대 8대 그렇고, 예배당 본당 안에만 한 20평 된 예배당에만 피아노가 3대 4대인데 그중에 하나는 그랜드 피아노라고 합니다. 그랜드 피아노 보신 분들만 손 들어보시죠. 눈으로 본 분들? 한 열 명 되나요. 삼각으로 저 돼 가지고 피아노가 삼각으로 돼가지고 피아노 칠 때 뚜껑을 이만큼 열고 치는 걸 말합니다. 섬에 바닷가 개끝일 하는 시골 분들만 60가구에 젊은 사람 없는데, 그 교회 목사님은 저 30년 전에 외제차 운전하셨고.

남의 동네 얘기 아닙니다. 지금은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한 10년 전에 없어졌기 때문에 그냥 말씀드립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 그 섬마을 미신 많은 곳에 그 황 권사님이 처음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동행하고 열심히 전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쪽은 미신 믿는 동네니까 눈에 보이는 복을 잔뜩 쌓아가지고 예수는 보이는 이런 복이다. 볼래? 섬마을 60가구에 피아노가 50대다 이게 복이다. 미신 믿던 그런 옛날 분들에게는 오늘도 어릴 때처럼 옛날식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제 시작을 하는데, 그게 잘 믿는 줄 알고 끝까지 그리 나가면 다 뒤에 흩어져 버립니다. 교회 뒤에 다 흩어져 그냥 곤란하게 돼버렸습니다. 교회의 예배는 기도 찬송 설교 세 가지로 돼 있는데, 기도는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합시다라고 할 때 주로 뭐라고 한다고요? 묵도라 그럽니다. 소리를 내면 좋겠습니다. 내십시오. 또는 내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무슨 기도라고요? 통성기도라 그럽니다. 찬송은 음악을 잘하든 못하든 곡을 알든 모르든 목소리가 좋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찬송은 함께 소리를 높이는 이런 예배입니다. 근데 눈이 설어 이게 글자도 안 보이지 곡도 모르지 그래서 이제 소리를 못 내는 분들 할 수 없어도, 젊은 사람들이야 다 소리 낼 수 있지 않습니까. 근데 이 귀한 오금을 이 좋은 목소리를 실시한 신풍교의 예배 볼 때 이걸 갖다가 낭비를 해? 혀를 꽉 깨물고 소리 안내면 나중에 하나님이 벙어리 만들면 어떡하실 겁니까. 하나님 겁이 나서라도 못 그러겠는데. 그건 잘 부르고 못 부르고 신앙이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그건 자랑이고 뭐고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 찬송은 소리 내는 겁니다. 반주? 원래 예배당에는 반주 안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근데 하도 곡조도 모르지 노래도 모르지 찬송 인도하는 사람이 음도 못 잡지, 너무 엉망이 되기 때문에 피아노 반주로 가지고 찬송하는데 이렇게 좀 도와주는데, 피아노 반주는 돕는 건데 피아노 반주에 쏙 숨어가지고, 피아노 독주해라 나는 찬송 안한다. 이게 이제 공회 찬송이 돼버렸는지 신풍교회 찬송이 돼버렸는지 이런 거는 회개하고 고치는 게 좋습니다.

