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2.27 존귀의 소망, 지난 날의 감사와 현재의 충성으로 앞날의 소망 이루어가는 주의 인도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월새23.2.27 존귀의 소망, 지난 날의 감사와 현재의 충성으로 앞날의 소망 이루어가는 주의 인도

관리1 0 102 2023.02.27 05:22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30227 월새

제목 : 존귀의 소망, 지난 날의 감사와 현재의 노력 충성으로 앞날의 소망을 이루어가는 완전한 주의 인도

찬송 : 3장(거룩 거룩 거룩)

본문 : 이사야 51장 2절 -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1절부터 “너희를 떠낸 반석과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절에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감사가 넘쳐야 되고 또 가야 할 앞날을 생각하다 보면 잘못된 걸 고쳐야 되고 잘못된 걸 고쳐 바쁘게 발전을 해야 된다면 존귀하신 주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불러 대충 그냥 세상 이런 구경 저런 재미있는 거 이렇게 누리고 즐기다가 데려 가시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유치원이야 가르칠 게 없어 그냥 좋게 떠들고 놀고 살고 그리 하루를 지내지만 대학 1학년 바쁘게 배워야 되고 가정도 가지고 세상을 책임을 져야 되는데 대학 1학년도 좋게 대학 4학년도 좋게 경쟁 치열한 회사도 좋게 좋게 나라 망하고 가정 망하고 사람 주저앉습니다. 생일처럼 좋은 날도 있는 거고 또 함께 모여 축하해야 되는 그런 자리도 있지만 책임이 있을수록 책임을 많이 가지는 사람일수록 세상에 생존해야 되고 경쟁에 앞서야 되면 바쁜 일도 섞여 있고 기본적으로 그리 되는 겁니다.

지난날은 지나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지난날에 대해서는 감사를 끌어내고 감사로 기뻐하고 가야 할 앞날은 우리를 만들고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목적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얼른 얼른 배워야 되고 고칠 거 빨리 빨리 고쳐야 되고 목표 목적이 높다 보니 자기 부족을 챙기며 바쁜 걸음으로 재촉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게 좀 잘못돼 놓으면 강박 관념이라 저 정도는 돼야 되는데 내가 왜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그리되면 자기를 못난 사람으로 게으른 사람으로 바보처럼 무능한 사람으로 자꾸 쥐어박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 교리에 틀렸습니다. 소망 교리에 맞지 않습니다. 최종은 하나님의 목적 목표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이건 절대성입니다. 소망은 분명하고 그 소망을 이루는 과정에는 이런 훈련도 있고 저런 시행착오도 있고 이렇게 깨지기도 하고 넘어지는 거다 이런 과정에 내가 포기하고 절망해도 죄고 내가 포기하고 절망감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예정이 나를 위해 좋지 않구나 하고 그리 보시면 됩니다. 아무리 깨지고 아무리 못 날지라도 못 났을지라도 소망을 가질 때는 돌아오는 둘째 아들처럼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얼마나 많은 실패가 있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마는 돌아오는 순간 나는 부족하다, 그리고 첫째 아들을 앞질러 버립니다.

소망이 우리의 “영혼의 닻과 같아서”라고 그랬습니다. 소망이 든든함은 아무리 못나도 소망까지 내어주는 일은 없어야 됩니다. 소망은 굳게 잡고 그러면 지난날을 돌아볼 때는 크신 은혜 베풀어 참 좋은 기회는 다 가졌고 참 복된 길을 주셨으니 감사하다 겪어본 주변 모든 사람에게도 감사만 찾아내고 일, 현재의 나는 걸어가야 되고 배워야 되고 고쳐야 되는 과제가 있기 때문에 이 과제 앞에서는 늘 부족하여 좀 더 열심히 좀 더 잘해봐야 되겠다, 이렇게 자기를 재촉하는 것이 맞고 현재 자기를 재촉하면서 먼 훗날을 볼 때는 이사야 49장 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나는 존귀한 자라” 목적과 예정을 정하신 주님은 나를 존귀하게 만들어 존귀하게 데려가십니다. 내가 모르고 나면 잘 몰라 그렇지 나를 끌어다가 존귀하게 데려갈 건데 존귀하게 만드는 과정은 좀 혹독합니다.

