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3.2.19 사49:20 말씀으로 살 때 겪는 어려움,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걸어간 인내, 후일의 약속된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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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3.2.19 사49:20 말씀으로 살 때 겪는 어려움,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걸어간 인내, 후일의 약속된 열매

관리1 0 83 2023.02.1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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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9 주후

제목 : 말씀으로 살 때 겪는 어려움,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걸어간 인내, 후일의 약속된 열매

사회 : 안 응규
찬송 : 85장(어려운 일 당할 때), 121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158장(내 주의 지신 십자가)

본문 : 이사야 49장 20절 -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 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오늘의 고난을 통하여 내일의 소망을 일구어 나아가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한없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저희들인데, 귀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목적의 대상으로 삼게 하시 사, 이 일을 위하여 오늘 세상 영도 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운영하실 때에 참 감사하고 황송한 마음밖에는 없나이다. 존귀한 우리인데 존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에 휘둘려 살았던 과거를 돌아봅니다. 찾을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아직 남은 기회가 있으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외쳤던 그 말씀으로, 오늘 우리에게 귀한 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돌아보며 살피게 해주심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열어주실 때에 잘 듣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고난으로 우리의 길을 열어 가시며 연단으로 우리를 길러 가실 때마다, 우리는 쉽게 포기하고 저주했던 것을 자복하나이다. 말씀으로 사는 고난만이 참 복인 줄 몰랐던 저희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남은 때는 말씀으로 사는 고난의 길을 더욱 재촉시켜 주시 사, 이 일에 한 걸음 한 걸음씩 달려 나아가는 깨어있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분별이 없는 시대에 뒤죽박죽 불빛이 없는 이 시대를 무엇으로 감당하겠으며, 오직 말씀 밖에 없사오니 오늘도 오전 말씀에 이어 오후의 말씀으로 우리의 갈 길을 밝히 열어 주시 사. 이 길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귀한 저희들이 되도록 닫혀있는 마음의 문들을 열어 주옵소서. 세우신 주의 종의 영육의 강건함을 구합니다. 피곤치 않게 하시고 긴 시간을 통하여 한 말씀 한 말씀 증거 하실 때마다, 빠른 진리의 교훈으로 잘 전하게 해 주시고 모두가 함께 이사야 말씀의 복을 다 충만히 받을 수 있도록, 이 시간도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여러 형편 여러 모양에 있는 우리 교인들 어디 있든지 늘 돌아보아 주시며, 오늘 주시는 말씀에서 다 각자의 길을 바르게 찾아 한 주간도 흐트러지지 아니하고, 바른 신앙 바른 길로 나아가는 데에 진력할 수 있도록 오후 예배 시간도 말씀의 은혜로 충만케 하옵소서.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신앙으로 걸어가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두고 갈 세상은 어렵고 불리하여 신앙으로 걸어가는 나 하나는 걸어가지만, 내게 딸린 식구 내가 거두어 길러가야 되는 집의 자녀 교인 신앙의 사람들은, 나 정도가 되지 않으니 떨어지는 것이고 흐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 자기 하나는 독립 정신으로도 죽기를 각오하고 걸어갔지만은, 그 어린 자녀들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야 그 정도 되지 않다보니, 좋아서 독립 운동하는 사람이야 죽든 말든 하긴 하지만은. 딸린 식구들이 감당 못하는 어려움 때문에 좌절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서, 통계적으로 독립 운동하는 사람 후손 제대로 되더냐 라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뭐 식민지 되면 이쪽에 붙고 해방되면 저쪽에 붙고, 간에 붙고 쓸개 붙는 사람들은 지조 없다고 욕은 얻어먹지만은 요리조리 줄을 잘 서다 보니, 여기에서도 덕 보고 또 바뀌면 변신해서 적에도 덕을 보고 그래서 일단 그냥 욕을 얻어먹어도 먹고 사는 거는 좋고, 또 누가 남을 그렇게 오랫동안 욕을 합니까. 성격상 자기 말을 들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는데 객관적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대우그룹을 만든 김우중이라는 사람이 한 번 큰 사고를 친 적이 있었는데, 세계적인 기업의 이 대기업 그룹이 회장님 때문에 큰일 났습니다. 라고 하니까 그때 고 김우중이라는 양반이 기막힌 소리를 한 번 한 게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6개월이면 다 잊어버리니까 걱정 마시라. 오늘은 난리가 나지만 6개월이면 먹고 살 것도 바쁘고 뭔 남의 일을 그렇게까지 기억할 거냐. 그 정도 되니까 사업을 하는 겁니다. 꽁 하면 사업은 못 합니다. 학자나 하지.