요즘 한 살짜리 2살짜리가 찬송 때 되면 막 신이 나서 그냥 소리를 높여버리기 때문에 이게 이제 정상인 겁니다. 또 그 입을 틀어막는 사람은 정상이 아닌데, 식당가서 애가 소리 내면 남 조용조용 이야기하고 밥 먹고 분위기 잡는데 우리 집 애 소리 나면 그건 실례입니다. 데리고 가지도 않는 것이 예절이지. 데리고 갔다면 점잖게 해야지. 교회의 찬송은 소리가 나는 게 정상입니다. 신앙의 상식입니다. 알고는 계셔야 됩니다. 금방 제가 말씀드리는 이런 것은 한 번 딱 들으면 죽는 날까지 잊을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이거 모르면 교회 아무리 오래 다녀도 헛 다닌 겁니다. 거꾸로 다닌 겁니다. 근데 헛 다니고 거꾸로 다닌 사람이 뭐 아는 것처럼 뭔 너는 찬송을 갖다 소리 내냐 이래 싸면 귀신이 들어가 그런 겁니다. 근데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귀신 들어갔다고 말은 하면 안 되고 그냥 속으로, 귀신이 들어가 놓으니까 생 발버둥을 하는구나. 귀신 들어간 자 귀신 쫓아낼 때는 뭘로 쫓아낸다고 그랬지요? 기도 외에는 이런 유는 쫓아낼 수가 없다 했으니 마음속으로 주여 저 귀신 죽기 전에 뽑아주옵소서 맨날 그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지금 이사야 51장 3절 결론을 내야 될 텐데 앞에 부분 이런 상식도 그냥 상식이 아니라 신앙의 토대고 기본입니다.

신앙은 구약도 기쁨 즐거움 감사 창화하는 소리 네 가지가 나와야 이게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사람이 안살아 귀신 나오는 집, 사람이 살아 생동감 있는 집, 차이를 몇 개 생각해 볼까요.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사람이 살고 있는 표시입니다. 근데 그 집에서 애들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는 희망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근데 한 번씩 그 집에서 막 욱작욱작 소리가 납니다. 가족이 많으니 좋아 보입니다. 아닙니까? 아침이 되면 대문을 열고 우루룩 나갔다가 저녁이 되면 그냥 또 우루룩 다 들어옵니다. 가정 분위기 참 좋은 겁니다. 요즘 그런 집 별로 없지요? 이런 게 멀리서 봐도 저 집은 뭐 들어가 볼 것도 없이 참 좋은 집이구나. 궁궐 같은 대저택인데 혼자 외롭게 살아 거미줄이 쳐져 있으면 그 공동묘지입니다. 공동묘지. 집은 청소하는 사람들이 깨끗하게 관리를 하는데,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 집 앞날이 없는 집이 되는 겁니다. 그냥 온라인으로 계좌로 다 들어오니까 뭐 일 간다고 아침에 나갈 것도 없고 들어올 것도 없고 출퇴근이 없으면, 돈을 잘 벌어 좋아 보이는데 별로 좋지 못합니다. 아침에는 출근한다고 학교 간다고 왁자지껄 하고 저녁에는 또 들어와야 식구들끼리 반갑고 그런 거지. 계좌에 은행 이자만 가지고도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에 출퇴근이 필요 없으면 좋을 것 같지요? 부부 둘이 스물네 시간 보고 한 달 살아보십시오. 싸움이 안 나는 가 전쟁이 안 나는 가. 큰 집에 출퇴근 없으면 큰 집에 이쪽은 여자 저쪽은 남자 서로 나뉘어서 한 달간 얼굴도 안 보는 꼴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처럼 신앙이라는 것은 기쁨이 늘 있어야 됩니다. 어제는 어제의 기쁨이 있었습니까? 어제의 기쁨이 없었으면 어제는 좀 잘 못 사신 겁니다. 오늘은 기쁜 일이 있었습니까? 오늘은 기쁜 일이 있었다면 오늘은 신앙을 좀 제대로 산겁니다.

