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3.2.24 사51:1 말씀대로 사는 의의 길, 전능의 책임과 존귀의 소망, 그 뜻을 믿고 흔들리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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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3.2.24 사51:1 말씀대로 사는 의의 길, 전능의 책임과 존귀의 소망, 그 뜻을 믿고 흔들리지 않으면

관리1 0 66 2023.02.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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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4 금밤

제목 :  말씀대로 사는 의의 길, 전능의 책임과 존귀의 소망, 그 뜻을 믿고 흔들리지 않으면

찬송 : 7장(만 입이 내게 있으면)

본문 : 이사야 51장 1절 -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 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존귀하게 만들어 영원불변 존귀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목적도 예정도 영원 미래도 확정이 되어 있는데, 길러가는 과정에 굴곡을 주사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 더 부족함이 없게 만드는 이 과정의 한 토막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존귀한 우리를 비천한 세상에 버려두고 또는 존귀한 영원 전과 영원 후를 잊어버리고, 현실에 피동 되며 급급하게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저희들인데, 세월 속에 알아보게 되어 있으나 당장이 문제니 이 밤도 함께 모여, 열어주시는 주의 은혜로 영원전과 영원 후 뿐이 아니라 오늘의 걸음걸음이, 하늘을 마음껏 열고 하늘을 마음대로 다 가지며 이 땅 위에 모든 것을 하늘을 향해 쌓아두는, 변치 않는 길 감사한 길 확신의 확신이 더해지는 믿음으로 사는 저희들 되도록, 어려도 연로한 종들에게도 세상이 바쁘고 잘 될지라도 또는 세상에 막힌 일이 많을지라도, 자기 주관인 줄 알아 말씀 앞에 예배 앞에 주의 은혜 인하여 다 해결할 수 있도록, 성령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때 배우게 하시고 이미 가르친 것 생각나게 하실 때, 순종함으로 잘 따라가는 복된 이 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만사 구할 것 많사오나 긍휼만을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의를 좇아 따라가거라. 좇다 따라가다 순종한다. 앞에서 지도하는 사람이 든든하게 걸어갈 때 뒤에 딱 따라 붙어 가면 안전하지 않습니까. 근데 앞에 든든하게 가던 사람이 휘청하면 뒤에 따르는 사람도 피해를 입습니다. 의를 좇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놓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가거라. 말씀은 전지요 전능이라 절대의 능력이 있으니 말씀 앞세워 놓고 뒤따르면 이거 좋은 겁니다. 복도 되고 생명이며 불변이며 뭐든 좋은 것은 여기에 다 쏟아도, 이건 표현이 모자라지 그 이상이 없습니다. 의를 좇으라. 지난 수요일 저녁 예배 의는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말씀대로 사는 거. 말씀대로 살면 말씀이 책임을 지겠지. 흔들리면 잡아주는 길은 없습니다. 뭐 기계야 본인이 원하던 원치 않던 주인이 돌려버리면 되지만, 우리는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니 안심하고 뒤를 따라가라 하는데, 그런지 안 그런지 이런지 저런지 어찌 아냐 그러고 앉았으면, 말씀이 문제라 그런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먹고 흔들리는 이 사람을 더 이상 잡아줄 수가 없어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가 생길 때 그 말씀 뒤따라가 봐도 별거 없네. 라고 합니다. 말씀이 별 것 없습니까. 말씀을 별 것 없다고 흔들린 본인이 문제입니까? ktx 기차는 뭐 한 두 시간 얼마면 서울까지 그냥 거침없이 달려가는데, 기차 안에 타가지고 이거 타고 지각 하는 거 아니냐. 걸어가는 게 빠르지 않냐. 지리산은 그냥 등산으로 넘어가는 게 빠르지 않냐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기차역에 설 때 옆으로 빠져나가 놓고 나중에 서울까지 지각했네. 구시렁구시렁 하면 이 사람아 기차에 타면 갈 건데 중간에 내렸으니 어떻게 하냐. ktx가 너 따라서 지리산 넘어갈 거냐. 수영을 할 거냐. ktx에 교통 정확성 안전성도 믿고 모두들 타면서 세상에. 말씀이 이거는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다. 네가 어려 모르고 네 계산이 잘못돼가지고 그런 거다 이것도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나의 의심 나의 생각 나의 판단은 틀림이 없고 네가 틀렸다고 자꾸 그래 싸면, 그때마다 말씀이 휘청휘청하면 그게 말씀이겠습니까? 고무줄이지.

