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3.2.22 사51:1 말씀과 말씀 안에 담겨진 주의 뜻, 의의 순종 위에 하늘의 총력과 수고, 그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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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3.2.22 사51:1 말씀과 말씀 안에 담겨진 주의 뜻, 의의 순종 위에 하늘의 총력과 수고, 그 책임

관리1 0 96 2023.02.2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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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수밤

제목 : 말씀과 말씀 안에 담겨진 주의 뜻, 의의 순종 위에 하늘의 총력과 수고, 그 책임

찬송 : 192장(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본문 : 이사야 51장 1절 -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의 뜻 주의 말씀 주의 인도를 따르는 우리가 되도록 이 밤도 예배로 모이는 기회를 허락하시고, 70년 넘어가는 평화의 시대를 허락하사 부족한 저들에게, 아낌없이 원 없이 마음껏 하늘을 준비할 수 있는 만사 기회를 주신 주님. 받은 은혜가 크므로 가치를 알지 못하여 지난 3일간도 세상 여러 곳에 흩어 진 우리의 마음과 생활과 모든 걸음걸음, 이 밤도 주님 앞에 모아 우리의 신앙의 계통과 지난날에 주신 은혜를 새김으로. 소돔보다 더한 오늘을 맞서는 귀한 종들이 되도록. 비록 우리는 롯만도 못하나 주신 이 길이 귀하여 롯을 넘어서며 아브라함의 뒤를 따라야 되겠사오니, 곳곳에 두신 우리 모든 교인들 시공을 초월하여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에 연결을 주시고. 천국이 필요 없다 할 만한 지상낙원 속에 외로움과 갈급을 느낌으로 더욱 심령의 애타는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는 저들이 되도록, 어려도 또 연로한 종들에게도 좋은 일이 많아 방심해도, 또 별 어려움도 아닌데 좌절하거나 불안 속에 있는 우리 모든 교인들 두루 살펴, 정신 차리고 가야 할 한 길만 바라보는 저들 되게 해 주옵소서. 군무에 있는 아들들 주변의 모든 바람 속에 본 강단에 가는 이 길을 기억하게 하시고, 또 앞으로 갈 청년들에게도 천하와 세상이 어떻게 흔들어도 자신과 인격을 내 맡기지 않는 사람들 되게 하시고 그 위에 신앙의 종들이 되게 하시며, 7계명으로 극히 혼탁스러운 오늘 결혼과 출산으로 우리는 복된 빛의 길을 걸어가는 복 있는 저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연초 1월부터 8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8주에 요절 하나씩이 이어지면 여덟 절입니다. 반복해서 외우면 올해는 52개의 요절을 모두가 다 외울 수가 있다면, 연세 많은 분들은 치매 예방에 좋을 겁니다. 평생 번 돈을 다 투자해도 치매 피할 수 있다면 요즘은 다 그럴 겁니다. 그런 약물 그런 세상 율동 그런 거보다 매주 성구 하나씩을 반복하며 이어 가면, 또 잊어버려도 또 노력하고 잊어버려도 또 노력하면 그게 병원에서는 재활이라 그럽니다. 우리의 신앙으로는 재독 연습이라 그럽니다. 시편 1편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여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모든 것이 다 복이 되는 거니까 오늘 이사야 49장에서 51장 “의를 좇으며” 쫓으며 그리 되면 쫓아간다는 말이 됩니다. 토끼 잡으러 갈 때 도둑 잡으러 갈 때, 근데 앞에 ‘ㅈ’이 하나입니다. 좇다가 되면 따라가다 순종하다. 라는 말이 됩니다. 그냥 앞뒤 연결시키면 알듯한데 또 예민해서 이런 거 지적이 들어오기 때문에 한번 말씀드립니다. “의를 좇으라” 의가 어디로 가는고. 의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 그 뜻을 따라가는 것을 의라고 그럽니다. 학교 가라 가서 놀다 오라 말 아니죠. 학교 가서 교과서 뜯어가지고 딱지 따먹기 하는 그런 인간들도 있습니다. 멀리 얘기가 아니고 제 주변에도. 개근상 타고 365일을 학교를 다녔는데 교과서 뜯어가지고 딱지 따먹기 하고 학교 가러 해서 갔다 왔는데 뭔 소리냐고, 이렇게 악을 쓰면 저 플래카드 걸고 뜯은 그런 인간 됩니다. “의를 좇으라” 학교를 가라 아 공부하라는 말이구나. 공부는 진뜩하고 돈으로 못 바꾸는 그 공부 말고, 공부해서 세상 살 때 무식해서 짓밟히지 말고 이왕이면 배운 걸로 먹고 사는 데 도움 되면 좋겠다. 이게 부모의 뜻일 겁니다. 그 뜻을 알기 쉽게 학교 가라고 그러는 겁니다. 쉬운 이야기죠.