공부도 수월케 하는 공부는 말하자면 국어 공부야 잘하든 못하든 누가 세상사는 데 큰 불편이 있습니까? 알아들으면 되고 남이 내 말 내 글 알아들으면 되는 정도지 그런데 영어 과목 정도가 되면 안 들리는 사람은 전혀 안 들립니다. 훈련하고 연습하지 않은 사람은 영어로 말할 때는 뭐 벙어리 아닌데 벙어리가 돼 버립니다. 안 들리고 말 못하니 그래서 영어를 배우는 거는 고생도 해야 됩니다. 고생하는 만큼 배워놓으면 또 좋아집니다.

“생각하여 보라” 뭘 생각할까? 지난날을 생각하니 한량없는 감사만 있어야 됩니다. 지나간 것은 되돌리지 못합니다. 그 속에서는 감사만 뽑아내는 겁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고 이런 굉장한 기회를 잡았는데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놓치기는 내가 놓쳤구나, 그러다 보니 접했던 모든 사람에게 이 사람에게는 이런 게 감사했고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감사했고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모든 주변을 다 동원하여 나를 복되게 이렇게 해주셨는데 이런 감사합니다, 이걸 귀신이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접했던 지나온 지난날과 모든 사람을 향해서 이 녀석 때문에 저 인간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고 이리되어지면 구해줄 방법도 없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할 때는 좋은 기회 감사한 기회에 감사하고 하나, 훗날 미래를 향해서는 끝끝내 주님이 존귀하게 만들어 존귀하게 부르실 것이니 마지막은 천국이요 천국 구원에 내게 배당된 그 위치 그 사명 이루어지고야 만다 소망은 가지고 소망 놓지 말고 그리고 현재 나는 좋게 만 드시려면 고난은 기본이라 쇠도 좋은 쇠 만들려면 1500도 넘어가는 용광로에 들어가서 붉게 녹아야 되고 망치에 두드려 맞아야 되고 용광로에 들락날락 많이 하고 망치로 많이 두드린 쇠는 고급 쇠가 되고 대충 들어갔다 나오면 뭐 망치로나 쓸까 많이 들락날락해야 그 다음 낫처럼 좀 귀해집니다. 세계 최고라는 립본도 일본 칼은 그렇게 많이 뚜드려 맞는답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원숭이보다 더 재주를 부리는 체조 선수가 연습 없이 되겠습니까? 얼마나 많이 움직여 봤겠습니까? 뭐 공차기야 너도 하고 나도 하는 거 그거조차도 잘 하려면 또 더 잘해야 됩니다. 소망을 가지고 오늘 나를 연단하는 겁니다. 오늘의 나의 부족한 것 얼른 배우고 고치고 연습하여 길러가고 그러면서 지난날을 생각하며 감사를 현재에 갖다 놓고 이렇게 감사한데 좀 더 잘해봐야 되겠다, 그리고 앞날의 소망이 저러니 당연히 이런 것은 기본이라, 이렇게 자기를 과거 현재 미래로 잘 다독 끓여 끌어가면 벌써 그 자세 벌써 이런 말씀을 전하는 오늘 새벽에 이 말씀을 듣고 접하는 순간 우리에게 이 말씀은 앞날의 복으로 벌써 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에서 내리는 우로와 같다”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가 왔다가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있더냐,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는 반드시 땅을 적신다” 땅을 적시고 돌아서면 움싹이 나고 그리고 모든 풀과 열매가 맺어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는 절대로 그냥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은혜입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감사가 넘쳐야 되고 먼 훗날 앞날을 보면 주님이 오셔서 해결해 놓은 이 구원의 길에 누가 앞을 가로막고 누가 재를 뿌릴 건가, 반드시 존귀한 자 존귀하게 만들어 놓고야 마는데 지난날의 감사와 앞날의 소망을 양손에 딱 거머쥐고 오늘의 발걸음은 이 수고 한 번이 이 노력 한 번이 소망을 이루어 가는 데 필요한 복이라고 자기를 잘 다독거리며 끌어가다 보면 한 달 1년 2년 이렇게 세월이 겹쳐질 때 귀신은 지금까지 발전이 이 정도인데 뭘 그렇게 꿈을 꾸느냐,  팔려온 지 지금 13년 차인데 팔려온 지 13년인데 지금 너한테 무슨 기회가 있겠냐, 기회가 있으려면 벌써 있었지 요셉조차 마음이 한 번 흔들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실은 마지막 고비입니다. 한 걸음 걸음 걸어가는 것은 나의 충성이고 내게 맡겨 놓은 나의 할 일이고 그 걸음걸음을 보시다가 어느 때 어느 기회에 붙들어 모든 해결을 주시고 모든 미루어졌던 은혜를 베푸느냐는 것은 때와 기한인 듯 때와 기한은 아들도 모르고 제2위 성자 하나님도 모르고 라는 말입니다.