독립 운동하는 그 사람이야 애국정신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했는데, 그 사람 그렇다고 부인도 아이도 친척도 다 그만큼은 되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 독립운동 제대로 하면 주변은 상처가 많은 겁니다. 세월 지나가면 다 잊어버리고 남는 것은 없고. 친일파나 친이파나 욕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쓸개에 자꾸 올라갔다 붙은 사람들은, 결국은 나중에 다 칭찬받고 그렇습니다. 이런 걸 보고 신앙으로도 그리 할래 이제 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세상 역사와 세상 형편을 봐라 교회라고 별 거 있겠느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성자의 걸음은 자기가 성자니까 걸어가지만은, 아니 성자가 성자라고 조카도 성자 되고 집안도 성자 되고 친구 동네 사람이 다 성자는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 앞서가면 주변은 찍히는 것이 있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고, 이럴 때 믿어 좋을 때는 열심히 교회에 가서 할렐루야 하다가, 또 절 장사가 잘 될 때는 가서 보살님 그러다가 또 천주교가 뜰 때는 그쪽으로 갈아타기도 하고, 이렇게 간에 붙었다 쓸개 붙었다 그런다고 욕은 해도 오래 가지 않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돈 가지고 잘 나가면 부러워하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교회 걸음도 결국은 돌고, 돌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먹는 것만 남는 거다. 그렇게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너 어려워지고 주변이 다 흩어지니 그리 말아라 이렇게 다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세상이면 남는 게 좋지 뭔 세월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데. 여기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 말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느냐. 당장에는 너의 집에 식구 자녀 교회 교인 너 주변에 친구 챙길 식구들이 어려워, 넘어지고 흩어지고 남는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주님만 믿고 끝까지 그대로 딱 걸어가거라. 그러면 대가 끊기고 훗날이 없는데 어떡할 겁니까. 아이 세상과 다르다. 주님을 믿었으니 주님께 너 훗날까지 한번 맡겨 놔봐라. 훗날까지 맡겨 놔봐라. 고난 중에 걸어갔고 꼬실꼬실 이거 하나가 되겠냐. 저거 둘 가지고 되겠냐. 뭐 그거 하나도 없는데 했는데 훗날에 보니까 시험 시련이 지나가고 보니까, 아니 이 길에 사람들이 많네. 그 사람 밑에 그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이 많아졌네. 모두들 장사 안 된다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라고 할 때, 그 길에 밑에 사람들이 우리가 좁으니 좀 넓혀주시라 우리가 거처하도록 좀 넓혀주시라 할 때, 네 마음에 어 이거 누가 이 무리를 이렇게 많이 만들었던 고 내 아이는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도 없었는데, 나는 홀로 걸어갔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게 누군 고. 주님의 약속을 믿으면 믿는 사람이고 세상도 그렇고 역사도 그러니 주님 따라가는 길도 결국 세상과 같지 않느냐. 그러면 불신자입니다. 불신자. 목사님 가시고 이 길 그대로 고소한다고 그럴 때 마지막 가시던 분 한 분이 저한테, 신풍 삼거리 1년을 이 정도 했으니 여기에 전도 한 명도 안 될 겁니다. 그러고 갔습니다. 그분께 한 명도 없으면 제가 아이가 넷이니 사택 여섯 명이면 사택 여섯 명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지금 이 식구들은 어떻게 이렇게 오후 예배도 이렇게 많이 앉아 계실까. 한 130명. 주님이 뒤에 챙겨주신 것이라 요래 보면 맞고 뭐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방법 때문에 그러지 않느냐 그러면 불신자 됩니다. 그냥 하나 예를 드는 겁니다. 그냥 주님을 믿으려면 믿어보고 주님도 주식 투자처럼 도박처럼 세상에 무슨 주식처럼,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내다 지르듯이 한 판 한 번 걸어보듯이, 세상 끝은 복궐 복이라 재수로 가는데 신앙의 길은 가야 할 길이냐 정말로 가야 할 길이냐 그러면 목숨 걸고 나 하나는 가는 겁니다. 뒤는 어떻게 되느냐 약속의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이렇게 걸어온 길이 첫 길을 걸어가신 주님 십자가 걸어갈 때 아무도 따라 간 사람 없습니다. 완전히 없어진 줄 알았는데 주님 가신지 십자가 못 박힌 지 50일, 승천한 지 10일 뒤에 오순절 성령이 소리 없이 와가지고 예수님 계실 때보다 이제 제자들이 제대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우선은 열심히 전도를 했는데 로마 제국이 전부들 묻어버리고 순교시키는 바람에, 눈에 보이는 교회는 한 250년 지나도록 로마 제국 안에서 사라져서 십자가 기독교인은 하나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주후 313년 로마 황제가 당시 세계를 붙들던 로마가 동서로 나눠서 싸우다가, 좀 약한 서쪽의 로마가 질 줄 알았는데 싸움에 나가기 전날 저녁에 하늘에 뭔 불빛을 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적적으로 이겼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내가 어제 저녁에 하늘에 이런 모양을 봤는데 이게 뭐냐. 그게 기독교 교인들 마크입니다. 그래서 그날로 기독교 자유를 선언하고 보니까 그 황제 자기 엄마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보이는 기독교는 다 없애서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믿는 사람 잡히면 산채로 사자 밥으로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경기장에. 그래놓고 모두 웃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그냥 못 박아 죽였는데, 뒤에 믿는 사람은 십자가 못 박아놓고 밑에 장작불로 기름불로 지지면서 죽이고 이랬습니다. 수백 년을 그랬기 때문에 기독교는 100% 다 잡아 죽여서 없다 했는데 보니까, 왕궁의 황제 지 엄마부터도 성도였습니다. 크게 회개하고 그 황제가 입회하고 만든 기독교 첫 교리가 다 같이 뭐라고요 학생들?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

