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2.20 사49:20 하나님 목적의 불변과 필연, 오늘의 고난은 최종 목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망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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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3.2.20 사49:20 하나님 목적의 불변과 필연, 오늘의 고난은 최종 목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망의 과정

관리1 0 95 2023.02.20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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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0 월새

제목 : 하나님 목적의 불변과 필연, 오늘의 고난은 최종 목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망의 과정

찬송 : 97장(내 주의 보혈은)

본문 : 이사야 49장 20절 -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니 그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저 외솔이 이솔이 한두 줄씩 앞으로 좀 오시면 더 보기가 좋겠습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이 영원 전 홀로 계시다가 목적을 정할 때부터 영원 미래 끝없는 영원 뒤까지를 목적과 동시에 마련했고 완전자 절대자라 이 목적은 흔들리거나 돌아가거나 잘못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원래 목적하신 그 목적의 마지막은 완성됩니다. 그 완성을 향하여 수술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눈에 없어져 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우리의 기준이 잘못되고 착시현상입니다.

지금은 결과적으로 이 나라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어져 버렸는데 100년 전 구한말 또 식민지 초기만 해도 이대로 나라는 없어질 줄 알았고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나라에 손꼽는 지성인들 애국자들이 봐도 세계는 너무 앞서가 버렸고 옆에 있는 일본도 세계 최강이 돼버렸고 우리는 이대로 주저앉고 그대로 끝이 난다 봤습니다. 뭘 보나 확실하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 먹고 살려면 부잣집 옆에 붙어야 얻어먹겠다고 일본에 붙은 거지 친일하는 사람 요즘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제 알기로 신풍 안에 친일파 아닌 집안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부모한테 얻어먹었는데 자기 부모 자기 할아버지가 친일파인데 아들이나 손주가 일본 욕하면 아버지 얼굴에 침 뱉는 겁니다. 그 아버지한테 그 할아버지한테 얻어먹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면 거지도 그런 거지는 밥 얻어먹고 살기도 어렵습니다. 거지라면 밥 주는 사람한테는 고맙다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개도 밥 주는 주인은 알아보는데 이사야 1장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도 그 임자는 알지 않느냐 나귀도 주인이 주는 밥통 구유는 알지 않느냐 이스라엘은 아지 못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이사야 66장의 첫 출발입니다.

밥 얻어먹었으면 밥 준 사람은 알아봐야지. 거지도 밥 준 집은 마음속에 고마워합니다. 구한말부터 해방 때까지 억울하든 말든 일본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이 세상 운영하는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나라가 없어졌고 왕족부터 씨가 말라버렸고 아무리 봐도 이거는 도무지 희망이 없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에게 배웠고 그들은 부려 먹었고 우리는 종살이 했지만 종이 독립해서 산속에서 풀 뜯어 먹으면 발전이 없고 거지가 부잣집에 들어가 머슴 노릇을 하면 부잣집의 인품과 부잣집에 돈 버는 데와 부잣집의 계좌와 부잣집의 기술을 빼냅니다. 산속에 들어가 사는 거지보다 부잣집에 머슴 식모를 하다 보면 지성인이 되고 현대인이 됩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 부자만큼은 못 돼도 부자의 흉내를 내고 출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100년 전에 한국은 없어졌고 다시는 독립을 못 할 줄 알았는데 격차가 너무 나니까. 해방은 되어도 미국 때문에 해방은 되었으나 그냥 나라 이름만 걸줄 알았습니다. 여기다 대고 전쟁 거치는 통에 잿더미 되고 거지 움막조차 없을 줄 알았습니다. 누가 알았습니까? 오늘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가 되었는지 이 좋은 나라를 만든 분이 누군지는 모두 다 잊어 먹고 이 나라 이렇게 만든 사람 역적이라고 몇 십 년 동안 얼마나 유혹을 해댔는지 이 나라 내려 앉히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던 인간들은 그냥 인류 역사에 위대한 줄 알고 이러고 앉았습니다.

참 무식해도 이 정도 무식하면 이거 아프리카 나라만도 못 하는데 이 나라가 아니라 이 나라에 두신 교회 이 나라에 두신 교회가 아니라 이 나라 교회를 울타리로 그 속에 둔 마지막에 특별한 복음이 있어서 미리 예정하고 이렇게 한 겁니다. 우리 눈에 조선은 없어졌고 나라는 없어졌지 하나님 눈에는 100년 뒤에 세계 최고의 나라의 최고의 교계 안에 심어 둘 노란 자 위에 생명의 그 흰점 하나. 계란이 주먹만 해도 그 껍데기를 먹는 거 아니고 계란의 흰자위가 대부분이나 그게 병아리 되는 거 아니고 계란 속에 노란 자위가 영양분은 많아도 그거 병아리 되는 거 아닙니다. 그 노란 자위 위에 흰 점 하나 있는데 이게 병아리 되고 나머지는 울타리고 나머지는 음식입니다.

