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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배치)
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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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30226 주전
제목 : 존귀하고 복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 출발은 혈혈단신임을 각오
사회 : 김 희락
찬송 : 5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69장(눈에는 아무 증거 안 뵐 찌라도) / 60장(날 구원하신 예수를)
본문 : 이사야 51장 2절 -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흙 한 줌에 비천한 존재를 잘못된 것 고치고 더러운 것 제하며 하나님을 닮은 귀하고 중하게, 지난 한 주간도 존귀의 역사를 베풀어주신 주님. 영원무궁 귀한 우리로 인도하시고 은혜를 주시려고 날 중에 귀한 날, 시간 중에 귀한 이 예배 시간으로 저희를 인도하여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함을 드립니다. 장차 주님이 우리를 어느 현실로 어떻게 인도하실지 인간은 앞날을 모르오나, 주신 현실 속에 주님의 인도 가운데 주님만 바라보고 주신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의의 걸음으로, 모든 현실과 모든 사건을 지나 연단을 거쳐 나올 때에, 주님을 닮은 최종의 존귀의 모습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자라나갈 수 있도록, 이 시간도 주님께서 친히 동행하사 각 사람의 마음 마음에 진리와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타락한 시대에 주님이 넘치는 현실을 주셨는데 그 현실을 망각하고 감사를 잊고, 자기중심으로 스스로 소멸하고 있는 이 말세지 말의 세상 속에, 그리 되지 말라고 간곡히 외치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오늘도 말씀과 성령으로 바로 듣게 하시고, 간곡한 마음으로 함께하여 이 험난한 세상을 주의은혜 가운데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곳곳에 두신 우리교인들 곳곳에 세운 주의강단 위에 함께하시고 이 시간 친히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아브라함을 조상이라 했습니다.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왜 조상이라고 했겠는가. 한번 따라 하십시다. 믿음의 조상(믿음의 조상). 혈통으로는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아브라함. 믿음으로는 우리에게도 조상이 되기 때문에 여기 기록해 놓은 겁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조상이 개가 되면 아이는 강아지로 태어납니다. 피할 수 없는 겁니다. 망아지를 원하면 말이라야 망아지가 나오지 소 가지고는 망아지 나오지는 못합니다. 이게 조상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어른들은 조상이 되면 아이들을 보며 이런 것이 눈에 보이고 젊은 사람 아이들은 조상 탓을 하나. 케케묵은 소리라고 하는데 결국은 조상 피하지 못합니다. 다행스럽게 우리에게 너희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이 순간 우리는 복은 받아 놓은 겁니다. 아브라함이 누군가. 그 뒤에 보면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주시고 마구 번져 나가도록 창성케 만들어 놓은 그 중에 우리가 들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집 안으로는 잘 나지를 못해 흑 수저니 소외니 어렵니 그럴지라도, 신앙으로는 조상이 아브라함이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준 복은 우리에게로 다 그대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조상 탓 하는 거 아닙니다. 집안과 부모는 보잘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복된 아브라함의 신앙을 통해 복을 주시니 감사할 일이고, 이왕이면 부모도 좋고 또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도 좋으면 더 좋은 겁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라. 말이 조상이면 난 망아지 피하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호랑이면 난 맹수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위대해도 토끼가 조상이면 풀 뜯어 먹지 어떻게 사자하고 싸우고 그러겠습니까. 조상이 아브라함이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 조상은 아브라함인데 그런데 너희를 만드느라고 고생한 분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2절에 다 같이 누구라고요? 사라입니다. 너희를 만들고 너희를 키우느라고 고생한 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어머니 사라다. 그래서 여반에 수고가 많다 그 말입니다. 아무리 많아도 성씨는 남자 따라 가지 않느냐. 아이 호적에 성씨야 남자 이름으로 붙여놨지만은 아이가 엄마 쪽에 붙습니까? 아빠 쪽에 붙습니까? 고생을 했기 때문에 고생한 것만큼 어머니 쪽으로 붙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잘 기르려 들면 피할 수 없이 아이가 좋아집니다. 반대로 종자가 좋고 품종이 아무리 좋아도 기르는 어머니가 흔들어 놓으면 망나니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양면을 생각하시고 조상도 좋아야 됩니다. 토끼 잘 기른다고 토끼가 호랑이 되겠습니까. 조상도 좋아야 됩니다. 근데 믿음으로 우리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거기다 대고 너희를 기른 너희를 생산하고 기른 분은 사라다. 집에 자기 어머니 이름이 사라라고 되어 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구약은 사라를 통해 기르시고 신약은 성령이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좋게 기르시는데, 성령이 우리를 좋게 기를 때 첫째는 어머니들을 통해 좋게 기르시고, 어머니가 어머니 노릇을 못하면 교회서나 주변에서 어머니처럼 우리의 신앙을 기르느라고 고생하는 분들을 주변 여러 곳에 다 두십니다. 