우리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너무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반복을 안 합니다. 당연하니까. 근데 이게 헷갈리는 교회는 지금도 주일 오전예배 드리면 다 같이 일어나가지고 삼위일체 고백하고 예배 시작합니다. 삼위일체 고백하고 예배 시작하는 것 우리 교인들은 거의 다 모르시지요? 그걸 사도신경이라고 그럽니다.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성부.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성자. 성령으로 잉태하사 성부 사도신경이 삼위일체 하나님조차도 몰라서 300여 년 교회가 흔들릴 때, 그 황제가 삼위일체 결의를 입회해서 통과시킨 회장이었습니다. 그 사람 불신자였고 믿는 사람 다 죽여서 로마 제국 세계에는 기독교는 뿌리를 뽑아서 없다 했는데 세계는 교회가 다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죽였지 제자들 다 없앴지. 없앴는 줄 알았는데 로마 제국 황실까지도 벅적지글 했으니. 이게 베드로가 전도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전도했습니까. 그들은 앞에서 수고하고 뒤로는 성령이 전부 다 촐촐 이렇게 가득가득 곡식을 열매를 많이 맺혀 놓은 겁니다. 세계를 점령한 로마 제국이 기독교가 번성을 해가지고 주체를 하지 못해가지고 침몰을 합니다. 너무 교회 세력이 드세 가지고. 아니 나는 고난 속에 혼자 걸어갔는데 그래서 이 길을 따르는 후배 후손 자손 열매는 없는 줄 알았는데, 앞서 걸어가는 사람은 그리 알고 걸어갔는데 때를 따라 주님이 필요하면, 그 복음의 열매를 가득 가득 채워 가는 겁니다.

부산 경남은 호주 선교부가 여기 섬진강부터 목포까지는 미국의 남 장로교 선교사들이 전도하러 다닐 때, 참 애 먹고 애 먹고 애 먹고 그렇게 원숭이라고 놀림 받고 애먹고, 저 어릴 때도 선교사들을 보면 골리고 그랬습니다. 참 무식한 게 용감한 거지. 코쟁이라고 막 실컷 욕을 하다 보면 그 선교사들이 욕하면 안 됩니다. 아이구 한국말을 알아듣는구나. 모르는 줄 알고 우리말로 실컷 욕했더니마는. 그 그분들 그렇게 고생할 때 이 무지막지한 조선인을 상대로 전도는 했는데, 이 사람들이 믿을 건가 안 믿을 건가 아무리 봐도 확신 없이 그냥 할 일이니까 했지. 이게 일이 잘 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고 그분들이 그리 다 갔습니다. 그런데 한 세대 두 세대 가고 지금은 미국을 압도하는 기독교 대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백 년 전에 여기 선교 왔던 분들이 미국 동해안 남쪽에 바닷가에 마을을 만들어서, 한 100가구가 모여 사는 데가 있습니다. 그분들 얼마 전에 아마 kbs인가 어디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보니까, 아버지 할아버지가 한국 선교한다고 그럴 때가 참 어려웠습니다. 믿지도 않는데. 자기들은 어려도 멋모르고 한국에서 살아서 한국말을 좀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그때 찬송가하고 요즘 찬송가가 다르답니다. 100년 전에 아버지 선교사들이 찬송가를 한국에 가르쳐 줬는데, 요즘 한국사람 예배드릴 때 찬송가가 달라서 찬송을 못 한답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웃으면서 그 왜 달라졌지요? 아니 찬송도 세월이 지나간다고 바꾼답디까? 그래요. 그 방송을 보는 제가 신풍교회는 아직도 그대로 씁니다. 제 말이 거기 들리겠습니까.

뼈대 있고 전통이 있고 뭐 눈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호들갑 부리고 그냥 왔다갔다 간에 쓸개에 헤딱헤딱 이렇게 잘 바뀌지 않는 겁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꼭 옳으면 자기가 자기를 잘 돌아보고 이 길 가겠습니다. 한마디 하면 죽는 날까지 그만 그대로지. 틀렸으면 가다가 바꾸지만은 불편하다고 돈 안 된다고 사업 안 된다고, 간에 붙고 쓸개 붙고 뭐 참새 머리처럼 여기저기 이렇게 정신없이 오고 가면, 그건 처세술이라고 그러는데 그 놈은 처세술도 어느 정도 하고 말아야 되지. 자기가 어디 간에 쓸개 얼마나 붙었는지도 몰라가지고 정신도 없는 정도가 되면 정신 빠진 사람입니다. 찬송가 이런 것은 한 번 정하면 천년 이천년 가는 겁니다. 성경은 영원무궁이고. 기독교의 첫 교리가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인고. 이걸 삼위일체 교리라고 그럽니다. 그걸 요약해 놓은 게 사도신경입니다.
이걸 2천 년 전에 확정한 것 1700년 전에 확정을 했는데, 지금도 교회들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주일마다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그러니 그것도 좀 우습지 않습니까? 퇴근할 때마다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내가 당신 남편이오. 퇴근할 때마다 내가 당신 남편이오. 열흘도 그러고 1년도 그러고 10년도 그러면 이 가정에 남자 여자 이거 뭐죠? 여자가 몇 개라서 자기 여자인지도 지금 모른다는 얘기입니까? 결혼하고 신혼에야 서로 의심할까 봐 너 밖에 있니 없니 몇 번 그러지만은, 한 달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10년 부부가 만날 때마다 부부가 맞는지 이렇게 주민등록증 가지고 확인하고 지문 조사를 하면. 그거 우습지지 않습니까? 여기저기 연애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하도 여자 친구가 많고 남자친구가 많아서 실수할까 봐 그러지만은, 사도신경은 성경입니다. 사도신경 안 믿으면 교회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2천 년 동안 예배 볼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 교회고 사도신경을 안 외우면
사도신경을 안 믿는단 말이냐. 그런 분들한테 꼭 제가 그래 물어봅니다.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 합니까? 주기도문 안 한다고 그러면 주기도문을 부정하는 교회입니까? 예배 때마다 십계명 외웁니까. 십계명 안 외우면 십계명을 부인한단 말입니까? 예배 때마다 신구약 66권을 다 읽습니까? 사도 신경이 나온 게 우리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것도 몰라가지고 300년 혼동을 하는 바람에, 로마 황제 한 분이 이렇게 혼돈스러워서 안 되겠다. 안 믿는 세상도 통일하는데 교회 안에 교리 하나는 잡되 하나님은 잡아야 되겠다. 난 교리 모른다. 이래서 세계 교회 목사님 대표들을 황제 앞에 딱 불러놓고, 거짓말하는 인간 두 소리 하는 인간 황제가 다 잡아 죽일 테니까 목숨 걸고 양심껏 얘기해! 나 교리 몰라 너희들끼리 한번 싸워봐! 그 황제는 안 믿다가 이제 처음 믿는 사람입니다. 지켜만 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맞다 안 맞다 이렇게 많은 토론이 딱 벌어지는데, 황제 앞이니까 함부로 말 못하고 한 번 두 번 딱딱 대화를 하는 거 보니까 어느 게 옳은지 나와 버리는 겁니다. 고함도 못 지르지 뇌물도 못 주지 황제 앞이니까.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사람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순천의 한국은행 지점 제일 좋은 건물 거기 들어가는 사람들이 하나님 교회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사람들 삼위일체 교리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선배들 때문에 잘 배워서 삼위일체 교리는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그래서 안 외우는 겁니다. 알기 때문에.