성부와 성자는 삼위일체 한 분인데 성자가 모르는 것도 있는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분임 맡은 분담이 다릅니다. 분담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너 그러지 마라 너 그러지 마라 너 책임 못 진다, 확실하게 경고했는데 사고를 쳤을 때 네가 알아서 해라 난 너를 모른다 그 사람 얼굴을 모른다 생긴 일을 모른다 말이 아니라 책임을 진다 못 진다. 내 일이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때와 기한은 성자 하나님이 모를 리가 있습니까? 주님이 오시는 날이 때와 기한인데 그런데 결정은 성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성부 하나님 하면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입니다. 그 안에 매일 매일의 권한은 주님의 대속입니다.

오늘 아침 세 가지 “생각하여 보라 생각하여 보라” 이렇게 이어지는 이 말씀 속에 여기 먼저 지난날을 짚어 놓는 것은 지난날을 생각하면 한량없는 감사입니다. 그 애굽에서 떠낸 것이 보통 수고였습니까? 그러니 감사. 또 애굽에서 그렇게 애먹고 고생하고 천지를 진동시키며 떠낸 것이 공연히 수고한 겁니까? 굉장한 목표를 두고 떠낸 겁니다. 그러니 뭐 이거는 감사가 넘쳐야 되는 거고 또 가는 것은 마지막 하나님의 약속이니 가나안 최종 통과는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소망입니다.

또 들어가면 그냥 가나안입니까? 꿀이 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입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 신앙에 필요한 모든 양식이 넘치는 곳 그런데 그 양식이 또 얼마나 단지 얼마나 좋은지 도둑놈이야 뭐 도둑질하는 목표가 달성돼 봐야 이 귀한 걸 벌어 애통하고 우는 가정을 생각하면 편치는 못 할 겁니다. 큰 걸 훔쳐 성공을 하고 안 들켰으면 이건 좋은데 그걸 잃은 사람을 생각하면 그 마음 편치는 못할 겁니다.

신앙의 세계의 마지막은 젖과 꿀이 흐른다. 신앙은 우리에게 넘치는 양식이 있고 그 결과와 그 맛은 영광이고 꿀처럼 달다. 이게 우리의 목표고 그리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젖과 꿀이 흐를 것인가 어느 정도의 소망이 올 것인가 현재 내가 얼마나 수고하며 얼마나 내가 나를 잘 붙드느냐 현재 나에 대한 주의 말씀 어리면 어린 대로 겨울을 일으켜 주시면 추위는 기본이지 겨울에 추위 피할 연구는 하지 말고 추운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이게 겨울에 하나님의 말씀이며 뜻입니다.

네가 결혼했으면 부족한 너에게 가족이 메어졌으니 이걸 어떻게 감당할까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네가 미혼이면 아직도 몸이 가뿐할 때 이때 성경 읽고 가정을 가진다면 신앙의 좋은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게 미혼이면 자기의 현실입니다. 과거를 생각하며 감사를 한량없이 뽑아내고 넘치게 만들고 먼 훗날 미래는 반드시 소망 속에 감사하고 그러므로 현재는 내 노력과 내 충성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면으로 많이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감사가 있고 그 어떤 사람에게도 현재 내가 배워야 되고 부지런히 가야 될 과제가 있고 그러면서 이 과제 때문에 내가 주눅이 든다든지 또는 패배감에 내려앉는 그런 실망은 없어야 되고 완벽하게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저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 집은 새벽 기도에 앉는 숫자가 다섯 명, 다섯 명인데 늦어지면 사무실에서 바로 연락해서 깨우십시오. 지금. 오은아 선생님 집에 아침에 기본이 일곱입니까? 또 이영수 선생님 집에 아침에 너 댓 명이 기본입니까?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 집에 다섯, 세 집만 움직이면 열다섯입니다. 저같이 신앙이 있는 사람도 열다섯 명이 와야 열다섯 명입니다.  그런데 세 명이 움직이면 예배당 절반을 채웁니다. 그러니까 또 위치가 주일학교 부장 아닌가요?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Comments

Category
State
434,242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