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3.2.22 사49:20 끊긴 적 없는 하나님 연결 소망의 역사, 말씀대로 순종과 감사의 생명으로 이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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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3.2.22 사49:20 끊긴 적 없는 하나님 연결 소망의 역사, 말씀대로 순종과 감사의 생명으로 이어진 것

관리1 0 78 2023.02.22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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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수새

제목 : 한번도 끊긴 적 없는 하나님 연결 소망의 역사, 말씀대로 순종과 감사의 생명으로 이어진 것

찬송 : 117장(내 주를 가까이)

본문 : 이사야 49장 20절 -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그때에 내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소돔을 향한 롯은 아브라함만큼 거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나뉜지 좀 시간이 지나니 데리고 쓰는 종들만 318명이라 주변에 네 나라와 다섯 나라의 연합동맹의 전쟁이 있을 때 아브라함이 주변을 데리고 종들을 데리고 가서 전부 해결을 해버렸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아도 똑같이 나뉜 아브라함이 이 정도면 롯은 뭐 그 절반이나 흉내라도 좀 냈어야 되는데 소돔을 찾아간 천사들이 롯을 찾았을 때 저물 때 소돔 성 성문에 있다가 천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혼자였습니다.

딸 둘 아내 하나 롯 요즘 같이 단촐한 그런 식구였으나 평생을 살아도 아내는 보니까 뒤돌아보는 남이었고 동상이몽이라 함께 살지만 서로 지향하는 방향은 반대였습니다. 그걸 자기와 같은 의인으로 만들었어야 되는데 롯은 의인이었습니다. 신약에서 롯을 의인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의인입니다. 아내가 자기와 신앙이 같지 않다 하더라도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세월 속에 아내를 따라가던지 아내가 롯을 닮아 신앙이 들어가든지 아니면 둘이 뒤섞어 절반으로 가운데라도 되어야 되는데 급한데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알아보고도 뒤를 돌아봤더라, 다급하니까 롯은 하나님을 붙들었는데 다급하니까 아내는 끌려가면서도 뒤를 돌아봤습니다. 함께 사나 방향은 늘 서로가 달랐습니다. 딸 둘이야 뭐 입에 담을 수도 없고 사위 될 사람 둘은 “롯의 말을 농으로 여겼더라“ 이렇게 되면 더 이상은 봐준다고 되고 말고 그러지를 않습니다. 롯도 외로워졌습니다.

이사야 49장 20절 21절의 말씀 같은 말씀 뭐 다른 말씀도 다 마찬가지나 도둑이 도둑질하다가 감옥에 가서 갇혀 놓고 참 나는 외롭다 사로잡혔다 그러면서 이사야 49장 20절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면 희망 없는 사람이 더 희망 없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자기중심으로 죄 짓다가 망하고 혼자 된 사람 그는 이사야 49장이 아니라 이사야 1장 1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 돌아서야 되는 일이고 롯의 외로움도 많은 복을 주셨으나 그 복을 다 털어먹고 죄의 결과로 홀로 되었습니다. 소돔 쪽으로 방향을 틀 때는 많은 재산이 더 많아질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삶은 볍씨를 뿌렸으면 다 거름이 되어 싹이 나지 않을 거고 생명의 씨앗을 뿌렸으면 그 생명의 씨앗은 땅속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종자 죽지 않은 종자는 한 주머니 한 주먹 한 주먹 종자는 밥에 먹으면 몇 번 먹을 분량이지만 한 공기 정도 되겠지마는 그 한 공기마저도 밭에 뿌려버리면 우선은 보이지 않고 썩어져버립니다. 그런데 생명이 있는 것은 결국 세월 속에 싹이 나고 100배 60배 30배로 풍성하게 돌아옵니다.