교회 십자가 예배당에 십자가 표시를 안 하는 것은, 신풍 교회가 교회 아닌 걸 교회라는 걸 모르는 사람 하나도 없으니까. 정말 어려울 때 교회는 십자가를 지고 온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는 어려우면 십자가 슬쩍 없애 버립니다. 십자가를 달 때도 있고 안 달 때도 있고 장사 따라서 달고 안 다는 교회들은, 요즘은 십자가를 달아야 장사가 되니까 십자가를 네온사인으로 높이 달고. 우리 교회처럼 만인이 알고 인민군이 알고 빨치산이 알고 일본 순사들이 다 아는 교회는, 동네도 알고 다 아는데 뭐 하려고 또 갖다 붙여? 그래서 안 붙이는 겁니다. 다 알기 때문에. 제가 제 이마에다 대고 이영인 목사 이렇게 여기에 명패를 써 붙이고 다니면, 사람들이 저 사람이 저렇구나. 보겠습니까? 정신병원 가야 되겠다 그러겠습니까? 교회는 십자가 달고 신풍교회 간판 달고 목사는 이마에다 대고 목사라는 이마 이게 안 달고 다니면 됩니까? 제가 안 달아도 다 압니다. 처음에 와서 동네 사람들이 저를 몰라 볼 때는 일부러 길에 나가면 꼭 성경을 이렇게 들고 댕깁니다. 목사 광고 하느라고. 누구를 만나도 90도 인사하면서 신풍의 새로 온 이영인 조사입니다. 제 소개를 했습니다. 지금은 다 아는데 한 번 더 인사를 하면, 아니 내가 자기를 몰라준다고 무시를 해? 그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신정업 어른이 한 번 골목에서 만나서 제가 신풍교회 목사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기를 모를 줄 알고? 딱 섭섭하게 그럽니다. 좋게 얘기를 했는데. 그런데 죄송하지만 제 눈에는 신풍 시골 분들은 똑같이 생겨서 구별을 못해요. 지금은 이제 신풍 분들 좀 구별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내 나가면 아가씨들 얼굴이 똑같아서, 저걸 봤는지 또 봤는지 그 사람인지 아닌지를 지금은 구별을 못합니다. 어제 마트 갔다가 마트 캐시 하는 점원한테다 대고, 똑같이 생겨서 제가 인사를 못하니까 양해하십시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느 날 신풍교회 목사인 줄 알아보면 섭섭해 할까 봐 스무 살은 똑같이 생겼습니다. 제 눈에. 스무 살들이 제 나이를 보면 또 똑같이 생겼다 그러겠지. 공회목사 100명 앉혀 놓으면 남들이 보면 똑같이 생겼다 그럽니다.