오늘은 도둑질 했는데 들키지도 않고 엄청 큰 걸 도둑질해서 기쁘다. 그거는 망할 기쁨 그거는 죄악의 낙이니까 그런 건 빼고. 말씀으로 그냥 또박또박 일상생활을 했는데 참 오늘도 현 나만이 아는 기쁨 참 감사하다. 이런 기쁨. 지난 주간 한 주간의 기쁨은 있었습니까? 매일 매일의 기쁨도 있어야 되는 게 정상인데 그렇지는 못해도, 지난 한 주간은 되돌아보면 참 지난 한 주간 수요일? 지난 한 주간 목요일? 참 그 소식 참 좋았지 참 기뻤지 혹시 있었습니까? 한 주 간에 한 번은 있어야 됩니다. 없을 리는 없습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없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구약에는 보이는 기쁨 신약에는 눈으로 보든 말든 내 마음속으로 딱 볼 때 이런 기쁨. 어떻게 표시를 해야 될까요. 기뻐도 조금 기쁘면 표시를 하는데 너무 기쁘면 목에서 소리가 나오다가 억하고 딱 막혀버립니다. 숨 막히는 기쁨. 더 기쁘면 기쁨이 더 기쁘면 여기 억 소리도 나지 않고 그냥 숨이 잠깐 멈춰버립니다. 믿는 사람은 적어도 한 주 간에 한 번은 그런 일이 있고 그런 일을 연보봉투에 감사연보 내역에 그 한 줄을 적으면 신앙생활 제대로 한 겁니다. 100번은 더 말씀드린 것 같은데 감사 연보내역에 범사에 감사 그거 안 좋은 겁니다. 실은 감사가 없는데 남들이 볼 때 저는 두루두루 다 감사하는 신앙이 높은 사람입니다. 구경하십시오. 선전용으로 범사에 감사 이렇게 적는데 그거 성프란시스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적지, 우리 신풍교인은 저도 평생에 범사에 감사는 아예 안 적습니다. 화요일 교통사고 건져주신 거 감사, 수요일 이런 기쁜 소식 전해주신 거 감사, 이렇게 또박또박 하나씩을 콕콕 찍어서 감사 연보의 내역에 적는 겁니다. 감사. 이 감사가 적히기까지 그 감사가 처음 접할 때 처음 접할 때 뭐라고요? 기쁨이라 그럽니다. 처음 접할 때 아이쿠. 그리고 이 좋은 걸 눈으로 보면서 즐겁고 쥐고 있으며 또 보니까 좋고 또 보니까 좋고 이런 것을 즐긴다. 그럽니다. 즐거움. 세상 기쁨은 우선은 기쁜데 돌아서면 별 것 없고, 세상 기쁨은 오늘은 좋은데 한 몇 년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사라져버리고, 오늘은 당선이 돼서 좋았는데 당선된 사람 줄줄이 전부 교도소 가라니까 땅을 치고 이런 것이 세상의 기쁨입니다. 신앙의 기쁨은 처음 접촉에 아이쿠 좋고 두 번 들여다보면 더 좋고 열 번 들여다보면 더 좋고 그냥 보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즐긴다고 그러지요. 즐긴다.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커집니다.

반복을 하니까 그냥 제발 그만하라 그러는데 저는 뭐 그만하나 마나, 우리 교인들의 직업의 대부분이 센터인데 센터 하는 데는 생각할 때마다 2배 3배 10배 끝도 없이 자꾸 더 즐겁습니다. 세상에 이런 걸 우리한테 주다니. 벌써 20년이 됐는데 20년 전을 또다시 되돌아오면 어떻게 하다가 그런 걸 붙들었지? 처음에 기뻤고 그다음에 1년 좋았고 3년 좋았는데 5년 되니까 저는 더 좋고 10년 되니까 그렇고, 20년이 다 돼가는 오늘은 또다시 그걸 생각해 보면 더 좋아서 그냥. 센터에서 저한테 돈 1원짜리 하나라도 송금 한 분계십니까? 저 부산의 아저씨들은 그냥 신풍교인들 전부 돈 벌면 뒤로는 목사가 쪽쪽 다 빨아다가, 자기 자식들한테 몇 십 억씩 돈 주고 그 판 벌린다고 악을 악을 쓰고 몇 백 건 소송까지 해놨습니다. 속을 보여줄 수도 없고 그냥 웃고 마는 거지. 저한테 센터 돈 벌어서 1원 송금 한 분계시나요? 지나가다가 사과 한 개를 가지고 들어와도 그거 먹고 해줬다고 말 나올까 봐 택배로 그냥 붙여버립니다. 