저울에 달아서 물건을 사고 팔 때 다 옛날 장사는 저울을 속여서 장사를 하는데, 1kg를 사면서 1kg 추를 달아야 되는데, 물건 살 때는 1kg 추에다 대고 한 10kg를 얹어 가지고 열 배 깎아버리고, 또 자기 거 팔 때는 뭐 소에다 대고 물을 먹이고 생선 속에 납을 넣어가지고 무게를 무겁게 만들고, 이렇게 잣대를 기준을 휘청휘청 휘청하는데 인간이야 너나 나나 전부가 그렇지만은, 절대 정확무오 한 말씀이 내 마음이 출렁거릴 때마다 같이 출렁거리면 그건 말씀이 아닙니다. 절에 염불이지. 한 나라라도 바로 가려면 다른 거는 다 별의별 것이 있어도 법은 딱 법대로 세워놔야 됩니다. 내가 정권 잡으면 법을 이렇게 휙 돌려 버리고 또 정권이 바뀌면 법을 또 저렇게 휙 돌려 버리고. 법을 농창 농창하게 해놓으니까 미운 녀석한테는 센 걸 갖다 대서 전부 쳐버리고, 예쁜 거한테는 복만 소복하게 주고, 세상이 이렇게 모두들 휘청거리다가 여기에 익어져 있는 내 마음이 말씀도 휘 잡으려 그러니, 내 마음에 이게 복이다 저게 안 좋은 거다 그러는데 말씀이 따라 댕기면 그게 말씀입니까? 중도 말이 자주 바뀌면 장사가 안 될 건데 무당굿을 해도 손님에 따라 자주 바뀌면 장사가 안 될 건데 뭔가 하나의 잣대가 있어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해 아래 타락한 세상은 일관이 없고 영원불변이 아예 없습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착각이지. 하나님 없는 세상은 약육강식이라 세면 먹는 거고 약하면 먹히는 겁니다. 뭐 별 소리다 해봐야 그런 거 필요 없고. 하나님의 세계는 말씀이 없는 가운데 다 만들고 말씀이 그대로 직진해서 영원무궁토록 갑니다. 따라 오려면 오고 말라면 말고. 말씀 따라 말씀으로 사는 것이 의입니다.

수요일 밤에 말씀은 말씀 속에 뭐가 있다고 그랬던가요? 여학생들. 뜻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모든 말은 말 속에 뜻이 있는 겁니다. 말해도 맞고 뜻도 맞고 두 개를 함께 맞춰야 됩니다. 둘 중에 하나 떼 내버리면 안 됩니다. 뜨거운 국을 주는데 그릇을 깨버리면 국이 담기지를 못합니다. 또 그릇은 가져갔는데 여기에 뜨거운 국을 못 담으면 빈 그릇 그거 먹겠습니까? 그릇도 있고 음식도 있고 몸도 있고 몸속에 마음도 있고, 교회도 있고 교회 속에 교회다운 신앙도 들어 있어야 되고. 신앙이면 전부지 뭐 예배당 껍데기 그거 뭐 하려고?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유혹 그런 말 듣지 말아라. 그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라. 그래서 불편해도 오는 게 더 낫습니다. 이렇게까지 해놨는데 모여서 건물에 모여서 그건 필요 없다 그냥 마음이 전부지. 그럼 성경을 고치든지. 교회도 필요하고 교회 예배당 안에 신앙도 담아야 됩니다. 둘 다 있어야 됩니다. 천주교는 예배당은 예술 작품입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신앙은 한 천오백 년 전에 다 볶아 먹고 없습니다. 또 예배당에 꼭 가야 되냐 마음이 중요하지. 그 인간들은 그릇 없이 음식물을 전부 다 땅에 엎은 사람들입니다. 말은 그럴 것 같은데 그거는 되지 않는 겁니다. 몸 빼버리고 마음만 가지고 다니는 사람 보셨습니까? 또 몸만 건강하면 뭐 마음이야 등신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사람 보셨습니까? 몸이 있고 마음을 담아야 되듯이 교회가 있고 그 속에 신앙을 담아야 되듯이 그릇이 있고 음식을 담아야 되듯이, 겉은 말씀. 이서진 겉은 말씀 속은 뭐라고요? 김도윤 겉은 말씀 속에는 뭐가 들어가야 된다고요? 저 뒤에 성찬이 형한테 물어봐요. 뒤에 돌아서서 물어봐요. 밖에는 말씀, 말씀 속에는 뭔지. 성찬이 좀 가르쳐줘요. 뜻이 들어가는 겁니다. 겉은 말씀 속은 뜻 아 이런 뜻이구나. 말을 들을 때 아 이런 뜻이구나. 뜻만 빼서도 안 되고 말만 빼서도 안 되고 두 개를 잘 붙들면 좋은 겁니다.