미국은 대륙이 크지 않습니까. 미국이 50개 주인데 미국의 주 하나가 우리나라만 합니다. 그런데 저 LA에서 송용조 목사님은 나이가 저보다 스무 살이 위에인데, 20년 전에 송용조 목사님을 LA에서 본 사람이 미주리에서 저를 보면서, 그 어디 본 것 같다 그래요. 어디냐 그래서 서부교회 반사. 아 그쪽이구나. 어찌 똑같이 생겼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제 인사를 오해될까 봐 한 번 더하기도 하고 두 번도 하고 그럽니다. 교회에 간판을 안 붙이는 이유 옷 장사 음식 장사는 서로 간판을 붙여서, 막 여기 오시라고 여기 오시라고 여기 오시라고 그래야 장사입니다. 근데 여풍 식당처럼 알아주는 식당은 간판 안 붙입니다. 골목을 찾아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주체를 못하니까 간판 붙이면 더 들어오면 받지도 못하니까. 그래서 간판을 안 붙이는 겁니다. 사기꾼이라 그런 게 아니고 비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속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은 내가 누구입니다. 자꾸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 교회 십자가 이름 두 개를 안 붙이는 이유. 신풍의 손바닥 만 한 마을에 교회가 7개입니다. 도시나 되면 사람이 많다 보니까 많아도 이해가 되는데 사람도 다 떠난 신풍 안에만 교회가 일곱 개인데, 이걸 십자가의 간판을 서로 경쟁을 해놓으면 저 공항 비행기에서 밑에 내려다보면, 아이 공항 옆에 마을도 없는데 뭔 골목 하나에 뭔 교회 하나라. 이 소리 들릴까 봐 찾아오는 사람은 말 안 해도 다 아니까. 그래서 누구든지 오면 저 길가에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니까 그쪽으로 가시면 믿기가 좀 수월할 겁니다. 뒤로 돌아앉은 이 교회는 요상한 목사에 요상한 사람들만 앉아가지고, 숨이 콱 막혀서 여기 오면 집사도 안 주지 새벽 예배 나오라고 그러지 성경 읽었냐고 물어보지. 코로나 2년에 전국이 다 문 닫아도 여기에는 잡아가라고 그러고 예배를 드리지. 뭐 이단은 아닌데 영 이단보다 더한 데가 되니까 여기 오면 한 번 발 딛으면 시골이라 교회 바꾸기도 어렵고 그러니까 다른데 가십시오. 제가 안내를 그래합니다. 그래도 이 교회 한 번을 다녀도 이 교회에 다닌다. 그러는 분은 그러면 환영합니다. 그럽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군가 예수님이 가고 나서 하나님이 누군가. 이것 때문에 300년을 교회 안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300년. 하나님이 누구인고. 이걸 몰라서. 한반도의 조상은 백두산에 내려온 단군 할아버지인가. 저 경주에 알이 하나 떠 내려왔는데 알에서 까고 나온 것이 김알지던가요? 박혁거세던가요? 세상에. 경주 땅의 신라의 조상은 알이 깨고 왕이 됐답니다. 새 새끼인가요? 우리가? 일본 애들처럼 이왕이면 큰 소리를 치려면 태양의 아들이다. 큰 소리를 그렇게 치든지 거짓말이라도. 저 북한 쪽에는 곰이 우리 엄마입니다. 이러지. 또 이쪽에서는 우리는 알에서 깨고 나왔습니다. 그러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입니다. 뭐 거짓말이라도 그냥 이왕이면 이런 말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주님 가신 뒤에 우리 하나님이 누구인가 이것 때문에 325년 세상이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안 믿던 황제가 내가 오늘부터 믿고 보니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군 줄 알아야 되겠는데, 세계에서 잘 믿는 목사 다 와가지고 붙어봐라 내가 딱 봐볼게. 뇌물 쓰는 거 거짓말하는 것들 뒤로 칼 쓰는 것들은 내가 그냥 두지 않겠다. 교리는 모르겠다. 너희들끼리 한번 따져봐라 내가 눈치가 있으니까 쳐다볼게. 신앙 없는 황제가 딱 쳐다보니까 함부로 못 떠들거든요. 그래서 따져보고 따져 보고 따져보니까 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구나. 황제부터 그렇게 배운 것이 주 325년입니다. 지금부터 170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게 사도신경입니다. 그런데 지금 1700년이 지났는데도 사도신경을 외우면 삼위일체를 믿는 교회라고 뻐기고, 너무 당연해서 우리는 안 외우는데 우리 보고는 저거는 삼위일체 이단인가 이러니, 천하가 이런 식으로 뒤흔들 때 흔들리면 나중에 바보 됩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냥 우리는 딱 이대로 믿어 갑니다. 그러다 보니 좋아서 고난 싫어서 고난, 몰라서 고난, 알고 고난. 제대로 믿어 보려면 수고는 해야 됩니다. 그게 오전이었습니다.

수고는 하는데 저렇게 까다롭고 어려우면 누가 그런 교회를 가겠느냐. 아니 못 와도 그냥 옳은데 가지 사람 많은 데는 따라가지 않으련다. 사람이 많다고 틀린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다닌다고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라 그 얘기입니다. 작아도 많아도 나는 옳은 길로 가보겠다. 일반적으로는 옳은 길을 고수하려면 주변의 사람들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나 하나라도 끝까지 간다. 너는 가는데 그러면 남은 사람 따르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니냐. 그건 하나님이 알아서 하겠지. 모세 죽고 뒷시대가 필요하면 여호수아를 주겠지. 여호수아까지 가고 나서 또 필요하면 사사를 주시겠지. 옳은 길을 걸어가지 먹고 본다 난 그런 식으로는 못 가겠다. 그러다 보면 고난의 길을 가는 겁니다. 고난의 길을 가다보면 후배가 있을까 교회가 있을까 교인이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옳은 길을 따르는 교인이 많아서 이거 좀 좁으니 넓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때가 되면 그리 해 주실 것이라. 역사적으로 이사야 때 이 말씀을 주셨고 역사적으로 그리 되었습니다. 복음이 가는 나라는 어느 나라든지 처음 갈 때는 다 고난을 당했고 뒤에 보면 이렇게 넘쳤습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신앙의 바른 길 제대로 걸어가면 그 신앙의 뒷날 훗날 결과적으로 꼭 필요하면, 돈이 필요하면 돈을 넘치게 주실 것이고 이름이 필요하면 이름을 전국에 넘치게 해 주실 것이고, 사람 숫자 머리수가 필요하면 머리 숫자를 세계 제일로 갖다 부어 주실 것이고, 교리가 필요하면 제일 좋은 교리를 듬뿍 주실 것이고. 뭐가 필요한지 봐가지고 필요한 것 때가 되면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만사 때와 기한이 있으니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맡겨 놓고 우리는 우리 갈 길만 또박또박 걸어가다 보면, 만사 해결이 되는 것이 이사야 49장 20절입니다.

