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3.2.13 사49:9 자기 중심은 결국 환경 따라 변질, 자기에서 벗어난 첫 양심의 소망, 오늘도 진리 객관의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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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3.2.13 사49:9 자기 중심은 결국 환경 따라 변질, 자기에서 벗어난 첫 양심의 소망, 오늘도 진리 객관의 자세로

관리1 0 80 2023.02.13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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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3월새

제목 : 자기 중심은 결국 환경 따라 변질, 자기에서 벗어난 첫 양심의 소망, 오늘도 진리 객관의 자세로

찬송 : 57장(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본문 : 이사야 49장 9절 -

내가 잡혀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잡혀 있는 자에게 나오라” 구약은 육체로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애굽에 종된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을, 또 이사야 당대에 주변 나라에게 포로 되어 가고 붙들려간 이들에게 해방 자유를
기회를 줬으니 얼른 나오거라는 말씀이고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이 잡혀 있는가, 자기중심에게 잡힌 것이 이게 육체의 포로보다 더 심각한 일입니다.

옥중에서도 신앙은 자유 얻었다는 찬송이 있습니다. 정권에 밉보여 교도소를 가도 몸은 갇혔으나 신앙의 양심은 지켰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는 있습니다. 신사참배하라 할 때 신사참배를 하면 양심은 붙들린 거고 양심이 붙들리는 대신에 몸은 교도소 들어가지 아니합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양심을 꺾고 양심을 내어주면 양심이 붙들리는 대신 우선 육체에는 여러 가지 좋은 게 제시가 되어 집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냐 선택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을 붙드는 자 자기 속의 자기중심 또 자기 주변의 세상이 뒤흔들어 놓으면 결국은 환경 따라갑니다. 부산은 멀리 아주 멀리 남태평양까지 나가는 원양 어선, 이 원양 어선 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결국 그런 바람이 억세게 몰아치면 그 영향을 받지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또 이쪽 여수 순천은 여순이라는 반도에 영향을 받습니다. 바닷가 사람, 저 남은 쪽에 윗 녁 사람 뭐 하나하나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 흐름과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도시 사람 아파트 사람 또 공무원 또 농사짓는 사람 환경 현실 주변 사회 결국 뒤흔들어 놓으면 옷도 바뀌고 음식도 바뀌고 우리의 모습도 바뀌고 전부 상투를 틀다가 지금도 상투 트는 사람 보셨습니까? 한복 한복 아무리 한복이라도 지금은 한복 입고 다니지 않지 않습니까? 초기에 자가용 들어올 때 뭔 부자 흉내 내느냐고 그랬지만 지금은 한 집에 식구 숫자만큼 이미 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랬든 저랬든 환경의 지배는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나쁜 것이 아니라 원래의 환경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는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타락 전 에덴동산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냥 주신 환경 보면 뭘 해야 될는지 그냥 뻔하게 나오는 겁니다. 만들어놓은 아담에게 첫 번째 맡긴 일이 모든 짐승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는데 그 이름을 붙일 때 성경 없이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역사는 있지만은 한 걸음 발을 빼고 지켜봤습니다. 특별 계시가 없어도 만들어 놓은 만물 속에 소를 볼 때 토끼를 볼 때
그 사자를 볼 때 이건 하나님이 이렇게 살도록 이건 하나님이 저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었구나, 그래서 모든 동물의 위치와 역할을 모두 맡긴 것이 이름을 지었다고 그랬습니다. 성경은 없던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가진 우리보다 환경을 더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죄 없는 자기중심 없는 마음으로 딱 보니까 모든 것이 바로 눈에 띕니다. 이거는 새니까 공중을 맡아라, 이건 작은 새니까 가까운데 이건 큰 새니까 멀리 이건 덩치가 크니까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건 잘 뛰도록 만들었으니 노루 사슴이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그렇게 보는 대로 다 정한 겁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몰라도 깨끗한 양심의 사람이 우리 교회 안 믿는 사람이라도 깨끗한 마음의 사람이 와서 볼 때 연세가 많으니까 이런 분들은 먼 날을 지도하는 대표가 되면 좋겠다, 이분은 힘 있고 열정적이니 교회 봉사를 하면 좋겠다, 이분은 신중한 분이니 교리를 맡으면 좋겠다, 이분은 감성이 풍부하니 찬송을 맡으면 좋겠다, 아마 이렇게 정하면 성경을 다 외우고도 자기중심이 들어간 사람보다 마음이 맑은 사람이 성경을 몰라도 보면 아마 인사 배정하는 것이 교회 경제 운영하는 것이 우리보다 더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타락 전 에덴 농산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쉽게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 후에도 성경을 주지 않았습니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요셉 그 유명하고 유명한 신앙의 인물들이 성경 없는 시대를 살다가 모세 때 창세기 출애굽기 다섯 권을 받게 됩니다. 천하의 모세라도 창세기로 신명기까지 66권 중에 다섯 권 우리가 가진 성경의 10%도 되지 않을 만큼 그렇게 적게 가졌습니다. 성경을 가장 많이 적은 분이 모세와 다윗입니다. 다윗 때까지 적은 성경이 성경 전체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설계도의 절반만 가지고 차를 만든다, 기계를 만든다, 수학의 공식의 절반만 알고 수학 문제를 푼다, 가능하겠습니까? 병원에 전공이 한 50개 대학병원과가 있는데 그중에 25개 없애고 환자를 치료한다? 안과 없앤다? 심장과를 없앤다? 심장 고장은 안 날는지요?