구역장일 수도 있고 주일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고 저처럼 목회자가 그럴 수도 있지만은, 그러나 소리 없이 기르는 그 소리 없는 손길이 사라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 좋은 분입니다. 또 너희를 기르느라고 고생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생각하여 보라. 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 10년 100년 앉아 있어도 소귀에 뭔 글 읽어봐야 듣느냐 그런 말이 됩니다. “생각하여 보라” 내일 중요한 시험을 보려면 시험지 생각도 해야 될 거고 취업 생각도 해야 될 거고 별별 생각도 급하지만은, 너 조상이 누군지 생각 좀 해봐라. 너 조상 아브라함 사라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붙여놓은 말씀입니다. “내가 부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아브라함을 창성케 번창케 하였느니라. 우리는 그 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복 주시고 아브라함을 번창 하게 하는데,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이 복을 받고 우리는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복을 모두들 받아보셨습니까? 복을 받아서 번창했으면 신풍교회 앉아 있겠습니까? 도시 저 서울로 가지. 또 서울에 계신다고 하더라도 신풍교회 실시간으로 함께 예배드리겠습니까? 주변에 좋은데 많은데.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번창 하게 했는데, 근데 쏙 빠져나와 뒷골목이나 다니고 망할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좀 놔둬 버리십니다. 고생 좀 하라고. 밥 타령하고 밥 맛 없다 그러고 계속 그럴 때 밥을 먹이는 사람도 있고, 좀 놔둬버리면 배고프면 밥맛이 있든 없든 찾아오게 돼 있습니다. 부모라면 두 가지 방법을 고루 쓸 줄도 알아야 됩니다. 어떨 때는 밀어 넣기도 하고 안 될 때는 좀 버려둬서 고생해서라도 돌아오도록,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저를 보시면 팔이 몇 개입니까? 양쪽에 두 개입니다. 하나만 가지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외팔이 만들지 왜 한 개 더 달아났겠습니까? 보기 좋으라고? 주로 오른손으로 다 하지만 왼손이 마주쳐야 되는 때가 있습니다. 오른손으로 끌어주고 토닥거리고 밀어주고 아무리 해도 안 될 때는 왼손도 필요한 법입니다. 좋을 때 공부해라 해라 하다가 빼고 나리를 치고 뺀돌뺀돌 그러면 한 1년 그냥 휴학을 시켜 놀아봐라. 밥을 1년 10년 먹이다가 꼭 밥 타령하면 한 끼 금식해서 건강에 좋단다. 한 끼 굶어보면 단번에 돌아서고 정신 차리게 돼 있습니다. 양면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길러 가십니다. 그리고 3절입니다.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시온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내려오는데 그 중에서도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잘 믿는 마음도 있고 잘 믿지 않는 마음도 섞여 있습니다. 조용하게 자기가 자기 살아온 뒷날을 살펴봐 보면 그 좀 칭찬할 만큼 좋은 때도 있었고, 내가 생각해도 나 살아온 게 부끄러운 것도 있고 섞여 있지, 어떤 사람이 자기 생애가 늘 훌륭했겠습니까. 또 엉망으로 산 사람을 뒤져봐도 더러더러 좋게 산적도 있고 사람은 양면이 섞여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상이고 사라의 수고로 오늘 우리가 되었습니다마는, 그런데 우리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면은 하나님 앞에 복 받고 참 좋게 잘 사는 면이다. 이런 면은 제가 저를 생각해도 그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런 세월을 헛일을 했을까 그런 것도 다 섞여 있습니다. 믿는 내 생애 속에 귀하게 복되게 좋은 모습 그런 것을 시온이라 그럽니다. 또 한 번 따라 하십시다. 시온(시온). 다른 말로 말하면 예루살렘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우리나라 수도가 어딘가요? 서울입니다. 일본의 수도는 어딘가요? 동경입니다. 서울 다르고 수도 다르고 다릅니까? 수도라 말은 그 나라에 제일 머리 되는 도시 우두머리 도시라는 말을 할 때는 수도라 그럽니다. 머리 ‘수’자입니다. 두목 ‘도’자입니다. 한국의 도시가 한 200여 개 된다는데 두목 되는 도시는 어디냐 수도. 또 이걸 또 쉽게 바꿔 말할 때는 서울이라 그러지요. 이 말이나 저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부친이나 아버지나 같은 말인 것처럼 예루살렘이나 시온이나 같은 말입니다. 예루살렘 시온. 예루살렘이라 할 때는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를 말할 때는 예루살렘인데, 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마음에 언젠가 우리는 저렇게 돼야 된다. 이렇게 마음의 소원을 가질 때는 시온이라고 그럽니다. 시온. 대저 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위로한다. 요래 적어도 되는데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왜 예루살렘이라 그러지 않고 시온이라 그랬을까. 대한민국의 수도가 이 정도는 돼야 되지 않습니까? 이럴 때 이제 정치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 분들은 아이 우리 서울시가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고 그런담. 이런 말도 있지요. 그 말에 따라 좀 다릅니다. 시온이란 말은 잘 믿어야 되는데 잘 믿어야 되는 것도 아는데 나 살아가는 모습은 그냥 엉망이 돼가지고 그럽니다. 그럴 때 혼자 속으로 좀 잘 믿어봐야 되겠다. 이런 소원 마음의 소원 마음의 목표를 가질 때 시온이라 그럽니다. 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로한다? 오늘은 남들 볼 때 교회를 안 다녀도 오늘은 남들 볼 때 뭐 저런 것이 교회를 다녀? 그럴지라도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보면 좀 믿고 싶은 마음, 자기 속에도 믿음의 소원 마음이 있으니까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시온 그런 믿음의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 위로해 주시는 내 속을 보면 잘 믿는 마음 잘 믿고 싶은 시온 같은 마음 말고, 버려진 황폐한 마음 황폐한 생활도 있습니다. 황폐한 생활 황폐한 마음도.