이 말씀까지 오기 위해 모두들 기억하시는지요? 올해 2023년은 지난 세월이 부족했기 때문에 또 한 해를 주신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한해는 주님 앞에 좀 더 잘 믿어봐야 되겠다. 그러면 이 한해는 복인 겁니다. 그리고 시작을 성찬에 요한복음 6장 55절 “내 몸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고난이 나의 신앙에 생명력 힘이 되고 양식이 되니, 주님 고생했는데 내가 이 고생 못할까 그러면 신앙은 해결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 아이 부모 시대는 굶고도 했다는데 먹고를 못해? 그러면 다 해결됩니다. 밥을 굶고도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는데 세끼 밥을 먹고 이 나라를 갖다가 더 잘 만들지를 못해? 그러면 이 나라는 되는 겁니다. 책가방이 없어 보따리에 싸고 댕겼고 보따리도 없어 들고 댕겼다는데, 책이 없어 남의 책을 훔쳐봤다는데, 공짜로 책이 이만큼 많고 도서관마다 책이 이만큼 쌓이는데 공부를 못해? 그러면 공부는 하게 돼 있는 겁니다. 아이 십리를 갖다가 비가와도 비를 맞으면서 걸어갔다는데 옆에 있고 차가 오는데 못가? 그러면 개근상 받는 겁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지는 인간 못난 인간 안 될 인간 처 박혀서 그냥 사라져 주면 좋을 인간은, 울고 짜고 울고 짜고 징징 울고 짜고 막 천 번 만 번 울고 짤 일밖에 없습니다. 에덴동산 갖다 놔도 울고 짤 겁니다. 결국 에덴동산을 주셨는데 선악과 먹고 기 내려왔지 않습니까. 인간은 자유성이라는 게 있어서 공짜로 줘 놓으면 더 죄인 됩니다. 오전에 첫 말씀. 그렇다고 힘도 없는데 넘치는 고생을 하면 찌부러져 죽어버립니다.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를 잘 조절해서, 한 살은 살 만큼 10살은 10살만큼 수고를 알고 수고의 결과를 알게 하면 인간은 기가 막힌 인간입니다. 신앙은 기막힌 신앙이 되어 집니다.

전도를 해본 사람은 절대 교인 욕을 안 합니다. 반대로 전도를 안 해본 사람들은 이 교인은 이렇고 저 교인은 저렇고 그 소리를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사람은 남의 집 아이를 보면 오죽하겠나. 이래 봅니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사람은 남의 아이가 애를 먹이면 오죽하겠냐. 애들이 잘 크면 참 부럽다. 재수가 좋구나. 이래 봅니다. 잔인한 사람 아이를 안 가져본 사람이 매섭지. 전도해본 사람은 저절로 교인됩니다. 교회 다니는 교인이라 말이 아니라 교회가 내 것 같고 교인이 내 것처럼 바뀌어버립니다. 예배당 청소를 해본 사람들은 예배당에 쓰레기를 덜 버리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 5살 10살 아이들은 모르고 다 쓰레기 버리거든요. 저 같은 사람은 5살 10살에 쓰레기가 있으면 밟아서 더 흩어가지고 애를 먹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걸 고치는 법은 매로 안 되고 교회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멱살을 잡아다가 쓰레기를 줍게 만들면, 쓰레기 버린 걸 쓰레기를 또 줍고 또 줍고 또 줍게 만들면 그다음 안 하게 돼 있습니다. 이런 걸 가정교육 아동 교육법이라고 그러는데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일 학교 인도할 때는 예배 마치면, 앞에 보고 뒤에 보고 옆에 보고 쓰레기 10개씩 줍고 해가지고 반드시 그럽니다. 이거 예배만큼 중요한 겁니다. 예배 보러 온 주일 학생이 쓰레기 버려야 되는데 안 버릴 만큼만 조심하면, 이 그릇에 말씀을 담으면 말씀의 사람이 되는데 교회는 왔고 설교는 들었고 예배는 왔다 갔는데, 예배당에 쓰레기 대충 대충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아이가 되면 든 것이 복음이라도 그릇이 깨져버리면 담기질 않습니다.