그런 교단을 공회라 그럽니다. 보통 좋은 게 아닌데 참 좋은 겁니다. 그릇 속의 말씀을 잘 붙들어라 말씀 속에 주의 뜻을 잘 붙들어라 “의를 좇으며” 성경에 기록된 게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딱 걸어가며 이 말씀이 나한테는 무슨 뜻일까. 그 뒤만 따라가면. 전쟁에 좋은 탱크 가는데 군인 하나가 뒤에 딱 숨어서 졸졸 졸 졸 따라가면 뭐 그냥, 그냥 놀깁니다. 오는 폭탄 탱크가 맞고 다 튕겨버리고 앞에 적은 탱크가 다 깔아버리고, 그냥 어디든지 탱크 가는 뒤만 졸졸 졸 졸 따라가면 그거 좋은 겁니다. 우리나라에 세상에 제일 유명한 장군이 누구였나요. 그런 장군 앞에 걸어가는데 그 뒤에 졸졸 졸 졸 따라가면 이거야 뭔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투자 제일 잘하는 사람이 딱딱 정보를 가지고 자금을 가지고 주식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돈을 버는데, 그 사람이 조카 하나 불러다가 너 나 따라 하면 돈 번다고 그러면, 그 사람 뒤에 딱 따라가면서 돈 줍는 거야 그거 뭐 다 뭐 주워 담는 거지요. 합격도 그렇고 권력도 그렇고 돈벌이도 그렇고 주먹도 그렇고 전쟁도 그렇고, 오늘 이 밤에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을 우리 앞에 툭 던져놓고, 이 말씀 성경에 있으니 그냥 읽으면서 아는 대로 따라만 가거라. 책임은 말씀이 진다. 그 말씀은 누구 말씀인가.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이 전능이니 말씀도 전능이겠지. 너는 왔다 갔다 두 마음을 품고 휘청해도 천하는 다 그래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으니 안심하고 뒤 따라가거라. 말씀을 뒤따라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1번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닐까. 내가 잘못 읽어놓고 이게 말씀인 줄 알고 열심히 가는 사람은 자기 고쳐야 됩니다. 말씀이 내가 읽은 말씀이 바른 건가 말씀 하나 챙겨 보고 말씀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 말씀이 틀림이 없으면 따라간다는 내가 과연 따라간 것이 맞느냐. 이 말씀이 틀림없고 뒤따라가는 내가 틀림없고 둘만 맞추면 그다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저절로 다 해결이 되어 집니다.

“의를 좇으며” 말씀과 말씀 속에 있는 뜻 둘을 잘 살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주일 학생한테는 주일 학생 정도만 요구하시지 그 이상 요구 안 합니다. 걸어가면 약속과 계약에 하나님이 책임지니 든든하게 직진 하거라. 그러고 나서 그 이전을 말합니다. 너희들은 원래 반석에서 떠내듯이 깊은 구덩이에서 퍼 올리듯이 너 하나 세상에서 떼 내서 교회 앉히느라고, 또 이 죄악 구덩이 속에 정신도 없는 걸 이걸 끌어다가 겨우 여기 앉히느라고 하나님이 참 많은 역사했고 많은 것을 움직였다. 굉장한 겁니다. 한 아이가 초등학교를 간다면 한 학생이 대학을 간다면 한 청년이 결혼을 한다면, 그 사람은 꿈에도 못 꿀 그거 뱃속에서 갖느라고 고생 어릴 때 뭐 그냥 이리 될까 저리 될까 애 먹은 그 세월, 세월, 그 부모와 그 할머니는 지켜보며 아이고 저게 사람 돼서 이제 뭐 결혼을 한다. 대학을 간다. 아니 저게 이제 초등학교 입학식이라고 간다. 저는 그냥 멋모르고 가지만은 이 아이 뒤 꼭지를 보는 사람은, 저 어릴 때 이랬는데 그때 그냥 잃을 뻔했는데 영 못쓰고 그냥 그리 될 줄 알았는데 많은 사연이 있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의 한 사람의 생애가 하나의 역사인데 믿는 사람은 만유 주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딱 계산해놓고, 천지를 만들고 운영해서 한 걸음 걸음 또박또박 걸어가게 하시는데, 안 믿던 걸 믿게 하고 믿는 중에 별별 길이 많은데 이 길에 걸어갈 수 있도록 특히 이 밤에도. 이런 좋은 날 학기 시작하기 전 마지막 전부들 정신없이 흩어질 때, 금요일인데도 7시 예배드린다고 이만큼 모여 있으면 이 걸음 우리는 그냥 쉽게 온 것 같아도, 반석에서 떠낸 것처럼 깊이 파인 우묵한 구덩이에서 파낸 것처럼 그렇습니다. 우리 한 사람,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한 장 앞에 넘겨서 이사야 49장 5절 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시작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기억하십니까?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여섯 번째 요절이었습니다.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다. 만유 주 하나님이 날 쳐다보면서 그 예쁜 것 그 정도가 아니라 예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존귀하다. 존귀하다 임금님의 외동아들은 예쁘다고 갖다가 선발해 놓은 거 아닙니다. 임금님의 외동아들이라 왕이 될 세자는, 달리기 시켜서 1등한 거 선발 해다가 놓은 게 아닙니다. 이건 왕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이거는 대체를 못합니다. 그래서 귀하다 그럽니다. 참 귀하다. 그래봐야 약소국 왕의 아들이야 쥐 박힙니다마는 만유 주 하나님이 믿는 우리를 딱 쳐다보면서, 그거 참 존귀하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데 누가 뭔 소리를 할 겁니까. 잔소리 하는 걸 다 박아버려야 되지. 그냥 쥐 박아 버려야 되지. 그런데 옆에서는 멋모르니까 네 까짓 게 그러는데, 나야 내 마음속에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존귀한 아들인데, 하나님이 나를 존귀하다 했으니 이게 흔들릴 일은 없어야 되는데, 이걸 흔들어 놓는 것은 내 마음속에 귀신이 슬쩍 들어 와가지고 너 월급 얼마야? 너 학교 출신이 어디야? 너 키 얼마야? 너 시력이 얼마야? 너 달리기 몇 초야? 그까짓 걸 가지고 존귀하다 그래? 그걸로 존귀하다고 그랬습니까? 뭐 세자가 뭐 달리기 자리에서 세자 됐습니까? 세자가 뭐 외국어 학원 가가지고 영어가 유창해서 세자 된 겁니까? 왕에 아들이니까 세자지. 이건 다른 걸로 못 바꿉니다.