대충 중고등학교 과목이 한 10개 됩니까? 국어 영어 이게 한 10개 과목. 다 잘하는데 체육은 영 빵점 맞는 아이도 있습니다. 체육 음악 미술은 펄펄 뛰는데 수학은 빵점 맞는 아이도 있습니다. 수학은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수학책은 내버립니다. 이까짓 것 뭐 쓸데 있냐고. 내가 뭐 장사하고 세상 사는데 수학 그 모르고야 못하냐. 그 학생이 수학 책을 덮어버리고 취미 없다고 내버리면 수학 과목이 황폐해진 겁니다. 요즘은 아이가 적어 그렇지만은 이전에 아이가 5명 7명 10명 그럴 때는, 돈은 없지 아이들은 많지, 한 집에서 5명 10명을 다 잘 기를 수 없으니 딱 쳐다보고 장남 하나만 밀어줍니다. 나머지는 힘이 없고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놔둬 버립니다. 그때도 지혜로운 가정은 우리 집은 장남 밀어봐야 별로 그렇겠다. 보니까 셋째가 다섯째가 이거 희망이 있겠다. 여기다 대고 밀어가지고 이거 출세시켜 나머지 형제간 또 덕을 보도록 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시온이란 말은 신앙으로 목표하고 신앙으로 마음을 둔 것은 시온이고, 그 시온 외에 옆에 보니까 내버린 부분 없애버린 부분을 황폐라 그럽니다. 황폐하다 내버려 둬버렸다. 그 황폐한 곳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신다. 버리지 말아라 이것도 챙겨보자.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광야라 말은 내버려 두다 보니까 사람 살 수가 없는 곳,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곳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답지 못한 이런 모습을 광야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 광야도 하나님께서 돌보아 에덴동산 같이 만들어준다. 오늘 말씀이 한 주간 이사야 51장 2절과 3절로 공부할 겁니다.
이 말씀 전체적으로 학생들은 교안을 보시고 기본적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으로 좀 사는 것이 쉬운 생활인데 믿는 사람이 말씀으로 살아보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세상 살면서 좀 어렵게 되어 집니다. 고난이라 그럽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으로 살면 좋고, 좋고 좋은 일만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일만 있어야 되지 믿는 사람 믿음은 좋은 건데,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데 세상에 고난 어려움을 겪는다. 뭔 말이냐 왕이 왕 노릇 하려면 어느 녀석이 반란을 할는지 반란을 맨날 찾아봐야 됩니다. 그건 어렵지 않겠습니까? 우리야 잘 데 없어 못 자지 잘 데 있으면 마음 놓고 대자로 누워서 자지마는, 임금은 어디든지 가고 싶은 데 가서 혼자 들어 눕겠습니까.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100명 200명이 따라다니면서 지키고 이래야 되니 임금은 어디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합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습니다. 독을 탔는가. 우리야 없으면 먹지 뭔 독 탔는가 싶어 그럽니까? 임금은 밥 한 술 먹을 때 뭐가 들어갔는지 그것도 떨어야 됩니다. 우리 볼 때는 임금 노릇은 좋게만 보이지요? 그 고생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임금이지. 사장은 좋게만 보입니까? 이 청년 불러다가 계장시키고 과장시키니까 모두들 쳐다보고 부러워하지만은 그 사장 돈 그거 계산하려면 죽을 지경입니다. 실컷 벌어놨다가 경리 과장 하나 털어버리면 회사 다 날아갑니다. 보일러 쪽 에너지 쪽에 대성 셀틱 대성 에너지 대성 가스 대성이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 대성에 저하고 바로 옆에 앉은 중학교 친구 짝지가 경리 계장 과장 들어 가가지고, 대성그룹 전체 돈 틀어지고 그 돈 다 빼다가 미국으로 가가지고 한 30년 전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 회장이 미국에 6개월인가 1년을 가가지고 뒤져서 미국 전역을 뒤져서 잡아서 왔더라고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봤는데 중학교 바로 같이 앉은 친구입니다. 회장님이 평생에 그런 돈을 벌어도 경리를 시킬 때는 얼마나 마음 드는 사람 신복을 시켰겠습니까마는, 신복이 빼 가면 그냥 한꺼번에 다 가져가는 겁니다. 하나밖에 없는 신복 이걸 또 의심해야 되니 그 사장 돈 관리하느라고 밤잠을 못 잡니다. 가난한 자는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돈이 많으므로 자지도 못한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무식한 우리야 없어 못 먹지 뭐 있으면 그냥 손바닥으로 주워 먹지마는, 의사 선생님들은 현미경으로 맨날 병균을 보다 보니까 이거는 뭐가 불리하고 이건 병균이 있을까 없을까. 씻느라고 맨날 또 고생합니다. 뭐든지 다 그런 겁니다. 하물며 죄악세상의 말씀으로 살아보려고 하면 고생은 좀 하는 겁니다. 마땅한 겁니다. 첫 번째는 세상 전부와 마찰이 됩니다. 세상이란 말씀을 모르는데 말씀 모르는 세상 속의 말씀으로 살려니, 사상이 달라서 마찰이 있게 되는 겁니다. 이 좋은 일요일 날 낚시하러 가고 등산하러 가지. 들어가 가지고 그냥 일주일 한 시간 내도록 잔소리를 들어? 말씀 모르면 그러는 거고 말씀을 알면 아무리 바빠도 한 주간에 한 번 말씀은 좀 들어봐야지. 좋은데 놀러 못 가고 오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까. 죄악세상의 말씀으로 살려면 세상 전부와 부딪히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각오해야 되는 겁니다. 학생이 공부 좀 하려면 놀러 못 가는 겁니다. 간단하지 않습니까? 극장 다 다니고 드라마 10부작 20부작 다 보고 연애소설 천권만권 다 읽고 친구들하고 10명 100명 다 놀고는 공부 못하는 겁니다. 공부도 공부하려면 친구도 좀 끊고 극장가는 것도 좀 끊고, 자기 마음을 붙들어야 공부가 되는 거지. 자기 몸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역기 드느라고 한 시간 내도록 밥 먹고 쇠 뭉텅이 그냥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땀을 뻘뻘 흘리는 거 봐 보십시오. 돈 주면서 그 일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봐 놨으면 그냥, 할 짓이 없어서 쇠망치를 들고 들었다 놨다 한 시간 저 짓을 해? 무식한 것들 이러고. 그 몸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지성인이라 고급이라 그거 한다고 또 뻐기고 있는 겁니다. 생각이 다르면 이렇게 서로가 좀 다른 겁니다. 죄악 세상에 말씀으로 살려면 세상 전부와 부딪히게 된다는 거 마음속에 각오하셔야 됩니다.