다음 주간이면 또 군에 청년이 둘이나 가십니까. 예전 어른들은 군에 갔다 와라. 내가 아까 와서 못 두드린 거 군에 가서 실컷 두드려 맞고 사람 되어 오너라. 이걸 딱 줄여서 군대를 갔다. 와야지 그럽니다. 철없다고 말입니다. 근데 아까워서 내가 때리지는 못한다고 말입니다. 남의 자식이니까 때리지 어떻게 내 자식을 갖다가 몽둥이 들고 사람 만들겠습니까. 공회 역사는 백 목사님 같은 분이 장작으로 가지고 부러지도록 아들을 때려서 아들을 만들어지고, 성자 의인 자녀들은 대개가 엉망인데 백 목사님 자녀들은 우리 기준에서는 좀 문제가 있어도, 어느 목사님 어느 목사님 그 가정하고 이렇게 비교해 보면 확실히 낫습니다. 비결은 하나입니다. 한 번씩 장작으로 가지고 다리가 부러지도록 패버립니다. 이제 사람은 되는데 이건 지성과 사랑이 결합을 해야 되는데, 지성과 사랑을 결합한 부모는 잘 없습니다. 계모는 교육은 있는데 지성 사랑이 없어 탈이고, 친모는 사랑은 넘치는데 지성이 사라져버려 아이를 엉망 만듭니다. 이 두 개가 잘 결합되면 좋은 사람 되는 겁니다. 이런 거는 아이 갖기 전에 10대 때 미리 연구하고 지금부터 마음으로 딱 살펴야 뒤에 될까 말까 그럽니다. 봄 동산에 벌 나비처럼 날라 다니다가 털컥 만나서 살면 안 봐도 그냥 낳아놓은 자녀들 다 엉망 만들어 버립니다. 군대 갔다 와라 이놈, 가서 생고생을 하고 두드려 맞아야 인간이 되지. 어렵고 급박하면 사람은 철이 듭니다. 뻔한 겁니다. 이런 걸 표현과 뜻이라 그럽니다. 성경의 말씀은 표현입니다. 이래라 저래라

성경의 말씀을 다 외우고 다 지킨 사람을 성경에 바리새인이라 그럽니다. 성경 전체를 다 외우고 다 지킨 바리새인들이 왜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을 해 버렸느냐. 그 말씀 속에 들어있는 뜻을 몰라 그랬습니다. 앞에 펼쳐놓는 말, 그 말 속에 들어있는 뜻 이게 이해가 안 되면 축복을 했는데 막 와서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욕을 했는데 칭찬해줘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학교 가라. 학교 가서 주먹질로 1등하고 학교 가서 교과서 찢어 가지고 딱지 따먹기 하고, 친구들 돈 훔쳐서 소매치기 연습을 학교 다닐 때 해서 나중에 훌륭한 도둑놈도 되고. 부모가 다 학교를 가라고 말은 똑같은 말을 했는데 그 속에 담아 있는 뜻을 알아차린 사람, 이걸 강조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차이는 결국은 이래 나옵니다. 그리고 자녀 삐뚤어지면 부모 마음이 제일 아픕니다. 당해야 싸지. 자기가 씨를 뿌렸으니까 팥 심으면 팥 나오는 거고 콩 심으면 콩 나오는 거지. 교복 입고 학교 갔는데? 가서 뭘 했는지는 조사도 안 해보고 갔는데? 갔으니까 위대한 사람이 돼야 되지? 철따구니 없는 소리 말과 말 속에 담는 뜻의 차이입니다. 다 아시겠죠. 말과 뜻. 모든 성경의 말씀은 표현입니다. 이 모든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엿새 일하고 주일은 쉬거라. 놀라는 말로 들어버리니 요즘 같은 공휴일 많은 세상에 게으른 것이 더 게을러져 버립니다. 주일은 말씀 공부하고 하나님 뜻 공부하느라고 아무것도 할 시간 없으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주일 하루 종일 신앙 공부하거라. 그래서 세상일은 못하는 거다. 이걸 담아 가지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그러니까 안식일 놀라고 그랬지? 안식 노는 거지? 그래 놀아줄게 나는 안식일을 지켰다. 이게 말장난인 겁니다. 말과 말 속에 들어있는 뜻. 의라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면 말씀대로 하는 걸 의라고 그럽니다. 하나 더 들어 가가지고 말씀으로 살면서 말씀 속에 있는 뜻을 따라 뜻을 맞출 때 의라고 그럽니다. 이사야 51장 1절 “의를 좇으라” 하나님의 말씀 뒤를 따라가거라. 하나님의 말씀이 앞서가면 뒤를 따라가거라. 말씀 뒤 꼭지만 보고 따라가지 말고 저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뜻이 뭔지를 생각하며 그 뜻을 따라가라 하는 말입니다.