만유 주 하나님이 나는 너밖에 없다. 이러시는데 그게 바로 난데, 이사야 49장 5절에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세자의 힘은 왕입니다. 세자보다 달리기 잘한다고 세자를 놀리면 왕의 칼이 그냥 목을 딱 쳐버립니다. 이놈의 자식이 그냥 이렇게. 세자 앞에 칼싸움은 내가 잘한다. 칼 휘두르면 왕이 그냥 군사를 몇 만 명 불러다가 그냥 저놈 씨를 갖다가 말라버리라 이래 됩니다. 세자의 힘은 왕이 세자의 힘입니다. 재벌 회장님의 힘은 아버지가 물려준 상속 재산이 힘입니다. 굉장하지요?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이거 센 겁니다. 그런데 이 힘으로 휘둘러 버리면 천하도 죄악도 자기중심도 악령도 손을 못 대니까, 존귀한 하나님이 존귀한 나를 존귀하게 불러 존귀하다 해놨는데 이게 알아차리고 하나님이 나의 힘입니다. 그러고 앉았으면 세상도 죄악도 악령도 손을 못 대니까, 악령이 이런 사람 마음속에 쏙 가가지고 너 월급 얼마야? 너 토익 점수 얼마야? 너 인물이 어때? 피부가 어때? 이걸로 물어보거든요. 야 인간아 하나님이 존귀하다고 하는데 뭔 놈은 키를 따지고 뭔 어학 점수를 따지고 그래. 하나님 아버지 닮은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 대상인데 이것만 붙들고 앉았으면 되는데, 점수도 그렇고 벌이도 그렇고 하기야 내가 중간 가기도 어려운데, 이래가지고 울고 엎어져버리면 이건 하나님도 살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럴 때 좀 가르쳐 주셔서 힘을 주시면 안 되느냐. 부모가 다 해주면 부모 것이지 제 것이 되지를 아니합니다.