생명, 하나님과의 연결의 행위는 죄악 세상에 우선 주변으로부터 묻히지만 잊혀지지마는 뒤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싹이 나고 그 뒤에 결과가 나오는 법입니다. 그런데 세상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으나 진리와 말씀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과의 연결은 세상이 다 덮는다고 가라앉고 덮혀 지고 묻혀 지고 그러지를 않습니다. 세상에 옳은 것은 묻힐 수 있지만은 세상에 옳은 것 조차도 하나님께서 자연 계시로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정말 옳다면 묻히는가 봐라 세상도 그 옳은 것은 세월 속에 이렇게 표시가 나지 않느냐?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낮과 밤을 주시고 심은 것은 뒤에 싹이 나고 열매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세상 자연에 속한 것과 달리 인간에 속한 것은 타락의 저주가 많이 들어가 있어 옳은데도 억울하게 묻혀버린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자연의 생명은 생명의 결과가 반드시 나옵니다. 인간 사회에 속한 것은 옳은 것은 뒤에 표가 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신앙의 생명의 걸음은 이거는 절대를 붙여 잊혀 지고 묻혀 지고 그냥 끝나지를 아니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몰래 죽여 놓고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니이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까” 딱 잡아뗐고 어쨌든 가인은 성을 쌓고 번창했고 아벨은 사라졌는데 아벨 이후의 역사의 모든 순교는 모든 신앙의 피 흘리는 그곳에는 아벨의 역사가 끊겨져 본 적이 없고 살아 역사했다고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냥 폐일언하고 말씀을 따라 말씀 속에 나를 인도하는 성령의 인도만을 따라 가다 보면 말씀은 완전이나 말씀을 따라가는 내가 부족해서 주변에 보면 문제도 있고 또 내가 봐도 내게는 모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나 말씀을 따라가는 나는 인간이라 많은 단점이 있으나 내가 따라가는 나를 인도하는 그 말씀 그 말씀 속에 성령의 인도는 완전의 말씀이고 생명의 인도기 때문에 그 인도를 따라가면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싹이 나고 그다음 복음의 귀하고 좋은 열매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걸 볍씨처럼 뿌리면 6개월 대충 봄에 뿌리면 가을에 수확을 한다, 이건 그냥 딱 정해져 있는 겁니다. 이렇게 기간이 정해져 기간대로 돌아만 오면 은행의 이자처럼 월급처럼 또는 식물의 씨앗처럼 기간이 있고 그 기간에 돌아오는 것이 보이면 요즘 이자 5%라도 세다고 모두들 좋아하고 난리지요? 만약에 이자가 이전처럼 한 달에 2할 이자라 요즘으로 말하면 20%로 30%로 이자면 요즘 뭐 노름 도박보다 더하다 그럴 겁니다. 이게 꼬박꼬박 돌아오면 1억 맡기고 월 200만원 1년에 2천500만 원이 돌아와도 모두들 난리가 날 건데 신앙의 열매가 돌아오는 것은 돌아오는 때와 기한을 하나님 홀로이 지켜보다가 요셉은 13년 다윗은 13년까지는 가지 않으나 그런 세월 수년 야곱은 130년 하나님이 주시는 때와 기한이 다르기 때문에 이걸 소망 속에 끝까지 지켜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 금리로 5프로 이자 1억에 500만 원이 5프로지요. 1억 은행에 저금하면 일 년 후에 정확하게 500만 원이 들어온다. 그 돈이 모일 겁니다. 은행에 1억 맡기면 1년 후에 2천만 원 25%로 틀림없이 돌아온다. 여기는 돈이 다 몰릴 겁니다.

그런데 1억을 맡겨 놓으면 10년 후에 10억을 주고 100억을 준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면 이건 통장에 찍히질 않으니까 국가가 책임지는 은행의 제도가 아니니까 이건 믿기도 어렵고 몰리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말씀으로 살라 하며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역사 이후에 가장 좋게 줬지만 가장 좋은 환경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신앙은 전부 세상 속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성경의 말씀의 약속은 겉 듣고 헛듣고 겉돌고 “농담으로 여겼더라” 농으로 여겼더라, 장인 롯의 말을 사위들이 농으로 여겼더라, 여기까지 가버린 겁니다. 아내 되돌아 봤지 딸 둘 그랬지 하나 더 먼 사위들은 “농으로 여겼더라” 여기까지 가버렸지 여기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말씀으로 순종하다 보니까 아, 뭐 이래가지고 뒷 결과가 있겠는가, 앞날이 있겠는가, 이 자녀란 미래의 열매 결과 훗날이란 뜻입니다.