두 번째는 세상 전부는커녕 자기 주변, 주변 환경과 반드시 다 마찰이 되게 돼 있습니다. 부부 둘 앉아가지고 남편은 돈 벌러 간다고 뛰 나가면, 여자는 오늘 내 생일인데 밥 한 끼도 한 끼 못 먹고 돈 벌러 뛰 나가냐. 구시렁거려 싸면 부부 둘도 서로 마찰되는 겁니다. 오늘 천만금을 줘도 당신 생일이니까 오늘 하루는 당신하고 식사를 하겠다. 그 정도 되면 멋진 남자지요. 그런데 그 남자하고 살면 세끼 밥 먹기는 어려울 겁니다. 결혼기념일 뭐 신부의 생일날 신부는 폼 잡고 싶은데 남자는 돈 벌러 간다고 정신없이 뛰 돌아 댕기면. 생일은 못 챙겨주지만은 저렇게 돈 번다고 애를 쓰니 먹고 사는 것은 해결이 되겠다. 둘 중에 어떤 걸 좋아하는지 선택하면 됩니다. 배짱이 하고 놀라면 배짱이 같은 남자 대고 살면 되는 거고,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막 소설도 잘하고 그런데 돈은 못 벌어오는 남자 좋으면 그리 사십시오. 굶어본 사람은 생일 안 찾아줘도 좋고 장미꽃 안 들고 들어와도 좋고 돈이나 많이 벌어주면 돈 쓰는 거는 내가 쓸게 그러면 되는 겁니다. 선택을 하는 겁니다. 반반으로 하든지 돈벌이 남자를 찾든지 아니면 노는 남자 찾든지. 남학생들도 그런 겁니다. 노는 여자 찾아오든지 아이 낳고 열심히 살림 잘 사는 아내 찾든지, 노는 여자 만나 놓으면 노는 거는 잘하는데 자기하고만 놀지는 않을 겁니다. 노는 여자 데리고 살면 우선은 좋은데 그 노는 여자가 자기하고 1년 3년 놀고 나면 그다음 다른데 또 찾아 댕길 겁니다. 선택은 자유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죽는 날까지 계산을 딱 해보니까 일하는 남자가 좋겠냐? 노는 남자가 좋겠냐? 노는 아가씨가 좋겠냐? 그냥 살림 잘 살고 성실한 게 좋겠냐? 알아서 선택하시면 됩니다.
말씀으로 살려 하면 이게 시온을 마음속에 가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들려고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올려놓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우리를 불러놓고, 아브라함의 자손은 마음속에 예루살렘을 마음속에 생각하는 거다. 예루살렘. 공부하는 학생들이 마음속에 대학을 꿈꾸듯이 드디어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취업을 꿈꾸듯이, 드디어 취업까지 하고 나면 가정을 만들고 싶듯이 꿈이라는 게 다 있지요? 공부했고 취업했고 가정까지 따뜻하면 이제 안 죽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둘이 손잡고 살아야 되는데, 하나가 일찍 가버리면 그 마음 아십니까? 막 한참 좋은데 하나가 그냥 턱 꺾여버리면 어떡할 겁니까. 다 된 밥인데 그런 것도 있는 겁니다. 그런 것도. 여기까지 계산하면 아이 좀 무식하고 돈 못 벌어도 건강하면 좋지 뭐 그럽니다. 그래서 60에 부부 건강하게 손잡고 80에 부부 건강하게 손잡고 산책하고, 90이 돼도 치매도 안 걸리고 부부 둘이 손잡고 다니면 뭐 판사 한 사람 재벌한 사람 공부 잘한 사람, 아무것도 부럽지 않고 나 많으면 건강하게 둘이 다니는 거 그게 제일 좋을 겁니다. 근데 안 죽습니까? 팔십 구십 둘이 손잡고 다녔으니 이 땅 위에 모두는 행복한데 죽지는 않을 겁니까? 그렇게 팔십 구십까지 행복하게 살았는데 하나가 죽어 지옥을 가야 된다면, 하나가 죽기는 죽는데 이게 어디 가는지 모르고 구중중천을 떠돌아다닌다고 생각을 하면, 그때서야 급해서 그 죽음 너머를 미리 생각할 걸. 팔십 구십에 죽음 너머를 생각한다고 머리가 그리 돌아가집니까. 어릴 때 믿을 걸 젊을 때 믿을 걸 이렇게, 이렇게 되다 보니까 우리 여기 앉아 계시는 분들이 아마 한 95%는 다 미워할 사람 노태우라는 사람 혹시 아십니까? 죽었죠. 요즘? 언제 죽었죠?