컴퓨터나 인형이나 기계는 주인이 만들면 고장 없이 잘 돌아갑니다. 이건 아무리 좋아도 늘 기계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은 등신만도 못한데 이게 아장아장 그러다가 다섯 살 되고 10살 되면 뭐 그냥 모두들 예뻐서 정신도 없지요. 10살 넘으면 모르겠습니다. 한 5살까지는 아마 우주 몇 개를 줘도 다 안 바꿔줄걸요.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하고 우주하고 바꿔주겠습니까? 이렇게 귀한 걸 한 몇 개씩 가지라 그래도 건 옆집 주시라고 그냥 옆집 주시라고, 전 그런 거 필요 없다. 뭐 그 정도 세상이 됐으니까 망할 세상은 망할 세상입니다. 아무리 봐도 천하보다 귀한데 그걸 위해서 부모가 생을 다 바치는데, 이런 거 필요 없다고 그래가지고 우리나라 부부가 100쌍이면 4분의 1은 평생에 애 안 낳고 살아버린답니다. 그 어느 짝에 필요 있어 이렇게. 이런 세상 옆에서 뒤흔든다고 따라가면 같은 등신이 되는 거지. 니들은 안 낳게 해라 난 낳게 하련다. 이리 되면 뭐 그냥 횡재하겠지. 하나님 아버지가 늘 존귀하다 보시는데 이걸 놓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힘이 돼 버리는데, 이거 귀신이 어떻게 이깁니까. 귀신이 쏙 와가지고 달리기 100m 몇 초야? 아파트 몇 평이야? 몇 평 아파트 몇 채야? 별 거 없네. 이렇게 흔들릴 때 휘청해버리면 내가 내 속에 존귀한 걸 떼다가 귀신한테 넙적 던져 먹도록 줘버리는 겁니다. 자기 보배를 던져주면 하나님도 그래 알았다 하고 그냥 말아버리십니다. 우리를 기르는 방법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사야 49장 5절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49장에 이런 말씀을 주시고 51장에 “의를 좇으며” 하나님이 존귀하다 한 믿는 사람들만 말씀과 말씀 속에 있는 뜻을 따라갈 수가 있고, 안 믿는 사람은 이 성경을 다 외워도 이 말씀대로 못 따라갑니다. 따라가 봐야 쳐주지를 않습니다. 따라가 봐야.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잘 들어 보거라. 존귀한 너를 존귀한 너를 존귀하게 만들려고 주님이 성경 말씀을 기록해 주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떠나면서 이 말씀 잘 졸졸 따르면 그게 주님 따르는 거다. 말씀을 따르며 말씀 속에 뜻을 잘 살피며 순종하거라. 내 계명은 그게 계명이라는 말입니다.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 이니라” 다 같이 요한복음 몇 장 몇 절이요? 15장 12절 “내 계명은 곧 이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그 몸 그 피 다 바쳐 날 살렸으니 그것만 생각하면 신앙의 양식이 돼야 되고, 이런 주님 속에 살고 그 주님의 말씀으로 살면 주님과 내가 한 편이 되었으니, 주님 날 위해 고난 당하셨으니 나도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서 한번 시작해보자. 용감하게 그냥 걸어가시면 됩니다. 이런 사람이 존귀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영원 전 하나님이 완전 자 하나님을 딱 본받은 이런 우리를 만들었고, 어리게 만들어 놓고 이게 자라가는 과정을 이 땅 위에 주셨는데, 곧 자라가는 방법이 말씀을 따라가면 저절로 그리되어집니다. 말씀과 말씀 속에 있는 뜻을 따라 차분하게 걸어가면 따라가면 의를 쫓으면, 여호와 계약 약속의 하나님이 틀림없이 그 사람 걸음걸음을 완전하신 하나님을 닮아, 말투도 좀 자꾸 나아지고 눈빛도 나아지고 마음씨도 나아지고 습관도 좀 바꿔가고, 가족 관계도 좀 나아져 가고 뭐 교회 교인의 신앙생활 자꾸 나아져야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성경 읽는 것도 갈수록 더 많이 읽고 속에 뜻도 자꾸 좀 머릿속에 들어오고 밝아지고, 기도도 눈 감으면 주시라주시라 주시라 기도하다가 이제 기도도 눈 감으면, 주님 이런 현실을 왜 주셨습니까. 라고 주님께 물어도 그러다 보니까 주님이 마음을 열어주시면 아 참 이렇구나. 듣기도 하고. 이게 의를 좇아 점점 점 점 존귀한 자가 점점 더 존귀하게 따라가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만들려고 반석에서 돌을 떠내오듯 물 없는 이스라엘의 그 망망 사막에 깊은 구덩이에 물 하나 떠오듯, 귀하게 어렵게 하나하나 불러서 한민족 믿게 하고, 그 민족 중에 버티는 저지방도 믿게 하고 그 지방 다 다녀도 그냥 끝까지 버티는 어느 한 집의 누구 하나도 또 다시 끌어다가 앉히고, 저도 여기 계시는 분 한 분도 빠지지 않고 어떤 분들은 내가 그냥 놀기 삼아 나왔다 난 원래 믿고 싶었다. 이런 거는 우리끼리는 별별 소리해도 그 뒤의 내막을 보면, 그거 하나 불러내려고 하나님이 참 많은 노력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전도하는 분들은 그리 말합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불러서 예배당에 앉힌다고, 교회 모시고 싶은 사람 천 명을 상대로 평생을 애를 쓰는데 겨우 하나 오더라. 1만 명 중에 하나 천 명 중에 하나 그래서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는 것이 전도해 본 사람들은 다 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 집안의 첫 전도가 어떻게 되었던가. 천에 하나 만에 하나가 된 겁니다. 그 집안 전체 중에 내 하나가 나 하나가 교회를 따라 나가게 된 것도 천에 하나 만에 하나입니다. 근데 예배당은 나왔으나 멍하고 왔다 갔다 그럴 수 있는데 어느 날 내 마음이 열렸다면 이거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하나님이 반석에서 떠내듯이 우묵한, 우묵한 깊은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물 없는 이스라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살아간 생애를 보면, 땅 파서 샘물 하나 나오면 이게 한 기업이 될 만큼 그렇게 이스라엘 나라는 물이 귀한데, 우묵한 구덩이 어떻게 거기에서 물 한 모금 물 한 바가지 떠낸 겁니다. 존귀한 우리인데 귀하게 길러 가시려고 말씀에 의를 주시며 따르라 그러셨는데, 이 길을 따라가는 우리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귀하고귀하고 귀한 하나인데, 본인만 몰라서 모두들 그러니 애타는 세상입니다.

우리나라 애국주의 잘하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은 머리가 좋고 부지런해서 세계에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 진짜인 줄 알고 또 떠들고 앉았습니다. 이 가짜배기들. 전부 유행 따라 어디 갈 인간들. 이 머리 이 부지런한 거야 조상 때부터 있었는데 5천 년 조상들 세끼 밥 먹고 산 적이 있습니까? 한반도 5천 년에 먹고 산 적이 있습니까? 택도 없는데. 저 초등학교 댕길 때도 쌀밥 싸오는 애들이 없었습니다. 보리밥 섞어 먹었지. 제가 중학교 들어가니까 그때부터 이제 쌀밥이 도시락에 돌기 시작했습니다. 쌀밥을 마음대로 먹은 게 70년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 나왔을 때 어떤 인간은 한민족은 쌀의 민족이다 그럽니다. 야 인간아 쌀의 민족이라니? 거짓말도 부자의 쌀이었지. 일반 서민은 쌀 구경도 못했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 다 알지 않습니까. 또 그런 말에 쌀이 우리 민족의 혼을 담았는데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하면 또 온통 온 나라 난리 통을 부리고 5천만 명 중에 한 4천여 명이 휘청하고 앉았으니까 참 값을 합니다. 값을 해. 육두문자 욕을 했으면 싶은데.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하나님께서 귀한 복음 주시려고 세계 역사의 제일 마지막에 믿게 만드시고 하나하나 불러 귀하게 갖다 놓으시며, 또 우리들 믿을 때 불편 없도록 하려고 가난한 나라 잘 먹고 잘 살고, 마음껏 믿어도 먹고 살 걱정 없도록 만들어 주시느라고 하나님께서 세계를 마구 그냥 뒤흔들어서 이렇게 만들어 놨더니마는, 우리 민족은 부지런해서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헛소리 하는 인간들. 헛소리 하는 인간들.