세계 속에 한국과 한국 속의 교계와 교계 속의 우리의 관계가 이렇다고 보는 사람은 공회 사람이고 이거 모르면 그냥 눈먼 망아지 워낭 소리 듣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왔다 갔다.
그러는 겁니다. 닭이 알을 낳고 죽었는데 닭은 죽었고 알 밖에 없으니 닭의 후손은 없는 줄 아나 그 21일을 잘 열 관리하며 그 다음, 병아리가 나오고 그 병아리가 닭이 되며 수많은 닭을 길러낼 수가 있습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게 많은 게 우선 좋으나 우선 눈에 없다고 없는 줄 알면 안 되는 겁니다. 오늘도 보고 다음도 볼 줄 알아야 되고 큰 것도 보지만 큰 것이 될 작은 것도 알아봐야 됩니다. 계란 껍질 속에 흰자위 속에 노란 자위 위에 올라앉은 점 하나 이걸 바늘로 건들면 병아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게 병아리입니다.

영원 전 완전 자 하나님이 영원 후에 하나님이 머리로 만물을 운영할 몸을 교회로 영원전에 목적을 정해놨습니다. 이 목적은 무조건 되어 집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진행되며 요셉이 죽은 줄 알았고 야곱도 또 요셉을 아는 사람은 애굽에 가서 출세한 줄 알았으나 어느 날 감옥 들어가 끝장난 줄 알았습니다. 인간 보기에 요셉은 이리 살고 저리 살고  동이 많았으나 하나님의 목적은 한 번도 변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예정 가운데 요셉이 열일곱 되도록 사랑받을 때가 있었고 미움 받을 때가 있었고 팔려갈 때가 있었고 희망 없어 보일 때는 있었으나 인간 눈에 볼 때는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는 요셉이 자기를 봐도 희망이 있겠나 하고 소망이 한 번 살짝 흐트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계시를 겹쳐봤으니 하나님의 확정인 줄 알았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모든 형들이 땅에 엎드려 절하게 되는 이런 요셉이 된다는 것은 알았으나 교도소 생활이 오래 갈 때 그리고 나간 술 맡은 관원장의 청탁이 만 2년이 지나며 흩어지고 사라질 때 그냥 이렇게 끝나나 요셉의 마음까지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세계 최강 애굽 나라의 바로 왕의 목을 지키는 시위대장 집에 붙들려 앉았으니 이건 희망 없다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호실장 차지철이 집에 붙들려 앉았으니 그거 나올 리가 있겠는가? 또 5공 정권에는 여기 고흥사람 이름이 장세동이 멱살 잡혔으니 그 사람이야 희망이 있겠나, 이게 보디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목적은 한 번 정했을 때 바뀐 적 없고 우리 생각에 저게 과연 되어 지겠나 우리는 과연 되겠나 했고 하나님은 완전자고 영원불변입니다. 우리가 파도에 요동쳐 두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었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완전자의 영원 후 목적은 정했고 그 목적을 좋게 이루기 위해 오르고 내려야 되기 때문에 별의별 일을 펼쳐놨습니다.

그런데 좀 된다 싶으면 너무 우쭐해서 탈 조금 밑으로 내려가면 주저앉아 우울증 걸리고 스스로 자기를 내려앉혀 못난이를 만들어 탈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올려줄 때 한 줌의 흙이었고 흙으로 돌아가는 만물 중에 짓밟힐 못난 나라는 것만 있지 않으면 아무리 올라가도 이거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목적대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를 좀 밑으로 쥐 눌려놔도 목적은 틀림없는데 그 목적을 위해서 이런 순서가 필요하구나, 이게 흔들리지 않으면 만사 좋습니다.

100년 전 한국이 오늘의 세계 최고의 이 나라가 될 줄 그때 모든 사람이 확실히 알았더라면 이리 되든 저리되든 여유 있게 구경했을 겁니다. 일본이 미국을 쥐어박을 때 미국을 쥐어박을 만큼 커졌구나, 그런데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놨으니 몇 년이 걸리던 요절나겠구나, 그 덕분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생기겠구나, 그날만 바라보자 몸조심하며 일본에 빌어먹고 살지만 너무 나섰다가 찍히면 나중에 곤란하니 생존을 위해서 조금 얻어먹어도 찍히지 않을 만큼 몸조심하자 뭐 이렇게 해 놨으면 얼마나 좋을 뻔 했습니까?