“의를 좇으며” 말씀과 말씀 속에 주님 뭘 원하시는 고. 그걸 찾아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라. 다 같이 여호와는 하나님 중에 어떤 하나님이시라고요? 약속의 하나님 강하게 말하면 추정솔 뭐라고 그러지요? 계약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 정솔이 집에는 부모님이 정솔이하고 약속하면 다 지키던가요?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부모입니다. 애들한테 말했다고 나중에 불리하면 인상을 팍 쓰면서 꺾어 버리든지 눌러버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반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하고 반대는 주로 귀신 중에 사탄이라 이름을 요래 붙입니다. 그 부모가 약속 안 지켰다고 또 사탄이라고 그러면 밥 얻어먹기 어려우니까, 그런 거 계산해가면서 속으로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 지키는데 부모님은 이 말 저 말, 인간이 그냥 좀 잊어버릴 수는 있지만 명백하게 이건 부모님이 불리하니까 약속을 딱 뒤집는다 할 때는,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하고 반대구나. 또 그러다가 또 여호와 하나님 편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는데 약속을 어길 때 약속을 꺾을 때 약속을 묻어버릴 때는 속으로, 하나님 편이 아니라 저 귀신 편이구나 알기는 알아야 됩니다. 그런 부모를 딱 보면서 부모도 저런데 나는 어떨까 좀 더 하겠지 이렇게까지 가면 고장이 안 생깁니다. 2022년 작년 1년 동안에 성찬이는 부모님과 집에서 약속한 게 한 다섯 가지 될까요? 10가지는 넘을까요? 그중에 내가 약속을 못 지킨 거는 다 빼놓고 부모님이 나하고 약속한 거 부모님이 먼저 약속한 것 중에 못 지킨 게 있는가. 이런 걸 물어보면 전부 천재 박사들이 돼가지고 잘 기억합니다. 2월에 어쨌고 여름에 어쨌고 가을에 뭐 해준다는데 어쨌고 그래서 약속 몇 개 틀렸고, 부모한테 네가 약속한 것은 몇 개 했으며 몇 개 틀렸냐. 그건 뭐 무수해서 기억도 못하겠지. 네 잘못한 것만 따지자. 그런 사람들이 저 분당 주변에 많이 산다면서요? 분당. 맨날 분당 대장동 사건이 뭐 그냥 앞으로도 아마 1년은 더 벅적거릴 건데, 그 대장동 옆에 우리 공회교인 사업장이 하나 있어서 그래서 그거 눈 여겨 지금 듣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대충 다 아십니까?

약속의 하나님 틀림없이 지킨다. 강조할 때는 계약의 하나님 그 이름을 뭐라고 한다고요? 아브라함. 아 죄송합니다.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 의를 좇는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따라간다. 여호와를 찾아 구한다. 그분의 말씀이 그분의 약속이고 그분의 뜻이 그분의 계약이니 그 말씀 그 뜻만 찾아 걸어가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거니, 이거는 세상 살아가는 경쟁력 생존력 세상을 살아가는 수단 방법 중에 이거보다 더 나은 게 있을까. 예전에 평생을 결정하는 대학 시험 취업 중요한 시험 그런 중요한 몇 가지 시험에 당락을 최고로 쳤습니다. 요즘은 네 지나온 경력을 봐보자 뭐가 돋보이냐. 뭐가 남들보다 좀 특별하냐. 보자 눈 두 개? 다가졌는데. 치아 28개? 그건 다 있는데 그런 거 말고. 남다른 너의 이력 너의 경력 너의 지난날을 보자 이걸 영어로 뭐라고 그러지요? 스펙이라 그러나요. 스펙이 스페셜의 약자인가요? 맞나요? 스페셜의 cer를 떼버리면 씨가 남으니까 스펙 아마 그럴 걸요. 아무나 그냥 갖다 쓰면 먼저 갖다 쓰면 모르는 건 등신 됩니다. 그러니까 막 아무 때나 말 한 마디씩 던져 놓고 큰 소리 쳐 버리면 세상은 쥐고 삽니다. 공자 저만 문자 씁니까 나도 문자 쓰면 되지. 이 한마디만 눈치 채도 세상 살아가는데 바보 되지 않고 어디 가도 큰소리 딱 치고 들어갑니다. 무식해도. 못난 것들은 천하 도서관 다 외우고도 기고 삽니다. 눈치 있는 사람은 한마디 들으면 평생 그냥 10배 20배 써먹어버립니다. 하도 그런 걸로 신앙생활을 뒤흔들어 싸니까 세상 살아가는 신앙의 그런 눈치 한 말씀 드린 겁니다.