뭐든지 이렇게 딱 생각해 보면 가정의 운영 법 아동교육법. 부부의 사랑과 부부의 가정에 발전의 앞날과 모든 것은 다 해결이 됩니다. 그냥 눈 딱 감고 그냥 다른 교회처럼 연보 많이 하는 사람 집사 더 많이 하면 권사 더 많이 하면 장로, 돈 딱 딱 정해가지고 계급을 줘버리면 교회 안에서 밑에서 위에 치고 그러지를 않습니다. 근데 뭐 시골이고 또 원래 공회가 그런 데니까. 아니 뭐 연보 못해도 장로 할 수 있고 목사 할 수 있고 뭐 연보만 해도 집사도 못할 수 있고, 요래 만들어 놓으니까 아래 위 없이 그냥 자식 같은 사람이 부모한테다 대고 삿대질을 하고 막 혼을 내고 육갑을 하는 겁니다. 질서가 없는 겁니다. 질서를 잡으면 천주교가 되고 세상이 돼버리고, 사랑의 세계로 오냐 오냐 해놓으면 그냥 엉망이 돼버리고 이게 이제 어떻게 하느냐 이런 문제인데 원리는 그렇습니다. 배 아파 놓으면 거기에 모성애가 막 쏟아집니다. 고생한 것만큼. 아빠보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을 때 엄마들이 고생을 더하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집착은 뭐라 뭐라 해도 아빠가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자기가 쏟은 게 있으니까. 한 해 파 농사 한 해 벼농사 한다고 잡초를 허리 아파가면서 잡초를 10번 뽑아보고 석 달 뽑아본 사람, 거기다 대고 누가 그냥 구두 발로 지걱지걱 밟고 지나가면 그 파가 천 원이냐 2천이냐 돈 문제가 아니라 나를 밟고 지나간 것만큼 분하지 않습니까. 근데 농사 안 지어 본 저는 그냥 아무 밭이나 처음에 멋모르고 다녔거든요. 그게 농사짓는 사람 눕혀놓고 몸을 짓밟는 것만큼 가슴이 아프다는 걸 그건 저는 몰랐습니다. 모르니까 모르지. 이런 걸 갖다가 매로 때리면 안 들키고 또 밤에 가서 밟고 오거든요. 그런 거한테는 딱 붙들어다가 너 요만큼 밟았으니 풀을 뽑아 보거라. 그래가지고 밟고 지나간 것만큼 풀을 뽑아 보게 만들고 했던 짓을 반복을 하게 하면, 이게 굉장히 어렵구나 싶으면 웬만하면 사람이 그렇게 독종으로 나가지는 못하는 겁니다. 근데 아이들에게 교인들에게 자기 신앙의 사람들에게 위에서 자기가 고생을 다 해서 이 고생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옥이야 금이야 불면 날아가서 요래 길러놓으면 이거 살인마 됩니다. 식인종 됩니다. 넘치게 짐을 메우면 찌부러져 죽어버리고 할 수 있는 걸 대신해 주면 인간 못 쓰게 되고, 그래서 어느 정도라야 이게 되느냐 라는 연습은 꼭 해보셔야 됩니다.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 말씀으로 살아가다가 어려움을 당해본 사람 그 사람만이 여기 20절에 해당이 되는 겁니다.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혹독하게 좀. 내가 나를 혹독하게 꺾는 것은 아무리 세게 해도 내가 나를 혹독하게 하는 것은 아 사람 좋다 절제력이 있다. 인격자다 이래 보지 그 이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선 나를 혹독하게 꺾고 가는 길. 그다음 순서적으로는 교인들에게 가서 전도 하십시오 하기 전에 목사 네가 전도해봐라. 공회는 그렇습니다. 전도 제일 많이 해본 사람이 목사입니다. 그 다음 전도한 사람이 조사입니다. 그 다음 전도한 사람이 장로입니다. 그 다음 전도하는 사람들이 집사입니다. 전도 안 해본 사람들은 집사도 안 합니다. 제가 순서를 이렇게 한 게 맞나요? 서툴러서 그냥 순서를 좀 바꿀 수는 있지만은. 군인으로 말하면 국가를 위해서 가장 피를 흘리고 자기 자식들을 일선에 갖다 놓는 사람, 그 사람이 대장이 돼야 되겠지. 지 자식들은 뒤로 쏙 빼돌리고 남의 집 자식들한테는 애국을 위해서 죽자 이리 되면 안 되는 겁니다. 이제 국가를 말하는 게 아니고 교회를 말하는 겁니다. 목사? 너는 교회 위해서 연보 해봤냐. 둘째 너 기도 해봤냐. 너는 성경 읽냐. 너는 너를 꺾어 말씀으로 살아봤냐. 너는? 너는 네 멋대로 할 거 다 해놓고 교인들한테는 말씀으로 꺾으십시오. 가족을 희생하십시오. 연보를 하십시오. 그거야 뭐 녹음기도 틀어놓으면 그런 소리는 다 하지. 사기꾼들은 더 잘 할 걸요.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 내가 나를 먼저 꺾어보고 순서적으로. 순서적으로 내가 앞서 걸어가는 길이 고난의 성도입니다. 내가 나를 꺾어보고 내가 먼저 걸어가 보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은 나하고 거리가 멀면 거리가 멀면 먼만큼 그냥 두는 겁니다.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나하고 거리가 먼데 저 먼 사람보고 네가 제일 앞장서십시오. 그러면 안 되지요. 내가 나를 꺾고 내가 나를 앞장서고 그 다음 내 가족을 그다음에 뒤따라 수고하게 하고, 그리고 나하고 가까운 사람을 그 다음 그 다음 그다음으로 하는 겁니다. 그다음 나하고 거리가 제일 먼 사람은 멀리서 이렇게 지켜보시다가, 말씀으로 자기를 꺾으니까 참 좋아지는구나. 나도 가볼까 그리고 뒤를 따라 오게 만드는 겁니다. 그냥 원리가 간단한 겁니다. 세상도 자기가 먼저 앞장서면 뭔가 되는 길이고, 자기는 쏙 빠지고 남을 앞에 희생시키고 그걸 밟고 지나가려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복음은 필수입니다. 복음은 말씀으로 자기가 자기를 먼저 꺾지 않으면 성령은 손을 떼버립니다. 네 멋대로 하라고. 네 재주대로 하라고 자기를 꺾지 않고 교인을 먼저 희생시키면 큰 문제 생기는 겁니다. 성령이 빠져버리고 나중에 문제가 생깁니다.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 말씀으로 내가 나를 먼저 꺾어보고, 꺾어보고 가진 경험과 힘이 드는 데도 좋으면 나하고 가까운 사람한테 말씀으로 한번 꺾어보시라. 노력해 보시라 시키는 겁니다. 순서를 따라 사촌은 사촌만큼 팔촌은 팔촌만큼 거리가 머니까 순서가 뒤로 가는 겁니다. 제가 부탁할 때 좀 부탁이 과하면 좀 거리가 머니까 뒤에 시키십시오. 그러면 두 번 다시 말 안 합니다. 두 번 다시.