6.25 밀고 들어올 때 이 나라가 100년 후에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는 줄 알았으면 중간에  전쟁해서 밀어붙일 때 그 옛날 수천 년 내려온 이 초가집이고 얽어 붙은 걸 싹 쓸어버려야 도심 재건축이 될 거니 잘 밀어 붙인다 입으로 말은 못해도 속으로 이렇게 몰아붙이니 뭔가 큰 게 이루어지겠구나, 그렇게 넓게 보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좋게 든든하게 손꼽아가며 나 출세할 날 내 환경이 너무 좋아 지상 낙원이 될 날 지상 낙원이 되면 전부는 주저앉습니다. 좋으면 주저앉는데 지상 낙원이 되는 날 지상낙원에 빠져 생지옥을 만들지 않으리라 이렇게 손꼽은 분이 역사 기록의 흔적은 공회 출발한 목사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해방 그날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도 몰랐고 평양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죽을 직전까지 갔었고 목사님은 벌써 오래전에 노트에 해방된다는 것 해방이 되면 미국 때문에 해방이 된다는 것 남북이 나뉘어진다는 것 북쪽은 더욱 흑암이 되고 남쪽은 광명 천지가 된다는 거 그런데 미국 때문에 남한이 광명 천지는 되나 미국에 더러운 걸 많이 묻혀서 참 아주 교회가 속으로 썩어버린다는 거 다 노트에 적어놓은 거, 우리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걸 미리 본 분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았고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좋아진다고 좋아진데 날 맡겨 내 신앙과 내 인격을 그렇게 걸레 조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예전엔 여자가 여기저기 밖에 돌아다니면 여자를 갖다가 그냥 걸레가 됐다 이러는데 요즘은 걸레 된 게 좋다고 걸레 되기 위해서 케이팝이니 뭐니 생 발광을 다 하고 앉았는데 자기 자녀 걸레 되면 전부 좋아서 옆에다 두고 자랑을 하는데 예전엔 창피해서 그냥 고개를 못 들었습니다. 죽은 조상 앞에 고개를 못 들고 내가 어떻게 살아 아이를 이렇게 걸레를 만들어 놓았는고  이랬는데 요즘은 조상 앞에다 대고 우리 애 세계 걸레 됐다고 자랑을 하고 전부 부러워하고 이런 걸 갖다가 욕을 하는 것은 신풍 강단밖에 없는지? 아마 뭐 그럴 겁니다. 아무리 미쳐도 좋은 것 나쁜 것 그 정도는 구별하고 누울 자리 앉을 자리는 구별해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아침 완전자 영원 불변자 절대자 하나님이 처음부터 목적을 딱 만드는데 그 목적은 틀림이 없이 이루어집니다. 그 목적 이루기 위해서 오르고 내리고 이러고 저러는 과정만 있을 뿐입니다. 그거 없이는 못 만드니까. 그러니 그 목적의 대상 된 우리는 동풍이 불어도 서풍이 불어도 때로는 엎어져도 때로는 지나치게 대우를 받아도 저 목적의 주님 머리로 삼은 교회에 난 오른팔이 될 거다, 난 왼쪽 눈이 될 거다, 난 한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될 거다, 내게 주신 환경과 내가 받은 깨달음을 맞춰보면 거의 나옵니다.

이건 너무 밝은 건데 아마 눈이 될란가 봅니다. 난 남들이 아무도 몰라주나 모두를 향하여 모두를 위한 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럼 그 사람은 지금 심장을 만들어 가는 환경인지 모릅니다.
철공장에 쇠를 가지고 오면 얇게 자르기도 하고 길게 늘여 만들기도 하고 별별 일을 합니다.
뭉퉁한 쇠를 불에 녹여서 망치로 계속 때리는데 이게 길어지고 길어지면 나를 철사로 만들라는가보다, 똑같은 쇠를 계속 두드려 얇게 종이처럼 얇게 얇게 만들면 나를 철판으로 만들란가 보다, 나를 손가락처럼 만들어 놓고 여기다 대고 홈을 파면 나를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볼트로 만들려는가 보다 그리고 그 만드는 과정과 공정과 되어가는 과정을 쭉 보면 저거 차의 엔진에 들어가는가 보다 저 차에 지금 외장 몸체가 될란가보다, 저거는 운전석에 올라 앉을란가보다, 운전사 눈에 보이는 계기판은 중요하고 열통 내는 엔진은 바보고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떤 위치에 어떤 역할을 맡길란가? 내 주변의 모든 현실 환경 역사에 돌아가는 것은 나를 가공하는 공장의 설비고 공구입니다. 그리고 깎아대고 만들어가고 나아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 어느 쪽으로 대충 쓸란가 보다 이런 게 나옵니다. 만사 좋을 때 취하지 않으면 위대한 사람 됩니다. 만사 우울하게 내리 누를 때 내 속에 주신 목적 때문에 감사를 잃지 않으면 지금은 그 사람 굉장한 위치에 굉장한 사명을 주시는 겁니다.

이 아침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처럼 믿는 사람 몇 있나? 네 눈에 볼 때 백 년 전에 한국이 생존한다고 봤냐? 지도 속에 사라져 버렸는데. 뒤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이 받은 복음 이 길의 방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줄 서려면 이런 데 와서 얼른 줄 서는 게 좋습니다. 그 정도 눈치가 있기 때문에 다 떠나도 이 줄 끝에 줄잡고 저는 서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줄 서면 참 좋을 듯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소망이라는 것이 우리의 투구가 되어 집니다. 소망. 중요한 겁니다. 오늘도 몇 사람 칭찬 받고 우쭐하지 말고 몇 사람 눈치 준다고 자기를 내리 눌리지 말고 그냥 딱 그대로 요동 없이 나아갑시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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