의를 쫓으라. 의? 뭘 따르는 게 의라고요? 말씀 따르는 게 의입니다. 말씀만 따랐다고 자꾸 그러고 예수님을 처형해 싸니까 말씀 속에 있는 뜻을 따라야 말씀을 찾는 거지. 그래서 말씀과 말씀 속에 있는 뜻을 따르라고 그럽니다. 말씀도 따르고 뜻도 따르고 또 두 개니까 또 복잡한 사람은 아이 뭐 두 개나 되는데 복잡하게 기억을 할까 그럽니다. 아니 말씀과 뜻 두 개를 기억 못 해가지고 그러면 곤란하지요. 말씀을 따르는 것이 의다. 그러면 하나님은 약속을 다 지킨다. 횡재하는 거다. 이거 세상 살아가는데 취업도 직장도 공부도 가정도. 이 땅 위에 인간이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그 말씀을 따른다면 계약의 하나님이 반드시 뒤를 챙겨주니, 이 땅위에 어떤 스펙 어떤 남다른 경력을 잔뜩 쌓아놓은 것보다 이게 더 나은데 훨씬 나은데. 그 맛을 봤으면 전부 뭐 그냥 신앙생활 열심히 하느라고 정신도 없을 건데.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뭐 입에 들어오는 돈을 주고 음식을 줘야 따라가지. 훗날 잘 된다고 그러니까 전부 그건 너나 해라 다 그럽니다. 그러지 마시란 말입니다. 의를 쫓으며 성경의 말씀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표현 속에 하나님의 뜻이 들었습니다. 두 개를 함께 맞춰 따라가야 되는데 말씀 속에 뜻을 빼버리면 학교 가가지고 엉뚱한 짓 하는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또 뜻이 중요하지 자꾸 귀신이 이걸 강조해 놓으면, 뜻만 지키면 되지 그러면 말씀해야 세월 속에 달라질 수 있는데, 주일날 꼭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그게 중요하냐. 말씀보다는 주일에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는데 신앙이 중요하지. 지리산 꼭대기에 올라앉아도 두 세 사람 모인 곳에 주님 오시는데 안 계시는 데가 있나. 지리산 꼭대기에서 예배드리려고 올라갔지. 뜻이 중요하지 뭐 말씀이 중요하냐. 귀신이 왼쪽 오른쪽 휘청거리면서 다 잡아가고 말씀과 말씀 속에 뜻 두 개를 함께 우리는 따라간다. 요래버리면 좌우의 귀신은 끊어져 나가는데. 별로 어렵지 않은데 그렇게 다 혼돈이 많아서 이 말씀드립니다.

의를 좇으라. 말씀과 말씀 속에 담아놓은 주의 뜻 찾아 걸어가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대로 반드시 책임지시니, 이거 든든한 일이요 세상 살아가는데 비법이 되어 지니, 불신자는 불신 세상 살아가는 자기대로의 방법 찾고 그게 이제 학교고 기술이고 자격증입니다. 믿는 사람은 엿새 열심히 일하고 직장 없으면 뭐 맨 땅을 파더라도. 남보다 일이 좋니 많니 그건 남들한테 주고 그냥 오늘 한 주간 나 할 것만 열 열심히 하고 주일 중심으로 이렇게 딱 걸어가면, 말씀과 말씀 속에 있는 뜻을 잡은 사람이니 의를 좇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의를 좇으며”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계약이 이 말씀 따라가는 나를 책임지실 것이니, 그렇게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사야의 설교를 이사야의 예언을 들을지어다. 그 다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너희를 떠낸 반석과. 쌀통에서 쌀을 이렇게 내면 떠낸다. 그럽니다. 또 여러 가지 실중에 하나를 가져오면 뽑아낸다고 그럽니다. 떠낸다. 뽑아낸다. 근데 바위처럼 단단한데 바위의 일부를 이렇게 떼 내면 바위는 떼 낸다 그러지 안하고 여기에 뭐라고 그랬나요. 다 같이? 떠낸다. 그럽니다. 뜨다 뜨다라는 말입니다. 오함마로 가지고 그냥 단단한 바위를 무조건 때리는 사람은 바위에 파편만 나오고 바위가 그냥 파쇄 석으로만 나옵니다. 깨진 돌로만. 근데 바위를 유심히 딱 봐보면 바위에 결이 있습니다. 그 결을 딱딱 치면 갑자기 이만큼씩 뚝뚝 떨어져 나옵니다. 조금 쳤는데 떨어져 나옵니다. 그런 사람을 석수장이라 그럽니다. 신풍교회는 석수장이가 만든 교회입니다. 돌집. 힘 좋은 사람이 오함마로 가가지고 이놈 쇠뭉치를 돌려가 이겨? 그냥 꽝 치면 쪼개진 깨진 파편 같은 그런 파쇄석만 잔뜩 가져옵니다. 아무 짝에도 못 씁니다. 길바닥이나 깔까. 우리 예배당 같은 이런 큰 돌이라도 유심히 딱 보면 이쪽이 이렇게 갈라지겠고 저쪽은 저렇게 갈라지겠고, 살짝 살짝살짝 치면 원하는 대로 돌이 뚝 떨어져 나옵니다. 이걸 다 같이 어떻게 한다고요? 돌을 반석을 떠낸다. 그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안 믿는 세상사람 속에 안 믿는 제도와 안 믿는 생활 속에 엉겨 붙어 있는데, 딱 보고 이렇게 하나 떼 내고 이 가정 이렇게 떠내고 요렇게 떠내서 지금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겁니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그 구덩이에서 우리를 퍼내셨습니다. 그 구덩이에 생지옥 같은 데서. 엉겨 붙어 떨어져 나오지도 않겠고 만약에 떼어내려면 팔이 떨어지지 끌려나오지도 않을 뻔했는데, 애굽에서 200여만 명 하나님의 백성을 딱 떠내듯이 주님 오셔서 열두 제자를 딱 떠내듯이, 오천만 한국의 이 훌륭한 백성들 중에 공회 식구 몇을 요리조리 똑 떼 내서 여기에 앉혀놓듯이. “생각하여 보라” 따라 하십시다. “생각하여 보라” (생각하여 보라). 마음이 좀 생각을 하면 힘이 없고 건강이 없고 공부를 못하고 이래도, 마음으로 생각을 좋게 잘 하면 이게 천하를 쥐고 흔듭니다. 지킬 만한 것 중에 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사람이 운동을 해서 힘으로 밀어붙이고 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이 한 10명까지 당하지 뭐 100명이야 이기겠습니까. 가만히 생각을 해서 어느 쪽 뭔지 이렇게 생각이 차분하고 깊고 분석을 하는 사람. 그냥 쉽게 말해서 눈치가 좀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 100명 천 명 만 명 오천만이 못하는 일을 한 사람의 생각으로 해냅니다. 이런 것은 조직 신학의 사람의 몸을 만들고 몸속에 마음을 주시고 마음속에 영을 주셨는데, 영과 몸이 문제가 아니라 영과 몸 가운데 있는 이 마음이 문제인데, 여기에서 모든 것이 결판이 나니 이 마음을 어떻게 잘 쓸까.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생각하여 보라 생각 좀 해보셔야 됩니다. 