화가 나서 삐져서 그런 게 아닙니다. 신앙은 자기가 걸어가는 걸음입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내가 나를 꺾고 나하고 가까운 사람 순서로 걸어가다가, 여러분들은 연보도 하시고 전도도 하시고 성경도 읽으시고 잘 믿고 잘 사십시오. 난 멀리 떨어져 구경만 하겠습니다. 확실하게 이렇게 알려주면 두 번 부탁 안 합니다. 두 번. 불신자한테는 끝까지 전도를 가는 것은 아예 모르는 사람이니까.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고 믿는 사람들끼리는 아는 사람들이니 명확하게 싫으면 두 번 얘기하는 거 아닙니다. 제가 두 번 얘기하고 세 번 얘기할 때는 저하고 가까운 줄 지금 제가 오해를 한 겁니다. 저 분은 나하고 제일 가까우니까 열 번 말해도 되겠다. 그래서 그러는 겁니다. 그럴 때 저한테 제가 목사님하고 가까운 사이가 아니니까 두 번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죽는 날까지 두 번 말 안 합니다. 저는 부모도 형제도 가족도 한 번 딱 말하면 두 번 없습니다. 냉정해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은 자유인데 자기 자유의 신앙으로 천주교 가겠다는데 왜 두 분 따라갑니까. 잘 모르니까 그런 거지. 잘 모르니까. 근데 이제 이런 원칙이 있어 나뿐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도 손대지 마 그러면, 아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신앙이 따로 있는 겁니다. 간섭하지 마십시오. 본인만 말하십시오. 본인만. 나는 절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집엔 두 번 오지 마십시오. 확실하게 얘기하면 이미 불도인데 뭐. 근데 내가 절에 가는데 우리교회 남자들은 다 절에 데고 갈 거니까 손대지 마십시오. 아니 다른 사람은 신앙의 자유가 있는데 왜 다른 사람까지 개입합니까. 그 사람과 나와는 딴 사이입니다. 가족이라도.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오늘 오전 오후에 좀 살펴봤습니다. 말씀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이 뒤를 따라가며, 훗날을 챙겨주는 것이 너무 많고 너무 좋아서 너무 절대 진리로 틀림이 없어서, 이 말씀을 또 읽고 또 소개합니다. 같은 복을 같이 받고 가자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으로 꼭 끝까지 걸어봐 보십시다. 뭐 그냥 보통 좋으면 이 정도가 아닐 겁니다. 너무 좋고 너무 좋고 너무 좋아 틀림없이 좋아 오해를 해서 그렇지, 바로 알고 보면 복음 같은 복음은 정말 없다 확정이 되기 때문에 반복하는 겁니다.

(기도)
말씀의 인도만을 따라 오늘도 한 주간도 또 한 해도 남은 때도, 고독과 외로움은 말씀으로 걸어가는 길의 기본이요. 지켜보는 주님이 우리 주변 우리 뒤 우리 훗날을 든든하게 책임지고, 때와 기한을 따라 종류별로 넘치게 책임져 주신다는 역사의 통계와 성경의 진리와 우리의 경험을 복되게 사용하여, 오늘에 흔들리지 말고 말씀만을 따라 늘 복된 걸음 인내로 계속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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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23.2.19주전    사49:20              소망과 인내                  신풍교회



■ 고난 중에 낳은 자녀
1. 성도의 고난
 중심 : 악령 벗고 (성령)으로
 결과 : 세상 벗고 (천국)으로
 방법 : 죄를 벗고 (말씀)생활

2. 고난의 자녀
 자녀 : 신앙의 결과와 (열매)
 교회 : 신앙으로 기른 (교인)
 개인 : 신앙으로 기른 (자기)
 
3. 홀로 걷는 길
 소원 : 다 (함께) 가고자 하나
 현실 : 신앙은 (홀로) 가는 길
 본질 : 고독과 (외로)움의 길

4. 나를 혹독하게
 우선 : (나를) 꺾고 가는 길
 순서 : 내가 (앞서) 가는 길
 타인 : 멀면 (맡겨) 놓는 길


■ 후일에 말하기를
1. 시험이 끝나면
 시련 : 나를 (기르)시는 과정
 통과 : 고치고 (자라)게 되면
 결산 : 열매를 (풍성)히 주심

2. 우리에게 좁으니
 단계 : 감당할 범위와 (수준)
 성장 : 통과하면 (다른) 사람
 사명 : 새 사람에게 새 (사명)

3. 우리 거처를 넓히라
 인식 : 시험이 (복)임을 알고
 소원 : 시련을 (원)하게 되고
 자세 : 대속에 헌신에 (자원)

4. 생명은 생장과 쇠퇴
 출발 : 은혜의 기본은 (동일)
 선택 : 자신의 (결정)에 따라
 결과 : 아브라함과 (롯)이 됨

■ 역사 가장 어려운 시기
1. 소돔보다 악한 세상
  (처음) 보고 겪는 세상
  (소돔)보다 악한 세상
  (피할) 수도 없는 세상

2. 롯보다 못한 우리들
  롯은 아브라함과 (동행)
  롯은 소돔 속에 (의인)
  롯은 천사를 (영접)함

3. 못났으니 이 길에서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세상을 (가질) 수 없으니
  언약의 이 길에 (소망)을

4. 나 하나 끝까지 갈 것
  주변을 (참고)하되
  주변에 (요동)말고
  약속에 (인내)할 것
롬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히6:19, 이 소망이 있는것은 영혼의 닻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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