노태우라는 사람은 생긴 것 봐도 보살같이 생긴 사람인데 그 완전 절의 골수의 골수입니다. 골수 절 믿는 사람인데 80에 들어 누워가지고 며느리 딸이죠? 아마? 딸이 전도를 해가지고 침상에 드러누워서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마. 이렇게 회개를 하고 바꾸는 바람에 불교계가 난리가 났었습니다. 마지막에 바뀌어버렸지. 전 대통령 불교 유명한데 마지막 죽기 전에 아들이 목사 한다고 그러니까 네가 개척하면 내가 그 교회 교인을 하마. 그것도 또 바뀌어버렸지. 또 이어령이라고 공부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제일 학자라고 그러는 이어령이 평생의 벌 소리하다가, 마지막에 딸이 전도하는 바람에 나도 예수님 믿고 천국 갈란다. 이렇게 갈아타기를 해가지고 노태우 전두환 이어령 이 나라의 석학 유명한 사람 깡짜배기 막 가는 사람, 줄줄이 80 90 돼가지고 그때서야 이제 믿는다고 돌아섰으니, 천국을 와서 우리와 만난다면 그 사람들은 제일 꼴찌에 앉아 있을 겁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건강하게 걸어온 우리가 더 나을 겁니다. 그 사람들 바보 아닙니다. 그 사람들 마음 약한 사람 아닙니다. 돈 없는 사람 아닙니다. 덜 배운 사람도 아닙니다. 이 나라 5천만을 휘 잡고 살았던 이 나라 5천만이 존경했던 학자였습니다. 마지막, 마지막 좋은 것 다 하고 꼭대기에 올라앉고 보니 믿고 가는 것 밖에 없다. 마지막 결론이 이렇게 딱 바뀌는데 우리는 날 때부터 젊어서부터 미리 믿고 이렇게 아침 10시에 교회까지 오게 되었으면, 아브라함이 조상이라 나는 이런 복된 길에서 마음껏 산다. 이러면 좋을 건데 이 복된 길에 하나님이 앉혀놔도 이게 복된 줄 모르니까 내일 시험 보는 사람은, 오늘 저 밑에 지금 단어 외우고 있는 분계시나요? 우리 교회는 그 정도 공부하는 분 없지요?
서울법대 법학과 가가지고 우리나라 지금 손꼽는 판사 된 분 한 분, 우리 공회 예배 보는데 설교가 한 시간이나 되니까 중학교 때부터 설교할 때 이렇게 밑에다 대고 단어 외우고, 그래가지고 그렇게 공부하고 출세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그래야 또 되는 거지. 뒤에는 우리 집회 5월 8월 집회 사법시험 볼 때도 제쳐놓고 와가지고 또박또박 시험 봤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어릴 때 이렇게 저렇게 그러면서 이제 자라가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를 줘도 좋은 자리인 줄 모르면 박차고 도망갑니다. 어느 나라 왕자가 왕자 노릇하는 게 궁궐에 갇혀 사니까 기가 막혀서, 지나가는 거지가 부러워서 도망가서 거지 노릇도 해봤다고 그러지요? 거지 하면 아침 일어나는 시간도 없고 자는 시간도 없고 학교도 없고 교과서도 없고 숙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지가 3일 일주일 얻어먹고 빌어먹고 쥐 박히고 나면, 왕궁 속이 낫구나 하고 기 들어갈 겁니다. 아마. 아무리 좋은 자리에 앉혀놔도 사람이 존귀한데 처하나, 사람이 존귀한데 처하나. 아무리 귀한 데 올려 앉혀 놔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과 같으니라. 오늘 대한민국 지도에 제일 밑바닥 남쪽 제일 끝에 우리 교회가 이렇게 못나게 있지만은 우리는 조상이 아브라함이다. 이거는 복과 번창과 하늘의 영생은 받아놨으니 이만하면 이 땅위에 최고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하나 둘 하나 둘 건설해 나갈 수가 있고, 서울 꼭대기에 올려놔도 좋은 줄 모르면 엉망 됩니다.
말씀으로 살면 세상에 좀 고난은 옵니다. 왜 고난이 오느냐. 세상이 말씀 모르는 죄악이니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고 내 주변 환경도 말씀을 모르니 나하고 부딪힐 수밖에 없고, 이렇게 부딪힐 때 못난 사람들은 요즘 친구들은 놀러 가지 교회 안 가요. 요즘 친구들은 교회 가도 교회에서 막 노래방처럼 뛰었다 굴렸다. 그냥 발버둥치는 교회 가지 설교하는 강단 잔소리 하는 교회 안 갑니다. 요즘 우리 친구들은 안 갑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는 거고. 친구들이 그러든 말든 이것들이 종교를 모르고 신앙을 모르고 인간을 모르니까, 종교단체 예배당에 주일날 와서 강단을 갖다가 노래방 만드는 이런 인간들이 되지. 난 한 번을 가도 교회는 교회답게 갈란다. 그러다 보면 친구와 주변과 문제는 생기는데 이럴 때에, 난 교회다운 교회를 다니다 보니까 그런 거다. 이걸 깨닫는 사람은 자부심을 가지고 올 것이고 한 마디 더 들어보려고 그럴 거고, 친구들 교회는 뭐 놀러도 가는데 주일날 어디 스포츠센터도 가는데 해외도 가는데 뭐 그냥, 예배당에서 어른들이 봐주는데 여기서 율동도 하고 남녀 쌍쌍이 그냥 뺑뺑 돌기도 하는데, 나도 그런데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부모 따라와 앉아가지고 기가 막힐 겁니다. 참 말씀대로 살려니까 어렵다. 힘들다 그런데 말씀으로 살면 세상 전부와 마찰하고 주변 환경과 마찰이 되는 것은 피하지를 못합니다. 심지어 자기 마음도 불편합니다. 자기 마음도.