2절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라는 저 멀고 먼. 갈대아는 뭐 그냥 뒤에 말하면 바벨론의 언어 한 모퉁이 정도 됩니다. 중국의 남쪽으로 가면 월남인지 중국인지 헷갈려버리고, 또 중국에 서쪽으로 너무 멀리 가면 소련인지 중국인지 헷갈려 버리고, 넓으니까. 중국의 북쪽으로 자꾸 가다 보면 여기가 몽고인가 중국인가 헷갈려 버리고, 또 중국에서 동쪽으로 많이 오다 보면 이게 중국의 조선족 사는 데인가. 한반도의 대한민국 국민들인가 이렇게 헷갈리는 것처럼 땅이 넓으면 그렇습니다. 바벨론 갈대아라는 지역은 넓고넓고 성경에도 많이 넓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갈대아 우르라는 곳이 아브라함에 출발한 원래 고향입니다. 갈대아 우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만 아브라함 옆에부터 믿음의 조상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려면 사라도 있었어야 됩니다. 아브라함? 조상은 아브라함인데 너희를 낳아놓은 것은 사람이라. 생산한 사라.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그래놓고 사라는 떼놓고 아브라함만 적었습니다. 이것은 사라를 무시한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만 적어놓은 것은 잘못하면 아브라함이 다 두드려 맞아야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그때 사라가 옆에 붙어 있었지 않습니까. 한 몸이니까 붙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름으로 앞서 수고하고 책임을 메우는 겁니다. 그 아브라함의 이름 쉽게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 홀로이 멀리서 하란을 거쳐 하나님이 부를 때 가나안까지 들어왔다. 옆에 조카 롯도 또 아내 사라도 모든 종업원들은 아브라함 때문에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분명히 부르신다 하고 들어붙었습니다. 겉은 아브라함인데 아브라함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사라도 있고 그 속에 조카들도 있고 그 속에 롯의 딸들도 있습니다. 딱 하나로 아브라함. 겉은 아브라함 속은 하나님이 불러 지금 뜻이 있어 데리고 갔고, 아브라함은 뒤를 따라갔을 때 한 사람이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 조카 롯이 함께 온 걸 보니까 누구든지 함께 오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하란에서 눌러 앉아 마을을 형성하고 성읍을 만들다 보니까 거기가 밧단 아람입니다. 거기를 그냥 제2의 고향 삼아 다 주저앉았고 아브라함은 홀로이 주님을 따라갈 때 조카 롯 하나가 나도 간다고 들어붙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은 조카와 삼촌인데 둘은 동지였고 한 몸 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속에 잘못되면 롯이 될 수 있고 우리 속에 잘 되면 아브라함이 될 수 있는 두 요소를 말하지, 이렇게 둘로 떼어놓는 게 아닙니다. 구약은 아브라함과 롯의 각각이었고 신약은 나 하나 속에 아브라함일 때도 있고 롯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양쪽을 갈아탑니다. 혈혈단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걸어간 아브라함, 그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주어 창성하였느니라. 뭐 이삭 하나 가지고 겨우? 뒤에 에서 떨어지고 야곱 하나 겨우? 겨우 겨우 간들간들 이어지나 없어지나 간들간들 그랬는데 야곱 때 열두 아들로 뻗어나더니만 그 다음에는 오늘까지 천하를 쥐고 흔들고 있습니다. 그 시작을 이사야 51장에 잠깐 기록하면서 올해 1월 2월 달 지금 여덟 번 주로 오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자세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야 되겠죠. 다 같이 고개 들고. 8주 요절을 기억하십니까. 2023년 1월 1일 첫 주일 성찬으로 시작할 때 한 해를 또 주셨구나. 엄청 비싼 건데 그 한 해 비싼 겁니다. 그 한 해 주지 않으면 70억은 전부 다 묘지로 가야 됩니다. 태양이 도니까 돌지 않느냐. 하나님이 안 돌리면 저거 안돕니다. 태양 하나를 돌리고 우주 하나를 돌리는데 들어가는 이 돈은 설명해야 알아듣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 해를 또 주시며 그것도 주일로 시작하도록 특별한 한 해를 주신 것은, 지난날 우리가 훌륭해서 그렇습니까? 못나서 그렇습니까? 어느 것이었죠? 작년과 지난날이 못났고 부족하기 때문에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겁니다. 그래서 올해 잘하면 지난날이 다 복되게 바뀌어버립니다. 뭐든지 기회를 새로 받을 때의 자세가 이리 되면 복된 사람입니다. 복된 사람. 그래서 1월 첫 주에 요절은 요한복음 6장 55절 다 같이 시작 “내 몸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날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이 목숨 바쳐 모든 걸 다 했구나.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신앙의 생명이고 이게 신앙의 능력이 되어 집니다. 이건 뭐 전능입니다. 이리 되면. 주님 날 위해서 다 바쳤구나. 이게 신앙의 양식이구나. 일.