근데 이제 가져와도 제가 저하고 그냥 한 솥밥 먹는 식구다 만큼 가까운 사람 가져오는 것은, 그거야 뭐 내 팔이고 내 거고 그거는 내 식구라고 그거는 상관 안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건 나하고 식구가 좀 식구라 하기 좀 애매하다 싶을 땐 절대 안 받습니다. 식구일 때만 받지. 친척이라도. 저하고 오른손 왼손처럼 마주치는 사람 거는 내 거니까 받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그 외갓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평생에 왔다가도 단돈 1원도 여기 못 주도록 전부 다 밀어냈습니다. 뭐 섭섭해서 원수가 되든 말든. 그냥 우리 신풍교회 시골인데 여기 먹고 살 게 없어 자꾸 흩어졌는데, 신풍에서도 직장을 다닐 수 있게 하셨으니 참 감사하다. 돈 한 푼 받지 않아도 그 일만 생각해도 그 참 첫 소식 들으면 기쁘고 새로운 소식 들으면 또 기쁘고, 그걸 두 번 세 번 되돌아 생각해 보면 이건 즐거움이 되는 겁니다. 이게 즐겁다 참 기쁘다 즐겁다. 기쁘다 즐겁다. 죄가 있습니까? 그러면 감사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딱 빼다가 주셨으니 그냥 하늘을 향해서 감사합니다. 시골인데 시골을 지킨다고 시골을 지킨다고 그래서 그냥 격려로 이렇게 몇 개 주신 거니, 하늘이 주신 거니 감사합니다. 기쁨 즐거움 세 번째는요? 감사함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반드시.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은 결혼할 때 신부 얼굴을 보며 어떻게 하나님의 귀한 이런 딸을 저한테 맡겼을까 딱 요래 보고 기쁨이 들어오고, 못된 놈의 인간은 텔레비 나오는 드라마 주인공보다 코가 좀 높지 않네? 근데 뭐 없으니 어떡해 세상에. 신부 들어오는 낯짝을 보고 마음속에 텔레비 드라마 주인공하고 비교를 하면서 그냥, 똥 밟은 뭔 사람처럼 죽상을 했다가 사진에 찍힐까 봐 억지웃음을 짓고, 이런 놈의 인간들도 인간들인가. 제가 남자 욕했습니까? 지금 남자 욕한 거 같지요. 못된 놈의 인간들은 지금 제가 남자 욕하는 줄 압니다. 제 말투를 아는 사람은 여자들 욕하는구나. 이제 그래 들을 겁니다. 하나님의 딸인데 하나님의 딸인데.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딸 사라를 키를 딱 재가지고 1m 50도 안 되네 이 짧달막 한 거. 아브라함이 그 짓하고 앉았으면 하나님께서 이거 혼 많이 나야 되겠는데 하나님은 마음이 이쪽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레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유다 지파 레위지파 다 주려고 딱 레아를 집어넣었는데, 야곱은 레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자꾸 얼굴을 돌려버립니다. 얼굴을 돌리니까 일부러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막 항의를 하고 생난리를 납니다. 그 바람에 야곱의 나이 130 되도록 애먹었습니다. 야곱 가정에 일어났던 모든 풍파는 전부 다 야곱 이 인간 하나님이 레아를 하나님의 귀한 딸이라고 주는데, 키를 재보고 실력 테스트를 해보고 인물이 있니 없니 그러다가 야곱 130년을 헛살게 된 겁니다. 처음 보는 순간 하나님의 딸인데 나는 별 것 없는데 이런 분이 나만 한다면 하겠다고 그랬다. 참 너무 귀하구나. 그 마음씨가 귀하구나.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는다고 했으니 하나님이 이분의 중심을 엄청 예쁘게 보겠구나. 참 감사하다.