계시록에 이르러서야 66권 성경이 비로소 다 완성되었습니다. 자기중심이라는 것이 들어가 버리면 66권을 받아도 66권을 자기 죄 짓고 자기 야욕을 달성하는 데다 대고 쓰기 때문에 중심이 잘못돼 놓으면 성경 알면 더 큰 죄 짓고 더 많은 죄를 짓는다는 거 늘 마음속에 기억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중심의 마음을 가지면 66권을 제쳐 놓고도 신앙의 출발은 소망이 있다 라고 할 정도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뭘 원하실까 그리고 하나하나 읽어 나갈 때 바른 방향으로 바르게 체계가 되며 복이 되어 집니다.

오늘 아침 간단하게 한 말씀입니다. 우선은 나 중심의 직업 난 뭘 좋아하느냐? 똑같은 직업이라도 나는 피아노를 그렇게 좋아하고 뭐 피아노만 치면 행복하다 동네 피아노 교습소 하나 만들면 취미와 돈벌이가 하나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오로지 취미가 피아노 연주인데 동네 피아노 교습소 하나 만들어 아니 뭐 손님 없으면 그냥 혼자 치니까 재미가 없고 또 몇 명오면 돈이니까 또 좋고 이 두 개가 함께 가면 참 이상적인데 아파트 한 가운데서 피아노를 24시간 두드려 대면 자기야 좋겠지, 많은 아래 위층에 손님들이 그 피아노 소리를 들어주니까. 그런 걸 요즘 층간소음이라 그러던가요? 맞아 죽기 좋을 만 할 겁니다. 듣기 싫은 피아노 소리 뚱땅거리는 거 계속 계속 들어보셨습니까? 이거 뭐 들어주는 거 이거 참 보통 희생 아닙니다. 우리 저 천지헤 양 피아노 엄청 잘 칩니다. 반주할 만큼. 그 피아노 연습하는 동안에 참샘이 동네 어른들 얼마나 불편할지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안 해봤을 겁니다. 바이엘부터 한 단계 두 단계 세 단계 배울 때 나는 기분이 좋고 나는 발전이 되니까 신이 나서 밤낮 주야로 두드리는데 저처럼 소리를 좀 들은 사람도 연습하는 소리는 그 소리 또 같은 소리 또 같은 소리 반복이 되어 한 번 두 번 듣지 그거 종일 못 들어줍니다. 그런데 참샘이 지혜 양 주변의 분들은 전부 시골 연세 많은 분들이라 피아노 소리 좋게 쳐도 좋은 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다 들어줬거든요. 그 고마운 줄 알아야 됩니다. 피아노 소리 시끄럽다고 한 번씩 와서 말하는 분들도 계셨을 것 같습니다마는 그런데 만약에 아파트 한가운데서 피아노를 하루 종일 두드린다면 연주든지 말든지 이거는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난 피아노가 인생이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피아노만 치겠다. 나는 그래야 행복해지겠다. 너 하나는 행복해지겠는데 아파트 그 많은 사람들 입장을 생각해 봤는가, 이런 것이 자기중심이라는 말의 중요성입니다. 난 이게 좋다. 난 이래야 되겠다. 그리고 그대로 해버리면 자기중심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난 그렇다 그런데 가족은 어떻겠는가, 난 이렇다 그런데 남편은 어떠하겠는가, 난 이런데 아내는 어떠하겠는가?