그다음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 날 위해서 다 주셨는데, 이게 벌써 내가 주님 안에 들어가 사는 생활 입니다. 왜 그리 되었느냐. 그 말씀을 기억하니까 그리 된 겁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주님하고 나하고 마음으로 한 편이 되어 놨으니 주님과 같이 된 마음 그 마음 마음껏 불러봐라 안 해주는 것이 있는가. 이게 성경의 교리고 해석입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셨으니 이 구원에 바로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정말 신앙과 구원의 필요 한 걸구하면 안 줄 리가 없는데 구원은 앞에 미끼로 슬쩍 던져놓고, 제가 부자가 되어야 연보 좀 많이 하지 않을까요. 그래놓고 부자 되고 연보한 사람은 록펠러 같은 사람 몇 있긴 있는데 대부분은 주면 먹고 날라버립니다. 지는 이만큼 먹었으니까 웃고 하나님은 야 이놈아 쥐꼬리 많은 거 하나 던져줬더니만 먹고 도망을 가? 더 큰 걸 줄 뻔 했는데 더 이상은 못 준다. 먹고 튄 사람은 자기대로 꾀가 많고 주님은 너 같은 것들 때문에 시험 실현 환란 이런 연단을 거쳐 보는 거다. 진짜인지 아닌지 하나님이 몰라 그런 것이 아니라 너와 너 주변 때문에 그러는 거다. 요한복음 6장 55절 “내 몸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속으로 다 옹알이를 하시지만 외워서 따라오고 있지요.

그다음 요한복음 15장 12절이었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 날 구운 하느라고 다 바쳤고 이게 신앙의 양식이고 이 구원이 신앙에 필요한 것 구하면 다 주시니, 그러니 주님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나도 좀 다른 사람 신앙을 위해서 뭔가 해봐야 되는데. 그게 주님이 원하는 계명입니다. 그 계명은 다른 사람은 신앙을 위해서 수고하다 보면 내가 희생 수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희생과 수고를 아름다운 말로 사랑이라고 그렇게 붙여놨더니만, 그 사랑을 붙들고 모두들 연애하느라고 그냥 다 또 엉망이 된 겁니다. 뭔 놈의 귀신의 그 장난이 유치원 애들도 당하지 않을 정도인데, 세상 살 때는 영악한 분들이 귀신 유혹할 때는 갑자기 전부 다 멍청이 갖다 돼버리는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6장 55절 요한복음 15장 7절 요한복음 15장 12절 계명. 그런데 그나마나 강단에서는 쉽다. 쉽다 하지만 당신이야 전문가니까 그렇다 치고 세상 살아가는데 바빠서 어떻게 그런 걸 다 머리에 담느냐 우리가. 머리가 있어야 다 담을 것 아니냐. 도둑놈이 도둑질할 집 번지는 낮에 한 번 삥 둘러보면 다 외웁니다. 도둑놈이 도둑질 할 골목과 그거 저 대문 다 기억하는 것 정도 되면 GPS보다 천재입니다. 경험 있는 선생님들은 머리 나빠 공부 못한 놈들은 없다. 하기 싫어서 안 되는 거다. 이렇게 딱 결론을 냈습니다. 부모님들도 자기 자녀들을 그렇게 읽고 봐보면 그게 맞습니다. 대대로 공부를 못하는 집안이라 우리 집안에는 뭐 공부할 애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통계가 그런데 원인은 못 짚은 겁니다. 네 집안은 대대로 공부할 마음이 없는 거다. 마음이 없으니 공부할 턱이 됩니까. 도둑놈 도둑질할 때 다 그 도둑놈들 모두 학교 성적표 때 보면 1등이겠습니까. 꼴찌겠습니까 뻔하지.