제 나이 위에는 기억하실 건데 먹던 것도 좋고 씹던 것도 좋습니다. 그러고 미군들 따라다녔습니다. 미군들 씹던 껌을 퉤하면 그거 하나 서로 더 씹어보려고 박이 깨졌습니다. 그 나라에서 옥수수 줘서 먹고 산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런 나라 된 겁니다. 누구한테 고마운 줄도 모르고 부모 고생해서 애 길러놓으면 제 부모한테, 아니 아파트 50평밖에 못 샀습니까? 다섯 채나 사지. 애들 그래 기르면 안 됩니다. 부모가 애들을 그리 길러도 학생들은 자기를 그런 못된 놈을 만들면 안 됩니다. 하나님 보실 때 존귀한자인데. 의를 쫓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잘 들어봐라 너희를 떠낸 반석, 너 하나 데려 나오려고 그 어마어마한 애굽나라를 뒤흔들고 거기에서 떠내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아이 뭐 그때 한 200여만 명 많았는데 뭐 나도 기억하셨습니까? 200만 명 중에 너는 하나지만 하나님 앞에는 하나하나가 전부 하나밖에 없는 하나다. 너는 열 명이 있으면 열 명의 하나고 천 명이 있으면 천 명의 하나인 줄 아는데, 하나님은 200만 명을 구원해도 한 명 한 명 따로따로 그 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전력을 다했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절위해서 조금 옆집 위해서 조금 이렇게 나눠 고생 안 했습니다. 저 하나 구원하는데 주님 다 바쳤습니다. 옆 사람 하나 구원하는데 또 주님은 당신을 다 바쳤습니다. 그래서 일반 인간은 죄가 없어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밖에 구원 못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인데 우리 전부를 구원한 것은, 예수님은 한 명인데 뒤에 붙어 있는 하나님이 무한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주님을 붙들고 한 명 한 명을 위해서 하나님 전부를 다 쏟았습니다. 보통 값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굉장한데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은 조상이라고 그랬습니다. 신앙의 출발이라는 뜻입니다.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과 사라 둘을 말해놓고 다시 말하면서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혼자 출발했다고 그랬습니다. 사라는 어디 갔지요? 아브라함 사라 둘을 합해야 아브라함 하나입니다. 아브라함 사라에 따라온 롯까지 합해야 교회의 단일성 하나입니다. 신앙은 단일입니다. 신앙은 동시에 하나입니다. 온 교인이 다 성자되어도 나 하나 죄 지으면 나는 죄인으로 따로 떼나버립니다. 온 교인이 전부 죄를 지어도 나 하나 의를 붙들고 따라가면, 나 하나는 죄인들 많다고 거기에 휩쓸리도록 두지 않으십니다. 전체 구원은 단일성이면서 나 하나의 신앙은 개별성입니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 혼자 있을 때 주님이 불렀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고 그리고 아브라함은 창성했습니다. 아브라함 죽을 때까지 가나안도 못 받았는데 뭔 그런 창성인가? 아들이삭 하나인데? 손주 야곱 하나인데? 네 눈에는 그리 보이는데 시작과 끝이며 영원전과 영원후가 같은 시공을 초월한 주님 눈으로 보니, 아브라함 하나를 딱 보니까 아브라함 밑에 열두 지파가 보이고 열두 지파 안에는 영원무궁 하나님의 백성이 한꺼번에 다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시공을 초월하여 한몫에 보입니다. 인간의 눈이 어두워 하나 보고 하나라고 그랬지. 하나님 눈에는 아브라함 하나를 보는 순간 영원무궁 천국의 모든 택한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적어 놓으셨습니다.