직업이 저처럼 이래 놓으면 평생에 제 원하는 대로 살지 남 말 들을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몇 십 년 제 설교를 듣고 아시는 분이 한 번 여성의 마음을 아느냐 그래요. 참 따끔하지요.
나름대로 성경 가지고 설교했고 뭐 이랬고 저랬고 오만 소리를 다 해도 누가 목사한테 그런 소리 하겠습니까, 할 만한 사람이니까 여자 마음 아느냐 아이들이 아이의 마음을 아느냐 안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아느냐 이래 물어보면 뜨끔한 겁니다.

어느 날 세월 속에 남 사정 듣는 사람 사정 모르고 자기 소리만 반복 반복 반복하다 보면 이게 자기중심이 되고 그러다 보면 가르치는 사람 종교 지도자들 그럴수록 더욱 자기중심이 되어 이 자기 중심이 좁아지고 좁아지고 좁아지면 그게 교도소의 공간이 좁아져 나중에는 독방에 갇힌 사람처럼 되어 집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산다는 절대의 진리 하나를 생각하면서 늘 한 걸음 좀 떨어져 남의 입장 저도 생각하고 여러분들도 생각하고 연세 많은 분들도 자기 젊을 때 생각하지 않고 나이가 많으면 너무 잘 보이거든요. 나이가 많으면 너무너무 잘 보입니다. 저놈 하는 꼴 보니 저거 희망이 있겠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의 시력은 굉장히 정확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나이 많으면 귀신이 된다고 그럽니다. 저 안 봤는데 어떻게 저리 잘 알까, 아니 저 무식한 양반이 어떻게 저렇게 잘 알까, 나이가 많아지면 경험이 쌓이면서 경험은 요즘 말로 데이터입니다. 통계입니다. 통계 전문가 데이터 전문가가 돼가지고 정확하진 않지만 거의 정확해집니다. 그러니 자꾸 입에서 말이 나가거든요. 그러면 결국 젊은 사람들이 돈은 안 벌고 잔소리만 반복 반복했던 소리 수도 없이 하니 그 다음 고려장하거나 아니면 뒷방으로 갔다가 집어넣어 버리는 겁니다. 응? 나를 몰라보다니! 그러기 전에 사랑하는 부모를 집어넣을 때는 오죽했겠습니까?

나이 많은 분의 품덕은 말을 적게 하는 거고 젊은 사람들의 훌륭함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 배우는 건데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 말 들을 일이 없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도 죽는 날까지 또 잔소리 안 할 리는 없고 직업이 목사가 돼 놨으니 이 잔소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도 해야 될 말은 또 하고 하면서 했던 말 끝없이 반복하는 거 아닌가, 남의 사정 생각도 안 하고 내다 지르는 거 아닌가, 서로가 늘 성경 말씀을 붙들고 나가는 우리가 기본이고 한 걸음 더 이 때 마음이 좀 넓어지고 넓어진 마음 따라가라는 말은 아니고 좀 마음을 넓혀보고 그다음 말씀으로 또 비교해가며 오늘도 복되게 살아 가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젊은 사람 차까지 가지고 도로가 좋으니 얼마나 바삐 돌아다닐까 안전 위해 기도하시고 바쁘다 보니 오늘은 생각하고 먼 날을 생각 못해 손해 볼까 또 위해서 기도하고 이러면서 복된 하루가 펼쳐집니다.

(새벽에 출석을 추이솔한테 제가 좀 부탁하라 그랬는데 했는가요? 새벽 출석을 지금까지 오은정 집사님이 하셨는데 우리 저 이솔이가 지각을 안 하니까 새벽 출석을 좀 맡았으면 해서 제가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뭐든지 교회의 업무를 하나씩 하나씩 잡고 그때 맡는 것이 자기 인격과 신앙과 하나님께 복 받는 비결이라 그렇습니다. 장주형 씨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 세 배 네 배 일 하는 사람입니다. 업무를 맡길 때 말 안 들으면 저 진원이한테 부탁해요. 제가 그러더라고. 그게 고삐를 쥐어야 잘 따라올 것 같고. 저 신윤이 같은 사람도 굉장히 빠른 사람입니다. 날라 다니는 범만큼 빨라요. 맡길 만한 거 자꾸 좀 떼 맡기고 맡기는 게 나중에 많아지면 맡은 사람 챙기는 것만 해도 또 한 짐이거든요. 그럴 때는 업무를 묶어서 또 재 분담을 해서 이 성경에 십부장 오부장 백부장 천부장 이렇게 피라미식의 계급 사회가 아니냐 그래 볼 게 아니고 모두에게 필요한 업무를 맡기는 것 이게 예수님의 대속을 나누어 가지는 성찬이라 그리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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