저도 초등학교 중학교 믿는 가정에서 공회교회 다닐 때, 옆에 교회는 맨날 놀러 다녀요 우리는 놀러도 한 번 안 가고. 옆에 거는 맨날 선물 우리는 가서 연보나 하지 선물도 못 받아보고. 투덜투덜 하고 교회를 끌려다녔고 밀려다녔습니다. 이럴 때는 마음도 불편하고 옆에도 불편하고 세상도 다 불편했습니다. 뒤에 이제 어느 날 깨닫고 보니까 아 이런 좋은 교회를 다녔는데 몰랐구나. 알고 보니까 그다음부터는 이제 광고하고 선전하지. 너 교회 다녀? 노래방 다니지? 너 어느 교회 다녀? 고려 파? 합동? 그 교회 노래방이지? 그 교회 콜라텍이지? 그게 교회야? 그게 교회야? 이제 깨닫고부터는 우리 거 좋은 거야 너희 거 몹쓸 것이지? 이래 되는데 못 깨달을 때는 너희들은 좋고 세상은 다 좋은데 우리는 이게 뭔 꼴이냐 이리 되는 거지. 생각을 바꿔야 좋은 걸 좋은 줄 알지. 지난주 그 앞에 주 3주 계속 배운 것이 이사야 49장입니다. 이사야 49장에서는 믿다 보면 고난은 오는 거다. 고난이 올 때 순종하는 것이 그게 신앙이다. 그래서 이사야 49장 순종을 배웠습니다. 이사야 49장에 순종을 배워 순종으로 쭉 나가다 보면 순종의 결과가 어찌 되느냐. 여기 51장에 와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봐라 혈혈단신 혼자 하나님 따라 신앙으로 출발할 때 얼마나 외로웠겠냐. 가족과 주변이 얼마나 불편했겠냐. 모든 세상과 마찰이 되고 아브라함의 마음도 이거 뭐 잘못되는 것 아니냐 불안했지 않겠느냐. 아브라함도 출발할 때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그다음 그에게 복을 주고, 아브라함을 통해 이 땅위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을 만들고야 말았다. 이 말씀으로 오늘 우리에게 오늘의 아브라함은 누구다? 네가 네 현실에 오늘의 아브라함이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신약의 오늘 나의 현실의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조상이니 너도 아브라함처럼 말씀으로 신앙으로 살려다 보면 “혈혈단신으로” 말씀으로 걸어가는 걸음은 남들이 이해하고 남들이 박수 치는 걸음이 아니다. 한 사람이 신앙으로 열심히 살 때 주변에 전부 박수를 치면 그 이상한 겁니다. 여수 경찰이 조폭이 경찰 대 놨으면 여수 깡패들은 다 박수 칠 걸요. 여수 시장이 도둑놈이 되어 놨으면 여수 도둑놈들은 전부 이제 해먹게 생겼다고 난리가 날 걸요. 대통령이 우리 신풍 사람 되어 놨으면 신풍 사람은 장관하겠다고 전부 박수 칠 걸요. 대통령이 검사가 되놓으면 이 나라 도둑놈들은 막 데모하고 생난리가 날 걸요. 저놈 죽이라고. 말이 틀리지는 않았을걸요. 검사 저놈이 대통령 되어 놨으니까 이 나라 도둑놈 다 잡아 죽인다고 난리가 나는, 그 난리 나는 사람들도 도 멈추면 또 도둑놈들이겠지. 가난한 사람들은 재벌이 대통령이 됐으니 돈은 벌어오겠다고 그러겠지, 여자가 대통령 됐으면 여자는 다 좋아하겠지. 남자들은 자존심 상해서 여자 대통령 밑에 내가 대한민국 국민을 해? 이민 가버려야지 뭐 그러겠지.
누굴 좋아하는지 보면 아는 겁니다. 친구 보면 사람 안다고.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 놈들이 나빠서 부모 입들이 다 그러거든요.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 놈들이 나빠서 우리 애가 영향을 받는다고, 나쁜 아이 친구 엄마는 또 뭐라 그러지요? 우리 애를 꼭 찍으면서 그놈이 나빠서 우리 애들 나쁘다고 그럽니다. 친구 보면 사람을 안다 그럽니다. 닭이 많이 모여 있으면 그 안에 개가 있을 리는 없습니다. 개가 열댓 마리 놀고 앉았으면 닭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끼리끼리 노는 거지. 누구를 좋아하느냐 누구를 싫어하느냐 누구를 욕하느냐 누구를 박수 치느냐. 보면 속에 들어가 있는 인간을 아는 겁니다. 속에는 이런 게 들어앉았구나. 도둑놈이 대통령이 돼야 도둑질 해 먹을 사람들은 5년 그냥 판을 벌이지. 도둑놈 잡는 인간이 대통령 돼놨으면 도둑놈들은 일단 5년간 해외에 갔다 돌아옵니다. 못난 것들이 국내에 있다가 붙들리지. 우리 조상이 누구라고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 밑에는 아브라함 자손밖에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아브라함 자손 된 우리는 아브라함 때문에 복은 받아 놨습니다. 근데 이걸 모르는 세상은 뭔 그리 사냐? 성경이나 읽냐? 예배당을 가냐? 쥐 박겠지. 모르니까. 모르니까 그러는 것이고 아는 사람은 아니까 그렇게 마찰이 되고 고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 된 주님 한 분 바라보고 말씀으로 걸어갑니다. 그러고 학생이 초등학교를 다니면 친구들하고 뭔가 불편합니다.