처음 볼 때 마음은 감정을 어떻게 표시한다고요? 기쁨. 그리고 다음 날 한 번 더 보면 이분이 아직도 도망 안 가고 아직도 있네. 1년을 계속 365번을 보면 아이 보면 볼수록 더 좋네. 이거는 즐거움입니다. 첫 접촉은 기쁨 이어지는 것은 즐거움. 그리고 막 하늘에다 대고 감사합니다. 이런 분을 만들고 저한테 주셨으니 하나님은 전지자입니다. 전능자입니다. 저를 특별히 귀하게 보셨으니 감사합니다. 감사가 계속 나가는 겁니다. 자기 짝한테 이렇게 감사하고 있나요? 저 장주형 선생님. 시험이야 잘 치니까 이렇게 문제 내면 뭐 그렇다고 답이야 그렇게 써내겠지. 저 마음을 스캔해서 읽는 거짓말 탐지기라는 게 있어요. 요즘 100% 다 나옵니다. 거짓말 탐지기로 가지고 그냥 정극을 딱 물려보면 속에 그런지 안 그런지 직방 나와 버립니다. 100%. 그 정도가 되면 아마 그냥 여자를 얻고 댕기지 어떻게 자기 여자가 신발로 그냥 저 바닥을 밟고 댕기도록 내버려 둘 겁니까. 이렇게 부탁을 꼬박꼬박 했는데 자기 여자 업고 다닌 사람 한 사람밖에 없을 걸요? 여기. 제 부탁 듣고 여자 업고 다닌 분은 제가 알기로 한 명, 또 한 명 더 있기는 더 있는데 그분이야 아무나 업고 다니는 분이니까 그건 저 업어도 제가 치지도 않습니다. 아무나 잘 업으니까 치우고. 교회 부탁 때문에 자기 아내를 귀하게 보고 볼수록 귀하게 보고 볼수록 귀해서, 그냥 아예 업고 다닐 만큼 된다면 동네는 욕을 하든지 말든지 아니 부부 둘 좋으면 될 거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보면서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넌 기쁨 있네. 넌 감사가 이어지네. 아니죠. 넌 기쁨이 있네. 넌 즐거움이 있네. 그리고 그것이 감사로 돌아 나오네. 그런 사람은 말로 표시를 안 해도 그 행동이 따라 하십시다. 찬송 창화(찬송 창화). 찬송 창화가 되는 겁니다.

제가 사택에서 신풍 예배당을 올 때마다, 이런 위대한 교회 이런 좋은 교회가 아직도 나를 붙들어 준다니 참 감사하다. 이런 마음으로 이곳을 예배 인도하러 오면 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제 마음은 찬송 소리가 울려 나는 겁니다. 이 찬송 소리는 천사는 듣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는 듣고 귀신은 이 소음을 갖다 없애기 위해서 발버둥을 칠겁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 넷. 부부 둘 서로 얼굴을 보며 처음 봤을 때 그 기쁨은 남자 여자 건강하게 둘이 붙여 놓으면 처음은 다 좋아하게 돼 있습니다. 안 좋아하면 좀 문제가 있는 거고. 좀 애매하게 고장이 나면 좀 시간이 갈 수 있는 겁니다. 정상적으로는 남자 여자는 척 보는 순간 그냥 기쁨은 저절로 나오게 돼 있는데, 그 기쁨이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네 번 보면 불신자의 육체의 이성의 기쁨은, 처음이 좋고 그다음에는 스르르륵 저건 저렇게 그냥 식어져 버립니다. 신앙에 신령한 눈이 있는 사람은 처음 볼 때야 뭐 신령하지 않아도 신앙이 아니라도 남자와 여자의 첫 만남에는 일단 좋은 거고, 그리고 이제 이게 두 번 세 번 이어지면서 슬슬 육체의 이성의 기쁨이 즐거움에 슬슬 후퇴를 할 때쯤, 신령한 눈이 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귀한 분을 나한테 붙여 세상에 밥을 하고 있다니, 아니 내 이름으로 아이를 낳느라고 고생을 한다니, 가면 갈수록 자꾸 나날이 새로운 기쁨이 새로 오고 있던 기쁨은 즐거움으로 바뀌어 자꾸 축적이 되고, 그 뭐 말로는 안 해도 그냥 감사하는 것이 눈빛에 온몸에 소복하게 쌓여 있어야 그게 정상입니다.