아이들을 몇 십 년 가르쳐 본 교사들은 초등학교 1학년 오는 아이 한 시간만 딱 지켜봐 보면 저놈 공부하겠다. 저놈 벌 짓하고 공부는 안 하겠다. 이렇게 보인답니다. 저는 중학교 한 1학년쯤 보면 학교 일찍 말아버려야 너도 좋고 부모도 좋고 서로가 좋겠다. 넌 누가 뭐래도 끝까지 공부하면 공부의 혜택이 있겠다. 이래 좀 어느 정도 보입니다. 그런 거 있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 하나를 딱 보며 아브라함 밑에 12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뿐이 아니라, 오늘까지 믿는 택자 전부가 한꺼번에 다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하나를 볼 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영원한 천국의 택한 백성 전부가 다 보이는데 이 전부에 출발로 아브라함 하나를 딱 찍어놨으니, 아브라함은 하나인데 그 속에 모든 천국의 백성이 다 들어앉았으니 이 아브라함이 보통 아브라함입니까. 복 없는 사람은 뭐 100세에 아들 하나 낳아가지고 뭐, 마지막까지 그냥 이삭 하나 쳐다보다가 가버렸고, 이 이삭은 그냥 쌍둥이인데 하나 버렸고 하나 붙들고, 그냥 대가 끊어지려다가 이어지고 끊어지려다가 이어지고, 한 70명 돼가지고 좀 숫자가 붙나 했더니마는 애굽에 가가지고 400년 종살이 했으니, 다 죽지 않았나? 벌써 죽었을 건데? 바로가 어떤 사람인데 하매 죽었을 건데? 네 생각은 그런데 돌려 나올 때 보니까 애굽이 위협을 느꼈고 그리고 출애굽 한 이후에 애굽은 역사의 강대국에서 탈락해버립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다고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도 좀 배포가 그 정도가 돼야 이게 짝이 맞는데, 짝이 맞는데 참 이 짝이 맞아야 되는데.

여기 계시는 분 친척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의대를 갔는데 아들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고 가가지고 저 공장에 가가지고 월급을 받아오니까, 야 이놈아 네 친구 공부도 못하는 놈은 벌써 이번에 월급 얼마 받아왔더라. 너는 아직도 돈 타가냐. 의대 간 아들은 지금 좀 있으면 돈을 산더미처럼 가지고 올 건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까, 공고 졸업하고 월급 받아 오는 옆집 아들이 부럽고 의대 가서 그냥 밑도 없고 끝도 없이 공부하는 아들이 불쌍하고, 부모의 품위와 부모의 수준이 이리 되면 참 뭐 안 맞는 겁니다. 그 옆집 그놈 10년 돈 벌어봐야 아파트 한 채 사겠지. 넌 10년 투자하면 그때부터는 1년에 아파트 한 채씩 사겠지. 돈이 지겹겠지 아무 소리 말고 밀어붙여라 내가 빚을 내도 밀어줄게. 이제 부모와 공부하는 아들이 이렇게 도둑놈도 짝이 맞아야 되는데, 척척 좀 맞아야 뭐가 되겠지요. 우리는 하나님과 짝입니다. 못났는데 하나님의 짝입니다. 아이 낳아 놓으면 말을 할 줄 압니까. 뭔 일을 합니까. 근데 엄마는 그것만 쳐다보지 않습니까. 부모와 아이는 눈을 마주치며 자기들끼리는 한 편입니다. 만유 주 하나님이 눈을 맞추고 나 너밖에 없다. 라는 존재는 믿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지금 주먹이 세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달리기 잘해서 그런 거 아니고 지금 연봉이 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 그런 건 치우고 난 네가 좋다. 난 너에게 말씀으로 너를 만들고 싶다. 넌 그 말씀 믿고 따라오면 좋겠다. 그래서 말씀을 하나 더 알고 더 둘 더 깨닫고 셋 순종하고 난 이것밖에 없다. 너도 이거밖에 없는 사람 되면 좋겠다. 이게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이래야 안심하고 좀 좋은 데로 쭉 끌고 갈 건데