또 오늘 아침 새로 물어볼까요? 이서인 손 좀 들어볼까요. 이제 2학년 올라가나요? 작년 1년 동안에 학교 다녔나요? 학교 가면 점심 때 밥 주나요? 학교에서 점심 때 밥 먹을 때마다 기도하고 먹었나요? 저 친구 말은 좀 믿기가 그래서 부모들한테는 죄송한데. 딱 곧이곧대로 말할 사람 유정이는 학교 6년 다닐 때 학교에서 기도 다 하고 밥 먹었나요? 안 할 때도 좀 있었나요? 유정이는 딱 직진입니다. 안 할 때도 있었답니다. 목사 손주는 1년 동안 점심 때 기도하고 밥 먹었답니다. 그런 걸 제가 잘 안 믿습니다. 저도 안 그랬으니까. 꼭 기도하라고 쳐다보면 눈 질끈 감고 1초 만에 기도했다 그러지. 우리 교회 저 여름에 한 번씩 나오는 학생은 미국에서도 점심시간 되면 밥 받아 놓고 통성기도를 딱 하고 밥을 먹습니다. 그 나라는 다 기독교 나라니까 기독교 선생님이, 다 기도하고 먹는데 얘는 기도를 하도 간곡하게 하고 먹으니까 선생님이 감동을 받아서, 세상에 3학년짜리가 똑 저런 애가 있나? 이제 이런 기도를 기도라 그러는 겁니다. 그 정도 기도할 사람이면 사무엘 같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겠지요.
초등학교 3학년이 밥 받아 놓고 기도한다고 또박또박 남이야 먹든 말든 떠들든 말든, 난 식사 때마다 하는 기도가 있으니 그 기도 한다. 한 마디 하고 두 마디 하고 세 마디하고 또박또박 다 하는 것이 말하자면 말씀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래 놓으면 애들이 너 뭐 하냐 고 조롱도 하지 놀리지 그러다 보면 애들이 부끄러워 못하는 겁니다. 놀리지 않아도 남들이 쳐다볼까 싶어 잘 못 그럽니다. 남반들 군대 갔다 온 분들 군대에서 3년 기도하고 식사하셨냐. 이렇게 물어봐 보면 제대로 하신 분 몇 없을걸요. 온 군데에서 저런 녀석이 다 있냐고 그러고 밥 먹으면 밥 빼앗아 가서 다 먹어버립니다. 대신 밥 없을 때는. 어디서라도 말씀으로 산다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다 보면, 주변에 이상해지고 마찰되고 오만 문제 다 생기는 겁니다. 당연한 거지. 담배 안 피우면 주변에서, 너 담배 안 피우는 거는 보고 교회 다닌다니까 이해는 하는데 담배 안 피우는 목사 같던데? 이렇게 뒤흔듭니다. 안 피우는 건 자유지만 담배 안 피우고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래? 다 그럽니다. 담배는 건강에 안 좋아 못 피웁니다. 끝까지 못 피웁니다. 하면 그거 내 건강 안 좋아서 내가 안 피우는데도 얼마나 들 볶아놨는지, 예전에는 그냥 매가 날라 오고 사람 완전히 그냥 고문을 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담배를 안 피웠기 때문에 담배 때문에 폐암 걸릴 염려는 없겠다. 이렇게 자신감을 얻는 거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하는 겁니다. 정말 말씀 따라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려면 아브라함처럼 혈혈단신 홀로 걸어갈 각오해야 된다. 그럴 때 주변과 세상과 살아가는데 많은 마찰이 있는데 믿는 사람은 그게 기본이다. 그래서 신앙은 고독과 외로움의 걸음이지, 말씀으로 걸어가면서 친구 좋고 동역자 좋고, 좋고, 좋고 그런 거 없습니다.
맨날 반복해서 좀 죄송하지만은 우리 교회는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손양원 목사님 때문에 시작했으니까. 손양원 목사님 고생할 때는 옆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중에 죽고 유명해지고 나니까 그때 내가 손 목사님과 교도소 여기 같이 있었다. 저기 같이 있었다 하도 동지가 많아서, 정말 외롭게 죽을 때는 저렇게 이상하게 미신 믿듯이 믿는 게 있다고 잡아주라고 욕을 해놓고, 막상 유명해지고 나니까 전부 자기 친구랍니다. 그중에 제일 친구를 많이 했다는 분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광주 교도소에도 함께 신사참배 때문에 들어갔다는 분. 그래서 통합 교단에서는 손양원 목사님이 통합교단인데 광주교도소에 함께 들어갔던 분이 그 집안이 다 증언을 했다고 그래서, 그 아들은 살아계셔서 제가 직접 전화를 해봤습니다. 신풍삼거리 신풍 목사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벌 소리 못하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손 목사님 외에는 다 신사참배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동네가 다 아니까. 그러셨습니까? 쏙 빠져버립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야 뭐 큰소리 못 치겠습니까. 아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는 말 못하는 거지. 아브라함도 누구도, 누구도 말씀으로 걸어가려면 아예 주님만 바라보고 말씀으로 걸어가려면 친구도 포기 돈도 포기 가정도 포기, 모든 것은 포기해야 될 각오는 해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친구 새기면서는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공부해서 성공해 놓으면 쟤하고 나하고 친구인데, 뒤에 성공하고 나면 친구가 밀어 터져서 다 기억도 못 합니다. 다 기억도 못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신앙에 철이 들어서 그냥 무조건 앞만 가다 보니까 고등학교 친구가 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40년 50년만에도 전화 오면 내가 네 친구인데 나 알지? 그럽니다. 오늘 친구 되고 평생의 저놈 때문에 공부 못 했다고 원수 되는 법. 오늘 가까운 친구와 더 친해지는 못해도 말씀으로 산다고 친구와 저절로 좀 멀어졌는데, 뒤에 보니까 뒤에 보니까 혈혈단신으로 출발한 아브라함이 외로운 사람이었던가. 천하가 존경하고 천하가 따르고 싶은 아브라함이 되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우리가 천국 가면 천국 가서 만날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사람이 되어, 영원무궁토록 아브라함 싸고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룻밤 친구 때문에 말씀 버리는 것보다 오늘 하룻밤 세상에 두고 갈 이것저것보다, 오늘 세상에 외롭지 않으려고 이거 저거 잡다가 말씀 놓치면 다 놓치는 겁니다. 영원히 놓치는 겁니다. 영원한 천국의 그 나라를 마음속에 딱 품고 오늘 말씀으로 살다 보면, 당연히 외로움과 고독의 길은 피할 수는 없는데 그런데 늘 외로우냐. 늘 고독이냐. 