여기 안 계시니까 또 예를 들어 봐야 되겠네. 우리 아는 대로는 성격이 제일 밑에 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돈 손 댄 걸 물어보니까. 이미영 선생님 12개 나왔던가요? 15개 나왔던가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기억이나 하십니까? 누구 말하는지 알아요? 조사해서 보고를 한 사람은 지금 잊었답니다. 저는 아는데. 몇 월 며칠 체육시간 나갈 때 누구 거, 언제 학교 때 청소하는 시간에 누구 거, 한 열 몇 개를 적어요. 근데 이게 이제 선생님이 쥐 박으니까 허위 자백을 했는가 봐서, 적은 걸 가져와가지고 보여 주지 말고 한 번 더 물어보라고 그랬습니다. 혼날까 봐 이말 저말 한 사람은 열 몇 개 불러놓고 그거 다 말 못하거든요. 두 번 다시 물어보니까 정확하게 다 나오는 겁니다. 그 사람 머리 나쁜 거 아닙니다. 하고 싶고 욕심 있고 의지가 있으면 사람 머리는 천재가 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놨습니다. 성경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더라. 아 돈이 안 되니까 그렇지 이게 돈이 되면 네가 이걸 못 알아들어? 커닝을 해서라도 하겠지. 교회가 교리나 해 싸니까 누가 재미없어. 재미없어? 사법고시 답안지를 불러주면 한 번 불러주면 다 외워버릴걸? 내 속에 욕심이 없고 내 속에 마음이 가지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첫사랑에 그냥 발광을 해놓으면 그 여자 그냥 한 번 쳐다보면 그림을 그려도 다 그려낼 걸요. 연애 소설은 한 번 200페지 300페지 읽고 쓰라고 그러면 다 써낼 겁니다. 마음이 문제다 그 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가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내 계명은 곧 이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아이 뭐 어려워서. 그러지 마시고 돈 되고 이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좀 알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열어줍니다. 그러면 집안 대대로 등신 같은 집 안에서 저런 천재가 다 있네. 소리도 나옵니다.

천재네. 천재인데 그러면 윗대에 천재가 있지 않느냐 이렇게 쭉 올라가면, 500년 전에 천재가 하나 있었네. 그게 이제 내려왔는데 이렇게 이제 끼워 맞추기도 하고 다 그럽니다. 모든 사람은 전지의 지식과 지혜를 가진 하나님이 만들어놓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다 천재입니다. 자기가 죄 짓는 데만 밝아서 옳은 걸 자꾸 짓밟다 보니까, 그냥 기계가 망가져 그런 겁니다. 그 망가진 기계를 어떻게 할까요? 고운 마음 복된 마음을 자꾸 가지고 생각하고 반복하면, 기계는 망가진 거 복구하는 방법이 없어도 마음과 우리의 능력은, 의로 주의 뜻으로 옳은 것으로 복된 것으로 자꾸 연습하면 서서히 좋아지다가 어느 날 굉장히 좋아집니다. 네 번째 주 요한복음 14장 26절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 그래서 핑계 대지 못하는 겁니다. 안 믿는 세상도 자기 마음 가고 욕심 가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마음이 없어 그런 거지. 그런데 신앙의 길은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오셔서 책임지고 다 해결합니다. 배운 공부를 다 생각나게 하느냐 그 말이 아니라, 내 구원에 필요한 것만은 성령이 오셔서 반드시 해결합니다. 나 신앙생활 나 먹고 사는 거 내 가정 나에 걸어 갈 걸음에 필요한 것만 알면 되지. 그 외에 알아서 뭐 하려고? 하위란 학자란 교수란 박사란 이것저것 많이 모아두고 많이 안다고 유식한 척 하는데, 도서관에 천만 권 책이 있어 봐야 그 도서관의 사서 머릿속에는 자기한테 관심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겁니다. 많이 알면 복잡하지.

일반적으로 돈 벌이 되는 거 배우면 되는 거고 인간 되는 거는 가정에서 배우는 거고, 인간 되는 것은 학교 가서 가르치는 거 아닙니다. 절대로. 학교 가면 나쁜 것만 배웁니다. 인간 되는 것은 부모에게서 배우고 세상 살아가는 꾀와 돈벌이는 학교 가서 빼오면 되고, 신앙의 걸음은 그 해와 말씀밖에 없습니다. 인간 되는 거는 부모한테 부모가 엉망인데 어떡할 겁니까. 부모가 이렇게 엉망이니 너는 반대로 하면 되겠네. 네 부모는 이런 거는 장점 아니냐. 장점이면 베끼면 되겠네. 그래서 모든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 하나밖에 없는 인간 되는 유일한 교사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돈벌이는 학교 가서 뽑아오고 인간 되는 거는 부모한테 배우고, 신앙은 성경에서 배우고 이 이상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자기 머리를 깨끗하게 맑게 좋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쓰레기를 먼저 너무 많이 넣어놓으면 인간도 안 되고 돈 벌이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됩니다. 10년 전에 여기 어마어마한 천재 한 번 왔다 가셨는데 모르는 게 없습니다. 다 천재 급입니다. 그런데 세끼 밥벌이는 못 합니다. 이게 슬픔입니다. 이게 안 좋은 겁니다. 세끼 밥 먹는 건강과 지혜 가지면 그만하면 가정 가질 수 있고, 인간 되는 거는 누구한테 배운다고요? 제 부모만 쳐다보면 인간 됩니다. 신앙은? 성령밖에 없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성령이 알려주십니다. 성령이 이것저것 쓸데없는 거 다 가르쳐주고 안 그럽니다.