좀 키가 작아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키를 키워주면 복인 줄 알겠습니다. 야 이놈아 키 크면 총알 날아올 때 일찍 맞는다. 등신아 저 정형외과 가봐라 키 크면 전부 4번 5번 디스크에 전부 평생 골병 앓는다. 조선 놈들은 좀 짧달 막해야 이게 총알도 피해가고 도둑질할 때도 잘하고 거지 얻어먹을 때도 빠르고 정형외과 병원도 안 가고 좋다. 뭐 그러나 마나 선보러 보여 놓으면 키가 작아서 전부 안 한다는데 어떡합니까. 그거 안 한다는 여자애들은 전부 다 눈이 삐었으니까 눈 삐진 것들은 사파리니까 사파리는 사파리들하고 살도록 놔두고, 넌 좀 정신 차리고 똑똑히 봐라 인간 평가가 뭐에 있느냐. 설교 끝나고 나면 막 키 작은 분들이 전화가 와가지고 육두문자 욕을 또 많이 하게 생겼겠습니다. 키가 좀 작다 그러지 뭐 짧달 막하다 그러고. 머릿속에 좀 강의가 팍팍 들어가도록 하려다 보니까 강조를 좀 하긴 합니다마는, 좀 서로 알아들으시고 그러시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 하나님이 말씀을 주고 말씀 속에 뜻을 내어놓고 너희를 인도하는 이것이, 존귀한 자의 복된 천국을 마음껏 채우는 하나밖에 없는 길이다. 마음 흔들리지 말아라. 여기에 생각이나 사상이나 욕심이나 그 무엇이 흔들어도 흔드는 것들은 전부 다 귀신이다. 세상이다. 세 번째 죄악이다. 흔들려서 휘청하면 그때는 너의 선택이니까 알아서 하거라마는, 따라간 그 생각과 그 인생은 다 후회할 거다 그런 겁니다. 애가 공부할 만하니까 부모가 있는 힘껏 밀어주고 이렇게 좀 한 10년 고생하면 괜찮다. 라고 하는데 어디 까지 잡으러 가는 이야기, 어디 저 교과서 찢어가지고 뭐 딱지를 따가지고 뭐 한 배낭을 들고 들어오는 친척도 있었습니다. 급하니까 교과서 찢어가지고 딱지 만들어서 기어코 이만큼 따가지고 막 그냥 좋아서 그냥. 참 이거 어떡할까요. 이게 이제 핀트가 안 맞고 서로 사상이 안 맞고 서로 뜻이 안 맞고 뭐가 통하지 않으면 서로 애를 먹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사야 49장 51장 금 번에 요한복음 그다음 이사야 49장을 중심으로 하나님 아버지 애타는 마음을 제가 잘 전달하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막 이 땅 위에 부자 되라고 이 땅위에 그냥 한 200~300년씩 살라고 난리인데, 신풍교회 목사님은 일찍 가도 된다 큰소리 치고 돈 그까짓 거 뭐 있냐고 엉뚱한 소리에 하고 앉았으면, 제 위에 천벌이 떨어지겠지요. 천하가 세상을 강조해도 넌 천국만 외치 거라. 끝까지 외치 거라. 이게 주님의 정말 소원이라면 제가 지금 전달을 잘 하고 있는 걸 겁니다. 알아주면 감사하고 몰라주면 할 수가 없고. 한 사람 사람 하나님이 큰 반석에서 하나 떼 내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양반 집에 하나 전도하느라고 주님이 얼마나 구박받고 쥐 박혔는지. 시골의 어느 대갓집에 전도를 가는 데 10년 문전 박대를 당했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보니까 그 집에 예배당이 섰더랍니다. 그 부잣집에서 전도 인을 날 10년 문전 박대할 때 그 사람은 전도하러 오는 사람 야단을 쳤는데 주님이 맨날 야단맞은 겁니다. 모르니까 그러는 거지. 결국 기도하고 결국 노력하니까 복음의 문이 열리더라. 지금은 사람 사람은 거의 다 믿으니까 남 전도도 급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내 마음이 믿고 있는지 아니면 안 믿고 있는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열어젖혀 나는 말씀과 뜻을 따라가는 사람이 맞느냐. 주님은 나를 오늘에 믿는 이 신앙 만들기 위해서 굉장한 수고와 어마어마한 이런 역사가 있었던 것이 정말로 맞느냐. 어떡하다가 태어나고 어떡하다가 뭐 그냥 이래 살았지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다가 그냥 태어났고 어떻게 하다가 그냥 이래 됐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까마귀 고기를 먹어 놓으니까 그렇지, 네가 결혼해서 네가 아이를 낳아서 한번 길러봐라. 아이 하나가 태어나서 스무 살 청년 될 때까지 장애자가 되지 않고 큰다는 거 기적 아니던가요? 애들끼리 놀다가 넘어지면서 머리 다쳐 이리 돼버리고, 초등학교 친구 중에 고무 밴드 가지고 이렇게 이제 새총을 만들어 가지고 형들이 쏘니까, 1학년인가 2학년 되는데 새총을 쏘니까 형 없을 때 새총을 가지고 쏘는데, 이래서 쏘는 게 아니고 거꾸로 가지고 이래서 탕 놔버리니까 새총의 총알이 어디로 갔겠지요? 눈 까만데 정식으로 박혀버렸습니다. 그 평생에 이렇습니다. 형은 공부가 꼴지 동생은 공부가 일등. 학교도 좋게 나오고 세상은 잘 살았는데 평생에 한 쪽이 이렇습니다. 어릴 때 새총을 거꾸로 쏜 겁니다. 부모가 24시간 20년을 데리고 있을 수 있습니까? 새총만 없으면 그러면 다 멀쩡해집니까? 우리 교회 가정별로는 교통사고의 사망사고가 났던지 아니면 사택처럼 이 정도 됐던지 없는 가정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한 아이가 태어나 스무 살까지만 멀쩡하게 컸다면 이거 뭐 아는 사람들은 이거는 기적이다. 미신 믿는 사람은 절에 염불을 하든지 믿는 사람은 교회에 아이들 스무 살 무사할 때는 감사연보는 하나씩 했는가. 모르겠습니다. 안 할지라도. 이 아이가 멀쩡한 것은 이건 기적입니다. 이런 걸 자꾸 알고 깨달을 때 참 귀하게 이렇게 길러주셨는데 이 몸을 잘 아껴야 되겠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주셨는데 잘 써야 되겠다. 뭐든지 이래 되고. 아이 뭐 그거 뭐 멀쩡한 거 그거 다 그리 되는 거 아니야? 까짓 것. 이런 인간한테는 돈을 주던 기회를 주던 뭘 주든 아무리 밀어줘 봐야 가치를 모르면 다 던져버립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존귀하고 존귀하여 한량없이 존귀한 나 하나입니다. 내가 나를 무시하고 던져버리면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존귀한 자로 만들어 존귀하게 길러 가시려 하니 모두 함께 노력하십시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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