조금 걸어가고 말씀에 익어지고 나면 주변에 많은 사람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여서, 함께 가도록 많은 양떼를 많은 사람을 붙여주는 그런 날이 오게 됩니다. 오늘 오전에 간단한 한 말씀입니다. 요약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뒤에 너무 잘 되어 차고 넘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조상이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리 존귀한 복 가운데 앉혀 놓았는데, 내 발로 도망가면 하나님께서 고생 좀 하다 와라 그래 버립니다. 복된 세상 복된 환경 복된 신앙으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앉혀놨다는 거 늘 잊지 마십시다. 그러려면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 난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한도 없이 복된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은 해드릴 수가 있는데 공석에서는 그 가정 이야기를 다 하려다 보면 창피한 게 나오기 때문에 못해드립니다. 네 가정 조상 때 이랬고 저랬고 이랬고 저랬지 않냐. 그런데 이 정도 됐으면 횡재한 거 아니야? 그러면 다른 분들은 다 맞다 그 집안이 그랬는데 이렇게 됐으면 횡재 했네 그럴 건데, 창피한 얘기 나오면 화가 나서 견디겠습니까?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불러 작정하고 귀하게 밀고 가십니다. 내가 발 빼고 도망 가버리면 다 된 밥 어찌 됩니다. 복된 길 복되게 걸어가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믿는 사람은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 복의 근원입니다. 복은 받아놨습니다. 내가 왜 복인지 그건 생각하여 보면 압니다. 한 주간 생각해 봅시다. 근데 복된 자리인 줄 모르고 피해버리면 나가버리면, 쏟아지는 복이 남의 것 되고 내 손에는 오는 것이 없습니다. 나 복 받은 거 없네. 고함지르지 마시고 복된 자리를 내가 언제 피했나. 돌아보시고 복된 자리로 돌아오십시다.
(기도)
구약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가져 오늘까지 육체의 세상에 저렇게 큰 복을 받고 번창하듯, 우리는 신령한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받았으니, 우리 믿음 우리의 신령한 우리의 영원한 세계는, 오늘 이 땅위에 유대인처럼 하늘나라에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인데, 그날을 준비하는 오늘 하루 세상에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말씀 생활 우리의 순종 생활 흔들리고 빼앗기게 되면, 영원 영생을 전부 손해 보는 줄 아는 지식을 바로 가져, 잠깐 세상 어떤 과정을 거치든 말씀으로 순종하는 길은 혈혈단신 외로움의 시작이나, 우리가 어리고 우리가 부족하므로 우리를 외롭게 그냥 두지 않으시고 때를 따라 위로하시며, 때가 되면 영광스럽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도록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니, 존귀하게 불러 존귀한 자 된 저희들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스스로 존귀한 자기 자리 복된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이아침도 병원 입원 중인 종들이나 해외 또는 곳곳에 두신 주의 자녀들 특별히 추운데 군 복무 중인 아들들에게, 또는 위험한 곳 또는 너무 좋아 방심하는 자녀들에게까지 두루두루 살펴, 이 땅 위에 두신 위치가 어떠하든 신앙의 저희들은 복되며 존귀한 자신임을 자꾸 생각함으로 감사가 넘치고, 이 감사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에 찬송하는 저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소은이가 다음 주간? 이름이 소은이죠? 소은이 몰라요? 한 달.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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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2.26주전 사51:3 예장총공 신풍교회
■ 믿는 사람은
1. 말씀으로 살면 세상에 고난
세상 (전부)와 마찰
주변 (환경)에 마찰
자기 (마음)도 불편
사49장 (순종) 결과
* 요일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2. 말씀 떠나면 하나님께 고난
(신령)한 복을 끊고
(진리)의 혜택 차단
주님의 (은혜) 중단
사51장 (회개) 결과
* 호2:6, 내가 (가시)로 그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 고난과 연단이 지나가면
1. 말씀 떠난 생활
황폐 : 있는 것 (없어)지고
광야 : 생명이 (살) 수 없고
사막 : 사망의 (음침)한 곳
* 암8:11-12
주 Y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Y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Y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2. 주님의 은혜 역사
위로 : (깨닫)고 감사하게 만들고
에덴 : 하늘의 (시작), 모든 준비
여호와의 동산 : (하나님)의 세계
* 신28:12, Y께서 너를 위하여 h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손으로하는 R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꾸지 아니할것이요
■ 말씀으로 세상을 살면
1. 기뻐함
교차하는 (순간)
(비교)가 되면서
솟아나는 (감탄)
*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2. 즐거움
알고 (느끼)면서
(이어) 가게하며
기쁨을 (누리)는
*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감사함
(존귀)하게 불러
베푸신 (은혜)로
(만족)하고 사니
*사49:5, 나는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자라 나의하나님이 나의힘이 되셨도다
4. 창화함
밖으로 (터치)며
(찬송)이 나오고
(영원)히 이어짐* 시150, 할렐루야, (찬양)할찌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