그러다가 그냥 어떨 때 말할 기회만 있으면 마구 여자 자랑을 해가지고 여자 자랑 그때 뭐라 그랬더라? 여자 자랑을 여자 자랑을 반병신이라 그럽니까? 온 병신이라 그럽니까? 제 여자자랑 팔불출이라는 말도 있고 반병신 온 병신에 자식 자랑이 반병신 여자 자랑이 온 병신이던가요? 이게 둘 중에 하나 바뀌었는데 한 집사님 혹시? 자식 자랑이 반병신인가요? 여자 자랑이 반병신인가요? 제가 이런 거는 잘 혼동을 합니다. 자식 자랑 반병신 여자 자랑 온 병신, 지가 지 자식 보면 안 예쁜 게 어디 있어 그 말입니다. 지가 지 여자 보면 안 예쁜 게 어디 있어 예쁘니까 살지. 이게, 이게 부모가 정해주면 애들은 얘하고 결혼하는 거지 어디 부모가 결혼하는데 애들이 어디 노를 하다니요? 큰일 나지요. 결혼을 부모가 정해주지 어떤 인간이 간 크게 지 짝을 제가 정합니까. 미쳐도 보통 안 미쳤지 망하려고 환장을 했지. 부모가 정해주는 거지 근데 이제 부모가 정해주면 먼 훗날을 보고 정한 거기 때문에 우선은 뭐가 안 맞을 수 있는 겁니다. 당연히 그러고 사는 건데 그 시절을 말하는 겁니다. 여자 자랑 온 병신이라는 말은 여자 예쁜 게 어디 있어? 부모가 정해줬는데. 처음에는 이상한데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좋아서 마지막에는 이리 된다. 그 얘기입니다.

요새는 여자자랑 온 병신이라는 말 없어졌지 있을 리도 없습니다. 3년 10년 산 사람들 저 여자 예쁘다고 자랑하는 거 있는가 봐 보십시오. 다른 데 전부 다 눈 돌리고 앉았지.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고 속에는 좋은 거 다 쳐다보고 앉았지. 예전에 부모가 정해줄 때는 반대였습니다. 본인들은 우선 당황스럽고 근데 부모가 말하니까 당연히 하는 거고, 그 이제 멋모르고 그냥 결혼도 뭔지도 모르고 해가지고 그냥 영 당황스럽다가, 한 달 일 년 가면 갈수록 이래 좋구나. 이래 좋구나. 그래서 나중에 이제 지 여자가 이렇게 좋고 좋고 그러면 이 병신도 또 이 병신이 있냐고 이렇게 욕을 했던 겁니다. 옛날이 좋은지 요즘이 좋은지 길고 짧은 거 비교를 해보면 단 번에 답이 딱 나와 버립니다.

지금 신앙의 세계를 얘기하는 겁니다. 정상적으로 바로 믿었으면 네 가지가 따라가는 겁니다. 이면이든 저면이든 뭐 오늘도 그냥 가정으로 예를 들었지만은 직장도 남들은 그것도 직장이냐. 남들은 그것도 직장이냐 요즘 150 200은 최저 수준 법 때문에 할 수 없이 주는 거, 150 200도 직장이냐 남들은 그러는데, 나한테 남들이 번 돈 150 200을 주다니 이런 횡재가 있나. 이번 달 월급 받을 때도 기쁘고 다음 달 월급 받을 때도 오지고 기뻐서 그냥, 사장님 한 달에 10억 번 그 돈이나 200 받은 내 돈이나 기쁨은 똑같은데 뭐. 근데 이 200은 한 달 내도록 또다시 생각하고 또다시 생각을 해도 이 세상에 내가 어떡하다 한 달에 200이나 버는 이런 사람이 됐나. 이건 뭐 즐거운 겁니다. 즐거운 거. 제 월급 아시죠? 한 달에 180입니다. 국가에서 100만 원 줍니다. 신풍교회는 돈이 없어 80만 주고. 국가에서 주는 100만 원 교회가 가난하니까 지금 연보를 다 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준 100만 원 가지고 연보하면 교회는 돈이 없어 80밖에 안 줬으면 제가 연보한 그 100이라도 좀 돌려줘야 되지 않나요? 돌려준다는 사람 하나도 없지요? 교회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 얘기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신풍 시골교회 목사한테 국가에서 매달 100만 원을 주니 받을 때마다 기쁩니다. 