누가 좀 신학 좀 아는 가해서 이렇게 오해를 해서 저한테 질문을 들어오면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럽니다. 성경은 물어보시면 좀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 말고는 머릿속에 넣지도 않고 들어온 거 다 버려버립니다. 그걸 내버리고 가볍고 깨끗해야 말씀을 집어넣습니다. 성경 외에 걸 많이 집어넣으면 안 봐도 성경 모르는 사람입니다. 들어갈 데가 있습니까? 무한이 아닌데. 일부러 부모를 기억하며 날 만들고, 학교에서는 세상 살아가며 돈 벌 것이 있는지 몇 개 뽑아오고 그 다음 성경 열심히 읽으면, 이건 뭐 하나님 위해서 복 줄 것이지 인간 인격 괜찮으니 그만하면 됐지. 세끼 밥 먹으면 뭐 이만하면 다 됐지. 세끼 밥 먹는 거 이상 돈 모아놓으면 반드시 썩 씁니다. 그거. 자기 안에서 썩어 나자빠집니다. 큰일 납니다. 진뜩 돈 벌어서 쌓아놓은 사람 그 돈한테 뚜드려 맞는 줄도 모릅니다. 번다고 시간 노력 허송 벌어놓은 것 또 쓴다고 또 과시. 거기에 또 제 인간 제 시간 다 버리고 들락날락, 들락날락 끝. 우리는 세끼 밥 먹으면 감사 부모 쳐다보며 자기 인격 만들면 지성인.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쭉 찾아가면, 아브라함이 외로운 길을 걸어갔는데 그 뒤를 따라 하나님이 준 복을 봐라, 그런데 아브라함도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하나님이 떠낼 때 반석에서 떠냈다. 너희를 떠낸 반석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봐라. 그 아브라함이 믿을 사람이었느냐. 역사적으로 성경은 아닌데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 그런 기록이 내려옵니다. 아브라함 아버지 직업이 한국으로 말하면 불상 만드는 것처럼 우상 미신 귀신 조각하는 그런 우상 제작자였다. 그럽니다. 우상 구덩이에서 나온 겁니다. 그 속에서 아브라함을 쏙 빼내야 되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나올까. 그 아브라함을 아브라함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에서 가나안으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 삼으려고 가지고 올 때, 그 광경이 바위에서 돌을 떠내듯이 떠낸 겁니다. 우묵한 구덩이에서 물 길어 오듯이 이거 참 애먹은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믿게 된 것도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우리 교인들 한 분 한 분 믿게 된 것이, 뭐 그냥 부모 따라 어떻게 하다 나왔지 뭐. 교회 옆에 있다 보니까 어떡하다 나왔지. 우연히 그랬지 다 그러지만은 보이는 것은 그런 형태나 속으로는 하나님께서, 저걸 언제, 언제, 언제 어떻게 저걸 떠내야 되는데 하나님이 지켜보다가 이런 기회에 저런 사람을 통해, 요래 떠내고 저리 떠내고 좋은 사람은 잘 달래서 떠내고 강퍅해서 버티는 사람은 뒷다리를 갖다가 그냥 분질러서. 무슨 다리라 그러죠? 이거 지팡이? 왜 다리 부러지면 뭐라 그러지요? 다리 부러지면 모두들 한 번씩 해봤지 않습니까? 지팡이. 목발. 다리를 하나님이 분질러 목발 짚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 다 많습니다. 또 잘 믿다가 휘청하고 나면 다시 불러들일 때 돼지 막까지 갔다 내 발로 걸어오게 하는 사람,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다 오는 사람, 애굽에 갔다 오는 사람 별별 사람 다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더 늦어지면 다리가 부러지든지 아니면 소돔에 불벼락 가운데 빠져나오든지 그리 돼야 됩니다. 그래 놓으면 빠져나와도 뒤가 좋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별일 없을 때 주님은 나를 세상에 그냥 두지 않고 떠낸다. 난리 나기 전에 그냥 얼른 좋게 오시면 보기도 좋고 자기도 좋고 주변도 좋고, 또 그러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예상 못한 큰 일 할 사람도 되고 다 그렇습니다. 이사야 51장 1절과 2절 좀 살펴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냥 어떻게 하다가 살다 보니까 교회를 다니는 것 같으나, 천하의 많은 길 중에 교회, 많은 교파 중에 이 귀한 길. 이 귀한 길의 수많은 교회 중에 이 귀한 교회 이 귀한 노선에 저도 여러분들도 하나 둘 돌 떠내듯이, 주님은 아브라함 하나를 혈혈단신 상태에서 불러내듯이 이렇게 노력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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