구약은 내가 낳은 아이를 자녀라 그러고 신약은 오늘의 나의 행위 오늘의 나의 걸음에 돌아 온 열매 그 결과를 말합니다. 남들이 몰라줘도 가야 할 길이라 걸어가는 그 걸음걸음에 그 열매 그 뒷날 그 훗날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은행만큼 5프로 10프로 주면 난리일건데 은행만큼 20프로 주면 막 난리가 날 건데 10배를 주고 100배를 준다 해도 성경의 말씀이 말씀이 말씀을 하면 이건 농으로 여겨버리고 미신으로 전설로 원래 종교인들 원래 교회 강단에서 덕담으로 그냥 풍성하게 흩어버리고 듬성듬성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냐 말 잔치인줄 압니다.

좀 역사를 통해 넓히 여러 면을 비교해보고 따져봐 보면 복음은 말로 복음이 아니라 가는 곳곳마다 정말 복이 쏟아지는 복음이 맞구나 분석할 줄 알고 비교할 줄 알고 보는 눈이 있고 기준이 바로 들어가면 천하의 모든 열매는 잘못되는 일이 있어도 복음의 열매는 완전자 하나님 불변의 하나님이 반드시 복음은 복으로만 만들고야 만다는 결론을 딱 잡게 되는데 그 결론을
이 아침도 마음속에 품고 우리가 간곡하게 기도해야 되는 그런 문제들 하나하나 손꼽아가며 애통하는 심정으로 간곡한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 이것이 사방천지 거름이 되고 이것이 뿌리는 씨가 되어 또 세월 뒤에 오늘을 돌아보면 어제도 한 23년 만인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그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 얘기를 하다 보니 평소 아는 얘기인데 당사자 눈앞에 두고 손꼽다 보니까 참 우리에게 주신 복도 복도 이렇게 큰 복 주체할 수 없을 만한 복을 주는데 뭐 성경 다 덮어놓고 우리가 받은 복만해도 성경에 기록해도 못지않은 그런 복인데 그런 많은 기적과 많은 복을 주체할 수 없게 받았는데 문제는 뭐냐 아, 복인 줄 알아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프리카보다 못한 이 나라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됐는데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 지금도 세계 10등이지 1등은 아니지 않느냐 그럽니다.

남미의 저 나라들 유럽의 우리보다 못한 뭐 폴란드니 뭐 이런 나라들 300년 500년 전에 선진국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에 굶어죽던 나라입니다. 오늘은 세계 10등인데 다른 나라들은 200년 500년 전에도 세계 1등 10등 했던 나라들이고 우리는 그때 세계 200개국 중에 200등도 못 들어가는 나라가 10등까지 올라갔으니 그런데 그 10등이라도 10등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거는 뭐 1등이지 10등이 아닙니다. 이게 자연 계시인데 몇 모여 신앙 생활하는 우리에게 주신 이면저면 열 가지 스무 가지 아무리 훑어봐도 담을 수 없고 주체할 수 없도록 많이 주셨는데 알아보고 감사하면 그러면 더 많이 주는 그릇이 되고 못 알아보면 거기까지가 그릇입니다. 못 알아보면.

롯은 아브라함이 복이라고 아브라함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진 게 많다 보니까 아브라함하고 반 반 나눠버렸습니다. 반반 나누고 아브라함이 떨어지고 보니까 그리 된 겁니다. 아브라함이 복인데 복인 줄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주신 복이 복인 줄 알아야 그 복이 내게 유지가 되고 갈수록 좋아집니다.

이 아침 자꾸 주신 복을 헤아려보고 헤아려보고 이미 받은 복을 복인 줄 알고 감사할 때 더해주시고 이미 주셨는데 못 알아보고 다른 거 더 달라고 이래버리면 사람 버릴까 봐 그때부터
중단을 하고 비교를 시키는 수가 있습니다. 돌아보니 아 그때가 복이구나, 그리 되면 곤란합니다. 오늘 아침도 간곡하게 기도하는 우리 되도록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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