받을 때마다. 한 푼도 쓰지 않지만은 어떻게 이런 지상낙원에 살아 이런 꼴을 다 보나. 매달 100만 원 받고 그냥 받을 때마다 기쁘고 연보할 때마다 더 기쁘고, 다음 달 100만 원 입금되기 전에 매일매일 되돌아보면 세상에 어떻게 한 달에 100만 원씩 주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나. 이 즐거운 겁니다. 즐기는 겁니다. 즐긴다. 라는 뜻이 그런 겁니다. 이 세상이 즐거운 거고 이 환경이 즐거운 거고 이게 꿈이냐 생시냐

첫 접촉은 기쁨 가면 갈수록 이게 좋을 때는 즐거움. 그러니 이게 우리 조상들이 연보를 많이 해서 그러냐. 우리 조상들이 세금을 많이 내서 그러냐. 누구 덕이냐 아무리 따져 봐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이런 세상에 살도록 턱 기회를 주셨으니, 만사는 하나님 은혜입니다. 감사하고. 하나님 은혜입니다. 감사하고. 그냥 말할 기회만 있으면 오늘 세상은 이렇게 좋습니다. 그냥 이 사람한테 떠들고 저 사람한테 떠들고 제가 100만 원씩 받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설명을 하는데 설명할 때마다 그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를 찬송하는구나. 그럴 겁니다. 귀가 없는 사람은 아이고 목사 저놈의 소리 치매가 아직 오지도 않을 나이인데 했던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든지 말든지, 이 기쁨 이 즐거움 이 감사를 혼자 먹고 입을 닫으면 큰일 나지요. 증언을 하고 발표를 해야지. 가정마다 아이들도 부모들에게 참 좋은 가정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쁠 수가. 뭐 그까짓 것 뭐 괜찮습니다. 이렇게 길렀으면 잘 기른 겁니다. 옆집은 저 하와이 가는데 우리는 뭐 괌도밖에 못 갑니까? 옆집은 한 달 세계 일주 하는데 우리는 꼴 난 뭔 일주일 가지고? 아예 안 될 때는 투자를 하지 마시고 그런 건 다 거둬들이십시오. 한 개를 줘도 이렇게 감사할 때가 그 사람에게 둘 주는 겁니다. 아이 너무 많아서 필요 없습니다. 아니다. 그렇게 감사를 잘하니 좀 더 맡아 버리거라. 하나님도 믿는 사람에게 그럽니다. 천지혜 씨 이해가 좀 되나요? 요즘은 좀 기쁜 감사가 많지요. 얼굴이 뭐 요즘은 너무 행복하셔서. 누가 보더라도 그냥 저 사람을 딱 보면 뭐 좋은 일이 있어서 저렇게 얼굴이 환할까. 뭔 일이 있어서 저렇게 가면 갈수록 더 얼굴이 밝을까. 사람만 만나면 저는 이런 게 감사합니다. 이렇게 참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이리 되면 이게 이사야 49장을 거쳐 51장에 바로 온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자꾸 감사를 찾읍시다. 더 큰 감사를 하라고 애가 터져 말씀 드리는 그 마음속에도, 기쁨 감사 기쁨 즐거움 감사 네 번째는 창화하는 소리라. 창화란 합창이라는 뜻입니다. 막 좋아서 그냥 나팔을 불어대는 겁니다. 이게 구약의 7월 1일에 나팔 절이라고 있습니다. 구약의 나팔 절. 제사장들에게 온 나라에 나팔을 불어서 마구 외치 거라. 하나님은 은혜를 이만큼 줬는데 우리는 너무 하나님 앞에 죄송하게 됐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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